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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피오
마르탱 파주 지음, 한정주 옮김 / 문이당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음악을 순수하게 음악으로서 즐기고 싶으면 전공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다가 결국 음악이 아닌 쪽으로 선택해야했던 나의 우유부단함과 주변 상황에 대한 변명이었을지도 모르나, 외골수적인 사고 경향과 극단적인 결론을 내리고 혼자 심각해하던 시기의 일이다.
이 책에서는 예술과 상관없이 살아오던 어느 여대생이 우연한 기회에 천재적 신인 예술가로 지목이 되면서 느닷없이 겪게 되는 예술계가 그 배경이 되고 있다. 그녀의 이름이 피오.
책의 시작 방식부터 평범하지가 않다. 고고학 유적지에서 만나는 신비한 피오의 미소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1980년 출생한 피오라는 여자 아이가 얼마나 보잘 것 없고 평범하기 그지 없는 배경에서 태어나고 자랐는가를 이야기한다. 가진 것 아무것도 없이 부모마저 여읜 후 생활의 한 방편으로 시작한 어떤 일이 우연히 어느 예술 평론가의 또 다른 계산과 목적에 이용되면서 그녀는 그야말로 어느날 갑자기, 새로이 떠오르는 미술가의 샛별로 인정받게 되고 그 때부터 이전과 전혀 다른 생활을 하게 된다.
그녀는 행복했을까?
프로페셔널로서의 예술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직업으로서의 예술. 그것은 예술 창작에 있어 긍정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할지, 아니면 오히려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서 작용할지,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 치기어린 시절의 명제로 다시 돌아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음악 대신 예술이라는 단어를 바꿔 넣었을 뿐. 프로페셔널 아티스트가 된다는 것은 나의 주관적인 동기만 순수하게 작용하여 어떤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을 사줄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게 되고, 역시 그것에 지대한 영향을 가져올 비평가의 한마디에 만족스러워지기도 하고, 만족스럽지 못하기도 하며, 평가받는 기분을 느껴야 한다.
경제적으로 풍요하지 못했지만 하루하루의 삶이 자신의 삶이라는 것에 의문의 여지가 없었던 이전 생활에 비해, 예술가의 신데렐라가 된후 피오의 삶은 남의 눈과 평가 속에서, 남의 기준 속에서 살아가는 '사기'이고 '도둑'이었다. 그것을 견뎌내는 것이 이전의 가난을 견뎌내는 것보다 힘들었던 피오의 마지막 결단이 충격적이다.
이 책의 원제라고 하는 <여덟 살 때의 잠자리>, 그런 일화를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삶의 어느 순간에 그런 기억들이 이미지로 떠올라 그 이후의 생활들에 영향을 줄 것이다.
<완벽한 하루>를 읽은 후 이 작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읽어보게 된 그의 두번 째 소설이었다. 책의 서문에서 작가가 독자들에게 바랬듯이,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선사해줄 소설이라는 점 맞았고, 즐겁게 읽으라는 그의 조언대로, 지루하지 않게, 즐겁게 읽힌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