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의 <돼지꿈>을 읽으면서, 거기 나오는 여자 주인공들의 일상으로 부터, 내 집 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남의 손을 빌지 않겠다는 그 신조로 인하여 스스로 삶을 참 고달프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가진 에너지는 한계가 있는데, 그것을 매일 똑같이 해야하는 일에 써버리릴 것이 아니라, 내 집일을 좀 덜 하거나, 남의 도움을 받는 한이 있어도, 하루의 일정 시간은 생산적이고 보람을 느낄만한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먹거리에는 잘 안 통하는 세상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뭐 안심하고 아이 먹일만한 것들이 많아야 말이지. 며칠 전 아이와 길거리를 걷다가 호떡을 파는 것을 보더니 먹고 싶다고 했던 것이 생각나서 오늘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에 맞춰 호떡을 딱 다섯개만 만들었다.

 


 

 

 

 

 

 

 

 

이게 그래봐도 발효빵이라서, 이스트 발효시간이 세시간 정도 걸렸다는 사실.
다행히 아이가 맛있게 먹는다.



 

 

 

 

 

 

 

 

아이가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가 문득 내가 어릴 때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우리 집에서 함께 모시던, 돌아가신 친할머니 생각이 났다. 일하시던 엄마 덕분에 엄마를 대신해 집에서 우리 형제들을 돌봐주시던 분은 할머니셨다. 푸근한 할머니이셨다기 보다는, 엄한 할머니에 가까우셨지만, 학교에서 엄마 모시고 오라고 하면 난 늘 할머니께서 와주셨고, 소풍도 할머니와 함께 갔었다. 그런 할머니께서 좋아하셨던 음식이, 반찬 중에서는 무우 생채, 과일 중에서는 참외, 그리고 간식 거리중에서는 바로 호떡이었다. 겨울이 되면 종종 이 호떡을 사오셔서는 우리들도 나눠 주시고 할머니께서도 드시곤 했다. 먹을 때 꿀이 뚝뚝 떨어지기도 하고, 단 음식을 좋아하긴 하지만 어딘지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단맛이 아니라서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할머니께서 직접 간식 거리를 사주시는 일은 드물었기 때문에 주시면 먹기는 했다. 

큰 병 앓지 않으시고, 그저 노환으로 두어 달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신 할머니. 할머니 생각이 나서 아이가 다 먹을 때까지 말없이 쳐다 보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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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8-11-11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니하면 저도 아픈 기억이 있어요 차마 말하기 어려운 기억이죠.
다린이 참 맛나게 먹네요.
부럽다 다린아.
재주 없는 전 정말 흑흑 쥐구멍 찾아야겠어요
그런데 호떡 함 만들어볼까요. 잘 될지 망치는 건 아닌지. 걱정만 앞서요.
사실 팬케이크도 그다지 잘 만들지 못해서

바람돌이 2008-11-12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호떡 별로 안좋아하는데 우리집 아이들은 정말 좋아해요.
저도 가끔 호떡 사서 구워주곤 하는데 요즘은 정말 그것도 시간이 없어서 잘 안하게 되네요. 발효시킬 시간이 안나와서... ^^
호떡과 할머니의 추억은 마음이 찡합니다. 저는 외할머니 한분만 얼굴을 기억하는데 그것도 워낙에 멀리 사셔서 일년에 1번 얼굴보기도 힘들었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어요.

hnine 2008-11-12 04:44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막상 만들어보면 어려울게 없어요. 어려우면 제가 하겠어요? ㅋㅋ오븐에 굽지 않고 프라이팬에 금방 구워낼 수 있어서 편하더군요.

바람돌이님, 예전에 할머니께서 사주시던, 종이 봉투에 담겨져 이미 꿀이 그 봉투에 삐죽삐죽 나와 묻어 있는 그런 호떡만큼 집에서 만든 것이 맛은 없겠지요? 크기도 훨씬 자그마하게 만들었고요. 음식과 함께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음식이 각별해지는 것 같아요.

Kitty 2008-11-12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호호떡!!!!!!!!!!!!!!!!!!!!!!!!!!!!!!!!
안그래도 오늘 날씨도 쌀쌀한데 우왕 먹고싶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hnine 2008-11-12 08:47   좋아요 0 | URL
ㅋㅋㅋ Kitty님 계신 곳도 날씨가 쌀쌀한가요?
드리고 싶어라~ ^^

순오기 2008-11-12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나도 호떡은 좋으하면서도 집에선 한번도 안 만들어 봤어요.ㅜㅜ
이번 겨울방학엔 도전해봐야지~~
추억이 음식과 연관된다면 더 깊은 맛이 배일 것 같아요. 할머니 생각~~~ 끈하네요.

hnine 2008-11-12 08:49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저 호떡 만들때 왜 납작한 누름판으로 꾸욱 눌러주잖아요. 저는 그게 없어서 밥공기 바닥으로 꾸욱 눌렀어요 ㅋㅋ
시간이 금방인것 같아요. 할머니께서 사다주시는 것 먹을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그 할머니 생각하면서 제가 호떡을 만들고 있다니요.

무스탕 2008-11-12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떡은 신랑이 좋아해서 가끔 퇴근길에 사옵니다.
저녁 먹기전에 한 개도 안되게 먹어요. 가위로 잘라서 나눠 먹거든요. 그리고 식으면 맛이 없으니까 바로 먹어야지요 ^^

근데, 전 집에서 뭔가를 만들 엄두를 못내는데 나인님께선 참 다양하게 시도하시고 아이도 호응이 좋네요. 부럽기만.. --;;

hnine 2008-11-12 20:2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만들어서 따뜻할때 바로 먹어야하지요. 오늘 먹는데 역시 어제 같지 않더라구요.
아이의 호응을 얻을 때보다 무반응일때가 더 많아요 ^^

뽀송이 2008-11-12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저도 자주 해먹고 있어요.^^;;;
마트에 가면 파는 녹차호떡 그거요.^^ ㅋ ㅋ ㅋ
엊그제는 컵케잌도 하나 붙여주더라구요.^^ ㅎ ㅎ ㅎ
음... 나인님은 직접 발효시켜서 만드셨군요.^^ 정말~ 대단하세요.
아드님 먹는 모습이 무척 귀여워요.^^

hnine 2008-11-14 06:12   좋아요 0 | URL
녹차 호떡은 색깔이 파르스름 하겠네요?
저도 밀가루가 조금 모자라길래 단호박 가루 넣고 만들었는데 만들고 나니 별로 표시가 안나네요.
발효야 뭐, 제가 하는게 아니고 이스트가 하는거니까 저는 그냥 기다리면 되지요 ^^

상미 2008-12-17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기름에 지지는 호떡이 아닌 모양?
너희 할머니 생각하니까 ,준이랑 같이 떠올라.ㅋㅋ

hnine 2008-12-17 22:12   좋아요 0 | URL
기름에 지지는 것이 최종 단계이고, 저 호떡 반죽에 이스트가 들어가더라고.
 
돼지꿈 - 오정희 우화소설
오정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자그마한 책 속에 스물 네편의 짧은 글들이 실려 있다. 다작의 작가가 아닌 그녀가 오랜만에 낸 소설이니 두툼한 분량을 기대했다면, 짧은 에피소드 정도의 조각글들에 좀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누군가. 그녀의 문장력과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은 단편 속에도 충분히 핵심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오정희 작가의 글 속 대화 방식의 특징은 바로 이심전심 수법이 아닐까. 드러내 놓고 심사를 표현하기 보다는, 손짓, 몸짓, 표정 묘사 등을 통해 소설 속 인물의 심정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렇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감탄하게 만든다.
달라질 것 없는 똑같은 일상들, 인생이 아주 큰 것을 선물하리라는 기대로부터, 그러한 소소하고 지루해보이는 나날들이 곧 우리의 삶이고 인생이라는 깨달음, 그래서 속상할 것도, 불만스러울 것도 없다는 자각. 이 책의 스물 네편 소설들 속에서 내가 읽어낸 작가의 마음은 그러한 것이었다. 그러한 일상들이 곧 자신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고 작가가 말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실린 모든 글들이 저녁 무렵 무심하게 피어나는 굴뚝의 연기 같은, 조용하고 체념적인 내용들은 아니다. <가을여행>,<부부>,<해산>,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같은, 한자락 미소로 마무리되는 이야기들도 있고, <맞불 지르기>처럼 통쾌한 이야기도 있다. 제일 좋았던 것은 <색동저고리>. 입양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문학적 내공이란 어떤 형식의 글을 쓰든 일관성 있게 나타나나보다. 짧은 글들 속에서도 그녀의 문학적 위치는 흔들리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검은 색 굵은 색연필로 그려진 듯한 단순한 책 속 삽화들도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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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8-11-11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순수하게 내가 좋아하고 나를 위한 책을 읽기나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hnine 2008-11-12 04:45   좋아요 0 | URL
요즘 하늘바람님께서 올리시는 책 들, 재미있어 보이던걸요?

순오기 2008-11-12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6년 초, 오정희산문집 <내 마음의 무늬>를 읽은 후 만나지 못했는데...
님 덕분에 '돼지꿈'의 그 맛을 느끼고 싶어졌어요. 지름신을 불러야 할 듯...^^

hnine 2008-11-12 09:00   좋아요 0 | URL
제가 빌려드릴까요? ㅋㅋ

순오기 2008-11-12 09:04   좋아요 0 | URL
흐흐흐~ 선물하고 빌려보면 다래끼 나요~
저어기 이웃동네서 구입하려고 담아놨어요.
5만원 채워서 주문하려고요.ㅋㅋㅋ

2008-11-12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8-11-12 20:27   좋아요 0 | URL
아, 그 시 좋으네요. 늘 지나고 나서 알지요 우리가 지나온 길을.
다린이는 좋겠어요. 이렇게 이쁜 누나가 안부도 물어주고 ^^
 



 

 

 

 

 

 

 

 

 

 

 

 

 

 

 

 

 

 

 

 

 

 

 

 

 

언제부턴가 게발 선인장 꽃눈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더니,
며칠 전부터 하나씩 하나씩 꽃봉오리를 터뜨리고 있다.
몇 해전 우리 집에 들르신 부모님께서 사주신 화분인데 식물가꾸기에 별 취미 없는 내가 관리를 잘 못해 영 부실해보이던 것이, 그래도 이렇게 꽃을 피워주니 미안하고 고맙다.

그 옆의 트리얀을 보면 꼭 학교다닐 때 곱슬곱슬 푸들 파마 머리 친구가 생각난다. 수업 시간에 그 친구 뒷자리에 앉게 되면 강의가 따분할 때마다 그 친구 머리카락을 손으로 만져보며 장난쳤었다. 포실포실, 복실복실, 감촉이 얼마나 따뜻하고 보드랍던지. 이 트리얀 화분의 마른 잎을 정리해주려고 손으로 만지다 보면 꼭 그런 느낌이 난다.
나도 그런 파마가 해보고 싶어서 여러 번 시도했었으나, 어떤 제목의 새로운 파마든지 나에게 하면 결과는 하나, 그당시 만화 영화 요술공주 밍키 머리 -하자마자 부시시 다 풀려서는 부피가 엄청 늘어나는- 가 되곤 했었다. 

 

아래 사진은 열흘 쯤 전, 꽃 피기 전에 찍어 놓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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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8-11-11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엄마네 게발선인장도 꽃망울을 잔뜩 달고 있더라고요.
조만간 한꺼번에 피어서 사람 헷갈리게 만들거에요 @_@
트리얀이라는 이름이었군요. 저 작은 잎사귀들이..
꼭 개구리밥이 나무로 자란 느낌이었어요 :)

미설 2008-11-1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리얀이라는 이름이 참 좋네요. 기억해두어야 겠어요. 자주 보게 되는데 이름은 몰랐거든요. 저는 식물을 좋아는 하는데 제가 정작 키우면 너무 금방 죽고, 또 좀 자란다 해도 나중에 어떻게 해야될지 몰라 죽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죄짓는 기분이라 아예 키우지 않고 있어요. 요즘, 그래도 늘 화분 많은 집 보면 부럽더라구요, 제가 늘 하는 말로 저는 선인장을 말려죽이는 그런 스탈이에요 ㅠㅠ

hnine 2008-11-11 12:13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 저희집 게발 선인장은 좀 빈약한 편이라서, 한꺼번에 피어 헷갈리게 만들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두 종류가 한 화분에 심어져 있어서 주홍색과 핑크색 꽃이 함께 피지요. 사진에는 핑크색 꽃이 먼저 피었네요. 개구리밥 ㅋㅋ

미설님, 선인장은 말려죽일 정도로 물을 가끔 줘야하는 것 맞대요. 물을 너무 자주 줘서 죽는다던데요? 저도 잘 못 키워요. 죽었다 싶은 것도 게을러서 금방 갖다 버리지 않고 두었더니, 언젠가 거기서 다시 잎이 파릇파릇 나는 것을 보고 감동 받았어요.

하양물감 2008-11-11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게발선인장? 이름이 거참...^^;

hnine 2008-11-11 21:34   좋아요 0 | URL
줄기와 잎이 꼭 게의 발 처럼 생겼거든요 ^^

하늘바람 2008-11-11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지 이쁘네요. 집에 꽃이 피어야 생기가 돌아요,
트리안 저도 갖고파하는 거여요.

hnine 2008-11-12 05:55   좋아요 0 | URL
예, 그래서 낮에 햇빛 들때에는 베란다에 내놓았다가, 해질 무렵엔 집안으로 들여놓아요. 한번이라도 식구들의 눈길을 더 받으라고요 ^^
오늘 트리얀 화분 하나 사다 놓으시지요~ ^^ 잘 자라고, 사진 찍을 때 배경에 놓아도 예뻐요.

순오기 2008-11-12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발선인장 꽃은 참 예뻐요~ 색깔도 곱고~ 보기 좋으네요. 트리샤가 있어 더 빛나네요.^^
친정엄마가 화초기르기의 달인이세요. 언니들은 욕심내서 가져가면 다 죽인다는...
그래도 내가 엄마 손길을 닮았는지 그래도 잘 키우지요. 적당히 게을러서 그렇겠지만~
우린 주택이라 보되면 마당에 내놓고 겨울엔 보일러실에 두었는데, 이번에 도시가스로 바꿔서 그게 곤란해서 실내에 놓으려면 큰일났어요~큰 화분들이 많아서요.ㅜㅜ

hnine 2008-11-12 09:05   좋아요 0 | URL
큰 화분들이 많으시군요. 그래도 위의 하늘바람님 말씀처럼 실내에 녹색 식물들이 눈에 보이니 좋던걸요.
아 참, 민경양 논술대회 수상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그냥 부담없이 쓰는 글과 논리 정연하게 쓰는 글을 쓰는 것은 많이 다를텐데요.

상미 2008-12-17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난 선인장마저 죽인단다...
아파트 오기전 너희집엔 화분도 많았던 기억나.

hnine 2008-12-17 22:11   좋아요 0 | URL
죽은것 같은 것도 다시 따뜻한 곳에 옮겨놓고 잘 보살펴 주면 다시 살아나는 경우도 종종 있더구나. 지금은 알로에 화분에 꽃봉오리가 맺혀있어서 알로에 꽃 구경을 할수 있으려나 매일 들여다보고 있어.
 

테이트 갤러리 웹 사이트에 가면 주제 별로 그림을 묶어 놓은 곳이 있다.
그 중 '행복 (Happiness)' 이라는 카테고리 아래 있는 그림들을 제일 먼저 클릭해 보았다.

첫번째 그림~



 

 

 

 

 

 

 

 

 

 

Julius Caesar Ibbetson (1759-1817)
An unmarried sailor's return

결혼 안한 총각 선원의 무사한 귀환을 축하하는 파티가 열렸나보다.
가운데 앉아 있는 사람이 그 선원인가? 옆에 앉아 함께 사랑의 눈길을 주고 받는 여인은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준 여인일지도 모르겠다. 행복, 그렇지. 그 순간의 기분이 행복 아니고 무엇이랴.
그림의 중앙에만 조명이 비춘 듯 환하게 그려진 기법,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익숙해진, 이걸 무슨 기법이라고 하더라?



 

 

 

 

 

 

 

 

 

 

William Collins (1788-1847)
Happy as a king

ㅋㅋ 장난치며 노는 아이들. 제목에서처럼 왕이 부러우랴? 밀어서 열고 닫게 되어 있는 저 나무 문에 타고 있는 저 아이는 다른 아이가 그걸 이리 저리 밀 때마다 떨어질 듯 하는 스릴감으로 더욱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했겠지. 그 모습이 재미있어 보인 다른 아이들도 위로 기어오르고 있다. 그러다 떨어진 아이도 왼쪽에 보이고.

 



 

 

 

 

 

 

 

 

 

 

 

 

 

Sir Eduardo Paolozzi (1924-2005)
Sack-o-sauce

우리 집에서 내가 아이에게 잘 안 사주는 먹거리 중 하나가 소시지인데, 언젠가 먹어본 그 소시지가 들어간 핫덕을 아이는 가끔 먹고 싶어한다. 핫덕이 우리 말인 줄 알았는지 언젠가 핫덕이 영어로 뭔지 아냐고 묻더니 바로 '위너'란다. 그러면서 '오스카 마이어' 어쩌구 하길래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어제 이 그림을 무심코 들여보다가 알았다. 무슨 비밀 암호를 알아낸 느낌 ^^ 
빨강, 노랑, 파랑 색의 육면체는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쌓기 놀이 나무 토막 장남감을 연상시킨다. 꼴라쥬 작품.

 



 

 

 

 

 

 

 

 

 

 

 

 

 

Agnes Martin (1912-2004)
Morning

허걱~ 이건 마치 실험실에서 데이터를 뽑아내던 용지처럼 생겼다. 크고 작은 피크가 그려지던.
크기가 182.6 x 181.9 cm이니 꽤 큰 작픔인데, 이 그림이 '행복'이란 카테고리에 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의 작품 설명을 일부러 안 읽어보다. 내 나름대로 좀 생각해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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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11-10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그림은 꼭 존 케이지의 4:33'를 연상시키는걸요. 아, 베바를 너무 열심히 봤나봐요^^;;;

hnine 2008-11-10 08:33   좋아요 0 | URL
4분 33초 동안 앉아있다 내려온다는? 베바에도 소개되었었나보죠?

레모냐 2008-11-10 20:5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베바를 안보는 주인장...낼모레 시험인 딸이랑 열심히 본방을 보는데.

hnine 2008-11-11 04:20   좋아요 0 | URL
낼모레구나 시험이.
보던 드라마이면 시험이 낼모레라도 봐야지 그럼~ ^^

바람돌이 2008-11-12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베바를 보면 행복해지던데... ㅎㅎ
근데 내일 시댁제사라 마지막회 본방을 못보게 돼서 지금은 무진장 슬퍼요. ㅠ.ㅠ

hnine 2008-11-12 04:49   좋아요 0 | URL
아이쿠~ 그러시군요. 결말은 그럼 재방송으로 보셔야겠네요.
드라마 잘 안보는 제 남편도 베바 잠깐 보더니 재미있다고 하더라구요 ^^
 
지구별 사진관
최창수 사진.글 / 북하우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 기록에 멋진 사진이 군데 군데 곁들여져 있으면 훨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사진이 더 먼저 눈에 들어오는 책이다. 어떤 경로로 어디를 여행했느냐는 발자취보다, 어차피 우리가 사는 이곳은 지구별이라는 한 땅덩어리. 우리가 가본 적 없는 지구별 어딘가에서 우리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애써서 잘 잡아낸 사진들이 가득한 책이다.
이 책에 수록된 사진들 아래 조그맣게 표기된 지명들은 그 사진이 찍힌 장소로서의 의미일 뿐. 들어본 지명은 어디에도 없다. 책의 앞부분에 저자가 사진을 찍기 위해 돌아다닌 곳 (몽골, 중국, 티벳, 인도, 파키스탄, 에멘, 에티오피아, 이란, 아프가니스탄, 네팔) 을 표시한 지도를 책을 읽기 시작할 때 한번 보고 더 들춰보지도 않았다.
수만 마일을 여행하는 것은 수만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는데, 아무래도 책을 읽는 것이 직접 몸으로 겪어내는 여행을 하는 것만 할까.
군복무 중이던 저자는 어느 날, 세계 각지를 여행하고 있는 동갑내기 어떤 사람의 홈피를 보고 자극을 받아 세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을 했다고 한다. 역시 우연히 보게 된 유명한 사진가 스티브 매커리의 사진첩을 보고, 사진에 대한 열정이 생겨 그의 여행은 더 좋은, 완벽한 사진을 찍기 위한 여행이라는 목적을 품게 되었단다. 실제로 이 책에는 그가 내셔널 지오그라픽 국제사진공모전에서 수상한 사진을 포함해서, 실물이 과연 이보다 더 아름다울까 싶은 사진들, 특히 인물 사진들이 잔뜩 들어있다. 겉표지 사진을 책 속에서 다시 한번 만나 보라 (215쪽). 몽골의 고비에 누워 바라보는 하늘이다. 무지개가 하늘에 어떻게 저리 걸려있을 수 있을까. 일부 인물 사진들은 연출이 가미된, 예를 들면 마을 아이들을 키 순서대로 나란히 앉혀 놓고 셧텨를 눌렀다던지, 산발적으로 달리는 아이들에게 한 방향으로 동시에 달려보라고 요구를 했다던지, 그랬다는 점이 아쉽기도 했지만 그런 솔직함때문에 더 마음 놓고 사진을 들여다보게 된다.
사진을 찍기 가장 좋은 시간은 아침의 역동적인 순간이라면서, 내가 미처 모르는 얼마나 많은 풍경이 아침에 펼쳐져 있는걸까 그는 말했지만, 나는 이 책을 덮으며 내가 미처 모르는 얼마나 많은 세상이 이 지구별 위에서 펼쳐지고 있는걸까 생각했다.
긴 여정을 마치면 무언가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정작 그런 기대가 자신을 옥죄는 강박이 되더라는 말, 그런 집착과 욕심을 약간 버리자 슬슬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후기 속의 한 마디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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