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타오르고 싶다 - 그림 혹은 내 영혼의 풍경들
김영숙 지음 / 한길아트 / 2001년 8월
평점 :
품절


지금까지 읽은 미술 관련 책들이, 읽기에 그리 어려운 책들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 책은 그 중 가장 친숙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가장 유머러스한 책이기도 하다. 개인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이었기 때문일까? 미술이 주는 선입견, 즉 무슨 사조인지 알아야 하고 시대를 알아야 하고 무슨 파인지 알아야 하고 등등의 벽을 겁내지 말라고 격려해주는 책이다. 물론 사조, 시대, 특징 모두 그림을 이해하는데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출발점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무심코 어느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움직일 때가 있는 법이다. 그 마음의 움직임은 나를 위로해주기도 하고, 내 눈을 만족시키기도 하며, 잠들어 있던 어떤 추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또 내가 잊고 지내던 어떤 무의식의 세계를 일깨우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그림과 가까와져 가는 것이다. 처음 들어보는 저자의 이름. 그녀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지만 순전히 그림이 좋아서 인터넷 사이트에 그림과 관련된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 누리꾼들의 인기를 불러모으게 되고 책으로까지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그림, 내 가슴에 턱하니 내려와 걸리는' 이라는 제목으로 써내려간 이 책의 서문을 읽어보자.

그림을 좋아하기 전, 저는 음악광이었습니다...한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무수한 음계의 높낮이에 따라 너무 쉽게 웃고 우는 게 싫더군요. 즉각적으로 다가오는 그 선율에 제 존재가 온통 뒤흔들리는 게 짜증난 거지요. 그림을 보면서부터는 마음을 다스리는 게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시간이 있으니까요. 그 시간들 속에서 조금은 절제되고 유순하게 가라앉은 채 감동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음악에 짜증났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음악을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의 다른 표현임을 안다. 음악을 들을 때와 다른, 그림을 볼 때의 느낌을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것이 저자의 이 구절을 읽음으로써 확실해졌다. 음악을 들으면서의 흥분 대신, 생각할 여유를 주고, 마음을 다스릴 시간을 주며, 자신과 대화의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림이 평범한 우리에게 주는 것들 아닐런지.
시대 사조별로 그림을 배열해서 설명하는 형식이 아니라, 저자의 마음에 들어 온 그림들을, 몇 개 씩 글의 성격에 맞게 묶어 그 그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마치 친구와 수다를 떠는 듯한 기분으로 읽게 하는, 묘한 매력을 지닌 글쓰기 스타일이다. 그림은 '우아떠는' 예술이 아니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예술이라는 그녀의 말 그대로이다.
그림과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맨 먼저 선물로 건네주고 싶은 책이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09-08 2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08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국의 글쟁이들 - 대한민국 대표 작가 18인의 ‘나만의 집필 세계’
구본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발터 벤야민이었던가. 글쓰기를 지식의 향연이라고 말한 사람이.
글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소통이다.
직업적 소설가가 아닌, 각자 자기 분야에서, 그 분야 지식을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 열 여덟명의 인터뷰, 그리고 집필 장소를 방문하여 그들의 글 쓰는 스타일을 분석해 놓은 책이다. 자기 분야의 지식이라고 하지만, 논문의 형식이 아닌 대중을 상대로 하는 글을 쓰는데에는, 나름대로의 사명, 책임 의식도 있을 터인데, 정민 교수의 말을 빌자면, 논문을 쓰면 극소수가 읽는데, 조금 관점을 달리해 쓰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읽어보니, 이들 열 여덟명 들의 공통점도 있고, 각기 개성적인 성향도 있었는데, 공통점이라면 역시 이들 모두 안쓰고는 못배길 사람들이라는 것. 즉, 쓰는 것을 즐기고, 자기 삶의 일부로 여길 만큼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또 글을 탈고할때 쓰는 방법으로 소리내어 읽어본다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래야 글의 흐름이 자연스러운지 알수 있다면서. 다른 직업 없이 글쓰기만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의 경우에도 매일 일정항 시간에 글을 쓰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는 것도 의외였다. 집, 또는 별개의 공간에 수만권에 이르는 장서를 소장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저자별로 개성있는 글쓰기 습관으로는, 동양철학 저술가 김 용옥의 경우 어떤 새로운 분야에 대해 배우고 싶을 때에는 책보다 먼저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가 배운다고 한다, 책에만 의존하면 위험하며 사람끼리 만나는 것 자체,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하다면서. 자신의 직업은 교수이지만, 하는 일은 만화가라는 이 원복은 가장 애용하는 자료 검증법으로 백과사전 이용법을 들고 있으며, 글 중에 자기 개인적인 이야기를 섞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과학 칼럼니스트 이 인식은, 요즘 국내 과학 출판이 과거 지향, 생물학 치중 풍토화 되어가는 '문제점'이 있다면서, 현재 과학계의 살아 있는 이슈나 기술문제가 중요한데 국내 출판계는 죽은 과학자들의 전기나 '한가한' 동물 이야기만 중복 출판하고 있다고 아쉬워 했는데, 이 말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유감이다. 생명 공학이 과학뿐 아니라 사회적 이슈화로까지 발전해가는 상황에서 생물학 치중 풍토, 한가한 동물 이야기라고 보는 관점이 오히려 편견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과학 저술 분야도 요즘 상당히 넓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국내 필자들이 외국의 유명 필자들에 견줘 격차가 가장 믾이 벌어져 있는 분야라고 한다. 사소한 자기 생각들을 챙기는 것이 바로 저술의 시작임을 보여주었다고 필자가 말한 민속문화 저술가 주강현은 모아 놓은 자료들ㅇ르 분류하여 제본까지 해서 보관한다고 한다. 카이스트의 정재승 교수는 대중적인 과학 글쓰기에 관심있는 대학생들의 연합 동아리인 '꿈꾸는 과학'이라는 공동체를 운영해오고 있다고 하는데 얼마전에 재미있게 읽은 <과학해서 행복한 사람들>이 바로 여기서 기획된 책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그 분야에서 편협할 수 있듯이, 전문가의 편협성을 지적한 전통문화 저술가 허균의 말에 이어 갖가지 지식을 엮어서 폭넓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전문가'와 '저술 가능한 전문가'의 차이라는 부분에도 밑줄 그었다.
이 책에 실린 열 여덟명의 이야기도 흥미있었지만, 이 책 저자의 글쓰기 스타일, 조목조목 예리하게 핵심을 지적하면서도 결코 나의 지식을 눈에 보이게 내세우려 하거나 과장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이는 겸손함이 돋보였던 책이었다.
맨 위에 언급한 벤야민의 말이 다시 한번 떠오르고, 글을 쓰는 사람들, 글쓰기가 삶의 중심인 사람들의 고독하면서도 용기 있는, 그 삶을 즐기는 태도가 살짝 부러웠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딸기 2009-06-11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저자의 스타일을 매우 멋지게 평가해주셨군요 ^^
 

나는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부터 얼마나 피아노가 배우고 싶었는지 모른다. 1970년대이니,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지만, 요즘 말로 나의 로망이었음이라. 엄마께서는 쉽게 허락을 안하셨고, 몇년을 조르고 졸라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겨우 레슨을 받게 되었다. 하루 하루 피아노를 배워나가는게 너무 좋아서, 선생님께서 내주신 숙제보다 훨씬 더 해가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고, 그래서인지 남들보다 진도가 훨씬 빨랐다. 그러나 나는 그때 진도가 빨리 나가고 어쩌고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른손, 왼손, 그 다음에는 양손으로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되어가는 과정들이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던지. 지금 생각해도 그때 피아노 배우기만큼 나에게 배움이 즐거움 그 자체였던 적이 있었나 싶다.

늦은 나이에 혼자 떠난 유학 생활. 인터넷은 커녕, 기숙사 방에는 TV도 없었다. 가자 마자 구입한 CD플레이어와 가져간 책 몇 권이 전부. 아무 할 일이 없던 주말에는 주중에 못느끼던 '혼자'라는 생각이 예전에 느껴본 적 없는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아리게 했다. 눈물이 막 나려고 할때의 그 가슴 통증 같은 것이, 눈물이 나지 않을 때에도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치고 들어왔다. 어느 주말, 할일 없이 교정을 어슬렁 거리다가 문득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고, 소리 나는 쪽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학교 음대 건물 옆을 지나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봤다. 그리고 비어있는 피아노 연습실에서 피아노를 쳐봤다. 이후로, 주말에 내가 하는 일은 혼자 기차타고 여기 저기 미술관이나 박물관 구경다니는 것 아니면 한나절 피아노 뚱땅거리는 것이 되었는데, 한때 취미로 배워두었던 피아노가 그렇게 나에게 위로가 되어줄 줄은 몰랐다. 어떤 친구가 그때 피아노만큼  나를 이해해주고 다독여 주었으랴.

결혼하고, 아이 낳고, 정신 없이 사는 몇 해 동안 피아노를 칠 기회는 거의 없었지만, 아이가 크면 꼭 음악을 알게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꼭꼭 다지고 있었다. 앞으로 아이 인생의 어느 시기에 그것이 큰 위안이 되어 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에게 그랬던 것 처럼 말이다. 없는 형편에 무리해서 피아노를 구입해놓고, 아이에게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고, 건반을 직접 눌러보게도 하면서 흥미를 가지게 하느라 애쓰기도 했다. 아이가 일곱살이 되던 작년에 드디어 아이 입에서 피아노가 배우고 싶다는 말이 나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말!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일주일에 한번 나는 아이 손을 잡고 레슨을 다녔고,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데리고 오는 그 일이,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아이도 즐겁게 잘 배워오고 있었는데, 요즘 들어 아이의 연습하는 태도가 예전같지를 않고, 엄마인 내가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져 오기 시작해왔다. 연습을 시킬 때마다 몇 번씩 알려줘도 모르는 것 하며, 그러면서 딴청을 피우고, 연습 해라, 오늘  레슨 날이다, 일일이 챙겨서 시키는 것에 나도 모르게 지쳐갔다. 자연히 연습시키면서 큰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화도 내고, 피아노 연습하다말고 아이가 우는 일도 빈번해지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지 딱 1년이 된 어제, 나는 아이에게 피아노 이제 그만 배우자라는 말을 했다. 네가 너무 힘든가보다, 좀 쉬었다가 다시 배우고 싶어지면 그때 다시 하기로 하자, 배우는건 너인데, 엄마가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 그래가면서. 아이는 고개를 숙인채 아무말도 안하고, 나는 피아노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ㅡ, 집에서는 그런지 몰라도 레슨 받을 때에는 재미있게 잘 하고 있다고. 남자 아이들이 대체로 자발적으로 연습하는 경우가 드물기는 하다고 그러신다. 그러면서 다음에 하신 말이 갑자기 내 가슴에 팍 하고 꽂혔다. 여기서 피아노를 그만 두게 할 것이 아니라, 아이가 그럴 때에는 좀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고. '기다려주기'. 난 대체 누구의 기준으로 아이가 흥미없어 한다, 가르쳐줘도 잘 모른다, 이럴 바에는 그만 두는게 낫다고 결정을 내렸던 것일까. 전화를 끊고 아이와 마주 앉아 다시 얘기를 나누어보았다. 자기는 피아노를 계속 배우고 싶단다. 눈물이 글썽글썽.

기다려준다는 것. 어떤 과정을, 또는 관계를, 무슨 이유에서든지 끝내는 것이 낫겠다, 끝내자, 일방적 결정을 내리기 전에, 기대를 내려 놓고, 한발 물러서서 기다려 주는 것. 그것을 깨우친 날이었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Kitty 2008-09-07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다 때가 있더라구요. 정말로 그만두고 싶으면 본인이 먼저 말을 할 것 같아요.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 욕심을 내서 거의 4살 무렵부터 배웠다고 하는데요,
자기 몸만큼이나 큰 바이엘 책을 낑낑거리면서 들고 다녀도 불평 한 번 안했대요 ㅎㅎ
그런데 초등학교 5-6학년 올라가면서부터 너무 치기 싫어지고 이건 아니다 싶어서 별렀다가 6학년 졸업하면서 그동안 배웠던 피아노 책을 다 모아서 엄마한테 들고 가서 '엄마 저는 이제 공부를 하겠어요. 피아노는 그만둘래요' 그랬다는 -_-;;;
(그렇다고 공부나 잘했으면 몰라 ㅎㅎ)
엄마가 아마도 기가 막히셨겠지만 '그래 그렇게 해라'하고 다시는 피아노 얘기 꺼내지 않으셨습니다. 피아노 값이랑 학원비가 매우 아까우셨을텐데 ^^;
지금 생각해보면 고맙지요.

hnine 2008-09-08 00:50   좋아요 0 | URL
Kitty님, 제 얘기가 공감이 되셨겠네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 저도 피아노가 싫어지더라구요. 공부에만 집중하겠다고 Kitty님처럼 엄마께 말씀드렸다가 단박에 퇴짜맞고 결국 고등학교 가서 까지 계속 배웠지요. Kitty님께서 피아노 대신 택한 공부는 어떤 공부일까 궁금해지네요 ^^

마노아 2008-09-08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 조카는 여섯 살 때부터 집 근처 피아노 학원을 주3회 다녔어요.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몹시 재밌어 했지요. 일주일에 한차례 우리 집에 오면 피아노 앞에 제일 먼저 달려가서 즐겁게 치구요. 이제 우리 동네로 이사 오면서 학원 때문에 갈등이 있었어요. 차타고 다녀와야 하는데 엄마가 데려다 줘야 하고 둘째 아이도 데리고 가야 하고, 주2회로 줄이긴 했지만 매번 기다려서 데리고 오고, 그게 참 힘들거든요. 기초 과정은 다 끝난 것 같아서 집 근처 학원으로 바꿔주고 싶은데 아이가 계속 그 학원 다니고 싶다고 하네요. 울 언니 지금 고민중에 있어요. ^^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피아노를 1년 6개월 배우고, 1년 넘게 쉬다가 중3때 5개월을 더 배웠어요. 처음에 '도레도레도' 세시간 치고, 그 담날 '도레미 도레미 도' 세시간 치고, 그 담날 '도솔미솔도' 세시간 쳤어요.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저처럼 큰 학생이 와 있다는 것을 선생님이 잊으셔서 늘 늦게 오셨거든요. 애가 융통성도 없어서 그 단순한 것을 날마다 세시간씩 쳤더랍니다^^ㅎㅎㅎ

hnine 2008-09-08 16:04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저랑 비슷한 면이 ~ ^^
저도 동네에 마땅한 학원이 없어서 차 타고 데리고 가고, 기다렸다가 데리고 오고 하고 있어요. 레슨 시간이 40분인데 책 읽고 기다리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더라구요. 직장에 다니는 엄마 같으면 힘든 일이지요.

혜덕화 2008-09-08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경험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들려드릴게요.

한수산님의 책에서 "연주할 줄 아는 악기가 하나라도 있다는 것은 마음 속에 자기만의 방을 하나 가진 것과 같다" 이런 비슷한 글귀를 읽은 적이 있어요.그래서 큰 애가 운동도 별로 안좋아하는 것 같아서 음악으로 방을 하나 가지게 하고 싶었어요.


원래 제 성격이 아이를 철저하게 연습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또 내 목적도 아이가 음악과 친해지고 피아노 연주에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 목표였지 아이가 피아노를 잘 치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피아노 선생님께도 미리 말씀 드렸어요. 진도 안나가도 괜찮으니 아이를 너무 연습해오라고 숙제 많이 내어주지 말라고.
다른 엄마들은 진도 안나가면 안달을 한다는 데, 저는 정말 이렇게 생각했어요.
한달에 오만원을 주고 피아노 학원에 가서 바이엘 한 장을 나가도 피아노 안다니고 바이엘 한 장 못배우는 것 보다는 낫다고.
그렇게 해도 5, 6 학년 되니까 안하려고 하더군요. 집에서는 피아노 뚜껑도 안열어보면서도.
그래서 협상을 했죠. '방학 동안은 쉬고 개학하면 다니자 '라든지 아이가 쉬고 싶어 할 때마다 쉴 수 있는 기간을 주었어요. 중학교 가서는 아예 일주일에 한 번만 가고.
중 3때까지 하다가 그만 두었는데, 지금 와서 아이가 하는 말이 있어요.
공부로 스트레스 받을 때 집에서 피아노를 한 시간 정도 치고 나면 속이 시원하다고. 그러면서 "엄마 고맙습니다. 피아노를 배우게 해 줘서" 하더군요.

아이의 목표, 아니지 엄마의 목표를 낮추어 보세요.
아이들 피아노 연습, 집에서 하는 것 좋아하는 아이 많이 없어요.
말없이 학원에 가는 것만도 고맙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피아노를 잘 치면 좋겠지만 어릴 때 음표 읽고 치는 법만 배워두면, 이 다음에 자기가 치고 싶은 곡이 나오면 스스로 악보를 구해서 혼자 연습하더군요.

음악을 전공을 시키실 것 아니면,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주는 것이 어릴 때의 음악 공부여야 하지 않을까, 제 생각입니다.

아이를 울리지 않아도, 아이의 어린 시절은 너무나 짧고, 커 갈수록 부모의 짐은 참 무겁답니다. 스스로 너무 무거운 짐을 지려고 하지 마시고 그냥 기다려주세요. 가르쳐도 못 하니까 피아노 학원이 있는 것 아닐까요?^^

hnine 2008-09-08 16:10   좋아요 0 | URL
혜덕화님, 도움 말씀 잘 새겨두렵니다.
제가 제 기준대로 비교하고 실망하고 아이를 은연중에 다그친 것 같아요. 엄마가 억지로 끌고 가면서 가르치는건 절대 하지 말자고 다짐했으면서 저도 결국 그 모습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니 더 이상 이 상태로 계속 가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성급하게 여기서 그만 두어야겠다고 결정을 내리게 된 것 같아요.
이번에도 정말 제게 필요한 말씀을 들려주셨네요. 감사드립니다.

치유 2008-09-10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글 읽으며 많이 깨달았어요..늘 맘속에 음악방하나 갖고 살길 원하면서도 아이들이 싫어라 하면 그래 그만 둬라~~~~~!했더라는;;;

큰아이는 하기 싫어라하면서 결국엔 이리 저리 해서 혜덕화님 아이처럼 몇분이라도 피아노 치며스트레스도 풀곤 하는데 우리집 둘짼 큰일이네요...
기다림을 다시 새기고...반성하네요.

hnine 2008-09-10 20:14   좋아요 0 | URL
엄마 기준에만 맞춰 아이를 너무 다그치거나, 그 기준에 못미친다 싶으면 그만 두게 하는 것. 저는 이 극단적인 둘 사이만 왔다 갔다 한 것 같아요. 기다려주는 것. 힘들지만 필요한 수행같기도 해요.

프레이야 2008-09-11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딸이 얼마전 라흐마니노프의 무슨 곡으로 콩콜 2등을 했어요. 대학생들이 치는 곡이라어려워서 연습과정에서 몇번 포기하려고 그러는 걸 덤덤하게 대하며 용기를 줬었죠.
지금은 그때 포기하지 않았던 걸 잘했다며 기뻐하더군요. 기다려주기! 필요한 일인데
조급증을 내게 마련이죠. 한 발만 뒤로 물러나보는 것, 기다려주기는 인내심을 요구하
더군요. 그래도 참 잘 하셨어요. 전 할 줄 아는 악기가 없지만 각자 또다른 걸로 자기
만의 방을 갖고들 있잖아요. 아이도 아이만의 방에서 자기와의 싸움도 하고 자기를
토닥거리고 그러는 시간이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나인님, 추석이 다가와요. 동글동글 보름달처럼 웃음꽃 피는 연휴 보내세요^^

hnine 2008-09-12 13:17   좋아요 0 | URL
와~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지난 봄에 연습중이라던, 라흐마니노프의 그 곡인가요? <악흥에의 연주>였던가요? 가물가물... ^^
아이를 대할 때뿐 아니라 제가 많이 조급한 편이지요. 이번 추석엔 달 보며 그생각도 해야겠습니다. 예, 조각달이 아니라 보름달 얼굴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어요. 혜경님도요! ^^

레모냐 2008-10-21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77년 같은 반이 되기 두 해전 만화가게 옆 < 피아노집 > ( 그 때는 학원도 아니었지 )에서
처음 만났다고 기억하고 있지.
항상 열심인 너와 달리, 난 만화가 좋아서 다녔던거 같고.
우리 딸이 공부하다가 외운 곡 몇개 치고 나면 속이 시원하다고 할 때,
네 생각이 난단다.
<기다려주기> 아이 엄마가 갖춰야 할 제일 중요한 조건인데,
그게 어렵더라...

hnine 2008-10-22 04:42   좋아요 0 | URL
피아노이든 만화든, 좋아하는 것에 그렇게 푹 빠질 수 있을 때였지. 그 만화가게 이름은 <땡이 만화>~ ㅋㅋ
 

며칠 전, 아이를 평소보다 좀 심하게 야단을 치고 난 다음 날이었다.

"엄마, 제가 라디오에서 들었는데요."
"응? 뭘?"
"아이를 야단치는 좋은 방법이 있는데요, 타임 아웃을 하는거래요. 어느 한 장소에 의자를 정해 놓고 거기 잠시 앉아있게 하고요, 엄마도 그 동안 마음을 진정시키래요.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엄마도 화가 좀 풀릴꺼 아녜요? 그러면 그때 다시 아이랑 얘기하면 된대요."

멍...(혹은, 띵~~)

할 말이 없었다. 여덟살 아들에게 지금 이 엄마가 들은 말이 무슨 말이냐.
나를 다정다감한 엄마라고 혹시 잘못 보시는 분들이여. 나는 그렇게 되고 싶을 따름이지, 결코 그 근처에도 못가는 엄마인 것을.

"엄마도 알고 있기는 한데, 잘 안되더라." 솔직하게 말하고 있는 내 목소리는 정말 어제 야단 칠 때의 반의 반 정도 크기였달까.

오늘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갔다가 아이를 위해 새로 빌려다 준 책들 중에 이 책이 끼어있게 된 것은 정말 아이보다도 내가 읽어보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막상 읽어보니 나와는 좀 타입이 다른 엄마가 등장하긴 하지만.


댓글(9)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설 2008-09-04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흐, 정말 저도 쥐구멍을 같이 찾고 싶어요... 정말 띵~ 하네요;;;

hnine 2008-09-04 23:59   좋아요 0 | URL
지금까지 얼굴이 뜨거운 기분이어요.
반성의 의미로 올린 페이퍼랍니다 흑 흑...
이제 또 이런 일 없도록 해야겠지요.

하늘바람 2008-09-06 0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놀랍네요
우와.

2008-09-06 0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06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양물감 2008-09-06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한솔이랑 전쟁중입니다..
마인드콘트롤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ㅠ.ㅠ

hnine 2008-09-07 05:08   좋아요 0 | URL
한솔이가 그렇게 컸군요.
마인드 콘트롤, 저도 필요합니다.
아이 키우면서 참 여러 가지를 해보게 되지요? ^^

세실 2008-09-07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는 것. 바로 엄마 목소리와 비례하는듯 하여 심히 반성하고 있습니다. 다린이 참 감성적이예요......

hnine 2008-09-07 23:0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세실님, 엄마 목소리가 크면 아이들 목소리도 따라서 커지고, 나중엔 아예 귀담아 듣지도 않는다더군요. 입을 앙다무는 한이 있어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도록 애써야겠어요 ㅠㅠ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 신분을 뛰어넘은 조선 최대의 스캔들
이수광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조선시대 야사에 수록된 연애 사건들을 찾아서 한데 모아 놓은 책이다.
평소에 역사 관련 책들을 거의 읽지 않고 있던 참에 한번 골라본 책인데, 제목만큼의 큰 재미를 안겨주진 못해 아쉬웠다. 철저한 유교 중심의 사회였던 조선. 아이는 어른을 섬겨야 하고, 아내는 지아비를 섬겨야 하며, 상민은 양반을 섬겨야 하고, 신하는 임금을 섬겨야 하고...계속되는 이런 섬김의 위계가 곧 법으로 통했던 사회이니, 이런 사회를 뒤흔든 연애 사건이란 이런 위 아래를 넘어선 사랑, 즉 사대부 양반과 기녀 사이의 사랑, 동성간의 사랑, 왕족과 평민과의 사랑 등등 이라 하겠다. 별별 일들이 다 일어나는 현대를 사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는, 이 조선 최대의 스캔들이라는 이야기들이 그저 조금 먼저 일어난 일들이라는 것 아니라면 그리 뒤흔들만한 놀라움으로 전해지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사람들에게도 역시 사랑이란 시대도 신분도 막지 못하는, 어떤 인간의 본능, 또는 본성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는 것.
수록된 이야기 중에는 허락되지 않은 사랑의 댓가로 결국 왕위 경쟁에서 밀려나게 된 양녕대군의 연애 사건, 영화로 소개되어 세간에 많이 알려진 어을우동 이야기, 모략을 받은 여인의 정조 문제를 두고 조정의 선비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 이야기, 남자이면서 여자인, 즉 양성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 등이 있는데, 첫사랑에 대한 수절을 지켜 열녀문을 하사받은 기녀의 이야기라든지, 젊디 젊은 첩을 들인 아버지의 아들이 그 첩과 사랑을 하게 된 이야기 등은 흥미있는 연애 사건이라기 보다, 이제 너무나 많이 들어 기막히지도 않은 이야기이며, 그러면서도 어느 대목에선가 왜이리 당하는 쪽만 당하나 싶어 여전히 화가 나기도 하는 이야기들이 아니던가.
누구나 소중한 목숨으로 태어났음에도, 사람들의 어느 한 가치관에 의해 정해진 규율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기도 하는 시대가 있었더란다, 그런 걸 말해주려함인가. 독자에게 흥미를 주고자 쓰여진 책이라고 하면, 적어도 나같은 독자는 흥미로 읽히진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서 문득,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나중에 어떤 제목을 달고, 어떤 흥미를 유발시키는 책으로 쓰여질까 궁금해지기도 했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08-09-07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궁금합니다.
요즘 드라마의 일그러진 형태가 조선시대부터 비롯된 것이군요. ㅎㅎ

hnine 2008-09-07 23:04   좋아요 0 | URL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 것들이 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머리 속에 박힌 사고 방식이란 얼마나 그 뿌리가 깊은가 다시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