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덴의 동쪽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1
존 스타인벡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8년 6월
평점 :


19세기 미국 캘리포니아 살리나스라는 마을에서, 아일랜드에서 이주한 새뮤얼 해밀턴 집안과, 미국 동부 코네티컷에서 이주해온 트래스크 집안이 3대에 걸쳐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트래스크 집안의 일세대인 사이러스 트래스크에게는 첫 부인과 두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이복형제 애덤과 찰스가 있다. 형 애덤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인 사이러스의 특별한 애정과 관심 속에서 강압적으로 키워져 본인은 원하지 않음에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억지로 군대에 지원한다. 유순하고 나약한 애덤에 비해 동생 찰스는 아버지가 형을 특별히 더 아끼고 기대를 쏟는다는 것을 알고 형과 사이가 나쁘지 않으면서도 형처럼 아버지의 인정과 애정을 얻기 위해 늘 그 기회를 노리며 분투한다.
군대에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애덤은 출신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 캐시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임신한 캐시와 함께 고향을 떠나 캘리포니아 살리나스 계곡으로 이주해간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산으로 그곳의 땅을 사고 새뮤얼 해밀턴의 도움을 받아 그곳을 마치 에덴 동산처럼 근사하게 꾸미기 시작하지만 정작 캐시는 그곳에 묶여 정착하는 것을 못견뎌하여 결국 아들 쌍둥이를 출산하자 마자 남편 애덤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아기들도 내버려둔채 집을 나가버린다.
한편 트래스크보다 일찍 캘리포니아에 자리를 잡은 새뮤얼 해밀턴 집안의 가장 새뮤얼은 강인하면서도 책을 즐기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다정한 성격이며 그의 아내이자 아홉 남매의 엄마인 라이자 해밀턴은 성경말씀대로 원리원칙에서 벗어나는 법 없이 대가족 살림을 꾸려가는 다부진 성격의 여인이다.
존 스타인벡 자신의 가족사를 썼다고 하는 이 소설에서 새뮤얼 해밀턴은 작가의 외할아버지이며 아홉 남매중 여덟째 딸 올리브가 작가의 어머니 되시겠다.
작가의 가족사라고는 하지만 작가는 그가 속해있는 새뮤얼 해밀턴 집안 사람들 보다는 트래스크 집안 사람들 쪽 이야기에 더 할애하고 있다.
1, 2권 합쳐 1,0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라 많은 등장 인물이 나오지만 그 중 주요 인물이라고 보여지는 사람을 넷으로 압축해보려고 하는데 가장 중심 인물은 역시 고향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주해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에덴동산에 버금가는 농장을 꾸밀 계획을 가지고 있던 애덤 트래스크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전폭적인 애정과 관심을 받으며 아버지 말을 거역 못하고 그 지시에 따라 살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그 제약에서 벗어나게 되고 캐시라는 악의 상징 같은 여자를 만나 일생 비참한 길을 걸어가게 된다. 여기까지만 해도 성경의 창세기 내용이 연상되는데 작가 존 스타인벡은 실제로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영향으로 성서를 즐겨 읽었다고 하며 성서 창세기에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애덤이 창세기의 '아담'을 연상시킨다면 그의 아내 캐시는 악의 상징이다. 살던 집을 태워 친부모를 죽게 하고, 자기 자유를 구속한다고 생각하여 남편에게 총을 쏘았으며, 시동생인 찰리를 유혹하고, 자식을 두고 집을 뛰쳐나가 유곽의 창녀가 되었고, 유곽의 여주인을 독살하고 그쪽 계의 부와 명성을 쌓아간다.
이 두 주요인물 사이에서 나온 아들 쌍둥이 형제, 아론과 칼을 세번째 주요 인물이라고 본다. 성서의 아벨과 카인을 연상시키는 이들은 서로 대립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선하지만 유약한 아론에 비해 칼은 형을 더 예뻐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얻어내고 싶어하고 형을 질투하며 그런 자신을 늘 괴로와한다.
친모인 캐시를 대신해 아론과 칼을 키워준 중국인 집사 '리'의 역할도 앞의 세 인물들 못지 않은데, 중국인이면서 미국에 건너와 이국 생활을 하지만 여전히 중국과 연락하면서 자신을 수양해가고, 나중에 애덤 앞에서 칼이 용서를 구하게 하는데 중간자로서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사람 역시 기독교적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인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리뷰의 제목으로 한 '팀셸 (timshel)'은 히브리어로 '다스리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작품에서 중국인 리가 성경의 내용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한번 나오고, 이 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지막 대사로 한번 더 나온다.
중국인 리의 설명에 의하면 성경 내용중 카인이 바친 제물을 보고 기뻐하지 않는 하느님게에 카인이 화가 나서 항의를 하자 하느님이 답하기를 '너는 너의 죄를 다스릴 지어다' 라고 하는데, 이는 인간의 죄를 인간 스스로 다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인간 스스로 자기 죄에 대한 자각과 그것을 다스릴 자유의지가 중요함을 암시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이야말로 이 광활한 우주에서 사랑스럽고 독특한 것이지요. 그것은 항상 공격을 받지만 결코 파괴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너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에서처럼 인간에게는 선택권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죠."
(2권, 67쪽 '리'가 '애덤'에게 한 말)
성서의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어떤 것이 맞느냐, 하는 것보다 작가 존 스타인벡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했고, 인간과 세상을, 그리고 선과 악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독자로서의 몫이 아닌가 한다. 작가의 생각이 바로 이 '팀셸' 이라는 단어 속에 축약되어있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 역시 전작 <분노의 포도>의 결말과 일맥상통한다고 보여지기도 한다. 구원, 용서,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
성서적 사고에 충실하면서 그것을 작가 나름대로 재해석하여 인간의 생애에 적용시켜보려는 의지.
인간이 저지르는 대부분의 악행들은 사랑에 이르는 지름길을 택하기 위해 시도된다. 인간이 죽음에 이르렀을 때, 생전의 재능과 영향력과 자질이 제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만약 사랑받지 못한 채 죽는다면 그 삶은 실패작이요 그의 죽음은 싸늘한 두려움일 뿐이다. (2권, 276쪽)
아쉬운 점이라면 선과 악을 대표하는 인물이 너무 뚜렷이 대비된다는 점이랄까. 실제로 인간은 카인과 같은 인간, 아벨과 같은 인간, 이렇게 이분법 적으로 구분되기 보다는 한 인간 속에 선과 악이 다 들어 있고, 카인과 아벨의 모습을 동시에 다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워낙 긴 소설이기 때문인가. 내용이 길어도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꼭 필요했나 하는 인물과 사건들의 삽입이 많아보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별 세개.
작가 자신은 자신의 최고 대표작으로서 <분노의 포도>보다 <에덴의 동쪽>에 더 비중을 두어 말한바 있다지만 개인적으로는 <분노의 포도>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