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의 발견
홍경수 기획.구성 / 샘터사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가끔 TV에서 본 적이 있는 프로그램인데, 워낙 TV를 잘 안 켜고 사는지라 처음부터 끝까지 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 책은 <낭독의 발견>이라는 프로그램의 뒷 담화, 즉 소개되었던 글들과 그 글을 소개한 출연자들의 이야기, 그들의 사연 등이 그 프로그램의 제자 PD의 손으로 엮어진 책이다.
좋아하는 글을 소리내어 읽어본 적이 정말 언제인가. 학교다닐 때 국어 시간에 한 사람씩 지목되어 읽어본 이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느라 참 많이도 소리내어 읽었으나 정작 내가 좋아하는 글을 소리내어 읽어본 적은 없었다.
소설이 영화와 통한다면 시는 사진과 동질의 성격을 갖는다고 사진작가 김중만 씨는 말했다는데,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함축된 이미지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시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 아닐까.
그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만으로 그 사람을 알고 있다가, 그가 좋아하는 시와 그 시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들으며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된다. 다시 알게 된다.
도종환 시인이 스콧 니어링의 저서에서 인용한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는 구절, 가수 성시경이 소개한 김종완이라는 분의 '그의 시 & 그녀의 시'라는 시, 하덕규님의 자작시 중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라는 구절이 나오기 까지 그가 겪었을 듯한 방황과 아픔이 전해져 온다. 양희은의 노래로 유명해진 '한계령' 역시 그의 한편의 시이자 독백.
시를 읽으면서 목소리가 떨려오고, 눈가가 젖어 오는 낭독자들은 그 한편의 시 속에 얼마나 많은 인생의 의미를 느끼고 있음인가.
'시'란 어떤 특정인이 아니라 이렇게 누구나의 가슴에 파고들 수 있는 쟝르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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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행복 2008-01-16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성격이 급해서 아직은 소설이 더 편하게 느껴지네요. 관조하고 생각하고 느끼기 보다는 끝냈다는 방점에 너무 급급한 삶이라서 그런가봐요. 흑흑...

hnine 2008-01-16 09:38   좋아요 0 | URL
미즈행복님, 저도 소설을 훨씬 더 많이 읽어요. 시는 일부러 생각하며 읽는다기보다, 그냥 술술 읽어넘기다가 마음에 확~ 들어오는 시가 있으면 따로 적어좋던가 하는 식이지요. 그럴땐 뭔가 '발견'했다는 기쁨이 생기지요. 소설이 훨씬 편하다는 말씀, 맞아요~ ^^

비로그인 2008-01-16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덕규의 시는 대학시절 친구가 생일선물로 줘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라는 말이 어찌나 와 닿던지요.

hnine 2008-01-16 09:39   좋아요 0 | URL
내 속에 너무 많은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정리가 되는 느낌이 들어요. 나이를 먹는 댓가인가보다 생각하지요.
 





 

 

 

 

 

오늘 고흐 전시전에서 본 그림 중 저 그림이 자꾸 눈에 어른거린다.
저 뒤틀린 지붕의 모습이 고흐 자신의 심경을 나타낸 것 같다는 생각에.



 

 

 

 

 

 

 

 

 

화가들이 그리기 좋아하는 꽃들 중의 하나일까? 고흐의 아이리스는 모네의  아이리스와 또 다르다.



 

 

 

 

 

 

고흐가 살던 노란집. 노란색을 좋아하던 시기를 거쳐 언제부턴가 청색, 에머랄드색이 그림에서 더 눈에 뜨이는 시기가 온다. 노란 색과 에머랄드, 청색의 차이란...



 

 

 

 

 

 

 

 

 

"고흐는 말야, 행복하게 산 사람이 아니었어."
"왜요?"
"그림을 너무 너무 좋아해서 다른 일을 하다가 그만 두고 그림만 그리기로 했는데 말이지, 사람들이 고흐의 그림을 알아주지 않아서, 아주 가난하게 살아야했고, 슬펐어. 그림을 900개나 그렸는데, 고흐가 살아있는 동안 딱 한개밖에 사람들이 고흐의 그림을 사지 않았대. 그렇게 살다가 서른 일곱살, 지금 엄마보다도 젊은 나이에 고흐는 세상을 떠났어.""

그림을 보여주며 불완전한대로 내가 아이에게 해준 설명이다.
주말 오후이니, 얼마나 전시장이 붐빌지 각오하고 찾아갔으므로, 감수하고 둘러 보았다. 다른 나라의 박물관도 유명한 곳이면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긴 줄과 많은 인파들 속에서 그림을을 감상해야했던 곳, 많지 않던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그를 알기 전에, 이미 너무 유명하여 내 눈과 귀에 익숙해져 버린 화가 중의 한 사람이던 고흐. 지금 내 맘으로 제대로 들어오고 있는 것 같다.

어둑해진 시립미술관을 나와 아이 손을 잡고 돌이 깔린 길을 걸어,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걸어 세종문화회관으로.
빈소년합창단의 공연을 보았다. 스무 명 남짓 어린 소년들이 내는 소리는, 남성합창단의 우렁참이나 힘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여리고 섬세한, 불완정한 것 같기도 한 그 소리에서 오는 감동이 좋다. 그들이 부르는 '아리랑'은, 가사의 뜻을 잘 모르고 불렀을 것임에도 노래의 감정을 잘 살려서 불렀다는 느낌. 앵콜곡까지 끝내고 손을 흔들며 퇴장하는 어린 소년들의 해맑은, 연출되지 않은 웃음과 장난기. 마지막 한 소년은 무대 뒤로 열린 문자락에 매달려, 친구들은 모두 들어간 후에도 한동안 손을 더 흔들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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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8-01-1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1월중에 아이들 데리고 고흐 전시회 가려고 합니다. 고흐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죠.방학중엔 전시회장 가는 것이 하나의 행사가 되었습니다. 빈소년 합창단 공연도 참 부럽네요^*^

hnine 2008-01-13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데리고 온 부모님들 많으시더라구요.
저는 서울시립미술관 처음 가봤는데 첫눈에 맘에 들었습니다.
또 가고 싶어요 ^ ^

미설 2008-01-14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부러워라.. ^^ 즐거운 나들이셨겠어요.

hnine 2008-01-14 19:22   좋아요 0 | URL
며칠을 별러서 한 나들이였는데, 아이보다 제가 더 즐거웠던 것 같아요.
미설님께서 가셨다면 멋진 사진 많이 찍어오셨을텐데... ^^

마노아 2008-01-14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술과 음악, 너무 맛난 시간 보내고 오셨어요. 장난끼 어린 소년들의 안녕 손짓이 눈에 막 그려져요. ^^

hnine 2008-01-14 19:25   좋아요 0 | URL
예, 맞아요, '맛난 시간'~ ^^
어린 시절의 한때를 노래를 하며 세계를 도는 아이들, 멋지지요.
나고 자란 서울을 이렇게 날잡아 구경을 하러 오게 될 줄, 몰랐답니다.

미즈행복 2008-01-16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데이트였겠어요. 나중에도 계속 그렇게 멋진 데이트 계속 하세요~

hnine 2008-01-16 09:40   좋아요 0 | URL
아이가 커서도 엄마와 그런 데이트를 하려고 할까요? ^ ^
남편보다도 아이를 데리고 하는 이런 데이트, 오래전부터 꿈꾸긴 했어요.
 

요즘 우리 집에서는 초보 수준이긴 하지만 장기, 오목, 체스 같은 것을 즐겨 한다. 이기려고 하는 아이의 억지를 진압하느라 종종 나의 큰 소리가 나는 적도 있지만, 게임의 룰을 배워나간다는 것은 좋은 것 같다.



 

 

 

 

 

 

 

 



 

 

 

 

 

 

 

 

낡은 체스판. 많이 두어서 낡은 것이 아니라 여기 저기 이사다니면서 낡았다.



 

 

 

 

 

 

 

 

맘에 드는 그림이나 사진 따라 그리기는 아이의 취미. 얼마전에 사준 책 '위대한 건축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따라그리다가 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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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행복 2008-01-16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아드님 그림도 잘 그리고 글씨도 잘 쓰는데요? 어맛! 여기 팬클럽 회원 하나요!

hnine 2008-01-16 09:42   좋아요 0 | URL
그림 그리는 것을 무엇보다도 참 즐겨해서, 그건 엄마의 DNA는 아니구나...생각한답니다 ^ ^ 저는 별로 꼼꼼하질 못해서 그리기, 잘 못하거든요.
잘 봐주시니 감사드려요.
 

 

    

      

       생.일.축.하.해.요.

 

 

 

 

 

 

 

 

 



 

 

 

 

 

 

 

 

 



 

 

 (다음엔 더 잘 만들수 있겠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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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Journey 2008-01-11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있게 생긴 케이크네요. (꿀꺽~)
그런데, 누구 생일인가요?

hnine 2008-01-11 20:44   좋아요 0 | URL
남편이요~ ^ ^
아이싱하는 케잌은 처음 만들어보는지라, 얼마나 우와좌왕 했는지 모른답니다.

뽀송이 2008-01-11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케익 너무 맛나겠어요.
남편분 생일 이군요. 축하드려요.^^
케익도 직접 만들어 드리고 멋져요.^.~

hnine 2008-01-11 22:19   좋아요 0 | URL
앗! 지금 봐도 가슴 설레는 뽀송이님 저 대문그림... ^ ^
케잌은 그야말로 '묻지마'케잌이랍니다. 모양은 좀 그래도 속에 블루베리도 넣고, 맛은 괜찮았어요 ^^

미설 2008-01-11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양도 좀 투박한 듯 하면서 오히려 매력있어 좋은걸요. 축하드립니다. 맛도 영양도 모두 만점이었겠네요^^

hnine 2008-01-12 06:12   좋아요 0 | URL
모양 투박...ㅋㅋ 맞아요~
아이싱 하는 것이 매끄럽게 안되더라구요.
스크래퍼 같은 것으로 다듬어야 한다던데 저야 모 ^ ^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설 2008-01-12 22:43   좋아요 0 | URL
히.. 투박이란 표현이 좀 좋게는 안 들리는데 멋스러운 느낌이 들어요^^ 정말로요.

hnine 2008-01-13 06:58   좋아요 0 | URL
미설님, 너무 매끈하면 인간적인 멋이 없지요~ 흠 흠..^^

세실 2008-01-12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가 살아있어요~~~ 맛도 영양도 만점 케익이네요.
옆지기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hnine 2008-01-12 10:39   좋아요 0 | URL
세실님, 감사합니다.
케잌은 하루전에 만들어 놓고 이른 아침에 생크림 사다가 허겁지겁 아이싱 하느라 더욱 볼품은 없지만, 이번을 경험삼아 다음엔 좀 더 나아지겠지요. 예쁘게 봐주시니 감사드려요 ^ ^

마노아 2008-01-12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생일 케이크도 직접 만들구요^^ 생일 축하합니다~

hnine 2008-01-13 06:59   좋아요 0 | URL
단것 안 좋아하는 남편은 정작 한조각만 먹고, 나머지는 제 아이와 제가 모두 먹었답니다 ㅋㅋ ^ ^
축하해주셔서 감사드려요.

프레이야 2008-01-13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지기 님 생일 축하 드립니다~
님이 손수 만드신 케잌에 감동하셨겠어요.^^
딸기 생크림, 푹 찍어먹고 싶어요.

hnine 2008-01-13 07:03   좋아요 0 | URL
저도 냉장고에 남은 생크림 볼때마다 망설입니다, 뭐 더 찍어 먹거나 발라 먹을것 없나 하고요 ^ ^
남편은 원래 감동같은 것 잘 안하는 사람이고, 만든 제가 제일 감동했다지요 "와~ 내가 케잌을 다 만들다니!" 이러면서요 ㅋㅋ

미즈행복 2008-01-16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감동이예요. 가족에 대한 님의 사랑이 팍팍 느껴지네요.

hnine 2008-01-16 09:43   좋아요 0 | URL
그냥 만드는 제가 혼자 신나서 만들고, 혼자서 감동하고, 그러는 재미지요 뭐~ ^^
 
명랑한 밤길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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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쉽게 말하기 어려운 작가로 생각되는 여자 소설가 중의 한사람.
그야말로 인생의 이런 저런 골목을 구비구비 돌아오며, 마흔 다섯 그녀의 가슴에 남은 것은 인생에 대한 너그러움, 포용력, 따뜻한 감성일까, 아니면 차갑고 냉철한 현실에 대한 더욱 철저한 자각일까.
'...내 글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나는 내 흔들리는 초상을 본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그들과 나는 지난 몇년 동안도 늘 생의 '변방'에서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다. 나는 확실히 화려한 정원에서 보호받고 주목받는 꽃과는 인연이 먼 사람임이 분명하다. 나는 내 글 속의 사람들이 비록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지만, 아무렇게나 대접받는 것도 원치 않는다. 나는 다만 그들이 눈에 잘 띄지 않는 바람 부는 길가에서나마 피었다 지고 피었다 지고 하면서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만이 부를 수 있는 작고 고운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면 그들 옆 한귀퉁이에 사는 작가인 나는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 귀기울이며 조금은 행복하지 않을까. 그들처럼 나 또한 작고 고운 노래 한번 부를 용기를 내지 않을까...'(작가의 말 중에서)'
그녀는 자신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저리도 절절한 애정을 담고 있구나.
최근에 각 문학지에 실린 열두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맛있는 곶감을 하나씩 빼 먹듯이, 한편 한편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다보면 마지막 장에 이르러 있는 책.
'꽃진 자리'에서는 바로 이웃집 여인네의 모습이기도 하고 또 중년을 살아가는 우리 삶의 한 풍경을 보는 듯했고, '영희는 언제 우는가'에서는 올망졸망 어린 삼남매를 남기고 먼저 세상을 뜬 남편의 장례식이 끝날 때 까지 눈물을 흘릴 수 없던 여자의 얘기. 배고프거나 아플 때 울어제끼는 아이의 울음이 아닌, 이런 울음의 의미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었다. '..인자서 우는가비. 그려, 울어라, 울어. 하먼, 밥 묵고 살라먼 울어야제. 울어야 밥맛 나고 밥 묵어야 심이 나제. 별것이나 있간디...태나서 우는 놈이 사는 벱이여. 울어야 산 목심이여. 그저 내 울음이 내 목심줄이여...(56쪽)' 그러고보면 어린 아기의 울음과 다를 바 없구나. 생존의 울음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우리 사회의 소외 계층의 좌절과 희망에 관한 얘기인 '도넛과 토마토', 비에 떠내려간 남편을 기다리며 목노아 외치는 절규 '아무도 모르는 가을'. 이 세상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다른 종류의 가을이 있음을 알게 해준 이야기이다. 단풍 구경가는 인파와는 다른 종류의 가을을 맞는 사람들, "별도 우라지게 많다." 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삶의 한 대목을 사는 사람들이 있음을 말이다.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져내리는데 노래를 부르며 걷는 '명랑한 밤길', 쏟아지는 비를 피할 길 없어 그대로 맞으며 그치기를, 언젠가 그치기를 바라며 사는 듯한 사람, 집을 나간 아이, 유방암으로 가슴 절제술을 받고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내를 둔 무능력하고 '별볼일 없는' 남자의 얘기 '빗속에서', 인간은 사랑 없이 살수가 없나 '언덕 너머 눈구름', 아내 죽고 자식들 떠난 빈집에서 달 보고 울고 있을 친정 아버지를 생각하는 글 '비오는 달밤', 미혼모와 입양의 주제는 늘 슬프면서 화가 난다, '79년의 아이', '지독한 우정'은 바로 모녀의 사이를 말한 것이고, 갱년기 증세를 겪고 있는 이혼녀 이야기 '폐경전야', 피폐한 상황에서도 상한 것 같은 딸기로 아이에게 잼을 만들어 먹일까 말까를 고민하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별이 총총한 언덕'
이 책에서 가장 낭만적인 구절을 고르라면 여기를 들겠다. '나는 나의 스물한 살 봄밤을 그와 함께 먼먼 나라, 그가 없으면 닿을 수 없는 나라를 여행하는 것만 같았다. 나 혼자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낯설고 아득한 나라를. 그가 있어야만 닿을 수 있는 나라를 여행하는 것은 그래서 슬펐다. 아름답고 슬프고 쓰라린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이번에는 낯익고 낯익어서 슬픈 풍경과 맞닥뜨려야만 했다.' (114쪽 '명랑한 밤길'중에서) 연애의 감정을 이처럼 아득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표현을 할수 있을까.
삶에도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나뉘어져 있다면, 공선옥의 소설을 읽는 동안은 그 어두운 편에 들어갔다 온 기분이다. 하지만, 어두운 편에 있다가 나옴으로써 삶을 가볍지 않게, 더욱 진지한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그런 느낌. 함부로 좌절할 일도 아니며, 쉽게 기뻐 춤 출 일도 아니라고 가르치는 듯한. 지금 딱 그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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