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선물로 받은 양복과 코트 세트를 아이에게 입혔다. 구두도 신키고.
마을 버스 타고 고속 버스 터미날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다시 지하철 3, 5호선을 바꿔 타고 찾아간 성당. 끝나고 교보문고에 데려가준다는 약속에 아이는 군말 않고 잘 따라다녔다.
내게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친한 친구가 세명 있는데, 자주 못 만나기는 하지만, 마음이 위로받고 싶거나 또 좋은 일이 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려지는 사람들이다. 둘은 이미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형이고, 내가 결혼이 늦어 이제 일곱살 짜리 아들이 있는데 이 친구는 늦게 상대를 만나 더 많은 축하를 받으며 어제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
원래 예쁘게 하고 다니던 친구이긴 했지만, 나이를 무색하게 화장도, 헤어스타일도, 드레스도 잘 어울리게 참 예뻤다. 신부대기실에 가서 인사를 하고 어머님께 인사드리니, 초등학교때 뵙고 못뵈었던 친구의 어머니께서, 이제 그때 얼굴이 하나도 안 남아있다고 그러신다. 당연한 일. 초등학교때 통통발랄 소녀였었던 나.
식이 시작되고 신랑, 신부의 입장, 신부님의 주례, 양가 부모께 인사, 신랑 신부 힘찬 행진 등이 진행될 동안, 얼마나 마음이 뭉클하던지. 결혼을 결정하기까지 1년여 연애기간, 종종 심야에 전화를 걸어와 나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소연하던 친구. 결국 그 친구보다 내가 더 많은 하소연을 하기도 했지만, 그런 여정의 결과이면서 또 다른 여정의 출발이 되는 시점을 보고 있자니, 정말 친구에게 많은 축복을 기원해주고 싶었다. J야, 정말 축하해. 지금부터 펼쳐질 너의 새로운 인생의 페이지를 기대해도 좋을거야. 앞으로도 내게 힘이 되어줄 친구, 미약하나마 내가 힘이 되어주고 싶은 친구야.
아이와 교보문고 가기로 한 약속 때문에 다른 두 친구와 얘기도 별로 못나누고 돌아오는데 어찌나 서운하던지. 그들과 마음에 있던 얘기를 실컷 나누고 나면 얼마나 행복한지,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 되는 건, 사소할지도 모를 나의 얘기를 그렇게 열심히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겠지. 어릴 때부터의 나를 다 알고 있는 친구. 그런 점에 있어서는 30대가 다 되어 만난 남편이 비교나 될까. 나이가 들면 남편보다 친구가 더 좋다는 말이 벌써 이해가 될 것 같으니, 나도 그 정도의 나이가 된 것일까.
성당에 처음 가본 아이는 호기심에서 질문의 연속이다. 성당과 교회는 어떻게 다른가, 신부님과 목사님은 어떻게 다른가, 왜 결혼식에 여자는 웃으면 안되는가 (신부가 너무 엄숙한 얼굴을 했는지 아이 맘대로 그렇게 생각했나보다), 엄마도 저렇게 결혼식을 올렸는가, 왜 결혼식에는 단정한 옷을 입고 가야하는가, 자기는 같은 반의 누구와 결혼할건데, 나중에 그 아이가 못생겨지면 어떻하나...
교보문고는 서점이라기 보다는 백화점이라는 느낌이 더 드는 곳이다. 내가 중학교때 처음 생겼던 것 같은데, 결혼 전에는 정말 혼자놀기 명수이던 내가 자주 드나들던 곳이었다. 아침 문여는 시간에 일착으로 도착하게 되어 점원들이 일렬로 선 가운데 인사를 받으며 들어가보기도 했고, 나중에 그곳에서 나올 때에는 무슨 중노동을 한 사람 모양 기진 맥진하던 적도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그 많은 책들 중에서, 하필이면 어른들 책 서가에 가서 21세기 무기 시리즈인가 뭔가 전투기 편을 골라서 사겠다는 아이. 꼭 사고 싶었던 책이었다는데, 마음에 안 들었지만 '뭐 이런 책을 고르니?' 라는 말을 끝까지 참고 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시각은 10시가 다 된 시각. 아이는 곧 잠들고, 나는 잠이 오지 않아 새벽 4시가 되도록 마늘도 까고, 다림질도 하고, 밤도 삶아서 껍질 벗기고, 안 해도 되는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