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올 시간. 빨래를 널다말고 밖으로 난 창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온다! 그런데 어깨가 축 처진게, 평소같으면 촐랑촐랑거리며 들어설텐데, 가방을 질질 끌며 힘없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창을 두드리며 손짓을 하고는 현관문을 열어주었더니, 아이가 들어서자마자 내게 안기며 "나, 울었어요..." 그런다.
-왜??
"5학년 J형아 (아이와 같은 버스를 타고 오는 동네 형이다)가 나를 뒤에서 밀었어요. 그래서 넘어졌어요. 나 이제 그 버스 안타고 다녀야겠어요. 엉 엉..."
- 그랬구나...

그리고는 한동안 아이를 껴안고 있었다. 현관에서, 아이는 신발도 아직 벗지 않은 채로.
조금 있다가,
-이제 좀 마음이 가라앉았어?
"네..."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더 묻지도 않았다. 요즘 들어 아이는 학교에서도 누가 자기를 괴롭힌다는 말을 자주 한다. 선생님과 면담도 했는데, 실제로 다른 아이들이 괴롭혀서가 아니라, 관심과 애정을 받고 싶은 표현으로 생각된다고 말씀하신다. 아이가 그럴때마다 처음에는 네가 먼저 잘못했다느니, 네가 양보하면 그런 일 없을거라느니, 어른도 하기 힘든 것을 아이에게 참 쉽게도 말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냥 아이 말을 들어주기만 한다. 거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나머지는 시간이 지나, 아이가 좀 더 학교라는 사회에 적응을 하면서 배워나가리라 생각하면서.
그렇지만 물론 마음이 가뿐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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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람은 다 언젠가 죽어요? 그럼, 엄마도 나중에 죽어요?"

- 응, 태어난 것들은 다 언젠가 죽어.

"정말요?"

- 그런데 엄마는 안 죽는 방법을 알아.

"어떻게요?"

- 그건 지금은 비밀이야. 그러니 걱정마.

(네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거란다 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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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들은 절대 어린아이들에게 죽음에 대해 환상을 심어주지 않는다고 한다. 죽어서 천국에 간다든지 지옥에 간다든지, 그러기보다는 죽음이란 현상에 대해 처음부터 확실히 사실적으로 얘기해준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오늘 아이 앞에서 그러질 못했다. 물어보는 아이의 표정이 나도 모르게 저렇게 대답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냥 본능적으로 아이를 안심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화가 안되어 누워있었더니, 아이가 책을 한권 들고 온다. 내 옆에 눕는다. 그러더니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다. 그럴 때 자기가 책을 읽어주면 엄마가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밤마다 졸려서 헛소리 할 때까지 책을 읽어주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아이가 내게 책을 읽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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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들어오는 소리에 깨었다. 아이가 책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 모양이다. 옆을 보니, 책을 읽어주다가 아이도 그대로 잠이 들어있고.
그때가 11시 쯤인데, 문득 엊그제 아이가 빼빼로 데이에 선생님께 빼빼로 초컬릿을 사다드리고 싶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토요일에 학교엘 가지 않으니 내일 갖다드려야 하는데, 오늘 사다놓는 것을 깜빡하고 잠이 든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남편이 두말 않고 현관을 나선다. 잠시 후 남편은 아이를 위해 예쁘게 포장된 빼빼로 초컬릿을 사가지고 들어왔다. 마침 동네 제과점 한 곳이 아직 문을 닫지 않았더란다. 아이 가방에 넣어주었다.




 

 

 

 

 

 

 

(옛날 사진 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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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7-11-09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은 엄마 아빠 그리고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아이네요. 제가 가서 껴안아주고파요

hnine 2007-11-09 15:42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우리 아이, 껴안아주셨다 생각할께요. 고맙습니다 ^^

울보 2007-11-09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한구석이 따스해지네요,
정말 좋은 엄마아빠세요,

hnine 2007-11-09 15:41   좋아요 0 | URL
울보님, 별 얘기 아닌 걸, 그래도 글로 남겨보았어요.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얘기 거리가 떨어질 날이 없지요 ^^ 따스하게 읽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07-11-09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엄마에게 이야기를 잘 하네요.
저는 제가 무뚝뚝해서인지 잘 털어놓지를 않아요.
이런 글 보면 반성하고 잘 해줘야지 하게 되어요.

hnine 2007-11-10 08:25   좋아요 0 | URL
아이가 하나 있으니, 아이가 하는 말을 다 들어줄수가 있나봅니다. 둘, 셋 되면 아마 그것도 힘들겠지요.
 

1. 오늘 아침 읽은 시

"ICI REPOSE 여기 쉬다" - 최 영미

오베르에서 빈센트의 묘비명을 번역하며, 세상과 소통하지 못한 자의 엄청난 피로가 내 머리 끝에 몰려왔다.

반 고흐, 죽어서야 겨우 쉴 수 있었던 불쌍한 영혼.
(그래도 그에겐 동생 테오가 있었다)

죽어서야 사람들은 한꺼번에, 호들갑스럽게 이 불멸의 천재를 자신들의 거실에 받아들이고 멀리서 찾아와 그에게 꽃다발을 바쳤다. 하얀 비속 밑에 멀리서 찾아와 그에게 꽃다발을 바쳤다. 하얀 비석 밑에 우거진 싱싱한 장미들은 하루도 시들지 않을 테니. 땅 속의 그는 파이프를 피우며 옆자리의 동생에게 속삭이리라. 슬픔은 영원히 계속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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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이맘때 나온 최 영미 시집 '돼지들에게' 에 실린, 예전에 읽었던 시들을 다시 읽어보다.
세상과 소통하지 못한 자,
죽어서야 겨우 쉴 수 있었던 불쌍한 영혼,
슬픔은 영원히 계속된다고,
에 밑줄이 쳐져 있었다.

2. 오늘 아침 들은 음악

이선희 라이브 CD

3. 오늘 아침 읽은 책

  

 

 

 

 

 

 

 

 (가요를 들으며 클래식 음악에 관한 책을 읽다 ㅋㅋ)

 

4. 오늘 아침 계획한 것

        방학이 언제냐~~ ^^ 탁상달력에 썼다 지웠다 하기 반복

 

---지금 시각 6:15,
    이제 나가서 밥상 차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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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운이
윤동재 지음 / 창비 / 200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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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서울아이들>이라는 시집을 먼저 읽었다. 오랫동안 보관함에 담겨 있다가 이번에 읽게 된 시집 <재운이>도 비슷한 색깔의 시들로 꾸며져 있다. 어린이들이 주인공이 된다고 해서 꼭 동시라고 이름붙일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또하나의 시집이다. 농촌에 사는 어린이들의 가족, 친구, 학교, 가난 이야기. 하지만 요즘 가난은 농촌에만 있지 않다. 같은 서울에 살면서도 빈부의 격차는 얼마나 큰가. 위의 <서울아이들>이라는 시집에는 그런 내용을 담은 시들이 여러 편 있다.  서울 아이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누리고 산다는 생각, 농촌 아이들이라고 해서 더 못 누린다고 생각하기가 모호해져가고 있는 시대이다.
학교 운동회 총연습날, 옷이 한벌 뿐인 재운이, 운동복도 운동화도 없이 계주 선수로 뛰다가 교장선생님께 불려나가 뺨을 맞는다. 복장때문에 학교 망신 시킨다는 이유로. 그런 재운이를 담임 선생님은 데리고 가 깨끗이 씻기고 운동화, 운동복도 사주시지만, 운동회날 결국 결석을 하고 마는 재운이. '재운이'라는 제목의 시 내용이다. 재운이 가슴에는 이미 커다란 멍이 되었을까?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시들도 함께 실려 있다. '새롬이', '꽃이 먼저 핀 까닭은?' 같은 시를 읽어 보면 말이다.
학교 파한 후에도 학원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도시 아이들이 꿈에서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지쳐하듯이 ('5학년 송이'), 여섯 살난 꼬마는 강아지와 함께 학교 간 오빠 돌아올 때까지 혼자서 집을 보며 기다림에 지친다 ('봄 하루').

아이들아, 그래도 부디 멍들지 말고 커가라고 부탁한다면 그게 더 무리이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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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어릴때
나이든 아줌마들을 보면서
저 나이 쯤 되어도
가을을 느끼며 감상에 빠지기도 하고 그럴까 의문스러웠었다.

가을을 느끼며 감상에 빠지는 것도 빠지는 것이지만
그리고 더 나이를 먹어보면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나이를 먹는다고 바뀌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내가 직접 체험해서 생각이 달라진 경우가 아니라면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여전히 마음 속에 있고
감정의 바다는 여전히 살아 있다.
예전과 조금 다른 감상, 또는 감정이긴 하지만.

혼자 가을 맞은 양
그리고 처음 가을 맞은 양
유난히 가을 타는 친구에게
선물이라도 주어야겠다고 이 아침에 주문한 책들이다.

  

 

 

 

 

 

 

 

 

 

 

 

 

 

 

 

 

 

 

 

 

기쁘니? h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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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7-11-05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나를 바라보는 젊은이들도 그런생각을 하겠지요
저 아줌마는 무슨재미로 살까 가을을 즐길주는 알까라고요,
하지만 제가 아줌마가 되고 보니 20대나 별반 다를것이 없는데요,,ㅎㅎ

전호인 2007-11-05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 자체가 주는 시각적인 효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의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아요.

hnine 2007-11-05 11:57   좋아요 0 | URL
울보님, 40대가 되어도 20대 때와 달라지는 것, 별로 없던걸요.
아마 50대, 60대가 되어도 그럴까요? ^^

전호인님, 아...시각적인 효과도 한 몫 할수 있겠군요. 찬바람 불기 시작하니 심난한 것도 있고요.

씩씩하니 2007-11-05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아줌마! 세상 사는 재미요??? 무자게 많답니다~~~ㅋㅋㅋㅋ
나이가 든다는게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은대..젊음은 아직 그걸 헤아리지 못하겠지요?ㅎㅎㅎ
열심히 읽고 열심히 살아가는 님...그래서 행복한,,,아줌마의 세계를 말에요...

라로 2007-11-05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려올때 보았네는 저두 찜합니다~.
loser은 책도 포함된건가요????그의 Wringer를 딸아인 재밌게 읽었다던데,,

hnine 2007-11-05 23:30   좋아요 0 | URL
씩씩하니님, 저 요즘 별로 열심히 못읽고 있어요 흑 흑...아줌마의 세계, 겪어봐야 알수 있는 세계이지요 ^^

nabi님, loser에 책도 포함되어 있는 것 맞아요. 딸이랑 함께 읽으실수 있겠네요. 지금은 대전으로 내려오신건가요? 해든이란 이름, 누가 지으셨는지. 맘에 드네요.

미즈행복 2007-11-06 0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나이 든 지금이 더 좋은데요? 물론 젊은 사람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
모든 나이가 다 아름다운 것 같아요. 그 안에 삶이 다 녹아있는데 왜 젊은날로의 회귀를 바라겠어요?
근데 님은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아줌마'스럽지 않으신데요? 물론 그 정의가 많이 잘못된 것이긴 하지만요.

hnine 2007-11-06 05:10   좋아요 0 | URL
저도 젊은 시절을 별로 즐거운 추억거리를 만들며 살지를 못해서 그런지, 별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 해본적 없네요 ^^ 아줌마가 되면 아마 소소한 고민들로부터도 해방되겠지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착각이었어요. 아무튼 결론은 '지금' 재미있게 살자! 입니다 ^^
 



 

 

 

 

 

 

 



 

 

 

 

 

 

 

밤식빵을 구웠다.
밤도 통조림밤이 아닌, 삶아서, 껍질 벗겨서, 꿀에 재는 것 까지 모두 내 손으로.
반죽도, 집에 있는 제빵기 건드리지도 않고 손으로 반죽했다.
마음이 자꾸 흩어질 때 베이킹, 도움된다.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발효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밤빵을 먹고 싶다는 아이의 말이 발단이 되어서 만들기 시작했는데
다 만들어진후, 빵 위의 밤만 쏙쏙 빼먹는 것을 보고 야단을 치고 말았다.
먹으라고 만들어놓고, 무엇부터 먹든 뭐가 그리 대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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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11-04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왓! 놀라운 실력이에요!

세실 2007-11-04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더 즐거워 했을듯...
님의 손길이 느껴집니다. 아 따뜻할 때 먹는 빵 맛 환상이죠~~

hnine 2007-11-05 05:09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아직 그 정도 실력은 못된답니다. 자주 해야 실력이 느는데, 특히 발효빵은 발효 조건을 만들때마다 달리 하니, 매번 헤맵니다.

세실님, 그런데 맛은 파는 것이 훨씬 좋아요. 저는 버터도 안 넣고 설탕도 조금밖에 안 넣고 하니, 덜 달고, 덜 포슬거리고...그렇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