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9단
양순자 지음 / 명진출판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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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생에 단수가 있다면 나는 지금 몇단이나 될 것인가.
오랫동안 교도소 교화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사형수 상담을 해오던 올해 67세 되신 할머니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실 이야기란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인생에 대한 어떤 새로운 요령, 지혜가 쓰여져 있을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머리 속에서 만들어진 얘기가 아닌, 짧지 않은 세월을 직접 겪어내면서, 그리고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을 오랜 기간 동안 상대해 오시면서, 어쩌면 이 분 만이 하실 수 있는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내가 말이야...', '...했거든.'  마치 사람을 옆에 앉혀 놓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처럼 쓰여져 있다. 인생 기본 공식, 사람 사이 공식, 가족 사이 공식, 이렇게 세 파트로 나누어진 가운데, <사람은 한 번은 행복해야 해>, <이별의 달인이 돼 봐>, <내 탓이라고? 그게 왜 전부 내 탓이야!>, <당신을 귀하게 여기는 것부터 시작해>, <식모나 머슴 될 자신 없으면 결혼하지 마>, <결혼할 때는 한 가지 주제만 생각해>, <최고의 유산은 부모의 행복이야> 등의 이야기들이 실려져 있다. 과장도 없고, 부족할 것도 없이 진솔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에, 새삼스러울 것 없다고 말할 사람도 있겠으나, 몇 번 들어도 괜찮을 이야기 들 뿐이다. 실제 이혼의 경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들려주는 결혼과 가정의 이야기는, 위의 소제목 처럼 여자는 식모, 남자는 머슴될 각오 없으면 결혼하지 말라고 한다. 웨딩드레스는 결혼식 끝나면 바로 벗어 던져질 옷인 것 처럼, 스스로 어떤 대우를 받길 원하고 누릴 생각은 그 날로 접어야 한다는 표현이다. 또, 자식의 학업을 위해 기러기 아빠로 사는 요즘의 많은 가족을 향해서,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부모가 서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라면서, 어떠한 형태로든 부모가 행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식이 행복할 수는 없다고 타이른다. 힘들고 지쳐 있는 부모 앞에서 아이들이 웃고 있을 수 있겠냐고. 태어나면 죽는 것을 비롯해서 이 세상 모든 관계는 이별로 끝나지 않는 것이 없으니, 기왕이면 멋진 이별을 하는 연습을 하란다. 이별의 달인이 되어 보라는 말이다.

인생9단이라는 별칭은 스스로 붙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든단다. 인생10단이 아니라 9단이어서 더 좋단다.
부담없이 읽으면서 가끔 고개도 끄덕여지는 책. 마지막으로 역시 인생을 힘들게 하는 원인 제공은 사람의 욕심이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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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메이 아줌마 (반양장) 사계절 1318 문고 13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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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없이 친척의 집을 전전하며 지내고 있던 여섯살 여자 아이 서머는 어느 날 메이 아줌마와 그녀의 남편 오브 아저씨에 의해 웨스트버지니아의 숲속의 집으로 와서 메이 아줌마와 오브 아저씨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행복한 시절을 보내게 된다. 서머가 열두살 되던 해 어느 날 메이 아줌마는 돌아가시고, 오브 아저씨는 메이 아줌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정상적인 일상 생활을 못하고 있고 서머 역시 생활의 중심이 빠진 듯한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이 책은 이렇게 돌아가신 메이 아줌마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으로 시작된다. 아무도 돌보지 않으려고 하던 여섯살 어린 아이를 작은 천사라고 여기며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그 아이로 하여금 이곳이 천국이라고 여길만큼 따뜻한 사랑으로 키워주고, 남편의 마음 속에 자신의 빈자리를 그토록 크게 남기고 떠난 메이 아줌마로부터, 사람이 한 평생을 살고 떠나면서 무엇을 남기고 갈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이 책을 쓴 신시아 라일런트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웨스트버지니아의 산마을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다고 한다. 작가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쓰여진 이 책은 미국에서 1993년 뉴베리 상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상을 받은 작품이다. 흥미진진한 스토리도 아니어서 길지 않는 분량을 읽으면서도 다소 지루한 감까지 있었고 화려한 수사여구로 쓰여진 것도 아닌 이 책의 진가는,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 읽는 사람에게 조용히 전달되는 그것, 즉 사람이 남기고 갈수 있는 것, 살아있는 동안 사람이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데에 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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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름이 낯익다 했는데 오늘 우연히 아이의 수첩을 보니 삐뚤빼뚤한 글씨로 신시아 라일런트의 11월 이라고 적혀 있다. 도서관에 반납하기 전, 제목이라도 어디에 적어놓으라고 내가 시켰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로부터 별로 주목받지 않는 달 11월을 주제로, 이 책 역시 말이 무척 절제되고 그림이 가득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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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19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이 세상에 남기고 갈 수 있는 것은 무언지 생각해봤어요.
비도 오는데 더욱 철학적이 되네요.

hnine 2007-07-19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세상에 남기고 갈수 있는 것...무거운 주제이지요.
 

지난 주 오랜만에 맛있다고 낙지돌솥비빔밥을 먹고서는 (맛있는것 먹고 기분 좋아서 페이퍼까지 올렸더랬다 ^ ^) 배탈이 나버렸다 ㅋㅋ 며칠 골골 하면서 그 핑계로 게을러져가지고는 누워서 TV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제까지 그러다가 오늘 겨우 박차고 일어났다.

지금 그 얘기 하려던 것이 아니라, 그렇게 TV앞에 있어도 나는 한 시간 이상을 TV앞에 붙어 있지를 못한다. 그런데 어제는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가 그때 막 시작하는 어떤 흑백영화에 시선을 고정시켜서는 끝날때까지 꼼짝도 안 하고 본 영화가 바로 이 영화이다.



 

 

 

 

 

포스터는 컬러로 되어 있지만 영화는 흑백이다. 한때 영화에 빠져 살던 시절이 있던 내가 그렇게 많이 들어 온 제목 '마부'.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 궁금해하면서도 볼 기회가 없었다. 너무 재미있었던 것은 이 영화를 보니, 우리가 아는 원로배우들이 거의 모두 출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든 출연진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의 젊었을 때의 모습을 보는 재미 끝에, 아...사람은 누구든 늙는구나 라는 새삼스런 생각으로 쓸쓸함도 느껴졌다.

가진 계층과 못가진자 사이의 대립 구조로 전개되다가 결말은 마부의 큰 아들이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마부의 집에도 쨍하고 해뜰날이 시작된다는, 아주 희망적인 암시를 주며 끝나는 것에서 이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 (1961년)의 우리 사회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 나라 영화 역사에 중요한 디딜목이 된 영화를 집중해서 보고난 감회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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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끓는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19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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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밥이 끓는 시간'이라고 붙인 저자의 의도가 무어라고 말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전해진다. 밥 때가 되면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밥 짓는 냄새가 나는 집, 사람이 사는 집이다.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집, 밥 냄새가 나지 않는 집, 며칠 동안 창문이 열리는 일이 없는 집,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집은 어딘가 이상하지 않겠는가.

정상적으로는 중학교에 다녀야할 여자 아이 순지는 아침이면 부엌에서 엄마가 달그락 소리를 내며 아침을 준비하고 밥 끓는 냄새가 나던,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어려운 집안 형편도 형편이지만 이제 네 살이 된 동생을 집에 혼자 둘 수 없어 순지는 학교에 제대로 다니질 못한다. 데리고 가서 교실 밖 복도에 앉혀 놓기도 하지만 추위를 못 이긴 동생은 자꾸만 누나가 공부하는 교실로 들어오고, 선생님의 배려로 교무실에 데려다 놓기도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 아침에 쌀독에 쌀이 있으면 그나마 밥을 짓고, 없으면 배를 곯는 생활. 누구 탓도 하지 않는 어린 소녀는 눈물도 흘리지 않는다. 무심한 듯, 허공에 시선을 두고 있는 한 소녀의 얼굴이 읽는 동안 그려졌다. 새엄마가 아기를 낳고 바로 나가버리자 순지의 마을 사람들은 회의를 통해 갓난 아기는 고아원으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차에 실려 가는 동생을 순지와 네살 동생까지, 울며 불며 못 데려가게 하려고 애를 쓰지만 동네 사람들의 만류에 의해 아기와 이별을 하고. 집을 나가 연락도 없이 몇 해를 떠돌던 아빠가 어느 날 나타나고 순지는 오랜만에 아빠 몫까지 밥을 지으며 실낱 같은 희망을 가져본다.

아직도 전국에 상당수의 결식 아동들이 있다고도 하고, 며칠 전에 TV에서 본 어느 프로그램 생각도 났다. 하루 종일 나물을 팔면 이만원 정도. 그것 가지고 몸이 불편한 할머니께서 두 손자를 키우는데 매일 저녁은 라면이고, 다른 반찬도 없이 손으로 밥을 김에 싸서 허겁지겁 두 어린 아이의 먹는 모습을 보았다. 실로 겸허하고 감사해야할 밥 한 그릇 아닌지. 작가의 가슴 속에 남아있던 어떤 추억이나 경험이 이런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였을까. 서문에 맨드라미 피는 집에 살던 어떤 소녀에 대한 회상이 나온다.
요즘 청소년들은 이런 소설을 읽으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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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in 2007-07-19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를 돌아다니면 든 생각...제가 주로 읽는 책들 말고도 동화나 이런 책들을 읽으면 좋겠다!에요. 두분의 댓글을 보니, 저만 해도 보지 않고, 겪지 않아서 인지 좀 멀게 느껴집니다. 책에나 나올 것 같은... 있다고는 알고 있지만 상상은 잘 안되는...어쩜 그래서 더 이런 책들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어요.

hnine 2007-07-20 07:12   좋아요 0 | URL
책에서 우리가 얻을수 있는 것들 중 하나이겠지요. 우리가 겪어보지 않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요. fallin님, 동화를 읽으면서 의외로 얻는게 많더라고요.
오늘도 빗소리에 잠을 깨었어요. 오늘도 힘차게!! ^ ^
 

휴...

마음이 아프다.

이게 다만 책에만 있는 얘기가 아니란 말이다.

리얼리즘? 먼데서 찾을 것 없다, 어려운 말 쓸 것도 없다.

리뷰는 내일 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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