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유만만인 요즘의 내가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 오후 6시, KBS1FM의 세상의 모든 음악 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김미숙씨가 오랫동안 진행을 했었고, 그녀의 목소리가 내게는 일종의 신경안정제 역할을 해주고 있었기에, 진행자가 지금의 임태경으로 바뀌었을 때 못내 서운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 적응. 무엇을 하며 들어도 나는 편안한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날 방송을 놓쳐도 문제가 없다. 인터넷으로 다시 듣기 하는 것이 사실 더 좋기때문에. 오늘도 지난 방송 들으며 책상에 앉아 어젯밤 책상 그득히 펼쳐 놓고 잠든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영화 <피아노>의 주제음악이 나온다. 한동안 나의 휴대폰 컬러링 음악이기도 했던,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음악.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 아니, 아이 핑계대고 부모가 누릴 수 있는 일 중 한가지는 가보지 못했던 곳을 어릴 때 여기 저기 많이 데리고 다니며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말로 가르치려 들리 말고, 직접 보고 느끼게, 나중에 인생의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일이 있을때 좀더 넓은 안목과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아닐까 하는 것이다. 가보고 싶은 곳을 들자면 끝이 없고, 아직 구체적인 계획 같은 것도 없어 무계획 상태나 마찬가지인데, 어제 남편과 얘기하다가, 국외로 갈 기회가 생기면 다른 나라보다 아프리카를 제일 먼저 가보자는 말이 나왔다. 선진국의 발달된 모습, 역사가 오래된 도시의 문화 유적, 모두 좋지만, 인간이 이루어 놓은 것들 이전에 인간이 물려받은 자연을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자, 뭐 그런 취지이다. 그런 곳은 성인이 되어서보다 어릴 때 가보는 것이 더 인상에 남지 않을까 하면서.
이곳으로 이사온지 일년 반. 아직도 '우리동네' 밖에 잘 모르는 내게 어제 남편이 이 도시에서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어딘지 아냐고 하면서 새로 생긴 지하철을 타고 가보자고 한다. 이곳의 지하철은 서울의 지하철보다 앞 좌석과의 간격이 더 가깝고 전체 칸 수도 적어 아주 아담하고 깨끗하다. 유명하다는 빵집 들어가서 내부 구경과 빵들 구경도 하고 (한때 나의 로망이었다, 빵집 경영 ^ ^), 그 빵집 앞 어딘가에 있다는 유명한 커피집을 찾다가 포기하고 그냥 길모퉁이 까페 한곳을 들어갔는데, 커피값이 아직도 3000원을 넘지 않는 곳도 있다며 신기, 흡족해하며 치즈케잌 조각까지 시켜 먹으며 놀다 왔다. 정말 여유만만이다. 요즘 내가 누리는 이런 여유가 좋기도 하면서 가끔은 너무나 생소해, 꼭 남의 옷을 입고 있는 기분이 들때도 있다.
아직 8시가 안된 시간. 조금 있다가 여동생 생일 축하해주러 고속도로 나서기 전에 도서관 가서 책이나 반납하고 와야겠다. 혹시 위의 책이 도서관에 있는지 검색해보았더니 없다. 사서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