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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 현대예술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
에프라임 키숀 지음, 반성완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대학교 1학년 교양 영어 책에 실린 글 중 passionate few (열정적 소수)에 대한 것이 있었다. 우리에게 대단한 명작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들은 대개 식자층 또는 전문가라고 일컬어지는 극소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 의견이 반영된 것이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이 책을 읽다보니 20년도 더 전에 배운 그 내용이 생각이 났다. 현대 미술이라하면, 보면서 참 잘 그렸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금방 공감이 되기보다는, '저게 뭐지?' 하면서 제목을 보면, 작품 못지 않게 난해한 제목이 붙어있어 당황하고 마는 경험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이리라. 이럴 경우 우리들은 예술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탓하며 그냥 조용히 다음 작품으로 이동한다. "임금님은 벌거벗었다"라고 외칠 용기는 고사하고, 그것을 용기라고 생각지도 못하는 것이다.
저자는 예술을 제대로 공부한, 전문가의 편에 설 수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대 미술의 맹목적인 난해성을 한껏 비웃어준다. 일체의 규칙이나 관행을 무시하고 대중들을 안중에 없어하는 현대 예술을 신랄하고 유쾌하게 비판한다.
'...2년 전 독일은 마룻바닥을 산산조각 낸 거대한 홀을 출품함으로써 난센스를 다투는 이 경쟁에 참가하였다. 내 성스런 조국의 현대예술가들 또한 이에 질세라 새로운 기록 경쟁에 나섰다. 1994년 온갖 식물이 들어있는 온실 전체를 키부츠에서 비엔날레로 보냈는가 하면 또한 그 해에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하나의 공공 도서관을 통째로 베니스에 출품하였다. 내년엔 예루살렘 전체를 그곳으로 보내는 것이 어떨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26쪽)' 저자의 풍자에,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진정한 예술은, 관객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관객이 공감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공감하는 '척'이 아니라), 그림을 보는 관객에 의해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현대예술이 저지르고 있는 최대의 죄악, 그것은 바로 관객을 무시하고 경멸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순간적인 아이디어에만 의존하여 몇 시간도 걸리지 않아 만들어낸 작품 하나가, 기존에 보지 못한 창작물이라며 대중의 이해와는 상관없이 권위적 비평가들에 의해 맹목적으로 찬사를 받는 것을 보고 그 작품을 만든 예술가부터 웃음을 터뜨리며 그런 모순적인 예술 세계에 대해 맘껏 비웃어준다, 누구도 알 수 없는 더욱더 애매하고 모호한 작품을 또 다시 만들어냄으로써. 그것은 또 한번 기성 평가단이라 일컬어지는, 순수성을 상실한 권위적인 예술비평가라는 사람들에 의해 열광적인 찬사를 받는 아이러니. 여기에 휘둘리고 있는 것은 다만 조용하고 평범한 대중뿐일까.
보고 느낀대로 말하고 좋아할 수 있는, 아름다움으로 느껴지는 것이 곧 아름다운 것일 수 있는 순수성. 그것이 예술의 본질 아닐까.
아래 그림에도 나온, 현대미술이라 할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샘'이라는 작품 (보시다시피 이것은 변기이다. 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이.)을 만든 마르셀 뒤샹, 또 앤디 워홀, 대형 미국 국기를 있는 그대로 그려 '국기'라는 제목을 붙어 놓은 제스퍼 존스, 진짜 자동차 한 대를 거꾸로 세워 놓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부어 <신화자동차>라는 이름을 붙인 볼프 포스텔 등, 거물이라면 거물 급인 이 사람들이 이 책에서만큼 도마위에 오른 적이 있었을까. 이 책의 저자 에프라임 키손만큼 대놓고 '감히' 이들을 비판해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말이다.
저자의 예술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예전에 읽은 현대미술 관련 책들을 다시 꺼내어 들춰 보았다. 그 책들에 실린 작품들을 보며 나는 어떤 생각들을 했었던가. 그 밑의 해설을 읽기 전의 나만의 느낌, 나만의 생각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