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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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폐지 압축 공장에서 35년 째 일해온 한탸가 자신의 삶과 고독을 회고하며 진행된다. 

한탸는 폐지로 압축될 책들 속에서 철학, 문학, 예술을 발견하고 몰래 읽으며 뜻밖의 지적 세계를 쌓아가는 기회로 만든다. 하지만 그의 내면적 풍요로움은 외부 세계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점점 더 고립감을 느낀다.

자동화 공장이 도입되어 한탸의 작업 방식과 존재가 위협받는 시간이 왔고 자신의 삶이 더 이상 그 의미를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 그는 결국 자신과 책이 함께 압축되어 하나가 되는 결말을 택한다.


첫문장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 소설 내내 자주 등장한다. 그는 폐지 압축하는 일 속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이어나간다.

엄마가 죽었을때 내 안의 모든 것이 울었지만 막상 내게는 흘릴 눈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화장터를 나서자 한줄기 가느다란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가 어여쁜 모습으로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십 년째 지하실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해온 터라 나는 습관처럼 화장터의 지하 공간으로 내려가 보았다. 책들을 두고 하는 일을 거기서도 똑같이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신 네 구를 태운 참이었고 그 가운데 엄마는 세번째였다. 나는 꼼짝도 않고서 인간의 궁극적인 실체를 목격하고 있었다. (24)


나(한탸)는 은퇴후 자신과 압축기가 머무를 장소를 찾다가 외삼촌을 찾아간다. 기관사 일을 하다 은퇴한 외삼촌은 자기 정원에 오래된 작은 기관차를 갖다 놓고 사람들을 불러 모아 기관차 놀이를 하며 즐거워 하고 있었다. 그리로 다가가지만 아무도 한탸를 아는 척 하지 않았다.


와서 합류하라고 부르는 사람도, 한잔하고 싶은지 내게 묻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가 자신들의 놀이에 빠져 얼이 나가 있었다. 놀이라고 해봐야 그들이 평생토록 애정을 쏟았던 일의 반복에 불과했지만. 나는 카인처럼 이마에 표적을 지닌 채 걸어다녔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 어슬렁거리다가 그곳을 떠나며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가 나를 불러줄 수도 있었으련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문을 나서면서 나는 또 한번 뒤돌아보았다.

문가에 서있으려니 외삼촌이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외삼촌은 줄곧 나를 보고 있었고, 내가 나무들 사이에서 갈 곳 몰라할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조종 장치에서 손을 들어 묘한 몸짓으로 그저 대기를 진동시키려는 듯 손가락을 흔들어 보였다. 나도 어둠 속에서 그의 인사에 답했다. 서로 엇갈리는 방향으로 떠나는 두 열차에 탄 두 사람이 서로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는 모습이랄까. (32)

왜 그는 자기 이마에 카인처럼 표적을 지녔다고 생각했을까. 오랫 동안 고립되어 살아온 사람은 아마 자기 몸 어딘가에 카인의 표적 같은 것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구별이 되고, 그래서 사람들과 자기가 잘 섞이지 못하나 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나 보다. 카인의 표적이라면 원죄 같은 것, 자기 힘으로 없앨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일테니까.


그의 철학과 종교에 대한 지식은 예수와 노자를 비교하여 비유한 대목에서도 드러난다.

예수가 프로그레수스 아드 푸투룸 ('미래로의 전진'이라는 뜻)라면 노자는 레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 ('근원으로의 후퇴'라는 뜻)이라고. 비유는 그것이 다가 아니다. 


예수에게서는 상징과 암호로 이루어진 피 흘리는 현실이 읽혔지만 수의에 싸인 노자는 엉성하게 다듬은 들보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만 있었다. 예수는 플레이보이 같았고 노자는 내분비선이 고장난 노총각처럼 보였다. 예수는 오만한 손과 힘찬 몸짓으로 적들에게 저주를 내렸지만 노자는 체념한 사람처럼 팔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예수가 낭만주의자라면 노자는 고전주의자였다. 예수는 밀물이요 노자는 썰물, 예수가 봄이면 노자는 겨울이었다. 예수가 이웃에 대한 효율적인 사랑이라면 노자는 허무의 정점이었다. 예수가 프로그레수스 아드 푸투룸이라면 노자는 레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이었다 (59)

노자를 '내분비선 고장난 노총각'으로 비유한 것을 보고 나는 이 사람이 고립되어 고독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분명히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몇년 전에 방문한 프라하는 묘한 느낌의 도시였다. 착 가라앉아 있는 분위기가 팽배해있지만 음침하진 않았고, 부유해보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궁색해보이지도 않았다. 신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애잔한 멋이 있었다. 문학은 이런 데서 싹트는 것인가? 보후밀 흐라발은 프라하에서 공부했고 태어나기는 브르노에서 태어났다. 마침 브르노도 이때 방문했던 곳이라 반갑다.


보후밀 흐라발 자신의 생애가 이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속에 녹아 들어가 있다. 프라하의 카렐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나치에 의해 대학이 폐쇄된 뒤에는 여러 직업을 전전한다. 이 여러 직업 속에는 폐지 꾸리는 인부라는 직업도 포함된다. 후에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면서도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법조인으로 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시를 즐겨 쓰던 그는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첫 소설부터 금서로 출판 금지 되었다. 그는 공산주의 체제하에서도 끝까지 체코를 떠나지 않았고 체코어로 글을 썼다. 


소설 속 한탸가 일하고 먹고 자는 환경은 쥐과 파리떼로 둘러싸인 더러운 환경이었고 소장으로부터 일을 열심히 하라는 욕설을 인사처럼 들으며 지내지만 그에게는 폐지 속에 섞여 들어온 책을 발견하고 간직하여 읽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었다. 책은 고독의 피신처가 되어 주었고 외부의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사는 대신 책 속의 수많은 인물들과 교류하는 시간은 그를 고독과 소외로부터 구해주었다. 이런 와중에 대형 압축기의 등장은 그를 갈 곳 없게 만든다. 그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갸야할지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그런 그가 선택한 마지막 길이 가슴 아프다.

자신의 삶이 너무 시끄러운 고독 속에 있다고 느끼며 개인적인 고통과 사회적 억압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유와 살아가는 의미를 찾으려 했던 한탸는 현대 사회의 소외와 인간 본성이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으며, 현대 기술과 효율성의 논리에 의해 압도당하는 인간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한탸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을 꽉 채운 연민의 감정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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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12-05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목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반어적인 표현이지만 마음에 와닿는 것 같거든요.

hnine 2024-12-05 19:03   좋아요 0 | URL
페크님, 이 소설 참 좋아요. 혹시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 읽으셨는지요? 그 책과 비슷하면서 또 달라요.
이 책의 주인공이 그렇듯이 책은 고독으로부터의 가장 근사한 도피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리뷰 제목을 그렇게 달았다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 같아 바꿨지요.
 
신곡 - 지옥.연옥.천국 귀스타브 도레 삽화 수록본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귀스타브 도레 그림,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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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 읽었긴 하다. 애초에 천 페이지 넘는 책이라고 해서 부담이 갔던 것은 아니다. 전쟁과 평화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같은 책들은 분권되어 그렇지 전체 분량으로 치자면 이보다 분량이 더 무지막지 하지 않은가. 그리고 열린책들의 신곡도 처음엔 분권으로 나왔다가 개역판이 나오면서 이 육중한 파란책 한권으로 나온 것이다.

신곡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졌던 것은 그 내용이 어렵게 쓰여있어서 한 페이지 넘어가는데 오래 걸리는 그런 책이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것으로 치자면 나에게는 차라리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경우 더 했다. 

그럼 왜 신곡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을까. 아마 알라딘에서 같이 읽어봅시다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더 늦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시의 형태로 쓰여져 있어 오히려 읽기에 어렵지 않고 문장이 아름답기조차 하다. 

신곡 읽기에 넘어야 할 진짜 벽이라면 바로 역사적인 배경 상식이었다. 이탈리아라는 남의 나라의 정치, 역사, 문화에 대한 배경 지식을 웬만큼 갖고 있지 않은 한 아마도 신곡의 본문 보다는 주석 읽는데 더 시간을 들였을 독자가 나 뿐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같은 이름 아래 1세 2세 3세 등으로 달라지는 황제, 교황의 이름들, 이탈리아가 이탈리아 라는 하나의 나라로 통일되기 전 수십개 나라로 존재하던 시절부터의 역사와 정치, 그리스 로마 신화는 기본, 기독교 성경의 내용 등, 이 책에 인용된 배경 지식은 방대하였다. 주석 아니라면 아예 글자 읽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이 단테 알리기에리 한 사람이 쓴 것이라니 그의 방대한 독서양과 지식의 깊이에 놀랄 따름이다. 그것도 30대에 이 책을 쓸 생각을 하였고 완결하였다니. 아마 그가 순탄한 일생을 보내었어도 이런 대작이 나올 수 있었을까. 피렌체에서 영구 추방령이 내려져 다시 돌아올 시에는 화형에 처한다는 선고를 받았고 그렇게 떠돌이 생활이 시작되어 끝내 고국 피렌체로 돌아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대신 그는 이런 대작을 남겼다.


2. 지난 주에 모 대학 박물관 대학에서 '서양 중세 세계지도의 그림기호 읽기'라는 주제의 강의를 듣다가 알게 되었다, 13세기에서 14세기로 넘어가는 시점에 영국에서 만들어진 세계지도인 헤리퍼드 마파문디 (Hereford Mappa Mundi)를 보면, 지금의 지도 같은 지형적 정보를 주는 지도가 아니라 중세 세계관의 집합체가 그려진 '이념형 지도'였다. 여길 보면 이승 세계뿐 아니라 저승 세계까지 그려져 있고 신과 인간, 동물의 그림을 통해 죽음 이후의 심판과 구원이라는 주제의 이야기까지 담고 있다. 당시 신곡을 읽고 있던 나로서 이 대목에서 어찌 신곡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으랴. 강의 끝나고 질문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곧이서 단테의 신곡 이야기가 나왔다. 단테가 신곡을 쓸 무렵 (1308-1321) 중세에는 저승여행담이 유행하는 시기였다고. 

이날 강의에서 헤리퍼드 마파문디라는 지도 한장을 가지고 그 위에 빽빽하게 그려진 그림을 보고 해석하며 그것들이 의미하는 성경, 중세 역사,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 천국과 지옥에 대한 상상도에 대한 설명을 듣느라 2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저승 세계를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게 상상하여 나타낸 것은 단테만이 한 일은 아니었다.


3. 단테의 신곡이 다른 여러 작품을 제치고 더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저승 세계를 상상하고 실제 다녀오는 인물을 등장시키는 소설은 여럿 있다. 저승 세계에 대해 글로써 뿐 아니라 구체적인 그림으로 자세히 그려진 바 있다는 것은 위의 마파문디를 보며 알았다. 단테의 신곡이 더 독보적인 가치로 받아들여지는 근거는 무엇일까. 


 (1) 지옥이나 천국, 하나만 쓰지 않고 지옥, 연옥, 천국이라는 단계적이고 조직적인 질서를 부여하여 망라하였다.


 (2) 단테가 살았던 시대를 살고 있거나 살았던 실제 인물들을 대거 등장시켜 그들의 잘, 잘못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왜 죄가 되는지 설명하였다. 여기에는 단테의 개인적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 자기 고뇌와 희망, 시대적 상황을 신곡이라는 작품 속에 원없이 녹여내었다.


 (3) 처음부터 끝까지 시의 형태로 규칙적인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지옥 (1+33편), 연옥 (33편), 천국 (33편). 이렇게 100편으로 완성체를 이룬다.


 (4) 이 당시 학문과 문학의 언어였던 라틴어가 아닌 자기 고향 피렌체의 언어로 썼다. 이것은 아마 서울 표준어가 아닌, 경상도나 전라도, 충청도 사투리 그대로 작품을 쓴 것에 비유할까.


 (5)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시기에 완성되어, 이후에 오는 여러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6) 신, 인간, 어느 한쪽에 편중되지 않고 초월적 존재인 신과 한계를 가진 인간의 영혼이 구원을 통해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메시지를 담았다. 즉, 철학과 종교, 문학을 결합하어 탄생시킨 작품이다.


4. 마지막으로, 단테 자신이 이 책에 붙인 제목은 Commedia (희극) 이다. 책 뒤의 해설을 보니, 라틴어로 쓰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이 고상한 문체로 쓰여진 최고의 문학장르라고 생각한 반면 단테는 피렌체 민중의 언어인 속어로 썼고 저승 여행이라는 세속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Commedia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되어 있는데, 나중에 결국 보카치오가 Commedia 앞에 거룩하다라는 형용사를 붙여 거룩한 희극, 즉 La Divina Commedia 가 된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영혼은 신과의 관계에 의해 정화되고 구원될 수 있다는, 행복 가능한 결말에 대한 의지를 담았다는 의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세계적으로 평생 단테의 신곡만 연구하는 학자, 단테 학회, 영화, 문학, 그림 등이 가능한 이유가 충분히 이해되고 남는다. 



(TMI) 신곡을 읽는 동안 생긴 버릇: 어디서 서양의 역사적 인물 이름을 보게 되면, 

'가만, 그 사람이 죽은 후에 지옥, 연옥, 천국 중 어디에 갔더라?' (당연히 단테의 신곡 속에서의 이야기이다.) 하면서 생각이 안나면 신곡 책을 막 뒤져보고 확인해본다.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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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2-02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완독하셨군요! 저도 주석을 그냥 넘기면 내용 파악을 못할 것 같아 주석도 읽고 있습니다. 아직 지옥에 멈춰 있지만요. 저는 신곡 읽기 전에 나인 님의 이 글을 보게 되어 좋아요! 제 읽기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hnine 2024-12-02 20:34   좋아요 0 | URL
29일 걸려 읽었네요. 주석을 읽어도 이해안되는 부분도 있던걸요.
다락방님 천천히 읽으세요. 다 이해했다고는 못해도 읽고나니 생각보다 더 신곡이 여기 저기 많이 인용되는 것이 느껴지더라고요. 위대한 고전은 그 시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후대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fact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거 읽느라고 미뤄두었던 책을 이제 맘 놓고 읽어야겠어요.

페넬로페 2024-12-02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저의 행동을 평가할 때,
앗, 이러면 지옥인데, 연옥인데,
이러고 있어요
아무래도 천국은 영~~
완독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hnine 2024-12-02 20:39   좋아요 1 | URL
어머, 페넬로페님은 자아비판을... 그러지 마세요 ^^
죽어서는 모르겠고, 하루 동안에도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는 날도 있고 그렇잖아요.

주석 일일이 읽는 것이 좀 시간 걸려서 그렇지 신곡 읽기가 그렇게 어렵거나 지루하진 않아서 다행이었어요. 전체를 다시 읽을 일이 있을진 몰라도, 적어도 책을 펼쳐드는 일은 자주 있을 것 같아요. 누가 어디 갔나 확인하느라고요 ㅋㅋ

다락방 2024-12-02 21:17   좋아요 1 | URL
하하하하 이것도 재미있네요. 이러면 지옥인데, 이러면 연옥인데 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4-12-02 21:26   좋아요 1 | URL
저절로 그런 생각이 ㅋㅋㅋ

페크pek0501 2024-12-05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독을 축하합니다. 저도 엄두를 내지 못할 책이네요.ㅋㅋ

hnine 2024-12-05 19:09   좋아요 0 | URL
페크님, 절대 절대 엄두 못낼 책 아닙니다. 생각보다 읽을 만 하거든요. 주석 읽는게 귀찮을 뿐이어요. 언제 시간 나실때 시작해보세요. 저도 알라딘에서 바람 잡아주지 않았다면 섣불리 읽을 생각 안했을텐데, 이번 기회에 어쨌든 다 읽어서 후련합니다. 어서 읽고 다른 책 읽고 싶어서 꾹 참았다가 읽은게 위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 하고 <대놓고 다정하지 않지만> 이랍니다.
 







































연옥편을 마치고 천국편을 읽고 있다.

연옥부터는 지옥과 분위기도 많이 다르다.

벌의 종류와 벌 받고 있는 고통스런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져있던 지옥편에 비해 연옥과 천국은 훨씬 부드럽고 설명적이라고 해야할까.

지옥에서는 죄인들이 주로 등장한 반면 연옥에서는 시인, 음악가, 조각가 등의 예술가들이 많이 등장한다. 

지옥을 둘러보는데 만 하루를 보낸 단테가 연옥에서는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사흘 낮 사흘 밤을 보내는 것도 다른 점이다.

연옥 입구에서 단테는 이마에 일곱개의 P자를 새기고 출발, 일곱 둘레로 이루어진 연옥을 차례로 둘러보며 P자를 하나씩 지워나간다. 여기서 P는 '죄'를 뜻하는 'peccatto'의 첫 자이다.

연옥의 일곱 둘레는 맨 아래부터 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색욕의 둘레이고 맨 윗층은 지상낙원으로 되어 있다. 즉 죄를 다 씻은 영혼이 도달하는 곳이다. 지상낙원에서 단테는 그리폰을 만나고 (그리폰은 그리스도를 상징), 하늘에서 수레를 타고 내려온 베아트리체를 만나게 된다. 이제부터 천국으로의 길잡이는 베르길리우스가 아닌 베아트리체가 된다. 


뒤의 천국편에서도 단테가 머무른 시간은 만 하루. 연옥에서만 사흘을 머물렀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죄를 깨닫고 반성하여 구원의 기회를 부여하는 곳이 연옥인 것을 생각해보면, 영혼이 영구히 속할 곳이 이미 정해진 지옥이나 천국과는 다른 것이 이해가 된다. 


연옥의 모습을 요약해서 설명해주는 곳이 연옥편 제4곡중에 나온다.



그러자 그분은 말하셨다. "이 산은,

아래의 시작 부분은 아주 험하지만

위로 오를수록 덜 험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위로 오르기가 한결 가벼워져

마치 배를 타고 물결을 따라가듯이

이 산이 아주 기분 좋게 느껴질때면,


너는 이 길의 끝에 도달할 것이고

그곳에 고달픔의 휴식이 기다리니,

더 말하지 않겠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연옥편에는 단테의 환상이나 꿈이 자주 등장하는데, 분노의 셋째 둘레에 올라서서는 분노와 반대로 온화함과 자비에 관한 환상을 본다.



"오, 페이시스트라토스여, 우리 딸을

껴안은 저 대담한 팔을 처벌하시오."

그러자 왕은 너그럽고도 온화하게


평온한 얼굴로 대답하는 듯하였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을 처벌한다면,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       

                                 


제18곡에는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에게 자유의지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밀랍이 아무리 좋아도

모든 봉인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여기서 나는 단지 이성이 

보는 것만 너에게 말해 줄 수 있고, 그 너머는

신앙의 작용이니 베아트리체를 기다려라.



'이성'으로 설명이 안되는 것은 '신앙'의 몫이라는 뜻일 것이고, 신앙의 몫은 베르길리우스가 아닌 베아트리체가 해줄 것임을 예시한다.



너희들 안에서 붙타는 모든

사랑이 비록 필연으로 발생하더라도

너희에게는 그것을 억제할 능력이 있다.


그런 고귀함을 가리켜 베아트리체는

자유 의지라 부르니, 만약 그것에 대해

너에게 말하거든 마음 속에 잘 간직하라.



꿈에 그리던 베아트리체가 나타나는 장면이 연옥편의 끝부분 30곡에 나온다.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고 단테의 느낌은 어떠했을까?



다시 떨어지는 꽃들의 구름 속에서


하얀 베일에 올리브 가지를 두르고

초록색 웃옷 아래에 생생한 불꽃색의

옷을 입은 여인이 내 앞에 나타났다.


미처 눈으로 알아보기도 전에

그녀에게서 나오는 신비로운 힘으로

오래된 사랑의 거대한 능력을 느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벗어나기도 전에

이미 나를 꿰뚫었던 그 강렬한 힘이

나의 눈을 뒤흔들자마자, 곧바로 나는


마치 어린애가 무섭거나 슬플 때면

자기 엄마에게 달려가는 것처럼

믿음직한 왼쪽으로 내 몸을 돌렸고,



신곡을 처음 읽던 날, 지옥편 제1곡 첫 페이지와 지옥의 문에 써있던 글귀 다음으로 심쿵하는 대목을 오늘 '천국편'을 읽으면서 만났다. 과녁을 향하는 화살의 비유 부분인데, 이것은 천국편을 마저 다 읽고 쓰기로 하자.


천국편의 도입부부터 단테는 경고한다.

하늘나라에서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가능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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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11-23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옥도 연옥도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가득한 곳 같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hnine 2024-11-23 18:42   좋아요 1 | URL
아직 완독하기 전에 쓰는 이런 글은 조심스럽기도 하고 자신없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오늘은 지옥도 천국도 아닌 연옥이 지금 우리가 사는 이승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도 했지만 너무 넘겨짚는 것 같아서 좀 더 읽어보기로 했답니다. 아직 기회가 있다는 것, 영원히 머물 곳이 정해지기 전 오래 머물게 되는 곳이라는 생각에서요.

stella.K 2024-11-23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h님 글씨 멋지네요.
사진도 지성미가 흐릅니다. 그런데 쓰레기통은 뭔가 심오한 느낌도. ㅋㅋ

그런데 프사의 강아지 예전에 봤던 그 강아지 맞나요?
느낌이 좀 다른 거 같기도하고.
요즘엔 쓸쓸해서 그런지 가끔 다롱이도 생각이나고
업동이 반려견 한마리 키우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일부러는 못 기울 것 같고...
암튼 귀엽네요.^^

hnine 2024-11-23 22:57   좋아요 0 | URL
쓰레기통까지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편집하기 귀찮아서 그냥 올렸어요.
프사의 강아지, 예전에 봤던 그 강아지 맞아요. 제 눈에는 여전히 예쁘지만 예전에 올렸던 사진 찍었을때보다 나이가 많이 들었지요. 주인과 함께 나이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stella님, 다시 강아지 키워보세요. 웃을 일이 더 많아집니다 ^^
 
























'집'에 있어도 

'집'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For those who are looking for

'home' even if there is 'house'


시집을 펴자마자 보게 되는 이 문장과 비슷한 대목이 시 '멜버른에서 온 편지'에 나온다.


난 집에 있으면서도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해

왜냐면 여기가 내 집이 아니거든

근데 이젠 서울에도 내 집이 없어

우리 가족끼리도 다 뿔뿔이 흩어져 살잖아 웃기지?

이제 내가 가고 싶은 집은 없어 과거에 존재할 뿐이야.



집에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그곳이 볕이 아닌

빛이 드는 곳이라고 해도.


이런 시인의 말도 들어가 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스위트 홈에 대한 로망은 '행복'에 대한 염원만큼이나 추상적이고 일시적인 느낌일뿐, 그것이 살아가는 목표 자체가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집에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는 시인의 말은 집에 대한 로망을 내려놓겠다는 뜻이 아닐까. 난 그렇게 읽었다.



우리는 가만히 누워

티브이 속 다른 가족의 웃음소리에 귀 기울였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플라스틱 하우스' 중에서-


그래, 이것인지도 모르지. 이제 누가 행복에 대해서 물으면 이 싯구절을 인용해서 대답할까보다.

행복은 누군가와 티브이 속 다른 가족의 웃음소리에 귀기울이는 것, 그 시간이라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네 죄가 내 죄가 되는 그런 삶은 더는 싫어 


-'어쩌면 우리에게 더 멋진 일이 있을지도 몰라' 중에서-


네 죄가 내 죄가 되고, 내 기쁨이 네 기쁨이 되기도 하는, 그런게 가족이라고 옛날에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던가?

아니다. 네 슬픔이 내 슬픔이라고는 했을지언정 네 죄가 내 죄가 되는 것이라고는 안 했었지.


이 시집은 다 읽고도 책꽂이로 자리잡아 가지 않고 아직까지 내 책상 손닿는 곳에 두고 자주 들춰보고 있는 책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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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11-21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고도 아직 책상 손닿는 곳에 두고 자주 들춰보고 있는 책˝
흠. 읽어봐야겠습니다.이것 참, 관심 솟는 걸요!

hnine 2024-11-21 20:12   좋아요 1 | URL
Falstaff님도 좋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살던 곳에서 떨궈져


지붕 위에 주저앉아버린


저들


이제 누구의 집도 아닌 집에서 


얼마동안


노란 영혼으로 


머물다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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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1-17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가을이네요. 또 얼마 안 있으면 저기에 눈이 소복히 쌓이겠죠?
올해도 아직 한 달하고도 2주가 남아 있는데 왠지 다 갔다는 느낌도 드네요.

hnine 2024-11-17 23:03   좋아요 0 | URL
조금만 차를 타고 나가도 저렇게 빈 집이 눈에 많이 띈답니다.
노란 은행잎들이 저렇게 덮고 있으니 덜 황량해보였어요.
stella님 말씀처럼 곧 눈이 오면 은행잎이 덮고 있던 저 자리를 대신해주겠네요.
어제 카페에 들어갔다가 처음 캐롤송을 들었는데, 저는 전혀 실감이 안나더라고요.

자목련 2024-11-18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지네요 👍
직접 마주하면 묘한 기분일 것 같기도 해요.

hnine 2024-11-18 19:42   좋아요 0 | URL
지나가면서 자주 보는 집인데, 사람 안 사는 집은 음산해보이고 쓸쓸해보여 그런 맘으로 쳐다보곤 했는데, 며칠 전 지붕 위에 덮인 은행잎때문에, 어둔 곳 불이라도 켠듯 환해보였어요.
사진 정리하다가 제 느낌을 남겨보고 싶었답니다.
지방엔 저렇게 빈 집들이 참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