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에 장보고, 16일에 식혜와 나박김치 만들어 놓고, 17일에 나머지 설 차례 음식 모두 장만하여 18일 설을 맞았다. 한시라도 일찍 길을 나서는게 길이 덜 막힐터이므로 아침 7시 30분에 차례지내고 9시에 평택의 아버님 산소로 출발하기로 했다. 설날,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7시 30분엔 떡국까지 다 끓여 차례상까지 다 차려놓고 시동생 식구들을 기다렸다. 떡국 다 불어 어떻하나 하면서. 시동생, 동서, 아이들 도착한 시각은 9시.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도 없다. 아무튼 차례 지내고 (아버님, 어머님, 불은 떡국 드려 죄송합니다...) , 배가 고파서였는지, 생각보다 떡국 상태가 양호해서였는지, 떡국들을 잘 먹는다. 부랴부랴 대충 치우고, 산소로 출발. 당연히 차 막히는 길을 달려 산소에 도착. 날씨가 어쩌면 그렇게 포근하던지. 봄 기운이 완연한 흙을 밟고 걸으니 아침에 약간 상했던 기분은 잊고 일찍 봄을 느끼게 해준 설이 고마운 생각마저 들었다. 산소 앞에 앉아 싸온 과일을 깎아 먹고 있는 중 일곱살 아들, 할아버지는 어떻게 돌아가셨냐고 묻는다. '아프셔서 돌아가셨지...' 했더니, 병이 나서 돌아가셨냐고. 그렇다고 했다. "그럼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병으로 돌아가셨다는 말이 바로 '암'으로 연결되는 모양이다.
산소에서 내려와 이번엔 수지의 친정으로 향했다. 설이라도 시댁에 안내려가는 여동생 가족이 와있었다. 엄마와 두 딸이 부엌에서 부산하게 움직여 저녁을 차려 먹었다. 동생네 아이와 우리 아이는 거의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신나게 뛰어 놀고, 어른들은 이야기꽃. 역시 화제는 주로 한창 크는 아이들 이야기 이다. (며칠 전 집을 나갔던 다린이얘기가 물론 화제에 한 몫 했다) 집안이 어질러져 있는걸 못 보시는 아빠께서는 아이들 뒤를 거의 졸졸 쫓아다니시다시피 하시며 치우기 바쁘시고, 그러는 와중에도 엄마와 딸, 사위들에게 커피를 타다 날라주시는 우리 아빠. 너희들 온다고 엄마가 어제 하루 종일 음식 장만하느라 힘드셨다는 말씀을 몇번이나 하시는, 우리 아빠같으신 애처가도 없을 것이다 (모든 남편이 우리 아빠같은 줄 알았다가 달라도 너무 다른 나의 남편에게 아주 힘들게, 억지로, 마구마구 자신을 적응시켜가고 있는 사람, 여기 있다.)
9시쯤 되어 여동생네는 집으로 가고, 우리는 하룻밤 자고 오늘 아침에 대전 집으로 내려 왔다. 오자 마자 남편은 할일이 있다며 일터로 가고 나는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는 심심해를 연발하고 있고...
결혼한 여자들에게 참으로 끊이지 않는 화제를 제공하는 명절을 보내고,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한다. 그냥 좋은 휴가였다고. 시댁에 미리 가서 지시 받아가며 일하느니, 누가 도와주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음식 장만하여 우리집에서 차례 모시는 나는 행복한 사람 아니냐고. 더구나 이번 설은 날씨까지 좋아 봄 나들이도 이런 봄 나들이 없지 않았나 하고...
그러면서도 이제 추석까지는 상 차릴 일 없음에 홀가분해하는 나, 보통의 며느리 맞다 ^ ^

---방치했던 화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미안함과 함께, 때가 되길 기다려 본분을 다함을 배운다. 어찌 되었던 살고 볼일이라고, 저 히아신스도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