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층
오사 게렌발 지음, 강희진 옮김 / 우리나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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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인간이면서 과연 인간 본성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될 때가 있다. 폭력과 학대의 대상이 적이 아니라 바로 연인, 자기가 낳은 자식이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볼때이다.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어느 민족, 어느 계층에 국한된 일도 아니며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유가 뭘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라고 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성장과정에서 어떤 결정적 결핍 또는 회복안될 상처가 있었기에 이런 극단적 행동 이상을 보이게 되는 것일까.

스웨덴에서 잘 알려진 여성 만화 작가인 오사 게렌발의 <7층>도 이런 생각을 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1973년생, 올해로 48세인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한다.

첫 장면은 주인공 '나'가 집을 떠나 예술 학교에 입학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부모 곁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학교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혼자라는 새로운 자유를 만끽하는 생활을 시작한다. 어느 날 파티에 참석했다가 너무나 이상적으로 보이는 남자 친구를 사귀게 되는데, 그는 나의 모든 우울과 불안과 실패를 잊게 해주고 과거야 어떠했든 내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걸 도와주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제목 <7층>은 나와 남자친구가 함께 살기 시작한 아파트의 층 수를 뜻한다.

그러던 남자 친구가 가끔 이상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다. 나의 사사로운 행동을 지적하며 이유를 따져묻는가 하면 이런 건 하지 말라며 윽박지르기도 한다. 그의 비상식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은 더욱 잦아지고 신체적 폭력까지 가하는 일이 벌어지자 나는 점점 견디기 어려워지고 보이지 않는 족쇄에 채워져 그 끝을 남자 친구가 쥐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살게 된다. 비슷한 상황에서 많은 여성들이 이런 상태로 상당한 시간을 끌게 되는 것에 반해 주인공 나는 이대로 버티는데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용기를 낸다.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 선언하고 함께 살던 집에서 나와 부모님 집으로 옮겨온 것이다. 혼자 견디고 삭히는데서 벗어나기 위한 이러한 행동은 좀처럼 여성들이 결단못하고 있는 단계이다. 그런 결단을 어렵게 해봤자 그것이 시원한 해결점이 되리라는 기대 대신 남들이 믿어주지 않는채 자신의 결점 폭로에서 그치고 말거라는 불안감, 즉 나의 행동이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의심과 불확신때문이다. 이런 의심과 불확신에는 사회적 책임이 있다. 우리는 그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우리도 그 책임을 나눠가지는 것이 맞다.

남자 친구의 비정상적인 행동과 물리적 폭력을 고발하고서 주인공 나는 또한번 시련을 경험한다. 반복되는 경찰 조사는 물론이고 스스로 재건의 고된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난 그야말로 난파선과도 같았다.

내 자존심은 산산이 부서졌다.

나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조차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73쪽)

 

그동안 서서히 잃어온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작업이 쉽고 즉각적일리 없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그보다 더 노력의 가치가 있는 일이 있을까? 그녀는 서서히 스스로 재건되어 갈 것이다. 정작 문제는 그녀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노력 유무가 아니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 말해준다.

 

하지만 언젠가 또 어디에선가 계속해서 그를 마주치게 되리라. (79쪽)

 

이 사회에는 전 남자친구와 같은 남자가 어디든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여자가 지금도 주인공 '나'가 겪은 일을 겪고 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겪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회에 아직 우리가 살고 있음을 일깨우는 저자의 경고의 말이다.

오사 게렌발은 개인적인 불행과 시련의 경험을 침묵으로 억누르지 않고 그 침묵을 깨고 나와 이후의 삶을 자신만의 방법인 그림과 글로서 사회를 일깨우는데 일조 하며 살고 있다. 사회에 일조는 물론이고 오사 게렌발 개인적으로도 훨씬 가치있는 삶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조금씩 바른 방향으로 전환해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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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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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은지 오래 되었지만 작품은 이번에 처음 읽어보았다. 한국소설에 대한 내 관심이 예전에 비해 수그러들어서 인기있는 신간도 놓치고 지나가거나 뒤늦게 겨우 읽어오고 있는데, 우연히 백수린 작가의 인터뷰를 몇개 듣다보니 이 작가는 한국의 비슷한 연령대 (30~40대)의 다른 작가들과 구별되는 뭔가가 확실히 있는 것 같다는 감을 잡게 되었다. 내가 어림짐작하는 한국 소설은 둘중 하나인데, 시종일관 진지하고 묵직하고 암울한 주제의 소설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유머러스, 시니컬 코드를 작정하고 쓴 소설.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백수린의 이 소설은 진지 모드로 일관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풍자적, 희극적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의 어림짐작 한국 소설 분류는 이제 갖다 버려야겠다. 한마디로 백수린의 소설은 쓱쓱 잘 읽힌다. 읽어나가는데 막힘이 없이 페이지가 쓱쓱 넘어간다. 그런 책을 좀 읽고 싶어 고른 책인데 제대로 잘 선택했다 싶었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았다.

첫째, 이야기가 대체적으로 시간순으로 진행된다. 현재 상황으로 시작했다가 어느 새 20년전 장면으로 이동하여 진행했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시제를 왔다 갔다 하며 진행되는 방식은 요즘 소설에서 많이 보는 구성인데 복잡하고 치밀해보여 작가들은 즐겨 쓰는지 몰라도 읽는 사람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읽게 되기 마련이다. 그에 반해 백수린의 여기 포함된 작품들은 그저 평이하게 흘러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과거 장면으로 넘어갈땐 모호하게 처리하지  않고 웬만해선 독자가 혼동하지 않을 정도의 언급을 하고 넘어간다.

둘째, 급반전이 거의 없다. 무리한 결말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평이하게 이야기를 맺는다. 긴장할 필요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읽는 동안 지루하거나 읽고난 후 시시하다고 느끼지 않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끝까지 독자의 흥미를 붙잡는데 반전이 꼭 필요한건 아님을 오랜만에 깨우쳐주었다.

셋째, 주인공들의 성격이 그야말로 소설에서나 볼 수 있을 유별난 성격의 소유자라기보다 오히려 평범에 가까운 인물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간의 궤적>의 주인공은 프랑스에서 지내는 동안 알게된 선배 언니와 한때 같은 궤적의 시간대를 보내지만 그 궤적이 영원히 같을 수는 없다. <여름의 빌라> 역시 타국을 배경으로 한다. 주아와 남편은 주아가 오래전 배낭여행할때 알게 된 독일인 부부의 초대를 받아 이들 부부가 머물고 있다는 캄보디아에서 잠깐의 여름 휴가를 함께 하는데, 캄보디아 빈민을 보는 독일인 부부와 주아 부부 네 사람의 입장은 같지 않다. 비록 빈민이지만 평화로워보이는 모습 앞에서 누구는 아름답다 느끼고 누구는 불편하다. 불편한 사람은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까지 불편하다. <고요한 사건> 이라는 제목처럼 백수린의 작품 속 사건들은 대체적으로 '고요하게' 벌어진다. 폭행당해 쓰러진 고양이 아저씨와 죽은 고양이를 보고 놀란 주인공은 자기의 아버지만은 그 상황을 해결해줄거라 믿고 달려와 도움을 청했지만 그것은 그저 고요한 사건으로 침묵 속에 지나가게 방치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아주 잠깐 동안에> 역시 <고요한 사건>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의 기대되는 행동과 실제 행동의 간격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하고, <폭설>에서는 폭설이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모든 계획이 틀려져 버리고 속수무책이 되지만 성숙과 깨달음의 기회를 제공받는 것은 이런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가진다는 <흑설탕 캔디>는 독자 역시 오랫동안 인상에 남을 작품이 아닐까 한다. 화자가 주인공이 아니라 화자의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화자는 다만 할머니를 기억하고 재해석하는 주체일 뿐. 단순히 노년의 연애 감정을 말하려고 한게 아니라 노년에도 인생에는 예기치 않은 사건이 고요하게 일어날 수 있으며 그것은 관습과 통념으로 자신을 중무장하고 있지 않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는 어느 외국 여성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쓰게 되었다는 백수린 작가 설명이 있었는데 한나절 잠깐 동안의 변화, 그 변화를 경험한 엄마를 어린 아가의 눈을 빌어 마무리하였는데, 평상시와 다른 아름다움이 낯설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고 표현한 작가의 속마음을 독자가 읽어내고 감탄하고 있다는 것을 작가도 알까?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은 소소해보이는 일들, 극적이지 않은 사건들인데 그것을 가지고 소소하지 않은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역량을 또한번 확인시켜준다.

우리의 삶은 시간의 궤적을 남기며 진행해가고, 잠시 머무는 여름의 빌라 같은 것이며 고요한 사건의 연속이다. 인생 이제 기대할 것 없다는 회의주의 틈틈이 흑설탕 캔디를 기대하며 살아도 좋은 인생이다. 여기 실린 모든 작품들은 그렇게 우리의 삶을, 인간이 만들어가는 세계, 작지만 전부인 세계를 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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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9-22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못 읽어본 작가인데 hnìne님글 보니 또 관심이 가네요. 자꾸 보고싶은 책들이 늘어서 큰일이예요. 오늘 하루도 건강하고 좋은 날 되세요

hnine 2020-09-22 22:52   좋아요 0 | URL
가독성 좋은 책이 필요한 시기에 읽으면 딱 좋을 책인 것 같아요. 무리없이 재미있더라고요.

난티나무 2020-09-22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록에 추가합니다.^^

hnine 2020-09-22 22:54   좋아요 0 | URL
이 책 읽은 후 저도 이 작가의 다른 책 바로 한권 주문했답니다.
 

 

 

 

'전북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로 191 내소사'

 

네비게이션에 이렇게 입력하고 2시간 정도 달렸습니다.

來蘇寺. '이곳에 다녀가신 이들 모두 새롭게 소생하라' 는 뜻이라고 합니다.

신라시대 지어졌으나 임진왜란때 모두 불타고, 조선시대 인조때 다시 지어진 절.

본사인 고창 선운사의 말사랍니다.

 

 

 

 

 

 

'능가산내소사'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일주문을 지나면 매표소가 나오고,

매표소 지나면 바로 600m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이 나옵니다.

 

 

 

 

 

 

 

20분정도 걸어요.

 

 

 

 

 

 

 

 

전나무 잎은 이렇게 생겼답니다.

태풍때문에 떨어져있는 나뭇가지가 많았습니다.

뾰족하게 위로 솟아있는 모습이 꼿꼿해보이지만 전나무는 뿌리를 깊게 못내려 보기보다 약해서 강풍에 잘 부러진다고 해요.

구불구불한 소나무가 보기보다 잘 버티는 것과 대조적이지요.

 

 

 

 

 

 

 

 

전나무길과 함께 내소사 들어가는 길은 이 상사화로 유명하지요.

잘 알려진 붉은색 상사화가 아니라 노란색 상사화랍니다.

정확한 이름은 '붉노랑상사화'라고 안내판에 써있더군요. 붉은 빛을 띤 노란색이래요. 꽃색깔은 연한 노란색이지만 직사광선이 강한 곳에서는 꽃이 붉은 빛을 띠게 된대요.

왜 상사화인지는 아시죠?  잎이 다 사라진 다음 꽃이 피어서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해 서로 사모하기 때문이라고요.

 

 

 

 

 

내소사의 두번째 문인 천왕문을 지나면 바로 이 느티나무를 만나게 됩니다.

자그마치 1,000년 된 나무랍니다. 100년도 아니고 1,000년이라니.

 

 

 

 

보통 사찰을 대표하는 세개의 문이 첫번째 일주문, 두번째 천왕문, 세번째 불이문인데 내소사에서 불이문에 해당하는 것이 이 봉래루라는 누각이라고 합니다. 불이문(不二門). 속세와 구별되는 부처의 세계에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봉래루 기둥입니다. 모양, 크기 제각각 돌. 그러면서도 균형 잡고 당당하게 주춧돌 역할을 해내고 있어요. 전 이런게 재미있어서 꼭 사진에 담아옵니다.

 

 

 

 

 

 

 

드디어 대웅보전을 만납니다.

크지 않고 소박해보여요 (정면 3칸, 측면 3칸). 단청이 없어 더 그렇게 보이는지.

쇠못 안쓰고 목재로만 지었답니다.

 

 

 

 

 

 

대웅보전 내부입니다. 가운데 석가모니, 왼쪽이 문수보살, 오른쪽에 보현보살을 모셨습니다.

뒷편의 후불벽화가 '백의관음보살좌상' 이라고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백의관음보살상으로 유명하다는데 저는 아무리 봐도 백의(白衣)가 아닌 듯 하여 갸우뚱갸우뚱하다 왔답니다.

천장의 무늬와 조각도 아름답지요.

 

 

 

 

 

 

 

우리 나라 장식무늬의 최고봉이라는 대웅전 꽃문살입니다.

 

 

 

 

 

 

 

 

 

 

 

 

 

 

 

 

 

 

 

 

 

 

 

 

돌아나오는 길.

 

 

 

가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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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0-09-19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에요 나인님 ^^ 전주 살 때 열댓번은 갔었는데 이렇게 또 마주하니까 또 달려가고싶네요

hnine 2020-09-20 00:20   좋아요 0 | URL
수연님도 좋아하는 곳이군요. 전주에선 얼마나 걸리는지. 전 전북이니 제가 사는 대전에서 2시간까지 안걸릴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걸리더라고요. 저는 종교와 상관없이 절에 가보는걸 좋아하는데 산을 끼고 있다는 것도 좋고, 무엇을 보고 올지 대충은 예상을 하고 갈수 있다는 것이 좋고, 정작 가보면 꼭 그렇지 않고 그 절만의 특색을 발견하는 것도 좋고요. 한국 건축으로서의 절을 관찰해보는 것도 좋아요.
아무리 그래도 수연님처럼 한 절을 그렇게 여러번 가본 곳은 없어요. 내소사가 그런 곳이구나, 다시 보게 되네요.

막시무스 2020-09-19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 봄에 한번 다녀왔었는데 다시 보니 느낌이 새롭내요! 특히 저 느티나무와 창문의 꽃살이 참 아름다웠다는 기억이 새록하니 떠 오릅니다! 즐건 주말되십시요!ㅎ

hnine 2020-09-20 00:37   좋아요 0 | URL
봄에 다녀오셨군요. 봄의 내소사는 어땠을까요. 느티나무와 꽃문살은 저도 내소사 하면 자동적으로 함께 떠오를것 같아요. 입구의 전나무길도 그렇고, 오래된 나무들이 많아서 내소사의 반은 오래된 나무들이 대표한다는 느낌까지 들었답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전나무길의 피톤치드를 만끽하지 못한게 아쉬웠으니 적어도 한번은 더 갈 것 같아요.

바람돌이 2020-09-19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내소사를 보내요. 특히 저 전나무길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곳이예요. 특히 겨울의 저 길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제가 사는 곳에서는 내소사가 참 먼곳인데 다시 가보고싶네요. 가을의 내소사는 간적이 없었구나 싶어서요

hnine 2020-09-20 00:44   좋아요 0 | URL
겨울의 전나무길, 안가볼수 없겠어요. 초록의 전나무길이 겨울에 눈까지 쌓여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제가 에너지가 좀 남았더라면 내소사 근처의 개암사와 곰소염전도 둘러봤을텐데, 이제 하루에 두탕을 못뛴답니다 ㅠㅠ
내소사 입구에 맛있어보이는 식당들도 많던데 코로나때문에 그냥 패스하고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서 야외에서 먹어야했던 것도 아쉽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을의 내소사, 소박하고 고즈넉했어요. 좋았습니다.

바람돌이 2020-09-20 00:59   좋아요 0 | URL
개암사도 좋지요. 내소사에 비해 더 고즈넉한 분위기죠. 전나무 숲길을 뺀다면 전 개암사를 더 좋아해요. ^^

Falstaff 2020-09-20 10:41   좋아요 0 | URL
불경스런 말씀이지만, 개암사는 무겁더라고요. 절집 전체에서 둔중한 분위기가 속인을 압도해버린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이 기억 역시 30년 쯤 묵은 것이라 지금 하고는 많이 다를 겁니다만.
오랜만에 머리 속에서나마 부안 구경 잘 했습니다.
곰소항에 들러 ˝묵혀서 썩히면 썩힐수록 제 맛이 살아나는, 때론 몰래 맛보소 싶은 그대, 첫사랑처럼 코끝이 싸한 맛, 한때 그대가 살았던 수심 깊은 내 가슴의 바다에서 쏴아아 눈물 끌어올려 내 눈자위를 적시고 바삐 사라지는 가오리과의 홍어˝회 한 점도 자시고 오셨으면 더 좋았겠습니다. ㅎㅎㅎㅎ
따옴표 속의 글은 박백남의 시 <홍어>를 인용했습니다.
 

 

 

한바탕 태풍이 휩쓸고 지나고 난 다음날 산책길.

나뭇가지가 부러져 길을 막고 있는 곳도 있고 (이런 곳은 할 수 없이 돌아서 걸어가야했다)

아직 파란 밤송이들이 길에 마구 떨어져 있었다.

 

 

 

 

 

 

 

 

 

 

 

 

 

아직 새파란 감.

 

 

 

어제 TV에서 보니, 태풍으로 나무에서 떨어져 바닥에 뒹구는 사과들을, 새가 먹고 짐승들이 먹고 상처가 나서 땅바닥에서 부패해가고 있었다

이렇게 부패가 진행되게 그냥 두면 안되고 모두 모아 땅 속에다 매립 처리를 해줘야 부패균이 더 이상 다른 사과들이나 작물들에 퍼지지 않는단다.

땅에 구덩이를 크게 파고 1년 동안 열심히 농사지은 사과들을 무더기로 매립하는 농부님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길 하나 뒤로 가니 이런 카페가 있다.

자작나무 잔뜩 있던 카페.

 

 

 

 

 

 

 

 

 

 

 

 

 

 

 

 

카페 들어가는 문 위의 캐노피에도 자작나무가 이용되었다.

들어가 앉아보고 싶었지만 구경만 하고 커피는 테이크아웃해왔다.

 

 

 

 

 

 

녹슨 문과 문을 덮고 있는 덩쿨.

 

 

 

 

 

 

 

사흘 전 저녁 산책 하며 알아차렸다.

'이제 여름 끝, 가을 시작이로구나'

 

이번 여름,

짧았다.

코로나 앞에 여름 마저 기 한번 못펴고 지나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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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9-16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묘해요. 그렇게 5백년된 나무가 태풍에 부러졌다는데 감은 저렇게 붙어있기도 하니 말여요.
제 방 창문 열면 대나무가 보이는데 그것도 안 쓰러졌어요.

hnine 2020-09-16 19:45   좋아요 0 | URL
500년 되었다는 건 나이가 500살. 많이 늙었죠. 날이 갈수록 버틸 힘도 줄어들거고요.
그에 비하면 감은 아직 젊고 힘도 있겠죠? (슬퍼지려고하네요 ㅠㅠ)
대나무는 속이 비었으니까, 이런 바람에 더 잘 버틸지도 몰라요.
방 창문 열면 대나무가 보이다니, 특이한 배경이네요.

바람돌이 2020-09-16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떨어져있는 저 밤송이들이 안타깝네요.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요

hnine 2020-09-17 08:56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대로도 더 익을수 있을지.
세찬 바람에 가차없이 밤송이 떨어지는 장면도 상상해보게 되고, 그런거보며 자연이 푸근하게 감싸안아주는 이미지로써보다 무섭고 예외없다는 경고로도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페크pek0501 2020-09-17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로나 앞에 여름 마저 기 한번 못펴고 지나간 느낌이다˝ .- 정말 그런 듯합니다.



hnine 2020-09-18 21:41   좋아요 0 | URL
이번 여름이 예년에 비해 덜덥긴 했죠.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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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말 참 많이 듣고 자랐고 이제는 공부하란 말 많이 하며 산다. 공부가 좋다면 스스로 하면 되는데 주로 내가 하기보다 남에게 하라고 시킨다. 대상은 대개 자녀. '공부만한 투자가 없다', '평생 공부다', '공부하는 사람 못따라간다', 판에 박힌 잔소리를 할때 보통땐 듣고 마는 자녀가 어느날 "그러는 엄마는 대체 공부가 뭐라고 생각하시는데요?" 라고 되묻는다면 대답할 한마디 근거라도 마련해놓고 있을까? 정말, 공부란 무엇일까.

<아침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서 명쾌하고 소신있게 강의아닌 강의를 펼쳐주던 저자가 이번엔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무엇을 깨우쳐주려고 하나 기대하며 책장을 열었다.

책을 다 읽고난 소감은, 이런 표현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책을 참 맛있게 읽었다는 느낌이다. 맛은 없지만 몸에 좋다는 음식을 먹었을때와도 다르고, 맛도 없고 몸에도 안좋은 음식을 혹시나 하며 끝까지 먹었을때 느낌도 아니며, 맛은 좋아 다 먹었다만 첨가물 잔뜩 들어 맛을 낸 음식과도 달랐다. 옳은 말이지만 세상에 던지기 어려울수 있는 말, 공부하란 말을 학생들이 아닌 일반인들에게 과감하게 던질 수 있는 소신, 다독가이다보니 판에 박히지 않은 다양한 비유, 지식 충전으로 나이를 거슬러가보자는 자체적 해석, 이런것들이 만들어내는 '맛'인가보다.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을 때 충만한 것은 거품같은 공허뿐이다.

생각할수 있는 근력이 없기에,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대신해줄 강력한 타자를 갈구한다.

장기적인 것, 공적인 것, 엄정한 것을 추구하기 보다는 말초적인 욕망의 충족과 단기적인 이익의 추구와 근거없는 인정욕구가 남발하게 된다. (13쪽)

 

자녀들에게 잔소리하고 싶을때, 다른 사람 일에 참견하고 싶을때 읽어보면 좋을 대목이다. 생각할 수 있는 근력, 생각의 척추기립근, 이런 말은 저자의 책에서 인상적으로 남는 말들 중 하나이다.

 

어떤 신문 기자가 등반가 라인홀트 메스너에게 물은 적이 있다.

"당신이 낭가파르바트 설산을 오르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요?"

메스너는 대답했다. "그렇게 묻는 당신의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의 대답에는 보통 사람이 쉽게 가지기 어려운 어떤 청춘의 기립근 같은 것이 느껴진다. (87쪽)

 

얼마전에 읽은 메스너가 여기서도 나와 반가왔다.

기립근. 똑바로 설 수 있게 하는 근육, 힘. 메스너의 이 대답은 김영민 교수의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 이용된 대답과 비슷한 맥락이다. 추석날 가족들 모인 자리에서 잔소리 하는 어른께 추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되물어보라던.

 

공부라고 할때 우리는 곧바로 성실성을 함께 떠올린다. '주기적으로 정해진 일을 하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한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의 말은 곧 성실성을 강조한 말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한가지를 더 보태어 강조한다. 성실성 더하기 창의성이다. 이제 모범생의 자세로만은 부족하다면서 창의적이 되라고 한다. 창의적이기 위해 용기와 유연성이 중요한 이유는 나이가 들수록 관습적이 되기 쉽기 때문이고, 관습에 의존하게 되는 이유는 관습에 의존할수록 에너지 소비가 덜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창의성은 무에서 유를 탄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다른 두 생각을 연결시킬때 생겨난다는 아시모프의 말을 인용하면서.

예상하다시피 엄청난 독서가이기도 한 저자는 서평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도 써놓았는데, 서평과 독후감의 차이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책에 삽입되어 있는 그림들은 내용과 어떤 관련성이 있나 읽으면서 궁금했다. 책 뒷편에 인터뷰 내용을 보니, 아침에 일어나 페이스북에 그림 한장 올리고 자기 전에 음악 링크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고 한다. 그림은 아마 그렇게 본인 페이스북에 올렸던 그림들을 책에도 포함시킨게 아닌가 싶다.

 

단테의 <신곡> 첫부분이 이렇게 된다며 인용하였다.

"인생을 절반쯤 살았을 무렵, 길을 잃고 어두운 숲에 서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 거칠고, 가혹하고, 준엄한 숲이 어떠했는지는 입에 담는 것조차 괴롭고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죽음도 그보다는 덜 쓸 것이다."

 

인생을 절반쯤 살았을 무렵의 나이가 되어 이 대목을 읽으니 이렇게 공감갈 수가 없다. 이 나이 정도 되면 저절로 살아질 줄 알았던 철없던 시절이 있었다.

이 대목이 책 중에 두번이나 나오기에 아직 안읽었지만 집에 갖고는 있는 단테의 신곡을 꺼내다가 위의 대목만 원문으로 읽어보았다.

 

 

 

 

 

그래서, 공부란 무엇이란 말인가.

공부란, 그저 살기만 하지 않는다면 그에 더해지는 모든 활동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내 생각이다 현재로서 할 수 있는.

계속 고쳐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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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9-16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감있는 손글씨가 좋아요. ^^
저는 초딩글씨라서 손글씨는 아무데도 못내놔요. ㅎㅎ 저는 요새 그냥 사는게 다 공부겠거니 해요. 그래서 자꾸 관성에 빠지나싶은데 이 책을 읽으면 좀 나아질까요?

hnine 2020-09-16 19:20   좋아요 0 | URL
정감있게 봐주시니 그런가봐요. 고맙습니다. 요즘 손글씨 내놓을일 없잖아요.
(천재는 악필이래요)
이책보다 먼저 나온 <아침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이 더 낫다고 하신 분들도 많아요. 저는 그책도 좋았고 이 책도 좋았어요. 지금도 아마 다음 책을 쓰고 계실듯해요. 코로나 사회적 거리 두기를 이런 분들은 아주 유익하게 이용하고 계시더라고요.

다락방 2020-09-16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체 정말 좋아요, 나인님.

hnine 2020-09-16 19:23   좋아요 0 | URL
참고로 저는 <쓰기>라는 교과서와 과목이 있던 때에 초등학교 (국민학교)를 다녔답니다. ㅋㅋ
요즘은 손글씨 쓸일이 예전보다 거의 없지요. 얼마전엔 친구 생일인데 어디 한번 생일 카드를 손으로 써서 우편으로 부쳐볼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필체 좋다고 해주시니 기분 좋아요.

kpio99 2020-09-16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씨 잘 쓰시네요.

hnine 2020-09-16 19:24   좋아요 1 | URL
영어요, 한글이요? ^^ 농담입니다. 잘 쓴다고 해주셔서 고마워요.

수이 2020-09-16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절반 정도 살지 않은 거 같은데 느낌상 딱 절반까지 왔다, 이제 딱 절반 남았다, 정말 말 그대로 딱 중년이로구나 그런 느낌이 들어요. 계속 고쳐나갈 것이다_ 그게 어쩌면 적확한 공부의 정의가 아닐까 싶어요. 이전 책에 비해서 저는 감흥이 좀 덜했는데 다시 읽으면 좀 달라질까 싶어요. 아 그리고 한글도 영어도 진짜 잘 쓰세요! 나인님, 실로 멋져서 한참 보았어요 필체 사진 :)

hnine 2020-09-17 09:02   좋아요 0 | URL
성인이 된 후의 독서는 새로운 지식이나 생각을 알아가기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고 동의하고 있는 것들을 더 공고히 하는데 이용된다는 말 있잖아요. 이미 만들어놓은 벽을 더 탄탄히 만드는거죠. 그러다가 latte가 되어가고, 흑흑. 계속 고쳐나갈 각오를 해야할 것 같아요. 지금 아무리 확실해보이는 사상이나 생각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 있는 자세를 지키고싶답니다.
글씨체 칭찬 감사합니다. 여러분들 칭찬받고서 으쓱해가지고 앞으로 자주 올리게 생겼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