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라면 의례 구불구불한 소나무에 익숙해 있다가

위로 쭉쭉 곧게 뻗은 모습이 새롭고 낯설었다

마치 미술시간에 선긋기 연습해놓은 페이지를 펼쳐보는 듯

한치 구부러짐도 없이 수직으로 뻗은

갈색도 아닌 하얀색 나무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곳에 와있는 것 같았다

 

 

 

- 2020년 1월 20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원대리 자작나무숲길 -

 

 

 

 

 

 

 

 

 

 

 

 

 

 

 

 

 

  • 위치: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원남로 760 자작나무숲길
  • 면적: 25ha
  • 주요수종: 자작나무
  • 관리주체: 산림청 인제국유림관리소

 

 

 

 

 

원래 소나무숲이었다.

솔잎혹파리 피해가 심해 소나무를 베어내고 1989년에서 1996년까지 약 70만 그루의 자작나무로 조림했다.

현재 20~30년 생의 자작나무 41만 그루가 밀집해있다.

봄과 가을 두 차례 산불조심 입산 통제 기간이 있다.

 

 

 

아주 힘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만만하지도 않은 길 

두어 시간 트레킹 코스로 좋다.

눈이 오면 좀 더 준비를 잘 해가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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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3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20-01-13 15:25   좋아요 0 | URL
언제부터 가고 싶었는지 모르는 곳인데 어제 드디어 다녀왔어요. 방학이라 집에 와있던 아이를 보내고 아무래도 마음이 좀 썰렁하기도했고요.
눈이 별로 없고 춥지도 않아서 걷기는 좋았지만 사람 욕심이 또 그렇지 않지요. 눈이 하얗게 덮였더라면 더 멋있었을거라는 욕심도 부려봤어요.
강원도는 확실히 지도상에서 보는 거리보다 더 넉넉히 시간을 잡아야 한다는걸 다시 한번 확인하였답니다. 다른 곳도 들러오면 좋았을것을 바로 집으로 돌아왔는데도 어둑할때 들어왔어요.
하얀 색 나무라서 숲의 뼈라고 했을까요, 아니면 곧고 마른 몸매무새 때문에 뼈에 비유했을까요. 공감가는 표현이어요.

2020-01-13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20-01-13 23:21   좋아요 0 | URL
40만 그루가 어느 정도인지 저도 안내판에 써있어서 알았지 숫자만 보고는 어느 정도인지 짐작 못하지요.
입장료 따로 없이 누구나 들어가게 한다는 것이 새삼스러웠어요. 집에서 가까운 계룡산 올라갈때에도 꼭 입장권을 내야했거든요.
강원도로 들어가면 벌써 산세가 다름을 느끼는게, 보이는 산 뒤에 또 산이 겹겹이 있거든요. 경사도 가파르고.
모든 여행은 떠나기 전에 망설여져서 그렇지 다녀오고 나면 후회는 안하는 것 같아요. 나의 세계가 조금 더 넓어진 느낌이랄까요.

순오기 2020-01-16 0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새해맞이는 잘 하셨나요? 다린군은 이제 청년이 된 건가...^^
한겨울 자작나무 숲을 보고 오셨다니 부럽네요~♡
저는 18년 가을 원대리에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양탄자처럼 깔려있었는데 참 좋았어요. 자작나무 초록숲은 16년 8월 바이칼에서 만끽했으니, 겨울 자작나무 숲을 보러 눈이 오면 가까운 나주 배꽃유아숲으로 나들이해야겠어요~^^

hnine 2020-01-16 22:55   좋아요 0 | URL
가을에 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안그래도 했더랍니다. 나주 배꽃유아숲, 저도 검색해보고 가볼수 있으면 좋겠어요. 순오기님은 전국 여러 숲에 대한 정보가 많으시겠지요 ^^
어느 장소를 어느 해에 갔었는지, 저는 정확한 연도 기억을 잘 못하는데 순오기님은 연도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시네요. 자작나무숲이 초록숲일수도 있나봐요? 저는 자작나무는 늘 흰색인줄 알았어요.

순오기 2020-01-17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자작나무 수피는 4철 흰색이지만, 봄부터 여름까진 나뭇잎이 초록이었다는 거죠~^^
 
12가지 인생의 법칙 - 혼돈의 해독제
조던 B. 피터슨 지음, 강주헌 옮김 / 메이븐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요즘 유명해진 책들은 동영상 사이트에서 역시 빠르게 인기가 확산되는 것 같다. 알라딘 사이트를 자주 들락거리는 나에겐 책이 먼저였지만 알고 보니 동영상 사이트에서 저자의 강연은 구독자수가 100만명을 넘었고 누적 조회수가 7천 뷰를 훌쩍 넘었다고 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의 동영상 사이트에도 들어가보았다. 책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게 1번부터 12번까지 인생이 법칙 내용을 열강하고 있었다.

12가지 인생법칙이라고 하니 전형적인 자기계발서처럼 보이지만 읽어보면 심리학 교수 답게 심리학에 대한 얘기가 대부분이고 12가지 인생법칙은 책 전체를 나눈 소제목 정도에 해당한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심리학, 종교학, 철학 등의 학문적인 배경을 근거로 설명하려는 저자의 노력, 그리고 비교적 긍정적이고 발전 지향적인 결론이 특징이다. 비록 인간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않은 인간의 잔혹한 심성을 전제 조건으로 츨발하는 것은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가혹한 사실일지라도 인정할것은 인정해서 내 인생을 더 낫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미국 그림책 작가 잭 켄트의 <용 같은 건 없어>라는 그림책을 인용하였고, 역시 그림책은 어린이들만 보기에는 아까운 책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어느 날 방에서 용을 발견하고 아이는 엄마에게 가서 방에 용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건 없다면서 믿지 않는다. 용은 점점 커져가고 아이는 재차 엄마에게 방에 용이 있다고 말을 하지만 엄마는 그런 건 없다고 말할 뿐이다. 처음엔 고양이 만하던 용이 점점 커져서 나중엔 집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커져서 아이와 엄마가 있는 집을 통째로 들고 그 자리를 뜨기에 이른다. 나중에 용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용은 다시 고양이만한 크기가 된다. 실로 대단한 상징이다.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 편견때문에 가리워진 사실등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그 덩치를 키워서 나중에 우리의 어깨를 누르고 목을 죄이며 위협함으로써 그 존재를 더 이상 감추고 가리지 못하도록 한다.

이 내용이 인용된 부분은 법칙 7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 편이다.

삶이 정체되고 혼탁해지는데도 막연하고 모호한 태도를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모호한 태도는 두려운 진실을 받아들일 용기가 부족할 때 숨을 곳을 제공해준다.

당신이 용기를 내지 않고 과감히 맞서 싸우지 않아서 문젯거리가 거대한 용이 되어 찾아온다면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정말 피하고 깊던 일이 일어날 것이다.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힘을 확보했을 때 당신이 가장 약해진 틈을 타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럼 당신은 패할 수밖에 없다. (385쪽)

이 책에서 꼭 읽어야 할 부분을 고르자면 이 부분을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의 핵심이자 필독.

 

법칙과 상관없이 이 책에서 기억해두고 싶은 부분을 정리해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 누군가를 구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당신이 충분히 강하고 너그러우며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옳은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행동이 당신의 동정심과 선의를 과시하고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신의 강직한 성품이 단순히 운 좋게 타고난 것이 아님을 확신하고 싶어서 하는 행동일 수도 있고, 완전히 망가진 사람 곁에 있으면 도덕적으로 더 돋보일 수 있기에 하는 행동일 수도 있다. (124, 125쪽)

독설적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생각해볼 말임을 인정한다.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만 만나라'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으면 함부로 행동하기가 어려워진다. 당신이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선택을 하면 그들은 힘을 보태줄 것이고 냉소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을 보일때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당신은 사소한 선택이라도 신중하게 결정하고 소임과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각오를 다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목표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정반대로 행동한다. 담배를 힘들게 끊은 사람에게 담배를 권하고 알코올 의존증에서 겨우 벗어난 사람에게 맥주를 권한다. 당신이 마침내 목표를 이루거나 어려운 일을 해내면 당신을 질투할 것이다. 당신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면 상대적으로 그들의 흠결이 드러나기 때문에 어떻게든 물어뜯으려 할 확률이 높다. (130쪽)

이런 조언을 나도 들은 적이 있다. 만나서 불편하고 기분이 안좋은 사람을 굳이 계속 만나려하지 말라고. 내 말에 동의를 잘 해주고 안된 일에 위로를 잘 해주고 쉽게 공감을 해주는 사람 위주로 만나기보다 나를 지지해주고 내게서 더 나아지는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으라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불안증에 시달릴까? 왜 게으름을 피우게 될까? 왜 폭력을 쓸까? 이런 것들이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질문인 이유는 그것이 쉽기 때문이고 인간의 자연스런 속성이기 때문이다. 불안하지 않은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고 게으르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살면 될까. 그것을 인정하되 목표는 내 인생을 더 좋게 하려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냉혹한 현실, 회의적인 운명,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며 출발하되 궁극적인 목적지는, '내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까?' 가 되어야 한다고 반복해서 강조한다.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처벌을 망설이거나 피하지 말라' - 훈육 원칙의 재정리

-중요한 최소한의 규칙만 남겨라

-그 규칙을 적용할 때 최소한의 힘만 사용하라

-부모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부모는 자신들도 냉정하고 교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기만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부모에게는 자녀의 행복을 보장하고 창의력을 키워주며 자긍심을 북돋워야 할 책임이 있다. (213쪽)

 

경험상 나 개인적으로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항목은 위의 세항목이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세트 - 전3권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 편을 이 책의 핵심이라고 추천한 이유는 도스트예프스키에서 니체, 프로이드에 이르는 사상의 흐름을 잘 정리해서 그의 설명에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도스트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중 그 유명한 대심문관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해서 보여주었는데, 그 대목을 읽으며 나는 이 책,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다시 읽어야겠구나 생각했다. 대심문관이 그리스도를 찾아가 "당신은 이제 필요없는 존재"리고 말하며 그리스도의 존재가 필요없음을 증명하려 했을때 그리스도가 어떻게 그를 대했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자는 거기서 어떤 보물을 캐어올렸는지, 다시 되짚어 보게 되었다.

 

자유로운 정신을 기르려면 자유롭지 않은 상태를 경험해야 한다. (279쪽)

 

삶의 비극은 존재의 원죄다. 우리 모두 어떻게든 견뎌 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 (331쪽)

사는 동안 누구나 한번쯤 고통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고통의 의미와 가치가 전무하지 않은 이유라고 할 수 있을 대목이다.

 

너무 옮겨적기의 연속이라 뒤의 에필로그 부분은 넘어가려 하지만 거기서도 여러 군데 밑줄을 그어야했다.

저자는 데카르트를 비롯한 다른 철학자처럼 단하나 분명하고 확실한 삶의 명제를 찾기 위해 수년 동안의 시간과 노력을 소비했다고 했다. 그의 학문의 출발은 그것이었다고. 그렇게 결국 알아낸 것은 삶의 비극은 존재의 원죄라는 것이었고 그것을 인정하기 쉽지 않았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렇다면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할지 대안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원죄를 어떻게 벗어나겠는가.

그는 생각만으로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생각은 하면 할수록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든다. 톨스토이도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역사상 그 누구보다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한 니체 역시 생각만으로는 이 의문에 정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이 엄청난 힘을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생각을 대신하는 것들이 있다. (478쪽)

그가 말한 생각을 대신하는 것들이란 '깨달음'이다. 그것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이다. 보편적인 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깨달음으로 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깨달음은 무엇인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게 아니라 바로 그의 한계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479쪽)

겨우 사랑이었어? 라면서 좀 뜻 밖이라고 생각할수도 있는 깨달음이다. 개념치 않는다. 그것은 그의 깨달음이지 나에게 종용되는 깨달음이 아니고 저자도 그걸 의미한게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가 종국에 사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긴 하다.

나는 나의 삶을 살며 찾을 일이다. 나에게 올 깨달음은 무엇일지. 오늘 이렇게 책을 읽고 쓰는 행위도 모두 그것을 알기 위함이 아닐지.

 

 

 

'모든 고통이 반드시 허무주의 (가치와 의미와 희망에 대한 완전한 거부)를 낳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 고통이든 신체적 고통이든 지적인 고통이든 무엇이든 마찬가지다. 그런 고통은 항상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니체의 말이다. 이 말의 의미는 악을 경험한 사람은 악을 퍼뜨림으로써 악을 존속시키려는 경향이 있으나, 악을 경험함으로써 오히려 선을 학습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괴롭힘을 당한 아이는 자신이 당한 대로 다른 사람을 괴롭힐 수도 있지만, 자신이 받은 고통을 통해 그런 학대가 잘못된 것임을 깨달을 수도 있다. 어머니에게 학대당한 사람은 그 경험을 통해 좋은 부모가 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칠 수 있다. (225,226쪽)

 

이 모든게 내 잘못 때문이라면 내가 어떻게든 해 볼 수 있는 게 있다.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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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20-01-02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nine 2020-01-02 23:47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고맙습니다.
자주 못만나도 잘 계시리라 믿고 있어요.

페크pek0501 2020-01-03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로운 정신을 기르려면 자유롭지 않은 상태를 경험해야 한다.˝
불행해 봐야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과 비슷한 말이네요.

12가지 인생의 법칙을 제가 구입해 놓은 책인 줄 알고 확인하기 위해 나의 계정에서 검색해 보니
구입하지 않은 걸로 나오네요. 아마 제가 눈여겨보며 장바구니에 담았던 모양입니다.
심리학서적은 언제나 관심이 갑니다. 그래서 리뷰를 볼 때도 관심 갖고 봅니다.
인간의 심리에 대해서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늘 궁금한 건 인간이니까요.

hnine 님, 알차고 웃음 많은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hnine 2020-01-04 09:18   좋아요 0 | URL
저자가 이 책 속에서 드러내고 주장하진 않았지만 고통의 의미, 삶의 본질, 허무를 극복해야하는 이유 등, 인간의 어두운 심성에서 출발한 고민 끝에 저자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사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도 그렇고 이 분이 종교심리학 저서를 출판한 적이 있다는 것도 그렇고요.
자유로운 정신을 기르려면 자유롭지 않은 상태를 경험해야 하듯이, 고통이 없는 상태의 가치를 알려면 고통을 경험해봐야 하는 것, 그것이 고통에서 인간이 찾을 수 있는 의미랄까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예시로 들며 도스트예프스키가 니체보다 나았다고 보는 이유를 읽으면서, 다시 읽어야겠구나, 인정했지요.
이 책은 기대보다 훨씬 괜찮은 책이었답니다.
알차고 웃음 많은 해로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드려요.

Nussbaum 2020-01-03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튜브를 보니, 이 작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의 강연과 책에서 제가 단편적으로나마 느낀 것은 두 가진데

어떤 사회적인 흐름이, 사상이 양 극단의 불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화합에 있다는 것.
그리고 자칫 전체주의나 극단적 개인주의 흐르는 현대 사회 흐름에 대한 비판.

그의 책 말미에 적힌 내용은 또 이렇게 보면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생각이 드네요.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범죄는 줄었을지 몰라도 훨씬 더 신뢰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아 그리고

hnine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hnine 2020-01-04 09:22   좋아요 0 | URL
잘 보셨어요. 불화가 아닌 화합쪽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 이 저자의 큰 미덕이 아닌가 싶어요. 현대 사회 흐름에 대한 비판을 하되, 인간의 잔혹하고 어두운 심성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을 하되, 결론은 극복해가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방향으로 맺고 있으니까요.
Nussbaum님도 새해 많은 활동 기대합니다~ ^^

카스피 2020-01-09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서재의 달인 등극 축하드리며 새해복많이 받으셔요^^

hnine 2020-01-09 22:1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카스피님 올해도 변함없이 알라딘에서 자주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프시지 말고요.
 

 

 

예외 없는 법칙이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법칙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법칙이라고 하니 딱딱하게 들릴지 몰라도 쉽게 말하면 어떤 패턴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즉

규칙적이고 반복적이어서 예측 가능한 패턴으로서 이것은 물질에도 존재하지만 생명현상에도 존재한다.

이렇게 말로 하면 과학이 아니다. 이것을 객관적으로 나타낼 수 있어야 하고 그래서 보편성을 증명할 수 있을때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자손이 부모 세대를 닮는 현상이 무작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일어난다는 것, 그래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손도 미리 그 형질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아내었고 그 규칙성을 숫자의 형태로 구체화하여 발표한 사람, 오스트리아의 수도사 그레고르 멘델이다. (그 당시는 오스트리아였으나 지금은 체코땅 브르노 -Brno- 이다).

 

막연하게 꿈꾸고 있다가 체코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게 된 마지막 방아쇠는 우연히 보고 있던 EBS 교육방송이었다. 과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은데 마침 멘델에 대한 것을 하는 날이었나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학자 멘델. 이유는, 유전학에 대한 개인적 관심과 애정도 있지만 멘델이 걸어온 평탄치 않은 길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넉넉치 않은 가정, 처음부터 탄탄대로 과학 교육의 혜택을 받을만큼 눈에 띄지 못했던 사람. 오히려 시험에 자꾸 떨어지자 시험 노이로제까지 있었던 심약한 사람. 집안에선 장남으로서 동생들을 돌볼 책임까지 있었던 사람.

당시 교육의 기능까지 일부 담당했던 수도원의 기능에 따라 수도사가 되면 성직자로 봉직하면서 원하던 공부도 할 수 있을 거라는, 막판의 돌파구로 들어간 수도원이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수도원 한 구석에서 식물을 재배해가며 관찰하고 기록하며 혼자 수십년의 세월을 보낸 끝에 발견한,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결과들을 정리하여 학회지에 발표했으나 아무도 눈여겨 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멘델은 자신이 평생 해온 일이 훗날 전 세계에 어떤 큰 파장을 일으킬지 모르는 채로 눈을 감았다.

 

갈수록 돈이 되는 연구, 상업성이 있는 프로젝트, 결과 중심의 연구에 치우쳐가는 현대 과학의 트렌드를 보면서 (물론 모두 그렇진 않다) 멘델의 저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끌고간 연구를 본받고 싶었다. 과학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저런 마인드여야 한다고. 가는 길이 멀고 험난하더라도 저런 순수한 마음이 포기하지 않는 길잡이가 되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런 과학자가 비단 멘델 한 사람은 아니겠지만 그 당시 내 눈에 들어온 사람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TV에서는 마침 멘델이 살고 일하던 수도원 사진이 나오고 있었다.

"가서 직접 봐야겠다!" 불현듯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고, 그날로 체코행 비행기 표를 예약하게 되었다.

 

그렇게 떠난 체코 여행이었다. 그런데 왜 브르노 가는 일정을 하필 여행 마지막 날로 잡았던 것일까. 숙소가 있던 프라하에서 브르노까지는 기차로 약 3시간 거리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트램을 갈아타면서프라하 중앙역까지 가서, 프라하 중앙역에서 브르노행 기차를 탔다.

브르노는 프라하 다음으로 체코 제2의 도시라고 알려져 있는 곳인데, 나는 멘델이 일하던 수도원 이외엔 어디에도 관심이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보니 브르노는 프라하와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대학 도시라서 그런지 어딘가 더 활기 있고 젊은 도시 느낌이랄까. 역시 시내를 가로질러 다니는 트램.

 

 

 

 

 

 

 

St. Thomas Abbey 라고 구글맵에 치고 찾아갔는데 정작 도착한 곳은 내가 알고 있는, 사진으로 본 그 수도원 모습이 아니었다 (↓). 하얀 벽의 그야말로 보통 보는 성당의 형태를 한 건물이었고, 멘델이 있었다던 그 붉은 벽돌의 수도원이 아니었다.

 

 

 

 

 

 

 

나중에 알았다. 멘델이 있던 그 수도원은 지금은 Mendel Museum으로 아예 이름이 바뀌어 그 명칭으로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겨우 택시를 잡아타고 10분 정도 갔더니 거기에 내가 찾던 그 붉은 벽돌의 수도원이 있는 것이다. 멘델이 수도사로 있었고 그가 완두를 재배해가며 실험을 했던 정원이 있는 그 수도원이다 (↓).

 

 

 

 

 

 

반가운 마음이 가시기도 전, 어째 이상하다. 사람들도 없고 분위기가 썰렁해서 보니 내가 간 월요일이 하필 휴관일.

 

 

 

 

 

 

 

 

 

아, 내가 왜 체코엘 왔는데.

그때부터 내 입이 댓발은 나왔지만 누구를 탓하랴. 미리 그 정도 정보도 없이 간 내가 모자랐지.

 

멘델이 실험하던 정원과 기념관엔 들어갈 수 없었기에 할 수 없이 수도원 둘레만 돌아보았다.

 

 

 

 

 

 

 

 

 

 

 

아직도 낯설다. 영어가 맨 앞이 아니라 체코어 설명이 맨 앞에 나오는 모든 안내판. 독일어까지 설명이 있는 경우엔 심지어 독일어 다음, 맨 끝이 영어이다.

 

 

 

 

 

익숙한 저 그림.

 

 

 

담쟁이 덩굴로 덮인 위의 저 건물은 Mendel's Orangery인데 이를테면 멘델이 연구실로도 쓰고 손님도 맞고 휴식을 취하기도 했던 장소라고 한다. 안에 들어가면 난로, 책상, 접이식 테이블, 의자, 그림 등이 있다고 설명에 나와있었다.

 

아래 사진은 예전의 모습이다.

 

 

 

 

멘델은 순전히 노력형 인물이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날 돌아보면서 여러가지 기록과 포스터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니, 노력도 했지만 이 사람 역시 영재 기질이 다분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유전학 뿐 아니라 과학 다방면에 관심이 많아서, 누가 시키지도 않는, 알아주지도 않는 연구를 평생 해온, 그야말로 타고난 학자 타입이었던 것 같다.

아래 기록은 그의 기상학자로서의 기질을 보여주는 손글씨 기록인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 쓰듯이 기록을 했다고 한다. 단정한 손글씨.

 

 

 

 

 

 

멘델 박물관을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으니 시간이 남아 브르노의 다른 곳을 가봐도 좋았을텐데, 실망감이 커서 그냥 프라하로 돌아오는 기차를 탔다. 겨우 오후 2시 7분.

 

 

 

Perseverance and immense dilligence in whatever he did helped him achieve extraordinary results in a number of areas.

 

멘델에 대한 안내글 중 일부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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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8 1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8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8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떤 날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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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촉망받던 건축가였으나 정작 기대만큼 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무기력함을 느껴가는 아버지 엘슨. 결혼과 함께 육아과 살림으로 자기의 커리어를 맘껏 펼져보지 못하고 보낸 30년 결혼 생활 끝에 이혼을 제안한 엄마 케이던스. 시인으로서의 재질이 있음에도 한번도 자기의 능력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노력을 해본적 없고 낮에는 커피샵에서 일하고, 밤에는 파티에 참석하는게 일상인 게이 아들 리차드. 집을 떠나 대학에 다니고 있다가 알 수 없는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학교에서 정학을 당하고 어쩌면 퇴학당할지도 모른다며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돌아온 딸 클로이. 이 네명으로 구성된 가정이 있다. 아버지는 와중에 젊은 여자를 만나 새로이 사귀고 있는 중이고, 엄마 역시 새로운 상대방을 만나기 시작했지만 문제는 이들 부부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들이 동성연애자임을 알고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은 아버지를 절대 용서 할 수 없어 아들은 아버지와 남남 같은 사이가 되어 있고, 학교에서 정학당하게 된 그 사건 이후 남자 친구와 가출하여 행방을 알수 없는 딸의 문제를 두고 엘슨과 케이던스는 이혼을 했음에도 외면하고 지낼 수만 없는 상태로 돌아가지만 그렇다고 힘을 모아 어떤 해결점을 찾아가는 것도 아니고 갈등만 깊어가는 답답한 상황이다. 이 가정의 미래는 어찌 될것인가.

가족 구성원 각각의 문제에 더해서 500여쪽이 되는 이 소설을 끌고 나가는 중심 사건은 역시 딸 끌로이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 가족을 묶어주고 있는 유일한 공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끌로이는 정확히 어떤 사건에 어떻게 연루된 것일까. 학교에서, 혹은 법정에서 어떤 처분을 받게 될 것인가. 그녀는 과연 이민자 출신 남자친구와 어디까지 함께 할 것인가. 이에 따른 가족의 반응은 어떨 것인가. 궁금해하며 끝까지 읽어가게 된다.

장편 소설이지만 페이지가 술술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작가 앤드류 포터의 작가로서의 능력 덕이고, 번역자도 한몫 했으리라 본다. 읽으면서 번역본을 읽고 있다는 것을 거의 의식 못하고 읽을 수 있었다.

독창성이라든가 작품 고유의 메시지가 있어서 독자들로 하여금 읽고난 후에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던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개인적으로 크게 두드러지다고 보여지지 않아서 별 세개로 마치려고 하다가, 내용의 흐름이 매끄럽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게 하는 재미를 포함하고 있으니 장편 소설로 출판되기 위한 기본적인 요건은 갖추었다고 보여, 또한 재미있게 읽어놓고 그러긴 미안하지 않은가 생각하여 별 네개로 올려놓았다. 의미없는 행동이지만 이런 가늠해보는 것도 리뷰 쓰며 갖는 소소한 행복이 아닐까.

옮겨 적어 놓고 싶은 페이지가 있는데 (538쪽), 결말 부분이라서 옮겨놓으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그만두기로 한다.

소설의 시작에서 모두 위기의 날들을 보내고 있던 가족들. 결말로 가면서 나름의 방식대로 그 위기의 시기를 넘기도록 시간은 그들을 어딘가로 데려다 놓았다. 좋아보이지도 나빠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그 시기를 '넘겼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언제 그런 위기의 삶을 살아야 하는 시기가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days 와 days 사이, In between days. 이 소설의 원제이다.

쉽게 행복과 불행을 말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고, 행복한 삶, 불행한 삶이라고 말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 끝까지 가봐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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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2019-12-22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써 의미를 만드는 것이 아닌 올리신 글처럼 작더라도 의미를 찾는, 혹은 의미가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즐거움이 있네요.

요즘은 영화, 책, 삶 모두 조금 멀리서 보고 있는데 마지막 문단처럼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기를 쓰니 어제의 일이 또 며칠 후 비슷하게 일어나고 오늘의 일이 몇 년 전 어떤 일과 연관이 있고.

뭐든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겠다 하는 생각과 나에게 일어나는,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방식을 잘 관찰해야겠다 생각을 해 보는 밤입니다.

hnine 2019-12-23 05:28   좋아요 0 | URL
in between days 라는 말의 뜻을 한참 생각했어요.
순탄한 삶 사이에 거치는 힘든 고비 같은 시기를 표현한 말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번역한 제목은 ˝어떤 날들˝이라는 평범한 제목이 되어버렸지만 그래서 더 원제목이 의미한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본 것 같아요.
내가 지금 서있는 곳만 보고 전체를 다 본 것 처럼 말하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어리석음이기도 하고 한계이기도 하고요.
단편 모음집 하나로 확! 뜬 작가인데, 뒤이서 장편을 냈어요. 다음 작품은 단편이 될까 장편이 될까 은근히 기다려지네요. 전작인 단편 모음집이 더 좋았다는 리뷰가 많던데, 장편도 잘 쓰는 것 같아서요.

서니데이 2019-12-24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hnine 2019-12-25 04:5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실버스타 스탤론 주연의 '데몰리션 맨'과는 다른 영화)





데몰리션 Demolition (2015, 미국)


  • 감독: 장 마크 발레
  • 주연: 제이크 질렌할, 나오미 왓츠
  • 내가 주는 평점: ★★★★★









(사진 출처: Daum 영화)








(사진 출처: Daum 영화)










(사진 출처: Daum 영화)







가족중 누군가를 잃게 되면 잃은 직후 허무함과 슬픔의 정도가 가장 컸다가 시간이 지나면 점점 옅어질 줄 알았는데 경험해본 바로는 그게 아니었다. 막상 그 사람을 보낸 직후엔 뭐가 뭔지 실감이 안되고 그 사람이 없는 상황에 적응이 안되어 무슨 감정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가, 일상 속으로 돌아와 어찌어찌 지내던 중 불현듯 그 사람의 부재가 피부로 느껴질 때가 오는데 바로 그때부터인것 같다. 그 사람이 없는 현실에 적응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그 길고 긴 여정을 시작해야 할 때.


아내와 함께 타고 가던 차가 교통사고가 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운전하던 아내는 죽고 옆자리에 타고 있던 데이비스는 가벼운 찰과상만 입고 멀쩡하게 살아남는다. 사랑했던 아내를 잃었는데도 데이비스는 바로 직장에 복귀하여 일을 하는 등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아무 슬픔도 못느끼는 것처럼 일상을 계속해나가면서 스스로 생각해도 자기 감정을 알수가 없다. 

'정말 나는 아무렇지도 않을것일까?'


아내가 마지막 순간을 보낸 병원에서, 자동판매기 고장으로 돈만 먹고 물건을 내놓지 않는 일이 생긴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이 일에 데이비스는 자동판매기 회사에 항의하는 편지를 보내게 되고 (이것이 아마도 감정 표현의 시작이 아닌가 생각된다) 항의 편지에 대한 답으로 새벽 2시에 자판기 회사 고객센터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계기로 고객센터 여자와 직접 만나게 된다. 그여자 캐런, 그리고 그녀의 십대 아들 크리스와 만나 아무 생각없이 자기 얘기를 털어놓게 된 데이비스는 비로소 출근도 안하고 거리를 헤매다니고 막노동판에 달려들어 잘 알지도 못하는 노동일을 하다가 다치는가 하면, 뭔가를 고치려면 다 분해하여 중요한게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며 부수는 도구를 사다가 아내와 함께 살던 집을 다 때려부수기도 한다 (→물리적인 의미의 demolition). 


다 때려부수어 남겨진 것은 물건의 잔해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몰랐던 사실들. 


여기에 줄거리를 다 적을 수는 없지만, 단순히 아내를 잃은 후 남자의 애통함을 그리는 영화가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살면서 파괴, 파탄의 순간을 맞는 일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그게 파멸까지 몰고갈 일은 아니기도 하고, 파멸에 가까운 결과로 이끄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 까지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것이라면, 인간에겐 그럼 무기력하게 당하고 파괴되는 길 밖에 없는 것일까? 

어떤 엄청난 일이 일어나서 나의 삶이 산산조각 난 것 처럼 보일지라도, 부서진 조각 더미를 딛고 결국은 다시 일어나는 것. 극복하고 내 삶을 계속해나가는 것.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아닐까. 계속 노력해야 하는. 까뮈의 시지프스 신화에서 다시 떨어져내릴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돌을 위로 밀어올리는 시지프스처럼 말이다. 돌을 굴려올리는 시지프스의 삶을 형벌이라 보아야만 할까? 돌을 밀어올리면서 형벌, 운명에 대한 굴복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시지프스는 끊임없이 어제와 다른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돌을 제 자리에 되돌려놓는 좀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 행위에 형벌 이상의 어떤 의미는 없는 것일까?' 같은. 


파멸, 파괴가 끝이 되는 삶이 아니라, 그것을 딛고 극복하려는 몸부림과 노력으로 채워가는 삶을 수행해나가는 것이, 옳은지 어떤지 쉽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최소한 그렇게 삶을 계속해나가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가 겪는 과정을 보았다.


영화 중간에 느닷없이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쇼팽의 녹턴은 또 어떤가. 느리고 섬세한 영화의 또다른 OST도 다시 들어야한다.


슬픈 영화이다. 아내를 잃는 사건 때문이 아니다.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힘겹게 결국 일어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 슬프고 또 고맙다.





"LIFE: Some disassembly requ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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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12-12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년 전에 이 영화를 보고 슬픔의 자각과 표현은 사람마다 다르구나, 다를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ost중 warmest regards란 노래가 너무 좋아 한동안 그 노래만 듣고다녔어요.
이 리뷰보니 간만에 이 영화 다시 보고싶어지네요.

hnine 2019-12-12 21:42   좋아요 2 | URL
설해목님도 이 영화 보셨군요.
말씀하신 warmest regards도 찾아서 들어봤어요. 일단 warmest regards라는 말이 참 좋네요. 기억해놓았다가 저도 써보고 싶을 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detachment라는 영화를 네플릭스에서 보고났더니 계속 비슷한 영화를 추천해주는데, 저와 코드가 맞아서 추천해주는대로 잘 보고 있답니다. 이 영화 다시보시면 또 어떨까요?
혹시 다시보시게 되면 데이빗이 집으로 찾아온 카렌에게 그릴드치즈를 권하며 멋적게 웃는 장면을 한번 보아주세요. 매력적! ^^

프레이야 2019-12-21 0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놓친 영화네요. 바로 찾아 봐야겠어요. 좋은 영화 소개해 주셔서 고맙구요.
나인 님,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주인공들도 좋아하는 사람들이군요.
겨울날씨답게 싸한 날이에요.
감기조심하시구요.

hnine 2019-12-21 12:56   좋아요 2 | URL
한번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프레이야님은 어떤 관점으로 보실지 궁금해요. 한 인간의 일상이 붕괴되는 과정이 상영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저는 마지막 몇 분에서 결론을 찾고 싶었어요. disassembly 와 reassembly 를 왔다 갔다하며 사는게 인생이 아닐까요.
새로운 책 출간을 축하드려요. 또 하나의 자식을 낳은 셈이라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얼마나 뿌듯하세요.

프레이야 2019-12-21 13:52   좋아요 1 | URL
그럼요 그렇구말구요. 그 과정이 우리 삶인 것이겠지요. 축하 감사드려요. 세번째 아이 출산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또 느끼는 점들도 있고 그렇게 또 하나의 마디를 긋고 한발짝 가볍게 나아가려구요. 나인님 마음에 늘 평안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