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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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하루중 죽음을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아침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어제 밤 눈 감고 잠이 든 이후로 다시 살아있음을 깨닫는 첫 순간이기 때문이다. 내 경우엔 그렇다. 이 책의 저자가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는 근거는 죽음을 적어도 두가지 종류로 보기 때문이다. 사회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 자신의 인생을 정의하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어 삶의 의미가 사라졌을 때 사회적 죽음이, 자신의 장기가 더 이상 삶에 협조하기를 거부할 때 육체적 죽음이 온다고 했다. 육체적 죽음은 아직 맞지 않았을지라도 사회적으로 죽음을 맞은 상태, 즉 사회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 사이의 길고 긴 연옥 상태를 '사라지는 중'에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저자는 죽음을 개인 차원에서만 본 것이 아니라 사회, 국가, 공동체, 제도, 사상 등에도 적용하였다. 개인의 육체는 살아있을지라도 개인이 속한 사회의 상태에 따라 결정되는 사회적 죽음은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독특하고 예리한 관점은 계속된다.

행복의 계획은 실로 얼마나 인간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주는가. (23쪽)

우리가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개 잠시의 쾌감에 가까운, 오래 지속될 수 없는 잠깐 기분 좋음에 불과한 것인데, 그것을 새해 목표로, 인생 목표로 계획하고 바라게 되면 그 덧없음을 깨닫고 났을때 사람을 오히려 불행하게 할것이기 때문에 저자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고 했다. 독특하나 공감 못할 바도 아니다. 아니, 내가 말로 표현 못하던 것을 정확하게 짚어주는, 우리가 에세이를 읽는 목적을 이렇게 달성시켜주고 있다.

<위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저자는 다른 나라로 공부하러 떠나게 된 계기가 된 일에 대해 썼는데, 처음으로 논문 심사를 받던 날, '해탈에 재차 실패한 부처 지망생들처럼' (이 표현을 보시라) 앉아 있던 심사를 맡은 교수들의 첫 질문이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자, 자네 논문을 한번 간략하게 요약해보게."

요약이 끝나자 몇 가지 질의응답이 오가기 시작했고, 난 곧 깨달았다. 이 선생님들께서 내 논문을 읽지 않고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을. 선생이 논문을 채 다 읽지도 않고 심사를 하려 드는 것은 학생이 논문을 채 다 쓰지도 않고 심사를 받으려 드는 일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웃는 돌처럼 무기력하게 앉아 있었다. 국권 피탈의 순간에도 시간은 유유히 흘렀던 것처럼. 나는 목례를 하고 걸어 나왔고 마침내 논문은 심사를 통과했다.

그리고 이날의 일은 오랫동안 수치의 기억으로 남았다. (130쪽)

'아무튼 논문은 통과했으니' 라고 안심하기 보다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수치스럽고 분노를 일으키는 기억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시공간이 일상적으로 떠먹여주는 무기력을 더는 삼킬 수 없을 것 같아서 다른 나라로 공부를 하러 갔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일상적으로 떠먹여주는 무기력에 안주하면서 살고 있지 않나. 

이 책을 읽기 전엔 몰랐지만 알고 보니 저자를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게 한 글이 있었나보다.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 지난 해 인터넷과 SNS에서 유명해진 칼럼이라고 한다. 이 책에도 실려있어 읽어보니 이 책의 다른 글들에 비해 특별히 더 튀는 편도 아니다.

추석을 맞아 모여든 친척들은 늘 그러했던 것처럼 당신의 근황에 과도한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러한 질문은 집어치워주시죠'라는 시선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친척이 명절을 핑계로 집요하게 당신의 인생에 대해 캐물어 온다면, 그들이 평소에 직면하지 않았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게 좋다. 당숙이 "너 언제 취직할  거니?" 라고 물으면, "곧 하겠죠, 뭐"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당숙이란 무엇인가?" 라고 대답하라. "추석 때라서 일부러 물어보는 거란다"라고 하거든,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엄마가 "너 대체 결혼할거니 말 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거기에 대해 "얘가 미쳤나?" 라고 말하면, "제정신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정체성에 관련된 이러한 대화들은 신성한 주문이 되어 해묵은 잡귀와 같은 오지랖들을 내쫓고 당신에게 자유를 선사할 것이다.

칼럼이란 무엇인가. (61쪽)

저자의 글쓰는 공력이 벌써부터 평범한 에세이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은 신춘문예 영화평론 당선 경력으로도 짐작되거니와 실제로 이 책에 실려있는 그의 영화평론 글들을 읽어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그 깨달음은 깨달은 자를 한층 더 좌절케 하는 종류의 깨달음이다. 그는 햄릿처럼 자기자신에 대한 더욱 깊이 있는 인식에 이르렀으므로 더 이상 행동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에 대한 보다 심오한 통찰에 근거하여 행동의 불가능성을 확인한 이에게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재량하여 성취해나가는 기획자는 더 이상 영웅이 아니다.

인생의 심오한 인식에 이른 자는 더 이상 행동할 수 없다. 성격의 우유부단함이 행동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진실이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는 진정한 행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아는 자는 행동하지 않고, 모르는 자는 돌진한다. 이것이 인생 아니던가? (296, 300쪽, 영화 '고스트독' 평론 중에서)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는 위의 인용문은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제일 오래 마음에 남을 문장 같다. 행복을  목표로 해서 사는 것의 모순, 자기자신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면 행동하지 못하게 된다는 모순. 죽음을 생각하여 살 힘을 얻는다는 모순. 모순이 진리가 되는, 이 또한 모순이라고 해야할까?

뭐니뭐니 해도 극점은 전도연과 짜라투스트라를 등장시켜 쓴 '책이 나오기까지'라는 후기 아닐까?

사회과학 교수로서 인문과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김민정 시인과의 인터뷰를 보면 <논어>를 새로 번역하고 있다고 하더니 얼마전 새로운 책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전 중의 고전인데,  나와있는 여러 판본을 그냥 읽는 게 아니라 새로이 번역할 생각을 했다니, 누가 시켜서 할 일은 아니다.

 

 

 

 

 

 

이것 아니면 저것 양분된 의견 중 한쪽을 택하고, 일상적으로 떠먹여주는 무기력에 안주하여 살던 중 이런 논객들의 튀는 글을 읽는 것이 즐겁다. 그리고, 즐거운데서 그쳐야 할까 생각하니 마음이 좀 무거워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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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12-18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는~. 이런 책이 많이 읽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hnine 2019-12-19 15:08   좋아요 1 | URL
이미 많은 분들이 읽으셨고 저는 늦게라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지요.
물질은 다양화되어가는데 인간의 사고방식은 왜 획일화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심해져가고요. 이분의 책을 읽으면서 처음엔 참 자신있고 소신있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책을 다 읽을 무렵엔 자신있음이 곧 자유로움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고를 바라보는 시선의 자유로움이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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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단편이라 시작부터 반가운 마음이었다. 저자 앤드루 포터는 데뷔부터 단편집으로 시작한 작가 아닌가. 1972년 미국 태생. 2008년 36세 되던 해 데뷔작으로 발표한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으로 그는 단편소설 부문 플래너리 오코너상을 수상했다. 2008년에 출간된 책이 우리 나라에선 2011년에 번역본으로 나온바 있고 올해 문학동네에서 새로운 번역본으로 재출간 되었다.

모두 열편이 단편을 모았는데 책의 제목이 된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이중 한편이다.

 

구멍, 친구의 죽음의 현장에 함께 있었던 십이년전 일을 기억하며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 친구의 죽음이라는 사건에 양심의 가책을 담아 매번 조금씩 다르게 각색된 악몽을 꾸며 괴로와하지만 막상 죽은 친구의 형으로부터 그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는 편지를 받고서 쓴 답장을 부치지 못한다. 인간의 행위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을 내리는 것은 법도, 신도 아니고 내 마음속 양심의 잣대이다. 극히 주관적이면서 솔직한.

코요테, 서로 사랑은 하지만 상대로부터 기대하는 바를 충족하지 못해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는 부부. 그런 부모를 둔 주인공이 다 커서 관찰자 입장일 수 밖에 없었던 어렸을때를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주인공은 그때는 부모 사이의 일을, 특히 집을 나가 살고 있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나중에야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있었던 일과 본심을 이해하게 된다. 어린 주인공이 해질 녂 지붕 위에 올라가 엄마를 기다리며 혼자 시간을 보낼때 들려오곤 하던 것이 코요테 소리이다.

아술, 아이를 가질 수 없는 폴과 캐런 부부는 중학생 아술을 교환학생으로 한집에 데리고 있다. 폴과 캐런 각자의 문제에 더하여, 동성연애를 비롯 일탈의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아술을 어떻게 대하고 지도해야할지도 확신이 없어 갈등을 겪는다. 개인적인 문제와 아슬의 문제까지, 어쩌면 과도기를 사는 건 십대의 아술이나 사십대의 폴, 캐런이나 다를 바가 없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시절을 되돌아보고 마침내 지나간 행동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는 결말은 앞의 두 작품과 공통적인 방식의 결말이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빛과 물질에 관한 방정식을 시험문제로 낸 물리학 교수 로버트와 그 시험을 치러야했던 학생중 하나인 헤더와의 개인적인 만남은 바로 그 시험에서 비롯되었다. 결국은 연애담인데, 섬세하고 격조있음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처음엔 로버트라는 교수의 성격과 심리에 집중하며 읽다가 읽어나갈수록 점차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일인칭 화자인 헤더의 무심하고 담담하여 가려져있던 매력을 발견하게 되고, 과연 로버트가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겠다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역시 여자가 결혼 상대로 선택하는 것은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 결혼후 예상되는 안정화 정도가 또 한 요소로 보태져서 결정된다는 것을 여기서도 본다. 물론 모든 여자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더 행복한가는 또 다른 얘기이다.

강가의 개, 제목이 중의적으로 쓰였다. 주인공이 어릴 때 목격한 형과 그 친구들의 비도덕적 행동을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성폭력, 범죄의 씨앗이 되는 잘못된 음주문화 등, 개로 상징되는 이 모든 행위는 미래의 문제로도 지속되어 누군가의 양심을 건드리며 회상될 것인가.

외출, 외출의 뜻 속에 주류에서 벗어난 삶까지 확장시켜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이다.

머킨, 동성애, 양성애를 용어화해서 불러야하는 당위성에 대해 나는 아직도 의문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는데 그 대상이 동성일수도 있고 이성일수도 있는 것이지, 낮은 확률로 일어난다고 해서 아웃사이더로 소외시키고 심지어 죄악시해야하는가. '머킨 (merkin)', '비어드 (beard)'가 동성애자가 공공장소에 데리고 가는 이성 상대를 뜻하는 단어임을 이 작품을 읽기전엔 알지 못했고 들어본적도 없다. 화자인 '나'는 진정 몰랐을까? 린이 처음부터 좋아한 상대는 자기였음을.

폭풍, 밖에서 폭풍이 치는 것과 집안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풍을 병렬식으로 대비하여 서술하고 있다.

피부, 이 책에서 가장 짧고 간단한 작품이었음에도 연속해서 두번 읽어야 했던 이유는 제목이 왜 '피부'인지 처음 읽을때 놓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라던 행복을 느끼는 순간에도 우리는 어떤 불행이 가능할수도 있었는지를 굳이 떠올린다. 하지만 떠올린다고 한들, 누워있는 배우자의 매혹적인 피부처럼 눈 앞에 보이고 당장 느낄 수 있는 것들 만한 영향력을 가지진 못한다.

코네티컷, 병원에서 퇴원한 아버지가 요양차 코네티컷 연안의 별장에 머무르고 있을 시기에 '나'는 열세살이었고 그때 어머니에게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 그때를 회상하고 비로소 그 일의 전말을 제대로 이해한다. 아버지가 요양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일상으로 복귀한후 모든 상황은 제자리로 돌아와 평화로운 상태로 보였지만 어른이 되어 아직도 기억하는 것은 겉으로 보여진 것과 매우 다른 이미지이다.

그 저녁, 벤틀리 부인이 떠난 그 저녁이 자꾸만 떠오른다. 어머니가 이윽고 자신을 추스르던 모습, 부엌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하던 모습, 방에서 내려온 누나에게 미소를 짓던 모습, 그리고 그후, 개수대가에 서서, 마치 누군가가 자기에게 와주리라고 아직도 믿는 듯이, 마치 저멀리 있는 그림자가 뜰의 가장자리에서 걸어나와 자기를 되찾아갈 것이라고 아직도 믿는 듯이, 그렇게 간절하게 서 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277쪽)

이 작품의 마지막이자, 작가의 섬세한 글쓰기 방식이 잘 드러나는 곳 중의 하나라서 인용해보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앞날을 계획하는 시간 대비 옛날을 회상하는 시간의 비율이 증가한다. 과거의 어떤 일들이 기억에 남고 어떻게 회상될지 당시엔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가 되는 것은 시간이 흘러 그 상황에서 이만치 떨어져나온 후, 한번 저 기억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떠오른 후이다. 그걸 이렇게 섬세한 통찰을 거쳐 소설로 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은 그동안 살아온 세월에 대한 선물이다. 어디에 비길바 없는.

아직도 외국작가의 단편소설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앨리스 먼로. 그녀의 단편보다는 읽기가 수월하다. 독자에게 친절할 정도의 구체적인 서사가 있다는 뜻이겠고, 덜 함축적이고 더 흥미있게 썼다는 뜻도 될 것이다.

아직 많은 작품을 낸 작가가 아니라서 국내에 알려진 그의 다른 소설 <어떤 날들>을 바로 주문해서 읽어보기로 했다. 망설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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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2019-12-09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파리 리뷰 인터뷰 모음집인 <작가란 무엇인가>를 읽다 남기신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들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저마다 제각각이었지만 모두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라는 동일한 단어를 품고 있더군요. 소설이 어느 때부터 참 멀게 느껴졌는데 조금씩 다시 소설이 좋아지는 것은 그런 일상의 과정, 삶의 과정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아차 싶은 실수 하나를 벌이고 저의 보편과 개성 사이에서 조금 고민을 했네요. 관련해서 일기도 한 장 썼는데 그 내용이 올리신 글의 마지막 문단과 어쩐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앤드루 포터도 읽은 책 본문에 나왔지 싶은데, 언제 서점에 들러 조금 읽다 와야겠습니다.

hnine 2019-12-10 05:26   좋아요 0 | URL
열심히와 꾸준히, 보편과 개성 사이. 모두 생각해볼 말들이네요. 저는 열심히보다는 꾸준히가 좋고 (열심히는 어딘지 자발적이지 않고 의무적으로 하는 것 같은 뉘앙스가 있어서요 ^^), 보편과 개성은 둘다 좋아요. 지난 주 현대 미술에 관한 강의를 들었는데, 개성이 전부인 것 같은 현대 미술에 있어서조차도 어떤 것은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고 어떤 것은 그저 개인의 취향에서 그치고 마는 기준이 되는 것은, 개성이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보편성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라더군요.
앤드루 포터는 적정 수준을 잘 잡아서 작품을 쓴 것 같은데, 지금 배송중인 그의 <어떤 날들>을 읽어보면 더 잘 알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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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진 3은 어제 찍은 것이 아니라 가을에 찍어놓은 것이네요.)

 

 

 

 

 

한동안 즐거이 다녔던 곳.

어제 강의를 마지막으로 다음에 또 관심있는 강의가 눈에 들어올때까지 정기적인 발걸음은 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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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4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04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년 10월 설악산 비천대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Kissing stone 이라는 이름은 제가 붙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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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12-02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진짜 키스하는 것 같아요. 저런 게 있었다닛! 놀랍네요.
<쉬리>란 영화에서 알려진 키싱구라미란 물고기 생각나네요.ㅋ

hnine 2019-12-02 17:37   좋아요 0 | URL
ㅋㅋ
아마 저 바위를 보고 저만 그렇게 느낀게 아닐꺼예요.
예전에 홍신자 무용가가 이끌던 무용단 이름이 ˝Laughing stone (웃는 돌)˝이라고 지었다던데 거긴 뭔가 심오한 뜻이 있겠죠?
예전에 저희 집에서 열대어를 한동안 키웠기 때문에 키싱구라미가 키스하는 모습은 여러번 보았어요.
 



예전엔 주로 새벽에 혼자 깨어있는 시간을 이용해 영화를 보았었는데, 시간 여유가 많은 요즘은 딱히 새벽이 아니라도 수시로 영화를 본다. 그래서 많이 보기는 하는데 그런 것에 비해 몰입도 높은 영화가 적은 것은 영화의 문제인지 나의 마음 상태가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영화보기는 아직은 즐거움이다. 독인지, 덕인지, 그런것 따지기 시작하면 오히려 독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일단 본다.

 

다음 네 편의 영화는 본지 한달이 안된 영화들.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리스팅해본다.




1. Detachment



  • 미국, 2011
  • 감독: 토니 케이
  • 주연: 애드리언 브로디
  • 수상: 감독, 2011 상파울로 국제 영화제 베스트 무비 인터내셔널 픽션 (Award of the public)



어릴 때 엄마의 자살 장면을 목격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헨리. 한군데 정규직보다 기간제 임시 교사직을 택한 그는 문제아들이 모여있는 한 고등학교에 배정받아 간다. 첫 시간부터 학생들로부터 욕설과 비방이 쏟아지는 교실에서 그는 더 이상 낙담할 것도 희망할 것도 없이 자기가 해야할 최소한의 임무를 수행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길거리에서 발견한 소녀 에리카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어른처럼 화장을 하고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돈을 벌기 위해 거리에서 모르는 남자들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또 한 소녀 메리디스는 그가 가르치는 교실의 뚱뚱하고 수줍음 많은 소녀로서 첫시간부터 선생님인 헨리에게 반해 그에 대한 마음을 남몰래 키워간다. 

에리카와 메레디스의 공통점은 둘 다 애정과 관심이 필요한 상태라는 것. 이들의 상태가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알아채었지만, 그래서 외면하지도 못하지만 그 이상의 개입은 자제하고 거리를 두려는 헨리의 심리 상태를 나타낸 것이 제목 detachment 일까. 아니면 영화 결말에서 헨리로부터 분리되는 두 소녀의 상태를 나타낸다고 보는게 더 적절한 말일까. 요양소에서 보호 치료를 받으며 점차 나아가는 에리카의 모습은 독립에 가까와지는 분리로 보이는 반면 메레디스가 헨리로부터 스스로 떨어져나가는 장면은 과히 충격이다.

영화 <피아니스트>로 잘 알려진 배우 애드리언 브로디가 제작까지 맡은 영화이다. 감독 토니 케이는 1952년 영국 태생.














2. 패들턴 (Paddleton)



 

 

 

  • 미국, 2019
  • 감독: 알레스 레만
  • 주연: 마크 듀플래스, 레이 로마노


Detachment 보고 무거운 마음에서 못벗어나 연속해서 고른게 이 영화라니.
아래 위층 사는 이웃 앤디와 마이클은 둘다 혼자 사는 중년의 남자라는 공통점때문에 가까이 지내는 사이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이클이 말기암 진단을 받고 앞으로 살 날이 6개월 정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절망한 그는 그냥 죽을 날을 기다리기 보다는 아직 생각하고 움직일 기력이 있을때 스스로 그 날을 선택하여 자기 손으로 세상을 마감하겠다고 결심하고 친구 앤디에게 자기의 마지막을 지켜봐달라고 부탁한다. 마이클을 만류하다 포기한 앤디는 이제 그의 죽음을 지켜봐주는 역할을 해주기 위해 그가 불법으로 약을 구입하고 죽음의 여행을 떠나는데 동행해준다. 그렇게 결연하게 죽음의 의지를 보이던 마이클은 막상 그 순간을 맞이하게 되자 자기가 선택한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이며 앤디를 당황케 한다.
 
제목의 패들턴 (paddleton)은 마이클과 앤디가 평소에 함께 라켓과 공을 가지고 하던 스쿼시 비슷한운동 이름이다. 단조로운 일상에 유일한 여흥이었던 그들만의 게임을 마이클이 떠나고 그가 없지만 여전히 돌아가고 있는 일상에서 앤디는 혼자서 벽에 공을 던지고 라켓을 휘두른다.
존엄사에 대한 생각은 물론이고, 존엄사가 아니더라도 가족없이 혼자 살아가는 중년의 삶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이다.



  







3. The Family Stone (우리 사랑해도 되나요?)


 

 

  • 미국, 2005
  • 감독: 토마스 베주커
  • 주연: 다이앤 키튼, 레이첼 맥아담스, 클레어 데인즈, 사라 제시카 파커

위의 두 영화를 보고나서 이젠 정말 마음 훈훈해지는 영화를 봐야할 때라고 고른 영화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울리는 가족 영화라니 이거다 싶었다. 그런 나의 의도와 맞아떨어지는 영화이기는 했다. 그런데 너무 내용이 너무 뻔한 것이다. 이렇게 뻔한 가슴 훈훈한 결말이 그래도 우리는 아직 필요한가보다. 나 처럼.
낯익은 배우들이 많이 등장하고 그들의 지금까지 캐릭터에 맞는 배역을 맡아 잘 소화해내고 있다.
제목의 Stone은 여기 나오는 가족의 성 씨 (family name)이기도 하고, 내용 중 등장한 다이앤 키튼의 저 반지를 가리키기도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다이앤 키튼이 자기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저 반지를 장래 며느리에게 물려주겠다고 약속했었는데 막상 아들이 결혼하겠다고 데려온 여자가 맘에 안들어 반지 물려주기를 거부하는 내용이 나온다.














4. To the bone



 

 

  • 미국, 2017
  • 감독: 마티 녹슨
  • 주연: 릴리 콜린스, 키아누 리브스


릴리 콜린스가 신경성 식욕부진에 걸린 소녀 엘런으로, 키아누 리브스가 이 방면에 유명한 정신과 의사 윌리엄 베컴으로 나온다. 엘런은 왜 거식증에 걸리게 되었고 그녀는 과연 치료되는가?
영화에서 엘런을 비롯해 그녀가 치료를 목적으로 들어간 집단 환자들이 음식을 피하고 체중을 늘리지 않기 위해 하는 편법적인 행동들은 들어서 알고 있는 것도 있었지만 저렇게까지? 하며 놀라운 것도 있었다. 배급 당시 영화를 보고 따라할 위험이 있다는 경고가 붙기도 한 영화라고 한다. 
주연을 맡은 릴리 콜린스는 가수 필 콜린스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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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9-12-02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흥미로운 영화들 많이 보셨네요^^ 저도 보고픈 맘이 드는데 이 영화들은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건가요?(신문물이 두려운 1인 @_@;)

hnine 2019-12-02 17:14   좋아요 0 | URL
저는 넷플릭스로 보았는데 신문물아닙니다 제가 볼 정도면. ㅋㅋ
투더본 같은 영화는 아예 넷플릭스에서만 상영했다고 하네요.
저 중에 제일 권할 만한 영화를 뽑으라면 Detachment 를 고르겠어요.
저기 올리지 않은 영화중에도 괜찮았던 영화가 꽤 있는데 괜찮은 정도이지 아주 좋다고 할 정도는 아니어서 안 올렸어요.

Nussbaum 2019-12-02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고 보면 저도 참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많이 보기만 하고 정리를 못해서 아쉽습니다. 그런 아쉬운 마음에 요즘 영화에 대해 제 생각을 어딘가에 적어보고 있는데 때로는 영화 보는 것보다 더 재밌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저는 학교 하면 2008년 프랑스 영화(감독 로랑 캉테) ˝클래스˝ 가 생각납니다. 위에 올리신 영화를 본 적 없지만 또 언젠가 올리신 영화를 만날 날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

hnine 2019-12-03 07:34   좋아요 0 | URL
예전에 비해 요즘은 영화보기가 쉬워졌으니까요. TV에서는 보고 싶은 걸 찾기가 어려운데 영화는 검색하면 보고 싶은게 훨씬 많아서 저도 요즘 영화보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책은 읽고 나면 간단하게라도 꼭 리뷰를 쓰고 있는 반면에 영화는 그냥 보고 말때가 많은데 이것 역시 짧게라도 기록을 남겨놔야겠구나 싶어요. 기록의 차원에서도 그렇고 말씀하신대로 쓰는 동안 생각이 한번 더 정리되고 나를 돌아보는 효과도 있고요.
˝클래스˝는 처음 듣는 영화인데 한번 보고 싶네요.

숲노래 2019-12-25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뜻있는 영화를 많이 챙겨서 보시나 봐요.
저는... 저희 식구가 영화가 너무 재미없다고 여겨
영화를 같이 안 보고, 혼자서도 안 본 지가 한 해 즈음 되어요...

적어도 100번을 볼 수 없는 영화라면
굳이 1번조차 안 보아도 된다고...
요새 새삼스레 느껴요.

같은 영화를 왜 다시 보느냐 묻는 분들이 있지만,
아름다운 영화는 다시 볼 적마다
새롭게 느끼고 배우는 대목이 늘 있어서
100번 아닌 1000번 넘게 보기도 해요..

hnine 2019-12-26 09:29   좋아요 0 | URL
일단 시간 여유가 많이 생겼어요. 그리고 영화 보기가 예전보다 더 편해졌고요.
책, 영화, 동영상, 잘 골라서 보면 좋은 것들이 많아요.
다시 보는 영화 말씀하시니, 저는 새로운 영화 보기 바빠 예전에 본 좋은 영화 다시보기는 좀처럼 하지 않고 있었네요. 본 영화라 할지라도 새로이 다가오는 영화는 새로운 영화가 될텐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