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3 - 1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3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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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은 독수리였을까 작은 늑대였을까, 어여쁜 꽃, 구슬 같은 차갑고 맑은 빛, 서희는 그런 온갖 것을 벌써부터 지니고 있는 듯 싶었다 (106쪽)

 

저런 이미지의 사람을 본 적이 있던가. 이제 열한 살이 된 서희를 묘사한 부분이다.

아들 최치수를 교살한 범인을 밝혀낸 것은 윤씨부인이었다. 윤씨부인의 심문에 말려들어가 덜미를 잡힌 김평산은 관청으로 끌려가 처형되고, 살인을 도운 혐의로 칠성 역시 처형된다. 다만 배속의 아기를 생각해서 귀녀는 해산까지 투옥되었다가 아들을 낳은 후 죽는다.

남편 칠성이 처형된후 아이 둘을 데리고 홀연히 평산리를 떠났던 임이네가 3권에서 다시 마을로 돌아오고, 월선과의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으로 애달아하는 용이는 엉뚱하게 임이네와 사이에 아들을 낳는다.

호열자 (콜레라)가 온마을을 쓸어 김서방을 시작으로 윤씨부인, 봉순네, 강청댁을 포함해 마을을 초토화 시키고, 열한살 서희는 최참판가의 유일한 혈육으로 남겨진다. 부인과 아들까지 데리고 최참판가에 와있던 조준구는 이 기회에 최참판 집안의 재산을 차지하려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어려서 부모의 정을 제대로 못받고 자란 것도 모자라 집안의 기둥이던 할머니까지 잃은 서희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성격이지만 아직은 어린 나이. 수동, 길상, 봉순이 그나마 서희를 보호하기 위해 똘똘 뭉친다.

세사람의 공동전선은 더욱 견고해졌다. 그들은 매일매일 적진속에서 서희를 지키듯 긴장해 있었으며 표정은 삭막하였고 도사리는 맹수의 자세 같은 투지에 차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세사람사이에 다른 어떤 누구도 끼워주려 하지 않았다. (...) 최참판 댁 안의 별당은 한개의 성이며 봉순이는 전령병이요 수동이와 길상은 결사대 같은 것이었다. (367쪽)

 

업친데 겹친격 쌀농사에 보리농사까지 흉년이 들어 평사리에는 굶어 죽는 사람까지 생겨나자 인심은 흉흉해진다.

'세상에 별놈의 죽음이 다 있지마는 굶어 죽는 것 같이 애참할까. 농사를 지어 곡식을 거둬들이는 농사꾼이 더 많이 굶어죽는다. 와 그러꼬? 풀 한 페기 뽑아본일이 없는 놈들이사 어디 굶어 죽던가? 와 그러꼬?' (387쪽)

굶주림에 시달리다 부인은 먼저 숨이 끊어졌고, 그것을 모르는 서서방은 자신도 역시 곧 마지막 순간을 맞을 것을 알면서도 말은 안나오고 다만 부인을 보살펴달라는 듯 손으로 부인을 가리켜보이는 것을 옆에서 목수 윤보가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하는 말이다.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야 할때 작가는 지문 처리보다는 마을 사람들끼리 주고 받는 대화를 주로 이용하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런데 그 대화도 어찌나 자연스럽고 마음을 쓸어내리게 하는지. 주변인물이 빨래하면서, 밥 지으며, 지는 해를 바라보며, 배를 기다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대사 한줄도 작가는 많이 고심하며 썼겠구나 생각하며 읽는다.

책을 읽으며 내용뿐 아니라 이런 생각까지 하며 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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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명의 집 - 북유럽 스타일 리빙 전문가들의 작은 집 인테리어 123명의 집
악투스 지음 / 나무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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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에 '악투스(Actus)'라는 이름의 가구 회사가 있나보다. 주로 북유럽 가구를 수입, 판매하는 회사라는데, 이 회사에서 사원들 123명의 집을 촬영하여 만든 책이다.

123명의 집과 함께 그 집에서 눈의 띄거나 특색있는 소품, 가구 등이 한 집당 20컷 이하의 사진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한 집당 많은 지면이 할당되어 있지 않지만 100명이 넘다 보니 책은 꽤 두툼하다. 즉, 들고 다니며 보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처음엔 사진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사진도 사진이지만 그 집에 사는 사람에게 주어진 12개 질문에 대한 답을 읽는 것이 더 흥미로왔다. 12항목의 질문이란 다음과 같다.

1. 집의 타이틀을 정한다면?

2. 인테리어 테마는?

3. 이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4. 방을 잘 정돈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조언 한마디

5. 집에 절대 두고 싶지 않은 것은?

6. 수집하는 것이 있는가?

7. 인테리어를 세련되게 하는 결정적인 아이템이 있다면?

8. 인테리어 센스를 연마하려면?

9. 나에게 이상적인 집이란?

10. 좌우명은?

11. 좋은 가구란 어떤 가구인가?

12. 마지막으로 인테리어란?

의식주 중 그 사람의 철학이 제일 잘 드러나는 것이 그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닌가 평소 생각해왔다. 똑같은 것을 먹고 똑같은 옷을 입을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의 집도 똑같은 집은 없다. 규격화된 아파트라 할지라도 어떻게 꾸며놓고 사는지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래서 아마 위의 열두가지 질문 중에 좌우명을 묻는 질문이 들어가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평범한 질문에 비해 인상적인 답변이 많았다.

 

집에 절대 두고 싶지 않은 것은 이란 질문에 대해서는,

-긴장감

-만화책 (읽느라고 잠을 못자니까)

-좋아하지 않는 물건

-TV, 침대

-화려한 꽃

-어중간한 것

-팬시상품

-신발이 집안에 널려 있는 것

등등. 집 주인의 성격이 드러나지 않는가?

 

좌우명은 더하다.

-지속은 힘이다

-생각하지 말고 느껴라 (Don't think, feel.)

-각본은 내가 쓴다

-어떻게든 되겠지!

-도전하지 않고서 후회하지 말라

-너무 애쓰지 않는 만큼만 애쓰자

-장난기를 발휘하자

-뭐든 좋지만 어찌 되든 좋은 건 아니다

 

집에는 그 사람의 사고 방식, 좋고 싫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니, 그래야하고 그것이 진정한 내 집, 내 공간일텐데 주위에 둘러보면 너무나 획일화된 공간에서 살고 있지 않나 싶다. 집을 꾸미는 소품보다는 그 시대 필수적인 가전제품, 거실 소파 뒤의 커다란 가족 사진, TV 위치까지 집집마다 똑같다. 거실의 서재화, 무분별한 한옥화가 유행처럼 번지고, 사는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집, 시간의 축적이 느껴지지 않는 집이 대부분인 현실. 새것이 좋은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나와 함께한 것이 좋은게 아닌지.

 

옆에 두고 심심할때마다 들취보기 좋은 책, 잠 잘때 누워서 들취보다 잠들기 좋은 책이 한권 더 늘었다.

내 집을 한번 둘러본다. 인테리어에 앞서 청소부터 좀 해야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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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8-08-05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단 청소 끝냈어요~ 인테리어는 자신 없어요 -.-

hnine 2018-08-05 22:50   좋아요 0 | URL
내 맘대로 하면 그게 인테리어인것 같아요. 남의 맘대로 하지 않고, 남이 한대로 따라하지 않고요. 그런데 그게 그리 만만치 않더군요. 내 맘대로 한다는 것에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없어하기때문에 그런가봐요.
청소만 끝내도 그게 어디예요. 저는 매일 미뤄요 ㅠㅠ

유부만두 2018-08-05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다 ...청소....;;;;;

hnine 2018-08-05 22:51   좋아요 0 | URL
청소가 모든 인테리어의 기본이자 출발이라잖아요. 저는 알면서, 보면서, 모르는척 못본척 한답니다.
 

리스트 만드는 일은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장기, 단기, 평일, 주말, 바쁜 날뿐 아니라 한가한 날은 한가한 날대로 모처럼 생긴 여유를 어떻게 보내야 아깝지 않을까 더 고심하며 리스트를 만들었다.

제일 촘촘한 리스트를 만들게 된건 고3 수험생 시절이 아니라 아이엄마 타이틀을 달고 난 후였다. 아이 중심의 일정을 먼저 적어넣고서 그 사이사이에 요령있게 내 스케쥴을 끼워넣어야 하기 때문에 내 일은 한 단위가 아니라 늘 조각조각 나뉘어 들어가야했다. 아마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리스트 작성은 시간관리의 기본이고 핵심인 것은 사실이지만 누구나 언젠가는 이런 리스트 없이 살아보길 꿈꾸지 않는가?

눈뜨면, 아니 잠들기 전 다음날 할 일 리스트를 만들어놓고 그것에 따라 임무 수행하듯이 살아온 수십년.

작년 여름 이후 나는 직업이라고 해오던 일을 어찌어찌 해서 그만두게 되었고, 내 일정의 중심에 있던 아이도 고등학생이 된 후로 내 역할은 아이 일정을 쫓아 다니는 대신 아이가 스스로 자기 할일을 알아서 하게 '지켜봐주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굳이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해야할 일 리스트를 작성할 필요가 없어졌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일까. 울적했다. 아직도 가끔 울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얼마나 복에 겨운 생각인지 깨닫고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때를 그리고 바라며 일하고 있을텐데. 리스트가 굳이 필요없는 하루 말이다. 그런 시간이 주어졌는데 (자의든 타의든) 그걸 우울의 이유로 삼아 늪으로 끌고 들어갈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버킷리스트를 만들지 않는 이유는 만약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미래의 어느 시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희망사항으로 리스트에 올려놓고 나중에 저절로 이루어지길 바라게 되는 것은 아닐지. 또는, 희망사항이 어느 순간 숙제의 일종, 해야만 할 일로 둔갑해버리는 것은 아닐지.

난 그냥 오늘 하루, 가능한 범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 것이다.

소.확.행.

그말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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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8-08-05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확행이 무슨 말인지 모르다가 큰아이가 알려줘서 알았어요. 근데 전 아무리해도 줄임말이나 신조어에 익숙해지지 않네요.

여유있는 삶을 살 수 있다니, 정말 부러워요! 저는 작은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때쯤 일을 그만두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과연 그날이 올까? 싶어요. 앞으로 10년 후의 일을 생각하기엔 현실이 너무 고되고 힘들어요.

hnine 2018-08-05 23:00   좋아요 0 | URL
저도 줄임말, 신조어 잘 모르는데 소확행은 알아요. 제 맘에 드는 말이라서요 ^^
감은빛님, 10년이 그리 오랜 세월이 아니더라고요. 다시 돌아가고 싶냐면 그렇지도 않아요. 좋은 기억들로만 남아있지도 않고 후회스런 일도 많고 부끄러운 일도 많고요. 다시 돌아갈수 있다고 해도 저라는 사람이 그대로인데 더 나은 결정과 결과를 보장할 수도 없을테고요.
위에 어떤 사람의 좌우명이 ˝너무 애쓰지 않는 만큼만 애쓰자˝라고 한것을 보고 저는 그말의 의미가 단번에 가슴에 팍 하고 와닿았어요. 고되고 힘든 현실이 너무 오래 가지 않았으면 해요.
 
토지 2 - 1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2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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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하면 사람들은 어떤 인물을 제일 먼저 떠올릴까. 아마 '서희'가 아닐까. 그렇다면 그건 주인공이 뚜렷해야하는  TV 드라마의 영향일것이다. 책에선 꼭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게, 2권에서 서희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귀녀, 최치수, 그밖의 최참판댁 노비와 평사리 작인들 이야기가 지루할 틈 없이 펼쳐진다.

몰래 같지만 알 사람은 다 아는 용이와 월선의 연정은 별당아씨와 구천, 길상과 서희 관계보다 더 절절하다.

노비라는 신분에서 탈피하여 다른 삶을 살아볼 욕망이었다고 표현하면 너무 고상한가. 최치수라고 하는 병적으로 고립된 인간의 상황을 이용하여  노비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배부른 삶을 꾀한 귀녀와 김평산, 그리고 여기에 동조하는 우매한 인간 칠성이에 비하면 그저 귀녀와 연을 맺고 싶어했던 사십줄 총각 사냥꾼 강포수의 욕망은 차라리 순수했다.

최치수는 교살되고, 이 일로 인하여 누구는 자결하고 누구는 식솔을 데리고 몰래 동네를 뜬다.

구천과 김개주, 윤씨부인의 관계가 2권에서 모두 설명되는데, 이것이 최참판 집안 비극의 시초가 되는 것 같지만 사람일에 어디 분명한 시작점이 있을 것인. 끝이라면 혹시 있을지 몰라도.

구천과 함께 달아난 아내를 찾아 사냥길에 나선 최치수 앞에 지네 한마리가 갑자기 나타난 것을 보더니, 잃어버린 짝을 찾아내려고 또 한마리 지네가 곧 출현할 것이라고 옆에 있던 화전민 아낙이 대수롭지 않게 던지는 말에, 최치수는 새파랗게 질린다. 작가는 이런 대목을 어찌 이렇게 절묘하게 인용하였는지. 여기서 배운 말로 하자면 소분지애씨* 이겠지만 말이다.

(* '약과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뜻 )

악인, 의인, 노비, 양반 등 실로 다양한 연령층, 다양한 성격의 인물들이 작품 전체에 걸쳐 등장하는데 작가는 그 중 어느 하나 애정을 갖지 않은 인물이 없었다고 한다. 악인에게조차도 마찬가지이다.

병적인 인간 최치수가 장암선생에게 자신의 처지에 대해 스스로 설명한 부분을 들어보자.

산에 와도 사냥꾼이 못 되고 마을에 가도 사내가 못 되고 서원에 들어서도 학자가 못 되고 만석꾼 땅문서는 있되 장자가 못 되고 어머님이 계셔도 아들이 못되고 자식이 있어도 아비가 못 되고 계집이 있을 때도 지아비가 못 된 위인이 개화당이 되겠습니까, 수구파가 되겠습니까, 가동들을 거느린 의병대장이 되겠습니까. 신선이 못 되면 허깨비라도 되어야겠습니다만 무엇에 미쳐서 허깨비가 되오리까. 그럼에도 잡사를 잊지 못하니 신선인들, 이 적막한 산속에서 어찌 이다지도 저는 사람임을 잊지 못하고 영신이 없음을 절감하게 되는지요. (318쪽)

 

무거운 숙명적 삶을 살아야했던 어미 윤씨부인때문에 일찌기 어미 정을 못받고 자란 최치수란 인물은 위에 인용한것처럼 어디에도 부합하지 못하는 고립된 삶을 살았고 결국 짧은 생을 살다 간다. 그의 자조적인 자기연민 대사에서, 작가는 그를 아예 악인으로만 그리지 않았구나, 오히려 그 반대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1973년 작가가 쓴 토지 1부를 마치고 남긴 서문 일부를 옮겨본다.

앞으로 나는 내 자신에게 무엇을 언약할 것인가.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 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 도전함으로써 비약할 것인가. 다만 확실한 것은 보다 험난한 길이 남아 있으리라는 예감이다. 이 밤에 나는 예감을 응시하며 빗소리를 듣는다.

-1973년 6월 3일 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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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 - 1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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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토지는 읽기 아닌 보기로 시작되었다.

KBS 대하드라마 토지.1979년 내가 중학교 1학년때, 원작이 완결되기도 전이었다. 그래서인지 드라마가 어떻게 결말을 짓고 끝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10년 쯤 후에 다시 드라마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배역도 바뀌고 처음 중학생때 나를 TV 앞으로 끌어당기던 마력과 같은 감동은 같거나 덜했지, 더하진 않았다. 

과연 완결이 될 것인가 그때도 말이 많았는데, 결국 박경리 작가는 완결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미 내용은 다 알고 있기도 하고 워낙 드라마 보면서 이미 감동을 받을대로 받았다는 생각에 굳이 열아홉권이나 되는 것을 책으로 읽어야 하나 확신이 들지 않았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토지 1권을 서고에서 빼어든 것은 참 알수 없는 일이다. 

토지 원작은 1969년 9월에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으로 이후 <문학사상>, <주부생활>, <독서생활>, <한국문학>, <마당>, <정경문화>, <월간경향>, <문화일보> 등에 연재를 계속하여 1994년 지빌 26년만에 완간되었다. 이렇게 여러 지면을 전전한 이력에서도 짐작하듯이 출간과 휴간을 거듭해야했고, 작가 자신이 암선고를 받기도 하였다.

원래 내 버릇이기도 하거니와 토지는 특히 소설을 읽으며 작가 박경리를 읽고자 할 것 같다.

1897년의 한가위.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 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토지 1권의 첫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여기서 무색이란 색깔이 없는 것, 즉 흰색이나 검정색등 무채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알록달록 물감을 들인 옷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왜냐하면 나 어릴 때 할머니께서도 알록달록한 옷을 보고 무색옷이란 말을 쓰셨던 기억이 나고 문맥상을 봐서도 그렇기 때문이다. 

추석날 마을 풍경 묘사로 시작되는 1권에서 이미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가닥이 거의 다 펼쳐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 하다. 별당아씨와 구천이는 이미 도망을 갔고, 아직 엄마 품이 그리운 어린 서희는 엄마 언제 오냐고 칭얼거리면서도 앙증맞고 고집이 보통 아닌, 범상치 않음을 보여준다. 위엄 속에 가려진 아픔을 가진 윤씨 부인, 최치수의 일그러진 성격 뒤에 감춰진 가족 내력. 어디 최참판 가족 뿐인가. 어쩌면 이 소설을 더 재미있고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것은 이 마을 사람들 한사람 한사람 누구도 그냥 넘어가지 않게 그 성격이 개성있게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용이와 월선, 임이네과 귀녀. 드라마에서 연규진이 배역을 맡았던 조준구. 그리고 길상을 빼놓을 수 없다. 길상을 마음에 품고 있으나 서희 아가씨를 모시는 입장에서 드러낼 수 없어 숨기고 사는 봉순.

지역 특색어 때문에 뒤에 나온 낱말 풀이편을 종종 들춰가며 읽어야 했지만 그래도 그 재미을 넘어서진 못한다.

1권이라서 그런가 금방 읽었다.

이제 2권으로.

 

 

 

 

 

여름밤은 짧다. 짧은 밤에, 가는 데 삼십 리 오는 데 삼십 리, 육십 리 길을 걸었으니 집으로 돌아왔을 때 사방은 옥색 빛으로 걷혀져가고 있었으며 울타리에 핀 박꽃에 이슬이 맺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307쪽, 베껴적어본 문장 중 하나이다. 집에 돌아온 시간은 몇시 몇분 이었다 이렇게 썼을 문장을 작가는 저렇게 썼구나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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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8-07-30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운 여름에 대하소설에 빠져 더위를 잊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전 작년엔가 ‘혼불‘을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무색‘이 여러가지로 쓰이는군요.
색깔이 없는 것도 무색이지만, 알록달록 물감을 들인 것도 무색이라니 말예요~^^

hnine 2018-07-30 23:15   좋아요 0 | URL
너무 더워서 솔직히 참을성 없는 저는 뭘 해도 끈덕지게 못하고 있어요 ㅠㅠ
혼불은 저희 집에 1권 한권만 있네요. 제가 대하소설을 원래 잘 못읽는데 한번 시작하면 시간이 걸려도 끝장을 봐야하는지라 섣불리 시작을 못하고 있답니다. 토지는 대화가 많아서 소리내어 읽으니 더 재미있더군요.
줄거리를 이미 알고 있는지라 다음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하며 읽는 재미 대신 작가가 어떤 심정으로 썼을까 혼자 상상하면서 읽는 재미를 느껴보려고요.

2018-07-30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8-07-30 23:17   좋아요 0 | URL
마음을 비우고, 큰 기대도 내려놓고, 빨리 읽으려는 욕심도 내지 말고, 그렇게 심심할때마다 읽으려고요. 19권 쓰신 작가도 계신데, 느긋하게 맘 먹고 찬찬히 읽어나가는건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