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이 쉬워지는 미술책 - 박물관과 미술관 가기 전에 읽는 사고뭉치 9
윤철규 지음 / 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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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저자의 <이것만 알면 옛 그림이 재밌다>는 읽을 때 저자가 글을 참 재미있게 잘 쓰는 사람이라는 걸 눈치 챈바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책을 재미로만 읽을 수는 없었다.

 

 

 

그럴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애초에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제목에 있는 '이것만 알면'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하는데, 경기 규칙을 어느 정도 알아야 운동 경기를 보는 재미가 있듯이 옛 그림도 어느 정도의 기본 지식이 있어야 재미를 느끼며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재미 반 공부 반 이라는 느낌으로 읽었긴 하지만 이 책은 절대 중고책으로 팔아 정리할 수 없는, 소장 도서로서 자격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책이라고 판단, 책꽂이에 고이 모셔두고 있던 중, 서점에 갔다가 저자의 다른 책을 발견하고 또 구입한 것이 이 책 <옛 그림이 쉬워지는 미술책>이다. 

 

 

 

먼저 읽은 책보다 훨씬 읽기 수월하다. 옛그림에 대한 설명을 앞세우기 전에 옛그림에 대한 독자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보이는 것은 앞서 읽은 책에 이어 이 책에서도 두드러진다.

 

  • 옛 그림은 무엇을 그렸을까?
  • 옛 그림은 왜 그렸을까?
  • 옛 그림은 누가 그렸을까?

 

우선 이 세 항목을 첫 장에서 간단히라도 분명히 하고 넘어간 점도 마음에 든다.

 

 

 

그림을 본다는 말도 하지만 때로 그림을 읽는다고도 한다. 그것은 단지 그림 감상을 유식하게 표현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그림에 감추어진 내용, 의미, 관련된 일화를 떠올리면서 즐기는 경우를 구별하여 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옛 그림 중에 '고사관수도'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서 '고사'란 한자로 古事, 즉 '옛 일'을 뜻하는 것으로 주로 중국에서 전해져내려오는 유명한 옛일을 말한다. 중국 고사라면 수없이 많을터이라 그렇다면 그걸 다 알아야 우리 옛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으려나 겁 먹을 수도 있겠으나 한국의 옛 그림에 나오는 유명한 고사는 20-30여 가지 남짓이므로 그 정도만 알아도 된다고 안심시키기도 한다.

앞서서 더 자세한 내용의 책을 읽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내용으로 지루할 틈 없이 끝까지 간다.

 

  • <몽유도원도>는 왜 명작일까?
  •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조선에는 유난히 초상화가 많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참고로 서양화에서 가장 많이 그려진 것은 예수, 그다음이 성모 마리아이다.)
  • 자화상은 주로 어느 때 어떤 사람이 그리게 될까?
  • 신윤복은 알아도 신가권은 처음 듣는다고요?
  • 김홍도의 인기는 어느 정도였는가?
  • 어디까지가 그림이고 어디까지가 글씨인가?
  • 옛 그림 속에 등장하는 동물, 곤충, 식물의 다양성-쇠똥구리, 매미, 메뚜기, 개구리, 두꺼비, 심지어 고슴도치까지
  • 화조도를 그리는데 필요한 것은 섬세한 솜씨 + '관찰력'

 

 

 

 

다음 장을 넘기는 순간 이제 그만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계속 읽게 된다.

 

 

다음 그림은 책 속에 인용되어 있는 조선 화가 이인상의 <송하관폭도>인데, 누가 그렸는지, 제목은 뭔지 읽기 전에 그림 속에서 폭포가 떨어지며 만드는 오른쪽 아래 동심원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것도 다 그렸구나 하고.

 

 

 

 

 

 

 

책에는 따로 그 설명이 나와 있지 않아서 내심 기분이 좀 좋기도 했다고 고백해야겠다. 발견하는 재미이다. 맞든 틀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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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5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8-07-16 05:03   좋아요 0 | URL
예전엔 눈길도 안주던 것들에 관심이 가기도 하니 참 알수 없지요. 예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것에 시들해지기도 하고요. 옛그림은 중학교 미술 시간에 사군자 그리는 법 잠깐 배우면서 관심이 생기긴 했었는데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했는데 근래에 다시 관심이 생겼어요. 아직 왕초보이긴 하지만요.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적격인 책이었답니다.

페크pek0501 2018-07-15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이란 맞고 틀리고가 없지요. 각각 느낀 대로가 정답인 셈이지요. 그 다양성이 예술의 매력.
그래도 알고 싶어서 내가 너무 모르는 것 같아서 저도 한때 미술 관련 서적을 사 볼 때가 있었어요.
그중 화가들에 대해서 인터뷰를 한 책이 인상에 남습니다. 꽤 독특한 생각들이 있었거든요.
화가는 역시 남다른 데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화가가 글쓰기를 배운다면 개성이 넘치는 좋은 글을 쓸 것 같아요.
이미 글을 잘 쓰는 화가가 있지만요.

잘 보고 갑니다. ^^

hnine 2018-07-16 05:17   좋아요 0 | URL
화가로서 글 잘 쓰는 분들이 몇분 떠오르네요. 화가는 아니지만 조각가 안규철 같은 분은 기자 출신이기도 해서 글을 아주 잘 쓰셨어요. 황주리나 김점선 같은 화가들은 이미 이름난 에세이스트 이기도 하고요.
어제 이응노 미술관에 다녀왔는데 그분은 정말 한사람이 아닌 것 처럼 다양한 세계의 그림들을 남기셨더라고요.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제 눈 앞에서 보는 것은 느낌이 다르더라.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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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8-07-12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런데 사진속 미륵사지 석탑은 원래 모습(첫번째 두번째 사진)인가요 아님 개보수를 한것인가요??

hnine 2018-07-12 23:21   좋아요 0 | URL
미륵사지에 탑이 세개가 있었대요. 가운데 가장 큰 목탑이 있었는데 그것은 완전히 타버려서 복원이 불가능하고요, 타버린 목탑 양쪽으로 석탑이 두개 있었는데 하나는 훼손된 대로 그나마 남아 있어서 복원중이고 (네번째 사진), 다른 하나는 흔적만 남아서 아예 새로 만들다 시피 한 것이 첫번째 두번째 사진의 석탑이랍니다.
제가 더 친절한 설명을 달았어야 하는데 달랑 사진만 올렸군요. 그래도 관심을 가지고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탑인지 건물인지 모를 정도로 규모가 컸어요.
 
느림보 마음 - 문태준 산문집
문태준 지음 / 마음의숲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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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이렇게 시작하는 시 <가재미>. 문태준 하면 떠오르는 시이다. 1970년 김천 태생. 현재 한국의 대표적 서정시인의 한 사람이라고 할수 있는 그가 낸 산문집 <느림보마음>은 2009년에 처음 출판되었고 2013년 2쇄 출판을 거쳐 올해는 2판이 발행되었다.

산문은 저자의 성격을 어쩌면 시보다 더 직접적으로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는 것이므로 산문마다 읽는 사람에게 전달되는 느낌이 다른 재미가 있다. 감성과 느낌으로 충만한 글,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살아있는 글, 생에 대한 통찰과 의지가 느껴지는 글 등, 사람의 성격이 다양한 것처럼.

문태준 시인의 산문도 짐작하듯이 그가 쓴 시의 분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사랑, 인간살이에 대한 사랑이 기본 바탕이 되니 따뜻하다. 애통하지 않으면서 따뜻하다.

책의 첫 페이지 작가의 말에서 그는 느린 마음에 대해 말한다. 살아오면서 내가 사랑했던 시간은 누군가의 말을 가만히 들을 때였고 뒤로 물러설 때였다고. 작은 자연이 되어 자연의 속도로 천천히 걸어갈 때였다고. 너무나 신속하고 더욱 신속하기 위해 애쓰는 세상에서 자연의 속도를 느끼고 딱 그 정도 속도로 걸어가고 싶은 저자의 마음에 금방 동화가 되는 걸 보니 우리는 신속해지기 위해 애쓰며 살고 있으면서도 천천히 가고 싶은 마음도 살아있었나보다. 잘 드러내지 않고 살고 있을 뿐이지. 이렇게 평소에 드러나지 않는 우리의 마음을 드러내보일 수 있는 것이 작가가 하는 일 아닐까. 그 형식이 시이든 산문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난히 더웠던 어제, 땀 때문에 고생하지만 여름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쓴 그의 글이 유난히 더 눈에 들어왔다. 여름은 '자라나는 계절'이기 때문이란다.

여름은 우리에게 일념에 대해 말한다. 한결같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용기백배한다는 것에 대해서 말한다.

조금의 빈틈도 없는 계절이다. 전국의 선원에서 스님들이 하안거를 하는 모습 같다. 은산철벽을 무너뜨리며 여름은 나아간다. 여름은 헐후하게 하는 일이 없다. (339쪽)

 

하루 가운데 가장 아끼는 시간이 새벽이라고 하는데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나로서 반갑기 그지 없다. 아직 식구들이 일어나기 전 홀로 앉아 있는 시간. 도시에 살면서도 이렇게 다양한 새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 놀라는 시간. 나와 세상이 맞대면 하고 있는 것 같은 시간. 생각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생각이 비워지는 시간.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있는 건 오로지

새날

풋기운!

 

운명은 혹시

저녁이나 밤에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올는지 모르겠으나,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그가 본문에 인용한 정현종의 시 <아침>의 일부이다. 운명보다 새기운이 우세한 시간 아침. 아침을 놓치고 사는 일상이란  그래서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가 시인이라서 다른 사람의 시를 인용한 부분이 적지 않고, 불교 방송에 적을 두고 있어서인지 옛 스님들의 일화도 종종 나온다. 그러나 과하지 않다. 저자는 무엇이든 과하게 할 사람이 아닐 것 같다.

의식을 깨우고 날 세워 살아야 하는 일이 많은 요즘이지만, 우리 마음 한구석에는 이렇게 따뜻하고 수용적이고 느리게 한숨 돌리게 하는 글이 그만큼 결핍되어 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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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1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8-07-11 11:43   좋아요 1 | URL
문태준 시인의 시는 너무 어렵게 쓰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얕은 감성에만 호소하는 것들도 아니라서,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stella.K 2018-07-11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연수, 김중혁, 문태준이 아삼육겸 트로이카라는데
문태준을 못 읽어봤군요. 언제고 읽어봐야할 텐데...ㅠ

hnine 2018-07-11 21:19   좋아요 0 | URL
세 사람이 초등 동창, 고등 동창으로 엮여있더군요. 그런데 언뜻 보면 세사람 분위기가 많이 다르지 않나요? ^^
글에서 풍기는 문태준 시인은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 같아요. 마음이 따뜻해지고 싶으실때 한번 읽어보세요.

페크pek0501 2018-07-15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서 저자가 참 따뜻한 사람이구나 싶었고, 또 그런 분이 수필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시적인 문장이 좋아서 눈에 띌 때마다 밑줄을 긋는 재미도 있었어요. 시인은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생각날 때마다 펼쳐 보고 싶은 책 10위 안에 듭니다. 현재는.

hnine 2018-07-16 05:11   좋아요 0 | URL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느림보마음이라는 제목이 단지 형식적인 제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전엔 9이면 10까지 채우려고 노력했는데 요즘은 거꾸로 9상태에서 멈춰보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덜 악착같아지려고요.
 

 

 

 

 

 

비오는 주말 제가 사는 동네 그냥 산책하기 심심해서 사진 찍으며 돌았습니다.

사진 아래 이름을 달아놓긴 했는데, 틀릴지도 모르겠어요.

 

 

 

 

 

1. 꼬리조팝나무

 

 

 

 

2. (자목련인줄 알았는데) 앤목련

 

 

 

 

 

3. 도라지

 

 

 

4. 도라지

 

 

 

 

 

5. 도라지

 

 

 

 

 

 

6. 수국

 

 

 

 

 

7. 토마토

 

 

 

 

 

8. 아욱

 

 

 

 

 

9. 옥수수

 

 

 

 

 

 

10. 들깨

 

 

 

 

 

 

11. 비비추

 

 

 

 

아파트 숲 가운데 작은 땅에 이렇게 알뜰하게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이 계시네요. 돌무더기 많았을 땅을 밭으로 일구기 위해 돌 골라내는 일부터 쉽지 않았을 듯 합니다.

농산물 외 꽃나무들은 저희 아파트 단지 내에서 찍은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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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7-05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목련은 처음 듣는 이름인데, 꽃이 다른 목련보다 늦게 피는 나무인가봐요.
예쁜 정원 같습니다.
hnine님, 시원하고 좋은 여름밤 되세요.^^

hnine 2018-07-05 22:22   좋아요 1 | URL
천리포 수목원에 가면 아주 다양한 종류의 목련이 있답니다. 앤목련도 그중 하나이지요. 그런데 막상 제가 사는 아파트 정원에 심어져 있는 저 목련이 앤목련인줄은 모르고 있었어요. 이번에 알았지요.
여긴 지금 비가 많이 와요. 저녁 9시부터 호우주의보가 내렸네요.
그래도 마음만은 시원하게! ^^
서니데이님도 편한 밤 되세요. 좋은 내일 맞으시고요.

자목련 2018-07-19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위를 날려주는 빗줄기처럼 맑고 시원한 사진들, 감사해요^^

hnine 2018-07-19 18:37   좋아요 0 | URL
사진 설명중에 자목련이 나왔어요 ^^
여름은 자라는 계절이라고 문태준 시인이 그의 에세이집에서 한 말을 일부러 떠올리며 더위를 견뎌내보려 하고 있어요. 이 더위의 댓가로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성장한다고.
맑고 시원하다 해주시니 제가 감사합니다~
 

 

 

 

 

 

 

 

 

 

 

 

 

 

 

 

 

 

 

앞서 소개한 조은의 시들은 그나마 공감하고 좋아하고 부러워할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반해, 뒤이어 읽은 신용목의 시들은 부러워도 못하겠다. 시가 너무 난해해서 이해도 안되고 공감도 못하겠다면 차라리 이건 내가 좋아할 타입이 아니라고 제껴두고 말았을텐데. 그런 시집일거라 지레 짐작하고 여태 읽어볼 생각을 안하고 있었던 것을 얼마전 '노을 만평'이라는 시를 만나게 된 것을 계기로 마침내 구입하여 읽게 된 것이다.

 

 

 

 

 

 

 

 

 

과연 언어를 부리는 능력이 특별했다. 

 

고생대가 데려가지 않은 은행나무 아래서 빗소리를

듣는다

버려진 그늘

 

-'투명한 뼈' 중에서-

 

한 상황에서 이 시인은 도대체 얼마나 광범위한 시간대와 단어들과 소리와 감각과 경험을 동시에 떠올릴 수 있는 것일까. 그렇게 조합되어 나오는 한줄 문장이 어찌 독특하고 세밀하고 정확하지 않으며 특별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통증처럼 뱉어내는 새떼/

...

바람에도 지층이 있다면 그들의 화석에는 저녁만이 남을 것이다/

...

내 각오는 세월의 추를 끄는 흔들림이 아니었다/

...

아버지의 뼈 속에는 바람이 있다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시 '갈대등본'중에서 몇 구절 뽑아본 것인데 이 시 마지막 구절이 이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몇번 반복해서 읽다가 생긴 의문점. 여기서 '걸어야 한다'가 다음 중 어떤 뜻으로 쓰인 것인지. walk?  hang?  bet?

어떤 걸 넣어도 뜻이 안통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행을 나누는 방법이 독특한 것을 모르고 잘못 교정이 된 줄 알았다.

 

 

신촌 현대백화점 앞

누에처럼 꿈틀거리는 버스들이

비 먹은 옷깃을 싣고 떠날 때

쓸모를 다한

복권이 젖는다

 

-'복권 한장 젖는 저녁' 중에서-

 

 

'한 장 복권'의 한 과 장을 저렇게 띄어쓸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뒤에 다른 시에도 비슷한 예가 나와서 이건 시인이 의도한 바 임을 알았다.

 

어둠을 길들이던 달빛이 어둠이 될 때까지

내가 깎은 내

마음의 절벽을 긁어내리는

 

-'목련꽃 지는 자리' 중에서-

 

 

그래도 이 시집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수작이라고 꼽고 싶은 시가 있었을까?

있다. 한번 베껴써보지 않을 수 없었던.

 

 

다비식

 

 

 

 

바위 위에 바위보다 한 발은 더 바다로 나가 석양볕에

늙은 뼈를 태우는 해송을 본다

 

 

서해 변산

물 위에,

하늘의 다비식

 

 

가지 저 끝에서 타올랐으니 그래서 어두웠으니

휘어진 허리 감고 사리 같은 달과 별 더러 나오리

 

 

날마다, 그러나 파도 끝 붉게 젖는 때

 

 

또 한 줄 바람을 긋고 갈라지는 채석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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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3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8-07-04 04:59   좋아요 0 | URL
유레카를 외쳐야하나요. 이유까지 이렇게 명확하게 이해가 될수가.
이 페이퍼를 쓴 소득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은 비오는 날 남편과 카페에 가서 찍은 것인데, 촛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유리창 빗물이 보이기도 하고, 비가 바닥에 그리는 동심원이 보이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마침 읽고 있던 시의 ‘투명한 뼈‘란 말도 읽어보니 ‘비‘를 의미하는 것 같기에 사진도 올렸어요.

일찍부터 새소리를 듣는 새벽입니다.



Nussbaum 2018-07-04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에 짧은 생각을 남기고, 잠시 어디 가려다가 벤치에 앉았습니다.

마침 서늘한 기온에 바람도 불어주어서 7월의 사치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일지 올려주신 사진과 시도 더 정겹네요 ^^

hnine 2018-07-05 08:29   좋아요 0 | URL
벤치에 앉아 한숨 돌리시던 중이군요. 아직은 해 떨어지면 서늘하니 못견딜 더위는 아니니 말씀하신대로 7월의 사치를 누릴 수 있지요. 저 지금 pek님께서 알려주신 문태준 시인의 수필집을 읽고 있는데 시인은 여름을 좋아한다고, 모든 것이 자라는 계절이기 때문이라고 썼더라고요. 그 생각 하면서 올 여름 본격적인 더위도 버텨보려고요.
여긴 새벽에 잠깐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어제보다 좀 덜 더울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