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지라드 (Alexander GIRARD, 1907-1993)

 

 

미국 모던 디자이너로 유명한 사람이라는데, 이름을 알고 일부러 보러간 전시는 아니었다. 디자인 관련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디자인을 공부해본 적도 없는 보통 사람이지만 이름을 들어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전시를 보고서 후회한 적은 없다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믿고 13,000원을 투자.

 

미국 뉴욕에서 미국인 어머니와 프랑스계 이탈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세살때 피렌체로 이주하여 유년기를 보내다가 10살때 영국 베드포드 모던학교라는 기숙학교로 보내진다.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학교를 다니는 동안 외로움을 달래는 방법으로 어린 지라드가 택한 방법은 자기만의 고유한 문자, 상징, 스탬프, 깃발등을 디자인하여 '파이프 공화국'이라는 가상의 나라를 세운 것. 이때의 작품들이 이번 전시에 포함되어 있는데 어릴 때부터 디자인 쪽의 능력을 타고 났구나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자기가 만든 문자와 상징을 이용하여 편지를 보냈다고 하는데, 이것보다 한술 더 뜨는 사람은 역시 같은 문자와 상징을 이용하여 답장을 보냈다고 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이다.

 

런던 AA 건축학교를 나온후 (나는 몰랐는데 남편 말에 의하면 지금도 있는, 유명한 건축학교라고 함) 뉴욕대학교에서 더 공부한 후에야 미국에서 '공인된 건축가'라고 스스로 부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건축가로 시작한 그의 커리어는 1936년 결혼 후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그로스 포인트 (Gross Point) 로 이주하여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인 토마스 A. 에슬링에서 일하게 되면서 디자이너 쪽으로 전환되기 시작하고 1949년 디트로이트 미술관의 큐레이터및 아트 디렉터로 고용되면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52년엔 허만 밀러 (Herman Miller)사의 텍스타일 디자인 디렉터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이 회사의 대표 상품들을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하는데 특히 텍스타일 디자인, 패턴 디자인에 대표적인 작품을 많이 남겨 그를 텍스타일 디자이너로 알려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1953년엔 두 딸과 함께 뉴멕시코 산타페로 이주, 1993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살았다. 사망후 그의 작품들은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 (Vitra Design Museum) 에 유산 위탁되었다.

국내 최초 전시인 이번 전시에는 이 미술관의 소장품 700여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시 전시장 내부에선 거의 모든 사진 촬영 금지 ㅠㅠ

대신 도슨트 졸졸 따라다니며 열심히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틀린 것 찾아내는데 남다른 특기라도 있는건지. 마리 로랑생 전시에 이어 여기서도 16번과 17번 두 판넬의 설명이 뒤바뀌어 있기에 도슨트에게 알려주었더니, 자기도 전시 시작하고서 발견했다고 한다.

 

 

 

 

 

 

 

전시장 입구 한쪽 벽면 장식.

여기서도 그의 특징적인 패턴주의를 엿볼 수 있다.

건축으로 시작한 그는 특별한 건축 이론을 펴진 않았지만 실용성만 강조하기 보다는 여기에 정신성도 추구하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각국의 문자로 패턴화한 작품인데, 그 유명한 베어 브릭 토이중에 지라드의 이 패턴이 들어가있는 것이 있다.

 

 

 

 

 

 

 

 

 

지라드는 엄청나게 정리 정돈을 잘하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

책꽂이 정리해놓은 것 좀 보시길. 가까이 보면 각 박스에 라벨도 얼마나 꼼꼼히 해놓았는지.

 

 

 

 

 

 

 

 

 

 

 

 

 

 

 

자기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꼼꼼하게, 구체적으로 적어놓았다.

디자인은 그냥 감각이나 직관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텍스타일 디자인과 인테리어 디자인을 한눈에 보여주는 방.

 

 

 

 

 

 

어릴 때부터 자기만의 문자를 만들고 놓았다더니, 디자인에서도 문자와 기호가, 숫자가 패턴화되어 있다.

 

 

 

 

 

 

 

 

 

 

Folk art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태양이나 나무, 민속 상징등을 디자인에 많이 응용하였다.

 

 

 

 

 

 

 

 

 

 

 

 

 

 

 

 

 

 

 

테이블 상판 그림.

 

 

 

 

 

 

목각 인형들.

 

 

 

 

 

 

가운데 저 그림을 보고 이응노 미술관에서 본 이응노의 문자 응용 판화 작품이 떠올랐다.

진짜 비슷!

이응노는 주로 먹색으로 한자를 이용하였지만 발상이 비슷하다.

 

 

 

 

 

 

(위의 두 작품이 이응노 화백의 작품. 비슷하지 않나요?)

 

 

 

마리 로랑생 전시를 보고 알렉산더 지라드 전시까지 보고났는데, 다리가 좀 아플 줄 알았는데 전혀.

집에 돌아와서 전시 본걸 재잘재잘 떠들어도 리액션 별로 없는 것에 실망하면서부터 갑자기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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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7-12-29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달 무민원화전 보러 갔다가 줄이 너무 길어 열차시간 때문에 포기하고 돌아온 적이 있어요. 전시장 꼼꼼히 두 개나 보면 다리 아플 만한데 나인 님은 초집중하여 보셨나 봐요. 리액션은 여기서 드립니다 ㅎㅎ

hnine 2017-12-29 22:03   좋아요 1 | URL
저 날은 크리스마스 다음 날이라서 그런지 전시장에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더라고요. 널널하게 구경 잘 하고 왔어요.
전시를 보는 것은 저처럼 운동도 잘못하고 사회성도 별로인 사람들에게 가장 소극적이면서도 적성에 맞는 취미 같아요.
리액션 감사합니다. 남편은 원래 그랬고, 아들도 어릴땐 같이 재잘재잘 잘 해주더니 이제 컸다고 남편과 비슷해져가네요 ㅠㅠ
 

 

고등학교 1학년 미술시간. 완성시킨 그림을 책상위에 쭉 펼쳐 놓고 검사를 받고 있었는데, 우리반 어떤 아이의 완성된 그림을 보고 미술 선생님께서는 네 그림은 마리 로랑생 그림을 닮았다고 하셨다. 밝고 아름다운 색채의 그 아이 그림은 내가 보아도 미술책에 나와있는 화가의 그림을 닮아 있었다.

그런데 미술 선생님의 그 말씀에 그 아이는 상당히 기분 나빠하는 것이다. 미술 교과서에도 소개된 화가의 그림을 닮았다는데 잘 그렸다는 뜻 아닌가? 그때 나는 그 친구가 왜 기분 나빠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오래전 고등학교때 기억을 떠올리며 전시장을 찾았다

 

마리 로랑생

프랑스 파리의 벨에포크 시절을 대표하는 화가이며 "미라보 다리"라는 시로 유명한 시인 기욤 아뽈리네르의 연인이기도 했던 여자.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12월 9일에 시작한 마리 로랑생 전시는 우리 나라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도착해보니 도슨트 설명 시간을 한참 놓쳤는데, 전시장 내부에서는 사진도 거의 못찍게 해서 전시장 내부 설명을 노트에 적어오는 수 밖에 없었다.

 

 

 

어떤 건 그림까지 (^^)

 

 

 

 

<세 명의 젊은 여인들> 캔버스에 유화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허락되었던 작품)

 

 

 

 

 

 

 

 

다른 작품들은 전시장을 나와 기념품 샵에 걸린 포스터나 액자를 찍는 수 밖에.

위의 그림 역시 자화상.

 

 

 

 

 

 

 

<책 읽는 여인> 1913

기억해두고 싶어 전시장 내에서 노트에 대충 스케치해왔던 그림인데 전시 보고 나오니 전시장 기념품샵에 액자가 걸려 있어 사진 찍을 수 있었다.

 

 

 

 

마리 로랑생의 자화상이 여러 작품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이다.

표정이 매혹적이다.

 

 

 

 

 

 

 

 

 

 

 

 

▼ 다음은 전시상에서 노트해온 마리 로랑생에 대한 것들  ▼

 

 

 

마리 로랑생 (1883-1956)

 

 

 

 

1. 청춘 시대

 

미혼모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기혼자이자 부유한 정치인.

어릴 때부터 정신적 갈등을 겪으며 자랐으며 교사가 되기를 원했던 엄마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미술가의 길로 들어선다.

 

"매일이 결투하는 것 같았다"

"나는 스무살이었다. 당시의 나는 슬프고 못생기고 하여튼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1905년 당시 파리 화가들의 공동 작업실이었던 아틀리에 '세탁선 (Bateau-lavoir: 아틀리에 이름이 재미있다)에서 피카소, 아폴리네르, 장 콕토, 모딜리아니 등을 만나고 그들의 영향을 받는다.

 

 

2. 열애시대

 

세탁선에서 피카소의 소개로 만나게 된 시인 기욤 아플리네르와 사랑에 빠지면서 마리 로랑생의 작품은 서서히 그 스타일을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1911년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도난사건"의 범인으로 아폴리네르가 연루되면서 이들의 사랑은 식어간다.

31세때 처음으로 파리에서 개인전.

이 당시 유럽 화단의 주류였던 야수파, 입체파의 영향 속에서 자신만의 특색인 여성스러움, 우아함, 서정적 화풍을 지켜나갔다.

 

"나는 아주 슬펐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검은색과 흰색이 주조를 이룬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아주 천천히 분홍색과 푸른색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3. 망명시대

 

 

파리에 유학중이던 독일인 남작이자 화가 오토 폰 뷔체와 결혼한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하고 스페인에 망명한다.

남편과 결국 파국을 맞이하고 고독감과 비애에 빠진다.

 

"내가 다른 화가들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아마도 그들이 모두 남자들이어서일지 모른다.

남자들이란 내게 풀기 어려운 문제와 같다"

 

마드리드에 머물면서 고야의 영향을 받는다.

그녀는 화가이지만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잊혀진 여인 (진정제)

 

 

 

지루하다고 하기 보다 슬퍼요

슬프다기 보다불행해요

불행하기 보다 병들었어요

병들었다기 보다

버림받았어요

버림받았다기 볻

나 홀로

나 홀로라기 보다

쫓겨났어요

쫓겨났다기 보다

죽어있어요

죽었다기 보다

잊혀졌어요

 

 

잊혀진다는 것은 여자에게 있어 비극의 절정인가보다. 고독보다도, 죽음보다도.

 

38세 나이에 과거의 연인 아폴리네르는 마리 로랑생에게 마지막 전보를 보내고 사망한다.

 

 

4. 열정의 시대 1920

 

 

남편과 이혼후 겨우 국적 회복. 망명시대를 끝내고 1921년 정식으로 파리로 돌아온다.

망명시대의 음울함 사라지고 화풍에 변화가 오는데 아름답고 밝은 색채에 퇴폐적 분위기마저 풍기게 된다.

아름다운 파스텔 컬러 등장. 현재 많은 사람이 마리 로랑생의 화풍으로 인식하게 된 감미로운 작품이 자리잡는 시대이다.

이때는 마리 로랑생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의뢰하는 것이 유행일 정도로 많은 초상화 제작을 의뢰받았는데

코코샤넬의 초상, 헬레나 루빈슈타인의 초상 등이 유명하다.

 

<코코샤넬의 초상>

 

발레 의상 디자인으로 코코 샤넬과 처음 만난 마리 로랑생은 동갑내기로 친분을 다졌다.

마리 로랑생은 코코샤넬의 초상을 부탁받아 그렸는데, 완성된 초상화를 본 코코 샤넬로부터 너무 나약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작품 인수를 거절당하고 수정해달라는 요구를 받지만 마리 로랑생은 수정을 거부한다.

이번 전시엔 오지 못했지만 자료 화면에서 보니 너무나 마리 로랑생 다운, 아름다운 초상이었으나 동시에 코코샤넬이 나약하게 묘사되었다고 불만을 가진 이유도 수긍이 가는 그림이었다. 의뢰자는 거부했지만 지금까지도 마리 로랑생의 대표적인 초상화로 알려져 있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우아함은 콘트라스트의 미묘함에서 시작된다"

 

발레 <암사슴들>

프랑시스 풀랑크가 작곡하고 디아길레프가 감독, 장 콕토가 구성한 발레 <암사슴들>의 무대와 의상, 장식 디자인을 담당하여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마리 로랑생의 명성을 드높이는데 기여하여 서머셋 모옴을 비롯한 영국에서도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게 되었다. 

발레 <춘희>

 

 

5.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20권이 넘는 책의 일러스트를 그렸다.

앙드레 지드 <사랑에 대한 시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 책 아래 Kathering Mansfield 작품이라고 이름 붙어 있어서 안내하시는 분께 말씀드렸다), 캐서린 맨스필드 <가든파티> 등이 그 예이다.

 

훗날 많은 예술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의 예로서 코코샤넬의 수석디자이너였던 칼 라커펠트가 2012년 F/W 오트쿠튀르에서 마리 로랑생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의상을 발표하였고, 니나 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기욤 알리는 2017년 F/W 레디 투 웨어에서 마리 로랑생의 작품이 프린트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6. 성숙의 시대

 

이 시기 대공황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맞서는 듯 마리 로랑생의 작품은 더욱 화려해지고 관능적 스타일로 발전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이런 마리 로랑생의 고립은 하녀로 들어와 점차 주인 노릇을 하며 그녀를 주변인들로부터 격리시켰던 '수잔 모로'의 영향도 컸다.

 

"고독은 하나의 왕국입니다"

 

1956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73세. 한 손엔 장미, 다른 한 손엔 한때 연인이었던 아폴리네르의 편지 한통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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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로랑생의 그림을 닮았다는 말에 기분 나빠했던 고등학교때 그 친구는 대학 졸업후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가서 지금은 연락도 주고 받은지 오래 되었다.

코코 샤넬이 자기를 그린 초상화를 마음에 안들어 했던 그 이유처럼 미술 선생님의 말씀을 자기 그림이 나약해보인다는 뜻으로 알아들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밝고 화사한 색채로 그린 것이 어딘지 가벼워보인다는 뜻으로 알아들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상당히 앞서가던 친구이다.

 

 

 

마리 로랑생 전시를 본 후 두 층 올라가서 알렉산더 지라드 전시도 보고 왔다. 이건 다른 페이퍼로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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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2-27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부지런 하십니다.
어제 저도 친구와 약속이 있어 외출을 했는데
꽤 춥더군요.
전시회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어딘가 모르게 피카소스러우면서도
또 다른 분위기라 관심이 가더군요.^^

hnine 2017-12-27 15:51   좋아요 0 | URL
예, 춥더라고요. 제 아이 일 때문에 서울 갈일이 있었어요. 간 김에 보고 싶던 전시를 보고 온거죠.
피카소스럽다고 보신게 맞아요. 그 시대가 워낙 입체파가 주름 잡던 시대이기도 했고, 마리 로랑생 그림에서도 어딘가 그런 느낌이 나지요.
분홍색과 회색, 초록, 검은색. 아주 특이한 색채의 세계를 구축해서, 처음 보는 그림일지라도 색깔을 보면 마리 로랑생 그림 아닌가? 하게 만드는 그림 세계를 갖고 있는 화가랍니다.

프레이야 2017-12-27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픈 전시 다녀오셨네요. 친구분은 누구의 그림을 닮았다는 말 자체가 싫었던 모양입니다. 특히 자화상 멋지군요.

hnine 2017-12-28 21:05   좋아요 0 | URL
제가 특별히 좋아하고 있던 화가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늘 그렇듯이 전시를 보고 나면, 그 화가를 더 알고 나면 이전보다 더 좋아하게 되더군요. 마리 로랑생도 그렇고요. 마리 로랑생은 풍경이나 정물보다 특히 인물 그림이 많아요 그것도 남자보다는 완전 여성 편향적. 어릴 때부터 정신적 갈등을 겪고 어머니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개인사적으로도 아픔이 많았던 사람이라는 티가 그림에서는 별로 안 나타나는 것도 특이하다고 생각했답니다.
제 친구는 아주 모범생에 속하는 친구였어요. 저랑 달리 그림도 잘 그리고 체육도 잘하고...결혼하고도 한동안 연락이 되었었는데 지금은 저의 무심함으로 연락이 끊긴지 오래 되었네요.

qualia 2017-12-27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56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73세. 한 손엔 장미, 다른 한 손엔 한때 연인이었던 아폴리네르의 편지 한통이 들려 있었다.
·····················
정말 가슴 저리네요. 자신의 자화상처럼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은 정말 고독한 여성이었네요. 좀 엉뚱한 얘기일지 몰라도 저는 인간의 이런 속성은 인공지능과 로봇은 결코 지니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인공지능이나 로봇도 한 손엔 장미, 다른 한 손에 한때 연인이었던 아폴리네르의 편지 한 통을 쥔 채 고독에 몸부림치거나 죽어갈 수 있을까요? 고독과 같은 절절한 감정이나 그리움과 같은 애끓는 감정이 한낱 신경세포들의 발화 패턴이나 디지털적 계산(computation)에 불과한 것일까요? 그렇게 주장하는 물리주의자·기능주의자·강인공지능주의자들조차 복잡미묘한 감정의 지배를 받는 나약한 인간 존재일 뿐이죠. 발화 패턴이나 컴퓨테이션으로 인간 감정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해도 그 설명자의 마음 속엔 끝내 설명되지 않은 진한 감정의 흔적들이 남아 있을 겁니다.

한데 미술 선생님한테서 그림이 마리 로랑생 그림을 닮았다고 칭찬받고 기분 나빠했다는 hnine 님 친구분은 분명히 그 까닭이 있을 거예요. 예컨대 칭찬에 반응하는 방법이 서툴러서였을지도 모릅니다. 청소년기 때는 칭찬을 받고도 (속은 은근 기분 좋지만) 정반대로 표출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건 의도적으로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속마음과는 정반대로 반응하는 청소년기 특유의 반응 기제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혹은 그 친구분과 미술 선생님 사이에 개재된 어떤 사적 감정 때문에 그런 뜻밖의 기분 나쁜 반응을 보였을 수도 있겠죠. 혹은 친구분이 미술 선생님의 칭찬을 공치사로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을 겁니다. 자존심이 무척 세거나 자기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독자파적 기질이 일찍부터 농후했던 친구분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혹은 이런 말씀은 드리기가 좀 껄끄럽지만, hnine 님께서 친구분이 기분 나빠하는 것으로 봤다는 것은 일종의 지각·감각·인지 상의 오류였을지도 모릅니다. 즉 그 친구분 표정이 실제로는 내심 기뻐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었는데 당시 분위기나 여러 환경적 요인 때문에 지각·감각·인지 상의 오류가 빚어져 잘못 판단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이런 얘기들은 너무나 흔하게 교양 심리학이나 뇌과학 책에 널려 있는 얘기라 새로울 것도 없지만 꽤 설득력이 있기도 한 얘기죠. ㅎㅎㅎ 아무튼 hnine 님 윗글은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줘요. 해서 함 상투적인 상상을 해봤습니다.

hnine 2017-12-28 21:11   좋아요 0 | URL
그런 인공지능이 나온다면 정말...휴...인간을 완벽하게 대체 가능하겠군요. 아닐까요? 그런 감성까지 갖춘 인공지능이라면 오히려 나을까요?
저는 칭찬해주면 일단은 헤벌레~ 좋아하기만 해서 친구의 내면 심리는 생각도 못해봤어요. 미술선생님도 좀 특이하신 분이었는데, 학생을 모르는 상태에서도 그림만 보고도 그 학생의 성격을 아주 잘 알아맞추셨거든요. 친구는 아마 그림을 보고 미술 선생님이 그 친구 내면을 꿰뚫어보았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래서 기분 나빠했는지도 모르고, qualia님 말씀처럼 내심으로는 기뻤을지도 모르고요. 수십년전 일이네요. 그걸 아직 기억하고 있는 제 심리는 또 뭔지... 저의 별스럽지 않은 글로도 상상의 나래를 펴주시는 qualia님도 멋지시고요! ^^
 
엄마의 자존감 공부 - 천 번을 미안해도 나는 엄마다
김미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인기 강사인만큼 안티 층이 많은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이 내는 책은 거의 다 읽어오고 있다. 어찌되었든 읽어서 내게 득이 된다는 뜻이다. 대중 앞에서 말로 내용을 전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인만큼 책도 막힘없이 술술 읽힌다. 이 책 역시 반나절 만에 다 읽었는데 그만큼 쉽게 쓰여지기도 했고 빨려드는 내용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리뷰 제목으로도 썼지만 이보다 더 쉽게, 이보다 더 피부에 와닿게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전달력은 대단하다. 그 내용이 자식 교육에 관한 것이든, 여성의 꿈의 실현에 관한 것이든, 이 사람은 적어도 열번 쓰러져도 일어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절대 쓰러지지 않을 사람이 아니라 쓰러져도 일어날 사람. 그런 자생 능력이 있는 사람. 어떻게 말하면 독한 사람.

 

'너 하나만 잘되면 된다'는 얘기는 너 혼자 온 가족의 꿈을 짊어지라는 얘기다. 그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절대 실패해서도, 비뚤어져서도 안 되며, 엄마가 정해준 길만 가라는 얘기다. (82)

 

"엄마, 밀라노 꼭 가. 내가 보기엔 50대가 꿈꾸기에 제일 좋은 나이야. 나 봐봐. 20대 청춘이면 뭘 하냐고. 돈도 없지, 결정권도 없지, 경험도 없지. 근데 엄마 봐봐. 벌어놓은 돈도 있지, 공부하겠다면 말릴 사람도 없지, 꿈꾸기 좋은 환경을 다 만들어놨잖아. 늦었다는 생각만 안 하면 다 할 수 있는데 왜 안해?" (109)

 

10을 바라면 당연힌 아이가 변한 게 안 보인다. 그런데 0.1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면 아주 사소한 변화라도 알아챌 수 있다. 그리고 아이도 내 부모가 0.1에 감사한다는 걸 느끼다. 그래서 사춘기 아이에 대한 계산법은 달라야 한다. 0.1씩 모아서 100을 만들기. (120)

 

"웬 트라우마? 엄마는 네가 그 말을 안썼으면 좋겠어."

"왜?"

"실패를 무서워하게 만드는 말이니까. 엄마는 실패를 어떻게 보는지 알아? 10에서 2모자란 성공. 실패했다는 건 8까지는 노력해서 왔다는거야. 그러니까 거기까지 온 너 자신이 얼마나 대견하니. 그리고 그 8은 어디 없어지는게 아냐. 네 몸에 그대로 저장돼 있어." (170)

 

"원래 꿈은 노동인거야." (188)

 

자신의 꿈에 허술한 청춘 (209)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엄마라는 건 힘든 일이긴 했지만, 최선을 다해 살라는 명령이자, 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세상에서 나를 사람 만들어준 역할, 나를 성장시켜준 최고의 기회였던 엄마. 나는 오늘도 내가 엄마라는 사실에 감사한다. (245)

 

나 자신을 아이들의 '24시 편의점'으로 방치해선 안 된다. 더 이상 시간 없다는 핑계로 내 자신감이 계속 떨어지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249)

 

계획된 일정만 있어도 사람은 성장한답니다. (260)

 

인생의 가장 좋은 타이밍이라는 건 정해져 있지 않다. 마침내 이 일을 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내게는 가장 좋은 시간이다. (279)

 

살다 보면 순간의 성취보다 훨씬 더 소중한 삶의 근원을 위해 멈춰야 할 때가 온다. 그런데 거기에 굳이 '포기'라는 단어를 붙일 필요가 있을까.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불러야지. (294)

 

내가 자식을 키우기만 하는게 아니라, 자식으로 인하여 내가 자란다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진리이다. 내 기준으로 내 자식을 내맘에 드는 인간으로 만들고자, 그것이 최고의 부모 역할이라고 믿는 부모들이 많다. 그것이 자식의 인생 뿐 아니라 부모의 인생에도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이 부모가 할 첫번째 자각이자 마지막 자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기본이고,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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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7-12-25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4시 편의점... 기발하네요.
이제 뭐하고 살까. 고민중입니다.
직장은 계속 다니면서 할 수 있는 일..제가 좀 소심해요^^

hnine 2017-12-25 22:29   좋아요 0 | URL
세실님은 하실 일이 너무나 많을 것 같은데요? ^^
저는 전공과 상관없이 그동안 공부하고 싶었던 것들 하나하나 배워보려고요.
저 책의 저자는 지금도 강의 준비하는 것 외에 운동과 어학 공부를 매일 규칙적으로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톰, 아주 작은 아이 톰
바르바라 콩스탕틴 지음, 김동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남의 떡은 커보인다. 남들 형편은 나보다는 나아보인다. 내 상처는 남의 어떤 상처보다 깊고 아프다.

평소엔 잘 알고 있으면서 막상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닥쳤을땐 다 잊어버리고 툴툴거린다.

오랜만에 따뜻한 이야기를 읽고 흐뭇하다. 사실 요즘 읽는 책 마다 삶의 밝은 면 보다는 무겁고 회의적인 면을 드러내는 것들이 많아서, 탄탄하지 않은 멘탈의 소유자로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꾸 기분이 가라앉는 이 결과를 어째야 하나 하던 중이었다.

 

 

 

책꽂이에서 우연히 내 눈에 들어온 이 작은 책으로 추운 밤 몇 시간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표지에 고양이가 나와있지만 고양이가 주인공은 아니고 열세살 톰이 주인공이다.

임시 가옥에서 엄마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하는 스물 다섯살 엄마 조스와 단둘이 살고 있는 톰은, 엄마가 지금 톰의 나이인 열세살에 예기치 않게 임신을 하게 되어 낳은 아이이다. 일찍 철이 들어서인가, 투정부리고 응석부리는 열세살이라기 보다는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아이이면서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도 간직하고 있는, 한번 만나보고 싶은 아이라고 할까. 반면 엄마는 일찍 준비 없이 엄마가 되어버린 탓인지 투덜거리기도 잘 하고 불평도 많고 철없는 행동도 자주 하고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까닭에 맞춤법도 틀리기 일쑤에, 변변한 직장도 없어 늘 생계 걱정을 해야하지만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톰을 사랑하는 마음은 역시 엄마이다.

톰이 자주 몰래 자기 정원의 채소들을 가져가는 것을 알면서도 눈 감아 주는 이웃집 노부부. 보헤미아 이민자 출신이면서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건강 상태로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마들렌 할머니. 감옥에서 출소하자마자 오랜 짝 사랑이던 조스를 찾아 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미. 감옥에서 나온 후 제일 힘든 것은 생활고보다 외로움이라고 톰에게 털어놓는다. 장의사 차를 운전하는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역시 앞날이 보장 안되는 젊은이이고 가진 것 없는 딱한 처지이지만 그는 다른 사람을 위할 줄 알고 줄 것이 없나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다.

열세살 톰부터 여든이 넘는 노인 마들렌에 이르기까지 모두다 불안하고 고독하고 절망스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하지만 이 소설은 이들이 서로 어떻게 의지하며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개인주의, 이기주의, 겉으로 보이는 것이 중요한 시대에 살면서 이런 소소한 이야기가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다.

싱글맘의 문제, 이민자의 문제, 노인 문제, 등등 요즘의 사회 문제를 몽땅 끌어앉고 있는 인물들에서 위로를 받는 우리는 이들보다 행복한가? 묻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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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희망 2017-12-22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hnine님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좋은 책같아 끌리네요
근데 요즘은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아이 이야기는 자제하려구요. 자꾸 미안해지고 맘이 복잡하더라구요.
계속 따뜻한글 기대합니당~~^^

hnine 2017-12-22 18:20   좋아요 1 | URL
행복은 가진 것 순이 아니다!
새삼스럽게 이걸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따뜻한 이야기였어요. 저자가 1959년생이니까 젊은 분도 아니더라고요. 인터넷의 발달로 아이들이 어떤 면에서는 일찍 어른이 되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아이다운 순수함이 있어서 위안이 되었고요. 어떤 순간에도 희망을 놓으면 안되겠구나 생각했는데 이 약발이 과연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르겠네요 ^^
일년이라고 해봐야 친구 만나러 나가는 일도 거의 없는 제게 알라딘 서재는 정말 애정 깊은 공간이랍니다. 푸른희망님의 솔직하고 따뜻한 리뷰와 페이퍼, 앞으로도 계속 읽을 수 있게 해주세요. 행복했습니다~

2017-12-22 1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3 0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7-12-22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2017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hnine 2017-12-23 06:26   좋아요 2 | URL
글쎄요, 달인이라고 불러주시니 좋긴 한데 안주셔도 그만, 주셔도 그만, 저는 그렇게 무덤덤하네요.
아직 책보다 더 좋은 친구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러면서 나이를 먹어가고 있어요.
서니데이님도 축하드려요~
 
빛나 - 서울 하늘 아래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송기정 옮김 / 서울셀렉션 / 2017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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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에 앞서 이 책의 표지를 잠깐 들여다 본다. 제목이 빛나?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서울 하늘 아래>라는 글씨도 보인다.

표지 그림에 그려진 것을 잘 보면 63빌딩, 남대문, 서울의 전철, 국회의사당, 한강. 모두 서울을 나타내는 것들. 작가는 이 책에서 과연 서울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작가는 르 클레지오.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그 르 클레지오이다.

2017년 12월에 출간된 따끈한 신간. 프랑스어로 쓰여졌지만 소설의 배경과 인물이 모두 한국, 한국인이다.

제목 '빛나'의 정체는 책의 첫 페이지를 들춰보면 바로 알수 있다.

내 이름은 '빛나'다. 이제 곧 열아홉 살이 된다.

 

빛나는 르 클레지오가 만든 이 소설의 주인공 이름. 전라도 어촌 태생이지만 더 나은 교육을 받기 바라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서울 고모댁으로 혼자 올라온다. 고모네 집은 홍대 근처. 고모집에는 백화라는 이름의, 빛나보다 몇살 어린 고모 딸이 있다. 모범생과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자꾸 엇나가려고만 하는 백화와 한방을 쓰면서 빛나로 하여금 백화를 좀 바로 잡아주었으면 하는 고모의 바람이 있다. 조용하고 지루하지만 평화로웠던 전라도 고향집에 비해, 하루 매순간이 전쟁과 같은 분위기의 고모집에서의 생활을 못견디게 된 빛나는 결국 방을 얻어 집을 나오게 되고, 살로메라는 여자 환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서 수입을 얻게 된다.

빛나는 열아홉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기가 겪은 일이나 인물에 환상과 허구를 보태어 만든 이야기들을 살로메라는 여인에게 들려주고, 거동을 못하는 살로메는 빛나의 이어지는 이야기를 기대하며 즐거움을 찾는다.

클레지오는 빛나가 살로메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그 자신이 서울에 와서 겪은 여러 가지 경험들을 액자 소설 형식을 빌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동네 이름, 거리 이름, 장소, 건물 이름등을 그대로 실명으로 등장시키고 (홍대입구, 세브란스 병원, 신촌, 뚜레쥬르, 오류동, 서래마을, 성공회대학, 신도림 등) 요즘 세태를 반영하는 내용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작가가 그만큼 서울에서의 경험이 다양했음을 보여주고 싶어한 것이리라.

외국인이 본 서울,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가 과연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지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그는 평범한 한 외국인이라고만 소개하기엔 부족한, 노벨상 수상작가 아닌가.

그는 과연 한국에 대해 구석구석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이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고 있지만 관심의 범위가 넓다고 해서 반드시 그 문제의 본질까지 파고 들어갔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그런 깊이까지는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의 종교나 사회, 정치, 문화, 어느 한 주제에 대해 특히 더 깊은 관심을 가졌더라면 오히려 더 심도 있는 이야기가 탄생하였을까? 그러기에 클레지오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다방면에 너무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평소에 우리가 모르고 지나치던 어떤 심부를 건드려주고 일깨워주는 소설의 기능보다는, 스치고 지나가는, 단지 서사가 보태진 여행기록의 느낌을 아주 벗어나진 못했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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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2-22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기대를 했었는데 별로였나 보군요.
아무래도 외국인의 눈으로 본 한국은 어떨까
작가가 다음 한국에 대한 애정도 있는 것 같던데.
그런데 리뷰 읽으니까 저도 구매력이 떨어지는데요?ㅋ

hnine 2017-12-22 15:42   좋아요 0 | URL
거의 출간되자 마자 구입해서 읽었기 때문에 다른 분들 리뷰 올라온 것도 없고, 100% 개인적인 느낌을 적었어요. 다른 분들은 달리 생각하실지도 모르지요.
이 소설 외에도 한국을 소재로 한 다른 소설도 냈던데 (제주도 해녀를 소재로 한 소설이라네요) 아무튼 한국에 관심이 많은 작가임에는 틀림없어요. 한국의 어떤 점이 이 작가를 그렇게 끌어당겼는지 궁금해요.
이 작품은 웬지 중심을 건드리지 못하고 표면만 스치고 지난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