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계룡산 가까운 곳에서 삽니다.

하늘, 단풍, 그리고 계룡산

단풍이 더 본격적으로 들면 어떨지 몰라도

아직은 단풍이 하늘색을 이기지 못하는 듯 하여

사진에도 하늘을 더 많이 담았네요.

 

 

 

 

 

제가 갔던 카페가 저 나무 뒤에 있습니다.

 

 

 

 

 

 

 

 

 

 

 

저녁 먹고 산책하다가 발견한

Botanical cafe 라는 이름의 커피집

 

 

 

 

 

 

책꽂이에 한동안 꽂아놓고 읽을 생각은 안했던 책 <미움받을 용기>

주문한 책이 오기를 기다리다 마지못해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오, 기대 이상!

번역된 책이니 읽기 어렵겠다 했는데 그렇지도 않아서, 거의 다 읽어갑니다.

 

 

 

 

 

 

 

 

이 나무 아래 테이블에 앉아 한시간 좀 넘게 있다 나왔습니다.

 

 

 

= 지금 읽고 있는 책 =

 

 

 

 

 

 

 

 

 

 

 

 

 

 

 

 

 

 

= 리뷰 써달라고 기다리는 책 =

 

 

    

 

 

 

 

 

 

 

 

 

 

 

 

 

 

 

 

 

 

 

 

 

 

 

 

 

 

 

 

 

 

 

 

 

 

 

 

 

 

 

 

 

 

 

 

 

= 주문해놓고 기다리는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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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쯤, 일명 개와 늑대의 시간

하늘과 단풍

집으로 향하던 바쁜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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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공예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다는 목적으로 1999년에 시작하여 2년에 한번씩 열리는 이 전시가 올해로 벌써 10회째이다.

서울 살았더라면 거리때문에 못와봤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사는 곳에서 청주까지는 차로 40분 거리.

지난 회때 처음 와서 보고 공예, 미술 이런 것 잘 모름에도 불구하고 꽤 즐겁고 재미있는 경험이었기에 다음 전시에도 꼭 오리라 했었다. 올해 전시 시작하는 날부터 가고 싶었는데 차일 피일 하다가 전시 끝나기 하루 전날인 어제 겨우 다녀올 수 있어 다행이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고궁 등 우리 나라에 좋은 전시장이 많이 있지만 아마 이런 전시장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낡고 허름해보이는, 그러니 작지 않은 규모의 이 전시장은 옛 청주연초제조창. 1946년에 설립하여 그 당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담배공장이었다는데 2004년에 폐장한 이후 7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2011년 부터 청주공예비엔날레 개최장소로 이용도고 있다. 쓰지 않는 건물을 이렇게 훌륭한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어 흐뭇하고 기분도 색다르다.

 

 

 

 

옛날 이 건물의 용도를 보여주는 흔적이 이렇게 남아 있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Q: 공예 (craft) 란 무엇인가?

Re: 결국 공예다!

공예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결국 다 공예다 라는 대답. 즉, 빛, 컴퓨터, 3D 기술, 영상, 소리, 사진, 움직임, 음악 등의 여러 매체를 이용  또는 이들 매체 자체를 작품 속에 포함시킴으로써 공예의 범위를 확장시키고 앞으로도 더 확장 가능성 있는 세계임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순수 공예 작품보다는 다양한 매체가 이용된 작품들이 대부분이어서, 설명을 읽거나 듣지 않고 주욱 둘러보고 이해하기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전시였다.

 

 

 

 

 

단단한 철에 모터와 추를 달아서 사람의 손길에 따라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난다 오뚜기처럼. 일명 반응형 작품.

 

 

 

 

 

 

 

 <산>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방의 네 벽면으로 보여지는 산의 모습이 작품인데 산의 사진을 찍고, 프로젝션맵핑이라는 기법 ( 아래 사진) 으로 산의 모습에 입체감과 공간감을 더했으며 빛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산의 모습을 보는 효과를 낸다.

 

 

 

 

 

 

 

 

 

 

 

 

 

회화, 조각, 설치, 뉴미디어를 통합적으로 활용한 데이비드 오글이라는 영국 작가의 작품이다.

 

 

 

 

 

 

일상적인 사물에서 생성되는 소리에 주목한다는 작가의 <News, Paper, Sound> 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사진으로는 나타낼 수 없지만 신문지 일부분이 위로 들썩이며 소리를 내는데 신문지를 찢는 소리를 녹음한 것이라고 한다.

중요한 시간성을 상실해버린 과거의 뉴스, 소리의 재료가 된 종이, 해체과정의 결과물인 소리 등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것이 작가 (배인숙) 의 아이디어이고 작업.

한때 유용한 정보였던 신문이 시간이 지나면 그저 신문지로 남을 뿐. 전시를 보던 아이들은 갑자기 앞에 있는 신문지가 들썩거리며 소리는 내는 것을 보고 놀라서 울기도 한다고.

 

 

 

 

 

 

 

 

 

 

원래 염색이 되지 않는다는 아크릴판을, 수천번 물감에 담았다 꺼냈다를 반복함으로써 기어이 색깔을 입히고 말았다는 작가 (윤새롬).

 

 

 

 

 

 

 분청사기, 청화백자 등을 직접 만드는 대신 하얀 도자기를 벽에 붙이고 영상을 쏴서 분청사기나 청화백자로 보이게 하는 방식을 보여준 작품이다.

 

 

 

 

 

 

 

 

 

 

 

 

 

어느 작품에서나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이라는 매체

 

 

 

 

전시의 마지막 방에는 그동안 청주공예비엔날레와 관계를 맺은 작가중 열명을 선정하여 그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재구성하여전시실 네 벽면을 채우고, 적절한 음악으로 공간을 채웠다. 바닥에는 누워서 볼 수 있는 빈백 스타일 의자가 여기 저기 놓여있어 자유로운  자세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위의 두 사진은 어느 두 감상자의 즉석 작품 (^^)

 

 

 

 

여러 매체가 그 경계를 허물고 서로 합쳐져 기존에 없던 세계를 만들어낸다. 공예와 미술, 실용과 예술, 현실과 이상의 경계가 더욱 더 모호해지고 의미가 없어지는 듯하다.

아직은 공예 하면 일일이 손으로 작업하는 과정을 떠올리는 사람이다보니, 이 전시의 작품들에선 아무래도 사람의 손길이 덜 느껴진다는 생각도 들었고 작가가 작품에 쏟는 시간과 땀과 고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천재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라고 소개한 작가들은 있었으나 장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예술가인가 철학가인가 할 정도로 손의 수고는 덜어지는 대신 작가의 철학, 사상, 관점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들어가있다는 것. 공예에 대해 잘 모르지만 나름대로 보고 느낀 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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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포스 신화 - 부조리에 관한 시론
알베르 카뮈 지음, 오영민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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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바로 자살이다. 삶이 고생해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시작이라면 "모든 생의 끝이 죽음으로 정해져 있다면 애써 살아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라는 나의 우울함의 바닥에 깔려있는 문제도 저 시작 문장 속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을까? 카뮈는 그 문제를 판단하고 답하는데 시간을 썼고, 나는 묻는 것에서 더 나아갈 생각조차, 의지조차 가지지 않는 쉬운길을 택하여 그냥 기분과 감정에 맡기고 살아왔다.

이 책을 읽으며 유일하게 얻은 위안이란, 20대때, 그저 이 책을 읽었다고 말하고 싶어서 꾸역꾸역, 이해도 안되면서 읽었던 때에 비해, 수십년 지난 지금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더라는 것이랄까. 심지어 마음에 꾸욱 들어와 박히는 대목도 있고, 쾅 하고 부딪혀 오는 대목도 있었으니, 난 그냥 나이만 먹진 않았나보다 하는 위안이 되어주었다. 그러니 최소한 어떤 책들은 한번 읽기에서 끝나면 안될 것 같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읽을 때 책 속에서 놓친 내용은 물론이고 자기자신에 대한 재발견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책만 읽을 때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점이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는 음악도 틀어놓지 않았고, 쪼가리 시간에 틈틈히 읽지도 않았다. 연필로 밑줄 긋는 곳이 많다 보니 자까지 대동하여 진지하게.

어차피 이르게 되는 곳이 죽음이라면 애써 살아야 할 가치는 무엇이냐는 나의 우울함의 시작이라고 쓴 이 문제는 나만 하는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한 말들 역시 어디 한두군데서 들어보았는가. 하지만 어떤 답도 어떤 결론도 답 같지 않고 결론 같지 않았었다.

계속 굴러내리는 바윗돌, 계속 올려다놓아야 하는 벌. 이 벌을 계속 수행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이 카뮈의 대답이 아니었다. 올려놓은 바윗돌이 다시 굴러내리고, 그것을 산꼭대기로 다시 밀어올리기 시작하기 전 그 막간에 인간은 무슨 생각을 하느냐가 그의 행위에 여러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했다. 아무 생각없이 바위를 산으로 밀어올리기를 반복하는 대신, 그 잠깐의 순간에 이 끔찍한 형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형벌을 내린 신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자기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일까 통찰은 하는 한 그는 약하지 않으며 그의 삶은 의미없지 않다.

시시포스가 특별히 나의 관심을 사로잡은 까닭은 바로 이 되돌아 내려가는 순간, 이 잠깐의 휴지(休止)때문이다.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의 근원을 향해 다시 걸어 내려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바라본다. 가쁜 숨을 고르는 이 시간, 그의 불행과 마찬가지로 어김없이 다시 찾아오는 이 시간은 의식의 시간이다. 산꼭대기를 떠나 신들의 소굴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더 깊이 접어 들어가는 매순간, 시시포스는 자신의 운명보다 더 우월하다. 그는 자신의 바위보다도 더 강하다.

 

이 신화가 비극적인 것은 주인공이 의식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리라. 만일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성공하리라는 희망이 그를 떠 받치고 있다면, 실상 그에게 고통이랄 것이 어디 있겠는가? 운명이란 오직 의식하게 되는 그 흔치 않은 순간들에 있어서만 비극적이다. 시시포스 그에게 고뇌를 가져다주었을 통찰이, 같은 순간, 그의 승리를 완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멸시를 통해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204, 205)

 

외부에서 보면 굴러떨어진 바위를 산꼭대기로 다시 밀어올리기를 반복하는 행위의 연속으로 보이지만 시시포스에게 그 일은 때로는 고통 속에서, 때로는 통찰과 깨달음 속에서 이뤼진다. 바위를 밀어올리는 행위는 그가 타고난 운명이라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 그의 비극은 시작되고, 이전의 일상적인 인간에서 부조리의 인간 (부조리를 의식하는 인간)으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 이 부조리한 인간은 불만과 고통들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신성화시키며 인간의 운명에 대해 왈가왈부한 어떤 신을 내몰고, 운명 그 자체를 인간 스스로 해결해야할, 인간사의 한 문제로 받아들인다 (카뮈는 "되돌려놓는다"라는 말을 썼다 206쪽).

 

살아야할 가치를, 이 고통스런 형벌이 언제까지 계속 될것인가를 생각하며 구하는 대신, 이 고통은 운명이라고 인식하고 이 운명에 대해 통찰하고 끊임없이 의미를 찾아가는 것, 그러는 한 인간은 바위보다 강하고 운명에 굴복이 아니라 맞대면 하는 것이라고 한 카뮈는 천재 아닌가?

 

죽음이 끝이라면 계속 고생하며 살아야 할 가치가 있는가 하는 나의 물음에 대한 답에 대한 실마리를 어쩌면 이 책에서 찾았다는 생각이 드니, 가슴 한 귀퉁 막혔던 것이 뚫리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기쁨도 잠시 잠깐, 또다시 밀고 들어오는 의문. 그렇다면 자신의 운명을 의식하지 못하고 희망의 삶을 사는 인간과, 운명을 의식하고 비극적인 삶을 사는 인간중, 어느 쪽이 더 나은가? 어느 쪽이 더 낫다한들 선택할 수는 있는가?

 

이 책은 이렇게 두번 읽는 것으로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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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4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04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하철 역 출구를 나오면 바로 눈에 들어오는 풍경.

사람의 작품이 아닌 자연의 작품 하늘색 좀 봐.

저렇게 구름이 몇점 들어가니 완벽한 가을 하늘.

전시를 보러 들어가기 전 이미 사람 마음을 푹 내려놓게 한다 자잘한 걱정과 근심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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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7-10-20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물 위에 있는 파아란 하늘이 정말 감탄하게 만드는군요.

hnine 2017-10-20 16:02   좋아요 0 | URL
pek님, 하늘은 언제나 있는데 저렇게 하늘을 올려다 보는 날은 어쩌다 한번이지요. 사진에는 안보였지만 저 박물관 넓은 마당에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견학온 아이들이 무리지어 있는 모습은 또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어서 말씀하신대로 정말 감탄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