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차례 지내고 식구들 아침으로 먹을 국을 끓이던 중이었는데,

골패 모양으로 썬 무우가 익어가면서 점차 투명해져가는 것을 멍때리며 보고있다가

하마터면 냄비 태울뻔 했다.

 

 

 

 

 

 

나물 시리즈 시작하기 전에 아무래도 한바퀴 돌고 들어와야겠다 싶어서,

앞치마 벗어던지고 나갔다.

그래봤자 멀리 못가고 아파트 주위 한바퀴 돌기.

 

"구절초다!" 하고 푯말을 봤더니 '수절초'란다. 수절초? 처음 들어보는 이름.

--> 구절초가 맞다 (푯말을 잘못 읽음 ㅠㅠ)

 

 

 

 

 

요염한 보라색~

 

 

 

 

색깔만 다를 뿐 호박꽃과 호박잎 모양이 닮았네 생각해서 찍어놓고,

나중에 남편에게 이 사진 보여주니 꽃보다 배경이 더 좋다고 한다. 잉? 무슨 배경을 말하는건지.

 

 

 

 

'꽃사과'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나무.

"사과 비슷한게 열리긴 하는거야?" 하고 찾아보니,

 

 

 

 

 

크기는 작아도 사과 비슷한게 달려있었다.

 

 

 

 

 

 

 

 

 

추석날 무사히 차례 지내고 성묘가는 길에 자동차 안에서 찍은 풍경.

벼가 노랗게 익어가고 있는 모습은 언제나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한다.

 

 

시아버님 산소 다녀온후 친정아버지 산소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다 되었다.

막히는 도로는 예상했던 것이고, 집에 돌아오니 밤 11시.

아파트 현관문을 열자 깜깜한 집을 혼자 지키고 있던 강아지가 안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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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ahleeuh 2017-10-09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에이취나인 님 글 보면서 늘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자연의 푸른 내음을 맡을 수 있어서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풀내음, 꽃내음, 흙내음, 들내음, 산내음, 하늘내음, 과일내음, 바람/공기내음, 물내음 등등 여러 가지 내음들이 hnine 님 글과 사진에서 풋풋하게 배어나옴을 느낄 수 있어요. 너무 강하지도 않고 너무 희미하지도 않고 그윽해서 정말 좋습니다. 가을 정취 물씬 나는 위 사진들을 보니 향그러운 내음들이 콧속을 살살 자극하며 들어와 몸속 곳곳을 싱그럽게 해주네요. 정말 그 느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모든 감각을 활성화해줘요. 아니 정말 hnine 님이 찍은 사진들은 왤케 좋은 거죠? 이런 정감 어린 주변 풍경 사진들을 언제든 쉽게 찍어서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과학기술은 또 얼마나 혁신적인 것인가요? 우리가 어릴 적엔 상상도 못했는데 지금은 암것이나 즉각 찍어서 즉각 블로그/SNS에 올릴 수 있으니 얼마나 놀라운 것일까요? 아무튼 알라딘 동네에서만큼은 hnine 님과 함께 들사진, 밭사진, 채소/남새사진 잘 올리시는 ○○님이 제가 보기엔 가장 자연친화적인 심성을 지니신 듯해요. ㅎㅎㅎ 심성은 감추려 해도 저절로 드러나는 법이죠. ㅎㅎㅎ 아무튼 hnine 님, ○○님 사진 보면 눈코입귀가 다 좋아져요. ^^

hnine 2017-10-09 10:44   좋아요 1 | URL
qualia님, 그렇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 아마추어가 가진 서툼과 단조로움을 좋게 봐주신 분의 심성이 정말 자연친화적이지 않나 싶어요.
말씀하신대로, 눈에 보이는 것을 이렇게 금방 사진 찍어 올릴 수 있는 기술도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고 고맙고 그렇지요. 저는 폴더폰 쓰다가 스마트폰 바꾼지 얼마 안되었는데 제가 ‘신통이‘ 때로는 ‘방통이‘, 이렇게 별명을 붙여 부르고 있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고 기특한거예요 ^^
연휴엔 좀 쉬셨나요?
잠시라도 제 사진 보고 즐거우셨다니, 저는 오늘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어도 좋겠습니다 ^^

뚜유 2017-10-09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꽃들이 곱고 참하네요.
아무리 봐도 구절초 같은데 수절초라고도 하나봐요.
검색해봐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사는 곳에서 한시간 반 정도 가면 구절초축제를 하는데 늘 사람 많을까 엄두가 안 나서 못 가보고
동네에서 가끔 보고 그걸로 만족해요 ^^

남은 연휴 평안하셔요 ^^

hnine 2017-10-10 05:10   좋아요 0 | URL
가을꽃들에 대한 뚜유님 표현이 딱 맞네요 곱고 참하고...
저도 검색해봤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 구절초 외에도 불리는 이름이 많았던 모양이어요. 수절초도 그중 하나였던 것 같은데 음력 9월 9일에 채취하여 약에 쓰는 유래로 구절초로 통일해서 부른다는 말도 있고 그렇네요.
영평사 구절초 축제 저도 가본 적 있어요. 구절초는 정말 예뻤는데 오며 가며 차가 어찌나 막히던지 ㅠㅠ 다시 가볼 생각을 못하고 있지요. 저도 뚜유님 처럼 저렇게 동네에서 보고 사진찍으며 만족하고 있어요.
긴긴 연휴가 이제 끝나서 저는 만세입니다 ~ ^^

hnine 2017-10-29 09:34   좋아요 0 | URL
어머...어제 산책하며 다시보니 푯말에 수절초가 아니라 구절초라고 쓰여 있네요.
hnine 이 노안이 심각하구나...하고 봐주세요 ㅠㅠ
본문 바로 잡습니다.
 
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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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내겐 일본 소설이 익숙하지 않니 뭐니 해도 도저히 이 책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 두툼한 책 속에, 국제 피아노 콩쿨 얘기가 어떻게 그려져 있을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책 소개글을 훑어 보니 콩쿨이 그저 단순히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것이 아니라 콩쿨 과정이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구입해서 읽어보기로 결정!

 

3년에 한번씩, 2주 동안 열리는 일본 요시가에 국제 피아노 콩쿨이 이야기의 무대이다. 1차 예선에 참여하는 연주자가 90명. 2차, 3차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하는 사람은 6명이다. 1차 예선부터 3차 예선까지는 지정곡 위주이지만 본선에 진출했다는 것만으로도 연주 실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므로 본선은 거의 각 참가자의 리사이틀 형식으로 한명당 1시간의 연주로 진행된다.

참여한 연주자들은 피아노를 수년간 연습해왔다는 것, 그리고 그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콩쿨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만 같을 뿐 성장배경, 음악의 색깔, 음악을 대하는 자세, 음악에서 추구하는 것 등은 모두 다르다. 이 소설은 주로 네명의 참가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네명중 예선부터 모든 심사위원들을 충격과 혼돈에 빠뜨린 참가자는 '가자마 진'. 이미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열여섯살 가자마 진의 이력서는 깨끗하고 심지어 자기 피아노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또다른 참가자는 한동안 피아노 치기를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하는 계기삼아 콩쿨에 참가한 '에이덴 아야'이다.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해 피아노를 중단했어야 했던 경험, 잇달아 주위 사람들과 소통의 단절이라는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을 늘 안고 있다. 라틴계 일본인을 어머니로, 프랑스인을 아버지로 둔 '마사루'는 완벽에 가까운 피아노 실력은 물론이고 훤칠한 외모에 발고 긍정적인 성격까지 흠잡을데가 없는 우승 후보이다. 그리고 일찍부터 피아노를 배워왔으나 과연 피아노에 모든 것을 걸어도 좋을지 고민끝에 평범한 직장인의 길을 택했으나 그 꿈을 접을 수 없어 밤을 지새워 연습에 매진하여 콩쿨에 참여하는 '다카시마 아카시'. 이 넷중 누가 최고의 영예를 잡든지 이미 그들은 모두 천재성을 인정받을 경지의 사람들이다.

이쯤 되는 연주자들이라면 피아노를 연주하는 '기술적인' 완벽함은 이미 넘었어야 할 고개. 본문중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랑랑은 한 명으로 족하다. 똑같은 타입이 한 명 더 있어봤자 무슨 소용일까. (151)

아무리 기술적으로 완벽한 연주라 할지라도 그것이 이미 누군가의 연주를 연상시킨다면 그건 아무 의미 없다는 말이다.

최근 조성진을 비롯해서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 한국 연주자들의 참여도와 성과도 만만치 않다.

이 책에서 가나데라는 여성이 일본, 한국, 중국 참가자들의 성격을 비교하면서 한국 참가자들에 대한 생각을 표현한 부분이 나오는데 틀리지 않다고 본다. 격렬함과 동시에 처연함.

흔히 말하는 한류 스타를 볼 때도 드는 생각인데 가나데는 그들에게서 올곧은 정열과, 이런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일종의 '처연함'을 느낀다.

그들이 민족적으로 갖는 '격렬함'과 '처연함'은 드라마틱한 클래식 음악과 궁합이 좋다. (184)

 

어째서 이 세상에는 저런 사람이 존재하는 걸까.

절망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어째서 저렇게 태어나지 못했을까. 어째서 저런 사람과 같은 악기로, 같은 시대에, 같은 콩쿠르에서 승부를 겨루게 되었을까.

어째서, 어째서. (197)

마치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의 절규를 연상시키는 대목인데, 위에 말한 네명의 참가자중 이런 고민을 했을 사람은 짐작하다시피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가 뒤늦게 꿈을 펼쳐보고자 콩쿨에 참가한 다카시마 아카시이다. 뒤에 번역자의 글을 읽어보니 번역자는 개인적으로 작품 속 인물중 이 사람에게 가장 매력과 공감을 느낀다고 썼다. 이심전심. 나도 그렇다.

 

이 책 속에는 콩쿨에 참가하는 연주자들뿐 아니라 2주 동안 이들을 심사해야 하는 심사위원들의 고민과 갈등도 충분히 표현되어 있었다.

시험당하는 것 바로 우리야 (319)

심사 내용으로 그 사람의 음악성이나 음악에 대한 자세가 드러나기 때문에 자신들 역시 시험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심사위원들. 읽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겠다고 이해를 하게 된다.

그를 진정한 '기프트'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재앙'으로 삼을 것인지 (579)

기존의 룰과 형식을 전혀 개의치 않고, 어떻게 보면 '자기 멋대로' 연주하고 내려가는 한 참가자를 놓고 심사위원들이 고민하는 부분이다. 이 책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이 내용을 소설 속에 끌어들인 작가의 아이디어를 높이 사고 싶다.

329쪽에, 국보급 불상을 조각하는 사람이 자기는 나무 안에 담겨있는 불상을 꺼내고 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에서 천사를 풀어준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를 인용한 것인가? 그런데 이 일화가 이 소설의 주제와 꽤 상통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왜 그대로 미켈란젤로의 일화로서 인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본선을 하루 앞두고 자기는 음악을 세상에 돌려주기 위해 피아노를 친다고 말하는 가자마 진에게서 에이덴 아야는 어떤 영감을 얻는다. 그동안 계속 자기 자신에게 물어오던 질문에 대한 답인 셈이다. 이 세상에 음악은 원래부터 존재했고 갇혀 있는 음악들을 이 세상으로 꺼내어 보여주는게 피아니스트로서의 사명이라는 뜻인데 읽는 나도 순간 멈칫하게 만든 대목이다.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것의 의미, 자기 음악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에이덴 아야가 가자마 진의 말에 정신의 눈을 뜨고 한발 더 높은 곳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으며 무대로 나가는 장면을 묘사한 두 페이지 (682, 683)는 읽으면서 벅차고 감동적이어서그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손에 긴장감이 느껴졌다.

 

국제 콩쿨의 최고의 자리를 향한 참가자들끼리의 뻔한 경쟁, 질시, 반목, 이런 내용이 아니어서 참신했고, 그래서 좋았다. 작품 전반 어느 참가자를 막론하고 다른 참가자들의 실력을 인정하고 서로에게서 배울점을 찾는 태도는 이 소설이 가진, 억지스럽지 않은 미덕이하고 생각한다.

 

콩쿨이 막바지로 가면서 각 참여자들은 각기 다른 해답을 찾아간다. 콩쿨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면서.

문득 가슴속에 답이 훅 떠올랐다.

음악, 아마도 음악은 인간을 다른 생물과는 다른, 영적인 존재로 진화시키기 위해 인간과 함께 태어나 함께 진화해온 게 아닐까? (653)

어째서 나는 연주할까, 어째서 음악은 이렇게 진화했을까 하는, 마사루의 의문에 대해 그가 스스로 찾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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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0-08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피아노를 오래도록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강제로 시킨 것이 저에겐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기도 했고, 그나마 클래식을 꾸준히 들어왔더라면
거부감을 조금 일찍 벗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벗어난지가 얼마 안 되요.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피아노는 정말 테크닉이더군요.
그걸 몰랐을 땐 별 감흥이 없었죠.
백건우나 조성진 연주를 들으면 어떻게 저 긴 곡을 다 외워서 할까?
놀랍더군요.
언젠가 백건우 연주 실황을 본적이 있는데 손가락이
무슨 시가나 비엔나 소세지 같아 굵더라구요.
그러니 연습을 얼마나 많이 했겠습니까?ㅋ

일본 소설 별로인 h님께서 별 4개를 주실 정도라면 이 소설은 성공한 거네요.
저도 옛날 일본 소설은 관심이 많지만 요즘 소설은 관심이 없는 편인데
이 작품은 하도 여기 저기서 좋다고 해서
저도 기회있는 대로 한 번 읽어 볼까 합니다.^^

hnine 2017-10-08 18:54   좋아요 0 | URL
이 책은 피아노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읽는 이에 따라 그것이 그림일수도 있고, 글쓰기일수도 있고, 인생에 목표로 하는 무엇이든 대입하여 생각해볼 수 있을거예요. 저에게는 그것이 무엇일까, 그런 것이 있기나 했을까 생각도 해보았어요.
이 책에 보면 실제로 조성진에 대한 언급도 있답니다 ^^
그리고 작가가 4년 동안 취재하여 공들여 쓴 소설이더라고요. 그런 점에서도 한번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피아노 콩쿨이 아니라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가 많더라고요. 제가 제대로 잘 찾아 읽었는지 모르겠지만요. 일단 권해드립니다~
 
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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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현대소설을 잘 못 읽는다. 일단 이름이 잘 안외워지고, 짤막짤막한 문장들이 익숙하지 않고, 주제가 따로 없나 하는 느낌이 들게 빙 에둘러 묘사하는 방식에 적응이 잘 안되어서이다 (개인 취향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싫어하진 않으면서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도 없고, 그래도 이렇게 가끔씩 읽는 경우는 순전히 순간적인 기분에 의해서라고 봐야한다. 글자 큼지막하고 두께는 얇은 그런 책일까? 했는데 배송되어 온 것을 보니 그렇지 않다. 그리고 나무결 무늬의 표지와 속지가 무척 예쁘다. 브라운색 모노톤의 그림도 분위기 있고.

일본어 모르니 츠바키가 동백나무라는 것은 물론 몰랐다해도, '문구점'! 그냥 이유없이 정감있는 이름.

저자인 오가와 이토는 첫소설이자 베스트셀러가 된 <달팽이 식당>으로 알려진 일본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라고 한다. 나는 물론 읽어보지 못했고 이 책을 구입하고 난 후 작가 소개를 보고 알았다.

현대 소설에도 기승전결 구조가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엔 딱히 기승전결이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물 흐르듯, 어느 한 시기의 일기장을 뜯어내어 책으로 만든 것처럼 그렇게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넘어간다. 큰 사건도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 사건도 없진 않다. 간판은 문구점이라고 달고 있지만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업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찾아오는 손님은 편지 의뢰와 함께 사연도 하나씩 들고 오는 셈이다. 그런 사연들과, 그 사연에 대처하는 주인공 포포와, 포포의 이웃들이 모여 책 한권의 내용을 이루었다. 편지를 의뢰하러 오는 사람들은 물론 글자를 몰라서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하지 않는다. 뭐라고 써야 할지, 하고 싶은 말을 오해없이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문장을 쓰는데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다.

놀라운 것은 이들 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을 대하는 주인공과 그일에 대해 훈련시킨 그녀의 할머니이다. 편지 내용에 따라 사용하는 펜의 종류가 달라지고 종이의 종류가 달라진다. 글자체는 물론이고 가로쓰기를 하느냐 세로쓰기를 하느냐를 결정하여야 하고, 편지 봉투에 붙이는 우표까지 아무것이나 붙이지 않는다. 이렇게 소설 속에 작성된 편지는 실제로 책 뒤에 글씨체 그대로 첨부되어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가마쿠라 지역의 지도까지.

이책의 옮긴이는 번역하다 말고 궁금함을 참지 못하여 결국 일본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소설 속의 지역을 다 둘러보고 왔다고 한다. 가마쿠라 지역엔 츠바키 문구점을 제외한 모든 장소와 상점과 거리가 그대로 있더란다.

아주 작고 평범해보이는 일상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잘 다듬어 곱게 포장까지 하여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일본 사람들의 습성을 반영하기도 하고, 이 작가의 스타일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사람의 다른 소설을 읽어보지 못했으므로).

좀 무거운 책들 읽는 중간 중간, 이런 책을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모든 삶이 다 이렇게 고즈넉하고 해피엔딩이라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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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0-02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모메 식당도 그렇고 이 책도 따뜻한 이야기를 안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저는 츠바키가, 동백나무라는 뜻 외에, 사람이름으로 쓰는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뒤마의 춘희도 아마 츠바키히메라고 쓰는 것 같은데요.(그치만 갑자기 자신이 없어져요.^^;)

오늘이 3일째인 추석연휴 어떻게 보내고 계시나요.
편안하고 좋은 시간 되셨으면 좋겠어요.
hnine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hnine 2017-10-02 21:27   좋아요 1 | URL
아, 츠바키를 이름으로도 쓰는군요.
말씀하신대로 따뜻하고 섬세하고 보들보들한 소설이었어요 ^^
책 뒤에 실제 편지글이 별도의 종이에 인쇄되어 첨부되어 있는데 일본 글자를 따라 써보고 싶어지더군요.
서니데이님 댁은 추석 지나면 완전 새단장 변신하겠어요. 긴 연휴이지만 지나고 보면 언제 지났나 싶겠지요?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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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그렇다. 사랑하던 누군가를 먼저 보낸다는 일은 뭔가 내게서 한뭉텅이가 증발되어 날아간 후 느끼는 상실감 같은 것이다. 사라진 뭉텅이도, 그것이 있던 자리도, 어느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분명 느껴진다.

봄밤. 슬픈 일은 봄에 일어나면 더 슬프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삼인행>

짧은 한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느낌. 두명의 남자와 한 여자라는 구도도 낯설지 않다.

1박2일 짧은 여행을 지루하지 않고 꽉찬 느낌의 단편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을 보니 권여선이란 작가 자신이 지루하지 않고 꽉찬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길떠난 세사람 각각의 관계와 여행의 목적 등이 분명하지 않게 묘사되었음에도 그것이 큰 흠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인생의 더 중요한 걸 포기하고 체념한 마당에, 가고자 하는 맛집엔 꼭 들러서 원하는 걸 먹어야 한다는 이들의 의지는 무엇을 말하는가. 사는건 이런거라고? 아니면 이래선 안되는거라고.

세사람중 '주란'과 '규'의 관계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루고 '훈'은 처음엔 방관자인것처럼 보이다가 뒤로 갈수록 주란이 빠지고 훈과 규의 관계로 이야기의 촛점이 옮겨진다. 아마 셋중 어느 한사람을 방관자로 두지 않고 공평하게 비중을 두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아닌가 싶다.

 

<이모>

친이모가 아니고 시이모이다. 그만한 거리감이 이 소설속 인물에게서 느껴진다. 나와 비슷한 사람 깉기도 하고 아주 다른 사람 같기도 한 인물. 아무것도 소유하기 싫어하는 삶이란 어쩌면 그만큼 상실이 두려워서가 아닐까? 그것을 두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아서.

 

<카메라>

무슨 설정이 이런가. 폐지된지 2년이 넘은 라디오 프로그램 팀원들의 만남. 매우 구체적이고, 경험담 없이 시작하기 어려웠을 설정이다. 이 팀원들중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의 헤어진 여인의 누나. 116쪽의 작은 마을 같은 느낌을 주는 얼굴이란 어떤 얼굴일까 궁금해진다.

"그렇게 꽉 쥐지 말아요, 문정씨. 놓아야 살 수 있어요." (135쪽)

이래서 사는게 어려워지는거다. 꽉 쥐고 놓지 말아야 살 수 있는 때가 있고, 꽉 쥐지 말고 놓아야 살 수 있는 때가 있다는것 말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그게 각각 언제인지를 아는 것, 상황에 맞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그것인데, 그건 살면서 시간과 함께, 경험과 함께, 시행착오는 필수로 경험하면서 배워가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카메라 용도 중에는 감시 기능이 있다. 감시 카메라. 남을 감시하는 일.

우연한 실수가 필연처럼 삶을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이 단편소설의 단골주제중 하나라면, 왜 헤어졌는지, 관희는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관주와 문정은 어떤 연인이었는지, 다 쳐내고 주제에 충실한 작품이라고 본다.

 

<역광>, <실내화 한켤레>

역광은 내용과 제목 사이가 보통 독자의 수준으로 메꾸기엔 너무 멀고, 실내화 한켤레는 한사람의 질투, 파괴성을 얘기한다는 것 부터가 약간 TV 드라마식 구성 수준을 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층>

층을 무시해버리고 살수 있든 없든 이 사회에 층은 엄연히 존재한다. 사회에 존재하는 층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의식 속에 존재하는 층.

 

오래 전, 한국 소설을 몹시 사랑하던 시절, 권여선 작가의 소설을 지나쳤을리가 없다. 그런데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게 분홍리본의 시절이었나 아니면 다른 책이었나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읽다가 자꾸 정신이 다른 곳으로 도망가버리는데 그만 뭐가 문제냐, 나랑 안 맞는거냐, 나중에 읽지, 하고 제껴 놓았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다시 시도한 이 소설. 그런데 단편 중에 어디에도 주정뱅이는 없네! 그러니까 결국 책 제목의 주정뱅이는 작가가 자신을 일컬은 말이라고 봐야하나? 그녀의 알콜 사랑은 이미 잘 알려진 바이므로.

책 뒤에 해설을 신형철 평론가가 썼다. 그런데 어쩌나. 본책 읽을 때보다 더 감탄하며 해설을 읽었으니.

작품 속 인물들을 <견뎌내는 자>의 뜻으로서 Homo patience라고 묶어말하는데야 더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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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학번인 내가 대학생일때도 내가 다니던 대학에 평생교육원이라는데가 있었다. 대학에 처음 입학해서는 입구에 세워진 신식 건물을 보며 저기가 뭐하는데인가 했었다. 학생 나이는 훨씬 지난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가방을 들고 교정 내를 다니는 것 보면 학교 교수님도 아니고, 마치 나들이 온 양 곱게 차려 입으신 분들이 그 건물로 드나드는 것을 보고서 평생교육원으로 강의 들으러 오신, 학생 아닌 학생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땐 저렇게 한가하게 한두 과목 강의 들으러, 저렴하지도 않은 수강료 내고 학교 나들이 하는, 대부분 졸업생 출신 아주머니들 보면 딴 세상 사람들 같았고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공부가 하고 싶어서 오는 거 맞아? 이런 심통 맞은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평생교육원이라는데 다니기 시작한지 벌써 3학기째이다. 그것도 같은 제목의 강의를, 한 교수님으로부터 계속 듣고 있다. 내 원래 전공도 아니고 2시간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가는데도 이 강의를 듣고 오는 날은 마음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각오로, 내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따위의 평소 고민을 다시 흔들어 재 정리할 수 있게 해준다.

교수님은 영문과 교수님이신데 정년퇴직하신지 3년 되셨다고 하고, 정년퇴직과 함께 서울을 떠나 지방에 집을 지으시고 텃밭을 가꾸고 책 읽으시고 쓰시면서 지내시는데 일주일에 딱 하루 이 강의하러 서울의 옛 근무처로 오시는거다.

이번주 강의에선 세익스피어의 비극에 대한 것이 수업 내용이었는데, A C Bradley 란 사람이 <Shakespearean Tragedy> 란 책에서 비극이 예술로 되기 위해선 다음 세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했단다. 첫째, pity  (연민의 감정): 작품 속 주인공을 보며 저런 일이 일어나다니 저 사람 참 불쌍하구나 하는 느낌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fear (두려움의 감정): 나에게도 저런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과 공포감이 일어나야 한다. 세째, catharsis (정화): 극중 비극을 경험함으로써 정신을 정화하는 효과를 주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한가지를 더 제시하셨다. 윌리엄 예이츠의 시 "Lapis Lazuli (청옥 부조)"에서 인용한 대목으로 배우가 우느라 대사를 망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세상이라는 무대에 선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비극을 연출하고는 무대뒤로 사라진다. 그러나 그의 비극적인 삶이 예술적으로도 아름다운 비극이 되기 위해서는 무대 위에 선 배우는 흐느끼느라 자신의 대사를 망쳐서는 안된다.

앞의 세가지 조건으로는 그냥 수업 내용이었다. 그런데 네번째 조건을 첨가하신 노교수님의 안목과 경험과 살아온 지혜때문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바라보는 세상은 갈때와 같지 않다.

 

학생들에게 강의할때보다 평생교육원의 지긋한 학생들에게 강의할때 더 보람을 느끼신다고 교수님께서 언젠가 그러셨다. 요즘 학생들은 시험을 안보면 공부를 안한다고. 그런데 평생교육원 학생들은 시험도 안보는데도 수업 시간에 보면 지난 시간에 강의한 내용을 다 알고 앉아있다고 하셨다. 같은 내용을 강의해도 학생들은 아직 세상 산 경험이 적어서 그런제 잘 이해하는 눈빛이 아닌데 평생교육원에서 강의하면 인생 경험이 꽤 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느껴지신다고.

 

교수님은 언제까지 강의를 하실 수 있으실지 모르지만, 나 역시 언제까지 강의를 들으러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되도록 오래 오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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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9-28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h님! 참 부지런 하십니다.
옛날에 저도 졸업하고 한동안 평생교육원 기웃 거렸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저도 뭔가를 끊임없이 배우고 그래야 할 텐데 이러고 있습니다.ㅠ

삶이 예술적으로도 아름다운 비극이 되기 위해서는 무대 위에 선 배우는 흐느끼느라
자신의 대사를 망쳐서는 안된다.
정말 멋진 말이네요. 저도 기억하고 살겠슴다.^^

hnine 2017-09-28 16:10   좋아요 0 | URL
저도 저보다 한학기 먼저 이 강의를 듣기 시작한 친구가 권해서 알게 되었어요. 집이 멀어서 권해보긴 하지만 듣는다고 하려나 했다는군요. 그런데 저는 친구가 너도 이 강의 들을래? 라고 묻자 마자 5초도 안기다리도 ‘응! 나도 들을래!‘ 이랬답니다.
때로는 문학 수업인지, 철학 수업인지, 이해가 어려울때도 있지만 교수님께서 최대한 이해가 쉽게 설명해주세요.
우리는 모두 무대위에 선 배우. 우리 인생은 진행되고 있는 연극. 우리의 대사를 망치지 말고 연극을 완결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이런 말을 어떤 철학서도 아닌, 시인의 시에서 선별해내었다니 과연 영시 전공한 영문학자 다우시지요.

페크pek0501 2017-09-29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 평생교육원에 문학 강의 들으러 다녔었어요. 강의도 좋았지만 수업 뒤에 문우들과 어울려 밥 먹고 차 마시는 시간을
즐겼었어요. 그때 사귄 친구를 아직도 연락하며 지낸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좋은 시절이었어요.
마음껏 즐기시길요...

hnine 2017-09-29 17:02   좋아요 0 | URL
저는 집이 멀다는 핑계로 끝나면 바로 튕기듯 일어나 집으로 온답니다. 이제 3학기째 듣다보니 얼굴도 다 알고 결석한 것도 금방 아는 정도인데 말입니다.
수업은 못알아듣는 내용도 많아서 지지난 수업엔가 sonnet 에 대해 배우는데 sonnet이라면 세익스피어 소넷만 겨우 알고 있는 제게 Petrachan sonnet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금시초문. 한글로 소리나는대로 받아적었다가 나중에 검색해보고 알았어요 ㅠㅠ
아직도 그때 함께 수업들으시던 분들과 연락하며 지내신다니 사람들과 관계가 좋으신가봐요. 저는 그걸 잘 못해서 친구가 별로 없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