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우울 -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 우울의 모든 것
앤드류 솔로몬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울증 환자는 정상인에 비해 진실을 보는 눈이 더 날카롭다" (Sigmund Freud; Mourining and Melancholia)

 

 

저자 자신이 우울증을 경험했지만 그것이 꼭 어머니의 자살 직후에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슬픔을 극복한 후 느닷없이 시작되었다.

이처럼 우울증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점이 많고, 생각보다 현대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것을 알게된 저자는 잡지사에 특집 기사를 투고한 것이 계기가 되어 우울증에 대한 책을 본격적으로 써볼 것을 제의한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사람의 전공이 무엇인가, 읽으면서 저자 소개 다시 들춰보기를 몇번을 했을 정도로 그는 여러 분야에 걸쳐 마치 해부하듯이 우울증을 파헤치고 분석하고 정리해놓았다.

참고문헌과 주석 리스트만 70여쪽, 본문이 650쪽이 넘는 이 두툼한 책을 읽으며 과연 나는 무엇을 얻고 싶은 것일까.

"이 고통에 이른 것을 환영하노라. 그대는 이것으로부터 배움을 얻으리니" (오비디우스) (59쪽)

 

우울증을 정도에 따라 두가지로 나누면 경증 우울증과 중증 우울증이 있다. 경증 우울증을 이루는 것이 삶의 덧없음과 한계에 대한 예리한 인식이라면 중증 우울증은 붕괴의 원인이 되는 정도의 우울증을 말한다. 그렇다면 중증은 아니더라도 경증 우울증으로 부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울증이란 과연 삶을 갉아먹는 벌레 같은 것인가. 한번 빠지면 평생 헤어나오기 어려운 늪, 올가미 같은 것일까. 우울증은 결국 자살이나 그에 준하는 상태로 가는게 맞는가. 우울증은 극복될 수 있는 것일까.

우리 모두 특정한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우울증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과 싸울 능력도 있는 것이고, 끔찍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인생에서 성공을 거두며 사는 경우도 있고 가벼운 우울증에도 완전히 망가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지 않은가.

우울증에서 벗어났다고 할때 재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사랑, 통찰력, 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급함을 버리고 꾸준한 노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울증은 유전자에 의한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다른 대부분의 질병과 마찬가지로 유전적 요소도 분명히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일반적인 우울증의 경우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비율은10~50%라고 한다). 하지만 우울증의 요인들은 오랜 세월에 거쳐 대개는 평생 동안 누적된 것이라고 하는게 맞다 (75쪽).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것은 치료를 위해 필요한 과정 중 하나이며, 약물치료를 중단하면 1년 이내 재발률이 80%, 약물 치료를 하면 회복률이 80%라고 한다 (123쪽).

전체 열두장 중 두 장에 걸쳐 저자는 실제 이용되고 있는 여러 가지 치료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조사하여 정리해놓았다. 네가지 그룹의 항우울제는 물론이고 ECT (electroconvulsive therapy), 수술, 최면 요법, 아프리카 줄루 족의 민속적 요법에 이르기까지, 어떤 방법이 최적이고 최선인지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떤 치료 방법이든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는 것은 다른 질병의 치료 방법들과 마찬가지 이다. 치료 방법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좋은 치료사를 만나는 것이라고 하는데 좋은 치료사를 찾으려면 우선 여러 치료사들을 만나볼 것을 저자의 경험에 바탕하여 권하고 있다.

우울증 치료 방법을 개발하는데 어려움은 예상하다시피 우울증이 일어나는 동안 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현상들은 아직 외부 조작으로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울증의 의학적 치료에 대한 연구가 신경전달물질에 집중되는 이유도,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나마 외부 조작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울증의 발병율은 성별, 계층, 나이에 따라 골고루 분포하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에 많이 걸린다는 것은 호르몬의 든든한 (!) 배경이 있다는 생물학적 이유 외에도 사회적인 차이도 있다. 즉 남성보다 여성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경우가 더 빈번하고, 산후우울증, 남녀 성 역할 차이 등 사회적인 압박을 더 받고 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정신 질환은 오랫동안 남성들에 의해 정의되어 왔다는 점도 주목하자). 하지만 미국 대학생의 경우 최근엔 남녀 우울증 발병율 차이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고 한다.

어린이의 우울증 치료는 곧 부모의 치료가 수반된다는 것과 어린이 우울증은 성장, 성격 발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 노인 우울증은 발견이 쉽지 않은데 (당연시 하는 경향때문에), "감정실금"이라는 용어가 등장! 감정의 조절 기능 장애로 사소한 일에도 웃거나 울기만 하는 상태를 말한다. 우울증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말은 곧 사람들의 수 만큼 다양한 우울증이 존재한다는 뜻도 될 것이다. 모든 우울증이 유일하다는 것. 그래서 환자들의 케이스 얘기를 읽다보면 아무리 읽어도 중복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중독와 우울증 사이의 관계도 빠뜨릴 수 없다. 둘 중 어떤 것이 원인이고 어떤 것이 결과인가. 아니면 서로 독립적으로 걸리는 것인가. 둘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중독 하면 도파민, 우울증 하면 세로토닌. 이렇게 알려져 있는게 일반적이고 이 둘이 각자 독립적인 수용체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수용체 이전, 혹은 이후의 어떤 단계에서 얽혀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알콜 중독자에게 항우울제를 투여하면 알콜을 끊기가 더 쉬워진다는 최근 연구 결과들도 있다고 하지만, 여기서 최근이란 이 책이 출판된 2004년일테니 지금은 얼마나 더 업데이트 된 결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자살에 대한 것이 한 장 (chapter), 그것도 다른 장에 비해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라는 것이 오히려 의외다. 실제로 자살 성향은 우울 성향과 독립적으로 취급되는 것이 맞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그저 공존할 뿐이라고. 우울증의 심각성과 자살 가능성 간에는 커다란 상관 관계가 없음에도 왜 이 둘이 독립적으로 진단되지 못하고 서로 중복되는 것일까 물음으로 시작한다. 앨버레즈라는 수필가는 삶을 통해서는 점차적으로 무디어질 수 밖에 없는 고통을 귀신을 쫓아내듯 몰아내려는 시도가 자살이라고 했고, 쇼펜하우어는 삶의 공포가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는 순간 인간은 삶에 종지부를 찍는다고 했다.

지루할까봐 그랬을까? 우울증의 역사가 책의 앞부분이 아니라 중반 이후에 한 장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읽혔다. 우울증을 지칭하는 말이 지금은 Depression (디프레션)이지만 이것은 19세기 중반부터 쓰였고 이전에는 Melancholia (멜랑콜리아)라고 했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울증의 역사, 그것을 어떤 시각으로 보았고 우울증 환자들을 사회에서 어떻게 처우하고 치료해왔는지 설명해놓았다. 이 책의 제목 <한낮의 우울>은 원제는 <한낮의 악마>, The Noonday Demon 인데 이것은 성경 시편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자신이 있는 곳을 싫어하고 타인을 혐오하고 경멸하고 나태하게 만드는 한낮의 악마" 라고.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중세는 우울증을 신과 관련지어 도덕적으로 설명했다면 르네상스기는 우울증이란 곧 심오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아 미화하였으며, 그런 경향은 17세기에도 계속 되다가, 모든 것을 과학과 이성으로 설명하려는 18세기에는 우울증과 정신장애자를 가혹하게 대접하였다. 18세기 말, 낭만주의가 들어서면서 우울증을 수용하는 분위기로 전환되었으며 19세기는 원인별, 증세별, 분류의 시대. 20세기는 중요한 두가지 운동이 일어났는데 우울증을 심리학적으로 설명하는 정신분석학과 생화학적 설명을 하려는 정신생물학이다. 현재 (역시 이 책이 쓰여진 2004년 상황) 정신의학계에서는 이 간극을 메우려는 노력이 이루어지는 중이라고 한다.

뒷장에 빈곤과 우울의 관련성에 관한 내용은 그야말로 우울하게 한다. 그럼에도 극복한 사례들이 있다는게 놀라울 정도. 빈곤층을 대상으로 우울증 검진을 하는 것은 광부들 대상으로 폐기종 검진하는 것과도 같다고 했다.

우울증에 관한 진화론적 설명들도 충분히 일리있고 재미있다. 결국 이기적인 댓가가 발생하니까 우울증도 유발한다는 것인데 모든 경우에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설득력 있다.

마지막 장의 제목은 희망. 리뷰의 시작에 인용한 프로이트의 "우울증 환자는 정상인에 비해 진실을 보는 눈이 더 날카롭다"는 말과 같은 맥락으로 셀리 테일러는 가벼운 우울증을 지닌 사람들은 정상인들에 비해 자신과 세계와 미래를 정확하게 보는데 그들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은 정신 건강을 증진시키고 실패의 충격을 완화시키는 <환상>이라고 했다. 즉 우울증 환자들은 세상을 너무도 명료하게 보기 때문에 맹목성이라는 선택적 이점을 상실하고 마는 것이라고 (639쪽).

저자는 우울증을 긍정적으로 이용한 여러 가지 예를 들어보이며 (저자 입장에서 그랬어야 했을 것이다) 생산적 우울증이라는 얘기도 한다. 이 모든 긍정적인 예는 우울증을 잘 치료하고 극복했거나 최소한 극복하는 중인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건 어쩔까. 저자도 말한다 나는 우울증이 지나간 뒤의 나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누구도 우울증 체험중인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역시 A winner takes it all 인가.

쇼펜하우어의 "인간은 둔하고 무딘만큼 만족을 느낀다", 테네시 윌리엄즈가 행복에 대해 정의해 달라고 하자 "무감각"이라고 대답했다는 말에는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이 방대한 책을 쓰면서, 아니 쓰기로 결정했을때 저자는 자기의 프라이버시는 포기했다고 봐야할 것 같다. 자기의 우울증이 어떻게 시작, 진행되었는지, 어떤 방법들을 시도했는지, 그리고 자기 가족에 관한 이야기까지, 모두 공개해놓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쓰는 동안에도 그는 우울증 에피소드를 겪어야 했다고 한다. 왜 아닐까. 이런 방대한 내용과 분량의 책을 쓴다는 것이 어디 보통일인가. 이런 댓가만 있다면야 우울증도 충분한 보상이 될 수 있다는 예를 그가 보여주었다.

 

 

 

 

 

그가말하는 그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어 찾아본 영상. 책에 소개된 내용들과 많이 겹친다.

 

 

https://www.ted.com/talks/andrew_solomon_depression_the_secret_we_share?utm_source=tedcomshare&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tedspread

 

 

 

https://www.ted.com/talks/andrew_solomon_how_the_worst_moments_in_our_lives_make_us_who_we_are?utm_source=tedcomshare&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tedsp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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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7-06-19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테네시 윌리엄즈가 행복에 대해 정의해 달라고 하자 ˝무감각˝이라고 대답했다는 말~~~˝

동의하게 되는 말이군요. 예민하면 할수록 불행해질 수 있으니까요.
아무리 근심이 있어도, 남들이 공포가 느껴지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자신만은 무감각할 수만 있다면
불행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사람은 불면증도 없겠지요.

hnine 2017-06-20 19:42   좋아요 1 | URL
살아있으면서 무감각할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진 않고, 결국 테네시 윌리엄즈의 대답은 <행복이란건 없다>와 같은 급의 말이구나 생각했지요.
행복이란 그냥 어느 한 순간의 느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오래갈 순 없는 것, 오래 가지려고 해도 안되는 것.
이 책도 참 정성과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간 책이더군요.
 

 

 

 

 

 

 

 

 

 

 

 

 

 

 

 

 

 

 

 

 

 

 

 

 

 

 

 

 

 

 

 

 

 

 

 

 

 

 

 

 

아들이 이번 캠프 (운동) 에 가고 싶어하는 걸 어떤 이유로 허락 안하려고 하는데,

허락 못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오늘 하루 종일 마음이 안좋다.

 

 

 

 

(할 말 없다고 제목에 써놓고 결국 두줄 끄적거리고 말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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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 2017-06-01 0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곰돌이 귀엽다~
허락 하지 왜 .....

hnine 2017-06-01 20:47   좋아요 0 | URL
빨았더니 세제 푼 물이 거의 시커멓더라 ㅋㅋ
예전에 친정 가보니 저보다 큰 인형들 5-6개가 빨래 걸이에 나란히 매달려 있는 걸 본 적 있어. 아빠가 그렇게 빨아서 널었다고 하시더라구. 더러운 걸 못보는 성미셔서...곰돌이 빨면서 또 아빠 생각 했지.
다린이 캠프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 ㅠㅠ
 

 

나에게 영화 주인공으로 제일 흥미있는 나잇대를 묻는다면 예나 지금이나 십대라고 말하겠다.

예측 불허이기 때문이다.

제일 매력적인 나잇대를 묻는다면?

60대 이상의 나이이다. 한 인간의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

 

 

 

 

 

 

 

이런 영화가 다 있었네!

스틸 앨리스 다운 받으려고 검색하다가 함께 찜해놓았던 영화, 위풍당당 질리홉킨스

원제는 The Great Gilly Hopkins

영화 포스터 가운데 팔짱 끼고 있는 여자 아이 이름이 질리 홉킨스이다.

위풍당당한 인상 속에 감춰져 있는 이 아이의 원망, 분노, 슬픔.

 

 

다음은 주인공 질리 홉킨스와 위탁모 아줌마 사이의 대화 일부분.

 

 

질리:

전부 엉망이예요. 생각대로 된 게 아무것도 없어요.

 

아줌마:

생각대로? 생각대로 풀리는 인생은 없어. 그래서 만만치 않은거야.

이세상에 행복한 결말은 없어. 가끔 일이 쉽게 풀리면 드디어 행복한 결말이군 내 생각대로 잘 됐다고들 말하지. 마치 그게 당연한 것처럼.

물론 살면서 좋은 일도 많단다. 네가 지난 가을 우리 집에 온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좋은 일만 있기 바라는건 어리석은 거야.

 

질리:

인생이 그렇게 나쁜거면 아줌마는 왜 행복하세요?

 

아줌마:

내가 나쁘다고 했니? 만만치 않다고 했지.

만만치 않은 일을 잘 견디는 것 만큼 행복한 일은 없단다.

 

 

 

나이로 보자면 저 아줌마에 가까울텐데, 지금도 나는 십대의 질리가 하는 질문을 자주 하고, 또 동시에 영화 속 아줌마가 해주는 대답을 스스로에게 해주는, 자문자답 놀이를 한다.

 

 

재미있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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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희망 2017-05-31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좋았는데 영화도 나왔군요

hnine 2017-05-31 11:54   좋아요 0 | URL
영화 다 보고 엔딩샷 보며 알았어요 원작 소설이 있다는 걸요.
아무 정보 없이 그냥 고른 영화였거든요.
책도 좋았을 것 같아요. 영화 중에 질리의 (영화에서는 질리가 아니라 길리라고 부르더군요) 시니컬하고 톡톡 튀는 대사는 정말, 깜짝깜짝 놀라면서도 빠져들게 하더군요. 질리가 그렇게 박대를 하는데도 일편단심 대시하길 멈추지 않는 여자아이 아그네스도 그렇고요. 최근에 본 영화 히든피겨스에 나왔던 여자 삼총사 중 한 사람도 영화 중에 질리와 맞서는 학교 선생님으로 나왔어요.
인생은 만만치 않은 거지 나쁜 건 아니라는 말을 하는 아줌마에게 질리는 대번에 받아치치요. 가르치려 들지 말라고요 ㅋㅋ

다락방 2017-05-31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이 제목을 어디서 들어봤나...했는데 제가 읽은 책이었네요.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아서 책 검색해봤는데, 제가 백자평을 써두었더라고요. 후훗.
이 영화 굿 다운로더에 있길래 보관함에 담아 두었어요. 저도 꼭 봐야겠어요.

hnine 2017-05-31 11:58   좋아요 0 | URL
저는 영화는 물론이고 책이 있는 것도 몰랐어요. 그야말로 영화 리스트 쭉 훑어보다가 그냥 콕 찍어서 본 영화거든요. 보고서 아주 흐뭇했지요 4000원 내고 다운 받았는데 재미없으면 억울하잖아요.
영화 속 질리는 오히려 당당하고 꿋꿋한데 막상 영화를 보는 관객인 저는 보는 동안 몇번을 절망하고, 어쩌면 저럴 수 있어, 이젠 끝이다, 혼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봤는지 모른답니다.
영화 보세요. 재미있고 뒤끝이 남지 않아 좋아요.
 

 

일주일에 하루, 매주 화요일 나와 함께 문학 강의를 들으러 다니던 친구가 다리에 기브스를 하는 바람에 강의에도 못오고 집에서 주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 친구가 권해주는 영화를 나도 어제 다운로드 하여 보았다.

스틸 앨리스 (Still Alice)

 

 

 

 

 

 

 

 

뻔한 내용일 수도 있지만, 뻔한 내용이라는 건 곧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더 몰입하여 보게 된다.

줄리안 무어의 연기, 두말할 필요 없고.

영화 속에서 이 사람의 직업이 언어학 교수이기 때문일까? 어쩜 발음이 그렇게 또박또박, 정확한지.

말하는 동안 상대방을 쳐다보는 눈, 애정이 담겨 있고,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하는 듯한 시선도 참 아름다웠다.

 

바로 전날, <노무현 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실컷 울었기 때문인지, 이 영화 보면서 울지는 않았지만, 권해준 친구 말대로 한번 볼만한 영화였다.

검색해보진 않았는데 제목의 Still은 중의적으로 쓰이지 않았을까? 기억을 잃어가도 여전히 앨리스라는 의미, 그리고 점차 침묵해가는, 조용해져가는 앨리스라는 의미.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스틸 (Still)' 이라는 단어를 나만의 단어 목록에 넣어두기로 했다.

여전히, 아직도, 지금도, struggling 하고 있다는 것은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해야하는 일. 설사 큰 소리는 안내더라도.

실제로 줄리안 무어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I'm not suffering, but struggling."

 

안보고 지나칠 뻔 했는데 권해준 친구에게 고맙다.

 

그 친구는 지금 내가 권해준 책 사피엔스 를 읽고 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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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7-05-29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ill Alice...작년에 원서 사놓고 아직까지 손도 안 댔다는....언젠가는 손에 잡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영화가 빠를 것 같네요.^^

hnine 2017-05-29 16:26   좋아요 0 | URL
원작이 있다는 말 들었는데 nama님 가지고 계시군요.
책으로 읽으시더라도 영화도 한번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영화를 봄으로써 책이 손에 잡히는 날이 빨라질 수도 있더라고요 ^^
제 친구는 공짜로 다운 받아 본 것 같던데 저는 maxmovie 사이트에서 1000원 내고 다운 받아 봤어요.
가족간의 관계는 평상시 부딛힘과 충돌이 많을지라도 진짜 위기 상황이 되어봐야 그 관계의 본질이 드러나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게 되었고요.
제 서재 이름에 ˝진행중˝이 들어가잖아요? ^^ 제가 still 이라는 단어를 각별하게 생각하기는 한가봐요.

nama 2017-05-30 08:08   좋아요 0 | URL
still은 비교급을 강조하는데도 쓰이죠. ‘훨씬‘ 더 .... 하다는 의미로요. 각별한 단어이긴 하네요.

hnine 2017-05-30 08:16   좋아요 0 | URL
아, 그렇네요! 잊고 있던 영문법을 상기시켜 주셨어요. ^^

상미 2017-05-30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리 다친 친구는 나도 아는 사람??
영화 다운을 어찌 받나 몰라서 못본다는...
나 은근 허당

hnine 2017-05-30 12:13   좋아요 0 | URL
너도 아는 사람 ^^
 

 

 

아라비아는 아라비아 반도라는 지명에서, 그렇다면 앞에 있는 사우디는 어디서 유래한 말일까?

평소에 말의 유래에 관심이 있는 편이라 이번 전시를 보면서 이것도 당연 궁금했다.

잘 모를 땐 사람 이름이라고 찍으면 (!) 맞을 때가 많다는 경험에 미루어, <사우디>도 혹시? 했는데 역시.

사우디 가문에서 유래한 이름이란다.

사우디 가문의 왕 압둘아지즈에 의해 지금의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이 세워진 것은 그리 오래전이 아니었다. 1932년.

사막, 오아시스, 이슬람교의 발상지라는 것 말고 사우디 아라비아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전무 한데다가, 얼마 전에 본 이집트 유적과 무엇이 다를지도 궁금했다.

 

올해가 우리나라와 사우디 아라비아 수교 55주년.

사우디관광국가유산위원회에서 아시아 순회전을 기획하면서 그 일환으로서 지난 5월 9일 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아라비아이 길이라는 제목으로 466품목에 대한 전시가 진행중이다.

 

 

 

 

 

 

 

 

 

 

 

 

 

 

 

 

 

 

 

 

 

 

 

 

 

 

 

 

 

 

 

 

 

 

 

 

 

 

Nabonidus  왕의 비석.

단순화, 추상화된 형태가 마치 현대 조각 같다. 브랑쿠시??

 

 

 

 

 

 

 

 

 

 

 

 

 

거의 모든 유적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렇게 세면대에 까지.

 

 

 

 

 

 

 

 

원래 Dedan 이라는 곳의 사원 벽에 기대어 서있던 남성상.

통치자의 상으로 추정된다.

 

 

 

 

 

 

 

 

 

 

 

 

 

 

낯익은 글자 모양이다! 했는데 라틴어라고 한다.

라틴어 명문이 새겨져 있는 비석으로, 2008년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통치하에 제작된 사암 석판.

내용은?

헤그라 (지명)의 건물을 재건축 하는 것을 기념한다는 내용.

 

 

 

 

 

 

 

 

 

 

아라비아 지역에서 낙타란 우리 나라에서 소와 같은 것.

 

 

 

 

 

 

 

 

 

 

 

 

 

 

 

 

 

 

무식하게도 청자나 청화백자는 중국과 우리 나라에만 있는 줄 알았다 ㅠㅠ

 

 

 

 

 

 

 

 

 

금으로 쓴 쿠란

 

 

 

메카의 카바 신전의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던 거대한 나무문.

1947년까지 사용되다가 교체되었다고 한다.

메카 신전은 지금도 이슬람교도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

 

 

 

 

 

 

 

메카, 알 말라의 묘지석 (9세기)

불규칙한 형태의 현무암에 망자나 조상의 이름, 무덤의 위치, 혈통의 기원등을 새겨놓았는데 쿠란의 특정 문구로 귀결.

 

 

 

 

 

 

 

 

 

전시장에 가면 기념품샵을 꼭 들르기는 하지만 구경만 할뿐 기념품을 사가지고 오는 일은 거의 없는데 이 날은 맨 위의 인물상 세쌍을 팔고 있길래 사왔다.

뒤에 자석이 달려 있어 지금 우리 집 냉장고에 저렇게 붙여 놓고 냉장고 문 열 때마다 눈맞춤.

기념품 크기는 아주 작아서 인물상 하나가 손가락 하나 크기 정도.

 

 

 

전시는 8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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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5-28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낯익은 글자 모양이다! 했는데 라틴어라고 한다.
라틴어 명문이 새겨져 있는 비석으로, 2008년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통치하에 제작된 사암 석판.
내용은?
헤그라 (지명)의 건물을 재건축 하는 것을 기념한다는 내용.

→ 놀랍도록 아름다운 글꼴입니다. 제16대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의 생몰년도는 서기 121~180년, 황제 재위 기간은 161~180년이라고 하는데요. 저 아득한 고대 시기에 저런 완벽한 미적 감각을 보여주는 글꼴을 창조해냈다는 게 정말 믿기지 않습니다. 물론 그보다 훨씬 이전에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그리스 문명 등등에서 더욱 더 놀라운 미적 유물들과 기록물들이 발굴·발견되었지만 말이죠. 저는 저런 놀랍도록 정교한 미학적 고대 유물들을 볼 때마다 아직도 조악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대 한국의 건축 디자인, 글꼴 디자인, 전자제품 디자인에 대한 아쉬움과 불만을 감출 수 없습니다. 특히 요즘 나오는 신간 책들 표지에 한글을 아주 기형적이고 반미학적으로 디자인한 글꼴이 유행하고 있는데요. 그런 걸 볼 때마다, 왜 문자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법칙적 창제 기록과 과학적 우수성을 지닌 한글을 저렇게 미학적으로 열등하고 조야한 형태로 일그러뜨리는가 참으로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유행하는 한글 글꼴들이 보기에 흉하다는 말은 좀 강한 표현이긴 하지만 미학적으로 전혀 아름답거나 세련된 형태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제 생각으로는 우리의 미적 감각은 아직도 저 고대 로마인들의 미적 감각 수준에도 한참 못 미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예컨대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가 한글 글자 체계의 우수성을 얘기하는 어떤 글에서 독자들한테 한글 글꼴을 보여주기 위해 인용한 한글 사진이 있는데요(무슨 광고판이나 알림판 같은 데 쓰여진 커다란 한글 글자였는데요). 그 사진에 나온 한글 글꼴의 미학적 수준을 보면, 제가 보기에, 아주 조악한 수준이에요. 그런데 그것은 서양인인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보기에 동양 세계의 일부인 한국의 (글꼴) 미학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그 사진을 택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이런 서양인들의 동양의 일부인 한국에 대한 특정한 시각을 보여주는 사례는 영화에서도 많이 볼 수 있죠. 제가 볼 때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특정한 한글 사진 인용에도 그런 서양인의 동양·한국을 바라보는 특정한 시각이 개입 혹은 반영됐다고 본다는 것이죠. 저 위 로마 시대 석판 사진에서 보듯이 지극히 세련되고 정교한 글꼴에서 볼 수 있는 미학하고 아프리카나 동양권의 지극히 불완전하고 볼품없는 토우 같은 유물에서 볼 수 있는 미학은 서로 차원이 좀 다르다는 (은연중의) 인식을 깔고 있는 것 같아요. 저 또한 이런, 어찌 보면 인종적 편견이랄 수도 있는, 인식이 있는 게 사실이긴 합니다.

[처음 올린 시각 : 2017-05-28 13:21]
[약간 수정해서 다시 올린 시각 : 2017-05-28 14:09]

hnine 2017-05-29 06:53   좋아요 0 | URL
저 사실 저 전시회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점은 다름 아닌 문자 자체의 아름다움이었답니다. qualia님 댓글 읽고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아 반가왔어요.
위에는 우리에게 그래도 낯익은 라틴어 문자만 울렸지만 그 외 다른 문자들이 새겨진 유적들도 많았어요. 아람어 (아랍어의 오자 아님 ^^) 가 새겨진게 제일 많았고 나중엔 그 휘두르는 칼 모양의 사우디 아라비아 문자까지, 문자 자체가 예술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qualia님 덕분에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우리 한글에 까지 관심을 가졌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네요. 한글을 비롯해서 우리 한국 사람이 보는 우리 문화와 다른 문화권과 가치관을 가진 외국 사람의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은 다를 수 있겠지요. 한국에 우리 고유 문자인 한글이 있다는 것 조차 모르는 무식한 (!) 외국 사람들도 태반인데 그래도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아주니 저는 일단 고마움이...^^
요즘의 조악한 디자인은 아마도 너무 꾸미려는 의도가 들어가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저 시대 문자들은 단순하고 간결하고 글자 자체의 조형미로 충분했는데 요즘은 장식 같다고 할까요.
전시를 보고 와서 사진을 올리며 정리하다보면 꼭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답니다. 실제로 그런 적은 없지만요. 이번 전시는 보기 전에 담당 큐레이터의 설명을 한 시간이나 듣고 갔는데도 역시 한번 더 가서 복습해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qualia님 덕분이기도 합니다 ^^

사마천 2017-05-29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네요. 꼭 가보고 싶습니다. 친절한 리뷰 감사드립니다 ^^

hnine 2017-05-29 13:10   좋아요 1 | URL
너무 자세하게 쓰면 오히려 전시에 대한 궁금증을 떨어뜨릴까봐 사진도, 소개글도, 간략하게만 올리자 했어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알던 것만 알려고 하고 모르는 쪽은 계속 모르려고 하는 타성이 붙는 것 같아서, 예전에 관심 두지 않았던 분야에도 눈을 돌리려고 노력은 하는데 그게 의외로 즐겁고 재미있네요.
이제 막 시작한 전시니까 사마천님도 한번 둘러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