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관심없는 우리 집 식구들

드디어 오늘 꽃을 알아보다

"어, 오늘 꽃이 바뀌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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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5-25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에 관심없기론 저희 집도 마찬가진데
저리 찍어 놓으시니 꼭 일부러 연출하신 것 같습니다.
좋으네요.^^

hnine 2017-05-25 22:52   좋아요 0 | URL
일부러 연출 까진 아니고, 벽쪽에 붙어있던 꽃병을 사진 찍으려고 식탁 중앙 쪽으로 좀 끌어왔죠 ^^
예전엔 제가 꽃 좀 보라고 해야 알아보고 ˝예쁘지?˝ 해야 겨우 그렇다고 대답이나 하고, 그 정도였거든요. 이제야 좀 눈이 뜨이나봅니다.

서니데이 2017-05-26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약은 향기가 진한 꽃이더라구요. 보랏빛 꽃도 예쁘고요.
테이블이 타일느낌도, 유리 느낌도 드는데, 예뻐요.^^
hnine님, 기분좋은 금요일 저녁시간 되세요.^^
 

 

 

 

 

 

 

 

 

 

 

 

 

 

 

 

 

 

 

 

꽃을 받으면 늘 마루에, 식구들 모두 볼 수 있는 자리에 두곤했는데

이번엔 내 방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내가 제일 시간을 많이 보내는 자리

내 책상에서 1m 거리, CD꽂이 위

 

 

 

되도록 자주 보고

되도록 가까이 두고 싶어서

 

 

 

naming에 관심많은 나는

작약이 왜 작약인지 사전에서 찾아보기까지.

 

함박꽃 작 (芍), 약 약(藥) 이란다.

 

 

 

 

 

 

 

 

 

읽고 싶은 책이 생겼다  ↓

 

 

 

 

 

 

 

 

 

 

 

 

 

 

 

 

제목만 이렇게 저렇게 바꿔서 읽어본다

 

물 흐 르 고 꽃 은 피 네

물 은 흐 르 고 꽃 은 피 네

물 흐 르 고 꽃 피 네

물 흐 르 고 꽃 도 피 네

물 은 흐 르 고 꽃 은 피 는 데

물 흐 르 고 꽃 피 니

 

 

 

 

 

 

 

주문부터 하기 보다

 

 

 

 

 

 

 

 

 

 

 

 

 

 

 

 

 

지금 읽고 있는 이 책 ↑ 부터 빨리 읽기로.

 

주문은 그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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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의서재 2017-05-14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 정말 그림처럼 곱네요. ♥

hnine 2017-05-14 21:31   좋아요 1 | URL
그렇죠? 피어있는 동안 실컷 보고 싶어서 방으로 들고 들어왔어요. 방에 놓으니 향기도 은은하게 느껴지고요.

Joule 2017-05-15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이 정말 예쁩니다. 하이드 님네 꽃집에서 왔나 봐요. 정말 곱다 고와.
저는 물 흐르고 꽃 피네,가 마음에 듭니다.

hnine 2017-05-15 10:22   좋아요 0 | URL
저도 물 흐르고 꽃 피네가 제일 마음에 들어요 ^^
꽃, 예쁘죠. 예쁜 것 이상이어요.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고, 세상에 이렇게 고운 것도 있구나, 새삼 확신을 주고요.
Joule님, 오늘 행복 만땅 하시길! ^^

상미 2017-05-15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작약은 생약학 시간에 배웠었지 ㅎㅎ
배웠다는 사실만 기억나고 ,뭐에 썼었는지는 기억도 안남.
사진 보고 모란꽃인줄 알았는데
작약이라고 해서 나도 찾아보고 왔다 .

http://danbee928.blog.me/221005621483

hnine 2017-05-15 12:09   좋아요 1 | URL
이름에 藥 자가 들어가는 꽃! 기억해두길~

2017-05-24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4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술관 가기 좋은 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오랜만에 가볼까 했다가, 동물원과 붙어 있어 휴일을 맞아 어린이 손님때문에 사람이 많을 것 같아 서울관을 가기로 했다.

 

미술관 홈페이지 들어가서 도슨트 설명 시간 확인하고, 가는 편 돌아오는 편 고속버스 예약하고, 시간 단위 시간표까지 짜서, 아침 7시 좀 넘어 집을 나와 출발!

 

 

 

 

 

 

 

 

 

미술관 지하 공간에 설치된 대한항공 박스 프로젝트, 양지앙 그룹 <서예: 가장 원시적인 힘의 교류>

 

큰 원반 가운데, 서예 연습하고 버린 듯한 종이 뭉치들이 구겨져 채워져 있고, 원반 둘레는 앉아서 차를 마실 수 있는 큰 원탁으로 되어 있다.

동영상을 올릴 수 없어서 아쉽지만 저 원반 가운데 종이 더미 일부분이 계속 꿈틀꿈틀 움직인다. 마치 사람이 그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 처럼.

재작년에 갔을 때였나, 4단 컨테이너에서 물이 계속 떨어지며 글자를 만드는 글자 폭포 설치 작품이 있던 그 자리.

 

 

 

 

 

 

 

 

 

 

 

 

 

이형규 (1969- ) <HK 실험실, HK Lab-Or>

혼합재료

 

비이커, 전극 연결 장치가 달린 헬멧, 깔때기, 튜빙, 등등. 실험실에서 볼수 있는 장치와 사람이 누울 수 있는 실험대.

 

 

 

 

 

최수앙 <The Wing>

 

이 날개는 날을 수 있을까?

 

 

 

 

 

 

 

김은진 (1968-  ) <냉장고> The Refrigerator

Acrylic on canvas

 

가로 길이가 5m가 넘는 작품이다.  

 

 

 

 

 

완성하는데 얼마나 걸렸을까. 145.3 x 560 cm 캔버스에 화가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있다. 삶과 죽음, 의식과 무의식, 자유와 구속, 가난, 유한 또는 무한.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았나보다.

 

 

그중에 한 부분을 클로즈 업해서 찍어보았다 ↓

 

 

 

 

 

 

 

 

 

 

손동현 (1980- ) <문자도 코카콜라> Logotype CocaCola

Color on paper

코카콜라 글자 내부를 전통 회화 양식으로 채웠다.

 

 

이것도 어느 그림의 일부인데?

 

 

 

 

 

조환 (1957- ) <무제> Untitled

Steel, Polyurethane

 

철을 휘어서 공간을 만들어내어 산을 형상화 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도윤희 (1961- ) <액체가 된 고민> Liquefied Agony

Oil and graphite pencil with varnish on canvas

 

도 윤 희 라는 이름에서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 검색해보았더니 도상봉 화가의 손녀이며 꽤 알려진 화가였다.

화면 전체에 흐르는 시커먼 저것이 Agony? 액체가 된 고민이라는 것은 해결되어가는 고민이라는 뜻 같다는 생각이 들자 그림 앞에선 나의 긴장이 풀어진다.

 

 

 

 

 

 

장화진 (1949-  ) <24개의 창문> Twenty-Four Windows

Digital Images, acrylic and oil on canvas

 

 

 

 

최수앙 (1975- ) <사이> The Between

Oil on resin on wood base

 

저 표정, 저 자세. 안으로 모아 세운 두 발, 깍지 낀 손,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모습, 하고 싶은 걸 찾아나서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눈빛.

제목 작품이 The Between 인것은 또 뭔가.

 

 

 

 전선택 (1922- ) <초대> Invitation

Oil on canvas

 

 

 

 

 

신영헌 (1923-1995) <무제> Untitled

Oil on canvas

1960년대 작품인데 초현실주의 기법이 도입되었다.

평안남도 출생 화가가 우리의 분단 상황을 표현했다고 한다.

 

 

 

 

 

 

 

 

 

 

 

 

 

 

김혜련 <동쪽의 나무>

 

원래 독문학을 전공하였다.

임진강에서 보이는 철책을 보고 영감. 이후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분단의 상처를 그림에 담아온 화가이다.

 

오일로 그림을 그리고 캔버스의 한쪽을 일부러 찢은 후 꿰매어 상처와 흉터를 나타내어 분단 상황을 표현했다. 총 16개의 그림이 일렬 횡대.

 

 

 

 

 

 

김종찬 (1916-?) <토담집> An Earthen-Walled Hut

Oil on canvas

 

평양 출신 화가.

쓰러져 가는 토담집 담벽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소년이 모습.

식민지 시대 우리 나라 상황을 표현했다.

 

 

이경희 (1925- ) <대구의 뒷거리 (향촌동) 실내 (다방)> A Back Street in Daegu (Hyangchon-dong) Indoor (A Coffee Shop)

Watercolor on paper

 

이름을 보고 여자분인줄 알았는데 올해 아흔이 넘으신 남자 화가이시다.

1950년대 작품인데 밝고 유쾌하고 환상적인데다가 생동감 넘치는 그림에 깜짝 놀랐다.

 아들의 죽음 이후 20년 가까이 칩거해오다가 2013년 다시 전시를 열면서 모습을 나타냈다고 한다.

 

 

 

 

김환기 (1913-1974) <새벽 #3> Dawn #3

Oil on canvas

 

한국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이번 전시 광고하는데 한 몫 하지 않았나 싶은 그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이후 최고가로 매입한 그림이다 (13억원).

1964, 1965년에 걸쳐 완성하여 1965년 상파울로 비에날레에 출품되었던 그림이다.

김환기는 전라남도 신안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성장하였다. 일찍부터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하였고 이후 각국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렸는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의 백자 사랑은 유명하며 백자에서 조형미와 민족을 배웠다고 한다.

이 그림에서 가운데 둥근 것은 동트기 전의 해를 상징.

화면 전체의 푸른 빛이 제목 새벽이라는 이미지와 통한다.

 

 

 

 

유영국 (1916-2002) <작품> Work

Oil on canvas

 

역시 두말 할 필요 없는 한국추상미술의 대가 유영국.

울진 깊은 산골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공부하였다. 이중섭의 2년 선배.

 

간결, 강렬.

붓이 아닌 나이프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박대성 (1945- ) <현율> Black Cannon

Ink and color on paper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기법을 이용.

얼마나 큰 붓을 사용해서 그렸을까?

제목의 현은 검을 현. 웅장하고

실제로 백두산을 여러번 오른 기억을 바탕으로 산의 형상을 해체, 재구성하여 그린 작품이다.

 

 

 

써니킴 (1969- ) <호수> Lake

Acrylic on canvas

 

중학교 2학년때 미국으로 이민간 교포 작가.

몽상적이고 최면에 걸리게 할 듯한 그림. 풍경을 그린 것 같지 않고 마음을 그린 듯한 느낌.

쳐다보고 있으면 뿌연 안개가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운보 김기창의 <정청>이라는 그림 일부. 가장자리를 실로 꿰어 만든 고급스런 둥근 코 신발과  하늘하늘 치마 자락의 섬세함이 돋보여서 이 부분을 클로즈 업.

 

 

 

 

 

 

 

높은 곳에 걸려있는 이 그림의 제목은 나영민 화가의 <천국의 계단>

 

 

 

 

 

 

 

위의 다섯 폭 그림은 조광익 화가의 <산수 분 꽃피다>

다섯 개 화분에 이상향을 담았다.

 

아래의 열 여섯개 캔버스는 위에서 소개한 김혜련 <동쪽의 나무>

 

 

 

백남준 이후 국제적 지명도가 높은 화가 중 한 사람 강익중 설치 작품 <삼라만상>

작은 작품 만개가 모여 하나의 작품을 이루었다. 온갖 사물을 다 끌어다 모은 듯 한데 그림, 열쇠고리, 그릇, 본인 작품 미니어처, 강익중체 한글, 그리고 가운데는 은색의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놓았다.

 

 

안국역 지하철역에서 미술관까지 걷는 약 15분 거리 자체도 오랜만에 걸으며 보니 하나의 전시 같다.

따지고 보면 전시가 따로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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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7-05-06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려진 종이뭉치가 작품이라니.....ㅎ
저도 나인님이랑 전시회 다녀온 느낌입니다.
설명 감사합니다.

hnine 2017-05-07 06:43   좋아요 0 | URL
너무 많은 사진을 올렸죠? 많이 뺐는데도 그렇네요. 저 날 미술관 구석구석 다 본 것도 아닌데도 담아오고 싶은 그림이 많았어요. 욕심이죠.
저 미술관 지하층 중앙엔 늘 커다란 설치 미술 작품이 있어요. 지난 번 갔을때 실제 물 폭포가 떨어지면서 디지털로 글자가 만들어져 같이 떨어지는 작품도 인상적이었는데 이번에도 종이뭉치가 꿈틀, 꿈틀. 중국 작가들 작품이랍니다.
미술관에 가면 그 많은 미술 작품들 속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읽어내고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읽어낼 수 있어서, 좁은데 갇혀 있는 자신의 생각 범위를 넓힐 수 있어 좋아요.

페크pek0501 2017-05-13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봐도 좋군요...

hnine 2017-05-13 19:46   좋아요 0 | URL
pek님은 어떤 그림이 제일 마음에 드시는지...
사람들마다 나름대로 자기만의 세계가 있을텐데, 모든 사람이 그것을 잘 표현하고 사는 것 같진 않아요. 안타까운 일이지요.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면 그것은 하나의 그림이라기 보다 한 사람의 생각, 하나의 다른 세계를 엿보는 것 같아서 눈이 커지고 생각도 넓어지는 기분이 들어요.
미술관들이 대개 서울에 몰려 있어서 더 자주 못가보는게 유감이랍니다.

2017-05-15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5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집에서 30분 거리 대청호 둘레길.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 걱정하기에는, 눈에 보이는 풍경과 자연이 반갑고 좋았다.

알록달록 화려하고 근사하진 않아도, 오래된 집에서 나를 기다려준 할머니처럼.

말없이 한번 눈길만 주시는데도 반가와하시는 마음 알 것 같은 할머니처럼.

 

 

 

 

 

걸으라고 되어 있는 길 말고, 남편은 자꾸 샛길로 들어가보려고 한다.

사진은 그냥 남들이 다 걸어가는 길로 걸어가다가 맘에 드는 곳을 찍는게 아니라, 없는 길로 찾아다니며 찍는 거라고.

 

 

 

 

 

풀밭을 헤치고 들어가자 이렇게 오래된 나무가 꺾여지고 쓰러져있는 곳들이 나타났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꺾여져 쓰러져 있는 모습 조차 위엄있어보였다.

 

 

 

 

 

 

꺾여서 완전히 가로로 누워버린 가지. 자세히 보니 거기에서 새로 어린 가지가 자라나고 있다. 이들은 똑바로 위를 향하여!

 

 

 

 

 

 

 

 

 갈대는 어느 계절에 봐도 참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하나로는 여리고 힘없어 보이는 갈대이지만 저렇게 집단을 이루면 어떤 다른 식물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멋이 생겨나고, 함께 움직여 바람 소리를 만들어내고, 물결 같은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물가가 아닌, 벌판 쪽에 방치되어 있는 파란 배.

가까이 보니 배는 빈 배가 아니었다.

 

 

 

그 안에 새로운 식구들이!

 

 

 

 

 

 

 

 

 

 

 

 

 

 

 

 

 

 

 

 

저~기 멀리 새가 보이시나요?

 

 

 

 

이젠 보이시나요?

 

 

 

 

 

"퍼덕! 퍼덕!"

이 물가 어디선가 요란한 소리가 나서 둘러보니, 물 속에서 잉어만한 물고기가 자맥질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얼마나 힘차게 돌아다니고 있던지.

집에 와서 아들 보여주려고 동영상으로 그 모습을 담아왔는데, 여기 올리려니 방법을 모르겠다 ㅠㅠ

 

눈에 보이는 것 외에 가만히 귀기울이면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등, 평소에 못듣던 소리가 많이 들린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녹음해오기도 하는데 이것 역시 올리는 방법을 몰라 카메라 열고 혼자 구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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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4-30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러지고 꺾이고 널브러져 썩어가는 나무들 거무튀튀한 모습을 보니까 오히려 자연의 충만한 생명력을 느낍니다. 어떻게 싱그럽게 신록을 앞다퉈 피우는 성한 멋진 나무들을 놔두고 저렇듯 처연하게 쓰러져 죽어가고 썩어가는 나무들을 찍을 생각을 하셨죠? 왜 이렇듯 그 마음이 감사하고 감동스러운 것이죠? 그럼에도 또 새싹을 틔워내고 어린 가지를 키워내는 나무들 모습을 보니, 또 세상을 온통 초록 물감으로 칠해가는 봄풍경을 보니, 이곳 북향의 제 방 안에까지 물씬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hnine 님 사진, 정말 너무 좋아요~ ^^

hnine 2017-05-01 05:12   좋아요 0 | URL
쓰러진 나무에서 새로운 가지가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죽었다고 죽는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 몸은 죽어도 그 몸뚱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생명을 자랄 수 있게 해주니까요. 생명 현상을 그렇게 돌고 도는 것이겠지요. 저의 어줍짢은 몇줄 느낌보다 qualia님의 해석이 더 확실하고 구체적이어요.
낮엔 벌써 여름 기운이 느껴지지만 qualia님도 이 봄 기운 듬뿍 받으시고 건강하셔야죠 ^^

stella.K 2017-04-30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오린가요?ㅋ
좀 메말라 보입니다.
가물어서 큰 일이어요.
언제 한 번 시원하게 비 좀 확 내렸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hnine 2017-05-01 05:15   좋아요 0 | URL
사진을 줌인 해서 찍어서 저정도 나왔니 저도 가까이 못봐서 무슨 새인지 모르겠어요 (가까이 봤어도 몰랐겠지만 ^^).
인공지능이니, 4차 산업 혁명이니 하는 시대에 살면서도 여전히 우리는 비가 와야 하는데 걱정하며 살고 때가 되면 어김없이 새로운 싹이 나는 자연을 보고 느끼며 살고 있어요.

하루 2017-07-20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가리...네요

hnine 2017-07-20 22:38   좋아요 0 | URL
아, 하루님. 왜가리군요!
 
아메리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
헨리 제임스 지음, 최경도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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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 1843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요즘도 그러기 어려운데 그 시절에 10대의 한때를 파리, 제네바, 런던 등에서 보냈고, 하버드 법대를 거쳐 또 다시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을 여행하며 20대를 보냈다. 이 책 <아메리칸>은 그의 나이 겨우 34세 발표한 장편이며 그의 또다른 소설 <데이지 밀러>는 한해 뒤인 35세때 발표한 작품이다. 그외에도 많은 작품들을 발표하였고 70세가 넘은 나이에 영국으로 귀화, 영국 국왕으로부터 명예훈장까지 받았다.

재산도 많고 지적으로도 풍요로운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배경,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가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사업을 하여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는 것은 이 책에서 주인공 뉴만의 자수성가 스토리와 연관지어진다. 제도권 내 교육보다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요즘 말하는 글로벌 차원의 교육을 받게 했다는 것에서 그만한 재산의 뒷받침 외에도 자식을 또는 손자를 교육시키는 부모와 조부모의 가치관이 어떠했는지 엿볼 수 있다. 그의 아버지 역시 프린스턴에서 공부한 지식인으로서 당대 유명 지식인 에머슨, 소로우, 카알라일 등과 친교를 맺었고 자유 교육을 지향했으며 자식들에게 토론을 통한 자유분방한 사고를 심어주었다고 한다. 후에 헨리 제임스 역시 파리로 건너가 투르게네프, 플로베르, 모파상, 에밀 졸라, 알퐁스 도데 등과 친분을 맺으며 4,50대를 태어난 미국보다는 런던과 파리에서 주로 보낸다. 자연히 유럽과 미국을, 유럽 사람들과 미국인들을, 여러가지 면에서 비교해보는 눈이 작동했을 것이다. 그 결과들이 그의 수많은 작품으로 탄생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총 22편의 소설과 113편의 단편, 그리고 그 외에도 수많은 비평, 여행기, 희곡, 자서전, 전기 등. 

흔히 헨리 제임스의 소설은 읽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 것에 비해 이 소설 <아메리칸>은 비교적 내용이 분명하기 때문에 제임스 소설의 입문서가 되기도 한다는데, 그래서인지 내용 자체로만 보면 기승전결, 원인과 결과가 분명히 드러난다고 볼수도 있겠지만 그가 배경으로 삼은 파리, 등장인물들의 배경과 특성, 이것들을 꼼꼼히 따져가며 읽으면 이 소설 역시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읽힐 것이다.

사업으로 상당한 재산을 모아 돈 걱정 필요 없는 젊은 사업가 뉴만 (이름에도 의미를 담은 듯, Newman). 돈은 충분히 벌어놓았으나 그것으로 충족되지 않는 무엇이 있어 새로운 환경을 경험 (그리고 소유)하고 자신의 삶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방편으로 그는 미국과 다른 세계, 유럽, 파리로 향한다. 미국에는 없는 신분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그곳에서 뉴만은 미망인 백작 부인 클레어를 만나 결혼까지 약속하지만 급변한 상황으로 결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백작부인의 집안에서 갑자기 반대를 한것이다. 귀족 사회로의 진입은 실패로 돌아가고 이로써 물질적 성공과 용기, 의욕은 신분과 계급, 전통보다 하위에 있음을 얘기하는 것 같지만 작가는 이 귀족 사회의 "숨겨진" 탐욕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노력으로 이룩한 물질적 성공보다 나을 게 없음을 보여주었다. 결말에서 결혼에 실패한 클레어가 선택한 길은 귀족 사회의 결말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암시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두 세계, 물질적 성공을 상징하는 미국 그리고 귀족과 신분의 벽이 존재하는 유럽은 끝내 융화되지 못했고, 백작 부인과의 결혼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좌절의 과정에서 미국인 뉴만은 한단계 더 정신적 성장을 한 셈이다.

이보다 두께는 얇았지만 헨리 제임스의 <데이지 밀러>는 헤매면서, 느린 진도로 읽었던 반면 이 책은 위에도 말했지만 비교적 분명한 기승전결 구성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복잡하지 않아서인지 쉽게 읽혔다.

생전에 그의 코스모폴리탄적 삶의 궤적과 어울리는, 그래서 쓸 수 있었을 작품이다. 뉴만이 벨가드 집안의 비밀을 폭로하고 마음을 정리하는 결말에서 작가는 유럽이 아닌, 미국쪽의 손을 들어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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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7-04-25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헨리 제임스는 ‘영국에서 살면서 간간히 미국과 유럽을 방문하고 좋은 식당에서 외식을 많이 하면서 한평생을 보낸‘ 사람인데도, ‘19세기 인물들 중 가장 정력적으로 살아간 사람들 중 하나였다‘는 평을 받더군요. 에머슨과의 인연을 부자(父子)가 동시에 맺은 것도 흥미롭고요. 최근에 읽었던 헤럴드 블룸의『교양인의 책읽기』에서는 『여인의 초상』을 10쪽에 걸쳐서 상세히 ‘강의‘해 놓았던데, 헨리 제임스의 작품을 하나도 읽어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그의 작품을 에머슨과 연관지어 설명한 다음 대목이 도리어 눈에 띄더군요.
* * *
자립은 에머슨의 주된 원리라는 점에서 이사벨 아처(『여인의 초상』에 나오는 주인공)는 에머슨의 후예라고 볼 수 있다. 아마 제임스도 틀림없이 인식했을 것이다. 제임스의 아버지가 에머슨에 심취했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그의 아들인 제임스가 에머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한 말을 신중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누구도 우리가 요구하는 것, 열망을 지니고 독립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그렇듯 꾸준하고 지속적이며 무엇보다도 그렇듯 자연스러운 비전을 가진 이는 없었다.˝

˝에머슨을 있게 한 그의 희귀한 천재성은 주의 깊은 사람들에게는 최초의 그리고 진실로 희귀한 문자로 된 미국의 정신이다.˝

첫번째 문장은 이사벨을 가리키는 내용이다. 그것은 정확히 그녀의 비전을 보여준다. 두 번째 문장은 제임스의 진심인지 잘 모르겠다. 그는 에머슨의 산책 친구였던 나다니엘 호손을 좋아했다. 내 생각엔 호손의 『주홍글씨』에 나오는 헤스터 프린은 이사벨보다 더 에머슨적인 여주인공으로 헨리 제임스처럼 열정에서 벗어나 있다.

hnine 2017-04-27 05:52   좋아요 0 | URL
Emerson이라는 이름을 몇개 잘 알려진 싯구나 문구의 저자로만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영향은 후대의 작가와 학자들에게 무지막지하더라고요. 영국의 세익스피어처럼 오래동안 그나라를 대표하는 작가가 없는 미국에서 에머슨은 미국 지성의 뿌리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헨리 제임스의 이 소설을 읽다보면 주인공 뉴만에 헨리 제임스의 행적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는 것을 느낄수 있답니다. 미국과 유럽이 그냥 나라와 대륙으로서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도요. 비록 소설에서는 이야기 중에 등장하는 몇몇 인물, 그리고 가문으로 나타냈지만 그걸 다 찾아 읽는 것은 어쩌면 저도 그냥 이야기 줄거리만 쫓아서 혼자 읽었다면 모르고 지나쳤을거예요.
인용해주신 문구도 감사합니다.

oren 2017-04-26 18:55   좋아요 0 | URL
‘미국과 유럽을 넘나들며 크나큰 차이를 느낀 사람들‘ 가운데 ‘보스턴의 먹물들‘이 싫어서 영국으로 건너갔던 T.S. 엘리엇의 경우가 생각납니다. 물론 드보르작 같은 음악가가 미국에서 느꼈던 ‘신세계의 분위기‘도 문득 떠오르고요. 그런데, 에머슨은 ‘미국적 전통‘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기 힘든 (유럽을 모방하기에 바쁜) 척박한 분위기에서「미국의 학자」라는 탁월한 연설로 ‘미국의 지적 독립선언‘을 이뤄냈던 인물이니(불과 34세의 나이에..), 그 비범함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라고 봐야겠지요. 저도 에머슨은 ‘명언‘을 무지 많이 남긴 인물로만 알았는데, 그의 글들을 읽어 보니 ‘깊이‘를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더군요. 헤럴드 블룸의『교양인의 책읽기』라는 ‘문학작품을 소개하는 책 한 권‘ 안에서도 ‘에머슨‘이 그렇게나 많이 언급되는 걸 보며 새삼 에머슨의 깊은 영향력을 느낄 수 있었더랬습니다. 나중에 ‘헨리 제임스‘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가 ‘미국과 유럽의 차이‘를 어떻게 느꼈는지도 꼭 알아봐야겠습니다^^

qualia 2017-04-29 03:13   좋아요 0 | URL
˝에머슨을 있게 한 그의 희귀한 천재성은 주의 깊은 사람들에게는 최초의 그리고 진실로 희귀한 문자로 된 미국의 정신이다.˝

→ 윗글을 인용해주신 oren 님께는 좀 외람되지만, 저는 위 인용문을 처음 읽었을 때 정확히 그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더랬습니다. 즉 《진실로 희귀한 문자로 된 미국의 정신》이란 게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더랬습니다. “희귀한 문자”라니, 또 그런 문자로 된 미국의 정신이라니, 도대체 그게 무엇일까요?

그래서 영어 원전 해당 부분을 찾아 비교/대조해봤습니다. 아무래도 잘못 번역한 문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가 판단하기에) 원문을 잘못 번역한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해럴드 블룸의 『교양인의 책읽기』를 일종의 문학비평서로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저런 식의 부정확한 번역은 문제가 크다고 봅니다.

그리고 위 인용문 중 마지막 단락도 문맥적으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즉 《호손의 『주홍글씨』에 나오는 헤스터 프린은 이사벨보다 더 에머슨적인 여주인공으로 헨리 제임스처럼 열정에서 벗어나 있다》는 문맥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즉 헤스터 프린(Hester Prynne)은 대표적인 열정적 여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런 그녀가 “헨리 제임스처럼 열정에서 벗어나 있다”고 정반대로 기술하고 있으니 십중팔구 잘못된 번역문인 것으로 의심된다는 얘깁니다.

제가 원문과 비교/대조해봤는데요. 위 번역문에 적지 않은 오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런데 oren 님께서 위 인용문을 여기에 옮겨 적으면서 편의상 약간의 편집을 한 듯 보입니다. 번역본 본래의 내용엔 손을 대지 않았지만 몇 개의 사소한 어구만 편의상 바꾸거나 첨가한 것 같은데요. 영어 원본에 있는 해당 구절들과 비교해볼 때 위에 인용된 번역문은 부분적으로 생략되거나 축약된 형태로도 보입니다. 번역본이 원래 그런 것인지 옮겨 적느라 편의상 그렇게 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한테는 해럴드 블룸의 『How To Read and Why』의 번역본인 『교양인의 책읽기』가 없기 때문에 위 해당 번역문이 어떤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위에서 내린 제 판단은 전적으로 oren 님께서 옮겨 적어주신 인용문에만 근거해서 내린 것입니다. 위 인용문에서 번역자 분께서 잘못 번역한 부분을 분석 · 정리해서 블로그 글로 올리려고 하는데요. 위 해당 인용문을 정확한 인용문으로 봐도 되겠는지요?

hnine 2017-04-29 0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qualia님, 저도 교양인의 책읽기는 안읽어봐서 모르겠지만 <희귀한 문자로 된 미국의 정신>이란게 뭘 말하는지 짐작은 되어요. 여기서 희귀한 문자라고 한것은, <문자>가 희귀하다는 뜻이라기보다 <문자로 된것>이 희귀하다는 뜻 아닐까요? 정신은 대개 눈이 보이지 않는 형태로 전해려 내려오는게 보통인데 에머슨의 저술들은 미국의 정신이 <문자화>되어 있는, 많지 않은 것들 중 하나라는 뜻, 전 그렇게 이해했어요. 원전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저도 궁금하네요.
호손이나 헨리 제임스 모두 에머슨의 영향을 크게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각기 그들의 작품 속 주인공을 통해 그 사상을 표현하려 했을텐데 에머슨의 본래 사상이 후대 작가들에 내려오면서 조금씩 나름대로 변형되었겠지요. 이사벨이 나오는 여인의 초상 역시 저는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이사벨이 어떤 인물인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헨리 제임스처럼 열정에서 벗어나 있다>라는 문장에서 <열정>이란 일반적 의미의 열정과 다른, 문학 사조나 경향을 가리키는 것 아닐까 하는데요.

qualia 2017-04-29 19:30   좋아요 0 | URL
˝에머슨을 있게 한 그의 희귀한 천재성은 주의 깊은 사람들에게는 최초의 그리고 진실로 희귀한 문자로 된 미국의 정신이다.˝ ― 문제의 번역문

qualia님, 저도 교양인의 책읽기는 안읽어봐서 모르겠지만 <희귀한 문자로 된 미국의 정신>이란게 뭘 말하는지 짐작은 되어요. 여기서 희귀한 문자라고 한것은, <문자>가 희귀하다는 뜻이라기보다 <문자로 된것>이 희귀하다는 뜻 아닐까요? 정신은 대개 눈이 보이지 않는 형태로 전해려 내려오는게 보통인데 에머슨의 저술들은 미국의 정신이 <문자화>되어 있는, 많지 않은 것들 중 하나라는 뜻, 전 그렇게 이해했어요. 원전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저도 궁금하네요. ― hnine 님 견해

→ 위 hnine 말씀이 맞습니다. 위와 같은 hnine 님의 이해는 정확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저는 무방비 상태에서 위 번역문을 읽고 처음엔 직독직해가 되지 않았더랬습니다. 그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는 데 약간의 혼란을 겪었습니다. 나중에 번역문을 자세히 ‘뜯어읽으면서’ hnine 님과 같은 이해에 도달하긴 했지만요.

그런데 과연 위 번역문을 읽고 모두들 hnine 님처럼 직독직해할 수 있을까요? 즉 원저자가 해당 원문에서 말하고자 했던 의미 그대로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게 의문이었던 것입니다. 저 번역문을 읽자마자 단박에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처럼 혼란을 겪는 사람도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요컨대 영어 원문을 살펴보면 아무런 혼란없이 직독직해가 가능한 것을 애매모호하게 번역함으로써 쓸데없는 혼란을 초래했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서툰 번역, 미흡한 번역이란 것이지요. 즉 “최초의 그리고 진실로 희귀한 문자로 된 미국의 정신”이라는 번역문에서 보듯 수식 어구를 애매모호하게 처리했기 때문에 이런 뜻으로도 저런 뜻으로도 읽힐 수 있다는 얘깁니다. 해서 원문을 모르는 독자들은 그 정확한 의미가 뭔지 헷갈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 . . the rarity of Emerson‘s genius, which has made him so, for the attentive peoples, the first, and the one really rare, American spirit in letters . . .
― 『How To Read and Why』, p. 174

애머슨의 천재적 희귀성은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기도 한데, 주의 깊은 사람들한테는 문학의 형태로선 최초이면서, 게다가 아주 희귀한 미국적 정신으로 보일 것이다. ― qualia 번역안

대략 저는 위 원문을 위와 같은 뜻으로 이해합니다. oren 님께서 인용해주신 『교양인의 책읽기』에 나오는 번역과 그닥 크게 다르다고 볼 수는 없지만 혼란 가능성은 훨씬 줄어든 번역안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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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문장은 제임스의 진심인지 잘 모르겠다. 그는 에머슨의 산책 친구였던 나다니엘 호손을 좋아했다. 내 생각엔 호손의 『주홍글씨』에 나오는 헤스터 프린은 이사벨보다 더 에머슨적인 여주인공으로 헨리 제임스처럼 열정에서 벗어나 있다. ― 문제의 번역문

호손이나 헨리 제임스 모두 에머슨의 영향을 크게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각기 그들의 작품 속 주인공을 통해 그 사상을 표현하려 했을텐데 에머슨의 본래 사상이 후대 작가들에 내려오면서 조금씩 나름대로 변형되었겠지요. 이사벨이 나오는 여인의 초상 역시 저는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이사벨이 어떤 인물인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헨리 제임스처럼 열정에서 벗어나 있다>라는 문장에서 <열정>이란 일반적 의미의 열정과 다른, 문학 사조나 경향을 가리키는 것 아닐까 하는데요. ― hnine 님 견해

→ 위 hnine 님 말씀 중 《아마도 <헨리 제임스처럼 열정에서 벗어나 있다>라는 문장에서 <열정>이란 일반적 의미의 열정과 다른, 문학 사조나 경향을 가리키는 것 아닐까 하는데요.》하는 말이 정확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일반적 의미의 열정”과 “문학 사조나 경향을 가리키는 것[으로서의 열정]”이 실제로 존재하는 각각의 개념인지, 그것들이 각각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는 전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해당 원문을 읽어보고 판단한 바에 따르면 원저자는 상기의 두 열정 개념을 따로따로 상정한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요컨대 원저자 문맥에서의 열정(passion) 개념은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일반적 의미의 열정 개념과 그닥 멀리 떨어져 있는 개념인 것 같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아래에 해당 원문을 인용해보겠습니다.

[···] Whether James really meant the third extract, I rather
doubt; he preferred Hawthorne, Emerson‘s uneasy walking companion.
The passionate Hester Prynne, in Hawthorne‘s The Scarlet
Letter, seems to me even more an Emersonian heroine than does
Isabel Archer, who flees passion, as did Henry James. [···]
― 『How To Read and Why』, p. 175

셋째 인용문에서 제임스가 진심으로 말한 것인지, 나는 좀 의심스럽다. 예컨대 그는 에머슨의 편치 않은 산책 친구인 호손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호손의 『주홍 글씨』에 나오는 열정적인 헤스터 프린은, 헨리 제임스가 그랬던 것처럼 열정에서 피해나가는(달아나는) 이사벨 아처보다 훨씬 더 에머슨적인 여주인공인 것 같다. ― qualia 번역안

[주의 : 위에 oren 님께서 인용한 번역문에선 “두 번째 문장은 ~” 하고 시작되고 있죠. 반면 해당 원문에는 “the third extract(셋째 인용문)”으로 나와 있고요. 이 차이는 제 추측에 oren 님께서 인용하시면서 약간의 편집을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해서 이런 사소한 차이 때문에 원문의 내용이 달라지는 건 없다는 것이죠.]

위 원문과 qualia 번역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oren 님께서 인용해주신 해당 번역문은 원문과 결정적으로 달라 보입니다. 빼놓은 부분도 있고 분명히 잘못 번역한 부분도 있다는 것이죠. 거의 정반대로 번역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문제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좀 더 자세한 고찰을 통해 『교양인의 책읽기』에 나타난 오역이 어떠한 정도인지 밝혀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위에서 언급한 부분만큼은 오역이 분명한 듯합니다.



hnine 2017-04-30 11:08   좋아요 0 | URL
와, qualia님, 능력자!! ^^
원문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oren 2017-04-30 14:16   좋아요 0 | URL
qualia 님께서 예민한 감각으로 포착하신 의문점들이 ‘원문 대조‘를 통해 명쾌하게 해명되었군요. qualia 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인용했던 부분은 사실 ‘헤럴드 블룸의 평론‘과 ‘헨리 제임스의 언급‘이 번갈아 가면서 뒤섞여 있어서 ‘명쾌한 이해‘에 도달하기 힘든 요소가 처음부터 내재해 있는 데다가, 번역 또한 ‘헨리 제임스의 문장‘과 ‘헤럴드 블룸의 문장‘ 모두에서 애매한 점이 있었지요. 그래서 ‘인용‘하기를 살짝 주저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제가 주저했던 문제점이야말로 qualia 님께서 정확하게 지적해 주신 그대로입니다.

저는 ‘에머슨의 희귀한 천재성‘에 대해서는 hnine 님처럼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아마도 제가 최근에 에머슨의 책들을 거듭 비교하면서 읽은 덕분일지도 모르겠지요. 그래도 qualia 님께서 올려주신 원문을 보니 원래의 번역문보다 훨씬 더 명쾌하게 다가오는 건 분명합니다.

문제가 된 두 번째 번역은 제가 봐도 ‘오역‘이 맞는 듯합니다. 원래의 번역문은 qualia 님의 지적대로, ‘헤스터 프린이 열정에서 벗어나 있다‘로 읽히기 때문입니다.(저도 이 문장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몰라 ‘그려려니‘ 하고 대충 넘어간 기억이 납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인용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주저되기도 했고요.) 원문을 보니, ‘헨리제임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사벨 아처가 열정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인물‘임이 틀림없네요.

헤럴드 블룸이 쓴 『교양인의 책읽기』는 번역된 우리말로 읽어보더라도, 문학평론 특유의 ‘함축과 비약‘이 난무하기 때문에 ‘다의적으로‘ 해석되거나 심지어 정반대로 곡해할 가능성도 엿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점이 ‘번역상의 오류‘ 때문일 수도 있다는 건 이번에 새삼 알게 되었네요. 더군다나 이 책의 역자도 ‘옮긴이의 말‘에서 ‘번역의 한계, 그리고 내 자신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면서‘ 번역했다고 토로해 놓았더군요.

참고로, 이 책은 내용이 훌륭한데도 너무 일찍 절판되는 바람에 쉽사리 구입하기 어려운 책이 된 점이 아쉽더군요. 2011년 4월에 운병우 번역으로 나온『헤럴드 블룸의 독서 기술』도 같은 원서를 역자와 출판사를 달리 해서 번역한 듯한데, 그 책도 어느새 절판되고 말았고요.

oren 2017-04-30 14:18   좋아요 0 | URL
qualia 님께서 이미 제가 맨 처음 인용했던 부분의 ‘해당 원문‘을 보셔서 아셨겠지만, 제가 인용한 부분에 대해 ‘미세한 편집‘이 있었다는 걸 고백해야 겠군요. 그건 제가 일부러 ‘불필요한 혼동‘을 피하고, 인용의 주목적이었던 ‘헨리 제임스와 에머슨의 관계‘에 초점을 더 맞추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흔히 ‘맥락없는 인용‘이 자칫 오해를 불러오기 십상인데, 제가 인용을 생략한 부분은 도리어 ‘인용함으로써 그나마 있던 맥락도 무너뜨리는 듯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한 부연 설명이 없었던 건 제 불찰입니다. 어쨌든 ‘제가 생략한 부분‘까지 전부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 *

자립은 에머슨의 주된 원리라는 점에서 이사벨 아처는 에머슨의 후예라고 볼 수 있다. 아마 제임스도 틀림없이 인식했을 것이다. 제임스의 아버지가 에머슨에 심취했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그의 아들인 제임스가 에머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한 말을 신중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에머슨의 저술 전반에 대해 그것들이 전혀 안정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건 너무 지나치거나 혹은 너무 모자란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누구도 우리가 요구하는 것, 열망을 지니고 독립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그렇듯 꾸준하고 지속적이며 무엇보다도 그렇듯 자연스러운 비전을 가진 이는 없었다.˝

˝(…) 에머슨을 있게 한 그의 희귀한 천재성은 주의 깊은 사람들에게는 최초의 그리고 진실로 희귀한 문자로 된 미국의 정신이다.˝

첫번째 문장은 지나치게 압축되어서 어색하다. 에머슨의 에세이「경험」을 읽어 본 독자들은 제임스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번째 문장은 이사벨을 가리키는 내용이다. 그것은 정확히 그녀의 비전을 보여준다.

세번째는 제임스의 진심인지 잘 모르겠다. 그는 에머슨의 산책 친구였던 나다니엘 호손을 좋아했다. 내 생각엔 호손의 『주홍글씨』에 나오는 헤스터 프린은 이사벨보다 더 에머슨적인 여주인공으로 헨리 제임스처럼 열정에서 벗어나 있다.

에머슨은 두 아내 엘렌과 리디안 모두를 사랑했다. 아마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 엘렌을 더 사랑한 것 같다. 별로 소설을 읽지 않았던 에머슨은 『주홍글씨』를 읽긴 했지만 과소 평가했다. 내가 볼 때는 『여인의 초상』도 그리 썩 높이 평가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261∼262쪽)

- 헤럴드 블룸, 『교양인의 책읽기』, 3_장편소설

qualia 2017-04-30 16:50   좋아요 0 | URL
hnine 님, 의견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hnine 님께서 좋은 의견을 제시해주셨기 때문에 제 나름으론 좀 분석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ualia 2017-04-30 18:07   좋아요 0 | URL
oren 님, 상세하고도 친절한 도움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oren 님 덕분에 여러 가지를 깨닫고 공부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oren 님께서 ‘미세한 편집 인용’ 건에 대해 oren 님 자신의 불찰이라고 하신 것은 너무 지나친 자책인 것 같습니다. ^^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원전을 인용할 때 여러 가지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면, 원전의 내용을 변경하지 않는 선에서 미세하게나마 일부 단어나 문장을 수정 인용할 수도 있고, 생략 인용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저는 그래서 oren 님의 저 위 인용 방법은 오히려 oren 님의 애초의 목적에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더랬습니다. 다만, 저로서는 번역자 분의 번역문에 오역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 의식이 들었고, 그 때문에 oren 님께 여러 가지 관련 질문을 했던 것이었죠. 아무튼 oren 님 덕분에 영어 원전 『How To Read and Why』와 그 두 가지 번역본인 『교양인의 책읽기』와 『해럴드 블룸의 독서 기술』과 같은 좋은 책들도 (재)발견하게 되었고요. 번역 혹은 번역비평과 관련된 몇 가지 소득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oren 님과 hnine 님께 무척 감사한 마음입니다.

(oren 님과 hnine 님은 물론이고) 혹 번역과 번역비평에 관심 있는 분들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여 oren 님께서 위 댓글에 새로이 추가 인용해주신 번역문에 해당하는 원문을 아래에 옮겨놓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참고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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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Reliance is Ralph Waldo Emerson‘s
prime doctrine, and Isabel Archer is one of Emerson‘s children,
as James, on some interior level, must have been aware. Since
Henry James Sr. never achieved independence from Emerson, his
son‘s comments upon the Sage of Concord require wary reading:

It is hardly too much, or too little, to say of Emerson‘s writings in
general that they were not composed at all.

But no one has had so steady and constant, and above all so natural,
a vision of what we require and what we are capable of in the
way of aspiration and independence.

. . . the rarity of Emerson‘s genius, which has made him so, for the
attentive peoples, the first, and the one really rare, American spirit
in letters . . .

The first remark is absurdly condescending; read Emerson‘s
essay ˝Experience˝ and you may not agree with Henry James.
But the second excerpt is pure Isabel Archer: that is precisely her
vision. Whether James really meant the third extract, I rather
doubt; he preferred Hawthorne, Emerson‘s uneasy walking companion.
The passionate Hester Prynne, in Hawthorne‘s The Scarlet
Letter, seems to me even more an Emersonian heroine than does
Isabel Archer, who flees passion, as did Henry James. Emerson was
in love with both his wives, Ellen and Lidian; perhaps more passionately
with Ellen, who died so young. James, not Emerson, is
responsible for Isabel‘s repression of her sexual nature. Never much
of a novel reader, Emerson read The Scarlet Letter but underesteemed
it; and I doubt that he would have admired The Portrait
of a Lady.

―『How To Read and Why』, pp. 174-175

oren 2017-05-02 16:30   좋아요 0 | URL
제가 인용한 구절 때문에 qualia 님께 괜스레 불편을 끼쳐드린 게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는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qualia 님께서 수고스럽게 찾아 주신 ‘원문‘ 덕분에 번역의 문제점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qualia 님께 거듭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