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 Starts(r) Moby-Dick (Hardcover)
Melville, Herman / Sterling Pub Co Inc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브르 곤충기, 시이튼 동물기 등등, 제 아무리 유명한 책이라고 해도, 그리고 내가 동물을 사랑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웬지 동물이 떡 하니 전면에 나오는 책은 잘 안 읽는 습관이 있다. 모비딕도 초등학교때 <백경>이라고 번역된 책이 집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다 읽지 않고 던져 놓은 이후로 지금까지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 주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읽어야 할 일이 생겼다. 듣고 있는 강의 <서양 고전> 이번 주 주제였기 때문이다. 급기야 강의 하루 전날, 집안 어디서 본 기억이 있어 방방마다 뒤져보았더니 언제 샀는지도 모르는 모비딕이 아들 책 꽂이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이거라도 읽어야지 펼쳐보니 글자도 큼직, 두께도 140여쪽. 어린 학생들을 위해서 원본을 가볍게 줄여 써놓은 축약본이었다 이런. 오히려 잘 되었는지 모른다며 저녁 먹고 나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 자리에 앉은 채로 다 읽고야 말았다.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렇게 흥미 진진할 줄이야.

고래가 상징하는 것, 고래를 잡는 행위가 상징하는 것, 고래를 잡는다는 같은 목적으로 배에 탔지만 사람마다 다른 태도. 고래를 끝까지 잡아야 했는가. 어디까지가 정당한 목적이고 어디부터가 이기적이고 맹목적인 목적 추구인가.

생각할 거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솟아 나오게 했다. 자기의 다리 한쪽을 잃은데에 대한 복수심,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 버린 함장 에이합을 우리는 과연 자신있게 비난 할 수 있을까. 거기서 혹시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진 않는지.

자연을 공존의 대상이 아닌, 공격과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인간의 이기심. 자기의 능력을 증명할 대상으로 자연을 선택하고는 우쭐해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오히려 인간의 성취가 아닌 한계가 보였다.

모비딕은 자기를 공격하는 대상으로부터 자기를 방어하는 본증적인 행위를 했을 뿐이다. 얼마전 본 영화 LIFE에서 화성생명체가 먼저 인간을 공격하려고 하지 않았듯이. 지구에서 생명체가 존재하듯이 화성에도 생명체가 존재했던 것이고, 그것을 채취해와서 시험해보고 제한된 조건에서 키워보고 어떻게 반응하나 실험해본 것은 인간이었다. 그것은 정당화 될 수 있고 그들, 즉 모비 딕이나 화성생명체가 그에 대한 어떤 반응을 보이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공격 행위가 되는 것인지.

배에 탄 선원중 스타벅의 신중함은 고래 잡기를 어느 시점에서 그만 두어야 하는지 알았다는데서 나온다. 함장 에이합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들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삶의 목표였는데 포기가 쉬웠을리 없다.

이 모든 여정을 방관자의 입장에서 보고 있는 이 책의 화자 이슈마엘은 유일한 생존자가 되어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는 때로 에이합의 태도로 삶을 살기도 하며 스타벅이기도 하다가 이슈마엘이기도 하다.

본문 중, 고래를 성공적으로 포획했다해도 그것을 제대로 배에 장착하여 끌고 올 수 없을 때는 그냥 바다에 버리고 온다고 하는 구절이 있다. 이슈마엘의 한마디. 그럴 것을 왜 저 큰 덩치의 고래를 죽여야 했을까 생각하면 안타깝다는 독백같은 한 문장.

이 책은 고래잡이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고래잡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번 읽는 것으로 결코 충분치 않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LIFE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각자 어떤 생각들을 할까.

LIFE 란 글자에서도 벌써 떠오르는게 너무 많은 나는 이 영화에 대해 다른 분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감상을 적을 자신이 없는데 그럼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신경줄이 팽팽한 가운데 본 영화였다.

 

 

 

 

 

 

 

 

화성에서 채취해온 저 꼬물거리는 세포 덩어리.

지구상의 생물 세포의 경우 처음엔 하나의 세포 속에 모든 세포로 분화 가능한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분열을 거듭해나가면서 점차 자기 <전공>이 정해지게 되어 그 전공에 특수화된 기능을 가진 세포로 분화되어 가고 나머지 기능은 소실되어 간다.

이와 달리 이 영화에서 화성의 생명체 세포는 세포가 분열해나가면서도 여러 갈래로의 분화능력을 잃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어 개체가 된 후에도 한 세포에 모든 능력이 유지된다.

가능한 얘기인지 그것은 논외로 하고.

영화에서 보면 저 화성의 생명체 세포는 지구 생명체 세포처럼 비슷한 온도에서 자라고 (영하의 온도에서 점차 온도를 올려 배양하는 장면이 나온다) 포도당을 영양 조건으로 하는 것으로 보아 생장 조건도 비슷한 듯하다.

저렇게 배양접시에서 키우는 것은 세포가 분열해나가는 어느 단계까지만 가능한 것이 현재 세포 배양 기술의 한계로 알고 있는데 영화에서는 저 배양접시에서 완전한 하나의 개체, 그러니까 화성 생물체까지 자라 나온다. 맨 처음 이것의 희생양이 된 인물 "휴 (아리온 바카레 역)"는 생명체를 보는 눈이 다른 crew들과 좀 남달라보였다. 진저리 나는 인간들의 지구보다 이렇게 우주 속에서 머무는 시간이 좋다고, 복선을 깔듯이 말했던 데이비드 (제이크 질렌할 역)의 대사도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를 광고에서 말하듯이 SF 재난스릴러 영화로 보았다면, 그런 쪽에 별 취미 없는 내가 이렇게 한번 더 보고 싶을 정도는 아닐 것이다. 마지막 반전의 결말. 그것이 꼭 후속작 예시 목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의 예측은 언제든지 빗나갈 수 있고, 그 불예측성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모순. 한쪽에선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돌고 있지만 지구 상의 어느 한쪽에선 배 타고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먹고 살고 있는 풍경.

 

화성생명체는 사람을 해칠 목적이 아니었음을, 죽어가면서도 휴는 말했다. 그는 생명에 대해, 생명체의 본질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내게는 둘다 그닥 재미있지 않았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공각기동대

 

 

  

 

 

 

원래 만화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이 영화는 한번 보고 싶었다. 스칼렛 요한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SF와 아무리 그려봐도 연관이 안되는 줄리엣 비노쉬 때문이었는지.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내게는 재미있는 부분이 한군데도 없네! 나한테 실망해야하나 영화에 실망해야하나. 스칼렛 요한슨의 저 특이한 복장, CG 멋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는 일.

이 영화가 그렇게 화제를 모았던 만큼 뭔가 이 영화에서 던져주는 주제가 있던가, 인상적인 내용이라던가, 그런걸 기대했는데 영화를 다 보도록 내게는 뭐 특별한 게 없었다.

"영화가 너무 어려운 것 같아. 뭘 말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제대로 영화를 이해 못했다고 생각한 A형 혈액형 인간. 함께 영화보고 나오는 남편에게 소심하게 고백했더니 남편 말 즉슨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 주제라고 한다. 나도 그거야 알겠는데 그게 뭐 이 영화에서 처음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인공 지능이니 뭐니 해서 더 이상 SF 가 아니라 이미 우리 생활에 들어와 있는 시대에 살면서 그게 뭐? 그랬더니 남편도 더 이상 별 말이 없다.

 

 

 

바로 다음 날, 이 영화는 나를 감동시켜 주겠지 기대 빵빵 하며 혼자 보러간 영화는,

 

히든 피겨스

 

 

 

 

 

인공지능 시대에도 아직 여자는 "히든 피겨스"일 수 있는 세상.

남들이 못푸는 수학 문제를 앞에 나와 척척 푸는 흑인 꼬마 여자 아이로 시작하는 첫장면. 감동을 주려는 의도, 너무 식상해보여 벌써부터 김 빠지니 어쩔까. 이런 장면은 기존의 다른 영화에서도 너무 많이 나오지 않나?

영화는 재미있게 만들었지만 너무나 전형적인, 너무나 많은 미국의 성공 신화 영화중 하나.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과 영화 속 인물의 강인하고 긍정적이고 자기 삶을 사랑하며 밀고 나가는 삶의 태도는 훌륭하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그 인물이 아니라 영화를 말하는 것.

공각기동대가 그야말로 Ghost 처럼 공허하기 짝이 없는 영화였다면 히든피겨스는 하나에서 열까지 여기서 감동해라, 저기서 감동해라, 만든 사람의 의도가 너무 빤히 보이는 영화였다. 그래서 시키는대로 감동받기를 거부하고 싶었던 영화.

 

 

조만간 아래의 이 영화를 보려고 한다.

 

라이프

 

 

 

안그래도 화성에 생명체 존재 가능성에 대한, 근거 있는 뉴스가 최근까지 나오고 있으니 흥미가 생긴다. 무엇보다도 <생명체>에 대한 얘기 아닌가. 트레일러를 보니 세포 하나에 모든 기능이 다 들어있다는 대사가 있던데 우리 인간의 세포는 처음에 만들어질때 원래 그렇다. 세포 하나에 모든 기능이 다 들어있다가 분화하면서 하나의 특수 기능을 가진 세포로 특성화해가는 것이지. 줄기세포!

이 영화에서 그런 과학적 지식 혹은 상식이 어떻게 제대로 응용되었는지, 혹은 잘못 이용된 부분은 없는지, 찾아볼 참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qualia 2017-04-06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플방지위원회에서 나왔습니다. 아이 참, 이상한 게 이 동네는 왤케 시큰둥한 거죠?ㅋㅋㅋ
근데 우리는 딱 아는 만큼만 보고, 보는 만큼만 아는 존재랄 수 있죠. 혹은 자기 개취에 맞으면 열광하고, 개취에 안 맞으면 시큰둥한 게 우리의 기본 반응 양식이고요. 이곳 알라딘 블로거들이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공각기동대》에 대한 영화평을 많이 올렸는데요. 정말 상반된 평가가 많아 오히려 흥미롭습니다. 열광과 시큰둥, 뜨뜻미지근까지 아주 다양해서 오히려 많은 점들을 생각케 하더라고요.

hnine 2017-04-06 22:03   좋아요 0 | URL
무플 막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영화 본 소감은 완전 제 개인적인 느낌이니까요. 저도 다른 분들이 올리신 다양한 영화평, 재미있게 읽었어요. 제가 원래 SF쪽을 잘 몰라요. 그래도 이렇게 가끔씩 보기도 하는데 역시 이번에도 ㅠㅠ
저처럼 이 영화에 대해 뜨뜻 미지근 하신 분이 또 계신가 모르겠네요. qualia님은 어떻게 보실지 궁금해요.
 

 

어제 박물관에서 들은 강의는 고고학.

머리 희끗하지만 눈빛은 반짝, 지적 호기심이 여전하신 듯 보이는 노교수님.

강의 시작을 질문으로 하신다.

 

"여러분,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조용...

 

부정적, 회의적, 염세적 인간의 한 사람으로써 '행복따위란 존재하지 않는 것. 실체가 없는 것. 사는 건 고(苦)야...'

이런 생각을 주억거리고 있는데,

 

"여러분 두발로 여기까지 올 수 있는 것이 행복입니다."

 

가족 중 아픈 사람이 있어 오전 내내 병원에 있다가 오셨다면서, 하고 싶은 걸 선택할 수 있고, 남의 힘 빌리지 않고 내 발로 여기까지 올 수 있는 것, 그것을 잃어보기 전엔 그것이 행복인지 모른다고.

모르는 바 아님에도 이 말씀 한마디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이 날의 또다른 강의는 문화인류학이었는데, 말로만 들어봤지 인류학이란 분야에 대해 강의를 들어본 건 처음이다. 2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나. 나의 관심지수는 몇십배로 올라갔고 이런 학문인줄 진즉에 알았더라면 아마 이 공부를 하겠다고 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행복한 목요일이었다.

오가며 버스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강의 듣는 시간 보다 더 오래 걸린다는 것 쯤이야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난 주 목요일 문화인류학 강의.

짧은 동영상을 먼저 보자고 교수님께서 그러신다.

영국의 Steve Cutts라는 사람의 <Man>이라는 제목의 동영상.

 

집에 와서 이 사람 Steve Cutts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그것 말고도 여러편의 그림과 동영상들이 있었다. 다음은 그중 <Wake Up Call>이라는 제목의 동영상. 제목속에 메시지가 다 들어있다.

 

 

 

 

 

 

 

 

 

 

 

강의의 시작은 3분짜리 동영상이었는데,

강의의 마지막은 한줄 요약으로 맺는다.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책 제목이기도 하죠"

라는 말씀을 하시기에 집에 와서 찾아보니 그렇다.

여러 명 공저자 중에 강의하신 교수님 이름도 있었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제목부터 마음에 든다.

 

스코트 니어링의 좌우명이 <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하라> 였다는데, 아마도 여기서 인용한 제목인 듯.

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하라.

근래 들은 제일 멋진 말, 따르고 싶은 철학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피북 2017-03-26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전자기기는 2년에서 길게쓰면 3년 밖에 안되는 유통기간이다보니 자주 바꾸게 되고 조금 오래쓰는 사람에게 우스게소리로 골동품 취급하는 이야기 들으면 좀 씁쓸했는데 ㅎ ‘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하라‘는 이야기 널리 퍼졌으면 좋겠어요~^^

hnine 2017-03-27 05:07   좋아요 0 | URL
저도 골동품 쓴다는 소리 많이 듣고 사는 사람 중 하나인데, 오래 잘 쓰고 있는게 왜 미덕이 아니라 웃음거리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답니다. 덜 갖는 것과 더 많이 존재하는 것을 연결시켜 말하니 거기 의미가 팍 살아나는 것 같아요.
요즘은 다른 매체보다도 웹툰이나 애니메이션 같은 것이 보는 사람에게 쉽고 설득력 있게 뜻이 전달되는 것 같더군요. 특히 저렇게 강의 시작할때 짧은 동영상 보는 것으로 시작하니까 강의 주제도 단번에 전달되고 좋더라고요.

nama 2017-03-26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an>은 틈틈이 제가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동영상인데...반갑네요.^^ 장수라는 개념도 그냥 목숨만 길게 사는 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하며 ‘더 많이 존재‘하는 게 장수라고 하네요.

hnine 2017-03-27 05:13   좋아요 0 | URL
nama님은 알고 계셨군요. 저는 문화인류학이라는 분야도 생소했고 Steve Cutts의 동영상도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요즘 제가 20대 때보다 오히려 더 새로운 것에 대해 호기심도 많아지고 받아들일 마음의 문도 열려있는 것 같아서 재미있게 잘 듣고 보고 왔답니다.
존재라는 말의 의미부터 다시 새겨야 하는, 짧지만 철학적인 말이 아닌가 싶어요 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요. 여행을 다니는 것도 더 많이 존재하며 사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닌가, nama님 여행기 떠올리며 드는 생각이네요~ ^^

2017-03-26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27 0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