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소니언이라고 하면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떠오르기도 하고 같은 이름의 매거진이 떠오르기도 한다.

스미소니언은 미국의 화학자, 광물학자이자 세계를 탐험한 탐험가. 그의 유산으로 미국 워싱턴 DC에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세워졌고, 현재 다수의 연구소와 도서관, 제휴기관이 운영되고 있다.

 

스미소니언 매거진에서 매해 개최하는 사진 콘테스트의 역대 수상작들 전시가 열리고 있어서 다녀왔다.

 

 

 

 

 

 

 

 

 

 

푸른 오아시스

 

 

 

 

 

 

 

 

 

 

 

새벽 강가의 나룻배.

빨간 등이 이 사진 구도에 화룡점정처럼 느껴진다.

 

 

 

 

 

비슷한 옷, 비슷한 자세, 여덟 명 중 누구의 얼굴도 드러나지 않았는데, 이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보고 싶은 부분만 크게 다시 찍어보았다.

슬리퍼를 신기도 하고 운동화를 신기도 했다.

 

 

 

 

 

 

 

 

 

 

짐작하겠는가. 어느 행사의 사진인지.

발리의 장례식.

 

 

 

 

 

 

 

Indescribable "말로 표현할 수 없는"

Bright at the sun "햇살처럼 빛나는"

Close up "익숙함을 벗어난"

 

그런 사진을!

 

 

 

 

 

 

어떤 사진은 벽에 붙어 있고,

어떤 사진은 공중에 걸려 있고,

또 어떤 사진은 저렇게 바닥에 누워 있다.

 

 

 

 

 

 

 

이 사진도 재미있어서 부분 부분을 크게 찍어보았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아직 오지 않은 교실에서 칠판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것도 칠판 가득히.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이건 아마 시간표인가보다.

 

 

 

 

 

 

 

 

 

 

 

 

이 사진을 찍기 위해 작가는 아마 백합 꽃잎을 몇개 띄어 냈어야 했을 것이다.

 

 

 

 

 

 

 

아, 이것도 이 전시에서 내 맘에 들었던 사진.

조만한 사내 아이들이라면 나라, 계층을 막론하고 축구가 진리인가보다.

심지어 꼬마 스님들 조차도 축구를 하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억만금을 주고도 못살 저 웃음, 저 즐거움.

 

 

 

 

 

 

 

 

 

 

 

 

 

꽃을 파는 베트남 여인.

 

이 사진을 찍은 작가는 아마도 아름다움을 보았겠지만

 

 

 

 

 

 

꽃을 빼고 찍어보니 고달픈 생계를 짊어진 아내, 엄마의 앙상한 어깨와 손등이 보였다.

 

 

 

 

 

 

 

두루미

 

 

 

 

 

 

 

 

 

눈.

아니, 저 시선.

 

 

 

 

 

 

 

 

 

 

 

스미소니언 잡지에 실을 사진을 선정하는 과정, 또 매년 열리는 포토 콘테스트의 수상작을 결정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물을 보여주고 있어서, 다 보고 일부는 동영상으로 담아왔다. 여기 올리지는 않았지만.

처음엔 보정 사진은 받지 않았으나, 예술적인 목적의 사진 보정을 인정하여 사진 카테고리에 아예 보정 사진 분야를 따로 두었다고 한다. 이 나라의 이런 융통성은 본받고 싶다. 절대 안돼! 보다는 되도록 허용하는 방향으로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 Flexibility.

 

 

퓰리처 사진전도 가본 적 있지만, 스미소니언 사진전의 사진들은 자연과 인물, 사람 사는 모습등을 주로 담고 있어서 훨씬 평화스럽다. 충격적인 사진들보다는 빙그레 웃음을 자아내는 사진들.

특히 아무 걱정 없는 듯 웃음을 떠뜨리는 아이들 사진은 오래 동안 기억하고 싶다. 나도 한때 그런 아이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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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7-02-23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미소니언 사진접 가보고 싶네요ㅠㅠ 멋진 사진과 글들 감사합니다^^

hnine 2017-02-23 10:30   좋아요 0 | URL
직접 가보실 분들을 위해 사진을 올리지 말까 망설이다가, 그래도 올리는 편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올렸어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하니까 혹시 가까이 지나실 일 있으시거나 시간 되시면 가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저는 2시간 넘는 거리를 불사하고 다녀왔습니다만 ^^

nama 2017-02-27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의 사진 중 발리의 장례식 사진이요. 발리 우붓에서 차 타고 지나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장례식 행렬이 기억나서요. 장례식이라기 보다는 축제 같은 화려한 행렬이었지요. 아직도 그런 장례 풍습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했고 그 풍습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요.

hnine 2017-02-27 17:36   좋아요 0 | URL
장례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어요. 우리 나라도 예전에 꽃상여 행렬은 무척 화려했잖아요. 하지만 행렬을 따라가며 부르는 노래 소리는 가사도 곡조도 너무나 구슬펐는데, 폴리네시아인가 하와이인가 어느 원주민 장례식을 보니 노래까지 아주 흥겹더라고요. 위의 사진은 사진을 다시 사진으로 찍은 것이라서 느낌이 잘 전달되는지 모르겠지만 nama님 직접 마주친 적 있으시다니 훨씬 생생하게 기억나시겠어요.
 
살면서 마주한 고전 - 전문번역가 이종인이 추천하는 시대의 고전 360
이종인 지음 / 책찌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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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여기 알라딘 서재에 내가 올린 리뷰가 869편. 책을 읽고 나면 좋았든 그렇지 않았든, 짧게든 길게든, 읽었다는 흔적을 그렇게 남겨놓아야 직성이 풀렸다. 즉, 나에게 있어 책읽기 행위란 읽고 나서 감상을 기록해놓은 것 까지 라고 할 수 있다. 감상문이라고 할지 독후감이라고 할지, 이책을 읽고 나니 내가 그동안 여기에 써온 그것들은 구슬의 나열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겠다. 구슬을 엮어 목걸이를 만들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관련된 책을 연결시켜 나름대로 하나의 키워드로 묶고,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쓸 수 있는 수준이 바로 그 목걸이를 만드는 작업에 해당한다면 말이다.

이 책의 저자 이종인은 번역가로 그 이름이 눈에 익은 분. 알고 보니 대단한 독서광이다. 360편의 책, 특히 근래에 출판된 책 보다는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책들 우선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평소 그의 독서 이력을 잘 알고 있는 출판사 사장으로부터 제안을 받고 이 책을 엮게 되었다고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네 장으로 나누어 인생의 사계와 어울리는 책들을 모아 놓았다. 첫장 첫 책은 장영희 교수의 <내 생애 단 한 번>, 제목을 "딸에게 아버지란"이라고 붙였다. 책을 읽고난 느낌을 한 마디로 응축한 것이 서평의 제목이라고 본다면 이분의 제목 정하는 능력은 평범하지 않다. 몇 가지 예로 들어보자면, "조건의 아버지, 무조건의 어머니 <소유냐 존재냐>", "모든 문학은 가족 로망스에서 출발 <프로이트 전집 9권>", "여름이 되기 전에 읽을 것 <잎 속의 검은 잎>", "무의미한 스트레스, 유의미한 스트레스 <파블로프>", "신데렐라 스토리와 페미니즘 연구 <제인 에어>", "완벽하게 생을 마무리하려는 착각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없는 줄 알기에 꿈꾸는 그것 <유토피아>", "괴테의 정신적 자서전 <파우스트>", "카르페 디엠은 놀지 말고 뭔가를 하라는 뜻 <서정시 11, 카르페 디엠>".

특히 제인 에어를 신데렐라 스토리로 본 점,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신데렐라 스토리가 있다면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허레이쇼 앨저 스토리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용상 관련이 있는 책들을 같이 소개하기도 하고, 제인 에어의 경우처럼 <레베카>,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등을 제인에어에서 변형되거나 응용된 후속작으로, <오트란토 성>, <우돌포성의 신비> 같은, 나로선 제목도 처음 들어보는 이 소설들은 제인에어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는 고딕 로망스로 소개하기도 했다. 세익스피어 희곡 속의 장면이나 대사가 사실은 그보다 훨씬 전의 고전 작품에서 인용된 예도 찾아서 보여주고, 어떤 소설의 주인공이나 대사때문에 지금까지 하나의 관용적 표현으로 쓰이는 예를 소개한 것은 아마 그의 오랜 번역가로서의 연륜일지. 당연히 여기 실린 360편의 고전 중에는 그가 번역한 책들도 포함되어 있다 (로마제국 흥망사, 흐르는 강물처럼, 중세의 가을 등).

서양 고전 뿐 아니라 동양의 고전, 소설 뿐 아니라 시집, 기독교 관련 서적 뿐 아니라 불교, 유교 관련 서적, 600여 페이지, 360편이라는 분량때문이 아니더라도 그는 실로 다양한 범위의 독서를 했다.

읽은 책은 읽은 책이라서 반갑게 읽히고, 읽지 않은 책은 읽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를 듣느라 귀를 쫑긋 세운 어린 아이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읽게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중 가을에 해당하는 장에는 인생의 시기중 중년에 다가오는 고뇌, 반추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 책들을 많이 소개하였는데 내 나이 때문인지 특히 더 공감하며 읽었다. 많이 알려진 시 <릴케의 가을날>의 마지막 연,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이 구절의 의미가 이제서야, 이 나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해가 되다니. 지금 의미없는 삶이라도 내일은 다르겠지, 다를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던 나이가 있었는데, 이제는 지금 의미없는 삶은 앞으로도 의미없으리라는 두려움으로 이어지는 것, 그것이 나의 우울의 한 축이 아니던가.

올더스 헉슬리가 <과학과 문학>이라는 책에서 했다는 말, "시인은 과학자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존재다"라는 문장은 꼭 기억했다가 인용해보고 싶다.

시작하는 문장이 유명한 책도 있지만 마지막 문장이 유명한 책도 있다. 이를테면 "인생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좋지도 혹은 그렇게 나쁘지도 않다"라는 문장은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의 끝맺는 문장인데 워낙 많이 알려져 있으니까 나도 알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지금은 같은 말이 가슴으로 들어온다. 고전이란 그런 것.

독일의 문필가 빌헬름 셰퍼의 말, "작가의 임무는 단순한 것을 의미심장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심장한 것을 단순하게 말하는 것이다."는 여러 군데서 인용하고 있는데, 작가는 아니더라도 말을 하거나 글을 쓸때 참고로 하면 좋을 말이다.

 

필자도 말했듯이 책을 읽는 것은 어떤 목적이 있어서 읽는다기 보다 즐거워서 읽는다. 당시에는 일단 즐거워서 읽었던 책들이 인생의 어느 시기, 행복한 순간보다는 포기와 절망의 순간에 우리를 일으켜 세워준다. 일희일비의 경박함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신간 소개에 혹해서 읽기보다 일단 사들이고 보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듯이 그는 상당수의 책을 읽고, 또 읽고, 또 읽어오고 있다고 한다. 나에게는 그런 책이 있던가. 없지야 않지만 그저 몇권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은 책을 읽은 후 이렇게 인터넷 공간에 기록으로 남기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동안 읽은 책들을 이렇게 정리해서 나만의 책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그런 작은 결심을 하며 이 책 읽기를 마쳤다. 목걸이가 아니라 구슬의 나열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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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2-16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구슬의 1인 ㅡ 줄서고 갑니다. 고전의 향기가 물씬 나서 넘 좋게 읽었네요!^^ 독후감이든 독서 기록이든 있어야 제 스스로도 좀 편하더라는 말을 위로도 뭣도 아니게 남기고 가요!^^

hnine 2017-02-16 22:44   좋아요 1 | URL
이제 건망증까지 생겨서 기록을 해두지 않으면 어떤 책은 읽으려고 맘만 먹고 안읽은 책인지, 그러다가 결국 읽은 책인지, 읽다가 중단한 책인지, 도저히 모르는 경우도 있어요 ㅠㅠ
그리고 기록하면서 비로소 생각이나 느낌이 정리되는 느낌이 드니까요. 생각이 허공으로 날라가버리지 않게 뿌리는 픽사티브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이 책은 두꺼운 것에 비해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장소] 2017-02-16 22:58   좋아요 0 | URL
아ㅡ픽사티브 오랜만에 들어요!^^ 정말 딱 알맞은 단어 아닌가 싶고요!^^
음음, 그렇죠. 생각을 좀 ( 그저 잠시이든 오래든) 잡아줄 것이 우리에겐 기록 뿐이니 ...^^
 

 

 

 

 

 

 

 

 

 

 

 

 

 

 

 

 

 

 

 

 

자는 모습은 사람도 개도 평화롭다.

 

자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마음도 평화롭다.  때론 애처롭기도 하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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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7-02-12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그란 눈이 스르륵 감기는 모습이 귀여워요~~^^

hnine 2017-02-12 01:31   좋아요 0 | URL
1분도 안 걸리더군요 스르륵 잠이 드는데 걸리는 시간이요. 제가 옆에서 사진을 찍거나 말거나 ^^
때로는 코도 곤답니다.

세실 2017-02-12 09: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귀여워라~~~ 평화로워 보입니다.
저도 저녁 먹고 거실에서 잠깐 TV보다가 스르르...1분도 안걸릴걸요?

hnine 2017-02-12 15:24   좋아요 0 | URL
저렇게 자다가도 제가 자리를 옮기면 어느새 알고 깨서 따라옵니다. 아주 순해서 웬만하면 짖지도 않아요. 택배 아저씨가 와도 좋다고 막 꼬리치고 안기고 그래요 ^^

Joule 2017-02-12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 님 프로필 사진 제가 완전 좋아하잖아요. 생각이 많은 녀석 같아요. 개들도 성격이며 지능이며 이런 게 다 달라서 분명히 야비한 개가 있고 한심한 개가 있고 영리한 개, 사려 깊은 개, 욕심 많은 개, 착한 개, 결벽증 개, 우둔한 개들이 있는데 그 모든 개들 옆에는 나란히 ‘내가 좋아하는 개‘라는 것도 있어요.

hnine 2017-02-12 15:32   좋아요 2 | URL
이름이 <볼더>인데요, 저희집에서는 순하다는 말 할때 <볼더처럼 순하다>라고 관용구처럼 써요. 아주 순하거든요. 제가 대여섯살때부터 집에 줄곧 개, 고양이 등을 키워왔는데 말씀처럼 개들도 성격이 다 다르더라고요.
먹을 거 아주 좋아하는 녀석인데 언젠가 저희 가족이 집을 비울 일이 있어서 개 맡아주는 곳에 며칠 맡겨놓았었는데 한끼도 안 먹더래요.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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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늙었다고 얕보지 마라. 너희들은 안늙을줄 아느냐."

어릴 때 할머니께서 종종 하시던 말씀이다. 어린 마음에도 할머니의 그 말씀이 예사로 들리지 않았었다.

할머니도 나처럼 어릴 때가 있었고, 나도 언젠가 할머니처럼 될 때가 올거라는 걸 새삼 떠올리면서 잠시 하던 일을 멈칫했었다.

이 책의 원제는 Being mortal. 영국의 극작가 뮤리엘 스파크의 장편 소설 Memento mori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다.

저자 아툴 가완디는 의학과 더불어 윤리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현재 하버드 의대 교수이자 외과 전문의로 있으며 The New Yorker지 전속 필자로 있다. 이미 여러 권의 의학 관련 저서를 내서 이름이 알려져 있고 미국 최고 과학 저술가에게 수여하는 상을 수여받았으며 영향력있는 인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외과 전공의 1년차 때.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던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가족의 요청에 의해 빼는 임무를 그가 맡아 해야 했던 경험을 하고 나서라고 한다. 혹시 그 환자가 자기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호흡기를 빼내겠다고 환자에게 속삭이고 호흡기를 빼낸 후 확인을 위해 청진기를 환자의 가슴에 대고 심장박동이 점점 꺼져가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나는 2년전 아버지의 심장 박동수가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을 지켜보던 순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간호사는 기계에 나타나는 숫자가 20이하로 떨어지거든 자기를 부르라고 일렀다. 그것을 기다리고 둘러 앉아있던 가족들. 우리는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나 생각하니 곧 떠나실 아버지도, 나도, 이 세상도,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다.

책의 서문에, 그리고 본문 중에도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얘기가 자주 인용된다. 나 역시 읽고 나서 한 동안 머리속에서 이 소설 생각이 떠나질 않았고 지금도 종종 떠올리는 책이 아니던가.

비슷한 제목의 책들이 많이 나와있고 비슷한 얘기들기 되풀이되는 내용이 아닐까 이책을 구입하기 전에 잠시 망설였는데, 결론적으로 그렇지 않았다. 번역도 억지스럽지 않게 잘 되어 있어서 읽기에 힘들지 않았고 많은 부분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밑줄 그은 몇 부분이라도 정리해보고자 한다.

 

-노화 과정에 관여하는 메커니즘은 단일하고 일반적인 세포 메커니즘이 아니다. 

노화는 단일한 과정에 이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활성산소로 인한 세포의 손상, 무작위로 일어나는 DNA 변형, 그 외에도 수많은 세포 이하 수준의 문제들이 축적되어가면서 일어나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점차적이면서도 가차없이 진행된다.

 

-노인병전문의 수요가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그 수가 적은 이유

의학계에서 그 수입이 가장 낮다는 것, 그리고 상당수 의사들이 노인을 돌보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인들은 주된 증상 하나만 갖고 오는 게 아니다. 인터뷰한 한 의사 말에 의하면 노인이 하소연하는 증상은 열다섯 가지쯤은 된다고 한다. 그 많은 증상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의사는 없다. 또한 환자로서 노인을 상대하는것은 다른 환자들에 비해 훨씬 어렵고 소통의 문제가 있다. 병원에서도 노인병 전문팀을 두길 꺼려하는데, 병원내에 노인병 전문팀을 따로 두지 않고 그냥 환자를 받을 때보다 손해를 초래하여 적자를 보기 때문이다.

 

-노인병 전문의가 하는 일

노인병 전문의는 환자들의 신체와 신체의 변화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영양 상태, 복용 약, 생활상 등도 계속 주시해야 한다. 게다가 환자의 생활방식을 재조정하기 위해 필요한 아주 작은 변화라도 이루려면 환자로 하여금 우리 삶에서 바꿀 수 없는 것, 다시 말해 누구나 불가피하게 직면해야 하는 노령과 생의 종말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만들어야 한다. 불로장생할 수 있다는 환상이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지만 어쩌면 노인병 전문가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라며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요양원 (Nursing home)이 우리나라보다 보편화되어 있는 미국. 하지만 요양원 시설이 아무리 훌륭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어도 이곳에 들어온 노인들의 많은 수가 우울증을 겪는다. 현재 노령인구의 증가, 요양원에서서 죽음을 맞는 것에 대한 존엄성 문제 때문에 그 대안책으로 노인을 위한 생활 지원 주택 (assisted living house) 호스피스 케어가 증가하고 있다.

직원들이나 가족들이 무슨 짓을 해도 할머니는 점점 더 우울해졌다.

나는 할머니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할머니도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딱 집어내지는 못했다. 그저 이런 말을 자주 했을 뿐이다.

"여긴 집이 아니야." (109쪽)

 

저자가 자기 아내의 할머니의 경우를 예로 든 부분이다.

노인에게 적합한 의사가 항시 대기하고 있고 최적의 식단과 보호를 보장받고 있지만 노인들은 행복해하지 않는다. 당뇨병 환자가 먹어서는 안되는 쿠키를 먹었다고 할때 그게 자기 집에서라면 일탈로 끝날 수 도 있지만 요양원 내에서 그것이 발각될 경우에는 큰 죄책감과 조치를 받아야 할지 모른다. 해주는 대로만 받아야지 자기 의사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러한 기존 요양원과 다른 혁신적 대안으로 1983년에 문을 연 노인을 위한 생활 지원 주택 (assisted living house)은 아무도 보호시설에 감금됐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자는데 목표를 두고 있었다. 안전과 생존을 우선시하는게 의학계의 언어라면, 삶의 질, 존엄성, 자유의지를 고려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2003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원래의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 어시스티드 리빙 시설은 11%에 불과했다. 이렇게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1. 사람들이 잘 살아가도록 진심을 다해 돕는 일은 말로 하는 것보다 실제로 하기가 훨씬 힘들다. 예를 들어 이 시설에서 노인들을 돌보는 임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옷을 입혀 주는 게 스스로 입게끔 놔 두는 것보다 쉽고,시간도 덜 걸리고, 서로 마음 상할 일도 적어진다는 것이다.

2. 어시스티드 리빙이라는 개념, 즉 일상적인 삶을 돕는 일의 성공 여부를 잴 수 있는 척도가 없다는 점이다. 반면 위생과 안전에 대해서는 굉장히 엄밀한 평가 기준이 있다. 이쯤 되면 노인들을 위한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어떤 부분에 주의와 관심을 기울일지 짐작할 수 있다. 시설에 들어가 있는 우리 아버지가 외롭지는 않은지 하는 것보다 체중이 감소했는지, 약을 빼먹지 않았는지, 넘어지지 않았는지 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3. 가장 실망스럽고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어시스티드 리빙 시설이 노인들을 위해서라기 보다 그들의 자녀들을 위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167쪽)

 

저자의 경우는 할아버지가 젊어서 인도에서 미국으로 건너왔고 할아버지 자신도, 저자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모두 의사를 지낸, 미국에서 소위 성공적인 정착을 이룬 가족이다. 인도의 전통적인 관습의 영향으로 그의 할아버지는 병원이나 요양원이 아닌, 대가족의 보살핌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우리 할아버지처럼 기댈 수 있는 대가족이 함께 지내면서 그가 선택한 방식으로 살 수 있게 지속적으로 돕는 시스템이 부재한 경우, 우리 사회의 노인들은 통제와 감독이 계속되는 시설에 갇혀 사는 수밖에 없다. 풀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의학적으로 고안된 답이고, 안전하도록 설계된 삶이지만, 당사자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도 없는 텅 빈 삶이다. (172쪽)

 

-존엄사 (death with dignity)를 허용할때 생각해봐야할 문제점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그리고 미국의 오리건주, 워싱턴주, 버몬트주 등은 의사들이 안락사 처방을 할 수 있는 곳이다.

2012년 현재 네덜란드인 사망자 35명 중 1명이 안락사를 선택했다. 이것이 안락사 허용의 성공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성공의 척도가 아니라 실패의 척도다. 결국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마지막까지 좋은 삶을 확보해 줄 가능성이 있는 완화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뒤처져 있다. 어쩌면 안락사 시스템이 정착돼 있는 탓에 장애가 생기거나 심각한 질병에 걸렸을 경우 안락사가 아니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고통을 줄이거나 삶을 개선시키는 게 불가능하다는 믿음이 강화되어 있을 수도 있다.

안락사를 선택할 여지를 마련했다고 해서 환자들의 삶을 개선하는 문제에 대해 눈을 돌려 버리게 된다면 사회 전체적으로 크나큰 해를 끼치게 될 것이다. '어시스티드 리빙'은 '어시스티드 데스 (assisted death)'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훨씬 더 큰 가능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373, 374쪽)

 

-죽는 자의 역할

호스피스 케어의 목표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의 옆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처한 상황에서 가능한 한 최상의 나날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데 있다. 죽어가는 사람이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죽는 자의 역할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삶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시점에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추억을 나누고, 애정이 담긴 물건과 지혜를 물려주고, 관계를 회복하고,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고, 신과 화해하고, 남겨질 사람들이 괜찮으리라는 걸 확실히 해두고 싶어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지가 원하는 방식으로 마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죽는 자에게나 남는 자에게나 중요한 일이다. (380쪽)

 

그러면서 저자는 실제 자기 아버지가 죽음을 어떻게 맞이했고 가족은 어떻게 그와 함께 했는지 자세히 적고 있다.

많은 사람의 생과 사를 경험했던 의사 (저자의 아버지와 저자 모두)이어도, 평소에 죽음에 대해 노화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음에도, 죽음 앞에 침착한 사람은 없다.

통증을 경험한 사람에게 통증의 강도를 표시하라고 하면 통증을 경험한 전체 기간 동안 통증의 정도를 평균해서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 통증을 경험한 정점과 마지막 순간의 통증을 평균하여 표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사람의 육체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고 자연 법칙에 따라 작동하지만 사람의 느낌과 정신은 수학과 화학의 법칙을 넘어서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 역시 아버지를 떠올렸고, 아마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아버지가 생을 마치시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90일의 기억에서 2년도 더 지난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폐렴 치료차 병원에 가셨고 입원하라는 말에 입원하시고 치료를 시작하신지 사흘만에 의식을 잃으셔서 인공호흡기, 계속해서 진정제 주사, 식도 협착으로 인해 튜브로 영양 공급, 나중엔 투석에 기흉, 심정지로 인한 전기 쇼크까지, 옆에서 도저히 볼 수 없는 힘든 과정을 거치시는 동안 정작 아버지 본인은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줄곧 의식이 없는 상태로 계시다가, 가족들과 한마디 인사도 없이 그대로 가셨다. 생전에 자동차에 기름도 반 이하로 떨어진 것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미리 준비하시며 사셨던 아버지,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봐 벌써 몇년 전 부터 장례 서비스, 수의, 장례 절차까지 다 준비해놓으셨던 아버지, 여행을 하시면 기차 티켓 한장도 버리지 않고 여행기와 함께 정리해두시던 완벽주의 성격의 아버지셨는데, 마지막이 저렇게 허망할 수가 있나 생각하면 지금도 모든 의욕을 잃는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온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일도 누구나 겪는다. 이 책을 읽으며 나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던 그 사실을 다시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물음은 곧 어떻게 살 것인가와 무관하지 않음을.

다양한 사례를 포함시키면서도 산만하지 않게, 주제를 벗어나지 않게 쓰여진 글이다. 추천할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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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8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7-02-08 19:26   좋아요 0 | URL
선택할 수 있는 정신이 있을 때 해놓아야 하는데, 그런 온전한 정신이 있는 동안엔 되도록 죽음의 문제를 회피하고 싶은게 인지상정이라서 이런 책을 읽고 자각을 해야할 필요가 있나봅니다. 그런데 경험이 의식을 지배하는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요. 한번의 경험이 미치는 영향력은 책이나 미리 학습한 것들을 가차없이 무너뜨리는 걸 느끼겠어요. 무너진 것을 다시 쌓아올리는 작업 중입니다 되도록 튼튼하게요 ^^

세실 2017-02-09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죽을 것인가...어떻게 살 것인가....
갑자기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웰 다잉.....중요하지요.

hnine 2017-02-09 20:25   좋아요 0 | URL
세실님은 종교가 있으시니까 종교가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하다보면 종교가 없는 저도 종교에 대한 생각을 잠시나마 하게 되더라고요.
추상적인 의미를 넘어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미리 해놓은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더 나이 들어서 생각하려면 마음이 더 안좋을 것 같아서요.
 

 

 

 

 

The human mind is not meant to be governed, certainly not by any book of rules yet written; it is supposed to run itself, and we are obliged to follow it along, trying to keep up with it as best we can. It is all very well to be aware of your awareness, even proud of it, but never try to operate it. You are not up to the job.

 

 

...사람의 정신은 (외부의 어떤 수단에 의해) 지배되고 조율되는 것이 아니다. 성문화된 어떤 법률이라 할지라도 그것으로 사람의 정신을 다스릴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의 정신은 스스로 작동하게 되어 있다. 우리는 정신이 작동하는 바를 따르고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최선을 다 할 뿐이다. 당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는 것 (자기의 정신 상태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 자각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고 자랑스러워 할 만한 일이다. 결코 사람의 정신을 인위로 조작하려하지 말아라. 그것은 당신에게 맡겨진 일이 아니다. 

 

 

 

 ◀ 예전에 읽은 책

 

 

 

 

 

 

 

 

 

 

 

 

 

 

고백하자면 이 책은 오래전에 (2000년) 순전히 제목이 멋있어서 구입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 Lewis Thomas가 아주 유명한 의사이자 작가라는 것, 미국에서 최고의 과학 저술가에게 주는 상에 그의 이름이 붙은 것이 있을 정도로 인정받은 사람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이 책을 오늘 다시 들춰보게 된 것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다른 저자의 책을 읽다가 Lewis Thomas의 말이 인용된 부분을 만났기 때문이다. 예전에 구입했던 Lewis Thomas의 책을 찾아다가 밑줄쳐 놓았던 한 문단을 옮기고 해석은 내가 이해한대로 의역해서 덧붙여보았다 (mind를 마음이 아니라 정신이라고 해석한 것도 괜찮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 지금 읽고 있는 책

 

 

 

 

 

 

 

 

 

 

 

 

 

*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제목때문에 낚여서 구입한 책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가독성 있다. 이 책의 저자도 위에 언급한 루이스 토마스 상을 받았다.

 

* 실제로 말러의 음악은 한번 듣고 좋아지기엔 좀 무리가 있는, 내게는 어려운 음악이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에겐 책 제목 속에서 더 멋있어 보였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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