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 장석주의 서재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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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밤이 불면인 내게 불면이란 단어는 오히려 새삼스럽다. 하지만 얼마나 멋진 제목인가. 불면이라는 현상이 방해꾼이 아니라 오히려 등불이 되어 나를 인도한다니. 어디로 인도하는지는 극히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일일지도.

중국 시인 베이다오 (北島)의 시 한구절에서 빌려와 썼다는데 이 시는 책 첫 페이지에 나와있다.

장석주. 그가 자기를 소개했듯이 그는 문장노동가이며 날마다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것은 그의 어느 글, 어느 책을 읽어봐도 어렵지 않게 알수 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읽어대고 써대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안 읽고 안 쓰는 것이 견딜 수 없는 사람. 그가 지금까지 읽어온 그 많은 책들이 어떻게 각색되어 그의 글로 재탄생되었을지,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 가진 기대감이었고, 시시할리 없다는 확신까지 미리 가지게 했다.

새벽에 일어나 검은콩 두유 한 잔을 마시고, 찐 감자 한 알을 먹는다. 이것들을 소화하면서 만들어진 열량으로 새벽마다 책을 읽고 원고를 쓴다. 소화란 무엇인가? 입으로 들어온 것을 저작과 소화효소 등으로 잘게 쪼개고 아미노산 단위로 분해한 다음 흡수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그 안에 내포된 다른 개체의 정보를 분해"하는 것이다. (후쿠오카 신이치, <동적평형>) '나'는 날마다 아미노산 배열이 헤쳐 모여를 하는 불가역적인 시간의 질서 속에서 무언가를 읽고 쓴다. 내 삶은 단조롭다. 나는 그 단조로움에 오래 길들어 있다. 답답해질 때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371쪽)

이 글의 제목은 다른 아닌 '두유 한 잔 감자 한 알'. 후쿠오카 신이치라면 나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서 읽는 저자 아니던가.

나는 아직 읽지 않은 책이지만 그가 이 책에서 <혼자 책 읽는 시간>의 저자인 니나 상코비치가 위기에 빠진 삶을 스스로 일으켜 세우는 방법이라고 소개한 내용도 인상적이다. 2008년 10월 28일 그녀의 마흔 여섯 번 째 생일 날 시작하여 2009년 10월 28일까지, 날마다 책 한 권을 읽고 서평 쓰기로 채운 것. 이렇게 보낸 독서의 한 해 동안 그녀의 책 읽기는 네 아이 돌보기, 커피 타임, 학부모회 모임, 체력 단련 시간, 집안 청소, 요리 , 장보기 때위의 가사노동을 포함하는 일상의 잡다한 의무들과 함께하는 일이었다니, 이 대목에서 내 눈이 반짝.

내가 가만가만, 조용조용 좋아하는 에밀 시오랑에 대한 그의 의견에도 공감한다. 자살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라고 말하는 루마니아 출신 철학자 에밀 시오랑. 자살에 대해 그렇게 많은 글을 남겼으면서 끝내 본인은 자연사로 생을 마쳤고 자살이란 방법을 택하지 않은 이유는 인간이란 세상에 내던져져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삶의 방식을 찾도록 선고받은 불행한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정리해놓았다. 어느 정도 인생에 대한 낙관과 자살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만이 감히 자살을 시도할 수 있다고. 그러면서 저자 장석주의 맺음말은,

때때로 나도 동물이기를 그치고 싶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분주한 활동을 멈추고 식물의 무의식 속에 서 살고 싶다. 동물에 반해 식물은 얼마나 조용하고 평화로운가. (97쪽)

식물생리학자들이 들으면 단박에 모르는 소리 말라고, 식물은 식물 나름대로 생존을 위해 얼마나 많은 수법을 쓰고 있는지 아냐고 하겠지만 잠시 뒷전으로 하고.

410쪽의 "이토록 조잡한 유토피아"라는 글에서 그는 미국이 빚어낸 유토피아는 유럽인들에게는 착잡한 역설이라고 썼다.

유토피아는 물질화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관념으로 존재하는 그 무엇이고, 현실을 가늠하고 평가하는 당위적 표준이고, 현실에서 유통되는 제도와 규범들의 당위성을 재는 잣대다. 그 유토피아가 현실이 되면 그건 반 유토피아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략) 미국은 과거도, 기원도, 창립의 진리도, 시간의 축적도 없이 낙원으로 급조된 나라이다. (413쪽)

어떻게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

사유의 방식을 '수목형'과 '리좀형'으로 나누어 설명한 것도 새겨둘말 하다. 비록 들뢰즈·가타리가 쓴 <천 개의 고원>에서 빌려 온 개념이라고 하지만 말이다. '수목형'은 나무라는 고정된 질서에 수렴되는 사유로서, 차이들을 하나의 기둥으로 환원하는 구조인 반면 '리좀형'은 뿌리줄기가 뻗어 나가는 대로 펼쳐지고 어느 지점에서나 새로운 리좀을 만들며 작은 중심들로 분산되는 구조를 말한다. 즉 펼쳐지는 사유라고 말할 수 있다.

 

두툼하지만 크기는 아담하여 가방에 들고 다니기도, 손에 쥐고 어디서나 펼쳐 읽기도 좋다.

다 읽고 덮을 때 마음은 마치 오랜만에 마음에 맞는 친구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실컷 마음 속 얘기를 주고받고서 아쉬운 작별을 할 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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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5-09-12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80년대에 나온 이 분의 시집을 3권 가지고 있는데요. `문장노동가`의 글은 좀 부담스러워 요즘은 잘 읽지 않습니다만 호기심이 생기긴 합니다.
불면의 밤이 괴로울 듯한데, 엄지발가락 부딪치기나 발로 하는 가위바위보가 수면에 도움이 됩니다. 저는 잠을 못자면 술에 취한 듯 헛소리를 내뱉는 경향이 있어서요.^^

hnine 2015-09-13 04:34   좋아요 0 | URL
책 좋아하는 사람들을 한 둘 보는게 아니지만 이분도 참 둘째 가라면 서러울 것 같아요. 원주토지문학관에 들어가는 건 문인이라 그렇다 치고 학생들이 없는 여름 방학엔 대학 기숙사 (연대 원주 캠퍼스가 아니었을까 합니다만)에 들어가 도서관과 방을 왔다갔다 하며 책만 읽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이 책이 처음은 아닌데 시집도 읽은 적이 있는지 기억이 가물거리네요.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불면을 이제 저는 그냥 저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요. 엄지발가락 부딪치기는 저도 들어본 적 있어서 어제 잠자리에서 한번 해봤네요 ^^
 
입 안에 고인 침묵 바깥바람 9
최윤정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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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청소년 책을 주로 내는 출판사 "바람의 아이들' 대표 최윤정. 그녀의 두번째 산문집이다.

이보다 먼저 나온 산문집 <양파이야기> (이후 "우호적 무관심"으로 제목 바꾸어 재출간됨)를 읽었었는데, 불문학을 전공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날 때까지도 어린이, 청소년 문학, 더구나 출판사 운영은 생각지도 않던 그녀가 한국에 돌아와 뜻하지 않았던 일을 시작하기 까지 과정, 그리고 그녀의 속내를 읽어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 궁금증은 첫 산문집에서 다소 해소를 했기 때문일까. 이번 산문집에은 재미가 덜했다. 산문집을 재미로 읽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탁! 치고 지나가는, 산문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구절이나 페이지를 찾지 못하며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었다.

 

프랑스 작가 프루스트는 '작가에게 상상이란 없다. 단지 기억만으로 글을 쓴다'고 얘기했다. 개인적인 체험에 대한 기억뿐 아니라 책이나 영화, 문화 전반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글을 쓴다는 것이다. 프루스트의 말이 상당히 맞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해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요즘엔 더더욱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작가란 집단적인 기억을 조금 더 어루만져서 작품을 쓰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43쪽,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르 클로지오가 한국에 왔을 때 모 신문에 실린 기사 중-

 

동화 써서 먹고살수 있냐는 질문부터 던지며 머뭇머뭇 다가오는 신인 작가들에게 저자가 해주고 싶었던 말은 '돈을 벌려면 돈을 벌 수 있는일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 세상에는 동화를 쓰는 일보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라고 한다. 하지만 그 말을 당당하게 하지 못한단다. 출판사를 경영한 이래로 출판이 불황이 아니라는 말을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고, 출판계 사정은 앞으로도 계속 나아질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글 쓰고 책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은, 사람들 마음 속에 또렷이 빛나야 할 것은 여러개의 별이 아니라 딱 하나의 별이기 때문이란다. 자기 안에 또렷이 빛나는 별을 가진 작가를 기다리며, 쉽게 흐릿해지는 어린이문학 판의 별들을 애석해했다. '저 하늘의 수많은 별들'이란 소제목의 이글 (44-46쪽)을 이 책에 실린 글중 제일 마음에 들었던 글로 꼽고서 보니 책머리글 제목도 '가슴엔 별 하나', 일맥상통하는 내용이었다.

 

저자와 각별한 친분이 있는 프랑스의 작가이며 나도 좋아하는 작가인 수지 모건스턴에 대해 말하기를 수지 모건스턴은 항상 독자들을 웃으면서 깨닫게 해준다고. 어른을 대상으로 한 소설과 어린이, 청소년 문학의 차이점이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된다.

 

시가 밥 먹여 주지는 않지만 배고픔을 잊게 해 준다. 그림은 외로움을 달래 준다. 음악은 적막함을 덜어 준다. 그것들은 직업이 아닌 경우에 특별히 더 그렇다. 아마추어리즘이 그래서 귀하다. 다만 스노비즘과 아마추어리즘의 경계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166쪽)

 

시, 그림, 음악의 비유보다 뒤 문장의 스노비즘과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언급은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던 점을 짚었기에 옮겨둔다. 그리고 새삼 깨닫는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스노비즘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요즘 여기서 저기서 팽배해가고 있음을.

260쪽에는 '워커 홀릭'과 '딜레땅띠즘'에 대해서 잠깐 언급을 해놓았다. 그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녀가 썼듯이 인간의 삶이란 95%가 습관으로 유지된다는 것이 그 답이 될까? 거의 습관의 경지까지 올랐을때 워커 홀릭이라고 할 수 있지만, 즐거움과 보람은 딜레땅띠즘이 더 많이 느낀다는 것?

 

파리 시내를 돌아다녀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성난 인간들이 있는데 술에 취한 것도 아니면서 혼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거나 찻길 한복판으로 걸어 가거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대답 없다고 화를 낸다고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너무 외로워 보인다는 것. 그렇게 외로운 인간들이 파리에 널렸단다. 외로움에 지쳐서 병든 영혼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런 외로움이 안으로 안으로 파고드는 병이 되는게 아니라 공격적이 된다는 점이다. 나를 이렇게 외롭게 만든 세상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이 뱉어 내는 적의에 찬 말들......그리고 더 신기한 것은 공격적인 것은 오로지 말, 그 말을 하는 눈빛과 제스처일 뿐 실제로 그들 중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들을 해치거나 위협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하나같이 말들이 유창하다는 점이다. (265쪽)

 

아, 나는 왜 이 구절에 밑줄을 그었을까.

 

비록 밋밋한 문장이 될지언정 과장하고 필여없는 미사여구를 사용은 자제하겠다는 저자의 생각이, 책을 다 읽을 무렵 보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전반적으로 심심한 내용의 책이라는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 갔다.

 

리뷰 제목 '고지식한 원칙주의자'는 저자가 본문 중에서 자기 자신을 일컬은 말이다. 이때 원칙은 남이 정한 원칙이 아니라 저자 자신이 정한 원칙일 것이고, 가슴 속에 또렷이 빛나는 별로 간직하고 있는 그것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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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9-09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째산문집 나왔군요. 좋아하는분입니다. 물론 글과 그녀가 번역해 내는 그림책들만으로도요. 265쪽 인용문이 무척 와닿네요.

hnine 2015-09-09 09:10   좋아요 0 | URL
허겁지겁 오자 고치고 있던 중에 다녀가 주셨네요 ^^
이분 글을 읽어보면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금방 파악이 되질 않아요. 강단있고 대범해보이는데 소심하고 세심해보이기도 하고요.
265쪽 인용한 글을 읽으며 인간의 외로움이라는 것이 인간의 행동과 삶의 방식을 조종하는 커다란 포텐셜이 된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어요.
(헤세 전시회 다녀오신 글 읽으며 참 좋았습니다. 가고 싶었는데 못가고 지나겠구나 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요즘 서재에 잘 못들어오고 글도 잘 못남기고 있어요 ㅠㅠ)

다락방 2015-09-09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지 모건스턴 이라는 작가에 대해 알게 되네요. 웃으면서 깨닫게 해준다니, 몹시 궁금해지는 작갑니다. 검색해서 저도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hnine 2015-09-09 13:51   좋아요 0 | URL
강추입니다!
웃으면서 깨닫게 하려면 일단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야 하고, 머리가 좋아야 할테고요, 대상을 꼭 깨우치게 하리라는 욕심이 없어야 할 것 같아요. 자식을 키우다 보면 이것이 얼마나 고단수인지 하루에도 몇번씩 절감하지요 ㅠㅠ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 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 나태주 <행복>-

 

 

 

엄마, 제가 가까이 두고 가끔 새겨보는 시랍니다.

나 태주라는 이 시인께서도 초등학교에서 오랫동안 가르치시는 일을 하셨고요,

어려운 말 안쓰고도, 길지 않으면서도, 절제된 언어로 마음에 울림을 주는 따뜻한 시을 여러 편 쓰셨어요.

 

 

시인이 위에서 말한 세가지를 저는 다 가지고 있네요!

엄마는요??

 

 

 

 

 

 

아빠의 빈자리를 몸으로, 마음으로, 매순간 견뎌내시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엄마.

그옛날 어린 나의 투정이나 어리광을 받아주시기보다는 따끔하게 일침을 놓으시며 꿋꿋하게 자립적으로 일을 해나가라고 말씀하시던 엄마였다.

지금은 입장이 바뀐 것 같은 기분이다. 몸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아무 것도 못하겠고, 아무 것도 하기 싫으시단다.

전화드리면 한시간이 훌쩍 간다. 엄마의 하소연을 다 들어드리다보면.

내가 엄마를 위해 하는 일이란 고작 그게 전부이다. 잘 들어드리는 일.

모자란 나는 사실 그것도 쉽지 않다. 내 의견 앞세우지 않고, 빈 마음으로 열심히 들어드리는 일.

 

 

 

 

 

 

 

 

 

 

 

 

 

 

 

 

 

 

 

 

 

 

 

 

 

 

 

방금

손수레가

지나간 자리

 

 

바퀴에 밟힌 들풀이

파득파득

구겨진 잎을 편다

 

 

- 권영상 <들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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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8-30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시가 어찌나 어려운지 비문해독가가 있어야할 정도인데..쉽지만 감성 돋는 시..그래서 더 반가운건 아닌가 싶어요.

hnine 2015-08-30 17:38   좋아요 0 | URL
어렵게 쓰는 것보다 쉬운 말로 여러 사람의 감성을 돋굴 수 있는 시를 쓰는 것이 더 어려울 것 같기도 해요. 나태주 시인의 시는 어떤 때는 눈에 띄지 않다가 어떤 때는 마음에 쑤욱 하고 들어올 때가 있더라고요.

파란놀 2015-08-30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한테서
한 시간을 달콤하게 하소연을 들으면서
삶을 누리는 이야기를
오래오래 고이 이으실 수 있기를 빌어요.

hnine 2015-08-30 17:40   좋아요 0 | URL
말씀하시는 엄마도, 듣는 저도 솔직히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답니다. 저는 별로 착한 딸이 아니어서, 엄마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듣고 있지도 않아요. 좋았던 일도 좀 말씀하시라고, 다그칠 때도 있는걸요.

stella.K 2015-08-30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플 때 누군가 잘 들어 주는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잖아요.
그러고 보면 저의 아버님 돌아가셨을 때 저는 엄마 얘기를 얼마나 잘 들어 드렸는지
까마득하네요. ㅠ
시가 참 좋네요. 그러고 보면 저도 그리 불행하지마는 않는 것 같습니다.ㅋ

hnine 2015-08-30 18:55   좋아요 0 | URL
그럼요. 잘 들어주고, 가끔 공감해주는 상대만 있어도 이 세상 버틸 힘은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듣기만 하는데도 늘 쉽지는 않더라고요. 하소연의 범위가 자꾸 커져가는 것 같기도 하고, 엄마가 스스로 일어서야할 시기를 점점 더 늦추게 하고 엄마 마음을 더 약하게 만드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음식을 만들어다 드린게 가보면 그대로 있어요. 과일은 상한게 태반이고요.
시, 좋지요? 아래 권영상 시인의 시는 엄마께 보내드리지 않았어요. 혹시나 읽으시고 밟힌 들풀이 당신의 상황이라고 생각하실까봐...ㅠㅠ
 

 

 

 

 

 

 

 

 

바다 가는 날

 

 

 

 

 

 

 

바다에 가고 싶다고

한번씩 말할 때마다

물길이 조금씩 트여

바다가 만들어졌다

그 바다 속에서

가고 없는 사람을 다시 만나고

딩굴고 있는 꿈부스러기를 찾아내고

오지 않았던 어제도 만나고

 

 

 

이제는

바다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내 마음 속에

내가 만든

그 바다로 간다

맨발로

타박타박

다시 돌아올 일 따위는

걱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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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5-08-20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바다에 다녀온 뒤
오늘도 바다에 가고 싶다고 노래하는 아이들이
비가 올 듯하니
자전거 말고 택시 타고 다녀오자고 하는데
빗줄기가 굵게 쏟아지네요.

바닷바람을 가만히 그려 봅니다.

hnine 2015-08-20 13:50   좋아요 0 | URL
비 오는 바다는 좀 겁이 나더군요.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없어지더라고요.

여기는 새벽부터 아침까지 비가 왔고 지금은 잠시 쉬고 있나봐요. 하지만 하늘은 잔뜩 흐렸어요.
 

 

 

 

 

자기 물그릇으로 가서 물을 꿀꺽꿀꺽 먹는 강아지, 보고 있자니 뭉클하다.

'목이 말랐구나.'

당연한 사실인데.

살려고 하는 모든 몸짓들. 살려고 하는 몸짓이라고 생각하면 모든게 뭉클하다.

 

 

 

목마르면 물을 마셔야지.

목마름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물을 찾아 마실 수 있다는 것.

그것만 해도 대단한 일 같아 울컥 한다.

 

 

 

목이 마른 걸 느낄 수 없다면

물을 마시면 목마름이 가신다는 걸 떠올리지 못한다면

물이 마시고 싶어도 물이 없어 마실 수 없다면

 

 

 

 

 

주로 이런 생각들로 하루를 멍하니 보내고 있다.

다 중요한 것 같다가

다 쓸데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세상에 중요한 것이 너무 많은 것 같다가

이 세상에 중요한 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살아있음의 증거는

이런 시간들에 있나보다

결국

내 인생이란

이렇게 진행되어가나보다

 

 

 

짬짬이 두 권의 책을 돌려가며 읽고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을 때는 옆에 노트가 있어야 하고,

<로마의 일인자>를 읽으면서는 앞의 인물소개, 지도 나와 있는 페이지를 자주 들춰봐야 한다.

 

 

 

오늘도 어제와 똑같이 쓸쓸하다

내일도 오늘과 똑같이 쓸쓸할거다

불만 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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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8 1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5-08-19 04:28   좋아요 0 | URL
늘 따뜻한 말씀 감사드려요.
특별히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기 보다 이제는 저의 일상이지요. 그렇게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하네요.
낮엔 더운데 새벽과 밤엔 선들해요. 지금 일어나있는 이 시간에도 선들했는데 커피를 한잔 마시고 나니 금방 몸에서 열이 나네요. 계속 이렇게 달라지는 상황 속에서 살고 있어요.
어제와 별로 다르지 않은 날이라 할지라도 오늘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모릅니다.
얼마 안 남은 더위지만 말씀처럼 잘 보내보아요.

qualia 2015-08-18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비슷한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hnine 님의 윗글을 제 나름대로 ‘번안’하면
목마름/갈증의 느낌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목마름/갈증의 느낌은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일까?
목마름/갈증의 느낌은 과연 환각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목마름/갈증의 느낌이 단지 환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그 환각 자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물음들 등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오늘 아픔/통증의 느낌에 대해 생각했었죠.
왜 우리는 아픔을 느끼고 통증에 고통받아야 하는 것이지?
왜 아픔과 통증의 느낌은 존재하는 것이고,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일까?
요즘 유행처럼 오감과 희노애락을 단지 뇌가 만들어낸 환각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감각적 느낌과 심리적 느낌이 오히려 물리적 실체보다 더 근본적인 실체/실재는 아닐까?
하하, 뭐 이런 건조한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물음을 던지고 그 다음엔 세세하게 파고들어가야 하는데
생각이 짧아 다른 일상으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곳 hnine 님 서재에 왔다가 아주 비슷한 생각과 다시 만나게 됐네요.
정말 괜히/은근히 반가웠습니다.
hnine 님은 물을 꿀꺽꿀꺽 찾아 마시는 강아지를 보고 뭉클하다고 하셨는데요.
저는 hnine 님의 윗글을 읽고 ‘방클’했답니다~^^
생각한 게 넘 비슷해서 반갑고도 놀라워서요~ㅎ

hnine 2015-08-19 04:40   좋아요 0 | URL
qualia님의 물음은 물성과 영성을 넘나드는, 광범위한 물음이네요! 갈증의 원인과 기능에 대해서는 생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그 느낌의 실체와 본질에 대해서는 답을 좀 더 찾아 나서야할 것 같아요. 진짜 느낌과환각의 차이는 무엇일지. 환각도 크게 보면 우리가 느끼는 느낌의 한 종류로 봐야할까요? 가짜 느낌? 음...가짜란 단어가 웬지 마음에 안드네요. 다른 단어로 대치시킬 수는 없을까...`심리적 느낌`이라고 하셨군요.
`방클`이라는 단어도 재미있습니다. 기억해두었다가 저도 언제 써봐야겠어요.
몸은 물을 원하나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스스로 물을 찾아 먹을 수 없는 상태, 즉 병든 상태이지요. 목마름, 통증, 이런 걸 느끼는건 모두 뇌든 마음이든 우리 몸이 그만한 기능을 해내고 있다는 것. 그런 당연할지 모르는 사실이 요즘은 자주 새삼스럽게 느껴져서요. 기계로, 주사약으로, 모든 통증을 차단시켜서 아무 감각 없이 누워 계시던, 중환자실에서의 제 아버지를 오래 지켜본 후로 그런 것 같아요.

oren 2015-08-19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 님께서도 요즘 니체의 저 책을 읽고 계시는군요. 그런데 hnine 님의 `이 글` 속에 니체의 `저 책`이 함께 담겨있으니 반가우면서도 괜히 마음 한 편으로는 좀 짠해지는 느낌도 전해지네요. `갈증`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니체의 저 책을 붙잡고 있을 리는 없을 테니까 말이지요.
* * *
목마를 틈이 없는 자는 물 마시는 쾌감도 알지 못할 것이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중에서

hnine 2015-08-19 20:36   좋아요 0 | URL
몇 사람과 함께 읽기 모임을 시작했는데 제가 추천한 책이랍니다, 니체의 책이요. 마침 그때 제가 읽고 있던 중이어서 함께 읽어보자고 했지요. 이런 책은 읽고서 할 말이 많을 것이 분명하므로 혼자 읽는 것 보다 함께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읽기 시작할 때에는 50%나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반 조금 넘게 읽었는데 생각보다는 이해 정도가 그리 저조하진 않네요. 신을 부정하고 초인을 내세우기 까지 니체는 신에 매우 몰입했었구나, 거의 전부를 걸다시피 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단계를 거쳐 신을 부정하고 초인을 내세우기 까지의 과정을 조금이라도 공감하고자 하는 목마름이 있습니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oren님 때문에라도 읽어야 할 책으로 예전부터 꼽아놓고 있답니다 ^^

yamoo 2015-08-19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보니, 엣지 나인님께 베르그손의 책을 강추드려야 할 듯합니다. 대체로 번역이 안 좋으니, 절대 사상 시리즈 한 권인 <물질과 기억>을 추천드리겠습니다!ㅎ 개인적으로 엣지나인 님의 글로부터 니체 보단 베르그손을 읽으시는 게 더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요~^^

hnine 2015-08-19 20:30   좋아요 0 | URL
당장 검색해봤지요. 베르그손의 <물질과 기억>. 그런데 이거 함부로 덤빌 책이 아니라는 결론 ㅠㅠ
하지만 이렇게 추천받은 책은 안읽고 못배깁니다 궁금해서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함께 읽기 모임 하는 사람들끼리 정해서 읽는 것이니 안읽을 수 없고, 그리고 생각보다 감동받으며 읽고 있기도 하고요. 이 모임에서 그 다음 읽을 책으로 제가 <물질과 기억>을 추천해보려고요. 아마 읽은 사람 없지 않을까 싶네요.
저를 엣지 나인이라고 불러주시는 yamoo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