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작가수업 천양희 : 첫 물음 ㅣ 작가수업 1
천양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3월
평점 :
특별히 천양희 시인의 시를 좋아해서도 아니었다. 그녀의 시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한 편도 없는 것을 보면. 하지만 시인이 시집이 아닌 수필을 냈다는 소식을 들으면 늘 솔깃하다. 더구나 얼마전에 읽은 이재무 시인이 시에서 이용하는 언어의 유희를 설명하면서 이것을 잘 살리는 시인으로 천양희 시인을 예로 드는 것을 보고 망설임없이 이 책을 구입하여 읽게 되었다.
1965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등단하여 이후로 줄곧 더 좋은 시를 쓰고싶어하며, 시 쓰는 일만 생각하며 살아온 시인의 조용하면서도 절실하고, 그렇게 오래 시를 써왔음에도 여전히 시 쓰기에 대한 열망을 사그러뜨리지 않고 더 불태우는 그녀의 글을 읽으며 어느 대목에서 나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의 살리에리를 떠올렸다. 살리에리 자신도 훌륭한 작곡가였지만 천재 아마데우스와 자신을 비교하며 더 완벽한 작곡가가 되고 싶어했던 그의 일생은 음악으로 행복하기보다 불행해보이기까지 했었다.
예술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럴까?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더 완벽한 작품을 갈망하며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우고 싶어하는 것은 예술가들의 숙명일까? 평생을 다른 학문 분야에 매진했던 사람들과 예술에 종사했던 사람들은 좀 다른 것 같다.
오랜 세월 시를 사랑하며 시를 껴안고 살아온 노시인의 글은 그저 편안하고 만족스러움만 느껴질 줄 알았다. 잔잔한 웃음이 그려질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시인의 고통, 눈물, 땀, 외로움이었다.
바람이 먼저 능선을 넘었습니다...
누구나 머물다 떠나갑니다
사람들은 자꾸 올라가고 물소리는 자꾸 내려갑니다
내려가는 것이 저렇게 태연합니다...
하늘은 넓으나 공터가 아닙니다
무심코 하늘 한번 올려다봅니다
마음이 또 구름을 잡았다 놓습니다
...
시 <추월산>의 일부이다. 이 시를 쓸때 시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삶의 어떤 한 자락을 짚었던 것일까.
시 때문에 절망하고, 시로 인해 다시 일어서는 시인의 삶. 그렇게 쓰여진 시를 어떻게 가볍게 읽고 지나칠 수 있을까.
책 속에 다른 사람들의 말이 지나치게 많이 인용되었다는 것이 이 책에서 내가 느낀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누구는 이렇게 말했고 누구는 또 이렇게 말했고, 하는 식의 문장이 페이지마다 거르지 않고 나온다. 그 중엔 밑줄치고 싶을 정도로 좋은 말도 많았던게 사실이지만 그게 이렇게 거슬릴 정도로 자주 나오지 않고 가끔만 적절하게 인용되었더라면 더 좋을뻔 했다.
'절망은 오랜 습관이고 슬픔엔 규격이 없다' 이것은 신용목 시인의 말이고,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한 생활과 깊은 생각을 하며 사는 것' 이것은 워즈워스의 말,
'운명이란 허무의 끝까지 가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신비의 얼굴. 운명을 만나본 사람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고 부재 속에서 풍요를 본다' 이것은 광장의 작가 최인훈의 말,
'이 세상에서 나에게 남은 유일한 진실은 내가 이따금 울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뮈세의 시 한 구절이라고 한다.
'오늘 해가 저물었다고 길이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 이 문장이 내가 밑줄 그은 문장중 유일하게 저자의 문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