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힘겨운 부모들에게 - 부모편 오은영의 사춘기 터널 통과법
오은영 지음 / 녹색지팡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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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간단하다. 내 아이를 가끔은 남의 아이 보듯 하면 된다. 남의 아이 보듯 할때 부모는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뿐 아니다. 옆집 아저씨랑은 한시간도 하하호호 얘기 나누면서 내 남편과는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큰소리 낸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내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대상에 대해서 우리는  남과 다르게 대하고 져주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마디 붙이는 말, "다 너를 위해서야", "다 당신을 위해서야."

누구도 위하지 못하는 것을.

그러면, 이론을 알면서도 이렇게 실제는 다른데 어떻게 해야하나?

내 생각은 이렇다. 한번에 바뀌진 못한다. 하지만 '조금씩' 바뀌는 건 노력하면 불가능하지 않다. 조금씩이나마 중단없이 계속 변하려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하고, 그 노력을 중단없이 연장해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이런 책들을 틈틈이 읽어주면서 마음을 재정비한다는 것이 내 경험이다.

오은영 저자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얼굴도 알려져 있고 그녀의 방식도 어느 정도 파악이 되어 있다. 내 아이가 달라졌어요 등의 TV 프로그램에서 보는 그녀는 엄격할땐 무척 엄격하다. 아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되는건 안된다고 확실히 알게 한다. 그녀가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에 대해서는 뭐라고 도움말을 주고 있을지 궁금했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녀가 조언자로 나온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술술 읽힌다. 문장도 말하듯이 쓰여져 있으니 더 그럴거다.

사춘기 부모가 힘들다면 사춘기 아이들은 죽을만큼 힘들다는 것, 다그치지 말고 아이의 말을 들어주기부터 하라는 것. 역시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 조금만 져주면 관계가 훨씬 편해진다는 것, 내 아이와 친한 것도 중요하지만 이 시기에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충돌이 적다는 것, 아이의 이런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아이의 몸은 자라도 평생 어린아이로 남게된다는 것, 단 한대도 때리는 건 하지 말라는 것, 부모의 권위를 따지기 전에 부모의 역할을 다하라는 것.

읽어가면서 어느 한 꼭지의 말도 자신있게 '통과!'를 외칠 수 없었다. 나는 완전한 부모가 아니기 때문에, 완전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와 한바탕 할 것 같은 순간에, 그 김을 삭힐겸 차라리 아이에게서 물러나와 방에 틀어박혀 이런 책에 정신을 쏟아보면 어떨까. 어려운 책이라면 몰라도 이 책은 김 오른 순간에도 머리에 들어올 정도로 쉽고 현실적인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읽고나서 괜히 읽었다, 손해봤다는 생각이 들진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한마디,

"잔소리만 좀 줄여도 단번에 200배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어요."

 

(무심코 부모와 아이 관계 대신 부부 사이 관계를 대입시켜 보았는데 여기에도 큰 무리없이 적용되는 것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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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의 시작 오늘의 젊은 작가 6
서유미 지음 / 민음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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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끝의 시작>을 읽은 것은 내가 반대로 '시작의 끝'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1975년 서울생. 2007년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으로 등단.

서유미란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이 책이 나에게는 처음 읽는 작가의 책이자 가장 근래에 나온 책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30대 남자 영무를 포함해서 등장 인물은 몇 안된다. 영무의 아내 여진, 영무와 한 직장에 근무하는 소정, 소정의 남자 친구 진수, 영무의 홀어머니, 그리고 여진에 미용실에 들리는 남자대학생 석현, 이 정도.

이야기는 암 선고를 받고 살 날이 앞으로 두어달 정도 밖에 남지 않은 영무의 어머니 병실에서 시작한다. 어려서 아버지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홀어머니 밑에서 우울하고 소심하게 자란 영무에 비해 그의 아내 여진은 생기 있고 발랄하던 잡지사 기자 출신. 인터뷰때문에 일로 처음 영무를 만나, 어딘가 자기와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 그에 끌려 여진이 먼저 그에게 다가가 결혼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는 유산되고 서로 다른 성격과 소통의 불가로 둘 사이 벽은 점점 두텁고 단단해질 뿐이고 이것을 견디다 못해 결국 여진은 영무에게 이혼을 제안한다.

우편취급국에서 일하는 영무의 직장 동료는 딱 한명. 대학을 졸업하고 어렵고 어두운 가정 형편에 알바를 전전하던 소정이다. 소정의 남자 친구 진수는 소정에 비해 부유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난 구김없는 남자. 둘 사이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아주 가끔씩만 일어나는 일일까? 이 둘의 사이 역시 금이 가기 시작한다.

소정과 진수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남녀 사이의 시작과 끝, 영무와 여진 부부 관계의 시작과 끝, 영무 어머니의 삶의 시작과 끝. 어디 이 소설 속 인물들에서만 있는 일이랴. 모든 사람 사는 일이 작게는 하루에도 여러 번, 크게는 태어나서 죽는 일까지, 시작과 끝은 되풀이된다. 시작할때 끝을 예상하지 않고, 끝이다 싶을 때 또 다른 시작이 이어지리란 예상을 하기 힘들다. 그래서 한치 앞도 못 보는 인생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이 책의 제목에서 어떤 대단한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평범한 이야기에 제목으로 억지심각성을 부여할 수는 없는거니까.

200여쪽이 채 못되는 가벼운 책. 산뜻한 책 표지가 책 내용보다 오히려 더 기억날지도 모르겠다. 다 읽고나서 내가 더 검색해본 것은 작가가 아니라 표지그림을 그린 화가 남경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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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정원 - 제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혜영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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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산물이라기 보다 노력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없거나 부족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게 단순히 이 소설이 현대가 아닌 한 세대 지난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떠올려보면 알수 있다. 그야말로 한물 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개인사, 가족의 지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문학성으로 보나 참신한 스토리면에서나 어디 한군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되지 않았던가. 그에 반해 이 작품은 제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늦은 나이에 이룬 문학에의 꿈 등의 선전 문구가 한몫하여 읽어보긴 했으나 아쉬움이 크다.

노련한 작가의 작품들의 한가지 공통점은 독자에게 쉽게 그 속내를 들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독자보다는 한 수 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박혜영의 <비밀정원>은 어디에선가 한번씩 다뤄졌음직한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그 점은 노련하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단어 하나도 아무렇게나 쓰지 않고 공들여 뽑아내고 다듬은 흔적은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일관되어 있다. 그래서 아마도 아름답고 고즈넉한 문장과 표현, 어휘에 매혹된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점은 나도 인정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그리 재미있거나 매력적이지 않고 감동이 없었던 것으로 보면 소설은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창작의 결과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할 수 있을까? 더 써낼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비난이 아니라 감히 걱정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문학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창의성이 못따라가는 예가 얼마나 많은가. 기존 작가들 조차도 그 한계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고여있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이런 저런 시도를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의 제목은 과연 작가가 처음 투고했을때부터 있던 제목일까, 아니면 책으로 내면서 출판사에서 제시한 제목일까, 문득 그것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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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4-29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련한작가,에 대한 님의 생각에 밑줄요. 이 작품제목은 작년 혼불문학관에 갔을 때 처음 알았어요. 혼불문학수상작으로 깃발을 날리고 있더라구요.

hnine 2015-04-29 08:39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나왔을때부터 한번 읽어보고 싶다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가 마침내 읽었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해 아쉬웠고, 문학에 대해, 소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어요. 이분 인터뷰 동영상 올라와있는 것 까지 찾아서 보았네요 ^^

비로그인 2015-04-29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언가를 기다리며 있는 시간, 나인님의 이 리뷰를 읽습니다.

`단어하나 함부러 쓰지 않고` 부터 마지막 까지는 반복해서 읽고 따로 즐겨찾기를 해두었습니다. 이런 독자들이 있다는 것. 작가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갈 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


..

저는 저 분의 책을 직접 읽지 않아 무어라 말씀을 더하기가 그렇지만
쓰신 리뷰의 글은 모든 글쓰는 이들에게

죽비소리같아서..

나인님같은 독자가 있기에 만만치 않은 세상이고
세상의, 삶의 이치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한다는 건
바로 이런 힘들 때문이지 않을까

스스로를 돌아보며 갑니다.
고맙습니다..나인님..~~

hnine 2015-04-29 12:09   좋아요 0 | URL
무엇을 기다리고 있으신가요.
이 책은 비록 저에게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아마도 작가는 최선을 다해서 썼을거라는 생각이어요. 읽어보면 알지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을거라는거요. 결과물이 그에 못미친다는 것은 아쉽지만 그렇다고 작가의 노력까지 가볍게 보고 싶지 않아요. 작가는 아마도 이 책을 내고 아주 후련했을거예요 독자가 뭐라고 하든. 그건 책과 별도의 결과물이겠지요?

페크pek0501 2015-04-30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소설은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창작의 결과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노련한 작가의 작품들의 한가지 공통점은 독자에게 쉽게 그 속내를 들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독자보다는 한 수 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

님의 짧은 글에 제가 얻어갈 것이 이렇게 많네요. 고맙습니다. ^^

hnine 2015-04-30 22:24   좋아요 0 | URL
pek님도 이미 다 아시는 사실일텐데 겸손의 말씀을 해주시네요.
소설을 쓰는 것도 그렇고, 인생을 사는 것도 그렇고, 남과 다른 자기의 세계를 구축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자살의 전설
데이비드 밴 지음, 조영학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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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자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자살은 타살이기도 하다. 자신의 목숨을 끊은 결과로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와 핏줄을 나눈 가족의 죽음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또 하나의 죽음을 부르는 결과에서부터, 죽음을 감행하지는 않는다하더라도 살아있는 평생을 알게 모르게 최소한 그 지배 속에 살아가게 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자살은 저자 데이비드 밴의 살아있는 날들을 지배해왔고, 그 혼란과 상처는 결코 순간적이거나 일시적이 아니었기에 "전설"이라는 단어를 썼다. 어떤 일이 전설이 되기까지는 그만큼 축적된 시간이 필요하고 또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 후세의 누군가에겐 여전히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돌려서 쓰고 숨기고 할 것 없이 저자는 이 책의 배경과 내력을 다 내어보인다. 이래서 썼노라고.

책 속에 여섯 편의 작품이 들어있긴 하지만 사실은 모두 하나의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어두운 색조의 우리나라 번역본 표지보다, 마치 산뜻한 어류 도감 표지 같은 원본의 표지가 책을 다 읽고서 보니 더 섬뜻하다.

 

책을 읽고 나서 한가지 의문. 실제와 다르게 저자는 왜 작품 속에서 아버지 대신 아들이 자살하는 것으로 했을까? 아버지의 자살은 그나마 그럴만하다고 주워섬길 이유들이 몇가지 예시되어 있지만 아직 열몇살의 아들에 대해서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들을 내세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가 읽어내지 못한 것들, 읽으면서 놓친 것들이 있는 것일까.

 

집필에 10년, 퇴고하는데 2년이 걸렸다는 이 책을 며칠 만에 다 읽어치우고 이래저래 느낌을 풀어놓는구나. 저자에게는 12년 조차 전부라 할 수 없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결국 세계 12개 문학상을 수상하고 20개 언어로 번역되고, 11개국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받았다는 것이 그 전설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전설"을 다 덮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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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4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5-04-24 19:38   좋아요 0 | URL
이 책 무지 우울해요. 기분이 저조할 때 말고 괜찮을 때 읽으세요.
집필하는데 10년씩 걸린 것은 작가가 완벽하기 위해서라기 보다 자기의 상처를 똑바로 들여다보고 파헤쳐서 다시 작품화 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의미 아닐까해요.
읽은지 좀 시간이 지나서 쓰면 리뷰가 짧아지더라고요 ^^
 
작가수업 천양희 : 첫 물음 작가수업 1
천양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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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천양희 시인의 시를 좋아해서도 아니었다. 그녀의 시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한 편도 없는 것을 보면. 하지만 시인이 시집이 아닌 수필을 냈다는 소식을 들으면 늘 솔깃하다. 더구나 얼마전에 읽은 이재무 시인이 시에서 이용하는 언어의 유희를 설명하면서 이것을 잘 살리는 시인으로 천양희 시인을 예로 드는 것을 보고 망설임없이 이 책을 구입하여 읽게 되었다.

1965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등단하여 이후로 줄곧 더 좋은 시를 쓰고싶어하며, 시 쓰는 일만 생각하며 살아온 시인의 조용하면서도 절실하고, 그렇게 오래 시를 써왔음에도 여전히 시 쓰기에 대한 열망을 사그러뜨리지 않고 더 불태우는 그녀의 글을 읽으며 어느 대목에서 나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의 살리에리를 떠올렸다. 살리에리 자신도 훌륭한 작곡가였지만 천재 아마데우스와 자신을 비교하며 더 완벽한 작곡가가 되고 싶어했던 그의 일생은 음악으로 행복하기보다 불행해보이기까지 했었다.

예술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럴까?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더 완벽한 작품을 갈망하며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우고 싶어하는 것은 예술가들의 숙명일까? 평생을 다른 학문 분야에 매진했던 사람들과 예술에 종사했던 사람들은 좀 다른 것 같다.

오랜 세월 시를 사랑하며 시를 껴안고 살아온 노시인의 글은 그저 편안하고 만족스러움만 느껴질 줄 알았다. 잔잔한 웃음이 그려질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시인의 고통, 눈물, 땀, 외로움이었다.

 

바람이 먼저 능선을 넘었습니다...

누구나 머물다 떠나갑니다

사람들은 자꾸 올라가고 물소리는 자꾸 내려갑니다

내려가는 것이 저렇게 태연합니다...

하늘은 넓으나 공터가 아닙니다

무심코 하늘 한번 올려다봅니다

마음이 또 구름을 잡았다 놓습니다

...

시 <추월산>의 일부이다. 이 시를 쓸때 시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삶의 어떤 한 자락을 짚었던 것일까.

시 때문에 절망하고, 시로 인해 다시 일어서는 시인의 삶. 그렇게 쓰여진 시를 어떻게 가볍게 읽고 지나칠 수 있을까.

 

책 속에 다른 사람들의 말이 지나치게 많이 인용되었다는 것이 이 책에서 내가 느낀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누구는 이렇게 말했고 누구는 또 이렇게 말했고, 하는 식의 문장이 페이지마다 거르지 않고 나온다. 그 중엔 밑줄치고 싶을 정도로 좋은 말도 많았던게 사실이지만 그게 이렇게 거슬릴 정도로 자주 나오지 않고 가끔만 적절하게 인용되었더라면 더 좋을뻔 했다.

'절망은 오랜 습관이고 슬픔엔 규격이 없다' 이것은 신용목 시인의 말이고,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한 생활과 깊은 생각을 하며 사는 것' 이것은 워즈워스의 말,

'운명이란 허무의 끝까지 가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신비의 얼굴. 운명을 만나본 사람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고 부재 속에서 풍요를 본다' 이것은 광장의 작가 최인훈의 말,

'이 세상에서 나에게 남은 유일한 진실은 내가 이따금 울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뮈세의 시 한 구절이라고 한다.

'오늘 해가 저물었다고 길이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 이 문장이 내가 밑줄 그은 문장중 유일하게 저자의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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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끄러미 2015-04-21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는 시집에서 언어의 유희를 흠뻑 느꼈었죠
수필집은 그닥ᆢ
말씀하신 인용도 지나치게 많아서 시인의 목소리 생각을 듣기가 어려웠어요

hnine 2015-04-21 05:44   좋아요 0 | URL
물끄러미님은 시집도 읽으셨군요. 저도 아마 오래 전에 읽었을지도 모르는데 확실히 기억에 없어서 안읽은 셈 치기로 했어요. 저 정도 연륜이 되면 그동안 자기가 걸어온 길에 대해, 그리고 성과나 결과에 대해 담담하게 바라보게 될 줄 알았어요. expect 보다는 accept의 경지가 느껴지는 글이 아닐까 기대를 했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저 개인적인 상상에서 오는 기대였네요. 살아있는 최후의 순간까지, 최고의 작품을 꿈꾸는 것이 시인을 비롯해서 예술가의 특성인가, 예술가가 아닌 보통 사람으로서 생각해보았습니다.

파란놀 2015-04-21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다른 사람 글을 따오더라도, 그저 수수하게 내 목소리를 들려주면
그러한 책이 참으로 포근하면서 사랑스럽더라구요.
다른 사람 목소리는... 그저 다른 사람 책에서 보면 되니까요..

hnine 2015-04-21 18:22   좋아요 0 | URL
다른 사람이 쓰거나 한 좋은 말은 인용해서 널리 알리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내 목소리를 넘어서는 정도로 전달되면 문제겠지요.
더 좋은 시를 쓰고 싶어하는 시인의 마음이 열정을 넘어서 살짝 집착으로 느껴진 건 저만 그런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조금 불편했답니다.

2015-04-22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22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