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병동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8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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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과 병동이 닮았다고 하면 목적이 엄연히 다른데 어째서 닮았다고 하냐고 반문할수도 있을 것이다. 목적은 다르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 사는 방법은 다를바가 없다는 것을 이 소설을 읽으며 더 잘 알게 되었다.

중학교때 겨울방학 숙제로 읽어야 하는 책 중에 솔제니친의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가 있었다. 먼저 읽은 동생이 말하길, "언니, 이 책 한권이 하루동안의 얘기야." 라는 것이다. 숙제이기 때문에 어떻게 끝까지 읽긴 읽었지만 중학생인 내게 그 책은 지루하기만 했고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몰랐다. 

<암병동>은 두번째 읽는 솔제니친의 작품이다.  

암울하기만 한 제목. 이것도 결국 암 병동이라는 특정 공간의 얘기가 아닌, 그 이상의 세상을 빗대어 쓴 작품 아닐까, 내멋대로 추측까지 하며 두권의 두툼한 책을 펼쳐들었다. 

그 옛날 읽었던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보다 훨씬 길지만 더 빨리 읽은 것 같다.

1918년 솔제니친이 태어났을때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을 막 겪고 러시아 제국이 무너진 후 소비에트 정부가 수립되어 가던 혼란한 시기였다. 그의 아버지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인텔리였으나 그가 태어나기 전 사망, 어머니 혼자 그를 키워야했다. 어머니 역시 문학, 예술, 외국어에 한 사람이었지만 혼자 부양해야했던 가족은 내내 궁핍한 생활을 면치 못했다. 솔제니친은 원래 대학에서 물리와 수학을 전공하였으나 전공외에 문학 등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다. 문학공부를 위해 다시 대학에 들어갈 생각도 하였던 솔제니친은 전쟁의 발발로 공부 대신 독일과의 전투에 참가하였고 형무소 생활, 강제노동수용소 생활을 하였으며 수용소 병원에서 악성종양 수술을 받기도 했다.

그의 전작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도 그렇지만 이 소설 <암병동> 역시 자신의 이런 경험들을 모티프로 하여 태어난 작품이다.

사회적으로 어둡고 혼란스런 시절, 암이라는 치명적인 병을 안고 모여든 환자들은 공통적이면서 모두 다르다. 입원하는 날까지도 자기는 암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 병원에서의 치료와 별개로 온갖 정보를 찾아 암을 알고 고쳐보겠다는 사람, 방사선 치료의 폐해를 의사에게 따져묻는 사람, 가망없는 상태라는 걸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목표하는 학업과 진로를 위해 빨리 치료받고 병동을 나가기만을 기다리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한 젊은 환자.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병동에서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을 가지고 각자 자기들의 의견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는 환자들만 등장인물로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암병동을 구성하고 있는 다른 인력, 즉 의사, 간호사, 환자의 가족, 병원의 청소부까지, 암병동 자체가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 중 대장 격의 의사 한사람도 나중에 위암 진단을 받아 의사에서 환자의 신분이 되기도 한다.

작품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인 코스토글로토프가 마침내 병원에서 바깥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이 사는 마을, 백화점, 동물원등을 차례로 방문해보는데, 동물원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동물원에 갇혀 있는 동물들이 종은 달라도 암병동에서의 자기의 모습이었으며, 암병동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 사회에서 제압받으며 살고 있는 민중들의 모습이었다. 

다음은 코스토글로토프가 쳇바퀴 돌리고 있는 다람쥐를 보며 하는 생각이다. 

누가 강제한 것도 아니고 먹이로 유혹하는 것도 아닌데, 다람쥐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저렇게 나무나 높은 가지도 전혀 개의치 않고 쳇바퀴 속에 들어가 돌고 있는 것이다. 헛된 행위와 헛된 운동의 거짓 이념이 다람쥐를 꾀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다람쥐는 분명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살짝 발판에 발을 대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가혹하고 끝없는 놀이인 줄 몰랐을 것이다. (처음에는 몰라서, 그 후 몇천 번째 돌고 있는 지금은 잘 알면서도 여전히)

쳇바퀴의 막대 발판과 완전히 하나가 된 다람쥐는 심장이 터지도록 온 힘을 다해 돌고 있었다. 그러나 수없이 앞발을 내디뎌도 다람쥐는 한 층도 더 높이 올라갈 수 없었다. (346쪽)


과거에, 그리고 현재에 많은 사람이 했었고 또 하고 있을 생각이다. 결국 허무하고 덧없는 삶이며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모르고 있다면 그런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하는. 자기 삶인데 자기가 주체가 될 수 없는 삶. 감옥과 병동의 공통점 아닐까?

암병동에서 퇴원하여 나온 그는 기대했던 환희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고통스러워하며 억지로 삶을 지탱해가는 동물들의 모습만 눈에 보일 뿐. 어떤 동물도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았다.

감옥과 수용소 생활 11년, 이후 망명생활 20년을 하며 살았던 솔제니친. 그가 몸으로 겪어 쓴 소설, 그가 찾아낸 진실의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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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06-29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 작품도 찜하겠습니다.

hnine 2021-06-29 11:51   좋아요 2 | URL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그런 의미에서 저도 다시 한번 읽어보는걸로 해야겠습니다.
<암병동>은 암울한 내용이지만 지루하지 않아요. 워낙 여러 유형의 환자들과 의사들이 나오고, 치료 과정과 방법을 어찌나 구체적이고 상세하고 표현해놓았던지.
두권짜리이지만 읽으시는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거예요.

scott 2021-06-29 1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마어마한 영지를 소유하고 있던 톨스토이 백작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솔제니친
그의 목소리가 담긴 수용소의 모습 그리고 암병동
작가의 기나긴 투쟁의 모습이라서 더욱 절절하게 다가 오네요

hnine 2021-06-29 12:18   좋아요 2 | URL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한데다가 본인이 암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어서인지 어찌나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묘사해놓았던지요. 방사선 폐해에 대한 것, 차가버섯의 효과까지, 성이 이씨인 고려인도 잠깐 나오고요.
스위스로 망명, 미국에서 오랜 칩거 생활 끝에 생의 마지막은 그래도 러시아에 돌아가서 맞았다는군요.

scott 2021-07-07 16: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에이치 나인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추카!
해피 수요일 ^ㅅ^

hnine 2021-07-07 21:5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scott님, 리뷰와 페이퍼 2관왕,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1-07-07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축하합니다

hnine 2021-07-07 21:56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도 리뷰와 페이퍼 둘 다 당선되셨죠.
축하드려요~ ^^

초딩 2021-07-07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달의 당선작 넘넘 축하드려요~

hnine 2021-07-08 04:42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그리고 축하해요 초딩님,
우리 함께 축하 주고 받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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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만 더 뛰면 죽음이라면

정말 그렇다면

달리기는 그 지점부터 시작된다



살아있다는 말 따위는 믿을 수 없어야 한다

더는 달려 나갈 게 없을 때

세상에 오직 나만 없을 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거짓말이 세상에 가득해질 때




- 이승희 시집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 "달리는 저녁" 이라는 시의 일부 -









적지 않은 나이를 먹으며 살아오는 동안

나는 과연 저렇게 힘든 시기를 

피하지 않고 견뎌본 적이

몇번이나 있었나 생각해보았다

있기는 있었는지


한 발만 더 뛰면 죽을 것 같을때

살아있는지 죽어가고 있는지 판단이 서지 않을때

더 이상 앞이 안보일때

아무도 내 편이 없는 것 같을때

다시 시작하라는 말이 거짓말로 들릴때


거짓말인줄 알면서도 다시 시작해야한다고

그때가 달리기를 맘먹어야하는 순간이라고

이 시는 가르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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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게 하고 싶은 말






허리쯤에서 꽃 무더기라도 필 생각인지


새삼 잊었던 기억이 몸이라도 푸는지


녹색의 살들이 늘어질 대로 늘어져서


팽팽해지는 오후


녹색의 말굽들이 총알처럼 날아다니며


횡설수설 나를 잡아당긴다


슬플 겨를도 없이 구석을 살아온 내게


어떤 변명이라도 더 해보라는 듯


여름은 내게 


베고 누을 저승을 찾으라 한다


구름 사이로 모르는 사람들이 환하게 웃는다


누구의 유족인가 싶은데 


문상 차림 치고는 너무 설레는 표정이다


큰 나무 뒤에서 혼자 늙어가는 개복숭아는


제 식구들을 욱욱 게워내고 있다


다 늙은 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무엇을 먹는 건지 게워내는 건지


나는 못 본 채 지나간다


그렇게 몇 개의 골목을 지나면서 생각한다


어디쯤에서 그늘을 오려내고 그 자리에 숨어 이 계절을 지나가야 하는지


오려낸 자리마다 더 깊은 변명이 부글부글 끓어도


함께 썩어가자고 


엎드려 울기나 하자고


이 세상 모든 꽃이 유족처럼 나를 향해 필 때까지


나는 캄캄한 사연을 말하지 않으려는 중이다




- 이 승희 시집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 중에서 시 "여름에게 하고 싶은 말" 전문 -



(※ 줄바꿈은 제가 옮겨 적으며 한 것이고, 원문에는 줄바꿈이 없습니다.)





























작년에 사서 읽다가 다 못 읽은 시집

올 여름에 마저 읽으려고 한다.


'시를 읽는다'라고 쓸때마다 망설여진다.

시를 읽는다는 말 말고 더 적절한 말이 없을까.

시를 품어본다? 마음에 담아본다? 마음을 담궈본다? 물들어 본다? 


이 시집 말고 다른 시집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는 전권 필사를 해본 적도 있는,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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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계란 프라이 바닥에 버렸어?"







"누가 계란 프라이 나무에 매달아놓았어?"






"누가 계란 프라이 훔쳐 먹고 있어?"








마치 계란 프라이처럼 생긴 노각나무 꽃.


피자마자, 시들기도 전에, 그대로 땅에 떨어지는 특이한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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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6-21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계란 프라이같아요!!

hnine 2021-06-21 16:33   좋아요 0 | URL
정말요? 너무 수준 낮다고 웃으시지 않을까 하며 올렸는데, 진짜 계란 프라이 같아 보이거든요.
배 고플땐 더 그렇게 보여요.

페크pek0501 2021-06-21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속았어요. 재밌는 표현!!!

hnine 2021-06-21 16:35   좋아요 0 | URL
즐겁게 속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꽃 참 특이해요. 나무에 꽃 피자마자, 꽃 모양 흐트러지기도 전 온전한채로 그냥 뚝 떨어져서 땅바닥에 저렇게 깔려져버려요.
동백도 바닥에 떨어질때 꽃 전체가 뚝 떨어져버리는것과 비슷하죠.

잠자냥 2021-06-21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정말 계란프라이 잔치네요!

hnine 2021-06-21 16:36   좋아요 1 | URL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이니까 잠자냥님도 한번 실제로 보시면 더 재미있을거예요.
저희 아파트 단지에 있는 나무 찍었거든요.

scott 2021-06-21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백꽃과 비슷한 꽃나무 인건가요?
동백꽃도 지기도 전에 싱싱할떄 뚝 떨어지는데 ㅎㅎ
이런 꽃나무들이 아름드리 피어 있는 풍경 정말 좋아 합니다.

hnine 2021-06-22 04:57   좋아요 0 | URL
동백꽃과 노각나무 둘 다 차나무과예요.
동백꽃 떨어지는 모습과 비슷한것 맞아요.
노각나무꽃은 흰색이라 동백꽃처럼 눈에 확 띄지는 않지만 깨끗하고 청초한 멋이 있어요.
노각나무는 저희 아파트 단지에 있으니 밖에 나가기만 하면 볼수 있지만 동백꽃은 보러 일부러 찾아가야해요. 부산에 가니까 동백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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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몬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5
알랭 푸르니에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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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푸르니에는 1886년 프랑스에서 출생하여, 작가로써의 역량을 막 펼치던 즈음 1차 세계 대전에 동원되어 27세라는 젋은 나이에 전사함으로써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위대한 몬느>는 1913년 그가 죽기 1년 전에 출간된 책으로써 이전에 여기 저기 발표한 짧은 소설 몇편을 제외하면 그가 생전에 집필을 완료하여 책으로 출간된 유일한 소설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전에 다른 출판사, 다른 번역자, 다른 제목으로 출판된 바 있으나 현재 절판된 상태로 알고 있고, 알랭 푸르니에에 관한 저서를 낸바 있는 번역자가 이 책을 새롭게 번역하여 2014년 민음사에서 위대한 몬느라는 제목으로 새로이 출판되었다. 

세 명의 남자아이와 한 여자아이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열 대여섯 살 정도 되는 몬느, 쇠렐, 프란츠 라는 세 아이는 각각 다른 인물이지만 읽다 보면 셋 사이의 관계가 오묘하게 교차되었다가 분리되었다가 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을 알게 된다. 

쇠렐이 다니는 학교에 몬느라는 남자 아이가 전학을 온다. 잘 나서지 않고 몸도 허약한 쇠렐에 비해 큰 키와 다부진 외모의 몬느는 남들이 하지 않는 말과 행동으로 전학 첫날 부터 학교 아이들의 눈길을 끈다. 어느 날 선생님의 심부름을 핑계로 허락없이 학교를 빠져나간 몬느는 숲에서 정체모를 성을 발견하여 들어가보는데 축제 분위기의 그곳에서 몬느는 자기 또래의 프란츠라는 남자아이와 그의 여동생 이본 드 갈레를 만나게 된다. 성에서는 막 프란츠의 결혼식이 거행될 참이었고 몬느는 그 모든 환상적인 분위기에 빠져들지만 프란츠의 신부 될 아가씨가 도망가는 바람에 결혼식은 취소되고 몬느도 성을 뒤로한채 마을로 돌아온다. 

쇠렐은 어딘가 불안해보이고 비밀스러워 보이는 몬느를 따라다니며 그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몬느는 쇠렐에게 그날 성에서 있었던 일, 만났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곳에 다시 한번 가보자고 한다.

이 소설은 이렇게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흘러간다. 

이후 프란츠는 독일로, 몬느는 파리로 떠나고, 쇠렐은 고향에 남아 졸업 후 선생님이 된다. 나중에 시간이 흐른 후 쇠렐이 몬느를 다시 만나는데 몬느는 아직도 어릴때 성에서 계속하지 못했던 신비로운 모험과 만남을 이어가려는데 집착하여, 보헤미안처럼 떠돌아다니며 존재와 거처도 분명하지 않은 프란츠를 찾아나서고 싶어함을 알게 된다. 

쇠렐! 생트아가트에서의 내 이상한 모험이 나한테 뭘 의미했는지 너는 잘 알지. 그건 내가 희망을 품고, 내가 사는 존재 이유였어. 그 희망을 잃어버린 지금 내가 뭣이 될 수 있지......? 모든 사람들과 같은 방법으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모든 게 끝났고, 잃어버린 영지를 찾는 것 또한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파리에서 살아 보려고 안간힘을 썼지. 그런데 한번 낙원에 들어갔었던 사람이 어떻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지? 다른 사람한테는 행복인 것이 나한테는 하찮은 우스갯거리로 보인단 말이야. (247쪽)

위의 인용문은 성인이 된 몬느가 쇠렐에게 털어놓는 넋두리같은 말이다.

이어서 말한다.

지금도 확신하지만, 내가 이름 없는 영지를 발견했을 때 나는 이제는 결코 다시는 접근할 수 없는 높은 차원과 완벽함, 순수함의 경지에 도달했지. 언젠가 너한테 보냈던 편지에도 썼을 거야. 오로지 죽음 속에서만 그 아름다운 시절을 다시 발견할 거야...... (248쪽)

독자는 이쯤에서 감을 잡아야하리라. 몬느와 쇠렐, 프란츠를 통해서 작가가 무엇을 나타내려고 하는지.

몬느가 잃어버린 과거, 어릴 때 꿈, 모험에 집착하는 자아를 나타낸다면, 프란츠는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미래, 아직 현실이 되지 않은 미래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쇠렐은 과거와 미래의 사이에서 둘을 중개하고 관찰하는 입장, 즉 현재의 나이다. 어떻게 보면 몬느와 프란츠와 쇠렐은 각기 다른 인물이 아니라 한 사람 속의 세 가지 다른 자아를 나타낸다고 볼수도 있는 것이다. 

'위대한' 몬느라고 한 것은 쇠렐, 즉 작가의 분신이 아직 과거와 동심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영향을 받고 있음을 고백한 것일까. 몬느가 여전히 찾아헤매는 프란츠, 그리고 몬느가 자기 가정도 뒤로 하고 프란츠를 찾아나서는 것을 이해해주려고 하는 쇠렐은 어쩌면 동심의 낙원에서 벗어나 불안한 미래 속을 향해 나아가는 한때 우리의 자화상이다.


27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다간 작가. 그래서 남긴 작품이 많이 않은 작가이지만 더 오래 살았다면 아마도 평범하지 않은 작품들을 더 남기고 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 속에서 <위대한 몬느>에서 다 말하지 못한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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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6-14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대장 몬느>로 읽었습니다. 만일 헤르만 헤세가 프랑스에서 태어났다면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나는군요.

hnine 2021-06-15 04:41   좋아요 0 | URL
Fasltaff님 이 책도 읽으셨군요. 리뷰 올라와있는게 별로 없더라고요.
아주 독특하고 신비하고 상징적인 작품이었어요. 남긴 작품이 많지 않은데 유일하게 단행본으로 출판된 것이 이런 작품이라는게 다행이고 또 아쉬움이 남았답니다.
저도 읽으면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지와 사랑이 떠올랐는데 프르니에는 헤르만 헤세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자기의 얘기를 하고 있더군요. 생각해보니 누구나 성장기에 몬느 같은 존재를 주위에서 발견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시기, 마냥 그것을 쫓아가고만 싶은 시기요.
아무튼 저는 기억에 남을만한 작품이었습니다.

페크pek0501 2021-06-21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책을 알아갑니다.

hnine 2021-06-21 16:37   좋아요 0 | URL
저도 전혀 기초지식 없는 상태에서, 그래서 더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겼던 책이랍니다. 요즘은 그렇게 책의 문을 두드리는 것도 그나름대로 흥미가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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