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사왔어요."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들이 다녀왔다는 인사와 함께 들어보이는 손에 웬 검은 봉다리가 들려 있다.

"그게 뭐니?"

"도넛이요. 집 앞에서 팔아요."

식탁 위에 펼쳐놓더니 나보고도 먹으라면서 벌써 한개 집어 먹고 있다.

볼 빨개져서 옷도 벗기 전에 도넛을 먹고 있는 아들을 보느라고 나는 먹는 것도 잊는다.

순간 마음이 따뜻, 물컹 해진다.

 

뭐든 닥쳐서 준비하는 성격때문에 요즘 며칠째 계속 잠을 제대로 못자고 있는 녀석이다.

키는 물론 나랑 비교가 안되고 몸무게도 이제 거의 나의 두배에 육박하는 덩치지만,

엄마란 사람은, 자식이 잘 못먹는걸 봐도, 잘 먹는 걸 봐도 때론 뭉클할때 있는 존재. 저 녀석이 허기졌었나 싶어서.

아마 그 마음을 그때 그때 다 표현하면 애가 부담가서 못견딜거다.

그냥 혼자 따뜻, 물컹 하고 마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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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2-13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죄송하지만 도넛 같지는 않네요.
미리 밝히시니까 도넛인가 보다 하는 거지.
그래도 질감은 따뜻한 느낌이어요.

아드님이 많이 크지 않았나요? 고등학생쯤 되지 않았나요?
저는 조카들을 일년에 두번쯤 만나는데 만나면 꼭 물어보죠.
몇살이냐고. 이렇게 물으면 나도 나이 먹었다는 증거구나 싶습니다.
저도 물컹해지는 마음입니다.^^

hnine 2019-02-13 1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 도넛이 아니라돌멩이 같지 않나요?
제가 봐도 그래요.
제 아들 올해 열 아홉 살이요. 다 컸죠.
매일 늦게야 집에 들어오는데 저는 기다리다 먼저 잠들때가 많아요.

stella.K 2019-02-13 16:02   좋아요 0 | URL
돌멩이 보단 감자요.ㅎㅎ
근데 아드님 정말 다 컸네요.^^

카알벨루치 2019-02-13 18:58   좋아요 1 | URL
감자에 한 표!

hnine 2019-02-13 22:24   좋아요 1 | URL
네, 지금 보니 감자에 더 가깝군요 ㅋㅋ
막상 감자를 그리려고 한다면 또 감자 아닌 이상한 모양으로 그려놓겠죠.
저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이랍니다~ ㅋㅋ

카알벨루치 2019-02-13 23:55   좋아요 0 | URL
감자 삶아 먹죠 삶은 감자 같아요 ㅎ

하늘바람 2019-02-13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일기를 이렇게 이쁘게
넘 부럽사와요
어떻게 그리신거예요?

hnine 2019-02-13 17:43   좋아요 1 | URL
어떻게 그렸냐면, 아무 생각 없이 그렸어요. 애들처럼 ^^

하늘바람 2019-02-13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하늘바람 2019-02-13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으세요

목나무 2019-02-13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딱 저렇게 생긴 도넛 먹었어요. ㅎㅎ
의뢰인이 사다준 맛보다 정성이 더 와닿던 그런 도넛이어서 저도 오늘 뭉클 물컹했네요. ^^

hnine 2019-02-13 22:27   좋아요 1 | URL
맛보다 정성을 더 가깝게 느낄 줄 아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설해목님처럼 ^^
도넛이 여러 사람 맘을 움직이네요.

페크pek0501 2019-02-14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자를 그린 줄 알았다는... 하하~~ 뭐 그래도 실력이 좋아 보이십니다.
그릴수록 늘어날 꼬예요.

hnine 2019-02-15 04:35   좋아요 1 | URL
재미로 그려요. 잘 그리지도 못하고 잘 그리려고 하지도 않고 그냥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이 되어보는 재미로요.
책을 읽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인 것 같아요 뭐라고 표현은 못하겠지만요.
앞으로 또 어떤 엉뚱한 그림 올리더라도 웃으며 봐주세요~ ^^
 

 

최근에 본 영화 두편입니다.

 

 

 

1. RUDY (1993)

 

 

 

우리 나라 제목으로는 '루디 이야기'라고 되어 있는, 1993년 꽤 오래된 영화입니다.

두번이나 봤다면서 저에게도 추천하는 남편때문에 보게 되었어요.

딱 보니 포스터에 럭비 선수들이 나오기에 이거 럭비 경기에 대해 좀 알아야 이해되는 영화 아니냐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몰라도 보는데 전혀 문제 안된다네요. 아들이 그렇게 오래 럭비를 해왔는데 럭비에 대해 거의 아는게 없는, 스포츠꽝 엄마입니다.

집에서도 밀어주지 않고 (12명의 형제들), 학교에서도 받아주지 않고 (형편없는 성적), 노틀 담 대학의 럭비 선수가 되고 싶은 루디의 꿈은 루디 혼자 키워나갈 뿐입니다. 하지만 그 꿈을 향해 나가는 문은 매번 좌절만 안겨줄 뿐.

제철공장에 취직하여 일하면서도 노틀 담 대학의 럭비 선수로 뛰고 싶다는 꿈은 변함이 없는데 그나마 루디의 꿈을 믿어주고 노틀 담 대학의 유니폼 점퍼를 생일 선물로 사주기도 했던 친구 에디가 사고로 죽는 사건이 일어나자 루디는 꿈이 이루어질때를 기다리고 있지만 말고 직접 나서서 내 삶을 개척해나가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러려면 우선 대학엘 들어가야 하고 돈을 마련해야하는데, 보는 사람이 정말 한숨 나올 정도로 뭐 하나 계획대로 되는게 없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라고 믿는, 그렇게 믿고 이루고 싶은 인생 목표가 있으신 모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영화 어땠냐고 묻는 남편에게 대답했습니다.

"감동의 물결이네. 매우 교육적이고, 긍정적인, 미국 영화. 꿈은 이루어진다. 아자!"

제 대답에서 약간 삐딱한 기운을 느꼈는지 남편이 말합니다.

"얼마나 감동적이야.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해내는 모습이 감동적이잖아."

 

 

영화 전편에 흐르던 OST가 좋아서 youtube에서 찾아 듣고 있는 중입니다.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말할 때, 그들에게 RUDY에 대해 얘기하라."

  - 포스터에 이렇게 써있네요.-

 

 

 

 

 

 

 

 

 

 

2. 극한직업 (2019)

 

 

 

 

재미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상영관에선 이 영화 외엔 다른 영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한 영화에 이렇게 몰아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천삼백만 관객 달성에는 영화의 재미 더하기 대기업 제작 영화의 특권이 작용했을거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어쨌든 영화는 재미있어서 길게 불평 안하게 되네요.

킬링타임용 영화라는 것이 꼭 부정적 영화평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킬링타임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요.

 

이병헌 감독은 각본, 각색으로 영화계 일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동안 관련된 영화들을 보니 본 영화도 꽤 되네요.

이하늬가 배우로 나오는 영화는 처음 보는데 배우로서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류승룡은 물론, 공명, 진선규 등 배우들의 연기가 삐긋함없이 잘 어울린 것 같습니다.

 

 

 

 

 

3.  알리타 -배틀 엔젤

 

이것은 볼지 안볼지 아직 결정을 못한 영화입니다.

저는 이런 영화를 좀 지루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영화를 아주 재미있어 하는 남편이 보자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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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을, 흉내내보았다.

 

1483년경 그렸다고 추정되는 여인의 머리 스케치.

이탈리아 토리노 왕립 도서관 소장.

 

<암굴의 성모>에 나오는 천사 우리엘의 밑그림 습작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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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1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9-02-11 13:30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예요.
기쁘고 좋은 얘기 많이 들려주세요.

2019-02-11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02-11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패드로 하면 누구나 이 정도는 그리나요?
아니면 h님처럼 어느 정도 감각이 있어야 하는 건가요?
암튼 부럽습니다.ㅠ

hnine 2019-02-11 15:00   좋아요 0 | URL
아이패드가 곰손 만나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는 중이지요.
용도가 무궁무진한데 못 따라가고 있어요 ㅠㅠ
 
눈으로 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 번뜩이는 지성과 반짝이는 감성으로 나를 포장하자 눈으로 보는 시리즈
이케가미 히데히로 지음, 박유미 옮김 / 인서트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오늘 아침 팟캐스트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것을 들었다. 너무 익숙해서 새로울 것이 있겠나 싶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새로울 것이 없다면 이렇게 그에 대해 계속 누군가 책을 쓰고 읽고 하겠는가. 1452년에서 1519년까지 살았으니 올해는 그가 세상을 떠난지 500년이 되는 해. 도서관에 간김에 그에 대한 책을 한권 빌려왔다. <눈으로 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눈으로 보는'이라는 제목은 원제에는 없다. 이 책의 저자 이케가미 히데히로는 서양 미술사, 문화사를 전공한 사람으로 이미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관한 책들을 몇권 출판한 경력이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이름 중 '다 빈치'는 아버지부터 물려 받은 성이 아니라 그가 빈치 마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붙여졌다. 사생아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성을 따를 수 없었고 정식 교육도 받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엄마와 결혼하지 않고 그녀를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하였고, 대신 레오나르도는 할아버지와 숙부의 손에서 자라야했다. 그가 받은 최초의 교육은 아버지의 지인인 예술가 베로키오의 공방에 입문하게 된 것인데 그때 그의 나이 열 세살 무렵이었다. 그 당시 공방에서는 회화, 조각, 건축, 금속공예 등 온갖 종류의 작업을 처리했다고 한다. 이것은 르네상스 시대라는 시대적 환경과 함께 장래 레오나르도가 다방면에 두각을 나타내는 기초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1400년대 사람인 그가 죽은지 500년이 되도록 계속 그의 특별전이 열리고 새로운 책이 출판되고 새로운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워낙 그가 여러 분야에서 만능인이기도 했고, 작품에 대한 의혹이 지금까지 끊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많은 회화 작품들이 레오나르도 혼자의 작품이라기 보다는 제자, 또는 동료와 합작인 것들이 많고, 남아있는 회화 작품들 중 어느 것은 레오나르도 작품이라고 알려져있다가 다른 사람의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기 때문에 작품의 진위, 진품 여부에 대한 조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 <모나리자>의 경우 그와 비슷한 그림들이 여럿 남아 있으며 그중엔 작가가 확실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으며 그가 그리지 않은 그림일지라도 작품 수준이 매우 높은 것들이어서 세밀한 감정이 요구되고 있다. 레오나르도 화법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두가지로 스푸마토 기법공기 원근법을 들 수 있다. 스푸마토 기법은 물체의 윤곽선을 명확하게 하지 않고 손이나 천으로 문질러서 안개에 싸인 것처럼 사라지게 하는 기법이며, 공기 원근법은 가까운 것은 크게, 멀리 있는 것은 작게 그리는데서 나아가 물체가 멀어질수록 푸르고 희미하게, 가까울수록 붉게 그리는 원근법을 말한다.

새를 관찰하다가 비행을 연구하게 되었고, 물의 흐름을 연구하다가 물의 순환에 관한 실험을 하기도 했다. 30구 이상의 시체를 해부하여 해부도를 그렸는데 교회의 반대로 중단해야했다. 레오나르도가 그린 여인은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이상적인 어머니상을 투영하는 쪽에 가까왔는데 어릴 때 생모와 떨어져 지냈던 경험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점은 후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레오나르도가 동성애자였다는 소문 또한 끊이지 않고 있는데, 그렇게 보는 근거 중 하나는 그가 그린 세례 요한의 그림들의 중성적인 특징으로서 그가 완전체로서의 양성구유 (兩性具有) 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태생이 그가 나중에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한 이유는 라이벌 (미켈란젤로) 과의 관계, 후원자에 대한 실망, 프랑스 왕의 초청 등이 원인이 되어 64세 되던 해에 프랑스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죽기 전 그는 대부분의 작품은 제자 살라이에게, 원고는 다른 제자 멜치에게 남겼다. 레오나르도의 참모습을 찾기 위해선 제자들의 특징을 구분해서 정의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한다.

죽은지 500년이 지난 지금도 레오나르도에 대한 관심은 죽지 않고 있다. 2010년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그의 작품 <아름다운 공주>는 1억 파운드 (약 1,700억원)로 평가되었다. 불과 몇년 전 이 그림이 다른 사람의 작품으로 잘못 감정되었을때 낙찰가는 1,960만원 정도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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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5 - 4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5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5권까지 왔다. 이제 토지는 주요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기 보다 인물들을 번갈아 등장시키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느낌이다. 1권부터 등장한 인물들을 다 합치면 적은 수가 아니라서 그들을 한번씩 등장시키며 근황을 펼쳐도 이야기 거리로 충분하다.

15권의 배경은 주로 간도. 간도란 지형적으로 백두산 북쪽의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인데 지금은 이 이름이 사용되지 않고 있고 연변, 길림성 등이 예전의 간도 땅을 대신해 쓰이고 있지 않나 싶다. 간도의 북쪽 위로는 만주 땅이 있다.

지형에 대한 것은 그렇고, 조선과 관련된 간도의 역사적인 내력에 대해 토지에서 언급하고 있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한말 (韓末), 일본이 조선을 먹어 들어올 무렵, 의병 봉기에 이어 오늘 현재까지 (토지 15권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1930년대를 말한다) 가히 민족의 대이동이라 할 만한, 수많은 조선인들이 고향을 버리고 남부여대, 이주해갔고 항쟁의 터전으로 부상된 곳, 조선 민족에게는 서사시적 무대이며 아득한 옛적부터 민족의 혈흔이 점철된 그곳 간도의 땅을 중국에게 결정적으로 넘겨준 것은 일본이었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두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등박문을 사살했던 그해, 1909년 청일 간간도협약을 맺음으로써 그 땅은 청국으로 넘어갔다. 말하자면 일본은 두 걸음 전진하기 위하여 한 걸음 후퇴한 것이다. (165쪽)

 

간도 내에 거주하는 유민중 조선인이 십만이요 청인이 삼만, 십 대 삼이었지만 그간 대국의 세를 믿고 청인의 핍박을 조선 백성은 겪어야 했고 그 고초는 오죽했겠는가. (1885년 무렵 상황, 168쪽)

 

간도협약 이후의 간도 사정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말하여 간도의 백만을 헤아린다는 조선인은 중국와 일본 사이의 쿠션 같은 존재였다. 중국은 조선인을 때림으로써 일본을 때리는 효과를 얻으려 했고 일본은 조선인을 방패 삼아 밀고 나간다 할 수 있었으니까. 조선인의 대부분이 소작농과 고용의 입장에서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데, 착취는 중국이, 탄압은 일본이,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간도 주민 자체가 완강한 저항세력이었기 때문에 일본의 경찰권은 강화되고 일본 경찰권의 강화에 불안을 느끼는 중국은 조선 독립운동을 지지하려 들었고 일본이 중국침략을 계획하는 만큼 조선인을 앞세워 토지매수를 공작하고 중국은 또 불안하여...조선인은 이중의 탄압에 신음해야 했다. (169-170쪽)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 낀 조선의 상황이 그려지면서, 이중 탄압에 신음하면서도 왜 간도가 독립운동의 한 거점이 되어야 했는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시대적 배경이 그러한지라 토지 15권에는 소설인지 역사서인지 모를만큼 시대 상황에 대한 설명이 자주, 많이 나온다. 그것이 일방적인 설명의 형태이든, 대화의 형태이든, 좀 딱딱하고 읽는 재미가 덜하긴 매한가지였지만 한번은 알고 넘어야 할 부분이라서 꾹 참고 읽었다.

다음은 이 시대 문학을 비롯한 예술의 경향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다. 남천택이라는 사람과 아예 이름도 김 모 라고만 되어 있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 형식을 하고 있다.

"복고주의든 신파든, 낭만주의일 때 뭔가 근사하고 진짜처럼 보이긴 하지. 지금 국내에서 뭐 한다 할 만한 사람들, 바이런이 아니면 하이네다." (206쪽)

이 당시 유행하던 낭만주의의 실체를 요약하고 있는데 '선봉장은 기독교요 동경 유학생, 후원자는 일본'이라면서, 낭만주의는 애국주의도 되고 감상으로도 변신하며 선동적으로 하부에까지 침투하는 장점을 갖고 있어서, 아주 대중적이기도 하지만 그건 착각이라고 단파한다. 

 

검 (劒)과 우애를 각각 한 손에 쥔 그들 (일본)의 역사, 그것을 환상화하고 교묘히 합리적으로 써먹는 낭만인지 감상인지 알쏭달쏭한 그것, 밟을 땅도 없는 만주벌판 설한풍을 가는 망국인, 임금노예가 된 일본 땅의 우리 조선인 노동자들, 한 (恨)이 있을 뿐이야. 오직 불변한 것이 있다면 내가 살아 있다는 자각과 죽을 것이란 그것 뿐이지. (206-207쪽)

 

페이지를 넘겨 되돌아가서 다시 한번 읽고 넘어가야 했던, 뼈있는 대화이다. 우리 나라에 낭만주의 사조가 들어와서 이용되는 과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되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친일귀족 조병모의 장남, 조강지처를 버리고 임명희와 결혼했으나 동생 찬하와 명희와의 관계를 의심하고 질투해오던 끝에 명희와도 헤어진 조용하. 그가 최후를 맞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인간형으로 그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작가는 그도 역시 한 인간이었다는 연민의 눈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시대 친일지식인의 한 비애를 조용하를 통해 그리는 듯 한.

 

이 권에서 계속 연급되는 두가지 사건이 1931년 만보산 사건과 1932년 홍구공원 사건 (윤봉길) 인데, 만보산 사건은 일본의 침략에 더해진 중국국내 사정, 만주군벌의 복잡한 내용, 조선 독립권의 활동이 배경이 되어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 들 중 하나였다. 조선은 이렇게 늘 중국와 일본의 세력 다툼에 끼인 나라였다. 뒤이어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상황이고 여기에 러시아, 서양 세력까지 얽히고 들어가니 복잡하지 않을 수 없다.

 

15권까지 왔으니 이제 다섯권이 더 남아있다. 20권까지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다 읽는다면 그 순간 느낌은 아마도 책을 다 읽었다는 느낌보다는 한동안 살던 동네를 떠나는 느낌이 들것 같다. 재미있는 부분도 있고, 지루한 부분도 있고,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런 것도 닮지 않았는가 우리 사는 일이랑.

 

15권은 이중 읽기 쉽지 않았던 권 중에 속한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소설보다 역사서 같은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인실이 꿋꿋하게 일어서는 모습도, 길상이 봉순과 이상현 사이의 딸 양현을 이부사댁에 처음 데리고 가서 인사시키는 대목도, 마지막 부분에 일본인 중에 이런 인물들이 과연 있었을까 싶게 코스모폴리탄적 시국관을 보여주는 일본인들 모습도, 부록처럼 읽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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