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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복의 길 - 제2차 세계대전 종식을 향한 카운트다운
에번 토머스 지음, 조행복 옮김 / 까치 / 2024년 8월
평점 :
1945년 여름, 인류의 운명을 쥔 세 남자가 겪은 내면의 치열한 전쟁을 생생하게 그려낸 <항복의 길>. 미국 전쟁부 장관 헨리 스팀슨, 태평양 전략폭격 사령관 칼 스파츠, 그리고 일본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라는 세 인물을 중심으로, 그들이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 추적합니다.
전미 잡지상을 수상한 기자, 특파원, 편집자인 에번 토머스 저자는 특유의 현장감 넘치는 스토리텔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이끈 실세들은 과연 누구였는지, 그들의 고뇌와 선택이 어떻게 역사를 바꾸었는지 일기와 편지 등 자료를 바탕으로 생생하게 펼쳐보입니다.
1. 헨리 스팀슨, ‘악마의 무기’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사람
미국 전쟁부 장관 헨리 스팀슨은 핵폭탄이라는 악마의 무기를 사용할지 말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스팀슨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압도적인 힘을 사용할지, 아니면 인도주의적 원칙을 지킬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스팀슨이 ‘옥스퍼드 도덕주의자’로 불렸다는 점은, 그의 결정이 단순한 군사적 전략이 아닌 도덕적 딜레마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그의 결단이 전쟁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두 개의 폭탄이 떨어진 후에도, 일본 강경파는 항복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핵폭탄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했던 겁니다.
미국은 세 번째 폭탄 투하를 고려합니다. 전쟁의 마지막 순간까지 치열한 내면의 전투를 벌인 스팀슨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2. 칼 스파츠, 침묵 속에서 실행된 명령
태평양 전략폭격 사령관 칼 스파츠는 스팀슨이 서명한 핵폭탄 투하 명령서를 받고, 그 명령을 실제로 수행한 군인입니다.
그는 서면 명령서를 요구했는데, 이 단호한 태도 덕분에 역사의 기록에 명령서가 남게 되었습니다. 만약 구두 명령만으로 핵폭탄을 투하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스파츠는 무거운 책임감 속에서 이 임무를 수행했고, 이후에도 양심의 가책을 평생 짊어졌습니다. 핵폭탄 투하라는 결정이 단지 군인으로서의 임무 수행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도덕적 갈등이기도 했으니까요.
3. 도고 시게노리, 일본의 운명을 바꾼 단 한 사람
마지막으로 일본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가 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항복이라는 단어는 금기였습니다. 하지만 도고는 핵폭탄 위력을 목격한 후, 전쟁을 계속하기에는 너무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일본 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항복을 주장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부계 조상이 조선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도고가 일본 사회에서 얼마나 이방인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도고는 군부의 반대 속에서도 일본 천황을 설득해 항복을 이끌어냅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목숨을 걸어야 했지만, 그 결단은 일본의 미래를 바꾸었습니다. 도고 시게노리는 이 책에서 ‘일본을 구한 사람’으로 재조명됩니다. 인간의 결단이 가져올 수 있는 힘을 보여줍니다.
<항복의 길>에서 다루어진 인물들의 개인적 배경과 동기에 대한 탐구는 그들의 결정에 대한 이해를 높입니다. 당시 인물들과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생생한 스토리텔링도 한몫합니다.
전쟁 중 결정을 내렸던 인물들이 단순한 영웅이나 악당이 아니라, 복잡한 인간적 고뇌 속에서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라는 점을 엿볼 수 있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두 개의 폭탄이 전쟁을 끝냈다는 심플한 서사 뒤에는 복잡한 논쟁이 존재합니다. 이후 핵폭탄 투하의 윤리적 정당성에 대해 끊임없이 제기되었습니다.
당시 독일의 패망 후에도 일본은 요지부동이었고, 전쟁을 끝낼 방법은 많은 미국인을 희생하며 일본을 침공할 것인지, 해상 봉쇄로 일본 국민을 굶기면서 폭격을 계속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핵폭탄 투하할 것인지였다고 합니다.
스팀슨과 트루먼 정부는 핵폭탄 투하가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일부 역사가들은 핵폭탄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해도 전쟁을 끝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처음 표적위원회가 선정한 표적은 문화 중심지 교토였지만, 스팀슨은 군사적 피해만을 원했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폭탄을 떨어뜨려 일본 지도부에 그 위력을 보여주는 방식도 제안되었으나 최종적으로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핵폭탄의 위력을 목격했음에도 항복에 대한 의지는 없었다고 합니다. 군부 쿠테타 직전까지 갔던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워싱턴의 결정권자들은 세 번째 핵폭탄을 고려하게 됩니다.
1945년 당시의 국제 정세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일은 냉전의 시작을 예고하는 중요한 역사적 맥락이자 전쟁의 끝이 단순한 승리로만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국제정치의 복잡성과 전후 세계 질서의 형성에 대한 정치사를 이해하는데도 도움되는 내용이 가득합니다.
저자는 <항복의 길>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합니다. 핵폭탄을 사용하기로 결정하면서 불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몇 기의 핵폭탄을 투하하기로 결정했는가?
전쟁사나 역사적 사건에 관심이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윤리적 딜레마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흥미를 느낄 만한 깊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전쟁의 마지막 순간, 인간의 결단이 어떻게 역사를 바꾸었는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함께 역사적 맥락과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 상태를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됩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