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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인간이 발 디딜 수 있는 가장 먼 곳에 이른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고 느끼게 될까요? 전미도서상 수상 작가이자 자연 묘사의 대가 배리 로페즈가 생애 마지막으로 발표한 작품 <호라이즌>은 이 질문에 대한 응답입니다.
북극과 남극, 태평양과 아프리카, 호주와 갈라파고스 등 인류가 닿을 수 있는 지구의 끝자락을 누비며 기록한 그의 방대한 여행기입니다. 단순한 탐험이 아닌 인간과 지구를 연결하는 교향곡처럼 펼쳐집니다.
배리 로페즈(Barry Lopez, 1945~2020)는 미국을 대표하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깊이 탐구한 작가이자 환경운동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 환경윤리 그리고 장소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대표작 <북극을 꿈꾸다(Arctic Dreams)>로 1986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했으며, 북극 생태계와 그곳 사람들, 동물들의 삶을 놀랍도록 섬세하게 기록한 책으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다른 저서인 Of Wolves and Men 역시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자연문학 분야에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평생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헌신했던 배리 로페즈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수많은 생태계와 문화권을 경험했으며, 이러한 경험은 그만의 독특한 문체로 남게 됩니다. 단순히 풍경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자연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와 책임을 성찰하는 메시지를 전하며 환경문학의 선구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호라이즌>에서는 각 대륙의 극단적 환경과 경이로운 자연 풍광을 배경으로, 인류의 역사를 담은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인류학, 지질학, 생물학, 정치학, 윤리학, 과학 등 다양한 학문적 영역을 아우르며 인간과 지구의 복잡한 관계를 심도 있게 탐구하며 우리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그려냅니다.
선사시대 북극권 개척자들부터 식민주의자들, 그리고 계몽주의 시대 태평양을 항해한 탐험가들까지, 장소와 시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류의 오랜 여정을 탐색합니다. 인간의 호기심, 탐욕, 그리고 희망이 얽힌 복잡한 역사를 생생히 체험할 수 있습니다.
<호라이즌>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닙니다. 배리 로페즈는 지구의 숨겨진 푯말들과 자연의 조각들을 수집하며,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묻습니다. 북극의 얼음잔해부터 남극의 빙하, 아프리카의 사막 그리고 태평양의 외딴 섬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머물렀던 모든 공간을 탐구하며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할까?”
“인간은 왜 끊임없이 경계를 넘어가고자 하는가?”
책은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며, 각 장은 특정 장소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시간이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배리 로페즈는 특정 연대나 연속성을 부여하기보다는 장소의 본질 그리고 그것이 인간에게 가지는 의미를 제시합니다. 자연의 장엄함을 묘사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인간이 그 안에서 어떤 흔적을 남기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철저히 반추하게 만듭니다.
북극권의 잔해를 탐사하면서 배리 로페즈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용감하게 이 지역에 정착했던 흔적을 이야기합니다. 반면, 아프리카에서는 식민주의의 잔혹한 발자취를 살피며 인간의 탐욕이 낳은 결과를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호라이즌>은 탐험의 영웅 서사를 넘어, 인간의 모순과 위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합니다.
배리 로페즈는 자연 묘사에서 압도적인 필력을 자랑합니다. 남극의 얼음 대륙을 '생명 없는 아름다움'이라 부르며, 그곳의 바람과 빛을 생생히 재현합니다. 그의 문장은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 풍경 속에 숨겨진 생명력과 함께, 그곳에서 일어난 인간의 발자취를 보게 됩니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남극 고원을 묘사하며 '이 땅은 인간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는 것 같지만, 동시에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를 품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자연의 장엄함과 인간의 흔적을 동시에 응시하며,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위치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통찰하도록 합니다.
배리 로페즈는 인류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관찰자입니다. 북극의 선주민 사회를 묘사할 때 그들의 생활 방식을 단순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왜 이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분석합니다. 또한 갈라파고스에서 만난 독특한 생태계를 이야기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 가능성을 고민합니다.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태평양을 항해했던 유럽 탐험가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대목입니다. 그는 이들이 미지의 세계를 발견한 영웅이 아니라, 그곳의 생태계를 교란하고 원주민 사회를 파괴한 인물임을 지적합니다. 탐험의 의미를 재정의하게 합니다.
탐험은 단순히 발견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과정이라는 것을 짚어줍니다. 인간은 언제나 미지의 세계를 동경했지만, 그 과정에서 무엇을 희생했는지를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 질문은 <호라이즌>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로페즈는 인류가 자연을 파괴하고, 기후 위기를 초래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약한 존재들을 희생시켜왔음을 지적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절망 대신 희망을 선택합니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으며,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습니다. 단순한 낙관이 아닙니다. 배리 로페즈는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변화가 가능하다며 개인의 역할을 일깨웁니다.
단순한 여행 이야기를 기대한 독자라면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책입니다. 하지만 여행의 철학적 의미를 탐구하고 싶은 이들, 기후 위기와 자연 보존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싶은 이들, 장소와 시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인문학적 사유를 즐기고 싶은 이들이라면 소장해서 천천히 읽기를 추천합니다.
배리 로페즈의 마지막 역작 <호라이즌>. 여행이 당신을 변화시킨다면, 그 끝에서 얻는 질문은 무엇일까에 대해 잘 보여주는 탐험가의 기록을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