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진리
낸시 피어시 지음, 홍병룡 옮김 / 복있는사람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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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속담은 ‘소문난 책에 읽을거리가 많다.’는 경구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2005년 미국 복음주의 출판협의회(ECPA) 기독교와 사회 부문 금메달 도서 상(Gold Medallion Book Award) 수상과 Christianity Today지 기독교와 문화 부문 공로상(Awards of Merit) 수상작답게 탁월한 책이다.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통치를 위임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복을 주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셨다. 사회적 세계를 개발하라는 명령이다. 인간은 가정을 꾸미고 교회를 세우고 직장을 다닌다. 하나님은 땅을 정복하라고도 말씀하셨다. 자연적 세계를 개발하라는 명령이다. 인간은 청계천도 복원하고 대운하도 건설한다. 이것을 문화 명령(cultural mandate)이라고 한다. 인간은 문화를 창조하고 문명을 건설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인간의 직업은 밥벌이를 위한 천박한 수단이 아니라 창조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거룩한 소명이다. 그러나 죄가 창조명령을 훼손하였다. 죄는 인간의 본성을 오염시켰지만 인간은 희미하게나마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고 있다. 죄는 인간의 소명을 힘겹게 만들었지만 인간은 수고를 통하여 문화명령을 수행하고 있다. 구원은 죄로 인해 훼손된 창조명령을 회복하는 것이다. 구원은 인간의 영혼만이 아니라 지성과 감정과 의지 등 인격 전체를 구속하는 것이다. 우리의 소명은 하늘나라로 가는 것만이 아니라 땅을 경작하는 것이기도 하며 우리의 소명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땅은 우리의 본향이 아니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봐야 한다. 우리가 이 땅에서 문화명령을 수행하는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이 땅과 새 하늘과 새 땅은 연속성을 지닌다. 우리의 여정은 계속된다.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잠1:7,9:10,15:33)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와 지식의 모는 보화가 들어있다(골2:3)고 말씀한다. 성경은 인간과 우주에 관한 궁극적 답변이다. 기독교는 종교적 진리가 아니라 총체적 진리이다.(프란시스 쉐퍼) 이것이 기독교 세계관이다. 그러나 죄가 창조명령을 훼손하였듯이 이원론이 기독교 세계관을 훼손하고 있다. 이원론 자들은 성(聖, sacred)과 속(俗, secular)을 분리하여 성경의 진리를 기독교의 진리로 축소시키려 한다. 진보적인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이원론의 홍위대다. 그들은 교회가 사회에 대한 책임을 망각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대선에 개입하는 목사들을 불량한 목사로 매도하고 있다. 나는 목사들이 태안 앞바다에 가서 방제 작업을 하는 것도 그리고 선호하는 후보를 지지하는 것도 사회적 책임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원론과 전면전을 선포한다. 손자(孫子) 모공편(謀攻篇)에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이원론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친다. 그리고 저자는 기독교 세계관을 확실히 정립해 준다. 저자는 세상의 언어를 이기기 위해 믿음의 언어로 무장시켜 준다. 이제 적용할 일만 남았다. 저자는 적용방법도 알려준다. 이 책을 통해 당신의 현장에서 이원론과 싸워 승리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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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력에 따른 예배와 설교
로버트 E.웨버 지음, 이승진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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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웨버 박사는 세계적인 예배학자다. 그는 ‘고대-미래 시리즈’를 통해 성경과 고대의 신앙 전통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과 지역 교회들이 현재와 미래에 어떻게 살고, 어떻게 신앙생활하고, 어떻게 예배하고, 어떻게 사역하고, 어떻게 영적인 삶을 추구할 것인지를 다루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교회력을 통해 어떻게 영적인 삶을 추구할 것인지를 안내하고 있다. 그는 교회력은 가톨릭의 전통이기 이전에 이미 초대교회로부터 시작된 전통이기 때문에 우리가 거부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고대-미래 시리즈는 교회 일치를 향한 노력을 지지하기 때문에 특정 교파의 색깔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언급한다. 그는 고대의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현재와 미래를 위한 탁월한 지혜를 발견하였다.

그가 발견한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에 있었다. 그는 강림절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시기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야를 기다렸듯이 우리는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기다려야 한다./ 그는 성탄절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빛을 비추었듯이 우리는 어둠을 밝히기 위해 거듭나야 한다./ 그는 주현절은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유대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해 오셨다. 우리는 세상에 복음을 증거 해야 한다./ 그는 사순절은 회개의 갱신의 시기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가 새로운 생명을 얻기 위해 죽으셨듯이 우리도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는 성삼일은 죄에 대하여 죽는 시기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셨듯이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아야 한다./ 그는 부활절은 부활한 생명을 표현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와 연합하기 원한다. 우리도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한다./ 성경강림절과 그 이후는 말씀을 배우고 복음을 전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셨듯이 우리도 구원 역사에 동참해야 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해답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에 동참한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된다. 교회력의 영성은 예수님을 닮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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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인물이야기 - 구약편
이상훈 지음 / 프리칭아카데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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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교수가 구약성경의 인물이야기를 펴냈다. 그가 신약전공자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나는 그가 펴낸 신약의 열두 제자와 그 밖의 열두 사람을 참고해 인물 설교 시리즈를 한 적이 있다. 신약 인물을 심층 분석한 책이라 도움이 많이 됐다. 예수 이야기를 읽으려다 신약학자가 구약 인물에 대해 뭐라고 썼을까 궁금해 이 책부터 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혼란스러웠다. 이 책은 이관직 교수처럼 성경 인물의 심리를 분석한 책도 아니다. 이형원 교수처럼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을 인물별로 강해 설교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구약 인물을 연대기적으로 추적하지도 않았고 사건별로 분석하지도 않았다. 책 뒷면을 보니 ‘성서 속의 다양한 인물 군상을 통해 혼돈과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크리스천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제서 조금 감이 잡힌다. 이 책은 위인전처럼 구약 인물을 미화하지 않는다. 하기야 성경에서 사람을 완벽하게 묘사한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은가? 이 책은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진솔하게 보여준다. 그렇다고 이렇게 살아라 고 강요하지 않는다. 판단을 독자에게 맡긴다. 이 책은 구약 인물을 표피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하기야 우리나라 교인들은 성경에 박식해서 어중간하게 설명하다간 망신당하기 십상이니까. 이 책은 설교나 주석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을 짚어준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지식을 동원하지 않는다. 동서양을 넘나들며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이 책은 한 두 문장을 가지고도 인물을 분석해낸다. 부르스 윌킨슨이 역대상 4장 9-10절을 가지고 야베스의 기도를 썼듯이 열왕기하 11장 14절을 가지고 권력 지향의 야망을 가진 아달랴를 그려냈다. 하기야 성경은 너무 간결해서 상상력이 없으면 읽을 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소설을 쓰지는 않았다. 학자답게 주석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든 정도다. 이 책은 구약 인물들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간접 묘사해 준다. 구약 인물 설교를 할 때 이 책을 보조 자료로 쓴다면 내용이 더욱 풍성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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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 2015-09-20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신 님 그리운 가을 공활 하늘은 오늘도 덧없이 맑더이다.
 
99% - 2008년 제53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김경욱 외 지음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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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에 등장한 젊은 피들이 우리 문단의 지경을 넓혀주면서 크고 작은 문학상들을 하나 둘씩 가져가더니 어느새 문단의 중추로 떠올랐습니다. 김경욱 님은 나이 어린 고참처럼 신세대 작가군(1971년 생)에 속하면서 중견 작가의 반열(1993년 등단)에 오른 어중간한 작가였습니다. 님은 언제나 문학상과 지근거리에 있으면서도 한고비를 넘기지 못해 번번이 고배를 마셨으나 스파링 파트너가 챔피언 벨트를 차지하듯이 문학상의 단골 후보가 마침내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올해 현대문학상 수상작과 후보작을 보니 7편 가운데 5편이 신세대 작가의 작품이었습니다. 우리 문단의 영 파워가 여전해 보입니다. 서울예대 문창과 출신들은 세계관의 중첩 때문에 스러져가면서도 그루터기를 남긴 것으로 보아 우리 문단의 산실임이 분명합니다. 유난히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작가가 많은 것으로 보아 메이저 문학상의 교두보인가 봅니다. 그러나 11편중에서 기 수상 작가의 작품이 4편인 점을 보면 우리나라는 작품 수에 비해 문학상이 너무 많다 보니 딱히 수상작으로 내밀만한 작품이 드물어 보입니다. 더구나 53회라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현대문학상 수상 작품집이 출판된 지 한 달 후에 구입했는데도 초판을 면치 못한 것을 보면 대중성에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40대로 90년대에 등단한 60년대 생 작가들은 대학교로 옮겨가면서 작품 활동이 뜸해 보입니다. 그 틈을 김애란이란 새파란 작가가 너끈히 메워주고 있습니다.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겠지요. 박형서란 영건도 될성부른 나무 같아 보입니다. 탑건이 될 때 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이런 저런 악조건 속에서도 작품 활동에 정진하는 우리 시대의 소설가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나는 님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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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월 6일)은 주현절입니다. 주현절은 예수님이 유대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해서 오셨다고 알리는 절기입니다.(로버트 웨버)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세 가지 다른 반응이 나타납니다.


먼저 헤롯 대왕입니다. 그는 주전 37년부터 주전 4년까지 팔레스타인(유대와 사마리아와 갈릴리와 이두매)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에돔(이두매) 출신으로 아버지가 유대인으로 개종한 반쪽짜리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의 정통 왕조인 하스몬 왕가를 무너뜨리고 유대의 왕이 되었지만 유대인에게는 왕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정통성을 얻고자 하스몬 왕조의 공주 미리암(마리암네)과 결혼하였고 예루살렘 성전을 크고 아름답게 건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권력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폭군이었습니다. 그는 처남인 젊은 대제사장 아리스토불루스 3세를 죽였고(주전 35년), 82세인 전직 대제사장 히르카누스 2세를 죽였고(주전 30년), 왕비 미리암을 죽였고(주전 29년), 장모인 알렉산드라를 죽였고(주전 28년) 미리암이 낳은 두 아들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를 대역 죄인으로 몰아 죽였습니다.(주전 7년) 그는 임종을 며칠 앞두고 또 다른 아들을 죽였습니다.(이영제, 크리스마스에서 참조)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헤롯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보다 돼지의 새끼로 태어나는 것이 낫다' 고까지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죽으면 백성들이 좋아할까봐 이스라엘의 귀족들을 죽여서 울음바다로 만들라고 유언했습니다.(크리스찬 문화공간에서 참조)


그는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나타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묻자 당황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이 헤롯 대왕의 후손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했으나 그때 그의 자식이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새로운 왕이 태어났다는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 백성들은 술렁거렸습니다.(마2:2-3) 그는 반쪽짜리 유대인이란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새로운 왕을 죽여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을 불러 유대인의 왕이 어디서 태어날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동방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물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 장소와 시간을 파악했습니다. 이제 그 아기가 어디 있는지만 알면 됐습니다. 그는 동방 박사들에게 아기를 찾아내면 알려달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작정한 사람입니다. 오늘날은 안티 기독교 세력들이 기독교를 공격합니다. 그들이 기독교의 실수를 건설적으로 비판한다면 수용할 수 있지만 맹목적으로 비난하기 때문에 안타깝습니다. 기독교의 순기능은 무시하고 역기능만을 열거합니다. 그들은 헤롯 대왕이 메시야를 죽이려고 작심했듯이 기독교를 죽이지 못해 안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죽이려던 헤롯 대왕이 쓸쓸히 죽고 말았듯이 기독교를 파괴하려는 불순한 세력들도 안개처럼 사라져 버릴 겁니다.

그다음은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입니다. 헤롯 대왕은 새로운 왕이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불렀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유대교 중에서 사두개파에 속했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관리했습니다. 서기관들은 유대교 중에서 바리새파에 속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헤롯 대왕은 종교지도자들에게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습니다.(마2:4) 종교지도자들은 구약성경 미가서 5장 2절과 사무엘하 5장 2절을 인용하면서 “유대 베들레헴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마2:5)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마을이었지만 중요한 마을이었습니다. 베들레헴은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장사지냈고(창35:19), 룻이 보아스를 만났고(룻1:22-2:6), 다윗이 태어나서 자랐고(삼상16:1,17:12), 미가 선지자가 메시야가 탄생할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이었습니다.(미5:2) 그들은 성경을 통해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메시야가 탄생했는지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에 무관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의 교인들은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318번이나 말씀하셨지만 재림불감증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가 더디 오려니 생각하고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지 않고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고 있습니다.(마24:45-51) 신앙은 뒷전이고 세상에 얽매여 허송세월하고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메시야가 오셨지만 메시야를 영접하지 않았듯이 오늘날의 교인들은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셨지만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방 박사들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동방 다시 말해 아라비아나 바벨론이나 바사(페르시야)에서부터 온 점성가들입니다. 그들은 천체를 관찰하면서 세상에 일어날 일을 예측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을 가리키는 별을 보고 경배하기 위해 수천 킬로미터를 달려왔습니다. 유대인의 왕은 유대인의 왕만이 아니라 만왕의 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이 예루살렘에 태어났을 것이라 생각하고 헤롯 대왕에게 찾아갔으나 허사였습니다. 그들은 헤롯 대왕이 유대인의 왕을 가리키는 별이 나타난 때를 물어 무심코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이 유대인의 왕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알려주자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들이 베들레헴을 향해 한참을 가다보니 동방에서 보았던 그 별이 나타났습니다. 그 별은 그들을 앞서서 인도해 가더니 아기 있는 곳에 머물렀습니다.(마2:9)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마2: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무척이나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그 별이 머무는 곳에 그들이 그토록 보고 싶었던 만왕의 왕이 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집으로 들어가 아기께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른이었지만 아기에게 엎드렸습니다. 그들은 신분이 높았지만 천민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은 아기를 막 낳았을 때 마구간으로 찾아간 것이 아니라 아기가 조금 자랐을 때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아기는 신생아(브레포스)가 아니라 영아(파이디온)였습니다. 아기의 아버지인 요셉은 목공소에서 나무를 다루는 목수가 아니라 건물을 짓느라 옮겨다니는 건축업자(테크톤)였습니다. 그들이 몇 명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은 보배 합을 열어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황금은 왕에게 드렸습니다.(시72:15) 유향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었습니다.(사60:6) 몰약은 장례용품이었습니다.(막15:23,요19:39) 그들은 꿈에 헤롯 대왕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을 통해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마2:12) 그들은 헤롯 대왕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우리는 동방 박사들을 통해 어떻게 신앙 생활해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인상을 찌푸리고 산다면 누가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겠습니까? 어떤 목사님이 그러더군요. “행복한 얼굴이 최상의 전도지이다.” 우리가 전도하지 않더라도 얼굴이 환하면 비교인들이 예수님이 누군지 궁금해집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기쁨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높이기보다 물질을 우선합니다.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돈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우리가 돈을 따라가면 하나님을 잃지만 하나님을 따라가면 돈도 따라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높여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 달라고 간구는 많이 하고 감사는 적게 합니다. 신앙 만화를 보니 저울이 있는데 간구는 무거워서 내려가고 감사는 가벼워서 올라갔더군요. 신앙은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로 표현됩니다. 우리는 감사한 마음을 담아 예물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 경배했듯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영접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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