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의 새로운 패러다임
김운용 지음 /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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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내러티브 설교를 소개한 선구자는 이연길 목사님이다. 그는 한국의 유진 로우리이다.  나는 그를 통해 로우리의 팬이 되었다. 나는 로우리의 이론서와 실제서를 탐독하고 내러티브 설교를 시도해 보았다. 나는 주제에 따라 개념을 배열하는 건축기사에서,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나가는 영화감독으로 변신하였다. 아직도 2 %가 부족하였다. 내가 내러티브 설교에 목말라 헐떡이고 있을 때에 신 설교학을 전공한 김운용 박사가 오아시스처럼 등장하였다. 그는 기독교사상을 통해 신 설교학을 체계적으로 소개하였다. 그걸 손질한 게 이 책이다. 이 책은 신 설교학의 교과서이다. 나는 그를 통해 내러티브 설교라는 좁은 강을 배회하다 신 설교학이라는 넓은 바다로 진출하였다. 내러티브 설교는 신 설교학의 일부였다. 나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이 모든 신 설교학은 크래독으로 통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크래독은 신 설교학의 아버지였다. 나는 설교의 중심사상을 제시하고 강화하는 연역법에서, 인간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하여 복음을 경험하는 귀납법으로 변신하였다. 내가 로우리를 이물에, 크래독을 고물에 태우고 위풍당당하게 항해하고 있을 때에 버트릭이라는 안개를 만났다. 그는 난해하였다. 나는 청중들을 포수로 삼아 말씀을 던지는 투수에서, 마음의 필름 속에 말씀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다. 내가 사진술을 익히기도 전에 캠벨이라는 해양경찰이 길을 막았다. 그는 플롯보다는 등장인물을, 비유보다는 나사렛 예수를 강조하는 신 설교학의 이웃사촌이다. 그는 신 설교학을 성경으로 인도하는 예인선이다. 내가 신 설교학으로의 여행을 계속하는 동안 전통주의 설교학이라는 태풍이 심심찮게 몰아닥쳤다. 신 설교학이 본문을 무시하고 청중의 상황을 우선할 때, 내용을 무시하고 전달에 치중할 때, 신앙공동체를 무시하고 실존적인 문제해결에 매달릴 때에 A급 태풍으로 돌변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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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엘리자벳 악트마이어 지음, 이우제 옮김 / 이레서원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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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문학유형에 따라 설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책"이 출판되었다. 이런 책들은 워더로우(Don Wardlow)가 편집한 [Preaching Biblically, 1983]에서 알렌(Ronald Allen)이 발표한 논문에 영향을 받았다. 어쩌면 피와 스튜어트(Gordon Fee & Douglas Stuat)가 쓴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1981,1993,2003)에 빚을 졌는지도 모른다. 나는국내에 소개된 이런 책들과 본서(1989)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여 서평을 가름하려 한다.

저자는 롱(Tomas Long)의 [성서의 문학유형과 설교, 1988]처럼 본문을 문학유형에 따라 분류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롱처럼 비유나 서신서까지 다루지 않고 구약의 모든 장르를 다루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저자는 구약이라는 미운 오리 새끼를 설교라는 아름다운 백조로 만드는 데 우선순위를 두었다.
저자는 그레이다누스(Sidney Greidanus)의 [성경해석과 성경적 설교, 1989]처럼 문학유형에 따른 해석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그레이다누스처럼 일관되고 통일된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저자는 성경을 관통하는 하나의 이야기(하나님의 약속이 인간의 삶 속에 유지되어 있다.)를 발견하는 것으로 위로를 삼았다.


저자는 골즈워디(Graeme Goldsworthy)의 [성경신학적 설교 어떻게 할 것인가, 2000]처럼 구약과 신약과의 연관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골즈워디처럼 구약학자로서 "프리칭투데이"지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는 기쁨을 누리지는 못했다. 저자는 구약학을 설교학과 결혼시키는데 만족해야 했다.
저자는 카이저(Walter Kaiser Jr.)의 [구약에서의 설교와 교육, 2003]처럼 구약성경을 선포하지 않았을 때의 위험성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카이저처럼 본문과 설교를 수록하지는 않았다. 저자는 또 다른 책 [Preaching from the Minor Prophets: Texts and Sermon Suggestions(1998)]과 [Preaching Hard Texts of the Old Testament(1998)]에서 이 작업을 수행하였다. 내가 보기에 위 책들보다 비교 우위에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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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 해석과적용
유태엽 지음 / 진흥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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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편견을 가졌다.
나는 이 책을 구입하고 한동안 고이 모셔두었다. 마가복음을 자주 설교하지 않아서도 그렇고 몇 가지를 보고 실망해서도 그렇다. 저자의 학위논문은 [Reconstructing the identity of Samaritan Christianity] 이었다. 저자는 복음서를 연구하였으나 마가복음을 전공하지는 않았다. 나는 조금 실망하였다. 나는 서문을 읽고 더욱 실망하였다. 저자는 교수로 부임하여 첫 학기를 강의하면서 책을 집필하였다. 바쁜 학사일정 중에 집필하였으니 오래 연구했어도 내용의 깊이는 없지 싶었다. 미국의 경우 안식년 휴가기간에 책을 집필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참고문헌을 살펴보았다. 내가 알기로 마가복음의 최고 주석 William L. Lane의 NICNT와  Robert Guelich(A) & Craig A. Evans(B)의 WBC 이었다. 저자는 WBC를 참고하지 않았다. 마음의 문이 닫혔다. 나는 이 책과 담을 쌓았다. 가끔씩 먼저만 닦아줬다. 이 책은 나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나는 편애하게 되었다.
그러다 이 책을 다시 살펴볼 기회가 찾아왔다. 나는 새벽기도회 시간에 마가복음을 설교하기로 결정하고 참고서적을 뒤적거렸다. 마가복음 주석 중에서 NICNT와 WBC는 새벽설교를 위해 참고하기에는 너무 방대하였다. 부지런한 설교자라면 그래도 참고하겠으나 나는 조금 게으른 편에 속한다.(현장 목회자라면 이해할 테지만) 나는 분량이 적은 주석을 찾아보았다. BKC는 너무 얇았고 LABC와 이 책이 적당해 보였다. 둘 다 적용이 있어 설교에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고 새벽설교를 위해 두 권의 주석을 참고하기에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잦은 설교가 낮은 설교를 초래하였다. 나는 조금 씁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만 다른 주석을 참고하기로 하고 이 책을 주 교재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이 책은 실로 2 년 만에 빛을 보게되었다. 나는 이 책을 다시 살펴보았다. 이 책은 주석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서론에서 공관복음서 문제와 마가복음을 개론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목차를 보니 문학적 해석을 하는 분들은 5 중 구조(A, B, C, B', A')로 분석하는 경우도 있던데 저자는 8 단원으로 나누고 있었다. 6:1-6, 7-13만 조금 달랐다. 별로 문제될 것은 없었다. 해석과 적용을 보면 본문을 개괄적으로 소개하고 절 별로 주석을 하고 본문을 생활에 적용하였다. 저자는 본문해석에 중점을 두었고 적용에는 미흡했다고 자평하였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적용에 심혈을 기울인 듯하였다. 적용을 설교자가 대지로 사용해도 될 정도로 탁월하였다. 다만 본문의 중심사상을 강화시키지 않는 적용도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참고하여 오늘로서 18 일째 마가복음을 설교하고 있다.(한 장을 이틀 간 설교한다.) 지금까지 내용이 부실하여 다른 주석을 참고한 적은 없다. 나는 이 책을 나의 손에 가장 잘 닿는 책꽂이에 모셔두었다. 이 책은 어느새 나의 새벽친구가 되었다. 이 책과 함께 하는 새벽시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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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진 진주를 찾아서 - 설교를 위한 예수의 비유연구
오덕호 지음 / 한국성서학연구소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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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설교는 보기보다 쉽지 않다.
"초보 설교자는 마치 자기가 잘 알고 있는 듯이 비유라는 기억을 자신감이 넘치는 걸음걸이로 대담하게 걸어 들어간다. ... 경험이 많은 설교자는 비유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단순한 것 같아도 실제로는 보물이 들어있는 매장지대라는 것을 안다."(토마스 롱) 정말 그렇다. 나는 신학생 시절 학생과 청년들에게 즐겨 예수님의 비유를 설교하였다. 단순하면서도 명백한 진리가 마음에 들어서였다. 재작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비유설교가 점점 어려워졌다. 비유 속에 담긴 심오한 진리가 부담이 되었다. 나는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헐떡이듯이 좋은 비유 해설서를 찾아 돌아다녔다. 그때 이 책이 출판되었다. 상인이 진주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값진 진주를 만났을 때처럼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비유설교를 위한 훌륭한 안내서를 나왔다.
저자는 대학교 강단에서 교회당 강단으로 돌아간 오덕호 박사다. 그는 한국에 문학-역사비평을 소개한 장본인이다. 문학-역사비평은 성경의 실제저자가 성경을 기록할 때 염두에 두었던 저자적 독자(authorial reader)의 관점에서 본문을 해석한다. 저자적 독자를 찾아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방법론이다. 역사비평의 장점에 문학비평의 장점을 가미한 이상적인 방법론이다. 저자는 저자적 독자를 탐구하기 위하여 외부지식(성경이외의 지식)과 내부지식을 동원하여 틈(Gaps)을 메우고(성경의 모호한 부분을 해석하고), 본문을 읽으면서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상(Anticipation)하고 과거에 일어난 일을 회상(Retrospection)하고, 문학적 특성(Literary Characteristics)에 맞춰서 본문을 읽는다. 저자는 이 방법을 근간으로 비유를 해석한다. 저자는 비유가 복음서의 어느 위치에 놓여있는지 파악하고, 비유의 구조를 분석하여 본문의 단위를 확정하고, 주요 문구의 의미를 밝히고, 본문을 해석하고, 본문의 전후 문맥과 비유와의 관계를 살펴보고, 비유를 오늘의 삶에 적용한다. 저자를 따라서 비유나라로 여행하다보면 과거의 문서가 일일 연속극처럼 흥미로워진다. 나는 재작년에 이 책을 중심으로 비유설교를 하고 작년에 서평을 썼었다. 그러나 마음에 안 들어 삭제하고 다시 썼다. 불만족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뜨거운 물만 붓던 인스턴트 비유설교에서 가마솥에 푹 고운 사골곰탕 비유설교를 하게 되었다. 다시 한번 추천할 수 있어 기쁘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은 한국인이 지은 가장 뛰어난 비유 해설서이다. Craig Blomberg의 [비유설교(2004)]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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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택입니다 2015-10-02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보고 싶네요
 
한국교회 16인의 설교를 말한다
유경재 외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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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비평은 가능한가?
한국교회는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다'고 고백한다. 설교를 신성시하는 입장에서 설교비평은 신적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보인다. 그래서 설교비평은 고사하고 설교평가(분석)도 조심스러워 한다. 오히려 씨(설교)보다 땅(교인들의 마음상태)을 탓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간의 말이다. 하나님은 설교자를 무선안테나로 조종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설교자의 전인격을 통해 말씀하신다. 설교 속에는 설교자의 세계관이 녹아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이전에 설교자의 말이라는 주장에 수긍이 간다.(201쪽 재인용) 설교비평의 근거가 여기에 있다.

설교비평은 어떻게 하나?
설교비평은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생각하기에 내용을 비평해야 한다. 설교자는 청중이 공감하도록 설교를 시작하는가? 설교가 자연스럽고 명료하게 전개되는가? 설교의 중심사상이 드러나는가? 본문을 정확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가? 설교가 감동적으로 마치는가? 예화는 시의 적절한가? 등등... 전달과정도 비평해야 한다. 설교유형은 무엇인가? 본문의 문학형식에 맞는 형태인가? 설교가 청중과 교감을 이루는가? 언어사용은 정확한가? 비언어 사용은 설교에 도움을 주는가? 등등... 전통적인 설교학은 설교 내용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신 설교학은 설교의 형식과 전달에 초점을 맞춘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청중이 듣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16인의 설교비평은 어떤가?
그렇다면 기고자들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설교를 비평했을까? 첫째, 설교학적으로 설교를 비평하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 기고자 중에서 설교학 전공자는  1명뿐이다. 기고자들은 형식은 접어둔 채 내용을 문제삼았다. 전체적인 안목 없이 부분에 치중하였다. 지식의 부족에서 나온 결과다. 이승진 교수는 김서택 목사의 설교형태는 반귀납적 강해설교라고 규명하였다. 둘째, 입체적으로 설교를 비평하지 않았다. 다수의 기고자가 하나의 설교자를 총체적으로 분석하지 않았다. 오히려 1명의 기고자가 2명의 설교자를 비평하였다. 당연히 내용의 깊이가 없었다. 꼭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것 같았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처럼 다 시각적 분석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셋째, 일평생의 설교를 비평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수십 년 동안 수십 권을 저술하였다. 기고자들은 몇 개월 동안 몇 권의 저술과 동영상을 보았다. 설교자들의 전형적인 설교형태와 설교신학이 담긴 저술과 동영상이 아니라 임의대로 취사선택하였다. 그걸 가지고 설교자의 설교를 논할 수 있을까? 그나마 심광섭 교수는 김홍도 목사의 설교신학이 담긴 설교집을 읽었다. 넷째, 인격적으로 설교를 비평하지 않았다. 기고자들은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설교자들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었다. 설교자를 모독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특히 정용섭 박사는 설교자들의 저격수였다. 그에게 걸리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았다. 제 9 회 한국교회 설교가 연구에서 무결점 설교가로 호평을 받은 이종윤 목사를 어떻게 평가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한종호 님은 전병욱 목사의 킬러였다. 그가 왜 전병욱 목사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의아할 뿐이다. 젊은 우상을 폄훼하려는 진보 인사의 오만인지 차세대 리더를 올곧게 다듬으려는 크리스찬 언론인의 고언 인지 아직도 알 수 없다. ... 나는 이 책을 읽고 설교자들의 설교분석도 멀었지만 기고자들의 설교비평도 멀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반드시 가야할 길에 돌 하나를 놓았다고 평가해 본다. 설교비평은 멀지만 가야할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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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닌 2004-10-28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월은 힘든 달이었습니다. 사역에 회의가 들기도 했습니다. 주님의 수난이 나의 수난이었습니다. 이제야 마음을 추스렸습니다. 그 결과가 이 서평입니다. 한 달에 10여권을 읽는데 서평 쓰기는 힘드네요. 너무 글을 잘 쓰는 분들이 많아 조심스럽습니다. 하물며 저술은 얼마나 더 힘들까요? 저자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yunpeter 2004-10-28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드셨군요~. 힘내시기 바랍니다. 저도 지금 신대원 기간이라 제가 보고싶은 책을 볼 시간이 별로 없네요. 방학이 되야 할 듯.
그리고 글은 조금씩 써 가시면 좋을 듯 합니다. 또한 5-10년정도 사역과 준비후 책을 하나 쓴다는 목표를 가지고 목적있는 글을 쓰시면 좋은 책이 나올 까 싶어요. 제가 젤 먼저 사겠습니다. ^^ 샬롬!~~

라미닌 2004-10-29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 전도사님,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메일을 보냈더니 반송됐네요. 아무튼 고맙습니다. 전도사님도 열심히 공부하시고 사역하세요. 그리고 책도 내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