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론
레이몬드 E.브라운 지음, 김근수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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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몬드 브라운. 그의 이름은 조금 낯설다. 그는 누굴까? 그는 1928년 5월 22일 뉴욕에서 태어나 1998년 8월 8일에 별세한 가톨릭 사제다. 그는 성경에 관한 25권의 주요 도서와 성경 연구와 관련된 15권의 저서를 썼다. 그는 미국 가톨릭 성경 협회장과 성경문학회 회장과 국제신약학회 회장을 최초로 역임한 학자다. 그는 타임지가 '미국 제일의 성경학자'로 선정하였고 미국 가톨릭 신학학회는 '올해의 뛰어난 미국 가톨릭 신학자'로 선출하였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 최고의 신약신학자였다. 우리나라에는 기껏해야 BST시리즈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신약개론. 우리나라에 좋은 개론서가 출판되었다. 로버트 건드리(1981), 룩 존슨(1986), 카슨, 무, 모리스(1992)의 작품이 눈에 띤다. 그러나 이 책들은 너무 오래되었다. 지금은 개정되었거나 개정 작업 중이다. 국내엔 개정판마져 나오지 않았다. 좀더 새로운 개론서는 없을까?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별세하기 1년 전에 세상에 나왔다. 그것도 저자가 박사학위를 받은지(1955년) 40년도 더 지나서 나왔으니 얼마나 오랜 연구끝에 나온 역작인지 알 수 있다. 학위를 마친지 5년 만에 나온 개론서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특징. 이 책은 보통의 신약개론처럼 초기 기독교에 열을 내지 않고 현재의 신약 본문에 정열을 쏟는다. 그렇다고 발전과정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저자는 먼저 본문 내용을 철저히 분석하고 학자들의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자료와 저자와 기록장소와 연대문제를 나중에 다룬다. 저자의 신중함을 엿볼수 있다.

이 책은 보통의 신약개론처럼 정경 순서내지 연대 순서를 따르지 않고 논리적인 연대 순서에 따라 구성되었다. 요한서신을 일반서신으로 분류하지 않고 요한복음 뒤에 위치한 것을 보면 분명해 진다. 저자는 요한신학의 대가다. 그의 분류는 권위가 있어 보인다.

이 책은 보통의 신약개론처럼 신약배경사와 복음서와 신약서신에 대한 일반적인 개론을 수록하였다. 그뿐아니라 최근 활발한 토론을 벌이고 있는 역사적 예수 연구를 부록으로 다뤘다. 국내에 예수세미나 멤버들의 책을 전문적으로 번역하는 출판사가 있다. 여기에 나와있는 부록과 '누가 예수를 부인하는가?'를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마지막 멘트. 이 책은 최고 학자가, 평생을 연구하여, 엄청난 분량을 실은, 최신 신약개론이다. (이 글은 2003년 12월 9일 라이프북에 실었던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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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안에 거하시는 하나님
트렘퍼 롱맨 3세 지음, 권대영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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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렘퍼 롱맨3세! 나는 그의 이름만 보고 책을 산다.(현재까지 8권이 번역되었다.) 내가 이름만 보고 책을 사는 저자는 극히 드물다. 기껏해야 리차드 포스터 정도다. 롱맨3세는 나에게 성경을 보는 또다른(아니 확실한) 눈을 열어주었다. 역사적 비평적 방법론에 젖어있던 나에게 문학적 성경해석의 길로 안내한 장본인이었다. 나는 그를 통해 성경의 권위를 회복하였다. 나는 그에게 평생 빚지고 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 제목만 보고는 무슨 내용인지 짐작할 수 없다. 이스라엘의 예배 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라는 부제를 보고야 대충 감이 잡힌다. 그는 구약의 제사 본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진정한 의미를 조명해준다. 그는 거룩한 공간(에덴동산, 제단, 성막, 성전)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의 거룩한 공간이며, 거룩한 행위(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를 통해 예수님은 단일회적이며 종국적인 제사며, 거룩한 백성(제사장, 레위인)을 통해 예수님은 궁극적인 제사장이며, 거룩한 시간(안식일, 안식년, 순례 절기, 나팔절, 속죄일, 부림절)을 통해 예수님은 거룩한 시간의 존재 근거라고 논증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제사장 신학을 수립하였다. 제사 본문은 십자가의 원형이었다. 그는 그냥 넘겨버리기 쉬운 제사 본문에서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발견해 냈다. 그를 통해 구약은 히브리인만의 책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책이기도 하다고 다시한번 되새긴다. 그는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가교다.

CLC! 기독교문서선교회는 나의 주거래 출판사가 되었다. 나는 CLC의 책을 읽을 때마다 오자가 많아 불만이었다. 이 책은 예외다. 177쪽에서 한 번 발견하였다. 대단한 발전이다. 앞으로도 오자 없는 책을 기대해 본다. (이 글은 2003년 12월 9일 라이프북에 실었던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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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D] 성서의 문학유형과 설교
토마스 롱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199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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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점을 이용하고부터 생긴 풍속도다. 어떤 책은 머리말만 읽고 내동댕이친다. 책 내용이 기대에 못미치기 때문이다. 어떤 책은 참고문헌까지 읽고 책꽂이에 고이 모셔둔다. 제목을 볼 때마다 내용을 기억해 내려고 애쓴다. 어떤 책은 눈에도 잘 띄고 손에도 잘 닿는 곳에 놓아둔다. 이런 책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한번 읽고 싶어진다. 처음에 느꼈던 진한 감동이 은빛 물결이 되어 어김없이 밀려온다. 나는 책읽기의 즐거움에 흠뻑 빠진다. 이런 책은 서평도 쓰고 동료에게도 권한다. 이 보다 더 높은 단계도 있다. 자신만 알고 싶은 책말이다. 남이 볼새라 혼자만 숨겨놓고 보다가 시간이 지나면 정보를 공개하는 책, 나에게 있어 그런 책이 있다면 바로 이 책이다.

이제 이 책을 낱낱이 공개하겠다.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었다. 1부 개론-연구 개요에서는 이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와 본문에서 설교로 옮겨가는 다섯가지의 질문(네가지의 해석학적 질문과 한 가지의 설교학적 질문)을 다루고 있다. 2부 문학 형식과 설교에서는 본문에서 설교로 옮겨가는 다섯가지 질문, 첫째, 본문의 장르는 무엇인가? 둘째, 이 장르의 수사적인 기능은 무엇인가? 셋째, 이 장르는 수사적인 효과를 얻기 위하여 어떤 문학적인 방법을 사용하는가? 넷째, 본문은 위의 세가지 질문을 어떻게 구체화하는가? 그리고 다섯째, 본문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기능을 하는가?를 시편과 잠언과 이야기와 비유와 서신서에 잇대어 해석하고 적용하고 있다. 눈치 빠른 독자는 금방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설교 잘 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인스턴트 설교학 책이 아니라, 성경의 문학양식에 맞는 성경적인 설교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설교자를 위한 책이다. 또한 모든 본문을 똑같은 3대지로 찍어내는 한국식 붕어빵 설교에 식상해져서, 무언가 새로운 변화의 파도를 갈망하는 설교자에게 딱 맞는 책이다.

저자와 역자를 소개하겠다. 저자 토마스 롱은 세계적인 설교학자다. 그는 설교 이론뿐만 아니라 실제 설교까지도 탁월하다. 미국설교잡지 Preaching지는 그의 책 [증언으로서의 설교]를 1991년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였다. 미국 오디세이 방송국에서는 그를 영어권 10대 설교자로 선정하였다. 그는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설교자다. 그의책은 언제나 지적 희열을 충족해 준다. 그의 설교는 언제나 진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나는 그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역자 박영미 목사는 프린스톤 신학대학원에서 롱의 지도하에 설교학으로 석사학위를 하였다.(롱은 현재 에모리 대학교 캔들러 신학대학 프레드 크래독 설교학 석좌교수다.) 훌륭한 책을 저자의 제자가 번역하였으니 안심하고 읽을 수 있겠다.

아무리 맛있는 떡이라도 먹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읽지 않으면 아무 도움을 얻을 수 없다. 올 가을 이 책으로 독서삼매경에 빠져봄은 어떠한가? (이 글은 2003년 10월 23일 라이프북에 실었던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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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문학적 구조 - 창세기-말라기 주석
류근상 지음 / 크리스챤출판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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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호 [기독교 출판소식]을 보고 이 책의 출판을 알게 되었다. 평소 성경에 대한 문학적 해석에 관심이 있는터라, 먼저 아마존닷컴에 들어가서 미국 독자들은 이 책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많은 독자들이 극찬하고 있었다. 책에 믿음이 갔다. 책을 사다보니 별일도 다 있다. 어떤 책은 미국에서 개정판이 나왔는데, 국내엔 구판을 번역 출판했고, 심지어 절판된(품절이 아니라) 책도 번역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원서가 1999년에 나왔다. 역자도 신학교재를 10권 넘게 번역한 류근상 교수다. 책값도 분량에 비해 저렴하다. 이래저래 호감이 간다. 어서 책이 왔으면. 설레는 마음으로 택배 아저씨를 기다린다. 드디어 도착.

이제 책을 손에 쥐었다. 저자 서문만 읽었는데도 감동이 밀려온다. 저자가 수십년 동안 땀흘려 이 책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보통은 봄에 씨를 뿌려 여름에 가꾸면 가을에 결실한다. 과실수는 3년이면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이 책은 수십년이나 걸렸다니... 존경심이 절로 솟는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구약성경의 문학적 구조를 밝힌 책이다. 먼저 본문의 문학적 단위를 파악하고(흔히 말하는 문단나누기), 구조를 분석하여(선형구조,평형구조,대칭구조), 의미를 파악(중심주제)하는 과정을 밟는다. 이렇게 하면 본문의 핵심내용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역자의 말대로 문학적 구조를 부분적으로 다룬 책은 있으나 구약 전체의 문학적 구조를 다룬 책은 없었다.(전체를 다루다보니 부분적으로 설명이 부족한 점은 있다) 정말 대단한 책이다. 이 책 한 권만 있으면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설교할 수 있을 것 같다. 설교 준비할 때 본문을 열번 읽는 것보다 이 책을 한번 읽는게 나아 보인다.(오해하지 마세요) 그만큼 본문의 핵심을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해서 그 당시 흔히 쓰는 사람의 말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아마 다드가 이런 말을 한 것 같다) 그러므로 성경은 역사적이고, 문학적이고, 신학적인 책이다. 지금까지는 역사적이고 신학적인데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요즘 주석들을 보면 문학적 분석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다행스런 일이다. 우리나라 신학계도 문학적인 해석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때에 본서가 소개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이리라. 이 책을 통해 한국신학계에 문학적 해석이 활짝 꽃 피우기를 기대해 본다.

누군가 책은 옷과 같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에게 잘 맞는 옷이 다른 사람에게 안 맞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좋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한다. 이 책을 사는 사람은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접해본 책 중에서 가장 탁월한 책이다. 당신에게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 (이 글은 2003년 3월 13일 라이프북에 실었던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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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된 새로운 기독교 용어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교육부 엮음 / 한국장로교출판사(한장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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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복 교수님의 [그것은 이것입니다]를 읽고, 예배 중에 바른 기독교 용어를 쓰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한 번 길들여진 습관은 쉽게 고쳐지기 힘든 모양이다. 바른 용어가 생소해서 그런지 아니면 습관이 생활을 지배해서 그런지 우리 교회 교인들은 여전히 비기독교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 책보다 더 얇은 책이 있으면 교인들을 교육하는데 좋을 텐데.' 내가 바라던 책이 나왔다. 장로회 통합 측에서 '기독교 용어 연구 위원회'를 구성하고 비성경적, 비신학적, 비기독교적인 낱말을 추려내고, 이 말을 대체하는 바른 기독교 용어를 제시하였다.

이 책을 구입하여 한 가정에 한 권씩 나눠주고 예배 시간에 설교 대신 이 책을 강의하였다. 설교도 중요하지만 바른 용어는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인들의 반응도 한결 좋아졌다. 말로 할 때보다 책으로 대할 때 더 효과가 있었다. 이제 우리 교인들은 의식적으로 바른 용어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속한 감리회의 [기독교 대한 감리회 새 예배서] 13-14쪽을 보면 바람직한 예배 용어 10가지가 나온다. 이 중에서 [변경된 새로운 기독교 용어]와 다른 게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대표기도'를 통합측은 '기도인도'로, 감리회는 '오늘의 기도'로 사용한다. 이렇게 각 교파마다 다른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교파 차원에서 용어를 통일시키지 않는 한, 어쩌면 바른 용어 사용은 요원한지도 모른다. (이 글은 2003년 7월 2일 라이프북에 실었던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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