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학기말 열공 기출문제 5-1 (중간시험 이후범위) - 2009
천재교육 편집부 엮음 / 천재교육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이제 중간고사가 끝나가네요.

기말고사를 준비할 때죠. 

열공 기출문제는  

간단하게 정리가 되 있어 

다른 문제집을 풀면서 마무리로 사용하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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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학기말 열공 기출문제 3-1 (중간시험 이후범위) - 2009
천재교육 편집부 엮음 / 천재교육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귀여운 우리 막내는 

여러 문제집 중에서 

열공 기출문제가 가장 정리가 잘 되어 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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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찌 여기 있느냐 - 엘리야의 열정과 엘리사의 사랑 이야기
김정우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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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리교 목사인데 총신대 김정우 교수의 문학적이고 정경적인 해석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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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0:11-18 나는 선한목자라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은 목자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시23:1,77:20,79:13,95:7,100:3,사40:11,겔34:11-31)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가 많이 내리는 서쪽의 농경지에서는 농사를 지었고,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동쪽의 광야에서는 목축을 하였습니다. 10월 초막절이 지나고 우기가 되어 풀이 파릇파릇 돋아나면 남자들은 양떼를 이끌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광야에서부터 풀을 뜯기기 시작하여 점차 집으로 가까이 오면 여자들이 넘겨받았습니다. 이삭의 아내 라헬(창29:10)도 모세의 아내 십보라(출2:16)도 양떼를 쳤습니다. 이때쯤 4월 유월절이 지나고 건기가 시작되는데 남자들은 밭으로 나가 보리와 밀을 추수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도 치고 농사도 짓고 투잡(two job)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해가 뜨면 양떼를 이끌고 푸른 풀밭으로 나갔습니다. 양떼는 고개를 쳐 박고 부지런히 풀을 뜯었습니다. 목이 마르면 시냇물로 데려갔습니다. 양떼는 혀를 날름거리며 목을 축였습니다. 저녁이 되면 목자들은 양떼를 이끌고 우릿간으로 들어갔습니다. 목자들은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지거나 들짐승이 나타나거나 도둑이 들어올까 봐 동굴을 우릿간으로 사용하거나 아니면 돌이나 나뭇가지로 담을 두르고 담 위에 가시를 올려놓고 임시로 우릿간을 만들었습니다. 목자들은 이마트 포항 이동점에 가보면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구석구석에 CCTV를 설치했듯이 낮에는 양떼를 풀어놓았기 때문에 들짐승이 물어갈까 봐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살폈고, 밤에는 도둑이 훔쳐갈까 봐 양떼를 우릿간에 몰아넣고 입구에서 선잠을 잤습니다. 야곱은 외삼촌의 양떼를 지키기 위해 낮에는 더위에 허덕였고 밤에는 추위에 떨면서 눈 붙일 겨를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창31:40) 이스라엘의 목자는 모두가 피하는 3D 업종이었습니다. 'Dangerous(위험한)','Difficult(어려운)', 'Dirty(지저분한)' 위험하고 어렵고 지저분한 직업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자는 최하층 민에 속했습니다.

목자들은 한 사람 당 양 30에서 75마리를 돌볼 수 있었기 때문에 욥처럼 양이 칠천 마리나 되고(욥1:3) 나발처럼 양이 삼천 마리나 되는(삼상25:2) 주인들은 삯꾼 목자들을 고용했습니다. 양을 치기가 너무 힘들고 위험하고 지루하고 지겹다 보니 주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20%의 손실을 각오하고 삯꾼 목자들에게 양떼를 맡겼습니다. 삯꾼 목자들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애착을 가지고 양떼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삯꾼 목자들 때문에 목자를 거지나 도둑같이 멸시하였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목자는 목자인데 삯군 목자가 아니라 ‘선한 목자’이십니다. 선한 목자와 삯꾼 목자는 달랐습니다. 무엇이 달랐을까요?

첫째,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을 아십니다.(요10:14) 목자들은 밤이 되면 양떼를 한 우릿간에 집어넣고 교대로 문을 지켰습니다. 그러다 보니 양떼가 섞였습니다. 아침이 되면 목자들은 양떼를 향하여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양떼는 자기 목자의 휘파람 소리를 알아듣고 문밖으로 따라나섰습니다. 목자는 자기 양을 알아보고 이름을 불렀습니다. 선한 목자가 양을 알고 양이 목자를 알듯이 하나님도 예수님을 아셨고 예수님도 하나님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아십니다. 하나님은 마태복음 10장 31절을 통해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어두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속속들이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의 기도 제목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서 4장 6절을 통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몰라 망하게 되었다고 탄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아시듯이 우리도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둘째, 선한 목자는 양의 문으로 드나듭니다.(요10:7,9) 우리나라 속담에 ‘열 사람이 지켜도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 고 합니다. 목자들이 교대로 입구를 지켜도 도둑을 막지 못했습니다. 도둑은 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구렁이가 담을 넘어오듯이 돌로 만든 담을 몰래 넘어오거나, 뱀이 나뭇가지 사이로 기어 다니듯이 나뭇가지 사이를 살며시 헤치고 들어왔습니다. 도둑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들어왔습니다.(요10:10) 그러나 예수님은 양의 문입니다.(요10:7) 양이 다니는 문입니다. 담을 통해 우릿간 밖으로 옮겨지는 양떼는 멸망을 받고 죽게 되지만 양의 문을 통해 우릿간으로 들어오는 양떼는 구원을 받고 들어오고 나가고 꼴을 얻습니다.(요10:9) 하나님은 요한복음 14장 6절을 통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수많은 길 중에 하나의 길이 아니라 오직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길입니다. 양이 문을 통해 드나들어야 살 수 있듯이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풍성하게 주십니다.(요10:10)

셋째,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희생합니다.(요10:11,15,17,18) 삯꾼 목자는 양이 무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탈진하면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하기 일쑤였습니다. 들짐승이 나타나면 막대기로 맞서 싸우지 않고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도둑이 우릿간을 뚫고 들어오면 적당히 훔쳐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양떼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요10:11)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보다 양떼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상 17장을 통해 다윗은 아버지의 양떼를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나타나서 새끼 양을 물어 가면 뒤따라가서 사자와 곰을 쳐 죽이고 새끼를 구해주었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선한목자가 양떼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4번이나 말씀합니다.(요10:11,15,17,18) 이것이 선한 목자와 삯군 목자의 진정한 차이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5장 8절을 통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대신 돌아가셨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사람은 혹시 있을지 모르지만 죄인을 위하여 죽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에베소서 5장 2절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희생하셨으니 우리도 서로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자녀가 철이 들면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듯이 교인도 신앙이 깊어지면 나를 아시고 나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 주시고 나를 위해 희생해주신 예수님을 본받아 서로를 위해 헌신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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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4:36-49 너희는 증인이라.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을 리 없다. 

하나님은 베드로 후서 3장 8절을 통해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루가 천 년처럼 길고 천 년이 하루처럼 짧다는 말이죠.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하루처럼 짧다고) 생각했으나 자꾸만 지연되자(천 년처럼 길어지자) 예수님의 재림이 왜 이렇게 늦어지는지 궁금했습니다. 베드로는 인간이 보기에 길게 보여도-재림이 늦어져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짧다고-금방 재림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과 보낸 3년간은 화살이 날아가듯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으나 예수님이 죽으시고 사흘간은 슬로비디오를 보듯이 더디게 지나갔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죽으신지 사흘째 되는 날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새벽이 되자 여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른다고 나가더니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예수님이 살아나셨다고 말하더라고 알렸습니다.(눅24:6) 사도들은 여 제자들의 말을 허탄한 듯이 들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무덤으로 달려가 안을 들여다보고 시신은 없고 피에 젖은 세마포만 있더라며 이 어찌된 일이냐고 놀라워했습니다.(눅24:12)/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보다는 자신들의 앞날이 걱정되었습니다. 사도들은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에게 해코지를 당할까봐 방문을 걸어 잠그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향후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예수님을 판 가룟 사람 유다는 이미 목 메달아 죽었고, 예수님을 따르던 여러 제자들은 하나 둘씩 고향으로 흩어졌습니다. 사도들은 밤이 깊도록 머리를 맞댔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만났다며 흥분해서 돌아왔습니다. 사도들은 새벽에는 여 제자들이 헛소리를 하더니 밤이 되자 베드로까지 미쳤다며 무시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엠마오 마을로 떠났던 두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님을 길에서 만났고 예수님과 식사까지 했다며 기뻐 날뛰었습니다.(눅24:35) 사도들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추호도 생각하지 못하고 아마 귀신을 본 모양이라며 흘러 넘겼습니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만나다.
사도들과 제자들은 한쪽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 또 한쪽은 아니다 귀신을 보았다며 옥신각신 다투었습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이 친히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눅24:36) 문이 잠겨있었지만 예수님은 새로운 몸을 입으셨기 때문에 들어오실 수 있었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인사법을 따라 그들에게 평강을 빌어주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보고 놀랍기도 했고 행여 귀신은 아닌 가 싶어 무섭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안심시키셨습니다.(눅24:38-39)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예수님은 손과 발의 못자 국을 보여주었습니다. 귀신이라면 그림자만 있을 텐데 예수님은 살과 뼈도 있었고 못자 국도 선명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셔서 너무 기쁘기도 하였고 아직도 귀신은 아닌 가 의심을 떨쳐버리지도 못했습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음식을 찾으셨습니다.(눅24:41b)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그들은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렸고 예수님은 맛있게 잡수셨습니다. 귀신이라면 음식을 먹을 리 없었습니다./ 지금 그들 앞에 서신 분은 귀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인사도 하셨고, 뼈와 살로 이루어진 몸도 보여 주셨고, 음식도 맛있게 잡수셨습니다. 그분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다시 살아나신 겁니다. 그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성경을 가르쳐 주시다.  

예수님은 살아계셨을 때에 종교지도자들에게 고난을 당하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실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들이 기억하지 못하자 다시 한 번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서-구약성경에서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고 또 그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구약성경 신명기서 18장 15절부터 20절까지는 선지자로서의 메시야의 역할이 기록되었고, 시편 22편과 이사야서 53장은 메시야의 고난이 기록되었고, 시편 16편 9절부터 11절과 이사야서 53장 10절부터 11절까지는 메시야의 부활이 기록되었고, 이사야서 42장 6절과 49장 6절과 60장 3절에는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다고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메시야에 관한 말씀이 어떻게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는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들의 닫혔던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구약성경에서 예언되었던 바로 그 메시야이었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사명을 주시다.
예수님은 성경을 자세히 풀어주시고 그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눅24: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예수님은 그들에게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을 목격한 증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증인은 보고 들은 사실을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세계적인 설교학자인 토마스 롱 교수는 설교자는 증인이라고 말했습니다. 나의 알라딘 닉네임은 위트니스입니다. Preacher is Witness. 우리는 증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입니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능력을 주신다고 약속하시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냥 증언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증언할 수 있도록 성령님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눅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성령님은 그들이 증인이 될 수 있도록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성령님은 능력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자동차에 시동을 걸어주는 열쇠입니다. 시동이 걸려야 차가 움직일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진공청소기를 작동시키는 전기입니다. 전기가 들어와야 청소기가 작동합니다. 성령님은 풍력발전소를 움직이는 바람입니다. 바람이 세게 불어야 전기를 생산합니다. 성령님은 수력발전소를 가동시키는 물입니다. 물이 강력하게 떨어져야 전기가 발생합니다. 성령님은 태양력발전소를 작동시키는 햇빛입니다. 햇빛이 강렬하게 비춰야 전기가 생성됩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임하셔야 허울뿐인 교인이 거듭난 교인으로 변화됩니다. 성령님은 교회 마당만 밟는 교인들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언하는 증인으로 만듭니다. 우리는 성령님이 임하셔야 능력을 받고 지금 있는 자리부터 시작해 지구촌 전체까지 나가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오순절에 성취되었습니다.(행2:1-4) 성령님은 지금도 오십니다. 우리도 성령님을 받아야 그들처럼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을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성령님의 특별한 능력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의 권능을 받아 예수님의 증인이 돼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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