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는 예배학 Cafe - 성도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57가지 질문과 대답
조기연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요즘 예배학에 관심이 많은데 마침 제임스 화이트 박사의 지도를 받은 조기연 교수가 예배학 카페를 펴내 출판되자 마자 구입하였다. 이 책은 예배학 분야를 성도들이 질문하면  저자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집필되었다. 묻고 답하는 가벼운 형식이지만 내용은 예배학 전문도서를 뺨칠 정도로 수준높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답에는 성경적이고,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진술들로 가득하다. 가장 이상적인 예배형식에서 저자는 유스티누스의 첫 번째 변증문에서 당시의 주일예배 순서를 찾아내 반드시 필요한 여섯 가지 순서를 제시한다./ 저자는 북미에서 공부했지만 서구교회 일변도의 예배학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예배갱신에 깊이 천착해 있다. 저자는 11시 주일낮예배를 드려야 대예배를 드린 걸로 아는 교인들에게 예배시간의 변천사를 다루며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일이 중요하지 시간이 중요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예배를 몇 부로 나누어 드리는 대형교회 교인들이 솔깃할 내용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예배순서의 통일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배순서에는 신학적 의미가 담겼기 때문에 개교회에서 변형하지 말고 가급적 교파별로 통일된 예배형식을 취하라고 조언한다. 저자의 책은 예배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뚫어줄 '트레펑'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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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14:28 말이 기적을 만든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씨를 뿌리면 열매를 맺듯이 말로 씨를 뿌리면 그 말대로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말입니다. 부정적인 말의 씨를 뿌리면 부정적인 열매를 거두고, 긍정적인 말의 씨를 뿌리면 긍정적인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은 민수기 13장과 14장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을 들으셨습니다.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점령할 수 없다며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민14:28) 새번역에는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너희가 나의 귀에 들리도록 말한 그대로,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하겠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이루어주시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백성들이 말한 대로 이루어주시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1장을 통해 무화과나무가 잎사귀는 돋았는데 열매가 맺히지 않자 사람들이 영원토록 열매를 따 먹지 못한다고 저주하셨습니다. 다음 날 제자들은 길을 지나다가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버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 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막11:22-23) 예수님은 누구든지 말한 대로 될 줄로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한 대로 들어주십니다. 말은 기적을 일으키는 배터리입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말을 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도행전 3장을 통해 베드로가 성전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보고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고 말하고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자 앉은뱅이는 발과 발목이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말씀합니다.(행3:6-7) 베드로는 돈은 없었지만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앉은뱅이가 일으킬 수 있었듯이 우리ㄷ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믿음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다보니 믿음의 말도 못합니다. 박필 목사님은 통영을 갔더니 바닷물을 방조제로 막고 덤프트럭으로 흙을 쏟아 부으니 육지가 됐다고 하면서 우리가 계속해서 믿음의 말을 부으면 믿어진다고 조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펄이 딱딱한 땅이 될 때까지-반신반의하던 생각이 확실한 믿음으로 바뀔 때까지 한두 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믿음의 말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덤프트럭으로 흙을 쏟아 부어도 방조제들 터트리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우리가 믿음의 말을 하더라도 불신의 말을 던지면 아무 소용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은 누가복음 1장을 통해 천사장 가브리엘을 보내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사가랴 제사장은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고 못 믿겠다고 말하자(눅1:18) 이 일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말을 못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불평하는 말을 던지면 아무 소용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은 민수기 14장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차라리 애굽 땅에서 죽던지 광야에서 죽는 게 좋았지 괜히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 칼에 쓰러지게 하고 처자가 사로잡히게 되었다고 원망하자, 하나님은 원망한 백성 중에 이십 세 이상은 광야에서 죽게 하셨고, 그들의 자녀들은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게 하셨습니다. 불신과 불평은 방조제를 터트리는 폭탄과 같습니다. 방조제가 터지면 흙과 돌이 바다 속으로 쓸려 들어가고 바닷물이 다시 들어오듯이, 우리들이 아무리 믿음의 말을 하더라도 한 번이라도 불신과 불평의 말을 하면 물거품이 될 수 있습니다.

말이 기적을 일으키려면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첫째 시인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누가복음 1장을 통해 천사장 가브리엘을 보내 성령님이 능력으로 아들을 낳는다고 말씀하자,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고 시인했습니다.(눅1:38) 그리하여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을 낳을 수 있었습니다. 황수관 박사님은 이것을 ‘아멘 약’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멘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의술로 고칠 수 없는 병도 고쳐지고 어려운 위기도 극복됩니다. 둘째 고백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편 23편 1절을 통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는 다윗이 왕궁에서 편하게 누워서 시를 쓴 것이 아니고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해 광야를 떠돌면서 쓴 시입니다. 다윗이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자 하나님께서 먹을 것도 주셨고 잠잘 곳도 주셨습니다. 우리가 고백하면 하나님은 들어주십니다. 셋째 선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잠언 6장 2절을 통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입으로 선포하면 얽히기도 하고 잡히기도 합니다. 풀리기도 하고 놓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선포한대로 하나님은 이루어주십니다. 넷째 명령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요한복음 1장 12절을 통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을 통치할 권세를 위임 받았습니다. 교통경찰이 국가로부터 권세를 받았기 때문에 차를 정차시킬 수 있듯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았기 때문에 세상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명령하는 말을 해야 할까요? 사탄과 싸울 때 명령하는 말을 하십시오. 하나님은 마태복음 4장을 통해 사탄이 시험을 해오자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고 명령하셨습니다.(마4:10) 그러자 사탄은 물러가고 천사들이 시중들었다고 합니다. 사탄이 공격해 올 때 우리도 명령해서 물리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야고보서 4장 7절을 통해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낙심시키려는 마귀를, 우리 가정을 파괴하려는 마귀를, 우리 직장을 분열시키려는 마귀를, 우리 교회를 침체시키려는 마귀를 발로 차서 쫓아내야 하겠습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명령하는 말을 하십시오. 하나님은 마가복음 4장을 통해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널 때 큰 광풍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가 잠기게 되자 제자들이 살려달라고 간청합니다. 예수님은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잠잠 하라. 고요 하라.” 고 명령하시자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막4:39)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위기가 닥치더라도 거지처럼 “해 주시옵소서” 라고 간구 기도할 것이 아니라 왕자처럼 “할 지어다” 라고 명령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질병을 고칠 때도 명령하는 말을 하십시오. 하나님은 마가복음 1장을 통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자 그의 집으로 들어가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고 명령하셨습니다. 소녀는 일어나 걸었습니다. 우리가 명령하면 병이 낫게 됩니다. 최근 신경의학계에선 뇌 속의 언어중추신경이 모든 신경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치료에 적용하여 언어치료법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당뇨병 환자인 경우 “나의 혈당치는 정상이 되어가고 있다.” 고 말하면 정상이 된다고 합니다. 미국 위스콘신 주의 한 병원에서 말기 암 환자에게 언어치료법을 적용했더니 3주후 진통이 말끔히 사라졌고 암도 흔적도 없이 깨끗이 사라졌다고 합니다.(박필, 당신의 말이 기적을 만든다, 32-33쪽) 우리나라는 과거에 부정적인 말을 많이 했습니다. ‘배고파 죽겠네.’ ‘아파 죽겠네.’ 죽겠다고 하면 죽을 일이 생깁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믿음의 말-우리 창대교회는 포항에서 제일가는 감리교회가 됩니다. 라고 선포하여 기적을 체험하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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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2:1-10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

영국에 사는 어떤 청년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청년은 재산을 다 털어 뱃삯을  지불하고 여러 날을 가야하기 때문에 남은 돈으로 식료품을 구입했습니다. 드디어 배가 힘찬 뱃고동 소리와 함께 대서양을 향해 물살을 헤치고 나갔습니다. 청년은 드넓은 바다를 볼 때마다 새로운 희망이 솟아올랐으나 식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릴 때는 기분이 침울해졌습니다. 다른 승객들은 여유가 있어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나 청년은 돈이 없어 한쪽 구석에 가서 말라비틀어진 빵으로 허기를 달랬기 때문입니다. 청년은 그럴 때마다 지금은 비록 가난하지만 나중에는 크게 성공하리라 다짐했습니다. 마침내 배가 미국 동부해안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승무원이 청년에게 다가와 배를 승선해 준데 대해 감사를 표시하고 혹시 항해 중에 기분 나쁜 일이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청년은 없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승무원은 안심하며 “그런데 왜 식당에 오셔서 함께 식사를 드시지 않고 여러 날을 혼자서 식사를 하셨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청년은 힘없이 “뱃삯을 지불하고 나니까 음식 사먹을 돈이 없어서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승무원이 놀라며 “손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손님이 사신 뱃삯에는 하루 세끼 식사비용이 다 포함됐는데요.” 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청년이 뱃삯에 식사비용이 포함 된지 몰라 맛있는 식사를 하지 못했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를 몰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가진 권세는 언제 주어질까요? 하나님은 요한복음 1장 12절을 통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시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갖게 됩니다. 이제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포항시장의 아들이라면 포항에서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포항시장인데 누가 건드리겠습니까? 우리는 포항시장보다 높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요 딸입니다. 왕자요 공주입니다. 우리가 왕자요 공주인데 누가 우리를 건드리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시시한 사람이 아닙니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존귀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어서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에베소서 2장 4-6절을 통해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게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함께’라는 단어가 세 번 나오는데, 하나님은 예수님과 함께 우리를 살리셨고, 예수님과 함께 우리를 부활시키셨고,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베소서 1장 20-22절을 통해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계십니다. 예수님과 연합한 우리도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있습니다. 오른편은 중앙을 대신하는 자리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늘과 땅을 통치할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예수님과 연합한 우리도 하늘과 땅을 다스릴 권세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청년이 뱃삯에 배를 타고 가는 자격만 있지 식사를 하는 권세가 있는지 몰랐듯이, 하늘나라를 가는 자격만 있지 하늘과 땅을 다스릴 권세가 있는지 몰라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구원의 감격은 있었지만 세상을 이기며 살지 못했습니다. 마귀의 공격에 쩔쩔 맸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를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은 요한일서 4장 4절을 통해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그들과 세상에 있는 자’는 에베소서 2장 2절에 나오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다시 말해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입니다. 사탄입니다. ‘너희 안에 계신 이’는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과 연합한 우리도 사탄을 이겼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탄을 이긴 줄도 모르고 겁내고 있으니까 사탄이 도망가지 않고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아파트에서 나오고 작은 개 한 마리가 졸졸 따라오더랍니다. 아주머니가 개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나무라도 개는 꼬리를 흔들 뿐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버스가 도착했고 아주머니가 버스를 타려는데 개도 버스를 타려하자 아주머니가 개를 발로 뻥 차며 고함을 치자 개가 돌아갔다고 합니다. 우리가 담대하게 꾸짖으면 마귀는 도망가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하와는 마귀에게 속아 선악과를 따 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가인은 마귀에게 넘어가 아벨을 죽이고 방랑자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마귀에게 흔들려 밧세바와 간음을 하고 그 아이가 죽는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마귀가 들어와 재산을 감추었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도 마귀는 굶주린 사자처럼 우리를 공격하려고 호시탐탐 노립니다. 마귀가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공격하더라도 아주머니가 개를 발로 차듯이 마귀를 발로 차서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내 힘이 아니라 예수님이 위임해 주신 권세로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야고보서 4장 7절을 통해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을 낙심시키려는 마귀를, 여러분의 가정을 파괴하려는 마귀를, 여러분의 직장을 분열시키려는 마귀를, 여러분의 교회를 침체시키려는 마귀를 발로 차서 쫓아내야하겠습니다. 둘째, 환경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모든 병을 마귀가 주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병을 통해 마귀가 장난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서 53장 5절을 통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고쳐주셨는데 누가 우리를 병들게 하겠습니까? 풍성한 교회를 다녔던 서기석 성도님의 간증을 보니 바이러스성 콧물감기로 화장지 한두 통을 금방 허비했는데 베드로전서 2장 24절 말씀처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라는 말씀에 의지해 병을 꾸짖고 쫓아내는 기도를 했더니 회복됐다고 합니다./ 또한 물질 문제가 꼬여 고생할 때 고린도후서 8장 9절 말씀처럼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풍성해지기를 기도했더니 돈줄이 봄에 눈이 녹듯이 풀렸다고 합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차를 운전하다가 배터리가 나갔는데 손을 얹고 기도했더니 시동이 걸렸고 보일러가 고장 나 손을 얹고 기도했더니 작동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를 가진 우리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하나님은 빌립보서 4장 19절을 통해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고 말씀하셨으니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신다고 믿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채워주실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지게 되었고 하늘과 땅을 다스릴 권세를 위임받았으니, 부정적인 생각을 주는 마귀를 쫓아내고 우리를 괴롭히는 환경을 다스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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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제국 감리교
비니터 햄튼 지음, 이은재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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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국 성공회의 작은 종교모임에서 출발한 규칙과 절제를 강조하는 메도디스트가 유럽과 미국을 거쳐 어떻게 세계적인 교파로 성장해 갔는지를 다룬다. 그렇다고 이 책이 좁은 의미의 감리교회사를 다루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넓은 의미의 감리교 다시 말해 웨슬리안 메도디즘이 발흥하면서 어떻게 성결교와 오순절 교회와 나사렛 교회와 구세군으로 분열돼 갔는지를 다룬다. 그러므로 이 책은 존 웨슬리가 주인공이 아니고 감리교 신앙부흥 운동에 기여한 하층민부터 지도자까지, 여성에서 남성까지, 백인에서 흑인과 인디언까지를 역사의 주역으로 다룬다. 저자는 서론을 통해 이 책의 연구 방법론을 간략하게 기술한다. 서론은 건물조감도나 다름없다. 서론을 읽으면 전체 내용이 보인다. 저자는 연대기를 통해 1885년까지 감리교의 발전과 분열상을 다룬다. 1884년은 우리나라에 선교를 시작한 해이며 아프리칸 감리교 감독교회가 여성에서 지역설교자 자격을 준 해였다. 감리교는 카리스마와 사회정의가 균형을 이룬 교파다. 감리교는 성령운동이었고 사회참여운동이었다. 감리교에 대한 폭넓은 식견을 갖춘 책을 읽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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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2:13-22 옛 성전과 새 성전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교회도 상가교회이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집입니다. 우리가 설날과 추석에 고향을 찾아가듯이, 유대인 성인남자들은 1년에 3번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예루살렘을 순례하였습니다.(신16:16) 3대 절기가 되면 예루살렘은 시골에서 올라온 농부들과 해외에서 찾아온 동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고향을 갈 때 선물을 가져가듯이, 유대인들은 성전을 갈 때 짐승을 제물로 가져갔습니다.  짐승 중에서도 처음 난 것 다시 말해 가장 좋은 것을 가져갔습니다.(신12:5-7) 예수님 당시에 북부인 갈릴리 지방에서 남부인 예루살렘까지 걸어가려면 사흘 정도가 걸렸는데 사람 혼자서 걸어가기도 힘든데 짐승을 끌고 가려면 불편하다 보니 예루살렘 근처에 사는 농부들이 비공식적인 시장을 만들어 순례자들에게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을 팔았습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이 순례자들의 편의를 위한다고 예루살렘 성전 뜰에다 짐승들을 팔 수 있는 공식적인 시장을 만들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러분이 순례자라면 예루살렘 근처에서 짐승들을 사가지고 성전 안까지 들어가겠습니까? 아니면 성전 뜰에서 사겠습니까? 성전 뜰에서 사겠죠. 그렇다면 짐승들의 가격이 예루살렘 근처가 비싸겠습니까? 성전 뜰이 비싸겠습니까? 성전 뜰이 비싸겠죠. 대구 동부정류장에 가보니 똑같은 물건도 정류장 안에서 파는 가격과 밖에서 파는 가격이 달랐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성전 뜰에다 상인들에게 가게를 분양해주고 이권을 챙겼습니다. 상인들은 가게세도 내야하고 뇌물도 주어야하고 이익도 남겨야 하다 보니 짐승들을 비싸게 팔았습니다. 순례자들은 짐승들을 끌고 오려면 불편하다보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값이 비싸도 짐승들을 샀습니다. 짐승들을 파는 상인들도 폭리를 취했지만 환전상들은 날 강도나 다름없었습니다. 유대인 성인남자들은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의 성전 세를 내야 했습니다.(출30:13-14) 예수님 당시에 로마제국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 화폐를 가진 사람들은 이스라엘 화폐로 교환을 해야 했습니다. 환전상들도 가게세도 내야하고 뇌물도 주어야하고 이익도 남겨야 하다 보니 터무니없는 환율을 매겼습니다. 우리나라도 남대문시장에 가면 암달러상들이 있는데 불법이다 보니 환율을 비싸게 매긴 다고하네요. 차라리 사설환전소가 낫다 는 군요. 순례자들은 성전 세를 내야 했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돈을 바꿨습니다. 순례자들은 상인들이 폭리를 취해도 종교지도자들이 뒤를 봐줬기 때문에 불평도 하지 못했습니다. 순례자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성전을 찾아왔다가 기분이 상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나라는 국회의원들이 국회 내에서 폭력을 휘둘러도 처벌하지 못하듯이, 유대인들은 종교지도자들이 성전 안에서 불법을 저질러도 처벌하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들의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이자 메시야가 도래한다고 알려졌으나 이권에 눈먼 종교지도자들과 돈을 탐하는 상인들로 부패해 갔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돈 때문에 타락해 가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이 가까워오자 갈릴리 지방 가버나움에서 유대 지방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요2:12-13) 유월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다 해방된 날이었습니다.(출12:1-14) 유대인들은 일주일간 절기를 지켰는데 유월절은 하루였고 나머지는 무교절이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유월절이 3번 언급되는데(요2:13, 6:4, 11:55) 이것을 보고 예수님이 3년간 사역하셨다고 추정합니다. 예수님이 성전 안에 들어가시니 한쪽에서는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돈을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성전이 아니라 이권을 주고받는 타락한 시장으로 변모했습니다. 예수님은 분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이나 소를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을 꾸짖으셨습니다.(요2:15-16) “이것들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과 상인들에게 분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분노는 의로운 분노였습니다. 예수님은 무교절이 되면 누룩을 넣지 않고 빵을 만들듯이, 타락한 성전을 깨끗하게 정화시키려 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아 가려운 데를 긁어 주었다고 시원해 했을 겁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권력을 가졌고 상인들은 돈을 가졌습니다. 이들은 여론을 움직이는 오피니언 리더였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에게 대항하였습니다.(요2:18)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이들은 예수님이 무슨 권리가 있어 짐승을 쫓아내고 상을 엎었는지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는다고 말했습니다.(고전1:22) 유대인들은 표적을 보여줘야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다시 말해 성경을 믿지 않으면 비록 죽은 자가 살아난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고 다시 말해 표적을 보여줘도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16:31)

예수님이 제안하셨습니다.(요2:19)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어이없어했습니다.(요2:20)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유대교의 중심은 성전인데 첫 번째 성전은 솔로몬이 건축했으나 바벨론에 멸망하면서 파괴되었고, 두 번째 성전은 스룹바벨이 건축했으나 그리스인들에게 파괴되었고, 예수님 당시에 헤롯 대왕이 세 번째 성전을 개축하고 있었습니다. 헤롯 대왕이 주전 20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그가 죽은 지 한참후인 주후 64년에 완공하였으니 84년간 걸렸는데 짐승을 내쫓고 상을 엎으신 당시에 46년이 되었으니 주후 27년경 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 번째 성전은 완공된 지 몇 년도 안 돼 로마제국에 의해 파괴되었고 지금은 서쪽 성벽이 남았습니다. 이 성벽은 유대가 멸망하면서 로마 군인들이 유대인들을 무참하게 학살하는 장면을 보고 밤이 되면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통곡의 벽이라고 불렸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헤롯 대왕이 수십 년 동안 개축한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재건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성전 된 자기 육체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2:21) 우리의 몸도 성전이고 교회도 성전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이 파괴되었듯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성전이 재건되었듯이 우리를 살리시려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유대교의 옛 성전은 무너졌지만, 새 성전인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 성전에서 짐승을 제물로 드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피로 단번에 죄를 씻으셨기 때문입니다.(히9:12) 짐승의 피로도 우리의 죄를 씻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는 우리의 죄를 얼마나 깨끗하게 씻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옛 성전에서 죄를 지으면 짐승을 제물로 드려 죄를 용서받고 또 죄를 짓고 제물을 드리고를 반복했습니다. 짐승의 피는 한 번의 효과가 있었지만 예수님의 피는 죄를 영원토록 씻는 효과가 있습니다.(히9:26)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히4:14-16) 예수님은 하나님이자 사람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문제를 마음 아파하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이제 새 성전 되신 예수님께 담대히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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