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7:11-19 감사 그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질병은 암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7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루 평균 671명이 죽었는데, 악성신생물(암)으로 185명(27.6%), 뇌혈관 질환으로 81명(12%), 심장 질환으로 59명(8.8%), 고의적자해(자살)로 34명(5%), 당뇨병으로 31명(4.6%), 운수사고 21명(3.1%)이 죽었습니다. 암은 전체 사망자의 4분의 1이 넘었습니다. 1,000명 중에서 276명이었습니다.

1. 그렇다면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떤 병을 가장 무서워했을까요? 나병을 가장 무서워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살갗에 부스럼이나 뾰루지나 얼룩이 생기면 혹시 나병인가 싶어 제사장에게 데려갔습니다. 제사장은 피부를 살펴보고 나병이 아니면 ‘정하다.’고 선언하고 나병이면 ‘부정하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제사장이 검진하다 보니 한센병도 나병으로 판정하였고, 악성피부병도 나병으로 판정하였습니다. 나병으로 판정하면 입은 옷을 찢어버리고 머리를 풀어헤쳤습니다. 사람들이 가까이 오면 손가락으로 코밑수염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고 소리 질렀습니다. 나병에 걸리면 마을에서 쫓겨났고 회당에도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나병환자는 육체적으로 고통 받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되었고, 종교적으로 버림받았습니다. 나병환자들은 마을 밖에서 집단생활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소록도에서 집단생활을 하였습니다. 영화 [벤허]를 보면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나병에 걸려 집단생활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병은 암처럼 전염될 확률은 적었으나 에이즈처럼 격리되었습니다.

2. 나병환자는 격리되어 집단생활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남부인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북부인 갈릴리와 중부인 사마리아의 경계를 지나셨습니다. 집단생활을 하던 나병환자들 10 명이 예수님을 보고 목이 터져라 소리 질렀습니다.(12-13절)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병을 고쳐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14절)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예수님은 누가복음 5장 13절을 통해 나병환자에게 안수 기도도 해주시고 병이 나았다고 선언도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안수 기도도 해주지 않으셨고 병이 나았다고 선언도 해주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제사장들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개떡같이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나병환자들은 찰떡같이 알아들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병이 나았으니 제사장들에게 가서 진단을 받아라.’ 로 이해하였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제사장들에게 찾아갔습니다. 믿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9장 23절을 통해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적은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3. 나병환자들은 믿음으로 병을 고쳤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제사장들에게 걸아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나병환자들은 너무 기뻤습니다. 영화 [벤허]에서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면서 흘리신 고귀한 피가 빗물에 씻겨 내려와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적시는 순간 나병이 나았습니다. 벤허 가족은 다시 모여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병환자 9 명은 마음이 급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나병이 나으면 산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찾아 갔습니다.(레14:2-4) 제사장은 새 한 마리는 흐르는 물 위의 질그릇 안에서 잡고 피를 빼고 다른 새와 홍색 실과 백향목과 우슬초를 핏물에 찍어 나병환자에게 일곱 번 뿌리고 ‘정하다.’고 선언하고 새를 날려 보냈습니다. 나병환자는 병이 나았다고 판정받았으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회당에도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9 명은 ‘정하다.’는 선언을 듣고 싶어 제사장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1 명은 제사장에게 가지 않고 예수님에게 돌아왔습니다. 제사장의 ‘정하다.’는 선언보다 예수님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4. 감사한 사마리아인은 영혼까지 구원받았습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에게 돌아온 1 명은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제사장들에게 간 9 명은 유대인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이스라엘 사람과 이방 사람의 혼혈인이었습니다. 유대인이 경멸하는 인종이었습니다. 요즘은 국제 결혼하는 가정이 많아 혼혈아들이 많아졌지만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군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들은 온갖 차별을 받았습니다. 최근에도 그랬으니 민족주의가 강한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을 얼마나 멸시하고 천대했겠습니까? 그러나 유대인들은 ‘정하다.’는 선언을 듣고 싶어 제사장에게 찾아갔고, 사마리아인은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기 위해 예수님에게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감사를 잊은 유대인들이 안타까우셨습니다.(17-18절)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예수님은 감사하는 사마리아인이 기특하셨습니다.(19절)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9명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육신의 질병을 치유 받았습니다. 그러나 1명의 사마리아인은 말씀을 믿고 육신도 치유되었고 감사를 하여 영혼도 치유 되었습니다. 육신이 치유되면 병이 낫지만 영혼이 치유되면 구원을 받습니다. 9명의 유대인들은 작은 것은 얻었지만 1명의 사마리아인은 큰 것까지 동시에 얻었습니다. 목사님들이 보는 잡지에 만화 만평이 나왔습니다. 저울이 있는데 기울어져 있더군요. 한쪽의 저울추는 올라갔고 한쪽의 저울추는 내려같더군요. 내려간 쪽에는 ‘간구’라고 쓰여 있었고 올라간 쪽에는 ‘감사’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간구는 무거워서 내려갔고 감사는 가벼워서 올라갔습니다. 우리는 아쉬워서 간구는 많이 하지만 평소에 감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저울추는 어떻습니까? 간구와 감사와 균등합니까? 아니면 기울어져 있습니까? 우리의 저울추가 균형을 이루거나 아니면 감사 쪽으로 기울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고 우리가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감사할 일들을 더 많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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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6일 주일 오후에 정선희 사모와 조원자 성도에게 일대일 제자양육 성경공부 첫 번째 주를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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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3일(월)부터 7일(금)까지 사랑의 교회 수양관에서 제81기 제자훈련 지도자세미나를 참석하고 제자훈련의 열정을 전수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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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0:10 다리전도란?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모양)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1장 27절을 통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듯이 사랑하셨습니다. 질문 1. 그렇다면 부모님이 자녀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부모와 자녀 간의 정상적인 관계인 효도를 원할 겁니다. 그 다음은 자녀가 잘 되는 것을 원할 겁니다. 즉 부모와 함께 풍성한 삶을 사는 것을 원하지요. 하나님도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과 정상적인 관계 속에서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질문 2. 그러나 자녀가 부모에게 반항하고 불순종했습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네, 불효라고 합니다. 하나님도 인간을 창조하시고 가장 완벽한 생활공간인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셨는데 인간이 하나님께 반항하고 불순종했습니다. 그것을 죄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서 59장 2절을 통해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라고 말씀합니다. 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은 후손에게도 유전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3장 23절을 통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모두 죄를 저질러 죄인이 되었습니다.

질문 3. 여러분은 자신이 완전하다고 생각합니까? 아닐 겁니다. 우리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겁니다. 이 말씀에 동의합니까? 동의할 겁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6장 23절을 통해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죄를 지으면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서 9장 27절을 통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인간은 한번 죽고 그 다음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요한계시록 21장 8절을 통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말씀합니다. 죄를 지으면 육적으로도 한번 죽고 영적으로도 또 한번 죽습니다. 둘째 사망은 지옥에 던져지는 겁니다. 지옥은 죽을 라야 죽을 수 없는 영원한 형벌의 장소입니다.

질문 4. 여러분은 혹시 잘못하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까? 인간은 죄를 저지르면 본능적으로 죄책감을 느낍니다. 또한 인간은 영원한 세계를 사모하는 본능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도서 3장 11절을 통해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영원한 세계를 가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종교를 통해서 영원한 세계를 깨달으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선행을 통해서 좋은 데를 가려고 했고, 어떤 사람은 교육을 통해서 완전한 인간을 만들려 했고, 또 어떤 사람은 물질을 통해서 영원한 만족을 누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도행전 4장 12절을 통해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종교로도, 선행으로도, 교육으로도, 물질로도 영원한 세계에 이를 수 없습니다. 여러분 등산해 보신 적 있죠? 어떤 사람이 등산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 엄청난 고생을 하고 내려오다 한번 잘못 간 등산길은 되돌아올 수 있지만 한번 잘못 간 인생길은 돌이킬 수 없다고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잠언서 14장 12절을 통해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자기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자기가 간 길에 대해 책임도 져야 합니다. 우리는 깜깜한 밤을 항해하는 배처럼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때 등대에서 빛을 비추어 주듯이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입니다.

질문 5. 여러분은 부모님에게 회초리를 맞아본 적이 있습니까? 아마 있을 겁니다. 부모님이 우리가 미워서 때리지 않았듯이 하나님도 우리가 죄를 저질렀어도 미워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요한복음 3장 16절을 통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6절을 통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5장 8절을 통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었을 때에 예수님을 죽이심으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전서 3장 18절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돌아가셔서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하나님은 고린도전서 15장 3-4절을 통해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질문 6. 여러분 부활은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말인데 이 사실이 믿어집니까? 솔직히 안 믿어지죠. 영국에 루이스 월리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신앙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씀은 특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불신앙을 가지고 군인의 길에 들어서 대영제국의 삼성장군이 되었습니다. 그는 역사에도 박식했고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장군으로서의 명예와 역사학자로서의 지식과 문학도로서의 재능을 발휘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거짓이라고 증명하려고 연구에 몰두하였습니다. 2년 후 그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검토해보니 예수님의 부활은 허구가 아니라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부활을 주제로 두 가지 책을 썼습니다. 첫 번째 책은 [무덤의 돌은 어디에?]였고 두 번째 책은 [벤허]였습니다. 여러분 벤허아시죠? 불후의 명작 벤허는 이렇게 탄생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역사의 분기점입니다. BC는 예수님 탄생 이전이고 AD는 탄생 이후입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죄를 씻기 위해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요한복음 5장 24절을 통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심판을 받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질문 7.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고 심판을 받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영원한 삶을 선택하겠죠? 그렇죠? 하나님은 요한복음 1장 12절을 통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겁니다. 영접은 예수님을 내 마음에 초청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요한계시록 3장 20절을 통해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려면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10장 10절을 통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시겠습니까? 그러면 저를 따라해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님께서 저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음을 믿습니다. 이제 저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맞이합니다. 저희 마음에 들어오시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주옵소서. 이제는 저희의 생각과 욕심을 버리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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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6:31 사영리란?

설악산 등 중부지방을 곱게 물들였던 단풍이 이제 남부지방을 울긋불긋하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어제부터 백양사 단풍 축제가 열렸다 네요. 단풍은 기온의 변화로 식물의 녹색 잎이 빨간색, 노란색, 갈색 등으로 변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초봄에 새잎이 푸릇푸릇 싹트고 엽록소가 생기면서 신록이 우거지다가 가을에 엽록소가 파괴되어 자기분해과정 중에 안토시안이 생성되는 종은 빨간색과 갈색 단풍이 들고, 안토시안이 생성되지 않는 종은 녹색에 가려졌던 노란색이 나타나면서 노란 단풍이 든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연계에 자연법칙이 있듯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도 영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사영리란 4가지 영적 원리를 가리킵니다. 제1원리는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며, 나를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요한복음 3장 16절을 통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여서까지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은 요한복음 10장 10절 하반 절을 통해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는 계획을 가지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2원리는 우리는 죄에 빠져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 수 없고, 또 그것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3장 23절을 통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한 계획을 가지셨지만 우리는 죄에 빠져 있습니다. 본래 사람은 하나님과 사귀며 살도록 창조되었으나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랐습니다. 하나님 없이 제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은 적극적일 때는 하나님께 반항하게 되며, “하나님, 믿으세요.”라고 하면 “웃기지마, 하나님이 어디 있어!”라고 신경질 부리거나, 소극적일 때는 하나님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되는데, “예수.”라고 하면 “관심 없어요.”라고 싸늘하게 반응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죄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데 사람은 죄에 빠져 있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커다란 간격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선행을 베풀거나, 불우 이웃 돕기를 하거나, 철학에 빠지거나, 세상의 이치를 알아보려고 노력하거나, 종교를 가지는 등,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고 하는 등, 자기 힘으로 하나님께 도달하여 풍성한 삶을 누려 보려고 애쓰지만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벌어진 틈이 이어지지 않습니다. 잘못된 길로 가기 때문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는 겁니다.

제3원리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게 되며, 또 그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5장 8절을 통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신 것으로 그치지 않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6절을 통해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시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흘 만에 살아나셔서 12사도에게도 보여주셨고 500여명의 제자들에게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6절을 통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서 우리의 죄 값을 담당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리를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나 이상의 3가지 원리를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제4원리는 우리는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게 되며, 또 그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요한복음 1장 12절을 통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을 통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잘아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을 통해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초청하여 영접하야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뜻은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내가 나의 주인인 인생을 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주인일 때는 모든 일을 나 자신이 주관하므로 자주 좌절과 혼란에 빠지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일 때는 모든 일을 그리스도께서 주관하시므로 하나님의 계획과 일치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기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중심에 들어오시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아시기 때문에 입으로 하는 말보다는 중심의 태도를 보고 싶어 하십니다.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주 예수님, 나는 주님을 믿고 싶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 죄 값을 담당하시니 감사합니다. 지금 나는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합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를 다스려 주시고, 나를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기도가 여러분의 마음에 드십니까? 그렇다면 바로 지금 이 기도를 드리십시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약속하신 대로 여러분 안에 들어오실 것입니다. 여기서 꼭 기억할 시살은 감정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믿음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지 우리 자신의 느낌에 근거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특별한 느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없을 수도 있으니 안심하십시오. 이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영접한 결과,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들어와 계십니다.(계3:20,골1:27) 2. 여러분의 모든 죄는 사함을 받았습니다.(골1:14) 3.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요1:12) 4. 여러분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요5:24) 5.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새 삶이 시작되었습니다.(요10:10,고후5:17) 여러분의 생애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은 없었습니다. 바로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행하신 일에 대하여 감사하십시오. 감사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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