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계절 1
도나 타트 지음, 이윤기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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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귀찮아서 일부러 벽돌책 위주로 독서하는 요즘이다. 이제는 예전처럼 치열하게 읽고 분석한 리뷰를 쓰고 싶지가 않다. 인사이트를 얻든 못 얻든 그냥 순간의 감정에나 집중하자는 생각뿐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쫓기는 듯한 독서를 해왔었는데 이제서야 겨우 강박에서 벗어난 기분이 든다.


<황금 방울새>로 유명한 도나 타트의 데뷔작인 <비밀의 계절>을 푹 빠져 읽었다. 이분의 작품 특징이 뭐냐면, 굉장한 흡인력을 뽐내는 반면에 스토리는 정작 별거 없다는 데에 있다. 실망할 게 아니라, 바꿔 말하면 대단한 이야기 꾼이라는 뜻이다. 생각해 보라. 스토리도 쏘쏘하고 필력도 그냥저냥인데 이상하게 재미있다? 소설가로써 특급 칭찬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자질과 능력에 비해 작품 활동이 너무 저조해서 참 안타깝다.


햄든 대학의 그리스어 학과생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편입한 주인공 리처드는 기똥차게 수업하는 교수 줄리언과, 하나하나 매력적인 5명의 학생들에게 매료된다. 다 그렇듯 주인공의 집안도 복잡했기에 차라리 대학 생활이 퍽 즐겁고 좋았더랬다. 다른 언어보다도 장벽이 높은 그리스어를 배우는 친구들의 지적 수준은 역시나 예사롭지 않았다. 다행히 리처드는 그 5명과 허물없는 사이가 된다. 헌데 알면 알수록 얘네들, 묘하게 구린내가 진동한단 말이지?


누가 보면 다들 죽마고우처럼 보이지만 각자 다른 이해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개성 강한 이들을 하나로 묶는 매개체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게 주인공의 숙제 아닌 숙제였다. 그러나 갓 굴러들어 온 돌은 친구들의 속내를 묻기는커녕 따돌려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여하튼 모두에게 쎄함을 느꼈지만 전부 덮어두고 지내던 중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어떤 그리스 종교 의식을 치른 4명이 완전히 정신 나갔다가 겨우 돌아왔는데, 눈앞에 한 남성이 죽어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4명의 몸과 옷은 피투성이가 돼있더란다. 이들 중 누구도 그 과정을 기억하지 못하였고, 시신을 놔둔 채 현장을 탈출해버렸다.


그 현장에 없었던 주인공은 내용을 건네듣고 멘붕이 온다. 그리고 또 한 명, 버니는 워낙 시한폭탄이라서 아무도 그에게 있었던 일을 말해주지 않는다. 허나 눈치 백단의 버니는 그 4명을 아슬아슬하게 공격하고 돈을 타내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온갖 시달림과 노이로제로 인해 뚜껑이 열린 4명은 사고로 위장하여 버니를 죽인다. 버니의 실종으로 학교와 도시는 아사리판이 되었고, 가해자들은 살얼음판을 걷게 된다. 첫 번째 사건 때와 달리 버니 사건 현장에 있었던 리처드도 범죄자가 되고 말았다.


머리들이 좋은 덕분에 용의자가 되는 일은 없었지만, 그 후로 다들 소원해지거나 편집증과 술 중독에 빠지는 등 이전의 정겨움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러다 전부 사이가 틀어지고 마는데, 이들을 중재하던 리처드는 각자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그 추악함에 무너져버린다. 하지만 친구들을 너무도 사랑했고, 이미 자신도 내뺄 수 없는 입장인지라 좋든 싫든 끝까지 함께 가야만 했다. 뒤 내용은 생략키로 하고, 보다시피 이렇다 할 스토리는 없는 작품인데 ‘비밀‘이라는 테마를 훌륭히 녹여냈다는 점에서 박수를 주고 싶다. 비밀을 간직한 주변인들의 미스터리한 기운과, 거기에 노출된 주인공의 멘탈 싸움이 꽤나 볼만했던 작품이었다.


분명 잘 읽었는데 이렇게 적고 보니 너무 야박한 평을 주었나 싶다. 아무튼 재미는 충분하므로 읽어봐도 좋겠다. 도나 타트는 대표작 <황금 방울새>만 읽고 끝내기엔 많이 아쉬운 작가다. 이 여름이 가기 전에 만나볼 것을 권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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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받은 사람들 동서문화사 월드북 219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채수동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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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들이 거의 지나가서 요즘에는 부지런히 독서를 하고 있다. 그런데 반대로 글쓰기는 거의 내려놓다시피 하고 있다. 애써 여름 탓을 해보지만 그냥 게을러진 것뿐이다. 세월이 갈수록 읽기와 쓰기의 병행이 쉽지가 않다. 글쟁이들의 예고 없는 활동 중단을 볼 때마다 내심 안타까웠는데 이젠 알 것도 같다. 이대로 계속 가면 나님도 곧 절필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못다 읽은 책은 너무 많고, 글쓰기가 주는 재미는 이미 볼 만큼 봤다. 무엇보다도 전두엽이 고장 났는지 더 이상 참신한 문장이 안 나온다. 올해 들어 쓴 글들을 둘러보면 하나같이 평범한 인상밖에 못 주고 있다. 따라서 좋은 글이 나오려면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며 도스토옙스키를 읽었건만 똑같이 막막할 따름.


주인공이라기보다는 화자에 가까운 바냐는 시골 귀족인 니콜라이 집안에서 자라난다. 커서는 소설가가 되어 나날이 명성을 더해가는 행운을 얻었으나, 니콜라이의 딸인 나타샤의 마음을 얻는 데엔 실패한다. 뭐 그런갑다 하고 평생 친구나 먹자 했더니, 곧바로 웬 놈팽이와 사랑의 도주를 해버린 그녀였다. 그것도 제 부친의 철천지원수요, 둘도 없는 악마인 어느 공작의 아들놈과 말이다. 오호라, 이것은 나님이 좋아하는 금지된 사랑 얘기인가 했더니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나타샤는 제 사랑을 반대하는 부모를 떠나와 남남처럼 살아간다. 그녀가 사랑한 공작의 아들은 요즘 말로 하면 뇌순남이었는데, 이런 놈에게 밀린 것도 모자라 그의 친구가 되면서까지 이 커플을 응원해 주고 있는 바냐도 참, 호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더라.


바냐는 한 노인의 장례를 치러주고, 그 노인이 살던 방을 계약한다. 그리고 얼마 뒤에 그 집을 찾아온 노인의 손녀 넬리와 어찌어찌해서 같이 살게 된다. 바냐는 이 소녀를 달래서 니콜라이 부부의 양녀가 되게끔 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되면 부부는 딸의 부재를 메꿔줄 사람이 생기고, 가족이 생긴 넬리는 생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그러나 많은 학대와 압제 속에 자라온 넬리는 바냐 외에 마음을 열지 않았고, 의사는 소녀가 조만간 질병으로 죽을 거라 했다. 치료해 주고 싶어도 손쓸 방법이 없었고, 바냐 또한 겨우 입에 풀칠하는 수준이라 그냥 데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묵언수행하던 소녀는 나타샤를 둘러싼 이야기를 듣고, 나중엔 그들 부녀관계를 화해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큰 그림을 위해 초반부터 빌드 업을 쌓아 올린 저자의 내공에 그저 감탄만 나온다.


이 대서사의 중심에는 모두를 쥐락펴락하는 공작이 있다. 바냐 일행들과 앙숙관계인 것처럼 묘사되지만 공작은 꽤나 신사답게 행동하는 편이다. 또 서로에게 윈윈하는 제안과 해답을 제시하기도 하는, 그렇게 막돼먹은 캐릭터가 아니다 보니 오히려 바냐와 주변인들이 과잉반응을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물론 공작의 꿍꿍이를 알아채서 그랬겠지만, 나였다면 그냥 공작이 하자는 대로 좋게좋게 넘겼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물리적인 학대를 받았던 넬리와 달리, 바냐 일행은 공작에게 정신적인 학대를 받았다고 하겠다. 자세히 말 안 해도 대강 느낌이 올 것이다. 근데 한 편으로는, 이 작품에서 멀쩡한 사람은 공작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알고 싶으면 읽어보시라.


좀 더 길고 성의 있는 리뷰를 쓰고 싶은데 그만한 여력이 없다. 아무래도 샘물이 막혔거나 고갈된 듯하다. 슬프지도 않은 걸 보면 정말 할 만큼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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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비행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6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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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쳤지, 바로 앞전에 프랑스 문학을 그렇게 깠으면서 연달아 읽었다니. 그나마 분량이 짧아서 다행이었지, 프랑스 문학을 자주 읽었다간 독서 슬럼프가 찾아올 것만 같다. 생텍쥐페리의 대표작인 <야간비행>은 자전소설까진 아니지만 비행 조종사였던 시절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니 얼추 맞지 않을까나. 그래서 당연히 파일럿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거늘, 그보다는 항공사의 관리소장이 주인공인 작품이어서 갸우뚱했다. 작품 얘기를 하기 전에, 생텍쥐페리는 나님이 칠색 팔색 하는 배경 묘사로 분량 잡아먹는 짓거리를 하지 않아서 맘에 든다. 사실 이이의 작품들은 전쟁 통에 썼다 보니 자연스레 ‘용건만 간단히‘ 스타일이 된 게 아닐까 한다.


항공우편회사의 관리소장인 리비에르는 전형적인 보스 기질의 상사이다. 현대에 와서는 이 같은 ‘보스‘가 아닌 ‘리더‘가 필요하다고들 하지만, 항공사처럼 위험천만한 분야와 직군에서는 엄격한 규율로 다스리는 게 맞다고 생각된다. 겉보기엔 냉정하고 융통성 없게 보여도 소장은 부하들과 일터의 모든 것을 아끼고 사랑했다. 단지 그런 애정을 드러내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순 없었기에 반강제적으로 냉혈한이 되었을 뿐이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 말라는 격언처럼, 소장은 오직 부하들의 잘못과 실수만을 견책하였다. 결단코 사람 자체를 깎아내린다거나 무능함을 걸고넘어지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소장의 속내를 알 길이 없는 직원들이, 상사가 어떻게 잘잘못들을 책임지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거였다. 계속 그런 식이라면 모든 사건사고의 총책임을 진다 한들 지지는커녕 납득조차 받지 못할 것이었다. 자신만의 경영철학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여서는 안될 텐데, 왜 그렇게까지 악역을 자처하려는 건지 모르겠더라.


국제 우편기를 조종하는 야간 비행사들은 언제나 대 자연의 공포를 느낀다. 태풍과 눈보라, 소용돌이, 뇌우 등등 비행사의 순간적인 판단과 대응으로 모든 상황을 헤쳐나갈 따름이다. 하지만 소장은 FM대로 하지 않는 비행사들을 다그치기 바쁘다. 그도 속으로는 무사 귀환에 기뻐하지만, 자신의 사명은 부하들을 두려움으로부터 구해내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 뭐 믿고 기대하는 만큼 호통친다는 것도 알겠는데, 그렇게 털끝 하나 인정해 주지 않으면 직원들이 제 성장과 실력 향상을 체감이나 할까 싶다.


또 다른 주인공인 조종사 파비앵은 운항 사고로 끝내 실종되고 만다. 그처럼 생텍쥐페리 역시 똑같은 결말을 맞았다고 전해진다. 마치 자신이 어떻게 죽을 것을 알고 미리 써둔 유언장 같은 작품이 아닌가. 비행기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남다른 건 알겠는데, 한밤중에 국경을 넘어서까지 위험한 비행을 꼭 해야만 했을까. 운행하는 동안 무서운 날씨에 벌벌 떨거나, 그렇지 않으면 외로움에 삼켜지거나 둘 중 하나뿐인 그 일의 어디가 그렇게 좋았을까. 듣자 하니 기차나 배와의 속도 경쟁을 위해 야간에도 비행을 했다는데, 기름 한 방울 값도 안되는 우편들을 매일 그렇게 목숨 걸면서까지 갖다주고 올 일인가. 여하간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달라서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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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생 새움 세계문학
기 드 모파상 지음, 백선희 옮김 / 새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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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다루는 소설은 언제 읽어도 질리지 않고 재미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나와 전혀 다른 남들의 인생을 들여다봤자 새로울 것도 없고 얻어 갈 것도 없긴 하다. 그럼에도 그 어떤 이야기보다 가장 인간적인 성장 서사에서 배울 점이 가장 크다고 하겠다. 현존하는 성장 소설은 하나같이 딱하고 우울하고 어렵고 짠한 생애를 담아낸다. 다만 주인공들이 똑 부러지느냐 어리숙하느냐, 독립적이냐 관계 의존적이냐에 따라 책 내용은 교훈이 되기도 하고 경고가 되기도 한다. <어느 인생>은 철저하게 경고에 관한 내용인데, 정말 몇 번이나 화딱지가 났는지 셀 수 없을 만큼 갑갑했다. ‘초라한 진실‘이라는 부제도 그냥 그랬는데, 인생의 어느 지점이 초라하단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


한 중반까지는 거의 내용이랄 게 없고, 온통 배경 묘사와 상황 설명으로 가득하여 이번에도 똥 밟았구나 싶었다. 하여간 프랑스 작가들은 죄다 겉멋만 들어가지고 소설도 시처럼 써버릇하는 게 정말 꼴불견이다. 그 나라는 현대작가들도 다 똑같다. 적당히라는 게 없이 늘 과해서 몰입감도 흡인력도 영 맥을 못 춘다. 그렇다 보니 ‘에밀 졸라‘같은 작가는 너무 희귀해서 그 자체로 유니콘 취급을 받는 것이다. 굳이 따지면 모파상의 스타일도 양반은 못된다. 분명 날것의 감성인데 자꾸 엉뚱한 데서 우아함 한 숟갈, 고상함 한 숟갈 넣는 게 아주 꼴 뵈기 싫드라. 내가 또 그런 불순한 의도는 기가 막히게 잘 캐치하거든. 첫 작품이라니까 곱게 넘어가겠다만.


불필요한 묘사가 많아서 그렇지, 스토리 자체로는 낫 배드였다. 남작 부부의 딸, 잔느는 수녀원 생활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도시보다 시골생활이 더 좋았던 소녀는 그렇게 마음껏 해방감을 누렸다. 어느 날 사제가 소개해 준 자작과 떠밀리듯 결혼하게 된 잔느. 본인의 의사도 없이 유부녀가 된 것도 좀 그랬지만, 남편이 성격파탄자로 돌변하여 결혼생활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깨졌더랬다. 내게는 딱 여기까지가 ‘운‘이 없었다고 생각되고, 이후로는 잔느가 제 팔자를 꼬아놨다고 밖에 설명이 안되었다. 수녀원을 나온 걸로 보아 그녀의 교육수준이 낮지는 않을 텐데 어째 하는 생각들마다 이다지도 감상적인지 원. 그래서 남편한테 이리저리 휘둘리고, 아무 하는 일도 없이 ‘존재‘하기만 하는 삶을 살아갔다. 진짜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잔느의 부모도 순박하고 물러터진 성격이라, 폭군 같은 사위한테 깨갱하고 있었다. 잘못 돌아가는 걸 느끼는데도 왜 다들 가만히만 있는 걸까. 좋게 좋게 넘어가는 것도 정도가 있지, 수치스러워했다가 히죽거리길 반복하는 게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안 되던데.


이 작품의 테마는 ‘간통‘이다. 주인공 외에 모든 인물이 간통에 빠져있다. 그런 사실이 하나둘씩 드러날 때마다 잔느는 멘붕과 현타를 받고, 나중 가서는 인간의 추악함에 굴복하고 타협해버린다. 마음 둘 곳 없었던 그녀는 오직 아들에게만 관심과 정성을 쏟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애지중지 금지옥엽인 아들은 둘도 없는 등골 브레이커로 자라난다. 주변인들이 잔느에게 정신 좀 차리라고 그리 일러도, 아들바보였던 잔느는 당장 파산하더라도 아들에게 헌신하겠단다. 자식에게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된다. 수많은 실망, 배신감, 상처, 억압으로 눈물이 마를 날 없었던 그녀에게 낙이라고는 아들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아들의 성장과 미래는 생각지 못하고, 평생 어미 곁에서 재롱잔치나 하길 바라는 건 결코 제정신이 아니었다. 남편의 바람에도 화 한번 못 내고, 가톨릭 사제의 으름장에도 꼼짝 못 하고, 불효막심한 자식한테 쓴소리도 못하는 그녀. 내가 갑갑해한 포인트는, 원래부터 잔느가 고분고분한 성격이 아니라는 데에 있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가정의 평화를 위해, 가문의 평판을 위해, 내조의 여왕 소리가 듣고 싶어서 참고 견딘 것도 아니었다. 잔느의 진짜 문제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작품의 원제는 <어느 인생>이지만, 국내에는 <여자의 일생>으로 출간되어왔다. 아마 주인공이 여자라서 그랬을 텐데, 인생이 그토록 초라한 것이라면 성별이고 계급이고 다 무슨 소용이랴. 누구에게나 닥쳐오는 고난과 역경 앞에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냐며 통탄하기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단 한 번도 아픔에 맞선 적이 없었던 잔느를 보면서 연민은커녕 인생을 날로 먹는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처럼 모파상이 주는 경고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내 방식대로 말하자면, 바른 삶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성경 구절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롬 16:19).‘ 그러니까 선하기만 한 것은 본이 안된다는 뜻이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던 만화영화 속 대사가 현실에서 얼마나 들어맞았던가. 따라서 흘러가는 세월에 나를 맡기기만 한다면 영락없는 초라한 인생이 될 테니, 괜한 데에 정신 팔려서 주위를 못 살피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것보다 모파상 당신, 지금 투아웃이요. 쓰리아웃 되면 진짜 얄짤없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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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52
오스카 와일드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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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들이 지나가서 다시 본격적인 독서 모드로 돌아가고자 집어 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좀처럼 속도가 나질 않는 작품이었다. 짧은 분량에 비해 화두가 너무 많아서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닌 이 작품을, 기존의 수많은 평들과 차별화를 갖기란 도저히 불가할 듯하여 그냥 가볍게 쓰고 말란다.


주인공 도리언 그레이는, 요즘 표현으로 하면 세기의 얼굴 천재라 하겠다. 그를 숭배하는 어느 화가가 도리언의 초상화를 정말 기가 막히게 그려서 그에게 선물까지 했는데, 정작 도리언은 그 작품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유인즉슨 화가의 친구이자 극 냉소주의자인 해리 경의 각종 훈수질 때문이었다. 순수함 그 자체였던 도리언은 해리 경으로 인해 세상 때가 잔뜩 묻게 되는데, 아무튼 화가에 그림 속에 있는 자신은 현재의 자신보다도 더 순수한 예술미가 담겨 있어 비교 아닌 비교가 되는 것에 기분이 상했다. 하여 그림 속에 아름다움이 현실에 박제되고, 저 그림이 대신 늙어갔으면 하고 소원을 빈다. 그 바람은 놀랍게도 현실이 된다.


말빨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해리 경의 박식함은 상당히 재수 없지만, 틀린 말은 하나도 없음을 인정하는 도리언. 그래서 한동안 그와 어울리며 인생의 양면성을 실컷 터득하게 된다. 그럴수록 많은 실망과 함께 말할 수 없는 쾌감도 생겨남으로써 갈수록 순수를 잃어버린 제 모습에 취해간다. 그는 한 여배우와 사랑에 빠졌다가 그녀의 발연기를 보고 이별을 고했는데, 얼마 뒤에 일어난 그녀의 쇼크사로부터 본격적으로 영혼이 타락하기 시작했다. 다만 겉으로는 여전히 신사다운 품행과 차림새를 유지한 바, 이 겉과 속이 딴판인 스스로에게 꽤나 오랫동안 시달리는 모습을 보여주어 그래도 연민을 느끼게 해주었다. 허나 이 상태도 얼마 가지는 못했다.


도리언의 영혼이 타락해갈수록 초상화의 모습은 흉측하게 변해갔다. 창고에 그림을 처박아 두고 들락날락하는 그는, 매번 달라져있는 그림의 상태가 곧 자신의 영혼을 나타내준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고자 도리언은 온갖 예술 분야에 손대기 시작한다. 진기한 악기들을 수집하여 연주도 해보고, 각종 보석들을 모으기도 하는 등 다양한 데에 시선을 뺏기고 마음을 줘보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타락한 영혼과 예술은 좀처럼 결합되지 않거나 오래가지 못하였고, 그렇게 애꿎은 해리 경만 탓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 어느덧 마흔 살 가까이 된 도리언. 여전히 풋풋한 스무 살의 모습이었지만 그는 과거의 해리 경보다 더한 회의주의자가 돼버렸다. 그와 어울리는 자마다 불행해진다는 말이 떠돌 만큼 평판이 안 좋았는데, 마침 초상화를 그려준 화가가 도리언을 찾아와서 화를 당한다. 기어코 도리언의 영혼은 세탁이 불가한 상태가 되었는데, 여기서 나는 파괴적인 감정에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분이 어떤지를 계속 공감하며 읽었다. 잃어버린 순수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절감할수록 조그마한 타락도 걷잡을 수 없는 죄악으로 와닿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주인공처럼 감정 조절 실패로 계속 엇나가는, 그러면서도 적당히 멀쩡한 척하며 자신을 감추는 스스로가 이중인격자처럼 느껴져 환멸이 나기도 한다. 나의 위선들과 더럽혀진 영혼은 남들에게 비난받고 욕먹어도 싸건만, 미움받을 용기가 없어 깨끗한 척 살아가는 나 자신이 참으로 역하다고 느껴진다.


계속되는 불안과 공포로 인해 맛탱이가 가려 할 때쯤, 자신의 불안요소가 전부 사라지자 다시 착하게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는 도리언. 그러나 마음먹은 것과는 달리 초상화는 여전히 못생겼고, 그 자신은 여전히 풋풋한 와꾸를 하고 있었다. 과연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 걸까. 그저 인간은 겉으로만 정직한 척할 뿐이고, 영혼들은 그렇게 비춰지고 싶은 욕망에 굴복할 뿐인 걸까. 나는 이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현실과 이상의 균열을 방지하고자 우리는 교육을 받고 예술을 경험하여 굳건해지는 비결을 배워나간다. 그렇게 훌륭한 교육 과정을 밟고도 악마의 손짓 한 번에 쉽게 타락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자신이 그토록 잘나고 똑똑한 줄 아는 해리 경도 주인공의 속내를 절대 알아채지 못한 것처럼, 제 영혼을 정화시키지 않는 인간들은 한낱 껍데기에 불과하다.


원래 다루고자 했던 내용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아무튼 쓰다 보니 이렇게 됐다. 그림이 늙어가고 나는 계속 젊음을 유지한다라.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발상이었다. 어쩐지 영국판 <죄와 벌> 같기도 했는데, 인간 내면의 선악은 양자택일의 무언가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다만 어느 한쪽으로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믿음이 절대 선이라는 착각쟁이들이 너무 많은 오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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