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일지나 일기형식의 소설은 몇 번 접했지만 편지형식은 처음이다.개인적으로는 이런 진행도, 이 작가도 처음인데은근 깊이감 있게 빠져든다.평탄한 길과 잔잔한 호수 같은데 이끌어가는 힘이 대단하다.감출 수 밖에 없었던 옛 의혹들. 서간을 통해 밝혀지는 세피아톤 과거고백.저마다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과 기억이 다 다르다.내겐 미화되어 있는 그 기억이 누군가에겐 앙금이 남아 여전히 도피중이다.맹인들이 코끼리를 만지며 전부 다른 묘사를 했던 일화처럼, 지금 내가 기억하는 빙산의 일각일 뿐인 기억들로그게 맞다고 우기거나 밀고 나가려 하지 않았나 돌아보게 되었다.미야베 미유키보다 더 감성적인 작가같다. 쏘 굳.
의학 스릴러라고 해서 진부할거라 생각했던 나를 반성한다. 진짜 재미있다. 그리고 쎄다!내가 생각하는 좋은 작품의 기준은 남들에게 이 책을 빌려줄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테스 게리첸의 소설은 꼭 권하고 싶다. 겨우 한 권 읽었을 뿐인데 믿고 보는 작가가 되었다.작가가 전직 의사여서 대사나 글의 디테일이굉장히 생동감있고, 현실적이다.직접 읽어보면 진짜 의사가 전달하는 리얼리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여성작가라 그런지 성폭행당한 여성들의 감정과 입장을 굉장히 실감나고 공감되게 표현했다.어떻게 의사에게 이런 풍부한 감정이 있을 수 있는 건지. 존경스럽다.여자들을 성폭행하고 산채로 배를 갈라 자궁을 꺼내가는 사이코패스.범인은 분명 총을 맞고 죽었는데 3년후 또다시 나타나 똑같은 방식의 연쇄살인을 저지른다.3년전 연쇄살인사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의사에게 접근하는 범인.그리고 이 유령같은 살인범을 쫓는 베지터급 자존심 여형사 리졸리의 혜성특급 비기닝!플로피 디스켓 얘기하는 걸 보니 언제적 작품인지 대충 알만하다.하지만 지금 시대에 전혀 뒤쳐지지 않는다. 보기 드문 세련된 작가라고 생각된다.
리 차일드 소설은 군더더기 없이 잘 읽히긴 하나끝까지 진지하기만 하다.기대 안하고 타임킬링용으로 읽자 했는데딱히 액션물도 스릴러도 아닌 어중간한 흐름..잭 리처가 헌병 시절에 함께 했던특수부대원중 하나가 살인을 당한다.그래서 이제는 은퇴한 멤버들이 각자 모여복수를 하는 뭐 어벤져스 같은 이야기인데,멤버 모으는 데에 책의 절반을 날리니 굉장히 따분하다.그리고 이 책은 왜인지 장면전환이 잘 안된다.뭔가 현재 배경설명이 부족한건지내 상상력이 딸린건지 모르겠다.구성에 뼈대는 있는데살이 없는 허전함이랄까? 아무튼.유머라곤 전혀 없는 칼 같은 로보캅, 터미네이터 같은잭 리처에게 아직은 큰 매력을 못 느꼈다.게다가 전역한 뒤로 직업도 없고 집도 없고너무 구질구질함.스스로도 동료들에 비해 자신은 루저라고 말할 만큼뭔가 자신감 없는 캐릭터였다.그래도 싸울때 만큼은 멋있긴 함.
정치스릴러로 유명한 빈스 플린의 글에는 고급스러움이 묻어 있었다.읽으면서 내내 감탄했던 것은 여러 인물들이 하나 하나 뚜렷한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그것은 원피스 작가의 가장 큰 특징이자장점이었는데 빈스 플린도 그러했다.아무래도 읽으면서 잭 리처가 많이 생각난다. 강하고 머리좋은 로보캅 같은?잭 리처는 무대포처럼 우직쾅쾅 마이웨이를 달리는 로보트라면,미치 랩은 인간적이고 감성적이며 독자들과 호흡을 같이 하는 것 같다.독자가 거대한 미로에 갇혀서 헤매고 있을 때,짠 하고 나타나 가이드 해주는 느낌이랄까? 그러니 무조건 믿고 따라갈 수가 있는 셈이다.작가와 독자는 이런식으로 신뢰를 형성해야 한다.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면 어떤 식으로라도 선과 악이 분명 공존하게 되어 있다.어찌나 그 특색을 잘 나타내 주었는지, 테러범 입장에서 이해하며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 작가 무시무시하네;;;개인적으로 스케일을 크게 다룬 내용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아무리 신경써도 놓치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더군다나 익숙치 않은 외국 군사체계를 이해하느라사실 진도도 잘 안나간다.그런데도 이 시리즈를 모으기로 결심한 이유는, 이런 장르를 통해서라도 선진국을 이해하고자 함이다.아무리 픽션이라지만 이런 장르는 어느 정도사실에 근거해서 쓰기 때문에 참고가 많이 된다.여튼 미치 랩의 행보를 기대해 본다.
내용에 대해 호불호가 많았던 책이지만제목에 이끌려 사버림.많이들 허지웅을 욕하긴 하지만그의 사고수준은 높이 사기 때문이다.확실히 허지웅은 시각적인 부분에서 다르게 바라보는 점은 예리하다.이 책은 답없는 대한민국 삶에 무작정 욕을 하기 보다는 이 악물고 버티며 살자고 강조하는 글들이다.원하는 대학에, 직장에 못 가고 스스로 낙오자라 여기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실패한 인생이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얘기한다.이미 10년전과 확연히 달라져버린 이 세대에 살고 있는 젊은 청년들은 스스로 20대이길 포기하며 살아간다.뉴스에서도 3포세대, 5포세대, 더 나아가서7포세대까지 운운하지 않는가.성공하자, 승리하자, 힘내자 식의 응원은 됐고 ‘끝까지 버팁시다.‘ 이것이 작가의 방점이다.근데 참 이 사람은 한국사회와 대중들에 대해 잘 알면서 할 말 못할 말을 구분하지 못할 때가 있어서 참 답답함.우리가 몰라서 가만 있는게 아니잖아, 자네?당신만 유식하고 잘난 게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