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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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진 만큼 짜투리 시간을 이용하자는 다짐과 달리 점점 독서와 멀어져서 큰일이다. 이제는 휴일마저 책을 멀리할 정도로 독서 습관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나마 고전문학 모임 덕분에 아예 놓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느끼는 요즘이다. 자주 가는 알라딘에도 예전만큼 리뷰가 많이 올라오지 않는듯하다. 다들 바쁜 건지 어느새 활동을 끊은 인싸 이웃들도 여럿 보인다. 나라가 흉흉하니 마음도 뒤숭숭해져서 그러신가. 그러고 보니 요새는 동네 고양이조차 구경하기 힘들어진 듯? 가을이 주는 울적함에 내 기분을 전부 맡기지는 마시길. 이번 선정도서는 그 유명한 프랑켄슈타인 차례이다. 분명 유명한데 나는 뭔 내용인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고전 반열에 들어선 과학소설로 소개되어있던데 SF가 어떻게 고전으로 분류되는 건지 궁금했다.


이 작품은 지가 싼 똥을 밟고 넘어져 머리 깨진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프랑켄슈타인은 대학에 들어가 화학자의 길을 간다. 생명의 신체를 연구하고 밤낮으로 작업한 끝에 그는 살아움직이는 무생물을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창조자가 된 기쁨에 우쭐했다가 자신이 벌인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그는 두려움에 괴물을 외면했고 괴물은 세상으로 도망쳤다. 그렇게 망연자실하는 중에 부친의 편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자신이 만든 괴물이 막냇동생을 죽인 것이다. 사실대로 말도 못하고 고통받는 주인공 앞에 나타나 파격적인 제안을 건네는 괴물. 그리고 진퇴양난에 빠진 프랑켄슈타인. 그러나 이 앞에는 더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고전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가독성도 좋고 진행속도도 적당하고 메시지도 뚜렷하고 정말 칭찬함. 나는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이름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괴물을 지은 박사의 이름이었고, 해설에서도 이 오해를 자세히 해명하고 있었다. 나 같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나 보다. 한 인간의 잘못된 욕망으로 태어난 이름 없는 괴물. 왜 하필 인간의 감정을 얻어서 그렇게 시련을 겪어야 했을까. 괴물의 토로를 듣다 보니 이거 이거 너무 짠해서 내가 다 미안해지곤 했다. 괴물은 주인에게 말한다. 모두가 나를 혐오해도 창조자는 그래선 안된다고. 자신은 주인의 정의 그 자체이며 사랑받을 존재인데 이유 없이 쫓겨났다고 하소연한다. 반면 프랑켄슈타인은 가족을 죽인 눈앞의 흉물을 만든 이가 자신임을 계속 상기시키는 괴물이 저주스러웠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괴물이 소개한 오두막집 가족의 이야기도 참 인상 깊다. 오랫동안 그들을 관찰한 결과 괴물은 인간의 언어도 배우고, 감정도 터득하고, 문화도 습득했다. 그러나 인간에겐 선함도 있으면서 동시에 사악함도 들어있었다. 그 가족은 과거 누군가에게 큰 배신을 당하고 조국에서 추방당한 것이었다. 똑같은 인간인데 누구는 아름답고 누구는 추한 게 이해되지 않았다. 더 난해한 것은 착한 사람도 순식간에 돌변하는 인간성의 모순됨이었다. 순수한 심성의 그 가족들은 괴물의 겉만 보고 악마라 판단했다. 괴물은 계속해서 인간에게 다가갔으나 그 내민 손을 뿌리친 건 인간이었다. 우리도 타인을 외모로 판단하지는 않았나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친절을 베풀고도 욕먹은 괴물에게 분노와 복수심이 생겨남을 보면 모든 ‘악‘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인간에게 멸시받아온 괴물은 자신의 행복의 권리를 주장한다. 자신만 짝이 없으니 동반자를 만들어달라는 요구였다. 거절하면 지옥행 관광열차를 태워주겠단다. 그리하여 피조물은 주인이 되고 창조자는 노예가 되는 반전 드라마가 시작되는데 아 글쎄, 이런 내용을 작가가 19세에 썼다는 게 믿어지는가? 아무튼 한 놈 만들고도 이토록 후회하는데 동반자를 만들라니, 심란하다 심란해. 인류를 해칠지도 모르는 흉기를 내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배필을 만들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폭주할 듯한 괴물에 대한 염려 사이에서 멘탈 바사삭 중인 프랑켄슈타인. 그의 의심은 결국 계약을 파기하였고 괴물은 약속대로 지옥을 선사했다. 이후로 그의 주변인들이 차례차례 당하는데 그럼에도 괴물의 존재를 함구하는 주인공이 도통 이해되지가 않았다. 게다가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하는 행동들이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우고만 있었으니. 이게 다 심은 대로 거둔 거야, 하기엔 좀 거시기하지만 아니라 하기도 뭐 한 상황이랄까.


나는 행복해져선 안되는 사람이라고 생각 하던 시절이 있었다. 수차례 슬픔과 아픔을 겪다 보면 사소한 기쁨마저 크나큰 사치로 느껴지고 스스로 행복과 어울리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처럼 불행은 자신을 갉아먹고 소중한 것들과 담을 쌓게 한다. 프랑켄슈타인도 그것과 같은 수순을 밟는다. 연속되는 불운 속에 기사회생을 반복하나 말 못할 비밀과 고통으로 죽지 못해 살았다. 이 정도 힘들었으면 누가 봐도 자살했을 법하지만 남은 가족들이 당할 일을 생각하면 죽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괴물은 그의 절친을 죽여 정신착란을 일으켰고, 살인죄를 누명 씌워 감옥신세가 되게 하고, 마을 전체에게 죄인 취급받도록 만들었다. 약속을 어길 시 지옥 관광을 선언했을 때 이런 지능 플레이를 할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내가 볼때 이 책은 고전보다는 메가 히트작 스릴러문학으로 분류가 되었어야 했다.


프랑켄슈타인을 일편단심 사모하는 엘리자베트도 그렇지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아들의 지주가 되어준 부친의 사랑 또한 위대했다. 타지에서 수년간 연락도 없는 아들을 대견하게 여겼고, 막내가 죽었을 때 본인도 괴로우면서 아들을 지치지도 않고 달래주었고, 다시 장기 여행을 떠난다는 아들을 응원해주었고, 머나먼 나라에서 감옥신세가 된 아들을 보러 달려와서 간병해준 아버지. 아들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도 끝까지 캐묻지 않았던 속 깊은 부친이 있어줘서 주인공은 다행히도 고독사를 면할 수 있었다. 나는 또 한번 부친의 마음을 아프게 하더라도 아버지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놨어야 했다고 본다. 슈퍼맨도 지구에 위기가 닥치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만큼 어려운 문제를 혼자 해결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부담감이 따른다. 주인공도 할 만큼 했으니까 이제 그만 아파했으면 싶었다. 그러나 반전은 없었고 모두 다 괴물의 제물이 된다. 그제서야 헌터가 되어 괴물을 추격하는 프랑켄슈타인의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이야기...


역자는 이 작품에 대해 불경한 기술을 빌려 창조주를 사칭함으로써 멸절의 위기를 자초하는 인류에 대한 경고라고 해석하였다. 이 복잡한 말을 간단히 하자면 선을 넘지 말라는 뜻 아닐까. 이건 단지 신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의 무모함에 그치는 말이 아니다. 그 어떤 위대한 인간도 자신의 그릇 크기만큼만 담을 수 있다. 욕심으로 더 많이 눌러 담다가 그릇이 깨질 수도 있다. 깨진 그릇은 복구도 안되고 조각 날에 상처도 입는다. 프랑켄슈타인도 괴물을 만들고 나서 지식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욕망에 눈이 머는 게 얼마나 죄악인지 알게 되었다. 이제 곧 2020년에 살아가는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과학기술들에 의존하며 사는가. 나날이 발달하는 그 기술들이 언젠가 선을 넘어서 인류에 큰 재앙을 불러오리라 확신한다. 위험이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니 집안에 비상용 아이언맨 슈트 한두 개쯤 구비해둬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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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9-27 09:45   좋아요 2 | URL
바쁜 와중에서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책 읽으시려는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쨕쨕쨕

선을 넘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반
작용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걸
고딕 스타일의 소설로 메리 셸리
는 보여 주려고 했던 게 아닐까
싶네요.

기술문명의 발전이 꼭 유토피아
로 귀결된다는 보장도 없다는
사실도요.

물감 2019-09-27 12:28   좋아요 2 | URL
책을 못 읽는 것보다 글을 못쓰는게 더 답답하네요. 이러다 뇌가 굳을까봐 걱정입니다ㅎㅎ

보면 볼수록 작가는 천재같아요. 인류를 해할 지식의 위험함도 그러하지만, 스스로 불러온 재앙을 다룬다는 게 대단했습니다.

핵전쟁이 가능한 것도 과학기술의 발전 덕이겠죠. 그런걸 보면 인간은 괴물의 말처럼 위대하면서도 어리석은 모순된 존재가 분명합니다.

페크pek0501 2019-09-27 11:58   좋아요 2 | URL
이 리뷰를 읽고 나니 지금 이 시간에도 실험실이나 연구실에서 미래를 위해 연구하고 있을 이들을 떠올리게 되고, 인간 수명이 150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떠올리게 됩니다.
과학의 발전은 이제 그만!, 하고 외치고 싶다가도 망설여지는 건 그 과학의 혜택이 내게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 때문입니다. 가령 허리 디스크를 낫게 해 주고 안구건조증을 낫게 해 주는 약을 만들어 낸다면 저로선 대환영이니까요.
그래도 과학의 발전이 인류의 파멸을 가져오는 것에는 당연히 반대죠.

이 책이 읽고 싶어지는 건 이 리뷰의 성공이라고, 소감을 남깁니다.


물감 2019-09-27 13:02   좋아요 0 | URL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유독 과학쪽은 의도가 불순하면 피해가 큰듯 싶네요. 의료나 교통같은 좋은 쪽으로만 쓰인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쩌면 이런 지식들을 너무 많이 아는 것조차 위험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비종 2019-09-28 02:26   좋아요 1 | URL
고전 읽기는 도자기를 굽는 것과 비슷한 건가 봅니다. 적어도 몇 번은 읽어줘야 제 맛이 느껴지는 것 같거든요. 어릴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사건의 뼈대만 보였을 겁니다. 초벌구이를 한 말간 도자기처럼. 삶의 고비를 그런대로 몇 번 넘어온 지금 읽으니 마음으로 다가오는 게 엄청 많네요. 유약을 발라 다시 구운 고려청자처럼 이 생각 저 생각 이 느낌 저 느낌이 확 발색이 되어 마음으로 퍼지네요. 이런 면에서 나물은 소중한 모임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습니다. ^^

‘지가 싼 똥을 밟고 넘어져 머리 깨진 한 남자의 이야기!‘ 촌철살인의 한 줄 요약에 뿜었습니다! ㅋㅋ 이번 리뷰도 역시 물감님스럽습니다. 유쾌, 상쾌, 통쾌! 쾌변 3종 세트가 깔끔하게 포장된 느낌이랄까요. 낄낄거리며 읽다보니 아이언맨 슈트까지 왔더라구요.ㅎㅎ

물감님과 몇몇 공통점을 발견해서 반가웠습니다. 맞아!맞아! 하며 수다 떨 친구를 발견한 기쁨이었죠.
1. 분명 유명한데 뭔 내용인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2. 고전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가독성도 좋고 진행속도도 적당하고 메시지도 뚜렷하고 정말 칭찬함
3.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이름인 줄
4. 이거 이거 너무 짠해서
5. 오두막집 가족의 이야기
6. 타인을 외모로 판단하지는 않았나
7. 모든 악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8. 19세에 썼다는 게 믿어지는가

미처 주목하지 못한 부친의 사랑을 언급해주셨군요. 책을 읽을 때는 인상깊게 들어오지 않았는데 물감님의 글을 읽어보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동감합니다. 같은 책을 읽고 감상을 공유한다는 건 이런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시선을 두지 못한 부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거든요.^^

‘행복해져선 안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라는 문장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습니다.. 저의 경우는 살짝 색깔이 다른데 ‘행복하고는 싶었지만 행복해지지 못했던 시절‘이 떠올랐거든요.^^ 결론은.. 물감님의 글에 담긴 쾌적한 유머러스함을 응원합니다!ㅎㅎ

이번 달도 무사히 해냈습니다!!ㅋㅋ

물감 2019-09-28 18:43   좋아요 1 | URL
저는 다 커서 독서의 맛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곤 합니다. 물론 어려서부터 많이 읽었으면 좋았겠지만 제 성격상 그냥저냥 대충 읽고 넘어갔을 책들이 대부분이었을것 같아서요. 그래서 나름 작품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진 이제야 읽게 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나물모임 이전엔 고전문학은 내가 노려볼 레벨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저역시 조촐한 이 모임이 가뭄에 내리는 단비처럼 기쁩니다요 ㅎㅎ

글을 쓰면서 왠지 이부분은 나비종님도 공감할거란 생각들이 몇몇개 들었어요. 마치 전파신호가 오듯이 말이죠^^ 대표적으로 괴물의 짠내나는 속사정과, 천사가 악마로 바뀐 배경 같은 것들인데요. 몇번의 모임을 통해 서로의 관심사가 인간의 감성과 휴머니즘에 맞추어져있다는 생각을 자주했거든요~ 그래서 이번 책이야말로 ‘아 이번엔 둘다 진짜 할말도 많겠구나‘ 싶었죠 ㅎㅎㅎ 그리고 개인적으로 괴물의 요구를 들어준 쪽으로 흘러가는 내용도 궁금하더군요^^

그리고 예전에 행복해지려고 하면 할수록 비참해지기만 했던 시절이 생각이 나더라구요. 리뷰엔 프랑켄슈타인이 저와 같다고 적었지만, 진짜는 괴물이 저를 더 닮아있었습니다. 아무리 다가가고 손내밀고 남들을 배려하고 도와주어도 결국 혼자만의 뻘짓으로 되곤 했던 제 모습과 괴물의 한탄이 너무나 비슷해서 울컥했어요^^;; 지금은 괜찮습니다 ㅎㅎ 여튼 이달안에 무사히 읽어내서 다행입니다. 담달도 파이팅입니다 ㅋㅋㅋㅋㅋ

나비종 2019-09-28 22:28   좋아요 1 | URL
경험치가 많아질수록 점점 더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이 나이들어감이 건네주는 매력일까요. 같은 책이라도 어느 나이대에 읽느냐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는 걸 보면 베스트셀러는 작가와 독자의 궁합이 잘 맞는 책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나물모임이라는 느슨한 테두리가 그나마 고전문학으로 친숙하게 다가가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혼자서라면 읽지 않았을 책을 꾸역꾸역 읽어내고 느낌을 적고 다른 이와 그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두근거리고 즐거운 경험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물감님께 흐믓한 감사의 마음을 텔레파시로 보냈다는ㅎㅎ

헉! 저도 이 책이라면 물감님으로부터 내쳐지지는 않겠다 싶었거든요. 감성과 휴머니즘이라...흠... 그런 것 같습니다.^^
파트너 괴물이 만들어졌다면? 결말 바꾸기로군요. 괴물의 인성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조용히 손 붙잡고 북극으로 가서 이글루 짓고 잘 먹고 잘 살았을 것 같습니다만ㅎㅎ 역시 대화는 나누어봐야한다는.. 방금 제 사고의 폭이 2cm 쯤 넓어졌거든요~

저도 괴물에 애정이 느껴집니다. 괴물의 좌절과 상실감이 확 다가오더라구요.^^
이번 달은 독후감대회에 참가할 책 읽느라고 이 책은 맨 마지막에 읽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아서 너무 좋았습니다.ㅎㅎ

물감 2019-09-28 22:55   좋아요 1 | URL
텔레파시 잘 받았습니다ㅎㅎ
같이 읽는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의 감상과 의견을 나누는게 더 좋아요. 전 사실 읽는것보다 글 쓰는게 더 좋거든요ㅎㅎㅎ 깨닫지 못한 점을 알아가고 공유한다는 게 가장 기쁩니다^^ 사고의 폭이 커지는게 보이네영ㅋㅋ

무엇보다 도서 선정에 성공해서 뿌듯하네요! 담 달에 읽을 ‘말라 온다‘는 개인적으로 너무 궁금했던 작품입니다. 그 책도 이번처럼 재미있었음 좋겠네요ㅋㅋ10월에도 즐독입니다!
 
파리의 아파트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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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극작가인 남주는 출판사에서 마련해준 파리의 임대 아파트로 온다. 그리고 경찰을 그만둔 여주도 똑같은 임대 아파트로 온다. 부동산 측의 전산 오류로 두 남녀는 같은 집에 계약된 것인데 서로 이 집을 전혀 양보할 맘이 없었던 것은 그 집이 유명 화가가 살던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화가는 몇 년 전 심장병으로 사망했고 현 집주인이자 절친이었던 친구가 아파트와 화랑을 관리하고 있었다. 집주인은 화가에게 관심 있어 하는 두 남녀에게 미스터리한 퀘스트를 던져준다. 화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어딘가에 감춰둔 세 점의 미공개 그림을 찾아달라는 부탁이었다. 형사 본능이 발동한 여주는 귀찮아하는 남주를 자극하여 그림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미공개 그림들은 화가의 가족이 겪은 끔찍한 사건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족애가 발동한 남주는 이 일에 손 떼고 싶어 하는 여주를 자극하여 화가 집안의 미제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이것은 미스터리 추리물인가, 아님 스릴러물인가. 그림을 찾는다고 하니 당연히 추리물이라고 믿었다. 보상 하나 없는 퀘스트였지만 그래도 고대 유물을 찾는 듯한 인디아나 존스의 도시 버전 느낌도 나고 나름 좋았더랬다. 비록 그 과정은 독자가 전혀 추리할 틈도 주지 않았지만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계속 깔아주고 있었으니 오호라, 이번 작품은 분위기로 압도하는 작품인가 보다 하며 기대반 걱정반으로 읽어나갔다. 걱정 반은 무슨 연고였냐면 그림을 찾아낸 것이 총 분량의 딱 중간지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후로 미제 사건인 화가의 죽은 아들 찾기 내용으로 2부가 시작되는데 갑자기 스릴러물로 바꾸려는 건지 이상한 구간에서 자꾸 텐션을 올리고 스피디한 전개를 진행하는 게 보였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절대 속도감을 내어선 안되었다. 오히려 1부처럼 천천히 분위기로 압도했어야 했다. 그 이유는 화가도 이미 죽었고, 사망처리된 아들 사건도 이미 경찰과 대중의 관심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흐름상 급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도 안 뺏어 먹는데 괜히 작가 혼자서 엄청난 속도로 밥 먹는 느낌이었달까.


아무튼 1부 그림 찾기에서 2부 아들 찾기로 이어지는 것이 매끄럽지 않고 뜬금없었다. 그림 찾는 건 희열과 설렘이라도 있지 아들 찾는 건 글쎄, 그 정도로 흥분하고 집착할만한 일인지 도통 이해되지가 않았다. 두 사람 다 아들을 찾아낼 임무나 사명은 전혀 없었고, 본인들 외에 이 사건의 해결을 바라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고 주인공들이 불타는 정의감으로 행동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어릴 적 가정불화를 겪은 남주가 갑자기 없었던 부성애가 생기면서 화가의 아들을 자기 자식처럼 여기는 것도 영 개연성이 떨어졌다. 이미 초반부터 남주는 세상과 인간을 혐오하는 캐릭터였는데 어쩜 그리 단기간에 딴 사람으로 될 수가 있답니까? 나의 솔직한 심정은 ‘찾아서 어쩌게?‘ 정도였다. 그저 솟구치는 아드레날린 때문에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인 것처럼 보일뿐, 수사에 별다른 의미나 동기는 없었다고 봐야 한다. 또한 두 남녀가 전혀 한가로운 것도 아니었다. 남주는 글 쓰려고 파리까지 날아왔고, 임신한 여주도 이것저것 할 게 많았다. 근데 본인들 사정은 전부 뒤로하고 왜 그렇게까지 수사에 열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의문점들을 보면 이 책의 장르는 미스터리가 맞긴 맞다.


엄청 복잡하게 꼬아논 것처럼 보이지만 유심히 보면 스트레이트한 플롯이라 딱히 차별성을 갖진 않는다. 그래서 스토리보다는 캐릭터들에게 더 힘이 실린 편이다. 각자 아픈 과거도 있고 화끈한 성격도 있어서 이 대조된 캐릭터라면 보여줄 케미가 무궁무진하겠다 싶었다. 만나자마자 싸우는 두 남녀의 해프닝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얼마 안 가서 둘은 힘을 합치기 시작했고, 그러자마자 통통 튀던 작품은 급 평범해져 버렸다. 그러면 각자의 방식으로 사건을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려나 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인물 설정은 꽤 그럴싸했으나 크게 써먹질 못하고 있었다. 마치 피카츄가 전기 공격은 안 하고 죽어라 박치기만 하는 꼴이랄까. 그래 이건 그냥저냥 넘어가 주었다. 사건을 맡게 하려고 두 사람이 만난 과정 또한 억지스럽고 개연성 부족이라는 말에도 난 좋게 봐줄 수 있었다. 그런데 좋든 나쁘든 작가가 만든 많은 설정들은 큰 의미를 갖지 못했고 오로지 화가의 부성애만 조명하려고 한 것도 문제였다. 죽은 사람의 부성애를 아무리 강조해봤자 이미 힘을 잃었기에 이야기에 탄력이 붙질 못한다. 그런데 여기에 자꾸 스릴러를 접목시키려 들어서 크리티컬 낭패였지. 더 안타까운 건 화가가 아들을 죽을 만큼 사랑했다는 사실을 수차례 증명하시는데, 미안하게도 작가가 바랬던 만큼 부성애는 느껴지지 않았고 그런가 보다 하며 넘겼다. 그럼 이제 마무리를 어떻게 짓나 했더니 자기들끼리 가설을 세우다가 이거다! 결론 내고서 끝이 났다. 이 책도 전형적인 타이타닉 플롯이었음. 차라리 부성애가 아닌 두 남녀의 휴머니즘에다 포커스를 두었다면 훨씬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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秀映 2019-09-16 23:24   좋아요 1 | URL
기욤의 책들 이제 더 이상 손이 가지 않아요 ㅜㅜ

물감 2019-09-17 06:54   좋아요 0 | URL
기욤의 책이 용두사미가 많은가요? 딱 두 권 읽었는데 느낌이 쎄하네요ㅎㅎ

coolcat329 2019-09-17 13:35   좋아요 1 | URL
저는 처음 기욤책 <구해줘>에 반해서 그 후로 5권을 더 읽었으나...저 또한 읽고나면 허탈한게 더이상 손이 가질 않더군요.

물감 2019-09-17 16:08   좋아요 0 | URL
음 그럼 저도 구해줘만 읽고 손절해야겠군요.... 근데 이 작가는 왜 그렇게 유명한걸까요?

레삭매냐 2019-09-17 13:36   좋아요 2 | URL
기욤 안녕...

물감 2019-09-17 16:09   좋아요 0 | URL
아 레삭매냐님도 끊으셨군여...

coolcat329 2019-09-17 17:00   좋아요 1 | URL
<구해줘>실망하실 거에요. 너무 오래 전에 읽어 기억이 잘 안나지만 로맨스 스릴러 sf요소가 섞여 산만하면서도 역시나 뜬금없고 가독성이 엄청났기에 처음엔 좀 신선했다고 할까요? 당시 기욤이 좀 화제이기도 했고 쉽게 읽히니까 그냥 읽은건데,후회만 남더라구요 ㅎㅎ

물감 2019-09-17 17:06   좋아요 1 | URL
정보 감사합니다. 그럼 저도 기욤은 안녕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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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지가 바뀌어서 이제 책 읽을 시간이 대폭 줄어들게 되었다. 꽃이 지고서야 봄인 줄 알았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이해될 것도 같고. 아무튼 굉장히 오랜만에 쓰는 글인데 어쩐지 손가락도 잘 안 움직이고 전두엽도 잘 안 돌아가는 기분이다. 그래서 감을 좀 찾고자 그동안 썼던 내 글들을 역주행하면서 읽어봤는데 원래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달리 너무 무겁고 딱딱하고 어두운 글의 방향으로 치우쳐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다시 초심을 찾아 원래의 나로 되돌아갈 필요성을 느꼈다. 글쓰기 실력을 늘리려면 남의 글을 많이 읽고 공부하기에 앞서 자신의 글들을 읽으며 단점을 보완하는 게 더 급선무가 아닐까 싶다. 여하튼 독서는 힘들지언정 글쓰기는 즐거운 마음으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여 겸사겸사 애정 하는 제프리 디버의 책을 골랐는데 세상에나, 이제껏 읽은 이 분의 작품 중에 가장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원래대로 돌아가자는 결심을 하자마자 이런 책이라니. 아무리 애정 작가라도 내 안에 날뛰는 흑염룡을 말릴 순 없을거라규. 대체 그 엄청난 속도감의 스릴은 어디로 가고, 예리하던 법과학 추리도 왜 갑자기 영구와 공룡 쭈쭈처럼 돼버린거여? 엔간히 답답해서 산소호흡기로도 모자라 셀프 심폐소생술까지 해가면서 읽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읽냐고요? 난 의리의리한 남자니깐요.


한 흑인 소녀가 괴한의 공격을 피해 도망친 뒤 경찰의 보호를 받는다. 이 사건을 담당 맡은 링컨 일행은 소녀가 조사 중이던 자신의 조상 이야기를 듣게 된다. 140년 전 해방 노예였던 소녀의 조상은 거액의 돈을 훔친 죄목으로 쫓기는 신세였었고, 당시 가족에게 여러 차례 썼던 편지에서 조상이 차마 말 못했던 일급비밀에 관심을 가진다. 어쩌면 그것이 소녀가 노려진 이유라고 생각하여 범인과 함께 140년 전의 비밀을 파헤치기로 한다. 또한 이번 범인은 지극히 평범함을 자랑하여 뚜렷한 특징이 없어서 애를 먹었고, 수사진의 방향을 틀기 위해 무고한 시민들도 가차 없이 죽이는 등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었다. 그는 할렘가에 사는 소녀에게 접근하기 위해 할렘에 능통한 자들을 섭외한다. 반면 할렘에 대해 무지했던 링컨은 예측불허한 범인의 지뢰를 수차례 밟는다. 고생 끝에 범인은 붙잡히고 소녀가 죽어야 했던 이유 또한 공개된다. 과연 편지 속 140년 전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이번 편은 어딘가 제프리 디버 답지 않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라 봐야 하나, 것도 아니면 그 두 사이 어디쯤에 있는 건가 싶은 아리까리한 전개 방식을 보여준다. 일단 사건이 터지면 늘 그렇듯 현장에서 증거물을 찾고 법과학으로 범인을 물색한다. 여기까지는 기본적으로 똑같은데 별 내용도 긴장감도 없는 장면들로 3부까지 싹 날려버려서 어리둥절하다 못해 살짝 걱정되기까지 한다. 실컷 증거물 분석하다가 갑자기 번뜩하더니 모든 건 범인의 연출이었다며 김전일 코스프레를 시전하는 링컨의 연기력은 송강호도 울고 가겠던데? 그래 뭐 링컨도 사람인데 헛다리 짚을 수도 있지. 그런데 한두 번도 아니고 이 헛다리를 왜 자꾸 짚으시는 거야. 똑같은 패턴을 너무 울궈먹어서 뼈가 다 삭을 지경이던데? 정말이지 이건 디버답지 못한 행동이었슴돠.


작가가 새로운 시도를 한 것 같다고 느낀 데에는 불필요한 대화 장면이 늘어난 것도 한몫한다. 원래 이 시리즈가 인물보단 사건에 더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대화 씬은 굉장히 보기 힘들었다. 근데 이번 편은 그런 장면이 유독 많아, 분량을 늘리기 위함인지 아님 새로운 변화를 주려함인지 작가를 직접 인터뷰해보고 싶어지더군. 여튼 조금도 분량을 허투루 날리는 법이 없는 양반께서 왜 갑자기 루즈해졌는지 알 턱이 없으나 그래도 명색이 스릴러 거장인 만큼 그레이트한 포텐은 빵빵 터뜨려주신다. 다만 그것이 후반전도 아니고 연장전에 나와서 지루해 죽을뻔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당이 떨어질 대로 떨어질 즈음 초콜릿 비를 내려주시는 밀당 작가의 불친절함을 그래도 용서해주고자 한다. 중박 좀 치면 어떠랴, 슬럼프만 아니면 됐지.


이번 범인은 경찰의 시선을 계속 돌려대는 연출의 달인이었다. 어쩐지 전편의 ‘사라진 마술사‘에서 범인이 자주 쓰던 미스디렉션과 비슷한가 싶지만 약간 다르다. 마술사 범인은 눈앞에 A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B를 진행하는 패턴이고, 이번 범인은 현장을 조작하여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추리하게끔 만드는 패턴이다. 오로지 증거물만으로 프로파일링을 하는 링컨에게 있어 이렇게 혼선을 주는 범인은 그야말로 링컨과 상극인 셈이었다. 그러다 보니 링컨이 자꾸 영구 같은 모습을 보여줘서 그동안의 위엄이 폭삭 가라앉아 부렀지. 그래도 여러 번의 뻘짓 끝에 꼬리가 잡히고 아 드디어 수사 속도가 좀 붙으려나 기대하던 차에 그마저도 범인의 계획이었다며 통수를 친다. 진심 이 정도라면 범인이 엄청난 캐릭터라야 하는데, 이제껏 등장한 악역 중에 가장 평범하고 밋밋한 설정이라서 그것이 많은 반전 중 베스트 반전이 아닐까 싶다. 혹시 이것마저 작가의 새로운 시도였을까나.


디버는 책을 낼 때마다 배경이든 직업이든 한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깊게 다룬다. 이번 편은 흑인 문화의 고장, 할렘이다. 나는 이 할렘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1차 대전 이후 흑인들이 맨해튼 북부에 자릴 잡았으며 노후화된 주택과 가족관계가 엉망인 사람들이 가득한 빈민가의 상징이자, 반사회적인 사람들의 은신처라고 나온다. 이 책에서도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흑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 불만을 표출했는데 DJ, 랩, 브레이킹 댄스, 그래피티 같은 흑인 문화운동이 바로 그것이었고, 그나마 할렘에서는 그들만의 자유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런데 흑인 문화들은 차츰차츰 변질되어 할렘 거리는 힘을 잃었다. 소녀 조상이 살던 노예 시절이나 지금이나 흑인들이 받는 대우는 여전했다. 과거엔 육체를 뺏겼다면 현재는 그들의 정신을 뺏기고 있다. 겨우 이 책 한 권으로 할렘의 역사를 다 알 순 없으나 이렇게라도 관심을 갖도록 해준 작가에게 감사드린다.


솔직히 이번 편은 링컨의 추리도 엉망이고, 색스의 액션도 거의 없고, 악역도 평범하고, 동료 간에 멤버십도 거의 없어서 등장인물에게 볼거리가 전혀 없었다. 하나같이 노잼이었지만 특히 사건의 중심이었던 흑인 소녀의 땡깡 때문에 몰입이 계속 틀어져서 힘들었다. 범인이 학교까지 찾아왔는데 그래도 남아서 시험 쳐야 한다며 우기는 게 너무 어이없어서 이 정도면 제대로 설정 미스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소녀의 고집이 그렇게나 완고했던 건 하루빨리 졸업해서 할렘을 뜨고자 했던 것이며, 이번 사건으로 자신의 큰 그림이 틀어짐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녀의 그 간절함은 어쩌면 할렘가 빈민들의 희망이 응축된 게 아닐까. 뭐가 됐건 이번 작품은 메시지 면에서는 좋았지만 재미 면에서는 진짜 영 아니었다. 성대결절이 온 김경호 언니의 무대를 보는 듯했거든. 쉬지 않고 콘서트하면 목 나가듯이, 너무 다작해서 뇌에 과부하가 온 걸 거야. 그니까 힘들 땐 시험시험 하세요.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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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9-09 16:24   좋아요 1 | URL
˝디버는 책을 낼 때마다 배경이든 직업이든 한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깊게 다룬다.˝
- 저는 직업이 나오는 소설이 흥미롭더라고요. 특히 어떤 분야의 전문가는 더욱.
알랭 드 보통이 그런 말을 한 것 같아요. 독자들은 의외로 직업 세계가 나오는 소설을 좋아한다고요. 화가가 나오는 소설 <달과 6펜스>가 생각나는군요. ㅋ

물감 2019-09-09 16:33   좋아요 1 | URL
문학의 장점중 하나가 그거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직업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거요. 어쩌면 평생동안 관심조차 못가질 직업에 대해서 약간이나마 알게 해주니까요. 물론 그것이 얕고 넓은 지식에 그칠지라도 새로운것을 알아간다는건 기쁜일이죠ㅎㅎ
달과 6펜스는 아직 못읽었는데 한번 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스토리콜렉터 4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황소연 옮김 / 북로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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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리뷰는 24시 까페수다체로 써볼까 해. 오후 8시를 넘긴 평소 내 말투가 한 80% 반영될 거야. 그냥 편하게 들어줘. 일단 나는 이 책에 거부감이 좀 있었어. 순전히 제목 때문에. 아무리 순탄하게 살아온 사람이라도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듯이 나도 그런 게 여럿 있거든? 그런 기억들은 너무 강렬하고 선명해서 강산이 바뀌어도 늘 제자리에 있어. 잠깐의 떠올림으로 하루를 망치기도 하고 그래. 그래서 이 책을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참 오래도 망설였어. 근데 궁금해졌어. 이 책의 주인공은 대체 어떤 식으로 트라우마에 맞서고 저주받은 기억에 대항하는지가. 나는 고통을 피해만 다녔지, 극복할 생각까지는 못했거든? 상처받으면 혼자 앓는 타입이라서 몸 사리기 바빴어. 여튼 기억력 좋으면 쓸 데 많겠지만 모든 기억이 평생 가는 건 무서운 저주야. 이 책의 주인공처럼.


형사 데커 가족이 어떤 살인마에게 죽음을 당했어. 데커는 그 뒤로 정신이 망가져서 경찰도 그만두고 쭉 거렁뱅이 생활 중이야. 그러다 옛 파트너가 말해주길, 살인범이 자수했대. 살인 당시의 상황도 자세히 알고 있고, 가족 모두 죽인 것을 시인했대. 근데 데커 눈에는 영 엉뚱한 놈이거든. 근데 이놈은 뭔 생각인지 지가 한게 맞으니까 죽여달라네? 안 그래도 정신없는데 갑자기 옆 고등학교에서 총기사건이 터졌어. 경찰이 출동할 때는 이미 상황이 다 끝났지. 환장하게도 그 넓은 데서 범인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몰라. 할 수 없이 경찰은 데커한테 도와달라 해. 데커는 인간 블랙박스거든. 과잉기억 증후군을 앓고 있어서 모든 것을 다 기억해. 지금은 그 이유로 악몽 속에 살지만. 아무튼 조사 도중에 기막힌 게 나왔어. 이번 사건과 데커 사건에서 발견된 탄환이 똑같대. 이제 답 나왔네. 그 놈만 잡으면 돼.


​알다시피 범죄소설 주인공들은 신체에 핸디캡 한두 개씩 꼭 있어. 관절을 다쳤든 병으로 고생하든 주인공들이 죄다 골골대. 근데 페이소스를 보여주려면 어쩔 수 없는 설정일 거야. 멀쩡한 캐릭터는 고뇌와 연민 같은 감정이랑 거리가 멀거든. 난 뭐 오만한 성격파탄자만 아니면 다 괜찮아. 웬일로 이번 주인공은 다 정상인데 뇌만 다른 신종 핸디캡을 갖고 있어. 그것이 자신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양날의 검이 되어 이 시리즈를 끌고 가는 기본 베이스인가 본데, 솔직히 타 시리즈만큼 흥미롭지는 않아. 이건 아직 1편이니까 그런가 보다 할 수 있어. 현재 두세 편 더 나와있던데 좀 더 지켜볼게. 그리고 주인공이 자꾸 ‘잭 리처‘를 생각나게 해. 빵빵한 하드웨어나 비상한 두뇌도 그렇고 인간미 상실한 것까지 완벽한 데칼코마니던데? 그래서 내가 시큰둥 했던 건지도 몰라. 내가 잭 리처 안좋아하거덩. 아무튼 유명한 해리 보슈나 링컨 라임 시리즈도 처음엔 엄청 딱딱했다가 점점 말랑해지면서 매력이 드러났거든? 상남자 캐릭터가 절대 좋은 게 아니야. 보여줄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으니까. 그래서 데커도 분명히 소프트해질 것이라 확신해.


코모란 스트라이크 시리즈라고, 해리포터 작가가 쓴 탐정소설이 있거든? 진짜 주인공 혼자 다 해 먹던 게 아직도 기억나. 지 혼자 추리하고 결단 내리고 범인 지목해서 끝내버리는데 어찌나 허탈하던지. 근데 데커도 거의 비슷해. 지독한 싱글 플레이어라서 타인에게 기대려 하질 않아. 그래서 독자들이 함께 추리할만한 여지가 전혀 없어. 그렇게 주인공 혼자 다 해 먹으면 미스터리 분야로써는 탈락이지 뭐. 원래 작가가 주는 대로 받아먹어야만 하는 작품에서는 별다른 재미를 볼 수가 없는 거야. 보통 범죄소설은 초반부터 범인과 주인공의 대결 구도로 가던지, 추리 끝에 주변인 중에서 범인을 검거하던지 하거든? 그런데 감도 안 잡히는 할로우맨을 찾을라니 이게 참말로 김빠질 일이야. 나는 범죄소설에서 악역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 근데 이렇게 범인 구경하기 힘든 작품은 기억력의 달인이라도 금방 잊어버려. 왜냐, 범인의 존재감이 뚜렷해야 주인공의 활약도 두드러지는 법이거든. 반면 실체 없는 범인과의 싸움은 혼자 노는 숨바꼭질처럼 재미도 없고 주인공의 매력도 발산되지 못해. 차라리 인질극이나 폭탄 설치 같은 데드라인 있는 걸로 일행들을 들었다 놨다 해줬으면 싶었어. 범인이 대놓고 위협하기보다 장난만 치는 것 같아서 긴장감은 하나도 없고 내내 같은 패턴이다 보니 은근 피로도가 높더라고. 온리 추측으로만 진행되어서 그럴싸한 용의자가 나와도 과연 이노마가 맞는가, 이 수사 방향이 맞는 건가 같은 의심도 자꾸 드는 거지. 아무튼 악역에게서 재미 볼 건 없었어. 복수라는 명분으로 저지른 범인의 만행들이 양보하고 또 양보해서 그럴 수 있겠다 쳐도, 데커를 타겟삼은 동기는 아무리 봐도 억지스러워. 근데 또 연쇄 살인마나 사이코패스가 논리적인 거 봤냐고 하신다면 조용히 찌그러져 있도록 할게.


솔직히 인간미가 없어도 너무 없는 작품이더라. 목마르면 물 주고 배고프면 밥을 대령하는 전개라니. 이렇게 퍼즐이 척척 맞춰지는 건 너무 작위적이잖어. 이쯤에선 이걸 뿌려주고 저쯤에선 이걸 넣어주려는 계산법이 눈에 훤히 보여. 그게 나쁘단 게 아니라 그걸 풀어내는 방식이 너무 정직해서 탈이었지. 맨날 뒤통수치는 플롯만 보다가 이렇게 스트레이트한 플롯을 보니까 이거는 이거대로 또 신선하네. 더 참신했던 건 이제 겨우 1편인데 네트워크가 벌써부터 다 갖춰진 부분이야. 이번 사건으로 경찰, FBI, 기자와 한 팀이 된 데커는 이제 모든 사건마다 빵빵한 지원을 받게 되었어. 시작부터 어벤져스라니, 작가님 야망이 대단하시구려. 이렇게 모든 카드를 공개해버리면 나중엔 뭘 보여줄 건지 기대가 되기보단 걱정이 앞서네. 최신폰의 스펙이 현재 쓰는 거랑 비슷하면 굳이 바꿀 필요가 없는 법이거든. 시리즈 소설도 그것과 비슷해서 후속작은 전작보다 새롭고 신선한 맛을 느끼게 해줘야 해. 이전보다 약하다, 아쉽다, 별로다 같은 평이 유독 시리즈물에서 자주 들리는 건 그 장르만의 특징이라 어쩔 수 없거든. 아무튼 이 작가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겠다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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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티야의 여름
트리베니언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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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놓은 소설마다 히트 쳤다는 그레이트한 작가라는데 나는 전혀 모르고 있다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스릴러 작가로 유명하시드만 어째 이 책은 순문학과 고전소설의 분위기를 더 띄고 있다. 그래서 다들 읽어보면 현대판 고전을 보는 기분이 들어 어리둥절해한다. 그러나 후반부로 가면 쏟아내는 반전에 반전으로 독자들을 쥐락펴락하는 것을 볼 것이다. 이 분도 애거사 크리스티처럼 전반전과 후반전의 온도차가 심한 작가 같다. 이런 걸 볼 때면 확실히 옛날 작가들이 내공도 스케일도 발상도 훨씬 더 끝내줬던 것 같음. 현대작가들은 뭐랄까, 맛은 얼추 맞추지만 깊은 맛이 부족해서 아쉬울 때가 많다. 짠 거 먹으면 단거 땡기듯이 가끔은 이렇게 노장들의 묵직함이 확 땡기곤 한다. 그래서 지금 나 기분 좋아져쓰.


작은 마을의 의사로 일하는 주인공에게 카티야가 찾아온다. 그녀를 따라가 다친 쌍둥이 남동생을 치료해주면서 그녀의 가족과 인연을 맺는 주인공. 당시 품위 있고 고상한 프랑스 숙녀들과 달리 당돌하면서도 어딘가 몽환적인 그녀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다. 그는 일과가 끝나면 매일 그녀의 집으로 출첵하며 카티야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무례한 동생 놈이 절대 누나와 썸 타지 말라고 핏대 세우며 경고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오직 사랑, 오직 카티야였던 의사는 구애 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집안 사정으로 발목 잡힌 그녀를 구제해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죽어도 사정을 밝힐 수 없다는 이 집안은 일주일 뒤에 이 동네를 뜨기로 한다. 의사는 완강한 동생을 말려보지만 떠날 수밖에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대체 그들은 어떤 사정이 있기에 쫓기듯 떠나야 하는가. 정말 이대로 첫사랑 카티야를 보내야만 하는 걸까.


타고난 이야기꾼을 만난 기념으로 삼삼칠 기립박수를 쳐주었다. 이 정도로 짧고 굵게 임팩트 때리는 작품을 거의 본 적이 없다. 한 남자의 순애보를 잔잔하게 그려나가다 갑자기 장르를 전환하여 미친 듯이 단타를 날리는 플롯이라니. 이런 게 왜 치명적이냐면 방금 전까지도 소풍 날씨였는데 갑자기 천둥 번개 우박 태풍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듯한 당황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몇몇 가지의 떡밥은 대놓고 보여주었지만 딱히 그것들이 별 의미도 없어 보였기에 독자들은 스릴러라는 장르를 망각하고 느긋하게 읽으며 방심하게 되는 것이다. 읽어보면 아실 텐데 이 작품은 시간도 짧고 장소도 한정되고 인물도 아주 적다. 그런 최소한의 조건만으로도 이 정도의 퀄리티를 뽑아냈다는 사실에 놀랐다. 진짜 그레이트한 작가였음.


일단 몇 없는 등장인물의 뚜렷한 캐릭터성이 매우 훌륭했다. 카티야부터 말하자면 교양 있는 척하지 않았고 자연에 동화되어 즐거워했다가 갑자기 몽상에 빠져 저만의 세상에 노닐던 살짝 사차원 끼를 보여주는 여자였다. 동생을 의지하면서도 멋대로 행동하는 철부지 같은 면모도 보여주는 그녀. 요즘 남자들이 환장할만한 미를 골고루 갖춘 그녀를 흠모하는 주인공 몽장. 그는 신사다움, 허세, 윤리, 정의로움, 낭만이 약간씩 들어있는 어중간한 순진남이다. 이런 캐릭터가 요즘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자주 보이는 이유는 여러 상황에 써먹을 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역시 사랑에 울부짖고 답답함에 울분을 표했다가 간혹 허당 미도 보여주는 다채로운 매력을 발산한다. 그런 의사를 견제하는 카티야의 남동생 폴은 까칠함과 무례함의 아이콘으로 프랑스 버전의 나쁜 남자라 할 수 있다. 툴툴대면서도 가족을 끔찍이 챙기는 동생은 이 책에서 가장 비중 높고 존재감 있는 캐릭터이다. 누나에게 흑심을 품는 주인공을 경고할 때 자신이 킥복싱 선수였다고 으름장 놓는 게 어찌나 웃기던지. 유치하게 굴면서도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려는 폴이 밉상이라기보단 그저 귀여웠다. 동생보다 더 매력 있는 아버지와 의사 어르신이 더 있지만 이건 패스한다. 아무튼 인물 설정은 정말 칭찬해줘야 함.


카티야 집안사람들은 말도 생각도 전부 일방통행이다. 집안의 가장 역할을 맡은 동생은 권위적인 말을 자주 뱉고, 부친은 아무도 관심 없는 역사에 대해서 늘어놓고, 카티야는 백일몽에 계속 빠져있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이런 독특한 가족에게 계속 정붙이는 주인공을 봐서라도 집안의 비밀을 말해주거나 귀띔이라도 해줄 줄 알았는데 끝까지 안 알려주려고 하데? 그래서 분명 범죄에 연루되었다고 생각은 했지만 내막은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어쩌다 그 집의 비극을 알게 된 몽장은 왜 그들이 쫓기는 신세가 되었으며, 동생은 왜 그따위로 삐딱해졌으며, 왜 카티야를 사랑하면 안 되었는지 모두 알게 된다. 처음엔 동생의 과도한 경고가 일종의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앞전에 그녀를 사랑한 남자에게 성폭행당한 카티야를 보호하기 위함이었고, 그러면 동생이 과잉보호할만하다며 납득 중이었는데 그보다 더한 비밀과 반전이 준비되어있었다. 마치 바나나 껍질을 벗겨보니 후랑크소세지가 들어있는 정도의 당황스러움과 충격이랄까.


사랑을 시작할 때는 상대방에 대한 내 감정만 생각하다가 사랑이 한참 진행되면 그 사람의 배경을 안 볼 수가 없게 된다. 제아무리 낭만파에 로맨티스트 사랑꾼이라도 현실을 부딪힐 때가 오고 부담을 안고 갈지 말지를 고민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상대방을 아무리 사랑해도 나 자신이 다치는 걸 방치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주인공도 첫사랑의 복잡한 사정을 듣고 나자 뜨거운 여름 같았던 마음이 점점 찬바람 부는 겨울로 바뀌어간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어떻게든 불행 속에 갇힌 그녀를 꺼내주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새드엔딩이지만. 이 책이 스릴러 소설이긴 해도 나는 하나의 고전문학처럼 읽었다. 특히 주인공의 순애보가 고전 속의 여러 사랑꾼들과 닮아있었고, 금지된 사랑 속에 담긴 페이소스도 현대문학 스타일과는 다르게 보여서 신선했다. 이 작가도 관심 작가 명단에 추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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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8-25 19:00   좋아요 1 | URL
관심 작가 발견을 축하합니다. 제가 요즘 두 번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르려고 하거든요. 관심 작품을 찾는 거죠.
다작보다 두 번 이상 읽는 정독을 하고자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나 책을 만나는 건 행운인 것 같습니다.

물감 2019-08-26 08:29   좋아요 1 | URL
자신과 맞는 작가를 만나면 정말 기분좋죠. 이제 저는 ‘나중에 다시 읽을‘ 책만 구매합니다. 한번 읽고 끝날 책은 소장할 필요를 못느껴서요. 저도 이웃분들처럼 벽 한면을 책으로 꽉 채워보고 싶은데 그만큼 소장하고 싶은 책이 별로 없어서 아쉬워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