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심
고은채 지음 / 답(도서출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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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맹자 노자급 연륜이 묻어있는 ​이 글이 진정 18세 학생의 집필이라니. 고등래퍼들도 그렇고 요즘 10대들은 감수성이나 감각 수준이 높아도 너무 높다(반성합시다, 문학도들이여). 지금은 잘 쓰지도 않는 단어와 어휘들을 구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을지. 대체 이 젊은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살기에 한 평생 살아도 발견 못할 인생의 순리와 사랑의 이면을 이토록 정확하게 집어낼까. 이 책을 읽어본 분들은 내 말에 공감하리라 믿고 이것저것 적어본다.


주인공 은휘의 시간은 과거 일제시대로 거슬러간다. 사랑이라 이름 지어주었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멘토였던 성당의 신부도 어머니를 따라갔다. 이후 영화처럼 찾아온 사랑은 은휘의 사계를 봄으로 바꿔 주었으나, 인간 말종 오라비의 친구인 박동빈에게 그 봄을 약탈당한다. 결국 연인 재우와 함께 집을 떠나 가정을 이루지만 곧이어 아버지도 하늘로 간다. 부친의 임종을 못 지킨 불효녀에게 세상은 완전히 등을 돌렸고, 오라비는 집안의 전 재산을 들고 사라진다. 슬픔이 잦아들 새도 없이 남편이 일본 경찰에게 끌려가 반 송장이 되어 돌아온다. 가난하여 치료도 못하고 집세도 못내는 은휘를 범하고 돈을 쥐여주길 반복하는 박동빈과, 끝내 어디론가 갑자기 사라져버려 행방불명된 재우. 그는 무슨 생각이 들어서 집을 떠난 것일까. 왜 은휘의 인연들은 그렇게 다 떠나야만 하는가.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고난받는 그리스도. 십자가를 짊어지고 묵묵히 골고다 길을 오르며, 자신에게 침 뱉는 이들에게 죄 없다 여기는 숭고한 희생 속에 꽃피운 위대한 사랑. 누구에게도 축복받지 못하는 은휘의 가련한 삶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잔인할 정도로 닮아있다. 나는 은휘를 보며 평범한 삶을 살고 평범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 그 자체임을 깨닫는다. 사랑 말고는 바란 게 없는데 세상은 어찌 그리 요구하는 게 많은 걸까. 그녀의 외침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고, 그녀의 희망은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가난의 이유로 사랑할 자격까지 없는 건 아니지만 걸림돌이 이렇게 많아서야 원. 재우 본인도 죽을 맛인 건 알겠는데 은휘가 어떤 심정으로 버티고 있는지 관심조차 없는 태도에 속이 다 터졌다. 그런 인간을 수발드는 주인공은 오죽할까. 차라리 재우와 헤어지길, 어딘가 멀리 떠나버리길 속으로 간절히 바랬다. 사랑이 밥 먹여주더냐, 은휘야. 내 보기엔 물만 먹이고 있더라.


그동안 내가 꺼려 했던 한국문학들은 어려운 단어와 표현을 나열하여 소위 ‘있어 보이게 쓴‘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이건 정말 국내 작가들의 고질병인데, 무슨 말인지 어려워 추리소설도 아니면서 추리해야 이해되는 문장들로 독자의 눈과 뇌를 녹초라떼로 만들곤 했다. 다행히도 고은채 작가는 기존 한국문학에 물들지 않고 본인이 직접 만든 비행기를 타고 힘차게 비상했다. 뭐,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다.


추리소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일본의 추리문학이 인정받는 이유는 추리하는 재미 속에 사회비판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연애물이나 로맨스물도 사랑만 읊다가 끝나서는 아니 된다. 그래버리면 기존 작품들과 설정도 비슷하고 흔한 전개가 될 뿐이다. 많은 작가들이 완성도를 위해 무리한 장면을 넣어서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를 만들어내는데 이게 바로 독자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알고리즘이다. 영화니까, 소설이니까 당연히 현실과는 다른거지! 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조용히 백스페이스를 눌러주시면 된다. 여하튼, 작가는 이 글을 빌려 여성인권을 외치고 사회문제를 고발하고 시대가 낳은 오류와 잘못까지도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새콤달콤 연애 판타지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비극적인 사랑 내용과는 거리가 있지만, 사랑의 본질에 대해 숨 쉬듯 언급하므로 장르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사랑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지만, 남기고 간 지문마저도 사랑스러운 감정이라고 조심스레 정의해본다. 작품 속 계절처럼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에 읽어주면 오래오래 기억 될 것이다. 매년 봄이 되면 들려오는 벚꽃엔딩 노래처럼.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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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모 2018-03-15 19:01   좋아요 1 | URL
지금까지 써온 서평 느낌과 다르네여~ㅎㅎ

물감 2018-03-15 19:06   좋아요 0 | URL
서평단 리뷰는 기존과는 다른 스타일로 씁니다ㅋㅋ
 
킹을 찾아라 노리즈키 린타로 탐정 시리즈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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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 소설도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다가 이제야 읽게 되었다. 일단은 아이디어가 신선하다. 네 명이서 교환 살인을 하는 이야기인데 당사자들이 그리 똑똑하지는 않은지 계획에 차질이 많이 생긴다. 예전 같았으면 아 진짜 재미없네 하고 책 덮었을 텐데 지금은 오히려 이런 게 더 현실적이겠다 싶어 좋게좋게 넘겼다.

네 명의 범행 장면이 번갈아가며 나올 줄 알았는데 경찰 입장에서 추리하는 장면의 내용으로 전환되어 건조할 수도 있었던 분위기를 나름 쫄깃하게 다듬긴 했다. 작가가 본인 이름을 반씩 잘라서 ‘노리즈키‘는 경찰 총경의 이름으로, ‘린타로‘는 총경 아들의 이름으로 지은 것 때문에 이 책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근데 총경 아들로 살면 보고 듣고 자란 것만으로도 이렇게 똑똑해질 수 있는 건가. 김전일 같은 아드님 덕분에 수사는 종결이 되지만 추리의 쾌감은 없었음. 하긴 이런 캐릭터가 없으면 진행조차 안되겠지. 나도 참 너무 깐깐하네.

전반적으로 어수선해서 리뷰까지 산만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이길 바라효. 아무튼 본격 추리물 치곤 너무 어중간한 작품이었슴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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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하이든
사샤 아랑고 지음, 김진아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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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하는 소설마다 대박 터뜨리는 유명 소설가 헨리 하이든. 그러나 작품들은 전부 천재적 재능을 가진 그의 아내가 쓴 것이었다. 이후 출판사 편집장과 외도 후 임신까지 시킨 주인공은 사고를 가장하여 조용히 끝내기로 하는데 사고로 죽은 것은 그의 아내였다. 이제 소설가의 삶은 마침표를 찍었고, 서둘러 아내의 죽음을 수습해야만 한다.

작가는 뭔 얘기를 하고 싶은 걸까. 주인공의 개과천선? 경찰과의 술래잡기? 내용들이 다 따로 놀고 있어서 파악이 전혀 안됨. 하이든을 캐려던 남자는 등장하자마자 사고로 환자가 되지를 않나. 경찰이 동원되고도 수사나 추리 장면은 다 빠져있지를 않나. 끝에 가서는 갑자기 폭풍이 불어오지를 않나. 아 진짜 스토리 라인이 뭐 이따구입니까.

이 책은 장르소설에서 윤활제 역할을 하는 ‘위기감‘이 빠져있어 콜라 없이 먹는 닭 가슴살처럼 목이 멨다. 그래서 무게감 있는 문장도 가볍게 느껴지는 역효과만 내었다. 스릴러를 많이 읽다 보면 이 정도는 모던스릴러로도 못 쳐주는 게 타 소설과 내용도 겹치고 굴곡 없이 무난했으며, 이렇게 등장인물이 적은 소설은 주조연의 상징이 확실해야 하는데 얘는 뭐 하러 만들었을까 싶은 엑스트라가 다수였다. 저자가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라는 게 더 스릴 있겠네.

자 이제 냄비 받침대로 쓰면 딱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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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묘점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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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추리문학 창시자 대표로써 죽기까지 1000 여편의 작품을 썼다고 한다. 다카기 아키미쓰나 마쓰모토 세이초나 건조한 문장을 즐겨 쓰는 것으로 보인다. 이 거장들의 작품을 겨우 한 권만 봐서 이렇다 저렇다 논하긴 뭐하지만.


암튼 고전이라는 기대에 비해 무게감이나 깊이감은 많이 아쉬워 보인다.특히 범인에 대한 장면은 너무 부족하고 주인공끼리 끙끙거리는 분량이 전부였다. 아니, 용의자들을 전부 부재시켜놓으면 이건 뭐 모노드라마 보라는건가. 어째 스케치만 해놓고 색칠은 안한 흑백그림을 본 기분이다.

한 작품이 고전작이 되기도 하고 올드작이 되기도 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내가 본 일본 고전은 너무 트릭위주인데다 설명조여서 대개 밋밋하다. 게다가 스릴이란게 아에 없으니 이건 완급조절이고 뭐고 끝까지 건조하다. 음. 나는 일본 고전과는 맞지 않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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秀映 2018-03-04 18:19   좋아요 2 | URL
마츠모토 세이초의 책들 거의 일드로 봤어요
근데 책으로도 읽어보고프긴 해요

물감 2018-03-04 18:25   좋아요 1 | URL
다른 책들도 이 책 분위기라면 영상이 더 재미있을거 같은데요. 몇 권 더 읽어봐야겠어요😑

[그장소] 2018-03-04 22:16   좋아요 1 | URL
마쓰모토 세이초의 책은 모래그릇 부터 권하고 싶어요 . 그 책을 읽고 나면 이 작가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게 될거라고 생각하고요 .

물감 2018-03-04 22:19   좋아요 1 | URL
모래그릇이 메인작인가요?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해요!

[그장소] 2018-03-04 22:41   좋아요 1 | URL
잠복도 있고 짐승의길도 검은 수첩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모래그릇을 저는 최고로 생각해요 . ^^

samadhi(眞我) 2018-03-13 02:57   좋아요 1 | URL
저는 「짐승의 길」만 읽어봤는데 별로라 친구네 책장에 기부했지요. 다른 것들은 드라마로 봤어요.

물감 2018-03-13 07:27   좋아요 0 | URL
글맛이 없으면 작품성이라도 있던가 해야하는데 이 책은 둘다 없더라고요. 두권 더 보고 삼진아웃이면 안녕해야겠습니다.
 
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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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반찬은 맨 마지막에 먹고 싶어서 사고도 한참뒤에 읽은 책인데 내가 너무 많이 기대를 한 걸까... 엄청난 임팩트는 없었다. 여하튼 작가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품이다. 천재 물리학자와 천재 수학자의 살인사건 진실을 밝혀내는 대결이다. 아무도 풀지 못할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 문제를 푸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 이미 초반에 범인은 나오지만 범인의 완벽한 알리바이와 트릭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번 사건은 인간의 고정관념을 노리고 인용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답을 알아내고서도 부정하고 싶은 유가와의 모습은 가히 인간적이었다. 그 날카롭고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듯한 성격도 이런면이 있다니. 그리고 한사람을 이렇게까지 헌신적으로 사랑할수도 있다니. 이번 책은 사랑에 대한 인간의 순수함을 독자에게 전한다. 과연 히가시노 게이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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秀映 2018-03-04 16:27   좋아요 1 | URL
일드로 봤어요~~

물감 2018-03-04 18:14   좋아요 0 | URL
영화말고 드라마도 있어요?
진짜 인기가 대단하군여..

秀映 2018-03-04 18:17   좋아요 1 | URL
아 영화였네요 ㅋ 헷갈렸어요
갈릴레오 시리즈가 일드고

물감 2018-03-04 18:28   좋아요 0 | URL
ㅋㅋ일본 영화 드라마 마니아신듯 good

samadhi(眞我) 2018-03-13 03:13   좋아요 1 | URL
히가시노 게이고 책이 저는 다 그렇더라고요. 질려요.

물감 2018-03-13 07:19   좋아요 0 | URL
작가가 이과 출신이라서 글에 무게나 깊이가 약한 느낌을 여러번 받습니다. 그래서 책 슬럼프 기간에만 봐요. 가독성 하나는 좋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