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은퇴가 오늘 내일 하는 킬러 할머니의 모노드라마이다. 점점 일이 줄어들어 무난한 일상이 찾아오고 거기서 밀려오는 갖가지 감정들로 심란한 주인공. 예전 같지 않은 건 낡아버린 신체기능만이 아닌 듯하다. 이 책은 큼지막한 사건의 흐름보다는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감정의 컨트롤이 잘 안되는 장면이 더 인상 깊다. 파과. 으깨지고 부서진 과일은 그 본질마저도 잃게 되는 걸까.

이 작품은 극찬하는 평만 가득하므로 는 비평만 적겠다. 구병모의 작품은 처음인데 문체를 참 어렵게도 쓰셨다. 한 40대쯤 되어야 그 맛을 온전히 음미할 수 있을 법한데 이래서 한국문학이 싫은 거야 라고 한다면 나는 애국자가 아닌 걸까. 왜 한국 작가들은 어딘가 고리타분하고 외골수적인 이미지일까. 왜 국내 작품은 거기서 거기 같고 전부 한 사람이 쓴 것 같은 착각이 들까. 헤밍웨이처럼 간결한 표현으로도 고품격 글이 나올 수 있건만 한국문학은 꼭 이래야만 한다는 매뉴얼이라도 있는 건지 원.

한 페이지를 한 문장으로 할애할 때마다 경악하여 여러 번 덮을 뻔했다. 문장마다 온갖 단어와 부사를 얼마나 남발하시는지 읽기도 불편했다. 나의 문학은 아무나 이해할 수 없다는 뭐 그런 자부심이라도 있나. 토머스 쿡보다 호흡이 긴 데다 잡담조차도 어찌나 기품있게 쓰셨던지 읽으면서도 오늘 저녁은 떡볶이나 먹을까 따위의 잡생각이 들곤 했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작가는 널렸지만 이 분도 정말 범상치 않았는데 이렇게 실컷 쓴소리를 했지만 결국 재미있게 읽었단 말이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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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8-02-01 13:41   좋아요 1 | URL
저는 구병모 문체가 정말 좋은데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 다르다는 걸 인식하게 됩니다. 구병모 작품은 「위저드 베이커리」가 정말 좋습니다.

물감 2018-02-01 13:57   좋아요 0 | URL
위저드 베이커리가 베스트작인가요? 참고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장르소설 문체에 익숙해서 불편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samadhi(眞我) 2018-02-01 14:12   좋아요 1 | URL
대표작이라고 말하기는 그렇고 제가 읽어본 구병모 소설에서 제일 좋았다는 얘기예요.

희망찬샘 2018-02-01 14:40   좋아요 1 | URL
문장이 왜 이리 길어~~~하며 투덜거리다 그래도 재밌어서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 술술 넘어가던 위저드 베이커리 읽으며 그런 생각 했던거 같은데... (오래 전 일이라 까마득이긴 해요.) 이 책은 읽을 엄두를 내기 힘들 거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다는 말씀이죠?

물감 2018-02-01 14:43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재밌어서 뭔가 억울했습니다^^;

秀映 2018-02-03 19:09   좋아요 1 | URL
저랑 안맞는 작가네요ㅋ

물감 2018-02-03 20:28   좋아요 0 | URL
스타일은 안맞지만 작품성은 높은편이에요~ 추천까진 못하겠지만ㅎㅎ
 
소멸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5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5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시체가 되살아났다. 오 마이 고뜨. 병리학자, 그러니까 시체 해부 의사인 아일스는 시체 가방에 있던 산 사람을 발견하여 언론의 질타를 받는다. 어떻게 산 사람을 사망선고 내릴 수 있냐며. 한편 임신 중인 리졸리 형사는 출산을 앞두고 방문한 병원에서 하필 그 회생한 사람에게 인질로 붙잡혀 버린다. 이것은 순풍산부인과 스릴러 버전인가.

데뷔작부터 오랫동안 인간의 연민을 다루던 건 알았지만 이번엔 테스 여사님의 폭풍 감성이 정점을 찍어부렀다. 이대로라면 별 다섯 개다 싶더니 인질극이 끝난 시점부터 흡인력이 소멸되기 시작했다. 마치 휠체어를 탄 우사인 볼트를 보는 느낌이었다. 재미는 있는데 왜 인내심 테스트하는 기분이 들었을까.

이 많은 퍼즐 조각을 언제 다 맞추나 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일사천리로 후다닥 끝냈다는 건 분량 조절 실패란 것을 작가님도 인정한다는 거겠지. 용두사미는 아닌데 소문난 잔치에 먹을게 없는 케이스였다. 이럴 거면 ‘요 네스뵈‘ 같이 벽돌 책으로 만들었어야 함. 아, 요 네스뵈 작품을 언제 읽어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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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8-01-30 12:01   좋아요 0 | URL
요 네스뵈 작품 재밌습니다.

물감 2018-01-30 13:13   좋아요 0 | URL
음 알겠습니다. 읽어볼게요!
 
마션 (스페셜 에디션, 양장)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요즘 나는 한물간 베스트셀러만 읽는 것 같다. 그래서 이 리뷰도 뒷북 오브 뒷북이 되리라. 남들은 대박 재밌다고 난리던데 난 왜 별로일까. 역시 난 베스트셀러는 안 맞아.

화성 탐사원들이 지구로 철수하고 홀로 남겨진 식물학자의 시점부터 시작된다. 남은 물과 식량과 산소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과학력을 총동원하여 감자도 심고 물도 만드는 등, 필사적으로 생존에 올인한 결과 나사에서 그의 생존을 알게 된다. 주인공을 다시 구하러 올 때까지 그는 무사히 버틸 수 있을까.

이게 생존 일지인지 실험 보고서인지 분간이 안되는군. 나는 이런 이과 스멜 가득한 책은 원래 읽지도 않는데 하도 재밌다 하니까 읽긴 했지만 글쎄요, 정말 여러 번 스킵 했음.이과 소설이 싫은 이유는 문장의 연속이 아니라, 단어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어떤 독자가 과학 언어나 용어들을 일일이 이해하려 할까. 과학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은 ‘아, 위급하구나‘ 정도일 뿐, 뭐가 어떻게 위급한 사태인지 확 와닿질 않아서 그저 그랬다. 나만 그런 거라면 조용히 구석에 찌그러져 있지 뭐.

추리소설처럼 꼼꼼히 읽을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대충 읽으니까 재미있던 작품이다(응?). 이런 나를 무례하다고 생각하진 마시길. 두 번은 못 읽겠다. 그냥 영화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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秀映 2018-01-26 16:19   좋아요 1 | URL
얼마전 티브서 영화하던데 티브가 틀어져있길래 집안일 하며 쓸쩍 봤네요
저도 남들이 와~~ 하는 책이나 영화는 잘 안보는 스타일이라 이 책 안읽을겁니다
이책 후속으로 요즘 아르테미스인가
그책 읽더라구요
거기는 여자가 주인공이라네요

물감 2018-01-26 16:28   좋아요 0 | URL
사실 신작이 나와서 데뷔작을 보게 된거지만 궂이 차기작을 볼 생각은 안드네요. 어차피 읽을 책은 쌓여있으니까 괜찮죠뭐😐
 
날아다니는 김C의 휴지통 비우기
김C 지음, 이외수 그림 / 해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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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박 2일 때문에 예능인으로 생각들 하시는데 김C는 가수였다. 어딘가 불만스러운 표정이어서 어려운 사람 같아 보이지만 이제는 국민 예능으로 검증이 된 친근한 아재이다.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처럼 감성적인 글은 아니고 그보다는 가벼운 SNS에 올라올 법한 글 모음집이다. 자유로운 영혼 같으면서도 나름의 철학이 있으며, 엉뚱한 것 같으면서도 어른스러운 면이 있는 남자였다. 김C란 사람에 대해 별 관심은 없지만 이런 말랑말랑한 글도 쓸 줄 아는구나 싶은 정도? 요즘 그의 근황이 궁금해서 검색해봤더니 나이를 많이 드셔서 그런지 김태원이 보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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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이었던 소녀 스토리콜렉터 41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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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미 많은 리뷰가 있으니 내용은 패스하고 다른 얘기를 좀 하겠다. 이 분 작품엔 루즈한 구간이 없다고 느낀 이유를 드디어 알아냈다. 로보텀만의 문장 패턴이 있는데, 사건 설명과 주인공 설명의 간격이 매우 좁다. 장면 설명 한번, 주인공 독백 한번, 다시 사건 설명.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독자가 딴 생각을 못하게 만들어 저절로 집중하게 된다. 반전을 곳곳에 심어서 집중하게 하는 일반 스릴러들과 다른 독특한 맛이 있다. 액션신 없이도 놀라운 속도를 보여줄 테니 책 두께에 겁먹지 말자.

이번 사건을 압축하자면 배트맨과 조커의 싸움이었다. 조커의 교란 작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배트맨은 외로워도 슬퍼도 울 수 없는데, 더 큰 문제는 조커가 여러 명이라는 것이다. 사건과 계속 엮이는 문제로 가족과 멀어지고도, 또다시 경찰과 손잡을 수밖에 없는 처지의 주인공. 딱하지만 경찰에 협조 안 하면 이 시리즈는 끝이지 뭐.

타 시리즈와의 차이점은 주인공 직업이 심리학자여서 사건보다도 인간의 심연을 탐구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장르문학에선 인간의 어두움을 쉽게 볼 수 있지만 마이클 로보텀만큼 깊숙이 파고들며 능숙하게 다루진 못 할 것이다. 사실 내용 자체는 별 세개였는데 흡인력이 한 800마력쯤 된다. 이처럼 깔 내용이 딱히 없는 리뷰는 마무리하기가 어렵군. 같이 읽고 전두엽 운동이나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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