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들 - 장강명 연작소설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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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 주시어 갑작스럽게 리뷰를 쓴다. 이런 연락이나 제안은 언제라도 대환영이다. 모든 출판사의 마케터, 디렉터, 직원분들은 꼭 이 글을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잡설은 이쯤 해두고, 많은 독자들이 장강명 작가를 좋아하는데 나 역시 그렇다. 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주로 사회의 이슈를 문학에 접목하여 고발하고 비판하는 작품이 많은데, 글과 문장들이 워낙 현실적이라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만큼 작가가 세상을 꿰뚫어보는 시각이 매우 날카롭다. 개인적으로 단편집을 싫어하는데도 장강명 작가라서 서평 도서를 신청했다. 사실 단편소설은 호흡이 짧아서 리뷰쓰기도 어렵고, 모든 주제가 다 좋은 게 아니라서 점수 매기기도 어렵다. 다행히 이 책은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갑을병정의 공방전을 보여주는 내용들이라 쓸 말이 저절로 생각나더라. 이 시대에 을로 살아가는 자들이 겪는 고초를 다양하게 기록하셨던데, 나는 어디까지나 을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을의 입장으로 리뷰를 쓰고자 한다. ‘산 자들‘은 인생이라는 재앙과 전쟁 가운데서 살아남은 자들을 뜻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승자가 되는 건 아니었다. 진흙탕에서 싸우면 이기든 지든 똑같이 더러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는 얼마든지 갑도 패자가 되고 을도 승자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먼저 1부는 ‘자르기‘로써 회사 대 직원의 내용이다. 1부는 진짜 남녀노소 다 겪어봤을 사례들이라서 읽다가 욱할지도 모른다. 나 또한 일터의 성격과 안 맞는다는 이유로 한 달도 안되어 알바를 잘려본 어이없는 경험을 했다. 갑이 어떤 방침을 내리든 을은 무조건 부당하고 억울하게 느껴질 테다. 반면 을이 취하는 태도는 아무리 정당해도 갑에게는 그저 괘씸하게만 보인다. 을이 아무리 살려달라 발악해봐도 갑은 개인보다 조직이 우선이니깐. 개인적으로 대기발령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일이 없는데 업무 외에 아무것도 못하게 하면서 근무 일지를 쓰게 하는 스트레스는 충분히 받아봤다. 일 없고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곳이 최고라는 철부지들도 많은데 이건 뭐 대답해주기도 지친다. 직접 겪어봐야 그런 말이 안 나오지. 구조조정 이야기도 역시 할 말이 많다. 직장에서 감원 소식이 돌면 언제나 불안했다. 엄친아가 아닌 나님은 직장 구하기가 호랑이 미간의 여드름 짜는 것만큼이나 떨린단 말이다. 경력자나 베테랑들도 잘리는 마당에 짬 없고 능력 없는 일개 말단은 무슨 수로 살아남나.


2부는 ‘싸우기‘로써 조직 대 조직의 고충이 나온다.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먼저는 경쟁 업체부터 뭉개놔야 한다. 그러면서 고객들과는 웃으며 싸워야 한다. 프랜차이즈일 경우는 타 지점과도 싸워야 한다. 이 고래밥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깡 직원들의 타들어가는 속마음을 누가 알아주랴. 이런 걸 두고 ‘번 아웃 증후군‘이라 하여 많은 청년들이 무기력하게 산다는 기사도 자주 봤다. 이겨도 남는 게 없는 싸움을 안 할 수도 없는 잔혹한 현실. 이어서 부동산 문제로 틀어진 가옥주와 세입자의 갈등도 꽤나 심각하다. 멀쩡히 살고 있는데 집주인이 갑자기 내쫓거나, 건물주가 내 가게를 철거한다면 당연히 멘붕오지 않을까? 세입자나 상인들이 직장도 그만두고 연합회를 만들어 시위했건만 돌아오는 건 없었고 매달 나가는 회비와 중단된 월급으로 피폐해져만 갔다. 아무도 이 절박한 심정을 알아주지 않는다. 결국 조합에서 주는 이사비용을 받고 떠나는 자들을 보며 남은 회원들은 그동안 들인 시간과 고생에 헛웃음이 나온다. 그간의 시위는 누굴 위한 것이었나. 싸워야 할 대상도 많지만 싸워야 할 이유는 더 많다. 누군가는 이겨서 위로 올라가는 게 목표일 테고, 누군가는 내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싸울 테고, 누군가는 진실을 덮기 위해 악바리가 된다. 냉정하게 보면 모두가 피해자이며 모든 이유가 타당하다.


3부는 ‘버티기‘로써 악조건의 상황에서 끝까지 버티는 자들의 내용이다. 작가는 ‘나와의 멘탈싸움‘에 대한 생각이 많은듯하다. 요즘 일자리 구하기 어렵다는 건 너무 자주 듣는 뉴스라서 시큰둥할 수 있는데 작가가 아나운서 지원자들에 대한 내용으로 제법 흥미 있게 써냈다. 지역 방송국에서 1명 뽑는데 수백 명의 경력자들이 지원한다. 그러나 남과의 경쟁보다 나와의 경쟁이 더 치열하다. 아무리 준비가 철저해도 잠깐의 방심으로 멘탈은 휘청대고 세상은 그 작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대외활동에 목숨 거는 지방대학생의 사정도 참 남 일 같지 않았다.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넣고자 온갖 대외활동을 해보지만 번번이 면접마다 낙방한다. 기업은 경력자를 원하지, 경험 많은 자는 원하지 않았다. 가뭄에 콩 나듯이 보기 힘든 열정맨들도 이렇게 기를 죽이는 한국 사회는, 입구도 안 보이고 출구는 더더욱 안 보인다. 음악이 좋아서 밴드를 시작한 기타리스트 이야기도 참 짠했다. 이제는 돈 주고 음악 듣는 시대는 지나갔기에 음악이 점점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립싱크 연주를 하거나 한 곡에 몇 원도 안되는 스트리밍 수입으로 싸구려 음악 인생을 살아가는 뮤지션들. 이 시대의 산 자들은 버틴다는 말보단 못 움직인다는 표현에 가까운듯하다.


사회의 약자들을 위해 쓴 책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독자들이 제 삼자의 눈으로 사태를 바라보도록 만든 책 같다. 그래서인지 장강명의 글은 아무 색도 없는 무채색 같은 느낌을 받는다. 또한 물에 젖지 않는 기름종이 같기도 하고, 아무 무늬도 없는 벽지 같기도 하고 그렇다. 그는 어떠한 정답도 내리지 않고 선택을 강요하거나 방향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기에 장강명 소설은 유독 여운이 오래가는 게 아닐까 한다. 자 그러면 오늘도 이 악물고 하루를 버텨봅시다. 5천만의 대한민국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 보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내길 더 바라면서.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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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키모카 2019-07-10 22:53   좋아요 1 | URL
사진 찍는 사람으로서 표지 보고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에요. 스포 방지를 위해 첫문단과 마지막 문단만 읽었는데 역시 읽고 싶은 책입니다. 서평 고맙습니다^^

물감 2019-07-11 06:55   좋아요 1 | URL
읽어주셔서 제가 더 고맙습니다^^ 스포는 적지 않았지만 반전이 거의 없는 내용들이더군요. 그냥 이야기 자체만으로 화제가 될만한 것들이라ㅎㅎ 여튼 재밌습니다!

페크pek0501 2019-07-11 14:12   좋아요 1 | URL
어떤 정답도 내리지 않는 소설은 그것대로 매력 있지요. 이렇게 저렇게 다방면으로 생각해 볼 여지를 주니까요. 작가가 생각하지 못한 걸 독자가 알아채는 경우도 있지요.

물감 2019-07-11 14:27   좋아요 1 | URL
네 정말 매력있는 것 같습니다. 대개 작가의 생각이 많이 들어간 책들은 내 생각이 낄 틈이 없는데, 장강명 소설은 독자가 자신의 생각을 존중하게 만들어주는거 같아요. 그래서 더 할말도 많아지나봅니다~~

붕붕툐툐 2019-07-11 17:46   좋아요 1 | URL
장강명 작가 새 책이 나왔다고 해서 궁금했는데, 벌써 읽고 리뷰를 쓰시다닛!!^^
출판서에서 먼저 연락오는 경지라니,존경스럽습니다~ㅎㅎ

물감 2019-07-11 18:20   좋아요 1 | URL
쑥스럽네요ㅎㅎ 제가 파워리뷰어도 아닌데 이런 날도 다 있군요^^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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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빨간 표지의 작품에 무슨 트라우마 같은 게 생겼나 보다. 이제껏 만났던 빨간 책들은 다 나랑 맞지 않거나 소화가 힘들었거든. 아, 살인자의 기억법은 나쁘지 않았네. 암튼, 힘겹게 읽은 이 책도 얼마 남지 않은 내 영혼을 끌어모아 사명 다해 리뷰를 남기노라. 컨디션 난조로 인트로는 짧게 짧게.


랜들가의 대농장에서 노예로 살아가는 흑인 소녀 코라. 1800년 대의 미국은 아프리카인들을 강제로 들여와 노예로 부려먹었고, 흑인들을 물건처럼 값을 매겨 팔곤 했다. 그 당시 백인들의 농장마다 많은 노예가 있었는데 주인 마음에 안 들면 채찍질 당하거나, 옆 마을 노예와 맞교환 당하기 일쑤였다. 그런 공포의 나날을 보내던 주인공에게 한 소년이 탈출 계획을 말해주고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달아난다. 이들은 지하터널의 열차를 알게 되고, 조지아를 떠나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넘어가서 새 이름을 얻고 새 삶을 살아간다. 다인종이 섞여사는 그곳에서 백인처럼 일상생활을 하고 글도 배우고 교육도 받는 코라. 그러나 코라는 현상금이 걸렸고, 노예사냥꾼들이 따라붙기 시작한다. 그들은 코라와 관계된 자들을 차례차례 죽였고, 그녀는 또다시 지하 열차를 타고 노스캐롤라이나로 도망친다. 그러나 어딜 가더라도 미국은 흑인에게 자유롭지 못한 흑암의 땅이었다. 정녕 코라는 이 뫼비우스의 띠에서 빠져나올 수 있긴 한 걸까.


미국의 흑인 노예제를 다룬, 유명하다면 유명한 작품이다. 내러티브는 참 좋은데 말야 글맛은 영 느낄 수 없어서 점수는 높게 못 주겠더라. 주제가 무거울수록 글 또한 무거운 건 이해하나 구멍이 너무 많아서 문맥이나 문단의 연결이 심하게 부자연스럽다. 특히 주인공의 노예생활과 탈출까지의 내용을 다루는 초중반 장면들! 작품의 틀을 잡는 이 중요한 구간들이 너무하다 싶을 만큼 이빨이 잔뜩 빠져있다. 번역 수준도 심각하고, 가독성도 꽝이고, 불친절한 문체에 장면 스킵과 설명 부족까지. 진짜 억지로 간신히 읽었네. 그 뭐랄까, 몸에 타이어 주렁주렁 매달고 늪지대를 100미터 달리기하는 기분?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는 말일세. 좋은 재료를 쓴다고 다 훌륭한 요리가 되는 건 아니쥬?


​여하튼 주제가 주제인 만큼 생각할 문제도 많고 할 말도 많은데, 먼저 미국이란 나라를 다시 생각해본다. 본문에서도 나오듯이 미국의 독립선언문에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났다‘라고 쓰여있다. 그러나 이 말은 백인에게만 해당되고 흑인은 포함되지 않았다. 백인들은 인디언의 땅을 빼앗고 흑인들의 미래를 모조리 짓밟았다. 노예들은 가축 취급을 받았고,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거나 한탄하기 보다, 의식주 제공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했다. 그들에겐 자신이 왜 사람대접을 못 받는가를 생각하는 것조차 사치였다. 발목이 묶인 새끼 코끼리가 커서도 도망칠 생각을 못하는 것처럼, 흑인들은 평생을 공포에 묶여 살아가는데 어떻게 미국은 스스로를 자유와 평등의 국가라고 외치는가. 그래서 오류와 모순투성이인 아프리카의 역사를 전시하는 박물관에서 일했던 코라의 눈에는 세상천지가 모두 오류였을 것이다.


조지아가 육체적인 고통받는 지옥이었다면, 사우스캐롤라이나는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지옥이었다. 이곳은 흑인도 인간 대접해주기는 했으나, 일상과 문화와 사람들의 인식 곳곳에서 흑인에 대한 멸시와 경멸이 배어 나온다. 심지어 병원들은 흑인 여성들의 피임 수술까지 해주면서 흑인의 싹을 잘라내고 있었다. 어느덧 흑인의 인구수가 백인을 앞질러버린 탓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교묘하게 흑인을 사육하고 거세하였고, 고통받던 시절에서 벗어난 노예들은 이 참극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과거에는 강제로 끌려와 노예가 되었었다면, 이제는 흑인들 스스로 현대판 노예제도에 참가한 꼴이었다. 더욱 아이러니한 건 흑인뿐만 아니라 노예를 숨겨준 백인들도 공포에 떨게 만든 국가의 제도이다. 노예 순찰대에게 발각되면 인종 불문하고 죽음을 면치 못했다. 판사들은 뇌물을 받고 노예사냥꾼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숨겨준 흑인에게 부모의 관심을 뺏겼다고 느낀 백인 자녀들은 부모를 고발하기까지 했다. 백인들끼리도 서로 감시하고 의심하는 사회라니. 모든 인종이 자유롭지 못한 세상이라니. 정녕 미국은 자유국가가 맞는가. 이 주제는 오늘날에 와서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주인공의 다양한 심경 변화가 눈길을 끈다. 코라의 엄마는 딸을 두고 농장을 탈출한 전설의 노예였다. 그녀도 탈출할 입장이 되고 보니 엄마 심정도 이러했을지 돌아본다. 이때는 자신을 버린 엄마를 원망하기보다 이해하려는 코라의 태도가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그러나 탈출한 후로는 엄마가 미워져서 일부러 지워버린 코라. 같이 도망칠 수 있었는데 혼자 떠났고, 자유의 몸이 되어서도 딸을 구하러 올 생각이 없는 엄마에게 증오만 쌓여간다. 점점 코라는 자신을 괴롭힌 추노꾼들이나 농장 주인보다도 엄마를 더 경멸했다. 추노꾼들이 내 주변인을 죽일 때마다 엄마만 날 버린 게 아니라 세상 모두가 날 버렸으며, 악마의 손가락은 늘 자신을 향해 뻗어있다고 믿는다. 노예 출신이 풍요를 누리려 했다는 게 한심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끝까지 백인과 미국을 향해 욕 한번 하지 못하고 엄마에게 화풀이할 만큼 노예제에 길들여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온몸에 채찍질 당하는 장면보다도 이게 더 마음이 아프더라. 간혹 이렇게 엉뚱한 것을 원망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걸 번지수 틀렸다고 말해주기가 참 어렵다. 여하튼 우리도 흑인들이 주장하는 자유와 평등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라고 인종차별 안 받나? 서양인들이 동양인 비하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도 그들과 같이 되기보다 코라를 도왔던 백인들처럼 차별하지 않는 시민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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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내전 -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김웅 지음 / 부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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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낳은 판타지 직업 중 하나가 검사이다. 요즘 배우들이 워낙 다양한 직업을 소화하다 보니 국민들에게 말도 안 되는 환상을 심어주곤 하는데 검사라는 직업은 드라마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거의 정반대라고 한다. 아마 대다수 직업들이 TV의 모습과 많이 다를걸. 게다가 모든 집단과 조직에는 부패한 인간과 문화와 시스템이 꼭 있다. 검찰 계도 매한가지인데 그렇게 더러움이 가득한 곳에서 나름 물들지 않고 살아온 검사가 책 한 권을 냈다. 저자는 독기 가득한 눈빛의 검사가 아니라 미생의 장그래 같은 순하고 투명한 캐릭터에 가깝다. 차근차근하지만 할 말은 다 하면서 제법 찰진 드립까지 날려주는 게 이제 막 예능 방송에 적응해가는 사극 배우의 느낌 같달까. 역시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은 글빨도 좋을 수밖에 없나 봐.


많은 사건과 사람을 담당하면서 느끼는 1순위는, 법이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니 최대한 피해를 입지 말라는 것이란다. 검사 입에서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하다니, 네가 그러고도 검사냐! 할 수 있겠으나 현실이 그렇단다. 사건을 종결하고 나면 뿌듯함보다는 안팎으로 쓸쓸함만 남는 직업이 검사이다. 인간의 추함이 쏟아낸 토사물을 매일 봐야 하니 말이다. 자신은 그렇게 슬퍼하지만 독자에게는 각종 사례들을 설명할 때 팩트와 유머를 적절히 섞어서 들려준다. 앞에서 말했듯이 글재주가 좋아 웬만한 단편 소설집보다 재미있다. 재미로 읽을 책은 아닌데 진심 재미있다. 교통사고로 전치 3주가 나왔어도 3일 만에 회복하는 울버린, 반나절 만에 전국 팔도를 순회하는 플래시, 1시간 안에 드립 커피 3백 잔을 만든다는 오병이어 기적의 예수님 등등. 별별 사람들이 다 있는 대한민국은 초능력자들이 모여사는 기적의 땅이다. 그런 사람들은 양반이다.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경우는 일단 져준 다음 수사를 시작한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때문에 검찰은 오늘도 휴일근무에 폭풍 야근 중이다.


수백만 명의 사기꾼을 담당하는 검사 한 명이 시달리는 내용과 만렙 사기꾼들의 내공이 아주 자세히도 나온다. 검사들이 2년마다 인사이동하는 것과, 오래된 사건부터 처리하는 시스템을 파고들어 사기꾼들은 거미줄에서 당당히 빠져나가기도 한다. 특히 고위급 거물들을 구속할 때면 검찰을 방해하는 자들이 꼭 등장한다. 온갖 권력을 행사하는 음모자들 때문에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일도 허다했다. 개인이나 소수의 인원도 범죄를 밝혀내기 어려운데, 집단이나 조직 대 조직으로 이루어진 범죄는 더 힘들다. 무능력한 검사로 낙인찍히는 건 한순간이라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평생을 무시당하게 된다. 안에서든 밖에서든. 범죄 종류도 워낙 다양해서 각종 분야를 공부하고 연구해야 하는 게 검사다. 세상에 쉬운 일 없다지만 검사도 참 극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험 사기, 도박, 소년법, 부동산 불법 매매, 갑질 프랜차이즈 가맹점, 불법 기획사, 뇌물, 마약 등등. 큼직한 사례들이 분야별로 하나씩 소개되는데 그중 도박 현장에서 붙잡힌 박여사의 발언들이 제법 흥미로웠다. 내 돈으로 내가 도박하는 게 뭐가 문제냐, 데모하는 학생들이 경찰을 피하는 게 찔려서 그런 거냐, 도박이 불로소득 때문에 불법이라면 돈을 못 딴 경우 무죄 아니냐,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면 모두 죄가 되냐, 국회의원이 법으로 만들면 국민이 무조건 지켜야 하느냐 등등. 법조계나 학계에서도 어려워하는 논쟁거리 주제들을 마구마구 던지는 박여사와, 이에 대한 코멘트를 다는 저자. 법이란 무엇인가. 윤리는 무엇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기회를 통해서 한 번쯤 돌아보게 된다.


실전에서 오는 고충도 많지만 검찰계의 로직이나 조직문화에서 오는 내부의 고충도 한몫한다. 숨 쉬듯 검찰을 고소해대는 사람들이나, 정신을 종잡을 수 없는 내부 사람들이나 장단 맞추는 건 똑같이 힘들다. 나는 관공직, 전문직, 공무원 같은 사람들이 이런 책을 낼 때면 업계에 시달릴 것을 먼저 걱정한다. 전에 읽은 ‘임플란트 전쟁‘의 저자도 업계의 비리를 책으로 썼다가 치과계의 왕따가 되었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런 말을 했다. 역사 책을 보면 늘 바른 말을 하는 자가 죽었다고. 안 그래도 필터 없는 또라이 검사로 낙인찍혔는데, 초임검사 때 검사장을 디스 했던 일화를 그대로 책에 쓴 걸 보면 저자도 진심 보통내기가 아니다. 이제는 짬이 높아져서 이런 내용도 쓸 수 있는 거겠지? 세상을 바꾸는 모든 또라이들이여, 멈추지 말고 가던 길 계속 가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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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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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나오는 요 시리즈는 하나같이 작품 퀄리티가 상당히 높아 보인다. 지금까지 4권 읽었는데 전부다 소재나 테마가 독특했고, 이슈되는 사회문제를 꼬집는 장면이 꼭 있다. 스토리텔링도 훌륭하고 여러 가지 화두를 던지고 있어 유명한 일본 사회소설에 전혀 꿀리지 않는다. 시끌시끌했던 ‘82년생 김지영‘도 이 시리즈던데 그 책도 언젠가는 읽을 날이 오겠지. 요즘은 국내 작가 쪽에도 관심을 많이 가져보려 한다. 한국문학은 유명한 작품 위주로 읽어봤는데 내 코드와 영 안 맞는 작품이 많았고 실망을 거듭하여 선입견이 생겼었다. 꽤 괜찮은 국내 작가들도 많은데 스타 작가들에게 가려져 모르고 지나쳐온 것도 있고 사실 그동안 너무 무관심하기도 했다. 이젠 골고루 좋아해볼게유.


주인공 고요나는 재난 당한 나라에 관광을 보내주는 여행사 과장이다. ​퇴출 대상만을 성추행하는 김 팀장에게 성추행당한 그녀는 결국 사표를 던지지만, 회사는 한 달 휴가와 함께 출장 개념으로 재난 관광지를 보내준다. 무이라는 섬으로 날아가 5박 6일의 일정을 마친 요나는 공항 가는 열차에서 가이드 일행과 떨어지고 섬에 혼자 남겨진다. 회사도 도와주지 않았고, 소지품도 사라져서 불법체류자가 된 그녀는 묵었던 여행사와 계약 맺은 리조트로 돌아온다. 마침 리조트 업체에서 고용한 한국인 작가가 요나를 알아보고 이 섬의 재난 프로그램을 리뉴얼하자고 제안한다. 이 섬은 관광 상품의 수명이 다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제안을 기회로 삼아 상품 가치도 되살리고 본인의 가치도 높여볼 생각이었는데, 어쩐지 작가의 시나리오가 범상치 않다. 인위적인 재난을 발생시켜 여행사에 재계약을 체결하시겠다? 이 계획에 공범이 되는 게 과연 잘한 선택일까. ​​


​재난 지역으로 관광을 간다니, 발상 한 번 프레쉬하다. 재난 지역을 관광하면서 삶에 대한 감사를 느끼게 하는 취지라나. 맨날 고객들만 비행기 태워주다가 직접 날아가보니 감회가 퍽 새로운 주인공. 그녀는 관광하며 카메라에 담아둔 섬의 모습과 사람들의 분위기가 이곳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관광이 끝난 다음에야 섬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다. 1달러를 벌기 위해 섬 주민들은 억지로 웃고 노래했다. 그리고 무대가 끝나면 마치 기초생활수급자들만 사는 섬처럼 변했다. 가치를 잃은 관광지는 주민들의 생계까지 위협하고 있었다. 요나의 말대로 재난은 눈앞에서도 진행 중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섬 전체가 아닌 실속을 챙기는 몇몇을 위해 상품을 리뉴얼 한다는 게​​ 어쩐지 꺼림칙하다. 그렇게 무생물 같던 그녀의 심장 속에서는 조금씩 조금씩 감수성의 싹이 자라나고 있었다.


​요나의 양심을 시험하는 순간이 참 많았다. 섬 주민들까지 동원해 재난 조작극을 꾸미는 황 작가와 업체를 말릴 기회도 많았다. 그러나 제 코가 석자인 요나는 그러지 않았고, 심지어 이 일이 주민들을 대학살 할 것을 알면서도 진실을 번번이 외면하였다. 그리고 끝까지 자신의 안위만을 우선시하였다. 근데 나는 그녀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다. 야망에 눈이 멀어 분별력을 잃은 게 아니라 그냥 피곤한 일에 엮이고 싶지 않은 것이니까. 마치 성추행 당한 직원 그룹에 속하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문제는 요나도 본인의 선택이 어떤 운명을 가져올지 짐작하고 있었다는 데에 있다. 하지만 그것을 애써 모른척하기 위해 죽어가는 소금 땅을 살려내는 것만 집중했을 뿐이다. 그러나 공포 앞에서는 다 똑같은 인간이란 사실을 천천히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곧 죽을 사람들에게 별 감정도 없다가, 본인이 죽을 처지가 되고 나니 생명이 귀한 줄 깨달으신 우리 고 과장님.


여행사에 도움을 요청해도 회사는 알아서 하라며 그녀를 모른 척 한다. 그제서야 요나는 고객들의 취소/환불 요청들을 매몰차게 거절했던 자신을 떠올린다. 절실한 고객들에게 갑질로 대응했던 그대로 돌려받은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동정을 해야 할지, 카타르시스를 느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전혀 도와줄 마음이 없는 여행사는, 이윤 없는 일에 힘 쏟지 않는 자본주의사회의 표본이다. 내 밥줄 챙기기도 바빠서 타인을 신경 쓰는 게 오지랖이 돼버린 사회. 그 속에서 벗어나 보려고 떠났던 여행인데, 교만함으로 만든 재난과 대 자연 앞에 요나 일행은 굴복하고 말았다. 역시 사람은 마음을 곱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다고 숨 막히는 현실이 달라지기나 할까.


꼭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추격전 같은 액션이 있어야 스릴러, 호러 소설이 아니다. 이 작품처럼 철저하게 사람을 고립시키고 궁지에 몰아넣는 것만으로도 극 공포와 긴장감을 보여줄 수 있다. 직장에서 퇴출될 위치임을 감지했을 때, 외국에서 길을 잃고 국제 미아가 되었을 때, 여권이 없어서 귀국할 방법이 없을 때, 재난으로 죽음이 닥쳐오는 게 느껴질 때, 사랑하는 사람이 곧 죽을 예정임을 알고 있을 때. 얼마든지 살면서 이 같은 절대 위기의 상황을 실감할 수 있고 공포를 마주할 수 있다. 웬만하면 피하고 싶겠다만. 작품 해설자는 지독한 현실의 중압감을 다른 방식으로 허구화한 작품이라 했다. 아, 역시 내가 제대로 읽은 게 맞았구나. 현실이라는 재난의 하루를 무사히 버텨내고 살아남은 것에 대하여 감사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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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9-06-27 11:12   좋아요 1 | URL
모던 클래식도 그렇고 민음사 시리즈 좋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물감 2019-06-27 11:58   좋아요 1 | URL
ㅎㅎㅎ시리즈 전부 줄줄이 읽어봐야겠어요^^

카알벨루치 2019-06-27 11:47   좋아요 2 | URL
오오~좋아요 물감님 글은 속도감이 있어요 ㅎㅎ

물감 2019-06-27 14:53   좋아요 1 | URL
크으... 저의 템포를 알아봐주시다니요, 역시 프로 리뷰어 카알님ㅋㅋ

카알벨루치 2019-06-27 12:26   좋아요 1 | URL
물감님 과찬에 점심 안 먹어도 되겠습니다 ㅎㅎ

물감 2019-06-27 13:08   좋아요 1 | URL
ㅎㅎㅎ감사합니당. 남은 6월도 마무리 잘하십시오^^!
 
미스 플라이트 오늘의 젊은 작가 20
박민정 지음 / 민음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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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부터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교육을 받는다고 들었다. 그런 교육이 모두에게 다 잘 먹히는지는 모르지만 상당수가 예의를 중시하는 사람으로 자라난다고 한다. 서로 간에 예의를 지키며 조심하는 세상. 이 얼마나 이상적인 유토피아인가. 내 생각, 내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 실례이고 상처되지는 않는지 스스로를 계속 돌아보는 삶. 피곤하게 산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습관화되고 일반화되면 피곤한 게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 될 것이다. 이런 얘기를 왜 하고 있냐면, 이 책은 자신의 지난 잘못이 뭐가 문제인지, 자신의 태도가 타인에게 왜 상처인지를 모른 채 살다가 땅을 치며 후회하는 한 남자를 말하고 있어서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한다면 타인이 말하는 말에 조금만 귀 기울여도 고치고 달라질 수 있는 것들인데, 자존심이 밥 먹여준다고 믿는 권위적인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을 생각은 안 하고 외부 요인에서 찾으려고만 한다. 그 생각의 결과가 어떤 문제를 낳았는지, 또 이 사회를 어떻게 더럽혀가는지 알아보자.


항공사 승무원인 딸의 장례식 장면부터 시작한다. 유나는 차를 몰고 저수지에 뛰어들어 익사했다. 딸과 남처럼 지내왔던 공군 대령 출신의 아빠는, 딸이 죽고서야 지난 세월을 돌아본다. 현역 시절부터 전역한 지금까지도 아빠는 가정을 소홀히 했고, 10년간 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울고 싶어도, 화가 치밀어도 그럴 자격이 없는 아빠였다. 그는 딸의 일기장에 적힌 의미심장한 글을 발견하고 딸이 자살하게 된 경위를 조사한다. 그리고 딸이 근무하던 항공사에서 딸과 한 부기장의 스캔들 루머를 듣는다. 또한 진실에 다가갈수록 마주하는 건 딸의 심장에 칼을 꽂은 사람이 바로 아빠 자신이란 사실이었다.


유나와 아빠의 사이가 틀어진 두 사건이 있었다. 먼저 딸과 소문난 부기장은 과거 아빠의 운전병이었다. 그의 아내가 아이를 유산하던 날, 대령은 끝내 운전병을 집에 보내주지 않았다. 그는 대령에 대한 증오를 분풀이하려 유나를 납치해 집으로 데려간다. 반면 유나는 그의 심경을 이해하고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유나는 납치되었음에도 집에다 가출한 것으로 말했고, 납치된 동안 자발적으로 운전병의 아내를 조리하고 집안일을 도왔다. 아빠 때문에 한 가정이 깨져버린 것을 대신 사과라도 하듯이. 일찍이 철들어 타인의 심경을 이해하고 위로할 줄 아는 성숙한 아이였다.


또 한 사건은, 방산업체가 국방예산을 횡령하는데 동조한 장교들을 폭로하려던 윤 대령의 죽음이다. 그를 압박하여 입을 막고 자살하게 만든 것은 유나 아빠 홍 대령이었고, 이 사건은 사회에 알려져 대령은 불명예 전역했다. 당시 유나는 아빠를 비난했고, 눈 뒤집힌 아빠는 폭력으로 답했다. 한 가정이 무너졌는데 아빠는 고작 딸이 버릇없게 군 것으로 화를 낸 것을 용서할 수 없었던 유나. 그 후로 딸과 엄마는 아빠와 따로 살게 된건데 듣자 하니 이건 도저히 커버칠 수가 없다. 나는 잘못한 거 없다는 태도로 나오는 아빠와 누가 같이 살고 싶을까. 더 충격인 건 어떻게 그 방산업체의 경비원으로 들어갈 수가 있지? 자신이 뭐 때문에 군복을 벗었는지 알면서? 그리고 힘들었던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은 딸한테 지금도 섭섭하다는 대령 이 인간은 진짜 하이킥 좀 맞아야 한다. 왜 아빠는 가족과 싸우고 해결할 생각보다 각자 갈 길을 택했을까? 더 이상 돌이킬 수도 없고, 선택지도 없다고 판단한 걸까? 자신이 원인이고 가해자라는 인식조차 없으니 해결할 생각을 안 했겠지. 알았다면 딸과 대면해서 풀어볼 기회도 얼마든지 많이 있었을 텐데.


그러나 이것들은 대령의 집안 사정일 뿐, 유나가 자살을 결심한 계기는 따로 있었다. 직원을 고발하여 성과를 올리는 항공사의 엑스맨 제도가 시초였는데, 유나의 스캔들을 보고한 동료는 사과는커녕 오히려 유나가 잘못한 것처럼 몰고 갔다. 여기서 동료의 적반하장 태도가, 과거 아빠의 모습과 겹쳐진다. 똑같은 상황에서 아빠에게 저항했던 그녀는 세상에겐 저항하지 못하고 끝내 패배한다. 단순히 승산 없다는 사실에 분하여 자살한 게 아니다. 위계질서를 따라 비리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던 아빠가 그제서야 이해된 것이다. 그녀는 군대라는 계급사회를 오랫동안 봐왔으면서도 좀처럼 위계질서 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운전병이 상사의 가족한테까지 기사 노릇하는 게 당연한 건지, 임신한 아줌마를 불러다 일 시키는 엄마의 행동이 당연한 건지 항상 의문이었다. 늘 부조리함에 거침없이 맞서던 그녀였는데, 사회로 나와 겪어보니까 이 바닥의 더러움을 실감했다. 그래서 아빠가 속한 삶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생을 끝냈다.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어 각도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작품이다. 다 읽고 나서야 이 책이 성장 소설이란 걸 알았는데 딸뿐만 아니라 아빠의 성장까지 그려냈다. 딸은 승무원이 되면서 고객들에게 희롱과 폭행을 당하고, 반성문을 쓰고, 근신 처분까지 받으면서 인생은 실전이라는 것과 혼자만 깨끗해봐야 소용없단 걸 어렴풋이 느끼면서 성장한다. 인생 승리하는 흔한 성장이 아닌 순수함에 때가 잔뜩 묻어 현실을 깨닫게 된 마이너 틱한 성장이었다. 반면 아빠는 딸이 죽고서야 걸어온 길이 오물로 얼룩져있었음을 깨닫는다. 수많은 불편한 진실로 부들부들하다가 끝나는 게 아니라 딸을 위해 달라지려는 아빠도 성장한다. 그리고 작가는 두 부녀를 통해 독자까지도 성장시켜준다. 어째 세상은 의로운 사람일수록 가만 놔두지 않으려는 것만 같다. 심지어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더 문제 삼으려는 썩은 인간들도 많다. 똑같은 세상인데 어째서 누군가는 세상이 아름답다 말하고, 누군가는 세상이 더럽다고 말하는가. 적어도 어린이들만은 세상이 더럽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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