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멈추는 법
매트 헤이그 지음, 최필원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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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동안‘소리 듣는다면야 좋긴 하겠지만 죽을 나이가 돼서도 그 얼굴이면 과연 좋을까? 주변 사람들이 다 늙어가는데 나 혼자만 어린 얼굴이 과연 기쁜 일일까? 누구나 장수하고 싶고 한살이라도 어려 보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정작 늙지도 죽지도 않는 입장이 되면 얘기가 다르다. 천년을 살아가는 이 책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주인공의 표현을 빌리자면 글자 하나 없는 책 같은 처지이며, 진절머리 나는 후렴구 노래에 갇힌 기분이라고 한다. 칠팔십 년을 사나, 칠팔백 년을 사나 인생의 굴레는 변함이 없나 보다. 왜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라는 제목의 책도 있지 않던가. 장수 인간이 얘기하는 인생의 수고로움과 삶의 애환을 들어보자.


먼저 주인공은 초 핵폭탄 급 동안을 가진 439살 할아버지이다. 그는 늙지 않는다. 정확히는 정상인보다 노화되는 시간이 15배쯤 느리게 흐른다. 이런 자신의 병을 치료받으러 유명 의사를 찾아갔으나, 그 의사는 자신처럼 늙지 않는 자들이 만든 한 단체에게 살해당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가 노출되면 세상에 혼란을 가져올 것이고 신변이 위험해지기 때문에, 나름의 규칙을 세우고 세상으로부터 서로 보호를 주고받는다. 이 단체에 소속되고부터 수 세기 동안 다양한 신분으로 살면서 인간들을 지켜본 결과 사는 것에 특별함이란 없었다. 세상에 아무 미련도 없는 주인공이 꿋꿋이 사는 이유는,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함이다. 자신과 똑같은 시간의 저주에 갇혀버린 딸과 상봉할 날을 위해 몇 백 년이라도 자신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견디고 견뎌야 한다.


​저자가 동화작가라는 티가 나는 게 문장이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하고, 동화에도 어울리겠다 싶은 비유법이나 특정 표현들이 자주 보인다. 이 책도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진행되는 구성 방식인데,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여러모로 비교되었다. 그 책의 문제점은 과거의 화려한 내용들이 현재와는 하나도 연결성이 없다는 거였다. 그러다 보니 과거 내용은 완전 별개로서 손자들에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가 되어 의미 없는 분량만 차지한 꼴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것과 다르게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가 꽤 있다. 대표적으로 주인공이 과거 만났었던 위인이나 유명인의 생생한 묘사라던가, 어릴 적 겪었던 마녀사냥 당시의 배경을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장면들. 이처럼 지나온 과거가 현재의 일부분이 되고, 또는 그 기억이 두통을 낳는 장면들이 반복되는데, 이런 기교들이 작품의 균형을 이루고 몰입을 돕게 한다. 여기서 저자의 내공을 볼 수 있었지.


보통 일인칭 시점의 소설은 독자가 직접 주인공이 되어 읽는 맛이 있다. 근데 이 책은 일인칭이면서도 제삼자 입장에서 읽혔다. 그래서 아쉬웠다. 왜 주인공 입장이 될 수 없었냐면 계속 과거로 점프하니까 빙의되려는 걸 방해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 시점도 계속 왔다 갔다 해서 상황 파악하느라 리듬마저 중단된다. 매력적인 구성이지만 이런 리스크가 따르는군. 무엇보다 그토록 찾아다니던 딸이 아무 언급도 없다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태연하게 아빠와 마주하는 건 좀 아니지 싶다. 몇백 년 만의 재회인데 일주일 만에 만난 것 같은 연출에, 감정선도 너무 약했어. 좀 더 드라마틱한 전개를 원했는데. 뭐, 요것들 빼면 다 좋았음. 주인공이 발견한 시간을 멈추는 방법은 시간의 지배에서 해방되는 것,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시간을 멈추는 법이 아니다. 나 외에 소중한 사람들의 시간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과거에서 미래가 되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간과 발 맞출수 있단 걸 깨달은 거지. 평생 거짓말해야 하고, 누구와도 친해져선 안되고, 도망 다녀야 하는 인생이라면 차라리 산에 들어가 자연인으로 사는 게 나을 듯. 여튼, 너무 잘 읽었다. 분석할 것도 많았고, 재미도 교훈도 빵빵한 작품이다. 우리의 닥터 스트레인지께서 영화에 출연한다고 하시니 완전 기대된다.


이제 나에게 묻는다. 지금 이 순간은 미래를 맞이하는 시간일까, 과거로 지나 보내는 시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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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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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알라딘 이웃 중 라스티님이 쓰신 ‘작가 수업‘의 서평 중에서 뇌리에 꽂힌 문장이 있었다. 바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독서를 해야 잠재 능력이 개발된다‘는 말이었다. 많은 독자들이 장점 위주로 글을 쓰고 있고, 모든 책마다 별점을 후하게 주는 데에 비해 나는 그렇지 못하다. 내가 워낙 프로까칠러라서 가끔 걱정도 들었는데, 내 시각과 주관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대로 계속 가련다. 누구나 쓰는 똑같은 칭찬글은 쓰지 않을 것이다. 여하튼 책 읽고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반대로 서평을 쓰고 싶지 않게 만드는 책들도 더러 있다. 보통은 요약이 어렵거나, 포인트를 놓치고 읽었다거나, 나와 맞지 않아서인데, 때로는 이유 없이 싫을 때도 있다. 이 책이 그러했다. 분석하는 재미도 없고, 내용도 그냥저냥에 억지스러운 주제의식 등.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한 분위기만 조성하다가 뻔한 결말. 의욕이 확 꺾였지만 뭐라도 작성해보자.


남자친구를 만나러 간 보험사 직원이 교살 당한 시체로 발견되고 남자친구는 행방불명 상태다. 죽은 여자는 조건만남 사이트에서 만났던 다른 남자가 있는데, 사실 범인은 이놈이다. 참고로 이 책은 범인을 찾고 추격하는 추리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스포일러는 아니다. 암튼 이 남자는 죽은 여자 소식을 접한 후로 찾아오는 괴로움을 다른 여자를 만나서 해소한다. 그러나 양심에 못 이겨 살인죄를 고백하고 자수하려 하나, 이미 주인공에게 빠진 여자는 주인공을 이끌고 도주를 택한다.


도주한 시점부터 이야기는 힘을 잃었다. 전혀 매력 없는 두 남녀가 꼼지락대다가 붙잡히는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어서, 혹여나 마지막에 뭔가 반전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없었다. 근데 보험사 동기들 이야기와 다단계에 빠진 할머니 이야기는 왜 한 걸까. 이외에도 스토리에 별 영향 없이 분량만 잡아먹는 불필요한 내용들이 너무 많아서 진도가 나가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리고 사건 추리 내용은 없고, 등장인물들이 각자 딴 얘기만 하고 있어 모두가 사건과 관련 없는 제삼자들 같았다. A를 보여준다 하고 B만 보여주고 있으니,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멀리 돌아가는 답답함이었다. 그렇게 각자의 이야기도, 사건의 진실도 따로 노는 답답한 전개에서 마지막에 하나로 엮었다지만 솔직히 작위적이었고, 이쯤 되면 앞서 불필요한 내용들에 대해 불만이 폭발하게 된다. ‘할런 코벤‘의 작품도 이렇게 끝에 가야만 앞의 내용들이 이해되는 경우가 많아서 한번 쓴소리를 했었는데 이 책도 똑같은 케이스다. 이렇게 처음 만난 작가의 첫 작품이 실망스러우면 어쩔 수 없는 선입견이 생겨버린다.


‘악인‘의 사전적 의미는 악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책은 악인의 기준점을 모호하게 다룬다.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철저히 배제하고 선악의 판단 기준을 독자에게 맡겼다. 그래 좋다. 근데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 기꺼이 악인이 된 주인공을 가리켜 이것도 악이라 할수있느냐‘ 를 말하고 싶은 거라면 대단히 실망스럽다. 악의가 있든 없든 범죄자 인건 마찬가진데 단 한 번의 희생정신으로 주인공의 죄가 없어지는가? 악의가 없었다 해도 누군가는 이미 피해를 입었는데 그 사람은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그래서 이 책의 주제의식은 억지스럽다고 한 거다. 작가가 쓰고자 했던 ‘진짜 심연‘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는데다, 악화된 상황에 따른 심리묘사도 빈약하고 부실한데 심연은 무슨 얼어 죽을. 당부족인가, 오늘따라 까칠함이 하늘을 찌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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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10-19 21:55   좋아요 1 | URL
이런 리뷰, 환영합니다. 칭찬 일색의 리뷰가 있는 반면 이런 리뷰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너를 위해서라면 난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의 죄를 감해 주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누구를 위해서이든 악은 그저 악일 뿐이니까요.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

물감 2018-10-19 22:4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남들이 좋은 점만 말하니까 나쁜 점을 말하기 어려워하는 독자들이 많아요. 나만 다르게 느낀다는 것에 겁이나니까 모두가 예 하면 똑같이 예 하는 분들이 많아서 늘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백종원처럼 되기로 했어요. 좋은점엔 칭찬하고, 아닌것엔 과감하게 쓴소리 하기로요^^

페크pek0501 2018-10-19 22:49   좋아요 2 | URL
저는 가끔 남들이 모두 예, 라고 할 때 저만 유독 노우, 라고 외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글을 쓸 때 제게 힘을 주는 말이 있습니다. ˝칼럼은 편견이다.˝라는 말.
이 말을 위안 삼곤 합니다. - 특히 자신 없는 글을 쓸 때.

마찬가지로 모든 글은 자기의 편견을 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과 다른 생각을 가질 때 차라리 저는 독창적이군, 이라고 느끼는 편입니다.
모두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여기가 독재 나라도 아니고 말이죠.
알라딘은 독재 마을이 아니라서 좋습니다.

물감 2018-10-20 13:13   좋아요 1 | URL
편견을 쓴다. 좋은 말이네요. 저도 위안삼겠습니다ㅎㅎ왼손잡이가 잘못된건 아니니까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다락방 2021-09-01 20:58   좋아요 1 | URL
저 이거 별 두 개 리뷰 썼는데 물감님의 별 두 개 리뷰라니 진짜 너무 반갑네요 ㅋㅋ 이거 별 두개 리뷰 썼다고 댓글로 욕도 먹었는데 말입니다 ㅋㅋㅋㅋㅋ

물감 2021-09-02 07:49   좋아요 1 | URL
말씀하셔서 방금 저도 글 읽고왔는데요, 댓글 어이없어서 웃었네요. 지 감상은 종소리이고 남의 감상은 걔소리라고 생각하는가보죠?ㅡㅡ 저런 인간들이 국내독자들을 우물안 개구리로 만드는 건데요ㅋㅋ에휴.

저도 이 책 진짜 별로였어요. 내용은 이제 기억도 잘 안나지만 그 실망스러움이 강렬하게 박혀있어요ㅋㅋㅋ저도 반갑슴다ㅋㅋ

다락방 2021-09-01 20:58   좋아요 1 | URL
지금 가서 다시 확인했더니 저는 별 하나 줬네요. 호호 🤭

물감 2021-09-02 00:00   좋아요 1 | URL
ㅋㅋㅋ한개나 두개나 똑같죠 뭐😎
 
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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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국내 문학을 연속 세 권이나 읽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이번에도 처음 만나는 작가의 작품이다. 요즘 한창 글쓰기 스킬업 중이어서 길게 써보려다 그냥 짧게 쓰련다. 다리 위에서 자살하려는 한 남자가 있다. 그가 생을 마감하려는 이유는 뭐였을까. 그는 육 남매 중에서 혼자 모자란 지능과 신체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놀림거리와 애물단지가 되었으나 타고난 넉살로 그럭저럭 살았다. 산골 마을에서 농사지으며 가난 속에 살아온 이 집안의 육 남매 성장과정은 생략한다. 장남이 월남전에서 죽고, 아버지는 술주정뱅이가 되고, 작은누나는 연탄가스 사고로 정신장애를 입는 등 사는 게 이만큼 힘들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고난은 쉬지 않고 찾아와 괴롭혔다. 불행은 이게 끝이 아니다. 죽어라 돈 벌어서 동생들 대학비와 생활비에 전부 퍼주면서 오로지 가족만 생각했는데 회사가 망했다. 엄청난 빚쟁이가 되고 이렇게 만수네 가족들은 하나같이 엉망진창의 삶을 살아간다.


장르문학처럼 큰 이슈가 있는 건 아니고, 만수네 가족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재미있는 건 만수가 주인공 같은데 만수 입장에서 쓴 글은 없다는 거다. 전부 가족, 동료, 친구들의 입장에서 쓴 내용뿐. 그래서 주인공이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알 수 없는 게 아쉬웠다. 일단 한국 사회가 짜장면 10원 시절부터 근대화 시작까지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어떤 장면은 너무 상세해서 불편할 정도였다. 요즘 학생들이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는데, 옛날부터 한국은 늘 헬조선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잘 아는 단군 신화의 곰과 호랑이 일화를 보면, 쑥과 마늘로 100일 다이어트 미션에서 곰은 잘 참아 인간이 되었고, 호랑이는 이따구로 못 산다며 굴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 두 유형은 작품 속에서도 잘 나타나는 바 만수는 늘 곰이었고, 친구며, 가족이며, 동료들은 전부 호랑이였다. 곰 쪽이 늘 손해 보는 입장이었단 게 난센스인데, 안 맞는 사람들과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건 얼마나 고역인가. 신화 속 곰은 혜택이라도 있었지 만수는 그런 거 없다. 정직하게 살아봤자 모두 다 소용없다. 평생 술 담배해도 건강한 사람은 장수하는 거다. 그러니 억울하지 않으려면 어느 영화 속 대사처럼 곰 같은 여우로 살아야 되나 보다.


왕년의 스타 연예인이 토크쇼에 나와 과거의 썰을 풀면, 요즘은 ‘추억 팔이‘라며 그만 우려먹으라고 한다. 하물며 이런 6~70년대 배경의 서사물이 요즘 젊은 층에게 과연 얼마나 먹힐까. 삼촌들의 군대 얘기가 재밌는 건 나름 공감이 되기 때문인데, 이 책은 지금 30대만 해도 공감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시점이 너무 자주 바뀌어 정신이 없었고, 끝까지 진지해서 교장선생님 훈화처럼 금방 지루해진다. 이 작품에 딱 맞는 표현이 있는데, 평생 일만 하다 늙어죽은 소를 닮은 책이다. 죽어라 일해봤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소의 업적은, 주인공이 걸어간 헌신의 삶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투명인간인가 싶다. 뭐 이런 희망이라곤 1그램도 없는 작품이 다 있을까. 생략해서 그렇지 이 책은 불행의 연속이어서 읽는 내내 괴롭다. 여튼 끝에서 처음 자살 장면으로 다시 돌아오는데, 서술자가 주인공이 갑자기 안 보인다며 너도 투명인간이냐고 한다. 아니, 그럼 투명인간의 뜻이 진짜 그 뜻이었어? 알고 보니 SF였던 거야 뭐야? 아니면 작가가 길을 잃은 건가?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이건 납득이 안되잖아, 납득이... 당분간 국내 문학은 정지해야겠다. 짧게 쓰려 했는데 왜 이렇게 길어졌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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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파인더 2018-11-14 16:21   좋아요 1 | URL
성석제작가의 글은 언어유희로 유명하죠.. 워낙 예전부터 재담과 해학으로 유명한 작가라..저같이 올드한 사람들 취향엔 맞긴한데... ㅠ 저도 나이를 많이 먹었나봅니다. 성석제작가는 제가 20대때 무척이나 좋아했었는데.. 이런류의 이야기는 이제 젊은 사람들에게 안먹히나 봅니다.^^

물감 2018-11-14 17:43   좋아요 0 | URL
제 취향이 아닐뿐, 지금의 20대들이 다 저같진 않을거에요ㅎㅎ 올드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으니까요^^
 
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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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유독 추천이 많았던 작품이라 의무감으로 읽었다. 근래 국내에서 일명 ‘드루킹 사건‘이 언론을 장악한 적이 있었는데 딱 그런 내용이었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려서 댓글과 추천수 조작으로 정부를 비방한 짓과 동일한 짓을 업으로 삼아 거짓도 진실로 만들어버리는 본격 키보드 워리어들의 무서움을 실컷 볼 수 있다. 어디에나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팩트를 왜곡하는 인간들이 있기에, 그 어떤 깨끗한 글과 정보에도 얼마든지 논쟁은 벌어지고 찬반은 늘 치열하다. 이 미꾸라지들은 그저 지 생각을 말했을 뿐이라지만 사실 남들을 선동시키고 분란을 조장하는 게 목적이다. 바로 이 책 속의 댓글부대처럼 말이다. 그들은 계약금만 받으면 되기 때문에 진실과 거짓의 여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어제는 우파가 되었다가 오늘은 좌파가 되고, 낮에는 이삼십대를 겨냥했다가 저녁엔 사오십대를 저격해댄다. ‘카더라‘식의 SNS 글 하나 올려두면 나머지는 네티즌들이 알아서 일을 크게 벌려놓는다. 사회에 저항심을 갖게 하는 영상을 만들어 잘못된 십대 문화를 형성하고, 인터넷 카페에 반대 글을 쓰고 조회수를 올려서 회원들을 떠나가게 만들어 폐쇄시킨다. 그 방법들이 생각보다 쉬워서 전문 업체가 아니어도 여론조작이 누구나 가능한 세상이 되어있고 우리는 그런 세상에 적나라하게 노출돼있다.


이 작품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많이도 언급된다. 기성세대는 댓글부대를 이용하여 그런 약자들을 주로 공략한다. 입막음해야 할 이슈가 있다던가, 업체를 문 닫게 하고 싶을 때 댓글부대에 하청하면 법망을 교묘히 피해서 생매장 시켜준다. 약점을 찾아내어 깐 데 또 까고, 한 놈만 패는 것이 그들의 전문 분야가 아니던가. 그렇게 댓글부대를 통해서 효과 좀 봤다 싶으면 청탁자들은 또 다른 제안을 걸어서 눈엣가시들을 차례차례 짓밟아간다. 온라인에서 어떤 식으로 불이 붙고, 어떻게 오프라인까지도 산불로 번지는지 자세하게 나온다. 매크로가 진짜 무서운 게 특정 단어가 들어간 SNS 글이나 댓글이 달리면 자동적으로 지적 댓글이 등록되기도 하고, 한 유저의 과거 글들도 전부 조회하여 집단 폭격도 가능하다. 정말이지 지능적이고 체계적인 조직이며, 공든 탑도 쉽게 무너뜨리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게 하는 전지전능한 프로들이다. 댓글 알바들을 볼 때마다 한심한 잉여인간들이라며 비웃었었는데 그게 다 돈 받고 하는 거라 생각하니 이제는 다르게 보인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속고 속이는 입장 중 누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선을 전혀 긋지 않는다. 정보의 사실 판단은 독자가 알아서 하란 뜻이다. 믿든 안 믿는 나만 손해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불편한 진실만이 유일한 진실이다. 누군가는 지금도 여론 형성하느라 눈에 불을 켜고 있을 텐데.


SNS나 커뮤니티 사이트나 그 외 폐쇄 조직의 중독자들을 관찰해보면 대개 성향이 아주 뚜렷하다. 극 보수/부정적이거나 극 진보/공격적이거나. 본인들이 여러 트러블메이커에게 야금야금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된 거라고 말해주면 격하게 부정할걸? 현실에서나 올챙이지, 온라인에서는 모두가 개구리니까. 자기는 처음부터 개구리였으니까. 그런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을 저격하는 내용이라며 작가를 테러할까 걱정도 된다. 일베나 오유에 대해서도 쓰셨던데 과연 괜찮을는지. 중간중간마다 나오는 댓글 부대원과 기자의 인터뷰 내용은 제법 흥미로웠다. 자신들의 조작 노하우와 사례들을 공개함으로써 기사화 시키려는 건데 결국에는 기자와 신문사를 물 맥이는 짓이었다. 아니, 그런 정보를 다 까발리면 내가 범죄자요! 나 잡아가소! 하는 건데 어째서 순순히 인터뷰에 응대하는지 의심해볼 법도 하잖아. 부대원이 하는 말을 다 믿는 순진한 기자. 이것이 유일한 킬링 포인트입니다, 여러분.


뭔가 두서없는 글이 되었는데 이 책은 어쩐지 서평쓰기가 좀 어렵다. 구성도 독특하고, 문학인지 칼럼인지 연재 기사인지 모를 제3의 장르인데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도 못 느꼈다. 분명 재미는 있는데 왜 재미있는지는 설명 못할, 다른 의미로도 참 대단한 작품이었다. 일반적으로 기자들은 곱지 않은 시선과 불신 비슷한 게 있어서 미움받는 직업인데, 장강명은 기자 시절에 진짜 열심이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커뮤니티 눈팅도 많이 한거 같고, 진보와 보수, 부자와 서민, 성차별과 남녀 혐오 등등 조사를 많이 하긴 했더라. 온전한 기자정신이 요즘도 존재할지 모르겠다만 기자 출신이 주장하는 팩트는 허구라 해도 이렇게 분명한 힘이 있다. 그래서 대중들이 이 작가를 유시민만큼이나 옹호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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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0-08 13:25   좋아요 1 | URL
맞아요 이거 서평쓰기 힘들어 전 포기했는데 물감님 굿뜨!!!

물감 2018-10-08 14:02   좋아요 1 | URL
이제 겨우 두 권 읽었을 뿐이지만 장강명 작품은 서평 의욕을 활활 태우는 매력이 있네요ㅋㅋㅋ도전정신이 생깁니다

카알벨루치 2018-10-08 14:03   좋아요 1 | URL
물감님 응원합니다~ㅎㅎㅎ
 
소금 - 박범신 장편소설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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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 소녀가 있었다. 언니가 둘 있고, 기센 엄마와 존재감 없는 아빠랑 살고 있었다. 소녀의 스무 살 생일날에 아버지는 실종되었고 빚만 가득 짊어진 집안은 그렇게 풍비박산이 난다. 여차여차해서 세 자매는 뿔뿔이 흩어졌고 막내는 20대를 가난에 허덕이다 작품 속 서술자를 만난다. 서술자는 그녀의 사연을 듣고 인맥을 동원하여 그녀의 아버지를 찾아낸다. 여기서부터 이 아버지가 주인공으로 진행된다. 아버지는 살아있었고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려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있었으며, 서해 해안선에서 소금창고를 운영 중이었다. 왜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가족을 떠나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걸까.


​요즘은 색안경을 벗기 위해 이 작가 저 작가 가리지 않고 섭렵 중이다. 이름만 들었던 박범신 작가도 이번이 처음인데, 역시나 시작부터 내가 기피하는 전형적인 국내 문학 스멜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좋아, 돌파해보자 싶은 심정으로 350쪽 밖에 안되는 이 책을 열흘 넘게 붙들다 이제야 완독했다. 역시 국내 문학은 아직 나에겐 버겁다. ​우리 나라 작가들은 희망을 노래하기보다 지나간 설움과 한을 되새김질하는 데에 더 재능이 많지 않나 싶다. 책 제목의 소금은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폭력성을 가리키고 있으며, 부제를 넣자면 ‘아버지들의 자화상‘쯤 될 것 같다. 소금은 사실 여러 가지의 맛을 가지고 있지만 누구나 짠맛 하나밖에 기억하지 않는다. 아버지들도 마찬가지로 아버지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 얼굴을 지니고 있어도 자식들에게는 묵묵히 돈 벌어오는 이미지 하나뿐인 것이다. ‘아버지‘가 되는 순간부터 ‘나‘​라는 존재는 버려지고 가족의 생계만이 전부인 아버지들의 인생. 이 책의 주인공도 가족에게 열심히 헌신했으나 자본의 쾌락을 맛본 가족들은 아버지가 벌어오는 돈에 전혀 자족할 줄 몰랐고 그렇게 아버지를 세상으로 내몰았다. 그래서 후반에 아버지가 가족에게 다시 돌아가지 않은 속 사정이 드러났을 때 나도 모르게 끄덕거리고 말았다. 도저히 나아질 수가 없는 가정. 자신을 묶고 있는 사슬에서, 자신을 가둬두는 독방에서 벗어날 기회를 붙잡은 그가 무책임한 못난 애비라고 비난할 수가 없었다. 빚만 남기고 죽었던 아버지라고 모두가 그렇게 욕했으나 그 빚들은 전부 가족들이 만들고 쌓아올린 더러운 쓰레기 탑이었다. 결국 친가족을 떠나서 모르는 사람들과 가족이 되었어도 아버지는 자신을 돈 버는 기계나 공기 취급하는 피 섞인 딸들보다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고 이해하는 피 안 섞인 딸들이 더 사랑스러웠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짊어진 짐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 반대로 ‘아버지‘니까 얼마든지 희생해도 전혀 서운하지 않은 곳을 찾은 주인공의 어깨를 주물러주고 싶었다.


어떤 분은 아버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여성들을 폭력적으로 묘사했다고 하는데, 그런 여성들이 모여있는 가정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어째서 가정폭력은 남편이 아내에게, 자식에게만 휘두른다고 생각하지? 아내에게 잡혀사는 남편들도 많이 봐서 그런지 주인공이 전혀 답답해 보이지 않던데. 여튼 이 책을 읽고 다들 본인의 아버지를 떠올렸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아버지를 좋아한다. 날 존중해주시고 이해도 잘 해주시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높고,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지금도 자문을 구하러 가곤 한다. 자녀가 독립해서 잘 살고 있어도 부모님들은 자신의 삶을 즐기질 못하신다. 자식 키우고 집안만 돌보느라 어떻게 즐기는지 잊어버리신 거다. 같이 뭘 좀 해보려 해도 체력이 안 따라주니 할 만한 것도 없다. 그래서 해드릴만한 건 자주 연락하고 대화하는 것뿐이다. 아이고, 자꾸 딴 길로 빠지네. 이 책은 그럭저럭 나쁘진 않았지만 박범신 스타일은 나랑 안 맞군요.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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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0-04 12:31   좋아요 1 | URL
소설가들이 왜 물감님 스탈을 못 맞춰주나요 ㅎㅎㅋㅋ

물감 2018-10-04 12:43   좋아요 1 | URL
그것은! 제가 문학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ㅎㅎㅎ해설을 들어야만 이해되는 글은 그닥 안좋아해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