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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질감 - 슬픔이 증발한 자리, 건조하게 남겨진 사유의 흔적
고유동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2월
평점 :
〈 Book Review 〉
《 낱말의 질감 》- 슬픔이 증발한 자리, 건조하게 남겨진 사유의 흔적
_고유동 / 바른북스 (2025)
“그러므로 현재에 충실한 삶은 빛난다.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려는 노력보다 가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그것이 비록 언덕위로 돌을 굴리는 시시포스와 같은 고난의 길일지라도. 지금 여기 존재함.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자각하는 것은 삶을 태양처럼 빛나게 만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그 일상들이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어제나 오늘이 별 다를 것 없다고 느껴질지라도 분명 그 내면은 성장해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매일 매일의 삶에서 생성된 에너지는 생명력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 고유동 작가는 육군사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후 20년간 육군 장교로 복무했다. 공학자로서는 드물게 인문학적 소양도 함께 쌓아왔다고 한다. 군복무기간 중 지독한 일 중독자였다고 고백한다. 보람은 있었으나 몸이 망가져가는 것을 미처 감지를 못했다. 병을 얻었다. 만만치 않은 병이다. 처음에는 잠시 휴직을 했지만 회복이 쉽지 않았다. 결국 퇴직했다. “개인의 역사에서 일어나는 중대한 변곡점도 ‘사건’이라 부를 수 있다면, 퇴직의 결심이란 ‘사건’을 거치고 내 마음에 어떤 문이 생겼다. 그것은 나 자신을 객관화시켜 바라볼 수 있는 눈이다.”
어쩌면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저자가 제2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출사표인지도 모른다. 담담하게 현재 자신의 심정을 그리면서, 사유의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간다. 책은 1부 ‘거칠게 쪼개진 표면’, 2부 ‘잘게 부서진 심연’이라는 제목으로 편집되었다. 한 편 한 편의 글들이 진솔하면서도 예리하다. 작가는 이 책을 자평하길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내면의 좌충우돌을 철학적으로 파고 들어간 책’이라고 했다.
‘성벽’이라는 제목이 달린 글은 ‘벽돌책’이 주인공이다. 나 역시 벽돌책을 제법 갖고 있다. 이런저런 연유로 책 탑을 쌓는다면 역시 벽돌책이 몇 권 자리 잡아야 안정감이 있다. 저자는 벽돌책을 마주하면서 ‘성문 없는 활자의 성벽’에 갇히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성벽은 방어를 위한 것,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활자의 성벽은 특별하다. 벽돌책에 담긴 활자, 활자에 담긴 사유가 나의 사유와 충돌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멋진 사유이자 비유이다. 깊은 공감이 간다.
고유동 작가는 군복을 벗은 후 작가, 탐독가, 글쓰기강사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 책은 작가의 두 번째 책이다. 첫 책은 제목에 아직 군인정신이 살아 있는『육아 인줄 알았는데 유격』이다. 군대보다 더한 육아의 세계에서 아빠와 딸이 펼치는 전쟁 같은 일상을 유쾌하게 그려냈다. 인스타그램에도 일상과 소식을 전하고 있다. @kkuixote / 빡세이스트 고유동. 고유동이란 이름은 작가의 필명이다. “어떤 ‘고유성의 획득’, 그것은 정지가 아닌, 움직임에서 비롯된다. (...) 그것은 ‘과정’에서 성취되는 것이므로, ‘명사’가 아닌 ‘동사’가 되어야 한다. 좀 더 정확하게는 ‘고유명사’가 아닌 ‘고유동사’가 되어야 한다. 단어 마지막에 붙은 ‘사’는 일종의 ‘박제’를 떠올리게 하므로 빼도록 하자, 그렇게 내 갈망이 이름을 얻는다. ‘고유동(固有動)’ 나의 필명이자 지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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