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저울추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요제프 로트 지음, 주경식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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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무거운 책을 머리에 이고 있었더니 좀 가볍게 가고 싶어 좀 핸디한 소설을 손에 잡았습니다. 제목이 재밌을 것 같지요?  “엉터리 저울추” 예..시작은 재밌었는데 다 읽고 나니까 이젠 가슴이 무거워집니다. 아니 가슴이 짠해집니다.


“옛날 츨로토그로트 지방에 안젤름 아이벤쉬츠라는 도량형기 검정관이 살고 있었다.” 로 시작이 됩니다. 도량형기 검정관은 그냥 우리식으로 ‘단속반원’이라고 하지요. 주인공이기도 한 이 사나이의 이름은 ‘콧수염’으로 하겠습니다. 이 사나이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합니다. 콧수염의 업무는 그 지방의 모든 상인들이 사용하는 도량형기의 치수와 무게를 점검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일정 기간에 이 상점에서 저 상점으로 다니면서 자와 저울과 저울추를 검사하는 일이지요. 혼자는 아닙니다. 그의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일을 함께 해주는 지방 경찰서 소속의 순경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2인 1조지요. 


대단히 장대한 체구의 남자인 콧수염은 원래 포병연대의 장기 목무 하사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의 성화에 옷을 벗고 민간인이 된지 얼마 안됩니다. 콧수염은 내내 불만스럽습니다. 마누라 등쌀에 제대를 했지만 군생활이 그립습니다. 민간인 생활이 너무 불편하고 힘듭니다. 단속반원 생활이요? 차라리 군 제대 후에 주어진 직업이 맘에 들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요. 밥먹고 할 짓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을 그려보세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광장시장이나 동대문시장 포목점에 가면 아직도 팔을 쫘~악 벌리면서 마를 끊어주는 경우요. 판매자나 소비자가 너무 익숙한 생활습관에 갑자기 정부 주도로 정확한 줄자를 써서 판매를 해야 한다는 엄한 규정이 적용된다면 어찌 생각하시겠습니까? 단속에 걸리면 고발 조치를 당해서 벌금을 내야합니다. 콧수염이 하는 일이 이 일이었으니 참으로 딱하지요. 그러나 콧수염은 12년 동안 군 생활을 하며 몸에 배인 근면함, 명령에 복종 등으로 그럭저럭 버티며 나름대로 충실한 직무수행을 하던 중에 사건이 생깁니다. 사건이 안 생기면 소설의 진행이 안 되긴 하지요. 아, 글쎄 그렇잖아도 웬수덩어리인 그의 아내가 바람을 핀 것입니다. 그 상대도 하필이면 콧수염의 부하직원이군요. 화도 나고 자존심도 상하고 아무튼 그러나 자제하며 잘 넘깁니다. 콧수염의 부하직원과 그의 아내 사이에 아이까지 만들자 더 이상 참지 못한 그는 집을 나섭니다. 


그가 집을 나와 간 곳은 처음엔 업무차, 그리곤 어찌하다보니 가게되고, 이젠 아예 의도적으로 가는 국경에 위치한 술집입니다. 콧수염은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다니는데 어떤 땐 말이 알아서 그곳으로 그의 주인을 모십니다. 누구였지요? 우리 선조들 중 알아서 술집을 모시고 갔던 말. 이제는 술집에 안 간다고 다짐을 한 후. 잠결에 말이 다시 그 술집 앞에 내려주자, 그 말이 무슨 죄가 있다고 목을 베었다던가? 당신도 당신 마음을 잘 모르면서 말이 어찌 당신 마음을 알리요.. 그 술집엔 왜 가냐구요?  물론 술을 마시고 싶어서 가긴 하는데 더 중요한 것은 망나니 그 술집 주인의 애인인 집시여자를 보고 싶어 가는 것이지요. 나도 남자지만, 그저 남자들이란 돈과 여자 그리고 술을 조심해야 합니다. 아무튼.. 예상된 일이기도 하지만 콧수염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는 갑자기 자신이 “부서지고 흔들리고 붕괴 될 것 같은 집”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콧수염이 국경의 술집을 드나들 때 알아봤습니다. 스토리가 어찌 진행이 될지 말입니다. 


국경의 술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온갖 건달과 범법자들의 집합소이기도 합니다. 러시아군의 탈영병들의 단골 숙소이기도 하구요. 탈영병들이 네덜란드나 캐나다 혹은 남아메리카로 가려면 돈만 있으면 되는 일이었지요. 그 술집의 주인인 망나니가 단속반장 콧수염에게 걸려들면서 감옥에 갑니다. 그 사이에 콧수염은 그 망나니의 애인을 가로챕니다. 공교롭게도 정부에서 그에게 그 국경주점의 관리를 맡기게 되는군요. 그 문서를 들여다보면서 콧수염이 이런 마음을 갖습니다. “내겐 지금 불행과 행운이 같이 왔다.” 그래도 본성은 착한 사람입니다. 비록 그의 아내가 바람을 피어 다른 씨앗을 키웠지만, 그래도 아내에 대한 연민의 마음, 그의 업무에 대한 책임감은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군요. 그러나 그러면 뭐합니까. 무너지기 시작하니까 걷잡을 수 없습니다. 그가 국경주점에 폭 빠져 있는 동안 콜레라가 창궐하면서 그의 아내와 아내의 아이가 죽습니다. 그리고 콧수염은 탈옥한 망나니의 손에 죽습니다. 

콧수염. 그가 무너지는 과정이 안쓰럽습니다. 그도 그것을 알고 있었겠지요. 모든 것이 다시 회복되기 힘든 구렁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요.


책을 다 읽고 나서 나의 관심은 콧수염보다 이 소설의 작가인 ‘요제프 로트’에게 쏠렸습니다. 이 작품은 한국어로는 처음 번역 출간되는 책이기도 합니다. 요제프 로트(Joseph Roth)는 1894년 9월 2일 우크라이나 서부에 위치한 브로디에서 출생했고, 1939년 5월 27일 파리에서 사망했습니다. 


“나의 가장 강력한 체험은 전쟁과 내 조국의 멸망이다. 내가 가졌던 유일한 조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멸망하기 몇 주 전에 나온 이 고백을 읽어보면 그의 생애가 방향을 찾지 못하고 헤매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됩니다. 지원병으로 전쟁에 참여했던 로트는 군인신문의 기자로 출발합니다. 기자 생활 틈틈이 칼럼, 시, 소설, 시사 해설 등 전 방위적인 글쓰기에 몰입합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자 로트는 누구보다도 먼저 독일을 떠납니다. 그는 파리로 망명을 떠났고 그 후 빈, 잘츠부르크, 암스테르담, 마르세유, 니스 그리고 폴란드 등지를 전전합니다. 

“이 땅의 손님” 스스로 그 자신을 묘사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디아스포라’ 였습니다. 


주인공 콧수염이 머물고자 했던 집은 무너졌습니다. 사라졌습니다. 그에겐 한 쪽 눈이 먼 퇴역 말과 잠시 그의 삶의 목적이기도 했던 바람 따라 떠도는 집시 여인뿐이었습니다. 그가 가고자 했던 곳은 어디였을까요? 우리의 상식으로 군대 탈영병은 매우 위험한 존재입니다. 그냥 입은 채로 나오는 탈영병은 그래도 착합니다. 군에 대한 불만, 사람에 대한 불만,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을 주치할 수 없어 뛰쳐나오며 그냥 안 나옵니다. 총이나 수류탄을 들고 나옵니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탈영병들은 측은지심입니다. 

“새벽 3시경에 어떤 탈영병 하나가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한다. 그는 노래 〈야 루빌 티비아(I love you)〉를 불었다. 모두 울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제 막 포기한 고향을 그리워하며 울었다. 이 순간 그들은 자유보다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느꼈다.”

아마 저자인 로트가 이 나라 저 나라 떠돌며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 않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저울추..엉터리 저울추..저자에겐 이 저울추가 나라마저도 없애고 모든 국민들을 디아스포라로 만들어버리는 어둠의 큰 손을 생각하며 만들어낸 소재일 수도 있겠지요. 그 손안에서 흩어져버리는 민초들의 삶을 생각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엉터리 저울추는 내 품안에도, 그대 품안에도 있지요. 나와 남의 몸과 마음을 잴 때 달리 적용되는 엉터리 저울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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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역사 2 - 19세기 유럽의 역사적 상상력
헤이든 화이트 지음, 천형균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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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철학자이며 지성사가인 카를 뢰비트는 궁극적으로 ‘역사의 개념’이 신화, 그리고 중세 초에서 19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의 사학 사상을 지배해온 역사 지식과 신화 간의 혼동이 초래한 흉악한 ‘역사 철학’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은, 오직 부르크하르트와 더블어서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뢰비트는 부르크하르트가 발전시킨 우아함과 기지,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파악하려는 욕구인 ‘사실주의’와 순수한 ‘관조’로서의 지식에 내포된 반동적인 의미가 바로 특수한 형태의 신화적 의식의 요소였음을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부르크하르트는 역사적 사고를 신화가 아니라 당대의 상상력을 사로잡고 있던 역사의 신화, 즉 로맨스, 희극, 비극의 신화로부터 해방시켰을 뿐이었지요.

 

그의 스승인 랑케처럼, 부르크하르트도 역사를 당시의 정치적 분쟁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했으며, 적어도 역사 연구 - 사실은 보수주의의 명분에 기여할 따름인 역사연구 - 가 초래한 정치적 교리를 역사 연구가 배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부르크하르트는 랑케의 ‘역사철학’을 ‘역사의 ‘이론’이라고 불렀으며, 그것을 설명과 분석의 목적 때문에 사료를 ‘자의적으로’ 배열하는데 불과하다고 설명했지요. 그의 염세주의가 그로 하여금 사건에는 어떤 ‘성격’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설의 사치조차 용인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사건에 ‘실질적인 성격’을 부여하려는 기도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염세주의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통해 부르크하르트의 정신 속에서 지적 근거를 찾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포이어바흐가 마르크스나 정치적 좌파에게 한 것과 같이, 쇼펜하우어는 부르크하르트와 정치적 우파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염세주의의 대부 쇼펜하우어를 만나보겠습니다. 얼마 전 얼핏 TV 프로그램에서 쇼펜하우어 운운하는 이야기가 들려서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패널들 5~6명이 나오고 MC가 괄호 넣기 문제를 내는 프로그램 이었지요. 문제는 “쇼펜하우어가 이야기하길 상대방의 논쟁에서 이기는 것은 ( )이다.” 이었습니다. 답이 궁금해서 잠시 지켜봤더니, 어처구니없게도, 아니 ‘쇼펜하우어답게’ 라고 해야 할까요? 괄호 안에 들어간 답은 (인신공격)이었습니다. 그냥 웃고 말았지요.

1840년대까지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1850년 이후에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전문적인 철학자들 사이에서보다 오히려 예술가, 작가, 역사가, 정치 평론가들 사이에서, 다시 말하면 철학적인 데 관심을 갖고 있거나 철학 체계에서 행동의 근거를 찾으려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럽의 지적 생활의 중심으로 떠올랐습니다. 세계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개념은, 1850~1875년 사이에 지식인들의 욕구에 특히 적합했다고 합니다. 또한 수많은 젊은 저술가들과 사상가들이 극복해야 할 출발점임과 동시에 장애물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니체, 바그너, 프로이트, 만, 부르크하르트 등은 모두 그 개념으로부터 배웠고, 또 창조적인 예술가와 인간의 고통에 대한 학습자로서 그들 각자가 느낀 삶의 불만을 설명한 스승을 쇼펜하우어에게서 발견했습니다. 이들 다섯 사람 가운데서 두 사람은 끝까지 쇼펜하우어의 신봉자로 남아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바그너와 부르크하르트입니다.

 

“그대가 살고 있는 동안에 가질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것만을 추구하도록 힘쓰라. 물질적인 사물은 변하고 있으므로 이 욕구는 비물질적인 것을 지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욕구가 다른 어떤 것에 의존하고 있다면 욕구도 소멸되어 버리기 때문에, 완전히 개인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 쇼펜하우어의 메시지입니다.

 

역사학자들과 역사 철학자들간의 예민한 신경다툼이 있었습니다. 역사철학은역사철학자가 전문적인 역사가의 저작에 내포되어 있는 설명적이며 설화적인 전략을 들추어내려고 하기 때문에, 역사학에 대한 하나의 위협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지요. 역사철학은 특히 학문적으로 인정된 전략을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전략으로 바꾸려는 욕구의 산물이므로, 역사학에 더 큰 위협이 되기도 했습니다.

 

마르크스니체는 고통과 갈등의 상태로부터 벗어난, 건전한 역사적인 삶의 탄생을 인식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두 사람은 사학(史學)상 그들과 유사한 인물이 없었다는 의미에서 다 같이 극단적인 낙관론자들이었습니다. 랑케의 낙관론은 개인의 악덕을 공익으로 전환 할 수 있다고 주장할 만한 이론적인 근거에서 주장된 것이 아니었지요. 미슐레의 낙관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은 미슐레가 심각하게 느끼고 역사적 합리화라는 방법을 통해서 시도한 모든 것을 가리키는 어떤 분위기나 욕구를 반영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토크빌과 부르크하르트에게도 낙관론의 근거는 없었지요. 마르크스와 니체는 낭만주의나 아카데믹한 사실주의자들로 자처한 사람들의 낙관론은 물론, 그들과 유사한 아마추어 사가들의 비관론까지도 비판했습니다. 19세기 후반의 ‘역사주의의 위기’에 대한 마르크스와 니체의 공헌은, 바로 객관성 그 자체에 대한 개념의 역사화에 있었다고 봅니다. 그들에게 역사적인 사고는, 단순히 역사의 장에 관한 자료에 ‘적용’할 수 있는 객관성의 기준이 가져다 준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문제시한 바로 객관성 그 자체의 본질이었습니다.

 

니체는 비합리주의로의 퇴각에 의해서만 벗어날 수 있었던 절망 상태에 빠지지 않고, 어떻게 인간이 아이러니 형식으로 설명되고 구성된 역사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해결하려고 한 역사철학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19세기의 모든 역사철학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탁월한 역사가였던 베네데토 크로체입니다. 크로체는 철학자로서는 물론 전문적인 학자로서도 출발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대학도 마치지 못했고, 대학에서의 지위도 얻지 못했지요. 실제로 당신의 대학 문화에 대한 그의 견해는 니체나 부르크하르트와 매우 유사한 경멸감을 내포한 것이었습니다. 그는-부르크하르트와 마찬가지로- 교양 있는 학자였으며, 개인의 고통과 공동생활의 권태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역사 연구로 방향을 돌린 아마추어였습니다. 그의 초기 저작은 엄밀한 의미의 용어로는 골동품 수집적이었고, 역사적이라기보다는 고고학적인 것이었으며, 구 나폴리의 민속생활, 건축에 관한 연구로 구성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893년에 이르러 크로체는 〈예술의 일반적 개념에 내포된 역사〉라는 제목의 에세이로 역사철학의 분야에 뛰어들게 됩니다. 사상에 대한 그의 집념과 노력은, 그로 하여금 철학자로서의 생애를 시작하도록 만든 이 에세이에 잘 드러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메타 역사 』1, 2권을 통해서 많은 역사가와 역사철학자들을 만나봤습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깊이 있게 그들을 만나보는 길입니다. 이 헤이든 화이트의 시각을 통해 얻어진 밑그림 위에 역사서를 한 권 한 권 읽어 나갈 때마다 구체화된 형상이 빚어질 것입니다. 전적으로 저자의 의견이 옳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음도 듭니다. 그러나 저자가 언급한 역사가와 역사철학자들의 저서들을 제대로 못 봤기 때문에 반박할 자료가 전무한 상태입니다. 앞으로 그들의 저서를 읽을 때 곁에 두고 참고 자료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역사서를 읽어보고자 하는 분들이나 기왕의 역사, 역사철학서들을 읽으신 분들이 참고로 하시면 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역사관련 서적으로만 보기에는 아까운 감도 듭니다. 19세기 사상과 철학의 흐름을 알 수 있는 명저(名著)로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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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역사 1 - 19세기 유럽의 역사적 상상력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사상선집
헤이든 화이트 지음, 천형균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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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 여행을 마치고 온 한 사진작가의 글을 읽었습니다. 미국 여러 곳의 풍광(風光)을 사진에 담아 오는 작업 중 가장 감사했던 일은 미국에 거주하는 한 지인이 바쁜 일상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함께 하며 View Point를 잡아 주었다는 것입니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선 어느 point에서 찍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외에 카메라의 어떤 조건을 적용시키느냐가 남습니다. 포인트와 조건이 잘 맞아 떨어지면 기가 막히게 좋은 사진, 두 번 다시 찍을 수 없는 명품 사진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곳을 찍어도 이미 시간은 흘러갑니다. 빛의 밝기가 달라집니다. 바람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을 이렇게 생각해봤습니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일면 역사가를 읽는다고 여겨집니다. 연대기적 서술은 달리 할 수 없지만, 역사를 기술하는 저술자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지배자의 입장에서 쓰느냐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쓰느냐에 따라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어쩌면 독자에게 본인의 생각을 강요하는 경우까지도 생기겠지요. 객관적인 역사의 기록과 연대기는 그대로 풍광처럼 미동하지 않지만, 어느 포인트에서 어느 조건으로 글을 쓰느냐에 따라 독자들이 그 역사를 받아들임이 달라집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역사를 바라보는, 역사서를 읽는 관점과 생각을 점검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방대한 분량인지라 1,2권으로 나뉘어 출간 되었군요. 역사와 철학 전공자인 헤이든 화이트는 이 책 외에 주요 저서로 《역사의 선용(The Uses of History)》 《비코(Vico)》 《자유주의적 휴머니즘의 시련(The Ordeal of Liberal Humanism)》 《담론의 비유법(Tropics of Discourse)》 등이 있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의 저술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19세기 유럽의 사학 사상의 고전들을 읽어가는 동안에, 나는 그러한 고전들을 역사적 성찰의 대표적인 형식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형식이론(formal theory)을 역사 연구에 적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저자는 역사가 일반적으로 시적(詩的)이며 본질적으로는 언어적일 뿐 아니라, 마땅히 있어야 하는 독특한 ‘역사적’ 설명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패러다임으로서 기여하는 심층구조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패러다임이 바로 모든 역사 연구에서 ‘메타 역사적(meta historical)'인 요소로 작용하며, 이 요소는 연구 논문이나 기록문서보다도 훨씬 포괄적이라고 합니다.

 

역사가들이 역사서를 써내려갈 때 이용하는 전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형식적인 논증에 의한 설명, 플롯 구성에 의한 설명, 이데올로기적 의미에 의한 설명 등입니다. 이 상이한 각 전략들 속에 저자는 네 개의 또 다른 상이한 표현 형식들을 찾아냈다는군요. 논증에는 형식주의, 유기체론, 기계론, 맥락론 등의 형식이 있으며, 플롯 구성에는 로맨스, 희극, 비극, 풍자의 원형들이, 이데올로기적 의미에는 무정부주의, 보수주의, 급진주의, 자유주의 전략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독특한 형식의 결합은, 저자가 특정한 역사가나 역사철학자의 역사 서술상의 ‘문체’라고 부르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거론되는 역사가 또는 역사철학자들이 1, 2권에 나뉘어 초대됩니다. 미슐레, 랑케, 토크빌, 부르크하르트와 같은 19세기 유럽의 역사가들과 헤겔, 마르크스, 니체, 크로체와 같은 역사철학자들입니다. 역사가란 본질적으로 시적(詩的) 활동을 수행하는 사람이며, 그러한 시적 활동을 통해서 역사가는 역사의 장을 예시하고, 역사의 장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어났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가 이용하는 독특한 이론들을 적용하는 장으로 역사를 구성한다고 합니다.

또한 이 예시(pre-figuration)의 행위는, 언어 형식으로 규정 할 수 있는 수많은 형식과 유형들을 받아들이고 있다합니다. 저자는 이 예시의 형태를 시적 언어의 네 가지 수사법으로 구분합니다. (나누는 것도 많군요). 은유(metaphor), 환유(metonymy), 제유(synecdoche), 아이러니(irony) 등입니다.

 

 

역사는 흔히 과학과 예술의 혼합이라고 일컬어집니다. 그러나 최근 분석철학자들은 역사가 어디까지 일종의 과학으로 간주 될 수 있는가를 해명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역사의 예술적 구성요소에 대해서는 거의 주목하지 못했습니다. 저자는 19세기의 위대한 역사가의 저작들에 나타난 이 ‘메타 역사적’인 요소가 ‘역사철학(philosophy of history)'을 구성하고 있으며, 이 역사철학이 그들의 저작들을 떠받치고 있는 지주이며, 역사철학 없이는 그들이 이룩한 어떤 형태의 업적도 결코 나타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헤겔의 사학사상은 아이러니에서 출발했군요. 그는 역사를(역설로서의)의식과 (모순으로서의) 인간 존재에 관한 근본적인 사실로 전제하고, 환유적, 제유적 이해 형식이 세계를 그렇게 보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사철학강의》서론에서 헤겔은 형식주의 방법을 이용한 추론의 한 형태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재질, 능력, 미덕, 감정, 신앙심이 모든 영역과

모든 정치적 제도와 상황을 통해서 발견될 수 있다는

타당한 주장에 대해서 하나의 (....)추론 과정이 적용 될 수 있다.

그러한 현상을 드러내주는 사례는 풍부하게 존재한다.

《역사철학강의》p.65

 

또한 헤겔은 ‘근본적’ 역사와 ‘반성적’ 역사를 반복해서 구분했는데, 본질적으로 근본적 역사는 시적 성격을 띠게 되고 반성적 역사는 차츰 산문적인 경향으로 기우는 면이 있으며, 반성적 역사는 보편적, 실용적, 비판적 형태의 역사로 나눠진다고 합니다.

 

헤겔의 뒤를 잇는 역사학의 거장들은 낭만주의 역사학을 주도한 천재 미슐레, 역사학파의 창시자이며 탁월한 역사가일 뿐 아니라 아카데미 사학의 전형이기도 한 랑케, 뒤르켐, 베버와 함께 근대 사회사학의 원조이자 사회사의 실질적인 창시자인 토크빌, 그리고 전형적인 문화사가이며 심미적 사학의 개척자일 뿐 아니라 역사적 표현에서 인상주의적 형식의 대표자인 부르크하르트 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사’와 ‘역사철학’의 차이는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19세기의 위대한 네 사람의 역사가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상이한 해답을 제시했으나, 그들 모두가 진정한 역사선입견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과거의 사실 자체에만 의거해서, 그리고 사실을 형식의 체계로 몰아넣으려는 어떤 선험적인 편견도 지니지 않고 서술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이 거장들이 서술한 역사의 가장 놀랄 만한 특징은, 형식적 결합과 역사의 장에 대한 개념의 우위였습니다. 이 네 사람 가운데서도 부르크하르트는 사실 그 자체로 하여금 말하게 하거나, 이야기의 관념적인 원리들을 가장 완벽하게 그의 저서들의 구성 속에 감추었다는 인상을 강렬하게 심어 준 인물이었습니다.

19세기의 위대한 이 네 사람의 역사가들은 역사를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서로 다른 해답을 제시하고, 역사를 구성하기 위해서 로맨스, 희극, 비극, 풍자라는 형식들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의 장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적 자세 - 무정부주의, 보수주의, 자유주의, 복고주의적 자세 - 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 가운데서 어느 누구도 급진주의자는 아니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역사의 장을 예시한 언어학적 규약이 바로 은유, 제유, 환유 , 아이러니의 규약이었습니다.

 

 

2권에서는 역사철학자들을 만나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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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신화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구우 지음, 정용수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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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비가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중 바다의 용왕이 보낸 사자(使者)둘이 찾아왔다. 간곡히 동행을 원하자 길을 나선다. 그들을 따라 함께 남문 밖에 나가 보니, 붉게 칠한 큰 배 한 척이 물가에 대어 있었다. 배에 오르자 두 마리 황룡(黃龍)이 양편에서 옹위하며 달리는데, 질풍같이 달려 순식간 즉, 눈을 한번 깜빡이고 숨을 한 번 쉬는 동안에 용궁에 도달했다.”

 

용왕은 선비에게 예(禮)를 다해 융숭한 대접을 해줍니다. 용왕이 하는 말 좀 들어보소. “과인의 거처가 누추해, 교룡(蛟龍)이나 악어(鰐魚)와 이웃하고, 물고기나 게들과 같이 살다보니, 왕으로서의 위신과 권위를 보이거나 왕명을 떨칠 수 없어, 이제 따로 한 궁전을 지어 영덕전(靈德殿)이라 부를 생각이외다. 이미 집지을 목수와 재목들은 다 갖추어 놓았으되, 상량문(上樑文, 궁전을 건립하며 대들보를 올릴 때 지은 집을 칭송하는 뜻으로 지은 글. 당나라 말엽부터 비롯되었다고 함.)만 갖추지 못했소이다. 들리는 소문에 선생은 세상에 다시없는 드문 재주를 지니고 이 세상을 구제할 경륜을 쌓았다지요. 특별히 맞이해 이곳까지 모셔 온 것이니, 과인을 위해 상량문을 지어 주심이 어떠하오니까?”

 

용궁까지 가서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어진 선비는 근사하게 장문의 상량문을 써줍니다. 미녀 스무 명이 춤을 춰주는 잔칫상까지 받고, 시문(詩文)을 주고받으며 즐기다가 드디어 떠날 시간이 되었지요. 용왕이 빈손으로 보낼 리가 있겠습니까. 야광주(夜光珠)열 알과 통천서각(通天犀角, 뿔 소에는 일맥의 기운이 있다. 상하로 곧바로 뚫린 것을 통천서라고 한다, 이것을 닭에게 비추면 닭이 두려워서 물러난다고 했다). 선비가 집에 도착해 가지고 온 보석들을 팔아 억만금 부자가 되었다지요. 훗날에도 그 선비(선문)는 공명에 뜻을 두지 않고 집을 나와 도를 닦으며 명산을 두루 돌아다녔는데, 어떻게 생을 마쳤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의 이야기가 21편 실려 있습니다. 아직 전등신화를 읽지 못하신 분들은 응, 이런 이야기? 우리 아이 동화책에 나오는 이야긴데? 전등신화인줄 알았더니 전등동화네..하실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요약해서 옮기다 보니까 동화같이 되어버렸네요. 그러나 짧은 이야기 속에 담긴 시문(詩文)들은 그 자체가 귀한 문학의 유산입니다. 고전(古典)이 고전으로 남은 것은 고전다움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 책의 글들에는 무려 150여 편의 서책(사서삼경을 비롯해서)과 60여 인의 시문이 담겨 있습니다. 원래는 40권이나 되는 방대한 양이었으나 현재 총 21편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 책은 조선 목판본 《剪燈新話句解》(1559)를 원전으로 삼아 고전문학 전공자인 정용수교수가 아주 꼼꼼히 주석을 붙이며 옮긴 것입니다. 현전하는 최고본으로, 현재 규장각(奎章閣)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요약이 아닌 완역본입니다.

 

저자 구우(瞿佑)(1347~1433)에 대해 :

원말 명초의 학자입니다. 중국 절강성 전당(지금의 항주)출신으로 학식도 풍부하고 문필에도 능해 14세 때에 이미 문명(文名)을 사방에 떨쳐 당시 대 문장가였던 양유정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청, 장년기 때엔 훈도 생활을 하다가 노년기엔 우장사라는 직위까지 올라갔으나 61세 때 견책을 당해 귀양을 갑니다. 18년 동안 귀양 생활을 하던 중 복직이 됩니다. 86세(1433)에 생을 마감합니다.

저작으로는 《전등신화》 외에도 《귀전시화》, 《존재시집》, 《악부유언》 《춘추귀주》. 《여청곡》 등이 있었다고 중교 서문에 전하지만 확인할 수 없다가 최근 그중에서 《악부유언》이 중국 남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음이 확인됨으로써 그의 많은 작품들이 후대에 들어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시가 《열조시집》, 《명시기사》 등에 실려 있습니다.

 

 

전등신화(剪燈新話)의 문학적 가치 :

《전등신화》는 중국 명대의 소설이지만, 조선조 초에 이미 유입되어 왕조가 끝날 때까지 줄곧 읽혔습니다. 창작되고 채 50년이 못 되어 조선으로 유입된 《전등신화》를 읽고 우리 이야기를 만든 매월당 김시습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금오신화(金鰲新話)》입니다. 《전등신화》는 전기소설(傳奇小說)입니다. 전기소설이라 함은 말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기이한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엔 현실적 사회문제를 비판하고 탐관오리를 고발하고, 서민들의 마음을 보듬어 힘을 주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아울러 당시(唐詩)의 난숙함과 고문(古文)의 사실적인 정신이 깊이 배어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러한 전기소설의 전통을 계승해 당시에 유행하던 기괴한 내용들을 소재로 창작된 대표적인 명대 문언소설이 《전등신화》입니다.

 

 

내용은 비록 지괴(志怪)적인 소재를 채용했지만 현실과 사상의 표현 수법 면에서는 적극적인 환상 수법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구우선생에게 결례가 안 된다면 동양권 최초의 ‘판타지 문학’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물론 현대적 판타지 문학과는 그 느낌이 다르긴 합니다만 독자를 이야기 속에 빠지게 만듭니다. 일단 재밌습니다. 러시아의 망명 문학가이자 학자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미국 코넬대학의 첫 번째 문학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수업을 수강하는 이유를 적어서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다음 시간에 나보코프는 한 학생이 적은 답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아마도 제일 맘에 들었던 모양이지요.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용왕이야기가 좀 썰렁 하시다구요?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요?

‘취취전(翠翠傳)’이라는 이야깁니다. 취취는 성이 유씨로, 회안 지방 어느 평민의 딸입니다. 날 때부터 총명해서 능히 시서(詩書)에 달통하자 부모도 그녀의 뜻을 물리칠 수 없어 서당에 다니도록 했습니다. 같은 서당에 다니는 김씨집 아들이 있었지요. 이름을 정이라고 하는데 그와 동갑인 데다가 또한 총명하고 잘 생겨서 서당에 다니는 다른 아이들은 그들을 놀려댔지요.

“동갑네는 부부가 된다더라.”

두 사람도 마음속으로 그리 되려니 생각하고 있었지요. 서로 시문(詩文)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웁니다. 그러나 막상 결혼할 적령기가 되자 양가집의 빈부가 걸림돌이 됩니다. 중매쟁이가 끼어들어 지혜롭게 잘 처리하는군요.

드디어 결혼입니다. 첫날밤에 시(詩)를 주고받습니다. 베갯머리 시입니다.

먼저 신부가 신랑에게

 

일찍이 서재에서 함께 공부하다가,

옛 친구 오늘은 신랑이 되었네.

신방에 밝힌 불빛 완전히 봄이건만,

땀은 분가루를 적시고,

몸은 사향 먼지를 일으키네,

 

체우우운(殢雨尤雲, 남녀 간의 사랑하는 마음,

‘심한 구름과 오래 머무는 비’라는 뜻도 있다합니다.)은 전부 익숙지 못한 거라서,

잠자리에서 눈썹먹을 찡그리며 부끄러워하네.

가련하고 애처롭다 자주 싫다 마소서.

원하노니 낭군이요! 이제부터 시작합시다.

날마다 가까이하고 날마다 서로 사랑하기를.

 

이에 신랑이 화답합니다.

 

서재에서 함께 공부하던 기억뿐인데,

신부가 다른 사람이 아니었구나.

쪽배로 찾아든 무릉은 봄이니,

신선 사는 곳에 이웃한 자부는

속세의 홍진과는 떨어져있으리.

 

바다에 서약하고 산에 맹세하며 마음으로 이미 허락했거니,

가벼운 웃음과 살짝 찡그린 얼굴이 몇 번이건,

날 보고 오히려 혼잣말이 잦아도,

마음에 품은 생각 딴 뜻이 없다면,

사랑한 다음에 뉘 있어 사랑하겠소.

 

참..대단합니다. 신혼 첫날밤에 이렇게 詩를 주고받으신 분 있습니까? 나도 못해봤습니다만.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 전쟁이 일어나서 신부가 점령군 장군에게 붙잡혀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랑이 신부를 찾아 나섭니다. 천신만고 끝에 신부가 있는 장군의 집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내 아내 내놓으시오.” 하고 덤벼봤자. 두 사람에게 좋을 일이 없는지라. 신랑은 신부가 피붙이라고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누이라 속이고 한 번 만납니다. 그리고 신랑은 장군의 눈에 들어 비서격인 서기로 임명됩니다. 그러나 신랑, 신부의 목적은 단 하나 서로 함께 손을 잡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세월만 갑니다. 한 지붕에 있으면 뭐하나요. 얼굴도 못 보는데. 마음의 병이 깊어진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장군의 집에서 숨을 거둡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요. 장군이 남매라 여기고 있던 두 사람의 무덤을 나란히 해서 묻어줍니다.

 

 

(여기서부터는 두 사람이 소위 귀신이 되어 나타납니다)

  신부의 친정집에 있던 하인 중에 장사를 업으로 하는 자가 우연히 두 사람이 누워있는 무덤 앞을 지나는데, 이 무덤이 장사치의 눈에는 붉은 대문이 달린 화려한 집으로 보입니다. 두 부부가 집 앞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며 놀랜 이 옛 하인 편에 고향집 부모님께 보내는 장문의 편지를 보냅니다. 편지를 받은 부모는 너무 기뻐 즉시 부부가 산다는 곳으로 길을 떠납니다. 그러나 옛 하인이 부부를 만나게 된 그 집을 찾았으나 집은 간 곳이 없고, 황량한 들판에 나란한 무덤 두 개만 있었지요.

 

마침 지나가는 스님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그 스님이 장군 집에서 숨을 거둔 김생과 취랑부부의 무덤이라고 일러줍니다. 깜짝 놀라 그 편지를 꺼내 살펴보니 백지 한 장이었습니다. 너무나 마음이 아픈 이 아버지, 딸에게 이르기를 “나와 너는 살아생전에 부녀간인들 죽은들 무슨 상관이냐. 너에게 혼백이라도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한 번 나타나서 내 의심을 풀어 주려무나.” 나는 이 대목에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보통 귀신은 두려운 존재입니다. 생(生)은 생(生)이고, 사(死)는 사(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가족, 꿈에라도 나타났으면 하는 내 사랑이 설령 귀신의 모습으로 나타날지라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을 듯합니다. 문득, 내게도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자주 나타나면 골치 아프겠지요? 어쨌든 그 날 밤 먼 길을 마다않고 온 아비는 무덤가에서 잠이 들고 부부가 나타납니다.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는 귀신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 마음이 아픕니다. 보는 나도 마찬가지구요.

 

아비는 부부의 묘를 고향땅으로 이장했으면 하나 이렇게 답을 하는군요.

“다행히도 저는 살아서는 진짓상을 살펴 드릴 부모님을 얻지 못하지는 않았고 죽어서는 머리를 선영에 둘 인연이 없지는 않군요. 그러나 땅속이 아직 조용하고 마음도 편안하오니, 다시 뼈를 옮긴다면 도리어 번거롭기만 할 것이옵니다. 하물며 산천이 수려하고 초목이 우거져 이미 안정이 된 터라서 원하는 바가 아니옵니다.”

 

21편의 이야기 중에서 2편을 아주 간략하게 액기스만 뽑아서 소개해드렸습니다. 이 글이 쓰인 시대적 상황은 인재들을 산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분위기였더군요. 권력을 쥐고 있는 관리들이라는 존재들이 무식하거나 탐욕스럽거나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많았답니다. 이런, 그리고 보니 역사와 전통이 오래되었군요. 목이 뻣뻣한 관리들의 존재 말입니다. 그런 입장에 처한 선비들이나 서민들에게 어찌 꿈이 없겠습니까. 이 《전등신화》엔 속이 타들어가는 민중들의 마음에 카타르시스를 주는 내용들이 자주 눈에 띕니다. 몽환적이지만, 사랑, 꿈과 희망을 주는 이야기들입니다.

 

전등(剪燈)이란 뜻은 ‘등불의 심지를 자른다.’는 의미입니다. 이 글을 쓴 구우선생이 전등(剪燈)을 하시면서 글을 썼듯이 후세 사람들 역시 전등(剪燈)하면서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어려서 시골 외갓집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겨울 방학이었지요. 날은 춥고 밤은 일찍 찾아오는 겨울. 호야불이라고도 하는 호롱불을 켜놓고 책을 읽었습니다. 한참 켜놓으면 심지(心地)가 탑니다. 그대로 두면 그을림만 생기지요. 그래서 타버린 심지는 가위로 조심스럽게 잘라내고 다시 심지를 돋웁니다. 불의 밝기는 심지로 조절하지요. 심지를 잘라내고 다시 불을 켜면 아주 맑은 불이 켜지던 것이 기억납니다. 동양의 고전을 읽는 맛은 깊은 맛이 있습니다. 다 타버린 심지(心地)를 잘라내고 새 심지 (心志)를 심습니다. 독서를 통해 생과 사가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는 것, 모든 것 지나고 나면 그만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참으로 남은 시간을 지혜롭게 잘 쓰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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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 자연학자 이브 파칼레의 생명에 관한 철학 에세이
이브 파칼레 지음, 이세진 옮김 / 해나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다보면 책이 책을 부릅니다. 관심이 가는 분야의 흐름이 자연적으로 형성됩니다. 그래서 장기적인 독서계획은 세우기가 힘듭니다. 대략 3~4주 간격으로 읽어야 할 책들이 책상 한 곁에서 대기 중입니다. 요즘은 다른 책들과 섞여서 키워드가 ‘우주’인 책들을 자주 들여다보게 됩니다. 나 자신을 우주라는 공간에 던져놓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은 생각도 포함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내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어느 철학자가 사형 집행 날짜를 며칠 안남기고도 같은 감방에 있던 동료가 자기가 모르는 것을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자꾸 캐물었습니다. 그러자 귀찮아진 이 사내가 이 땅을 떠날 날이 얼마 안 남은 철학자에게 핀잔을 줍니다. “곧 죽을 사람이 뭐 그리 알려고 해요” 철학자가 얼굴 표정 하나 안 바뀌며 답을 합니다. “죽기 전에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서..” 예..저는 이런 심정으로 책을 읽습니다.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책을 읽다보니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지니 어쩐 일이지요?
 
최근 읽은 책 중 우주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잠깐 언급하고 리뷰대상인 책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막스 셸러의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입니다. 막스 셸러는 철학적 인간학(philosophische Anthropologie)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철학적 인간학이란 의미상으로 볼 때 ‘인간에 관한 철학적 고찰’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종래의 전혀 이질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온 철학과 과학을 인간이라는 하나의 사실을 매개로 해서 오늘날 새롭게 종합하려는 시도입니다. 시대를 거치면서 인간의 이성은 더욱 혼돈가운데 처하게 되지요. 그래서 역사상 양차 세계대전은 ‘인간에 대한 몰이해’를 단적으로 보여 줬다는 질책도 받고 있습니다.

 

셸러는 인간이 “그 자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동시에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또한 잘 알고 있는”상태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고 하니까 좀 위로가 되긴 합니다. 셸러의 사상을 짧은 글로 다 표현 할 수 없고 이 리뷰에서 깊이 다룰 사항도 아닙니다만, 연관이 있기에 옮깁니다. 셸러는 신의 이념과 형이상학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종래의 형이상학은 신의 이념을 ‘나는 존재한다(데카르트)’ 또는 세계는 존재한다(아퀴나스)‘는 명제에 의거하려 추리하려 했지만, 신의 이념을 현상학의 상관적 고찰법에 따라 이끌어냅니다. 즉, 나의 ’모든 사랑하고 관조하며 사고하고 의지하는 것은 따라서 무엇보다도 신 속에서 사랑하고 관조하며 사고하고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로써 인간은 신의 영원한 이념 속에 뿌리박게 되고, 세계 과정에서 이념적 생성과정의 공동 형성자, 공동 창립자, 공동 수행자가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 이젠 분위기를 바꿔서 본론으로 들어가 봅니다. 이브 파칼레,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떠오른 생각은 “이사람 참 까칠하네”입니다. 나꼼수나 딴지일보에 적응되어 있는 사람들에겐 “뭐, 이정도 갖고..”하겠지만, 내 수준에는 하도 까칠해서 어감이 좀 그렇지만 ‘까자남(까칠한 자연주의 남자)’라고 이름 붙여주고 싶습니다. 저자는 프랑스태생입니다.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다가 68혁명(이 부분은 나중에 좀 더 알아봐야겠습니다)에 가담하여 격동의 세월을 보냈답니다. 그 후 프랑스의 유명한 탐험가인 자크 이브 쿠스토 함장의 탐사에 동참해 1972년부터 1987년까지 15년간 칼립소 호를 타고 항해하며 자연학자로서의 소양을 쌓았다고 합니다. 책도 수십 권 썼군요. 이 책의 제목은 『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입니다. 그래서 본인이 썼다는 이야긴가요? 저자의 책 중 제목이 더 튀는 것도 있습니다. 『인류는 멸망하리라, 시원하게 잘됐다!』토종 우리말로 표현하면 '쌤통이다!' 가 되겠지요.
 
그런데 이 사람 참 아는 것도 많습니다. 철학은 기본이고 천문학, 식물학, 동물학 등 과학의 전반을 어우르며 종횡무진 합니다. 그래서 붙는 명칭도 많군요. 생태주의자, 자연학자, 식물학자, 철학자, 환경보호 운동가, 자유기고가 등입니다. 이런 면에선 내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다방면에 걸친 학문에 대한 열의, 열정은 절대 과소평가할 부분이 아니지요. 저자는 다음과 같은 궁금점에서 생각을 키웠다고 합니다. “우주는 어디에서 왔는가?”,  “생명은 어디에서 왔는가?” 사실 이 질문은 철학의 근원이 되고 있지요. 더 나아가 저자가 차기작으로 계획하고 있다는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역시 마찬가집니다.
 
저자의 ‘태초에~’에 대한 관심은 137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5억 4200만 년 전에 멈춥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텍스트로 삼은 것은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입니다. 저자는 여러해 전부터 이를 오늘날의 책으로 다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만물의 본성’이라든가 ‘자연의 섭리’정도의 제목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이 작업에 착수하기 위해 희끗희끗한 수염이 나고 환갑이 넘는 나이가 되기를 기다렸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이 사람 하는 말이 걸작입니다. “루크레티우스여, 그대는 나처럼 수염이 하얗게 셀 겨를조차 없었겠소. 백과사전을 뒤져보니 그대는 겨우 43년을 살고 세상을 떠났더군요.”    자연적으로 조만간 읽어야 할 도서목록에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가 포함됩니다. 마침 최근(2012, 1월) 번역 출간된 책이 있군요.

  (강대진 역/아카넷 /원제:De Rerum Natura) 

 

 

저자 이브 파칼레가 루크레티우스를 향한 헌사(獻詞)같은 글이 이 책의 분위기를 그려주고 있는 것 같아 옮겨봅니다.
 

오, 루크레티우스여!
그대에게 나의 죄 없는 황홀경을 바치노라.

나의 터부 없는 쾌락을, 예술적 감흥을,
사물과 사람에 호기심 많은 여행자로서의 소회를 바치노라.
숲, 사막, 산, 바다에 환장하는 자연학자로서의 경이로움을 바치노라.

참으로 덧없이 지나가는 매순간을 음미하되
회백질을 욕되게 하지 않을 정도로만 살다 가고픈
어느 유인원의 넘실대고 굽이치는 철학을 그대에게 선사하고 싶다.
 
 
저자는 스스로 그가 시적이면서도 반어적 유물론자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그의 시니컬한 문장들은 용서해줄만 하긴 합니다. 그렇지만, 저자의 글은 좀 불편합니다. 아니, 많이 불편합니다. 신의 존재를 철저히 부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전제하에 글을 써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본인의 관심과 알고 있는 지식을 써도 그 양이 장난이 아닌데, 굳이 왜 신을 끌어들여서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지(나의 주관적인 판단)모르겠습니다. 신이 자기한테 뭐라고 했길래, 어쨌길래 말입니다.
 
그대는 데모크리토스(Democritos)와 에피쿠로스(Epikouros)와 더불어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의 존재와 우주를 상상하였다. 소립자와 힘의 조합이 오직 자기들에게 작용하는 법칙들에만 복종하는 형태로. 수염을 드리운 영원하신 성부 하느님도, 야훼도, 알라도, 브라마도, 데미우르고스도, 성모도, 순교자도, 애매한 성별의 천사도, 지옥으로 이끄는 뿔난 악마도 필요 없나니. 창세 신화도, (사실은 죄다 인간이 쓴)『성경』도, 기적과 기도도, 종교재판관들이 집행하던 의식도, 잔혹한 형벌도, 파트와(fatwa : 이슬람 율법에 따른 판결)도 필요치 않나니........

 

 또 우리 마음에 경각심이 필요하다는 표현을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다. 인류의 미래는 오로지 우리가 이미 내린 결정, 내리고 있는 결정, 앞으로 내릴 결정에 달린 문제다. 우리가 우주의 힘을 배겨낼 수 있는 한에서 말이다.
 
이렇게 단편적으로만 글을 뽑으면 개성이 강한 사람(?)으로 비춰지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시야는 일단 우주로 향하고 있습니다. 우주. 수십억 개의 천체.....그만큼이나 많은 수수께끼!  저자는 학자들이 우주가 우리의 모태 혹은 활동무대로 쓰이기 위해 창조되었다고 믿거나 그러한 믿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부분에 대해 심한 반감을 표현하는군요. 그의 우주 이야기는 빅뱅에서 출발합니다. 언젠가는 지구 이외에 다른 행성에서도 생명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도 나타냅니다.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몇 세기 더 버텨준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다수 세계의 시민들과 교류를 나누게 될 것이라는 꿈도 갖고 있습니다.
 
생명은 기적처럼 보이지만 그보다는 충동에 더 가깝다고 표현하는군요. 일종의 욕구, 경향이라고 합니다. 생명은 물질이 복합되고 조직화되려는 내재적 성향, 엔트로피가 떨어져 죽음에 이르지 않게끔 맞서 싸우려는 성향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별들이 탄생하는 과정, 태양에 대해, 혜성, 지구지각의 분노, 물과 행성, 40억 년 전엔 세포 형성, 8억 년 전 선캄브리아기의 자취를 찾아서 그리고 5억 4200만 년 전 캄브리아기에 나타난 진화의 흔적들 그리고 너무나 연약했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 등을 그리고 있습니다. 일단 대단합니다. 칼럼 형식으로 쓰인 글들이지만, 그저 칼럼이라 생각하고 읽기엔 내용이 무척 깊습니다. 철학적 사유가 깊습니다. 책으로나마 한 번 만나보실 만합니다. 단지 신앙인인 경우에는 읽는 내내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읽다가 그만 둘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생각 바꾸어서 나와 반대편에 있는 사람(정확한 표현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자가 반어법을 쓴다고 고백했으니까요)의 말과 생각을 들어보고, 들여다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합니다. 저자는 본인의 미워~! 미워~! 라고 하는 표현이 ‘사랑해~’로 받아들여주길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도 노파심(?)에 이브 파칼레에게 데이비드 흄의 입을 빌어 한 마디 해주고 싶습니다.

 

"신의 존재에 관한 우주론적 논증과 목적론적 논증은 받아들일 수 없다. 신은 논증으로 밝혀질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없다. 오직 신앙만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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