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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 청년 김원영의 과감한 사랑과 합당한 분노에 관하여
김원영 지음 / 푸른숲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2010년 5월 22일(토)자 동아일보 사회면엔 ‘서울대 피아노학과 첫 시각장애인 김상헌씨의 첫 학기’란 기사가 실렸다.
김상헌씨는 디지털 파일로 납본된 대학교재를 점자단말기로 읽고 숙제하고 예습까지 한다. 국립중앙도서관은 개정 도서관법에 따라 올해 1월 디지털 파일 형태에 대해 고시한 후 장애 대학생들의 신청을 받아 59개 출판사에 155종의 서적에 대한 디지털 파일 납본을 요청했다. 고시하고 120여 일이 흐른 지금까지 납본된 디지털 파일은 총 58종이다. 성헌씨는 디지털 파일을 전자단말기를 통해 재생해 언제 어디서든 점자로 교재를 공부할 수 있다. 물론 이제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시각장애인이 이와 같이 전자단말기를 통해 원하는 책과 자료를 볼 수 있는 것은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헌씨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손끝이 환해요”.
책이야기로 들어 가보자. 우선 책의 제목이 좀 길고, 튄다.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차갑고 뜨거운 것과 희망, 욕망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저자의 나이가 1982년생이라는 것이 또한 나의 관심을 끌었다. 나의 딸과 거의 같은 세대이다. 이젠 부모 곁을 떠나 따로 한 가정을 이룰 나의 딸 세대가 과연 무슨 꿈과 생각을 갖고 있을까 궁금했다. 나의 딸아이를 포함한 80년대 초 세대가 궁금했다고 봐야겠다.
책을 읽어나가던 중 저자가 조금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원영은 누구인가?
1982년생. 골 형성부전증으로 지체장애 1급 판정받음. 열여섯 살 까지 병원과 집에서만 생활함. 검정고시로 초등학교 과정 마침.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의 중학부와 일반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현재 서울 대학교 로스쿨에 재학중.
“어느 날 아침 뼈가 부러졌다.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어쩌면 미세한 충격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 충격이란 것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였을 것이다.”로 시작하는 ‘골 형성부전증’에 대한 글이다. 책의 저자인 김원영도 대학 후배인 시각장애인 김상헌의 글을 읽었을 것이다. 그(김원영)의 생각이 궁금하다. “다 내 덕인 줄 알아!”라고 했을까? 아니면, 진작 해주었어야 할 작업들을 너무 요란스럽게 치장하며 내세운다고 생각했을까?
내가 이런 생각이 들만큼 김원영의 생각은 날카롭다. 고집이 있다. 그러나 깊은 사고와 명쾌한 분석, 진솔한 표현이 마음에 든다. 자칫 그의 생각이 어느 한편으로 지나치게 치우치지만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큰 역할이 기대된다.
상식적인 수준에선 이해하기 힘든 수많은 골절상의 후유증으로 그의 다리는 뒤틀려 있고 양다리의 길이가 차이가 난다. 휠체어 없이는 이동이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어릴 적 그의 마음엔 ‘나는 걸을 수는 없지만, 장애인은 아니야.’라는 생각을 한다. 중학생이 되어 처음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을 이용하게 되었다. 물론 이 무렵의 지하철역은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이 지금보다 몇 배 더 힘들 때이기도 했다. 휠체어를 탄 채로 망연자실 방향감각을 잃고 있는 그에게 할아버지 한분이 다가와서 격려의 다독거림과 함께 쥐어준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은 그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그는 서울대 로스쿨 입시를 앞두고 자기소개서에 이렇게 적었다.
“저에게는 판사 친구부터 장애인 시설에서 생활하는 친구까지 다양한 친구들이 있고, 저는 그 만큼 여러 세계에 걸쳐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여러 모습을 공정하고 폭넓게 바라 볼 수 있는 시선이 있습니다.”
또 면접 때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객관적으로 제가 합격할 만한 경력이나 능력을 갖추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대학에 입학했을 때도 항상 그 집단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었지만, 일단 기회가 주어지면 항상 의외의 결과를 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뛰어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특별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합니다.”
글 서두에 특별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던 것은 바로 이런 저자의 멘트 때문이기도 하다. 이 두 개의 본인 소개의 글이 저자의 이미지를 그리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어쩌다 마주치는 장애인과 함께 하는 것은 퍽 조심스럽다. 내가 혹시 상대방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주의를 기울이다보면 오히려 그것이 부담이 된 적도 있다. 장애인 - 선천적인 장애인도 있지만, 비장애인으로 살아가다가 장애인이 되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교통사고나 재해로 인해 손상을 받는 경우가 예전에 비해 더욱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 장애인을 보는 시각을 새롭게 해준 책이다.
청년 김원영에게 앞으로도 그가 언급한 기회 -‘일단 기회가 주어지면 항상 의외의 결과를 냈습니다 ’가 미래진행형으로 계속 바꾸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