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덴탈 유니버스 - 우리가 몰랐던, 삶을 움직이는 모든 순간의 우주
앨런 라이트먼 지음, 김성훈 옮김 / 다산초당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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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시덴탈 유니버스 앨런 라이트먼 / 다산초당

 

 

인간의 몸은 소우주라고도 한다. 마음 역시 하나의 우주라고 할 수 있다. 존 밀턴은 실낙원에서 마음은 지옥을 천국으로도 만들 수 있고, 천국을 지옥으로도 만들 수 있다는 글을 남겼다. 우주를 뜻하는 단어 ‘universe’를 그 어원을 따라 풀이하면, ‘모든 것이 하나가 된 상태가 된다.

 

 

이 책의 지은이 앨런 라이트먼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소설가이자 이론물리학자로 소개된다. 우리처럼 문과와 이과로 분리해서 계속 그 길로만 가게끔 유도하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두 길을 동시에 가고 있다. 두 길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기고 있다. 어릴 때부터 과학과 문학에 재능을 보여 고등학교 때 이미 독자적으로 과학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시를 썼다. 문학, 과학 분야에서 여러 권의 책을 내고 현재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에서 과학과 인문학에서 이중으로 교수직을 맡은 최초의 인물이다. 우주를 논하는 그의 글들 속에서 문학적 향취를 함께 느끼게 된다.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우주에 관한 일곱 가지 관점을 펼쳐 보인다. 우연의 우주, 대칭적 우주, 영적 우주, 거대한 우주, 덧없는 우주, 법칙의 우주, 분리된 우주 등이다.

 

 

영적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챕터를 우리에게는 해답이 없는 질문도 필요하다는 말로 시작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4분의 3이상이 기적과 영원불멸의 영혼, 그리고 신을 믿는다고 한다. 최근 들어 이름 있는 무신론자들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책과 선언을 물밀 듯 쏟아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는 인류의 문명을 만들어낸 주요 원동력인 과학과 함께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과학과 종교는 각기의 힘을 유지하면서 인류의 정신 속에 공존하고 있다.

 

 

 

 

 

 

 

 

 

 

 

지은이는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인문학자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과학과 양립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종교적 믿음의 종류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여정의 첫 단계는 내가 과학의 핵심 교리라 부르는 것에 대한 진술로 시작되었다. 과학의 핵심 교리란 다음과 같다. ‘물리적 우주(physical universe)의 모든 속성과 사건들은 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그 법칙들은 우주의 모든 시간과 공간에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과학의 핵심 교리를 진술하고 나서 신에 대한 잠정적 정의를 내린다. “나는 신은 물리적 우주와 에너지를 지배하는, 법칙에 얽매이지 않는 존재라고 정의 내려 본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신은 물질과 에너지의 바깥에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과 신은 양립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과학자이면서 신의 존재를 믿는 이들은 마음의 갈등이 없을까? 최근 한 연구에서 미국 최상위권 대학에 몸담고 있는 1700명에 가까운 과학자들의 면담을 통한 결과를 보면, 그중 25퍼센트가 신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메사추세츠 공과대학교의 원자력공학 교수인 이안 허치슨은 지은이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주는 신의 행위로 인해 존재합니다. 우리가 자연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에 의해 유지되고 있습니다. 자연법칙이란 신이 이 세상에 명령을 내리는 일반적인 방식을 기술하는 것이죠. 나는 기적이 역사 속에서도 일어났고, 오늘날에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뢰 할 수 있는 지식이 과학만이 아니라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 부활의 증거 같은 경우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하죠.”

 

 

 

현대과학은 우리 감각으로는 보이지 않는 숨겨진 우주의 비밀을 속속들이 밝혀내고 있다. 융합된 인간의 지식들은 그 비밀들을 해체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우주 안에서 인간의 위치, 존재감에 대한 생각이다. 우주에 대한 연구는 인간이 지구라는 별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앨런 라이트먼의 관점은 기존의 과학적 견지만 고수하는 우주에 대한 견해와 다른 면이 있다. 우주안의 인류, 인류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우주를 동시에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체험은 신비다. 신비는 진정한 예술과 과학의 요람에 자리 잡은 근본적 감정이다.” 아인슈타인이 남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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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퓨처 - 로봇이 바꾸는 우리의 미래
일라 레자 누르바흐시 지음, 유영훈 옮김 / 레디셋고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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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진화는 인간의 지능향상보다 앞서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융합된 지능이 그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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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퓨처 - 로봇이 바꾸는 우리의 미래
일라 레자 누르바흐시 지음, 유영훈 옮김 / 레디셋고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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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의 이야기 2016-078

 

     【 로봇 퓨처 】      일라 레자 누르바흐시 / RSG(레디셋고)

 

 

일세기라는 간극을 두고 볼 때, 인간의 지능은 진화(향상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되었음이 분명하다. 개개인의 지능이 향상되었다는 평가보다는 융합된 지능이 그러할 것이다. 인간지능의 결과물의 하나인 인공지능 [AI. artificial intelligence, 人工知能]에 대한 관심과 찬반의견이 만만치 않다. AI가 탑재된 로봇은 어떤가? 인간과 디지털 세상을 잇는 살아있는 접착제라고도 부르는 로봇은 어떻게 세상을 바꿀까?

 

 

로봇의 존재에 부정적이다 못해 불안해하는 사람들은 로봇이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허물어 인간을 위협할 것이라고 말한다. 긍정적인 입장에 선 사람들(주로 로봇 공학에 전념하는 이들)은 로봇공학의 기술과 과학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파악한다면 오히려 로봇은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고 풍부하게 해 줄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의 지은이 일라 레자 누르바흐시는 로봇공학자이다. 지은이에게 로봇의 부정적인 시각을 기대하긴 힘들다.

 

 

지은이는 1977, 영화 스타워즈를 보고 난 후에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로봇에 대한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97년부터 카네기멜런대학의 로봇공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미 많은 로봇을 제작했다. 카네기자연사박물관의 관람객 안내 로봇, 미국립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된 프로그램이 가능한 화성 탐사 로봇 축소 모형 등외에도 여럿이 있다, 쌍방향 장치들에 새로운 로봇 기술을 적용하기도 한다. 신제품에 로봇의 힘을 가득 채웠다고 표현한다. 하늘로 수 미터를 뛰어오르는 스카이 콩콩, 일반 카메라를 십억 화소짜리 다큐멘터리 제작 도구로 바꿔주는 파노라마 로봇, 유치원생 학부모가 자녀의 소재를 파악하게 돕는 알림 체계 등등 많기도 하다.

 

 

 

현대 로봇공학은 세상을 어떻게 지각하고, 주변 환경을 어떻게 이해하며, 어떻게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변화를 만드는 행동을 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로봇의 모델은 당연히 인간이다. 따라서 로봇 공학자가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은 무엇이 인간을 지능적이게 하느냐는 것이다. 인간의 지능은 두 가지에 의존한다. ‘주변 환경과 의미 있게 이어지는가’, ‘주변 상황을 고려하여 행동을 하게 해주는 내적 의사결정 기술이 있는가이다. 주변 환경과의 연결을 두 가지

든다. 입력(Input)지각(Perception)’이고, 출력(Output)행동(Action)’이다. ‘인지(Cognition)’는 세상에 대한 우리 감각을 의도적 행동으로 변환하는 내적 의사결정이다.

 

 

따라서 로봇 연구의 세 가지 핵심을 지각, 행동, 인지로 설정한다. 이들 분야의 연구는 생각처럼 빠른 속도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누더기 첨단이라는 표현도 한다. 이 책의 특징은 로봇 공학의 현주소와 미래를 단지 이론적인 면에서만 서술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로봇 공학의 미래를 스토리 형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지은이는 훌쩍 미래를 향해 날아간다. 2030년 미국의 한 가구회사, 2040년 폐기물 처리 및 공공안전 분과위원회 회의실, 204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의 한 공원, 2050년엔 미국, 파리, 영국을 동시에 등장시킨 스토리가 펼쳐진다. 2126년엔 나노로봇이 인간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로봇 기술은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줄 것이다. 대규모 관측과 자동 대처가 가능해진다. 우리는 원거리 상호작용을 할 것이다. , 위험하거나 먼 장소를 보다 안전하고 용이하게 탐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봇의 진화는 인간의 지능향상보다 앞서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융합된 지능이 그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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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인문학 - 서울대 교수 8인의 특별한 인생수업
배철현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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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인문학』은 낮아진 사람은 올라가게 해주고,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낮아지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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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인문학 - 서울대 교수 8인의 특별한 인생수업
배철현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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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의 이야기 2016-077

 

 

낮은 인문학 】       배철현 외 / 21세기북스

    

 

우리의 삶에 인문학이 어떤 쓸모가 있는가? 비교적 안정된 삶에서 인문학은 교양인의 범주에 들어가는 정신적 산책코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찌하다 사회적으로 낮은 자리, 갇힌 장소에 머무르게 된 사람들에게 인문학이 주는 치유적인 효과는 무엇일까?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닌 실제적인 사례를 들어본다면, 지난 2005년 노숙자들을 위한 인문학 과정이 될 것이다. 성공회대학교는 성 프란시스 대학이란 이름으로 노숙자들에게 인문학을 강의했다. 정작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나 돈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과 자기 성찰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가 주관한 서울남부교도소의 인문학 과정을 들여다본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교수진들은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의 내용과 형식이 일반적인 인문학 교육과 달라야 한다는 점을 고민하고 시작하게 된다. “수용자들의 삶에 긍정적이며 혁신적인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할까? 새로운 지식 전달이나 학문적인 내용보다는, 그들이 자신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도록 하며 삶에 대한 열정을 스스로 고취하도록 자극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배철현 교수는 이 프로그램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개념을 마아트(maat)’로 잡았다. 고대 이집트어인 마아트는 종교와 사상에 두로 통용되던 삶의 원칙이다. 삼라만상의 원칙을 깨닫고 현재 자신의 삶의 최적화된 생각, , 행동 등을 총체적으로 담고 있다. 서울시 구로구 천왕동에 위치한 서울남부교도소에선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매주 금요일 오전 930분부터 약 두 시간 동안 8명의 교수가 돌아가며 강의를 했다. 지금까지 총 여섯 번 기수가 진행됐고 한 기수 당 10주 강의로 구성되었다.

 

이 책은 서울남부교도소에 진행한 인문학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스스로 오래된 자아를 직시하고 새롭고 희망찬 자아를 찾아 나서길 바란다.”

 

 

비록 재소자들을 위한 강의이지만, 우리 역시 누구나 마음의 감옥에 갇혀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몸은 비록 자유로울지 몰라도 우리의 마음은 늘 외롭고 답답하다. 단지 안 그런 척 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각 강의 제목이 매우 실질적이다. “당신의 마아트는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가 추구할 가치는 무엇인가?” “당신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죽음을 성찰하고 그 너머를 바라보다

 

 

김헌 교수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통해 무엇이 그들을 싸우게 했는가를 생각해보자고 한다. 일리아스의 배경은 트로이아의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아 전쟁이다. 호메로스는 각자가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던, 얼마나 큰 비극적 감정에 휩싸이게 되던, 결국 누구나 죽을 밖에 없는 운명의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인간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치열하게 사는가?’묻고 있다. 애증, 분노, 지략, 전투 등으로 전개되는 일리아스는 결국 주요 등장인물들의 죽음으로 끝이 나기 때문이다.

 

 

박찬국 교수는 에리히 프롬의 사상을 통해 삶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프롬은 그의 유명한 저서 소유냐 존재냐(또는 소유냐 삶이냐)에서 인간은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존재하는 것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사실 우리는 소유물이 많아질수록 그 행복감보다는 불안감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건강에 대한 염려가 많아진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면서 그 소유물들과 함께 하고 싶다. 결국 소유물에 예속되는 삶을 살게 된다. “존재양식의 삶을 살 때 사람들은 다른 인간들이나 사물들과 대립되는 협소한 자아에서 탈피해 자신뿐 아니라 다른 모든 존재자의 신성(神性)을 경험하게 됩니다.” 박 교수는 소유양식은 쾌감을 낳는 반면에 존재양식은 기쁨을 낳는다고 강조한다.

 

 

이 책의 제목 낮은 인문학은 낮아진 사람은 올라가게 해주고,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낮아지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런 뜻에서 책의 제목을 그리 정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믿고 싶다. 또한 수인(囚人)의 수()는 사방 벽에 갇힌 사람을 그려준다. 이 책을 그런 심정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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