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 밥상
이상권 지음, 이영균 사진 / 다산책방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이야기 2015-142

 

야생초 밥상글 이상권. 사진 이영균 / 다산책방

 

향기로운 것들은 들에서 산다.”

 

옛날에는 부자고 가난한 사람이고 먹는 건 비슷했지. 봄이면 보릿국 끓여먹고, 소리쟁이국 끓여먹고, 시래기국 끓여먹고 다 그랬지.” 먹거리는 예전에 비해 풍성해졌지만 사람의 몸은 더 약해졌다. 질병은 더 많아졌다. 수명만 연장되었다는 느낌이다. 건강하게 살다가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점이지만, 나의 건강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선 무심하다. 아니 무지하다.

 

 

이 책의 지은이 이상권은 어느 봄날, 지인들과 남도 들판을 향해서 가벼운 여행을 떠났다. 봄바람에 취해 정신없이 걷다보니 배가 고파왔다. 식당 간판이 눈에 안 띈다. 아니 매운탕집 간판을 하나 스치긴 했는데 모두 그 곳에 들어갈 생각들이 없었다. 그저 뭔가 토속적인 평소 만나기 힘들었던 음식에 기대감을 걸고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3시간을 걸었을까? 한계점에 다다랐다. 마을 앞에 있는 작은 상점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거기서 일단 컵라면이라도 요기를 하고 맛난 저녁을 기대하기로 했다. 할머니 혼자 지키고 있던 상점에서 밥통에 남아 있던 밤에 묵은 김치와 멸치볶음으로 허기를 달래던 중, 할머님이 뒤꼍에 널린 돌나물을 한 소쿠리 뜯어다 주는 바람에 각기 밥의 양이 두 배로 늘어나서 양푼바닥이 보일 때까지 정신없이 먹었다. 고추장 참기름 돌나물비빔밥은 이 책을 나오게 한 일등 공신이다.

 

 

이름도 처음 만나고, 당연히 먹어본 기억도 없는 소리쟁이를 만나보자.

 

소리쟁이는 가을에 잎이 지고 새로 돋아날 때부터 뜯어다가 나물로 해먹는다. 사람의 입맛에 따라 뜯어다 먹는 시기가 다 다르다. 초여름까지 뜯어다 먹을 수 있다. 우리나라들에서 가장 흔한 풀이 소리쟁이다. 습기 많은 땅에 많지만 밭가에도 많다. 여름에 줄기가 크게 자랄 때만 빼고는 언제든 뜯어다 먹는다. 긴 줄기를 미역처럼 끓여먹기도 했다.

 

 

이걸 씹다보면, 새팥 작은 이파리도 생각나고, 노란 꽃, 꼬불꼬불한 덩굴, 그 주위에서 살아가는 온갖 곤충들까지 다 생각나면서 그냥 마음이 즐거워지더라고요.” 새팥은 콩과식물로 소들이 좋아하는 풀이다. 재배하는 콩보다 작지만 단맛이 더 강하다.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가난한 사람들이 채취해서 식량으로 썼다. 재배한 팥에서는 도저히 우려 날 수 없는 빛깔과 향이 난다.

 

 

옥매듭밥이라고 해요. 봄에 해먹는 특별한 음식이었죠. 부자나 가난한 사람들이나 해먹는 밥. 아주 공평한 음식이에요. 옥매듭풀이라고도 하는 마디풀은 늦봄이나 초여름이 되어야 나물로 먹을 수 있다. 나물로 해먹는 시기가 아주 짧다. 보통 4월 말이나 5월 초가 가장 좋다. 마디풀은 풀 전체가 진한 옥빛이다. 이런 옥빛으로 다른 풀과 구별을 한다. 주로 길가에 자라는 마디풀은 중부지방, 특히 강화에서 많이 해먹는 전통음식이다. 줄기에 옥빛이 난다고 하여 옥매듭풀이라고 한다.

 

 

쇠무릎 줄기의 마디가 소무릎 같다고 하여 쇠무릎이라고 한다. 산이나 밭가 들 등의 다소 그늘지고 습한 곳을 좋아한다. 뿌리를 넣어 담근 우슬주를 마시면 노화를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쇠무릎은 봄에 새싹을 내밀면서 마디와 마디 사이를 굵게 살찌우며 자란다. 쇠무릎에는 전혀 독이 없다. 당연히 초식동물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쇠무릎은 땅속에다 깊은 뿌리를 묻고 사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봄에 땅속뿌리에서 무리지어 새싹이 돋아난다. 그래서 나물 뜯기가 편하다. 어린순을 데쳐 나물로 무쳤다. 전혀 쓴맛이 없어서 국거리로도 좋은 풀이다.

 

 

참 향기로운 책이다. 이젠 야생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 같다. 정감 있는 글과 화려하진 않지만 공연히 마음이 포근해지는 좋은 사진들이 함께 하는 귀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맨틱 한시 - 사랑의 예외적 순간을 붙잡다
이우성 지음, 원주용 옮김, 미우 그림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이야기 2015-141

 

로맨틱 한시이우성 / 아르테(북이십일)

 

 

로맨틱한 시? 로맨틱 한시? 띄어쓰기 하나로 의미가 달라지는 듯하지만, 결국 같은 뜻이다.

 

어느 날, 사랑에 관한 한시를 읽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알았죠. , 바보였구나. 부끄럽고 두려워서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도 멀뚱히 서 있기만 했구나. 붙잡지도 매달리지도 못했구나. 당신도 그래요? 당신도 사랑이 지나가는 걸 보고만 있었어요? 망설이지 말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이 글들을 썼습니다. 당신이 잘 해내면 나도 잘 해낼 것 같아서요.” 글쓴이 이우성의 글이다.

 

 

사랑이 나를 그대의 세상으로 부르네

 

구름 같은 이 내 마음 정숙을 생각해보려 하지만

산골짜기 적막하여 사람 보이지 않네

아름다운 꽃은 피어날 생각을 하는데,

장차 어찌하리, 이 내 청춘은..“

 

7세기 여승이었던 설요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반속요(返俗謠)라는 시다. 설요는 당나라에 건너가 좌무장군이 되었던 설승충의 딸이다. 그녀의 나이 열다섯에 아버지가 전쟁 중에 죽자 승려가 된다. 6년 동안 수행하던 중 불교 신도인 곽원진이 나타나자, 청춘의 타오르는 정열을 이기지 못하고 한 수의 시를 남겼다. 사람 구경하기도 어려운 적막한 산골에서 아름다운 꽃들이 향기를 발하며 흐드러진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며 설레는 자신의 마음이 잘 그려져 있다.

 

피어나는 꽃을 억누를 힘이 있을까? 뿜는 향을 막을 길이 있을까? 생명은 움직임에 있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꽃은 피어날 생각은 하는데, 비록 속세를 떠난 비구니의 몸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푸릇푸릇하니 어쩌면 좋으리.

 

 

그대와 함께 연밥을 따다

 

가을에 맑은 호수는 푸른 옥처럼 흘러가고

연꽃 수북한 곳에 작은 배 매어두고

사랑하는 그대를 만나 물 건너로 연밥을 던지다

행여나 누가 봤을까 반나절 부끄러웠네.

 

허난설헌이 남긴 시다. 친접집의 옥사와 불운한 결혼생활 등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책과 시로 슬픔을 달래며 살던 그녀는 1589년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임종 때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태우라는 유언을 남겨 작품이 모두 소각된 것으로 전해진다. 동생 허균이 그녀의 작품 일부를 명나라 시인 주지번에게 주었고, 그녀가 별세한 지 18년 후인 1606년에 중국에서 최초로 난설헌집으로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다. 1711년 일본에서도 간행되어 세계적인 여류 시인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면서 조선 후기에 이르러 역수입되었다.

 

 

그대 향한 마음 끝없이 흐르네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서리 맞은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네.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고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같이 차고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

내일 아침 그대 보내고 나면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

 

 

사족이 필요 없는 황진이가 남긴 시다.

 

로맨틱 한시그윽한 향의 한시와 그 이력과 그림, 해설이 잘 어우러진 귀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이야기 2015-140

 

비포 아이고콜린 오클리 / 아르테(북이십일)

 

 

당신의 행복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 속에서 발견 할 수 있다.”

                          _뒤랑 팔로

 

 

분노는 슬픔의 가면

 

때로 밑도 끝도 없는 슬픔과 불안이 스몰스몰 목까지 차올라오면 그것이 분노로 변신할 때가 있다. 이 소설의 여주인공 데이지는 어느 날 아침 냉장고 문을 열고 케일을 찾아보니 안 보인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그녀에겐 약과 같은 것이다. 순간 부글부글 차오로는 분노를 감당하기 힘들다. 그깟 케일에 온 신경이 곤두선다. 그게 뭐라고.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4년 전 유방암에 걸렸을 때 느꼈던 분노가 암이 재발되었다는 검사결과를 듣고 다시 끓어올랐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대체 서른 살도 되기 전에 두 번 씩이나 암에 걸릴 수 있나? 이제 겨우 27살이다. 번개에 두 번 맞는 꼴? 복권에 두 번 당첨되는 셈? 암과 로또를 같이 올려놓곤 스스로 기가 막혀 그저 웃고 만다.

 

데이지는 남편 잭에게 아직 이야기를 못했다. 암이 재발되었다는 말을. 그렇게 하루하루 흘러간다. 데이지는 일상의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 성격이다. 반면 잭은 집안일은 대충 대충이다. 아마 잭은 아내 데이지를 믿고 그럴지도 모른다. 사실 둘 다 치밀한 성격이면 오래 같이 가긴 힘들 수도 있다.

 

 

데이지는 일차 암치료 후 완치되었다는 진단을 받고 지역사회 상담 전공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이다. 며칠 고민하던 데이지는 남편에게 재발 소식을 전한다. 마치 남 이야기하듯 그렇게 말을 흘린다.

 

 

재발이래.” 내가 말하는 순간, 그의 손에서 밀폐용기가 미끄러지고 우유와 시리얼이 폭포수처럼 그의 다리를 지나 바닥으로 쏟아진다.

 

 

데이지는 암이 재발했다는 것을 잠시라도 잊기 원한다. 그러나 문득 생각을 떠올리며 어떻게 그 것(암 재발)을 잊을 수 있지? 하면서 스스로를 못살게 군다. 암이라는 병은 부위와 시기에 따라 거의 증상을 못 느낀다. 얼마 전 내 가족 중 한사람이 암 진단을 받았다. 통증이나 불편함은 없었는데, 가끔 대변 후 피가 나오는 것을 통해 치질 정도로 생각했단다. 직장 신체검사에서 재검을 해보라는 요청을 받고 해본 결과 직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그날 이후 그는 매우 흔들렸다. 정식 치료도 받기 전 마치 마지막 여행이라도 떠나듯 혼자 차를 몰고 동해안에가서 며칠 있다왔다. 혼자 술 마시고, 바닷가에 앉아서 펑펑 울다. 바다를 향해 돌을 던지기도 하고 그렇게 흔들리다 와선 결국 방사선치료, 수술 후 많이 회복되고 있다. “왜 하필이면 내가?”를 노래처럼 읊고 다녔었다.

 

 

다시 데이지 이야기로 돌아간다. 암이라는 병이 때로 별반의 증상이 없기에 더 불안하다. 내가 잠시 잊고 있는 사이에, 잠시 방관하고 있는 사이에 암세포가 온 몸을 점령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 암은 고통으로 힘든 면보다 생각으로 지치고 무릎을 꿇기 십상이다.

 

 

데이지가 생각하는 죽음은 이렇다.사라지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그 다음에 일어날 일이 두렵다.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 이승 너머 펼쳐진 공간에서 아무것도 되지 않은 채, 패닉이 몰려오고 귀가 울려대는 바람에 일어나 앉아서 불을 켜고 숨쉬기조차 어렵게 짓누르는 어둠을 쫒아내야 한다.”

 

 

그런 상념에 몸이 축 처져 있던 그녀의 어느 날, ‘나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잭을 생각한다. 잭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주고 갈 일이 있을 텐데..집을 정리하는 법, 요리하는 법, 청소하는 법 등등을 가르쳐주고 적어줘야겠다. 그런데 과연 잭이 그대로 할까? 잭 혼자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진다. 암으로 죽기 전에 슬픔 때문에 먼저 죽을 것 같다. 잭은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따뜻한 사람, 돌봐주고, 사랑해주고, 더러운 양말을 치워줄,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을..

 

 

일단은 착한 여인이다. 사랑스러운 여인이다. 대부분 나 죽고 재혼하면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밤마다 귀신이 되어 나타나서 혼내줄 거야 하지 않던가? 어쨌든 가슴은 저리지만, 남편의 새 아내를 찾아주겠다는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뭔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이 남(남편은 남의 편이다)을 위한 것이기에 더욱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한다. 이 부분이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다. “잭에게는 아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찾아 줄 생각이다.”

 

 

잭의 새 아내를 찾습니다

 

낮에는 캠퍼스나 카페 또는 거리에서 실물의 여자들을 살펴보고 밤이면 SNS 나 저널들을 보면서 열심히 찾아보고, 공부하고 노력한다. 막상 데이지가 잭과 결혼하기 전엔 관심도 없었던 일들이다. ‘좋은 배우자를 만들어주는 요소, 장기적이고 건전한 부부관계를 규정하는 특징.

 

잭에게 아내를 구해주려면 좀 더 많이 나다녀야 한다. 그물을 넓게 쳐야한다. 캠퍼스에서 낯선 사람들을 쳐다보거나, 몇 년 동안 다닌 요가 수업이나, 병원에서 시술을 받으며 누군가를 만날 수는 없다.” 그러던 와중에 잭 근처에 여인이 하나 등장한다. 마침 그 여인은 어떨까? 잭의 다음 아내로 어떨까? 생각하던 중, 잭과 그 여인(패멀라)과 가깝게 지내는 것 같아 신경이 쓰인다. 데이지는 엄청 예민해진다.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이 땅에서의 삶의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데이지가 죽은 다음에는 어쩔 수 없다 쳐도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죽어가고 있는데, 내 남편에게 말을 걸지 말아. 그를 웃게 하지 말아. 살아 돌아다니지 말아.” 소리 지르고 싶다. 그녀의 면전에서.

 

 

지독한 상실감과 함께 공황발작이 찾아온다. “잭에게 아내를 찾아주고, 내가 죽은 후 잭이 혼자가 아니기를, 곁에 누군가 있어주길 바라기는 했어도, 잭이 다른 여자를 사랑할 거라곤 진심으로 믿지 않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가 다른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 줄은, 나를 사랑한 것처럼, 하지만 이제 그 믿음이 깨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잭과 그 여인(패멀라)과의 관계는 오해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히려 패멀라는 데이지를 위해 조용히, 조심스럽게 도움의 손길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이 땅에 무작정 오래 머무를 수는 없다. 단지 빨리 가고 나중에 가는 차이뿐이다. 작가는 슬프디 슬픈 이야기를 따뜻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데이지라는 여인을 통해 뜻밖에 빨리 먼 길을 떠나게 된 사람의 심리 상태를 잔잔하게 그려주고 있다. 흔들리는 마음과 살아 있는 동안 뭔가 남겨두고 가고 싶은 마음 등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떠나는 사람이나 남는 사람이나 안쓰럽다. 표현을 안 한다고 못한다고 없어지는 마음이 아니다. 따뜻한 슬픔에 유머러스함이 드레싱 된 향기로운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버트 라이시의 1대 99를 넘어 - 부의 불평등을 바로잡는 11가지 액션플랜
로버트 라이시 지음, 안기순 옮김 / 김영사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이야기 2015-139

 

로버트 라이시의 199를 넘어로버트 라이시 / 김영사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미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도 만연하게 파급되어 있는 심각한 현상이다. 개인과 사회가 진보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감소시킨다. 경제가 위협을 받는다. 부정부패가 늘어나면서 민주적인 단체나 기관이 곤경과 위험에 빠진다. 불평등이 심화되면 경제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신뢰가 무너진다. 부의 축적은 권력과 손을 잡거나 아예 권력을 손에 쥔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움켜쥔 정치권력을 자주 휘두른다. ‘정경유착이라는 단어는 어둠의 역사와 전통이 오래됐다.

 

 

이 책의 부제는 부의 불평등을 바로잡는 11가지 액션플랜이라고 되어있다. 지은이 로버트 라이시는 미국과 전 세계가 존경하는 사회사상가, 진보적 정치경제학자, 행동하는 지성으로 소개된다. 미국의 신경제를 주도한 인물로서 미국을 비롯한 세계 자본주의 경제와 사회의 중요한 변화를 가장 신속하게 파악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뛰어난 석학이다.

 

 

상위 1%99%간의 경제적, 사회적인 격차가 날로 커져가고 있는 이 시대에 로버트 라이시는 이 책을 통해 미국의 경제 상황이 어떻게 일반 근로자에게 불리하고, 갑부와 대기업에 유리하게 조작되어 가는지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이 중요한 것은 미국에서 일어나고 일들이라고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소 모양새만 다를 뿐 그쪽이나 이쪽이나 오만한 권력자들과 못된 재벌들이 하는 짓은 똑같다.

 

 

 

방관할 것인가? 행동할 것인가?

 

책은 3부로 구성된다. ‘조작된 경제게임’, ‘역행주의의 부상’,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등이다. 지은이는 한국어판 서문에 소득상위 1%의 지나친 부의 축적이 형성되는 사회적, 경제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한국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조언을 해주고 있다.

 

첫째, 대학입학절차를 향상시켜, 능력이 뛰어난 저소득층 자녀에게 고소득층 자녀와 똑같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한다.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둘째. 직업교육과 기술교육의 질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저소득층 자녀들이 조기 아동교육과 보살핌을 받을 수 있어야한다.

넷째, 노동시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

다섯째, 근로소득세 공제와 기타 제도를 확대해 저소득층 가정이 전체 국가 소득에서 지금보다 많은 몫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누가 이 일을 할 것인가?

 

지은이가 이 책을 쓴 목적은 미국의 경제와 민주주의가 일반 근로자인 국민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조작되어가는 원인을 밝히고, 이러한 현상을 바로 잡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고 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포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진짜 문제는 정부의 크기가 아니라 과연 누구를 위한 정부냐이다.

 

 

문제는 큰 정부가 아니라 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큰돈이다. 정부는 국민 대부분이 원하는 일은 줄이면서 대기업, 월스트리트, 부자들이 원하는 일은 늘리고 있다. 대중은 정부가 좋은 공교육을 제공하고, 대학교 등록금을 인하하고, 도로와 다리를 보수 건설하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유지해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을 구제해주고 위험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해주기를 바란다.”

 

 

 

한 가지 강력하게 덧붙인다면, ‘책임을 지는 사람이 필요하다. 정부의 크기를 줄인다면 위의 문제가 풀릴까? 정부가 큰돈을 주무르는 기회를 막을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오히려 정부의 크기가 줄어들수록 내부 고발자 역시 줄어들게 될지 모르니 더 좋아 하지 않을까? 작은 정부라도 여전히 돈과 권력이 지배를 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은이는 진보적 변화를 추구하려는 민초들의 에너지를 점령자 운동이라는 용어로 사용한다. 문제는 그 에너지를 어떻게 활용해서 지속가능하고 강력한 진보운동을 일으켜 국가 경제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막 발판을 마련한 역행주의 세력의 손아귀에서 민주주의를 되찾느냐가 관건이다.

 

혼자의 힘만으론 많은 일을 달성할 수 없다. 다른 사람과 힘을 모아야 하고 훨씬 많은 사람을 규합해야 한다. 정책 입안자들은 개별적 조직(선거자금 기부자가 많은 조직을 제외하고)의 불평이나 요구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지만 그런 조직이 수백 개가 모이면 관심을 쏟는다. 미디어마저도 소집단이 조직한 기자회견, 소규모 시위, 변변치 않은 영향력의 표현 등은 무시하지만, 수천 명이 모이면 뉴스거리로 다룬다. 진보적 의제를 지지하는 후보에게 유권자 수만 명이 투표하면 미디어는 이러한 움직임을 정치 운동의 태동으로 보기 시작할 것이다.”

 

 

지은이는 이렇게 마무리한다. “미국에는 국민의 분노와 헌신이 다시금 필요하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제대로 된 분노와 헌신을 위해 꼭 필요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분별의 지혜 - 삶의 갈림길에서 읽는 신심명 강의
김기태 지음 / 판미동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야기 2015-138

 

무분별의 지혜김기태 / 판미동

 

 

진정한 행복은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속에 언제나 현존해있다. 참된 행복은 어떤 조건이나 상태에 속한 것이 아니며, 그것에 의해 좌우되는 것도 아니다. 참된 행복은 결코 소유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매 순간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 진정한 행복은 어떤 행위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존재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여기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며, 따라서 삶에는 온통 행복할 것들밖에 없다. 이 얼마나 멋진 인생인가!”

 

 

이 책은 신심명(信心銘)을 텍스트로 한다. 신심명은 중국 남북조 시대와 수나라에 걸쳐 살았던 승찬(僧璨)이라는 사람이 쓴 글들이다. 나이 마흔이 넘도록 심한 풍질(문둥병)을 앓고 있었다. 하루하루 살아감이 너무 힘들었다. 그저 죽지 못해 살아갈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무슨 큰 죄를 지어 몹쓸 병에 걸린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승찬은 중국 선불교의 제2대 조사인 혜가(慧可)스님의 명성을 듣게 된다. 승찬은 마지막 삶의 끈이라 생각하고 혜가를 만나러간다. 절박한 심정으로 그의 발아래 엎드렸다. “도대체 제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고통을 겪고 있습니까?” “그 죄를 내게 가져오너라. 내가 그것을 없애주마.” “아무리 죄를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혜가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네 죄는 다 없어졌다. 찾을 수도 없는 죄에 묶여 헛되이 고통 받는 일은 이제 그만 해라.”

 

 

 

큰 깨우침을 받은 승찬은 그의 육신의 병도 나음을 받고, 출가해서 승려가 된다. 몇 년 뒤 그는 혜가로부터 법통을 이어받아 중국 선종의 제3대 조사가 되었다. 신심명(信心銘)146584자로 이뤄진 사언절구의 짧은 시문이다.

 

 

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唯嫌揀擇)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가려서 택하지만 말라

 

지은이는 짧은 시문 속에 자신의 삶을 투영하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려서 택하는마음을 내려놓고 매 순간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 매 순간 있는 그대로의 현존, 그것이 바로 도요 깨달음이요 진리이기 때문이다.” ‘가려서 택하는 마음자체가 내 안에서 타인들의 삶을 다름으로 분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름속에서 겉으로 표시는 안 내지만, 마음이 주저앉고 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움직임을 그쳐 멈춤으로 돌아가면 멈춤은 다시 더욱 큰 움직임이 된다.”

 

- 움직임을 그쳐 멈춤으로 돌아오니, 그렇게 매 순간 있는 그대로의 로 돌아오니, 놀랍게도 나는 이전과 다름없는 인데 내 안에는 강 같은 평화가, 사랑이, 자유가, 지혜가 가득히 흐르고 있었다. 보잘것없고 볼품없는 한 방울의 파도에 불과하던 내가 그대로 무한히 깊고 넓은 바다였고, 잠시 있다가 곧 스러져 버리는 이슬과도 같은 존재인 내가 그대로 우주의 역동적인 질서와 조화 그 자체였으며, 모든 것과 분리되어 이 세상에 홀로 있는 것 같이만 느껴지던 내가 분리란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정체하나였다. , 이 얼마나 놀라운 비약인가!

 

 

한결같음에 통하지 못하면 양쪽에서 모두 공덕을 잃으리라

 

- 한결같음에 통하지 못하면, 그래서 매 순간 있는 그대로의 로서 존재하지 못하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양쪽에서 모두 공덕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때 양쪽이란 우리 안에서 경험하는 것들 가운데 우리가 버리고 싶어 하는 쪽과 얻고 싶어 하는 쪽 모두를 가리키는데 , 버리고 싶어 하는 것들은 얼른 버려지지 않아서 힘들고 얻고 싶어 하는 것들은 얼른 내 것이 되어 주지 않아서 괴로우니, 양쪽에서 모두 공덕을 잃는 것이다.

 

 

 

옳으니 그르니 따지기만 하면 어지러이 마음을 잃게 된다

 

우리 안에는 마음이라는 물이 쉼 없이 흐르고 있다. 그 물은 매 순간 이런저런 감정, 느낌, 생각이라는 형태로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우리의 생명과 삶을 가득히 수놓는데, 때로는 기쁨으로 흐르기도 하고 때로는 슬픔으로 흐르기도 하며, 때로는 외로움으로 흐르기도 하고 충만감으로 흐르기도 한다. 또 때로는 느닷없는 긴장과 불안과 두려움과 분노와 미움과 질투와 수치심과 무력감 등으로 소용돌이치며 흐르기도 하고, 어느 때는 소낙비 뒤의 투명한 햇살처럼 맑고 고요하게 사랑과 감사와 즐거움과 편안함으로 흐르기도 한다. 우리가 살아 있기에 마음이라는 물은 늘 그렇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