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우리 - 2014 세종도서, 서울시 한 도서관 한 책 선정 글로연 그림책 5
이선미 글.그림 / 글로연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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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아! 오늘은 분희 이야기를 들려줄게. 분희가 글쎄 어쩌다가 머리카락에 껌이 잔뜩 붙었다는구나. 엄마가 껌을 떼다 떼다 지쳐서 미용실에 가서 분희의 머리를 아주 짧게 잘라주었단다. 그러고나서 머리가 채 자라기도 전에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어.

 

2. 분희는 늘 함께 놀았던 친구들과 멀어지고 나니 혼자서 참 쓸쓸했단다. 아빠 엄만 일하러 나가시고 혼자 남았단다. 이사 온 첫날, 분희는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나길래 집을 나와 골목으로 나가봤지. 그랬더니 분희 또래의 아이들이 신나게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더란다.

 

3.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아는 친구가 하나도 없어서 분희는 그저 아이들이 노는 모습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단다. 그래서 그냥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고무줄 노래를 따라 불렀지.

 

 

 

4. 그때 한 아이의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렸어. "쟤 신발 거꾸로 신었네." 그때서야 분희는 발을 내려다봤단다. 이런, 집에서 급히 나오느라 왼발 오른발 신발을 바꿔 신었더구나. 에이 챙피해라.
집에 가서 다시 신발을 바꿔신고 나와서 아이들이 고무줄 놀이하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또 이런 소리가 들리네.."쟤는 남자야? 여자야?"

 

5. 이 말을 들은 분희는 분이 났어. 눈물도 나고 막 기분이 안 좋아졌어. 그래서 집으로 갔지. 아이들은 내 머리가 짧아진 이유를 모르니까 짧은 머리만 보고 남자로 본다는 사실에 속이 많이 상해졌어. 그래도 내 얼굴은 여잔데. 예쁘다는 말도 많이 들었구.

 

 

 

6. 근데 집에 가니 다시 심심해졌어. 그래서 혼자 고무줄 놀이를 했지. 재미가 있을리가 없지. 좀 하다가 말았단다. 다른 날 또 아이들 노랫소리가 들렸어. 분희는 신발도 똑바로 신고, 머리띠도 예쁘게 하고 아이들이 노는 곳으로 다가갔어. 그러자 고맙게도 한 아이가 분희에게 아는 척을 했어. "안녕?"  "응, 안녕."  그리고 나는 그저 아이들 노는 것을 바라보다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혼자 놀았지. 그러면서 아이들 이름을 알게 되었어. 영아, 현옥이, 은섭이, 주희. 그러나 아무도 분희에게 이름을 물어보지 않아서 서운했지.

 

7. 그래서 분희는 오늘도 아이들과 친해지지 못하는구나 하고 집으로 가려던 참에 현옥이의 목소리가 들렸어. "나 화장실 갔다올께." 그러자 영아가 내 뒤에 대고 물었어. "얘, 네 이름은 뭐니?" "나? 분희." "분희야, 네가 와서 고무줄 좀 잡아줄래?" "정말?"  분희는 신이 나서 달려갔단다.

 

 

 

8. 현옥이가 화장실을 다녀왔지만, 분희는 고무줄놀이에서 '깍두기'가 되어 함께 놀았단다. 깍두기가 뭐냐고? 먹어봤다고? 하하~ 놀이에서 깍두기는 편을 나누어 노는 놀이에서 사람의 수가 홀수 일 때 양쪽 편을 오가며 놀이를 하는 사람을 말한단다.

 

9. 이 일을 계기로 분희와 아이들은 친해졌지. 그래서 고무줄 놀이도 하고, 다른 놀이도 함께 하면서 재미있게 지냈단다. 그런데 이 책엔 비밀이 있단다. 뭐냐구? 이 책은 앞에서도 볼 수 있고, 뒤에서도 볼 수 있어. 분희가 혼자 고무줄을 붙잡고 있는데서 부터 보는 것이 좋겠어. 뒤에서 보는 책은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지? 이젠 네가 직점 보렴. 아, 그리고 그림이 참 예쁘단다. 예쁜 친구들 얼굴을 보면 윤아 얼굴도 마음도 더 예뻐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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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손으로 가는 인생 지만지 희곡선집
조지 코프먼.모스 하트 지음, 이형식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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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막이 오르면 그집 식구들 만큼이나 정신 없는 공간이 나온다. 거실이라고 보기엔 그렇고 창고

라하면 식구들이 서운해할것 같다. 이집 가족 구성원들은 삶을 최대한 충만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는 매우 좋은 표현이고, 다른 말로하면 '아무도 못 말리는 가족'이다.

 

2. 그들에겐 꿈이 있다. 아니, 그들은 꿈이 현실이다. 꿈이라는 표현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 그들

에겐 '하고 싶다'는 마음이 그대로 행동으로 옮겨지기에 꿈을 꿀 시간이 없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이다.

 

3. 이 집의 가장이자 연장자인 마틴 밴더호프 영감님은 '좋은 세월을 살아온 강단 있는 75세 정도

의 남자. 주름이 있는데도 얼굴은 젊다. 눈이 아주 살아 있다. 오래전에 세상과 화해한 사람이며

모든 태도와 매너가 그것을 설득력 있게 말해주고 있다'로 소개된다. '오래전에 세상과 화해한 사람'이라는 부분이 참 좋다. 세상과의 화해. 주변 사람들과의 화해는 빠를수록 좋다. 관에까지 싸

갖고 가니 문제다.

 

4. 필연같은 우연. 이 집 식구들에겐 우연과 필연의 경계가 모호하다. 우연히 잘못 배달된 타자기

덕분에 8년째 밖으로 나간 일이 전혀 없는 희곡을 쓰는 여인, 역시 8년째 발레를 배우고 있지만

전혀 진도가 안나가는 딸, 저녁을 먹으러 왔다가 주저앉아서 이 집 딸과 결혼한 사내도 있다. 얼

음 배달을 왔다가 그 집에 머물면서 폭죽을 만드는 사내도 있다. 5년 정도 함께 살다가 죽은 뒤엔

영감님 이름으로 사망신고가 된 우유배달부. 발레를 가르치러 온다는 것을 빌미로 제집 드나들듯

들락거리며 끼니도 해결하며 사고 치는것이 취미인 러시아 사나이도 있다.

 

5. 차례차례 또는 여럿이 등장해서 그들의 개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오랫만에 매우 재밋는 희곡

작품을 대한다. 희곡집을 읽다보면 선뜻 그림이 안 그려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희곡을 읽다

보면 바로 객석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좀 더 과장되게 이야기하면 객석의 반응도 전달된다. 물론

웃음이다. 폭소다.

 

6. 이 가족과 대비되는 가족이 등장한다. 영감님의 손녀딸 앨리스의 사내 커플 토니라는 젊은이의 가족이다. 이 친구의 부모는 뭐랄까. 일단 겉으로 보기엔 문제 없는 사람들이다. 돈도 제법 벌었다. 그리고 계속 불려가는 중이다. 영감님의 가족이 꿈을 키우는 동안 이 집 식구들은 재산을 키우고 있다.

 

7. 앨리스와 토니의 가족들이 상견례하는 날 저녁. 내일인줄 알았더니 오늘 저녁에 들이닥쳤다. 가족들의 진면목을 하루 저녁만이라도 감춰두고 싶었는데, 너무 리얼하게 보여준 저녁이었다. 설치기 좋아하는 러시아 사내는 레슬링을 가르쳐준다는 명목하에 토니의 아버지를 메다꽂기까지 했다. 예상대로 서로의 혼담은 없었던 이야기로 끝난다.

 

8. 이 대비되는 가정 중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줘야하는지? 차분하게 생각하면 한쪽으로 기울진 않는다. 단지 출세와 성공 지향적인 삶에 강력한 쉼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영감님의 말을 들어본다. "소화불량이 왜 생긴다고 생각하십니까? 행복해서요? 아닐 겁니다. 소화불량은 당신의 시간을 대부분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데 쓰기 때문에 생기는 거예요." 어쨌든 해피 엔딩이다. 긍정 영감님의 식사 기도로 마무리된다. "하나님, 우리가 다시 모였습니다. 당신이 행한 모든 것에 감사하다는 말 다시 한 번 하고 싶군요. 일이 아주 잘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앨리스는 토니랑 결혼하게 되었고, 그들이 아주 행복할 것으로 보이는군요. 물론 폭죽은 터졌지만, 그건 드 피나씨 잘못이지, 당신 잘못은 아닙니다. 우린 모두 건강하니까 다른 것들은 모두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9. 이 책의 원제는 'You Can't Take It With You' 이다. 직역하면 '가지고 갈 수 없다'다. 즉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죽을 때 싸갖고 갈 수 없다는 말이다. 오래 된 유머 한 꼭지가 생각난다. 구두쇠 영감이 죽으면서 변호사를 통해 이런 유언을 남겼다. '재산을 다 정리해서 관에 넣어달라'.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은 오직 아버지 장례에만 몰두했다. 변호사가 유언을 상기시키자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곤 하관할 때 고인의 품에 봉투를 안겨드렸다. 변호사가 뭐냐고 묻자. 그 아들 이렇게 답했다. "약속어음이요. 나중에 뵈면 그때 드리지요.". 이 희곡은 1936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할 때 837회나 공연을 기록한 흥행작이다. 이 시대를 살았던 아메리칸들에게 위안과 행복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평이다. 시기적으론 1929년 월스트리트 주가 폭락으로 시작된 경제공황의 여파가 남아있을 때이다. 이 작품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풀리처상과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10. 옮긴이 이형식 교수의 번역이 맛깔스럽다.

 

P.S   오자 : P.169 첫째줄. 그는 유진 오닐와 조지 버나드 쇼 - 유진 오닐과 조지 버나드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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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붓다의 십자가 - 전2권
김종록 지음 / 김영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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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신앙(종교)이란 무엇인가? 종교가 없는 사람이 종교를 지닌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고, 그 반대이기도 하다. 종교가 다르면 삶의 전반적인 빛깔까지도 달라질 수 있기에 전쟁을 마다하지 않기도 한다. 한 종교를 이해하려면 편협의 마음을 버리고 그 종교가 어떤 과정을 통해 받아들여지고 성장했는지를 먼저 알아야한다. 이 점에서 인류는 많은 실수를 저질러왔다. 종교의 억압이 바로 그것이다. 억압과 금지를 구분한다면 억압은 더 나쁘다. 억압은 폭력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

 

"바람이 불었다. 몽골 초원에서 일어난 황색 칼바람이었다."  1231년, 그 칼바람은 동방의 찬란한 문명국 고려에도 휘몰아쳤다. 이듬해, 최씨 무인정권 천하의 고려 조정은 몽골 기마군단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는 바다 건너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거기서 무려 39년간이나 버티며 저항했다. 그사이 버려진 국토는 몽골군 말발굽에 처참히 유린당한다. 본토에 남겨진 생민들과 산천초목, 가축들이 적들의 소모품이 되어 시간을 벌어주었다.

 

1231년 대구 부인사 고려대장경판이 불탔다. 1011년에 새기기 시작하여 76년 만에 완성한 초조대장경이다. 전쟁(이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의 와중에서 고려는 대장경을 다시 새기기로 한다. 강화도 선원사에 대장도감이 만들어지고 고려는 총력을 기울여 대대적인 판각불사를 벌인다. 1236년(고려 고종23)에 착수하여 1251년 무렵까지 이어진다. 이 국책사업의 결과물이 오늘날 세계문화유산이 된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이다. 세계문화유산은 현 시대와 미래의 세대들에겐 한켠에 놓인 '소중한 존재'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만들기위해 애쓰고 노력한 이들의 수고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뒷짐 지고 그것을 지시한 사람에 대해선 별도로 이야기를 나눠야겠지만..


말염과 이서

 

불타버린 대장경판을 다시 새긴것을 점검하는 과정 중에 새롭게 나타난 글자와 그림이 있었다. 마구간에 갓난아기가 누워 있고 한 여인과 수염이 풍성한 사내들이 경배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이런 글자들이 세로로 새겨져있었다.  말염회후산일남명위이서 (末艶懷後産一男名爲移鼠). 여러 갈래의 해석끝에 내린 결론은 '마리아가 임신한 후에 사내아이 하나를 낳고 이서라고 이름지었다.' 불교의 진수를 새겨넣는 경판에 이상야릇한 그림과 문자는 줄지어 나타난다. 심지어 卍자의 네 귀퉁이가 떨어져나간 열十자 문양이 종종 눈에 띈다. 이 소설의 테마는 바로 이 十자의 정체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이 미션에 지밀(指密)이란 승려가 투입된다. 말염은 마리아이고, 이서는 예수다.


 

 

눈과 혀

 

꼭 그러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우리 몸의 일부가 상실되면 다른 기능이 좀 더 예민한 반응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지밀은 다시 만들어지는 경판에 이상한 그림과 글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해보기 위해 해인사 출신 고려 최고의 각수장이 김승을 만나러 남녘땅으로 간다. 그 와중에 돌풍을 만나 며칠 눈이 먼다. 그 며칠 상간에 많은 깨우침의 시간이 찾아온다. 그 남녘땅 변산마을엔 몽골군에 끌려갔다 돌아온 신비의 환향녀 '여옥'이 있다. 어찌어찌한 사연으로 혀가 잘렸으나 복화술로 대화를 한다. 지밀은 경교(그리스도교)인들이 모여 사는 믿음의 공동체, 예배처에서 육신의 눈을 다시 뜬다. 경교도 여사제 여옥의 말이다. "복음은 세 치 혀로 전하는 전하는게 아니다. 나 아닌 다른 이에게 온몸과 정성으로 아낌없이 주는 사랑, 그것이 진정한 복음이니까. 세 치 혀로만 하는 신앙은 차라리 말을 않느니만 못하다."


 

밝혀지는 비밀 그리고 혼란스러움

 

진실이 밝혀질 때는 놀라움과 의구심이 함께 한다. 이제껏 알고 있던 사실이 허위라는 것은 주위 사람들을 찬찬히 다시 둘러보게 만든다. '나만 모르고 있었구나. 나만 바보였구나.' 지밀은 경판조각이 한창인 그곳 마을에서 촌장격인 김승에게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초조대장경이 불에 탄 것은 몽골군들의 소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부의 적과 계략이 저지른 일이라는 것이다. 하나하나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지밀은 자신이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가를 마음에 키우게 된다. 그가 걷고자 하는 길은 통합의 길이었다. 이기심과 탐욕에 흠뻑 빠져있는 불교와 이제 막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경교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지밀이 그곳 경교마을을 떠나 다시 강화로 복귀한 후 중국에 간 사이에 그곳은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된다.


저자는 영성이 가득한 소녀 '가온'의 입을 빌려 이렇게 향기로운 말을 남겼다.

"우리가 몹시 미워하는 어떤 것이 있다고 쳐요. 우리는 그것만 사라져주면 그 순간 천국이 될 거라고 굳게 믿죠. 정말 그것이 사라지면 천국이 될까요? 문제는 저마다 사라지기를 바라는 게 제각각이라는 거예요. 어쩌면 자기 자신도 누군가에 의해 간절히 사라지기를 바라는 대상일 수 있어요. 하지만 아무리 사소한거라도 그게 없다면 세상은 완전한 세상이 아니죠. 완전한 세상에서 그것 하나가 빠져버린 세상이 되는 거니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미워하는 것이 사라지기를 바라지 말고 아름답게 변하도록 도울 일이에요."

 

이 소설은 팩션이다. 사실에 스토리를 더한 것이다. 팔만대장경을 둘러싼 여러 인물과 사물의 행적과 현존은 많은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제 일 같다. 작가의 치밀한 추적과 구성력은 나를 고려시대 그 현장으로 시간여행을 떠나게한다. 그리고 내가 하는 말과 글, 행적 그리고 남긴 물건들은 후세대 그 어디쯤에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모를 일이다. 나 지나간 자리에 배떠난 자리처럼 아무런 흔적이 없던가, 꽃밭 사이로 난 조붓한 길처럼 향기로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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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부의 이력서
최희숙 지음, 김홍중 엮음 / 소명출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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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민경아가 오리엔탈 나이트클럽에서 그녀 오지우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침침한 맨 구석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어쩐지 무척 고독하고 슬퍼 보였다. 이 소설의 첫 부분이다. 그렇게 나- 경아는 대학동창 지우를 다시 만났다. 2년 만이었다. 이 때를 기점으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다.

 

 


외모의 화려함, 내면의 스산함

 

소설에는 표현이 안 되었지만 지우는 퀸카였다. 재벌 딸이나 권력가의 무남 독녀 외동딸같은 분위기가 났다. 지우 스스로 이런 말도 하긴 했다. "우리 아버진 X당의 최고 간부야. 우리 엄마도 X당의 선전부장이고, 또 부녀회 회장이기도 해. 하지만 난 이들의 명예에 관심이 없단다. 그들은 정말 높은 자리에 있어. 돈도 많고, 훌륭해."  물론 거짓말이었다. 그 후에 더 많은 실체가 드러났지만, 처음 대하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고도 충분할 만큼 그리 보였다. 한술 더떠 경아는 지우에게 뭔가 신비스러운 기운까지 느껴져서 경아쪽에서 지우에게 마음이 많이 기울었다.  결국 둘은 절친이 된다. 그리고 많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 재벌, 권력가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도 경아는 지우 곁을 지켜준다. 단지 지우에겐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후원자만 있을 뿐이었다.


 

성장속에서도 계속 건드려지는 어릴 적 상처

 

경아와 지우의 공통점은 어릴 적 내면의 상처가 매우 깊다는 것이다. 이 점은 우리 모두의 관심사다. 어른다운 어른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어릴 적 상처가 아물지 않은 탓이다. 누구나 마음 안에 어린 아이가 살고 있다. 그 어린 아이의 모습이 곧 현재 나를 표현해준다. 지우 곁에 있길 원하는 사람은 지우를 치료했던 정신과 의사다.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지우가 글로 남긴 것을 토대로 한다.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무서웠습니다. 그렇게 정신병원 침대 위에서 문득 느꼈습니다.(...) 이 축적된 불안의 덩어리를 쓰고 싶었습니다. 아름다운 문장의 기교나 재치가 없더라도, 그것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사명감을 느꼈습니다."  편모 슬하에서 자란 지우. 그 어머니곁엔 늘남자가 있었지만, 모두 오래 함께 하진 않았다. 단지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들뿐이었다. 지우가 열한 살때, 육이오가 터졌다. 지우에겐 더 깊은 몸과 마음의 상처가 남은 시기였다. 엄마는 죽고 양부모를 만난다. 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나 실패한다. 그리고 정신병원에서 담당의사인 재우를 만난다. 재우는 지우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랑인지 연민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지우는 재우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지우 마음엔 정리 되지 못한 어수선함이 가시가 되어 박혀있다. 그 자리에 다른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


 

 

사랑과 결혼

 

사랑이 더 깊어져서 닻을 내리고 싶을 때 결혼을 하게 된다. 혼자 생각하고 행동하던 삶이 이젠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시간과 공간이다. 말이 쉽지 현실은 어렵다. 재우는 미국으로 떠나면서 하필이면 무늬만 부부 사이인 재우의 숙부집에 기거를 부탁하고 떠난다. 지우와 숙부 사이에 깊은 사연이 만들어진다. 아름다운 결말을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재우의 숙부와 지우가 동반 자살을 기도했으나 지우는 깨어난다. 이 시점부터 템포가 빨라진다.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으나, 재우의 아내는 그녀 자신도 정숙하지 못한 주제에 지우에게 복수의 칼날을 들이댄다. 지우의 파멸을 위해 혼신을 기울인다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민준(재우의 숙부)부부 사이엔 아들이 하나 있다. 열 아홉살 데카당스다. 부모의 일탈된 행동을 보며 더욱 삐뚤어져간다. 소설 후반부엔 그 아버지가 자살하고 난 후 지우의 꿈 속이라는 설정이지만, 부정한 어머니를 온 동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처절하게 공개한다. 요즘 '이혼 법정'은 문턱이 닳을 정도이지만, 사회적 이목 때문에 이혼을 못하고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닐 것이다. 겉과 안이 완연히 다른 한 가정을 보며 사랑과 결혼이 각자의 삶 속에 약도 될 수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소설의 제목인 [창부의 이력서]보다 더 관심이 가는 이 책의 이력

 

저자 최희숙은 이 소설을 20대에 썼다. 이 작품은 1965년경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녀의 말을 들어본다. "나는 이 책이 세상에 던져짐으로써 베스트셀러가 되기를 원하기보다는 얼마나 많은 공격이 들어올까를 각오한다. 이 책은 나의 네 번째 딸이 된다." 저자는 이 책의 주제를 '여자는 모두 창부의 기질을 가졌고, 거기에 놀아나는 사내들은 얼간이'라 했다. 문학적 진리의 의미에서 그리했던 것이다. 그러나 60년대 한국 사회의 현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단지 이 한마디 때문에 1965년 1월 10일자로 모 신문에 연재되려다 부녀자들의 아우성에 1회도 실리지 못한 채 사고(社告)로써 중단된다. 그 후로도 한동안 시끄러웠다. 그들 중 누구도 작품을 본 사람도 없이 단지 작가의 한 마디 '여자는 모두...'에 흥분했다. 작가는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절(寺)로 피신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때는 받아들이지 못한 내용을 지금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무슨 사연인가? 그때가 더 도덕적이고, 지금은 아닌가? 그때는 솔직하지 못했고, 지금은 솔직한가? 그때보다 사람들의 이해력과 포용력이 더 좋아졌나? 이 문제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 책 속에서

 

"전 사람들을 이해 할 수가 없어요. 결혼은 신성하고 아름다운 것이나 동거생활은 악의 씨처럼 생각하는 걸요. 둘이 다를 게 뭐 있어요? 결혼도 따지고 보면 국가가 인정한 독점적인 사창(私娼)이 아니고 뭐예요."

 

"당신들 기성 세대부터 세탁하는 겁니다. 위선을 벗어부치고 진실하게 발가벗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럼 우리 젊은 세대들은 당신들의 혁명을 따라갈 겁니다. 우리의 땅에 빛이 뿌려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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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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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바다로 간 것 만큼이나 호랑이가 바다로 갔다는 사실이 궁금점을 유발한다. 고래가 있을 곳은 바다이고, 호랑이가 있을 곳은 산이라는 당위성 때문이다. 그러나 한 생각 바꾸면 억겁의 시간 속에 바닷속 산과 들이 뭍이 되고, 하늘과 함께 호흡하던 산과 계곡들이 바닷물과 어우러져 지내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호랑이가 바다로 가는 것은 아마도 그 조상들의 DNA가 자극을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상실 그리고 내 안의 짐승 한 마리

"바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그에 따른 노동이 필요하다."로 시작하는 첫 문장이 독자를 바다로 유혹한다.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 바다를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바다에 뛰어들어 그 속살을 봤다고 해서 바다를 그릴 수가 없다. 바다의 얼굴은 변화무쌍하다. 산과 계곡을 돌풍이 핧고 지나가듯 바닷속도 그리하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 '나' 영빈은 지금 제주도에 있다. 원래는 물 위를 걷고 싶었으나, 그것이 여의치않아 우선 바다를 바닷속을 좀 더 알고 싶어 아예 당분간 제주에 머무를 생각이다. 굳이 고교 동창 산부인과 의사가 '양수와 바닷물의 성분이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안해줬어도 그는 물이 참 좋다. 바다가 좋다.

 

영빈은 어느 날 실로 9년 만에 우연히 다시 만난 해연과 아파트 이웃에서 친구처럼 애인처럼 때로는 부부처럼(남들 보기에)지낸다. 두 사람의 관계는 그저 쿨하다. 오래 전 그녀를 만났던 그때 사실 그에겐 '상실의 시대'였다. 해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9년전 그녀를 만난 곳은 성수대교위를 지나던 택시 안에서였다. 그가 먼저 타고 나중에 그녀가 합승을 했다. 성수대교가 붕괴되던 그날 두 사람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었다. 다행히 살아났기에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마도 그 때부터였을것이다. 붕괴되어가는 그의 삶과 무늬만 다리였는지 맥없이 강물로 떨어져내린 성수대교 그리고 부조리한 사회. 그는 해연에게 호랑이를 잡으러간다고 했다. 그는 종종 호랑이와 조우하곤 했다. 컴퓨터 내부에서 만난 적도 있다. "누구나 마음 속에 짐승을 한 마리씩 키우고 있지..평소에 잠든 척 얌전히 있다가 못마땅한 일이 생기면 돌연 거칠게 반응하지. 참고, 또 참고, 또 참다가 말이야. 그때부터 주인을 괴롭히는거야..."


 

경계인 또는 또 하나의 디아스포라

 

소설에는 일본인이 두 사람 등장한다. 두 여인이다. 그가 우연히 두 사람을 만났지만, 알고보니 두 사람이 여고 동창지간이다. 한 사람은 등단하고 한 사람은 아직이지만, 두 사람은 글을 쓴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한국계 여성이다.

히데코라는 이름인 줄 알았지만, 아사카와 유미코라고 알게 된 여인과 사기사와 메구무라는 여인이다. 메구무라는 여인 역시 영빈은 우연히 스친 적이 있다. 한국계 여성으로서 일본에 살아간다는 깊은 어려움이 표현된다. 아, 그리고 나중에 두 여인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안타깝다. 작가는 이 두사람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불편한 관계가 여전히 현재와 미래의 진행형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어느 사회든 경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힘든일입니다. 작가뿐만 아니라 누구든 마찬가지죠.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경계인의 입장에 서면 흔히 회색분자나 기회주의자로 몰리게 마련이니까요. 가령 좌와 우가 있습니다. 어느 면에서는 좌가 옳고 우는 옳지 않습니다. 반대로 또 어느 면에서는 우가 옳고 좌는 옳지 않습니다. 균형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좌우의 장점을 택해 문제 해결에 적용시키려고 하죠. 그런데 그게 생각만큼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을 경계인이라 부르지 않고 양쪽에서 모두 기회주의자로 간주하니까요. 말하자면 양쪽에서 흔들어대는 거죠."


 

잡느냐, 벗어나느냐

 

낚시 소설은 아니지만, 제주도로 낚시를 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참고서적으로도 훌륭할 정도다. 꼭지에 이런 메모도 종종 붙는다. "물때 4물. 음력 2월 28일. 양력 4월 17일. 오전 간조시각 새벽 3시 29분. 만조시각 9시 52분. 더 없이 맑은 토요일 아침." 제주도는 물론 주변 섬들의  이곳 저곳 낚시 포인트와 물고기 이야기가 어류도감처럼 펼쳐진다.

 

 

트라우마 그리고 힐링, 다시 일어서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서적으로 근거리는 영빈과 해연의 가족 그리고 시간적으로 멀게는 일제시대부터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까지 이어진다. 영빈이 낚시 나선 길에 들르는 단골 국수집 아주머니는 제주 4.3 사태 피해자의 가족이다. 그녀는 외부 사람에게 매우 배타적이다. 그 상처는 여전히 아프다.

 

그러나 트라우마는 어떻게든 극복해야 한다. 그것에 잡혀 있다보면 한발도 못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문을 열고 닫는 것이 나의 의지에 달려 있으니 말이다. 해연은 영빈이 잡아온 꽤 많은 고기를 욕조에 담가놓자 그 안에 들어가서 힐링 타임을 갖는다. 영빈은제주도에서 호랑이를 몇 번 만났다. 소설 끝무렵 영빈은 자신의 낚싯중에 걸린 꽤 큰 참돔과 돌돔을 그냥 바다로 다시 보내줬다. 잘한 일이었다. 해연의 뱃속에는 새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제주에 있던 영빈을 보러 내려왔던 해연과 최초로 신호교환(?)을 나눈 뒤 일어난 일이었다. 소우 쿨한 커플이 핫해질 것이다.

 

그리고 호랑이는 산으로 보내야 별일 없다. 무엇이든 있을 곳에 있으면 그 자체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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