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내가 살아가는 내면의 일상. 가벼운 듯 하나 결코 가볍지 않은 나날들. [가벼운 나날] 북리뷰 http://blog.aladin.co.kr/nurimaru/6460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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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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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빠르게 검은 강에 다가간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이다. 웬지 이 문장이 이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그려주고 있는 느낌이다. 강은 강인데 '검은 강'.  1958년 가을부터 시작된다. 번역자(박상미)가 번역에 공을 들였겠지만, 문장이 서정적이다. 그러나 웬지 차가운 느낌이 든다. 


2. 작가가 화자가 되어 묘사를 해나간다는 것을 밝힌다. "나는 그녀의 생활을 안에서 밖으로, 그 중심에서부터 묘사할 예정이다." 여기서 그녀란 이 소설의 모델이 되는 가정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인 네드라이다. 그녀의 남편은 건축설계사이다. 중산층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3. "그들(이들 부부)의 삶은 미스터리였다. 숲과 비슷했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덩어리로 이해되고 묘사될 수 있었지만, 가까이 갈수록 흩어져 빛과 그림자로 조각났고, 그 빽빽함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안에는 형태가 없었고, 경이로울 정도의 디테일만이 어디나 가득했다.(....) 이 모든 것은 제각각이면서도 밀접하게 엮여 있고, 보이는 것과 달랐다. 실제로 이 세상엔 두 종류의 삶이 있다. 비리(남편)의 말처럼, 사람들이 생각하는 당신의 삶 그리고 다른 하나의 삶. 문제가 있는 건 이 다른 삶이고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것도 바로 이 삶이다."  저자는 독자에게 이 두 삶을 바라보면서 각자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길 원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대목이다.


4. 건축설계사인 비리에겐 꿈이 있다. 작더라도 모두가 알아볼 수 있는 건물을 짓길 원한다. 그러고 나면 더 큰 것. 한 계단씩 올라가길 원한다. 그는 유명해지길 원한다. 그는 인류의 중심에 있고 싶어한다. 그거 말고 열망할 것도 희망할 것도 없다. 그저 세상 사람들에게 이름이 알려지길 원할 뿐이다. 


5. 그렇다면, 그의 아내 네드라는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 우선 그녀는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내향적인 성격이다. 그렇지만, 한편 저녁식사의 분위기를 띄우는, 멋진 말을 할 줄 아는 여자다. 그녀의 얼굴은 사람을 흥분시키기도 한다. 갑작스럽게 터지는 미소가 주위사람을 혼미하게 만들기도 하는 모양이다. 부부 사이엔 두 딸이 있다. 그리고 그녀는 쇼퍼홀릭이기도 하다.


6. 외견상으로 이들 부부. 이들의 가정은 해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허전함이 존재한다. 아마도 우리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대동소이할 것이다. 저자가 무엇을 그리고자 하는지 계속 지켜본다. "그들의 삶은 함께 꾸려졌고, 함께 짜였다. 그들은 마치 배우들 같다. 자기밖에 모르는 성실한 배우들. 오래된, 불멸의 연극대본 이상의 세상은 없다고 생각하는 배우들." 자기밖에 모르는 성실한 배우들은 무슨 뜻인가. 일단 자기가 맡은 역할에 충실하다는 뜻이리라. 자기 맡은 역할만 충실하다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공허함을 감출 수 없다.


7. 이들 부부외에도 많은 등장인물들이 있다.  별로 유명하지는 못하지만 화가가 한 사람 있다. 그에겐 열일곱살 딸이 있다. 그의 아내는 젊음의 막바지에 있다는 수식이 붙는다. 그녀는 밤새 밖에 내놓은, 아름다운 만찬과 같다고 한다. 화려했지만 손님은 돌아가고 없는 그런 분위기. 이런 표현이 아마 저자의 매력인 듯 싶다. 화가의 아내는 들판에 혼자 나간 암말이라는 묘사도 보인다. 광기를 기다리며 풀을 뜯으며 세월을 보내고 있다 한다. 그녀가 자주 가는 곳은 뉴욕 시내, 블루밍데일스 백화점, 산부인과, 미술용품점 그리고 가끔 오후엔 영화를 보러 간다. 산부인과를 왜 가는지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그냥 긍금하다.


8. "아침에 빛은 소리 없이 내려왔다. 집은 잠들어 있었다. 머리 위 공기는 반짝였고, 무한했다. 그 아래는 촉촉한 땅이었다. 이 땅을, 이 풍성함을, 이 밀도를 맛볼 수 있을까. 흙냄새가 냇물처럼 공기 속을 흘렀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치즈 껍질이 빵처럼 굳어 있었다. 다 마셔버린 와인 잔에서 시큼한 향이 났다."


9. 작가의 표현을 빌어 비리(남편)가 그들의 삶을 묘사하는 부분에 공감을 하게 된다. 그들의 삶은 두 가지 양상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하나는 그들 부부의 삶이었고(적어도 삶을 위한 준비였거나), 다른 하나는 아이들을 위한 삶의 삽화. 그들은 서로 말없이 이 사실에 동의하고 있었다. 이 두 개의 버전은 서로 얽혀 있었다. 하나는 숨어 있고 다른 하나는 드러난 채. 그 시절 그들은 아이들이 어떤 불가능함을 갖기를 원했다. 성취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닌, 완벽하게 순수하다는 의미에서의 불가능함. 아이들은 그들의 작물이고, 밭이고, 땅이라고 한다. 어둠 속에 풀려난 새들이라고 한다.  아울러 아이들은 살아야 하고 승리해야 한다는 소망을 내비친다.


10. 두 부부 사이에 아직은 드러나지 않는 균열이 만들어지고 있다. 몸 따로 마음 따로 각자 만나는 사람이 생긴다. 남편 비리의 삶은 천천히 둘로 나뉘어진다. 비리에게 비리가 일어난다. 그의 아내 네드라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변한 게 없는 것 같았지만, 정확하게 똑같은 것 같았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붕괴는 시작이 보이지 않는다. 이떤 국면에 이르러야만 벽에 균열이 보이고 기둥이 쓰러지고 건물의 앞면이 내려 앉는다."   


11. 이 들 사이엔 많은 인물들이 모였다 흩어진다. 마치 소용돌이 주변에 낙엽들이 빨려들어가는 듯 하다가 어떤 힘에 떠밀려 튕겨 나가듯 그렇게 멀어진다. 어느 덧 그들의 나이가 중년에 접어들던 어느 해 가을 그들 부부는 이혼했다. 작가는 그러지 않았다면 좋았으련만, 그 가을의 청명함이 둘 모두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한다. 아내 네드라는 마침내 눈을 뜬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보였고, 강력하고 느긋한 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흔 하나라는 나이가 잠시 비참한 마음을 뿌려줬지만, 흡족했다. 그리고 유럽으로 떠났다. 그 후 그 두 사람은 날개를 단 것 같기도 하고, 날개가 꺽인 듯한 삶을 잠시 맛보지만, 그 끝은 가을도 지나고 황망함만 남은 겨울 바닷가 그 자체이다.  혼자만의 봄 날은 없었다.


12. 이 책의 작가 제임스 설터는 최근 87세의 나이에, 35년 만에 장편 소설 [올 댓 이즈]를 출간했다고 한다. 이 책 [가벼운 나날]은 1975년도에 출간되었다. 설터는 한 동안 "작가들의 작가", "엘리트 작가"로 불리워지며 아는 사람만 알고 읽는 사람만 읽는 작가였다. 그러나 설터는 여전히 작가로서의 영예를 누리고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무엇을 전해주고 싶었을까? 아니, 굳이 무슨 의미를 찾는 것 자체가 무모함일지도 모른다. 그저 그가 그려주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소설 속엔 나도 있고, 당신도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결혼 생활이 있고, 미처 당사자들의 눈에 안 띄는 다른 내면의 일상이 있다. 이 소설의 모델이 된 실제 부부가 있다. 공교롭게 이 책이 출간 된 후 이 부부는 이혼을 했다고 한다. 


13. 책의 원제는 'Light Year' (광년, 光年)이다. 이 책의 번역자가 고심을 했을 것 같다. 실제로 그랬다는 번역후기를 접한다. 원 뜻은 그러하지만, 역자는 그저 가볍게 번역을 했다. '가벼운 나날'로 번역한 것은 잘 되었다고 생각든다. 그렇지만 소설속 인물들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 안은 결코 가볍지가 않다. '가벼워 보이는 나날'일 뿐이다. 우리 삶인들 다를까. 단지 그저 내색을 안하고 태연하려고 애쓰는 것 뿐이리. 고고해 보이는 백조들의 발이 수면 밑에선 얼마나 바쁜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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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동양고전 슬기바다 1
공자 지음, 김형찬 옮김 / 홍익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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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논어]는 공자의 어록이다. [노자]에는 노자(老子)라는 인간이 잘 안 보이지만, [논어]에는 공자의 인간적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있다. 이것이 [노자]와 [논어]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공자의 시대는 기원전 500년 춘추전국시대이다. 5천 년 중국 역사에서 꼭 중간에 위치한다.


2.  이 시기는 사회에 관한 근본적 담론이 가장 활발하게 개진된 시기이다. 춘추전국시대는 철기의 발명으로 특징지어지는 기원전 5세기 제2의 '농업혁명기'에 해당된다. 그래서 이 시기는 철기시대 특유의 광범하고도 혁명적인 변화를 볼 수 있다.


3. 또한 춘추전국시대는 사회 경제적 토대의 변화와 함께 구(舊)사회질서가 붕괴되는 사회 변동기라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제자백가(諸子百家)의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기라고 한다. 백화제방은 온갖 꽃이 일제히 핀다는 뜻으로 각종 학문과 예술이 촉진되고 융성해진다는 뜻을 지닌다. 백화제방은 현대에 들어서(1956년) 소련의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을 공공연히 비난하면서 공산당의 엄격한 통제정책을 완화하자, 이에 자극을 받은 모택동이 백화제방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는 구호와 함께 반공 지식인들에게 공산당의 정책을 자유롭게 비판하라고 권유하는 자극으로 활용했다. 백화제방은 문학과 예술에 대한 것이고, 백가쟁명은 학술과 과학에 관한 것이었다.


4. 이 책은 제1편 학이(學而)편에서 시작해 제20편 요왈(堯曰)까지이다. 지금까지 [논어]와 관련된 책은 3천여 권이나 발간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논어]라는 책이 지닌 특성과도 관계가 있다. 원전은 하나인데, 해석이 그만큼 다양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제대로 알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누구나 어디에서든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기 원한다. 그래서 툭하면 나오는 말이 "내가 누구인데"이다. 내가 누구인데를 강조하기 전에 나는 상대방을 잘 알고 그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추려고 마음을 쓰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어찌 나의 존재만 귀하게 여기는지 심각하게 반성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열 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세계관을 확립했으며, 마흔 살에는 미혹됨이 없게 되었고 쉰 살에는 하늘의 뜻을 알게 되었으며, 예순 살에는 무슨 일이든 듣는 대로 순조롭게 이해했고, 일흔 살에는 마음 가는 대로 따라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이 말을 내 나이에 적용시켜보면 심히 부끄럽다. 아직도 미혹된 삶, 이해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마음 가는 대로 따라 해도 어긋남이 없는 삶이 되기엔 한 없이 부족함을 느낄 뿐이다.


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말에 대해서는 모자르는 듯이 하려 하고, 행동에 대해서는 민첩하려고 한다."  말만 앞서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 생각도 너무 많다보면 행동이 느려진다. 우물쭈물하다가 날이 새버린다. 생각은 복잡할지라도 행동으로 옮길 때는 단순하고 명료한 것이 좋다.


8. 자공이 여쭈었다. "저는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그릇이다." "무슨 그릇입니까?"  "제사에서 곡식을 담는 옥그릇이다."  성경에도 그릇 이야기가 나온다. 옥으로 만들었던, 금으로 만들었던, 흙으로 빚었던 간에 중요한 것은 깨끗한 그릇이다. 제 아무리 귀한 재료로 만든 그릇이라 할지라도 깨끗하지 못한 그릇에 무엇을 새로 담으리.


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함께 도(道)로 나아갈 수는 없고, 함께 도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도 입장을 같이 할 수는 없으며, 입장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상황에 따른 판단을 함께 할 수는 없다." 같은 교실에서 같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아도 받아들임이 틀린다. 나아가는 길이 다르다. 결국엔 같은 상황에 처해도 다른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다. 무엇이 옳은 길인지는 이미 판별이 나 있는 듯 하면서도 서로 그 앞길은 못 보고 있을 수 있다. 옳바른 스승을 만나는 것도 살아가며 큰 복이지만, 마음 밭에 뿌려진 씨앗을 잘 키워서 거목이 되거나 허접한 잡초가 될 수 있기에 늘 마음 밭을 갈아서 옥토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10. 신영복 선생은 [논어]는 인간관계론의 보고(寶庫)라는 표현을 한다. 춘추전국시대에 백가(白家)들이 벌였던 토론(爭鳴)은 고대국가 건설이라는 사회학 중심의 담론이었다고 한다. 그 숱한 사회학적 담론 중에서 사회의 본질을 인간관계에 두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살아가며 부딪는 모든 문제들이 바로 인간관계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그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고 평온하게 나가는 삶의 지혜가 [논어]에 담겨 있기에 자주 들여다보며 마음에 채찍을 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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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의 재발견 - 1년 내내 계획만 세우는 당신을 위한 심리학 강의
피어스 스틸 지음, 구계원 옮김 / 민음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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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약 당신이 95%의 미루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 것을 미루지 마세요! 라는 멘트가 겉표지에 적혀있다. 그래서 읽어야겠다. 95%에 당연히 포함되기에 그렇다. 이 책의 저자 피어스 스틸은 '늑장심리학'(학문이 세분화되다 보니 이런 분야도 있다) 연구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 저자의 10여 년의 연구 성과를 담았다고 한다. 


2. 저자에게 늑장이란 평생의 과제였다. 그 자신이 미루기 대장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늑장 부리기를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첫 번째는 이 책에서도 소개되는 독립적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이고, 두 번째는 늑장에 대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 결과를 통합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는 최근에 개발된 과학적인 방법론인 메타 분석(meta-analysis)을 활용하고 있다. 메타 분석은 특정 주제에 대해 독립적으로 수행된 선행 연구의 일치하지 않은 결과를 취합하여 통계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방법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3. '늑장'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부터 내려 봐야겠다. 도대체 늑장의 정체는 무엇인가? 수많은 설명 중에서 간결하게 옮겨보면 늑장은 '제때 하지 않으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일을 미루는 것을 의미한다.'. 


4. 늑장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다보니 떠오르는 시 한편이 있다. 안도현 시인의 '적멸'이란 詩다.


장독 항아리 뚜껑 위에 눈이 내렸다, 간밤에

뒤뜰에 누가 못을 파서 대여섯 포기 연꽃을 심었느냐

겨울 아침에 브래지어처럼 백련이 벙글어서 좋고

저 연꽃과 나 사이의 눈부신 거리를 거저 얻어 좋다

내 눈썹에다 겨자씨를 뿌리고 가는 북풍도 좋다

마른 풀덤불 잡기장에 참새야, 무얼 그리 총총 적느냐

엄한 원고 마감일을 넘겨야 비로소 시가 오는 습성이

좀 오래갔으면 한다, 오후에는 눈 녹은 물로 손을 씻고

저 연못으로 소금쟁이가 타고 갈 뗏목을 만들어야겠다


이 시를 옮긴 것은 '엄한 원고 마감일을 넘겨야 비로소 시가 오는 습성'이라는 구절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도 늑장에서 자유로운 직업군은 없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작가들이 그러하다고 한다. 애거사 크리스티도 그랬고, 마거릿 애트우드는 "늑장 부리기와 걱정으로 오전 시간을 보내다가 대략 오후 3시쯤부터 미친 듯이 초조함에 휩싸여 원고에 몰두하는" 경우가 있다고 인정한 바 있다고 한다. 


5. 그러나 유명 작가들도 그랬는데 하면서 위안 삼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늑장 부리기는 언젠가 내게 불이익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 틀림없다. 일반적으로 늑장을 부리는 사람들은 완벽주의자에 가깝기 때문에 엄청나게 높은 기준을 설정해 놓고 그 기준에 충족하기 위해 일을 미룬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키포인트다. 저자는 이 부분을 이렇게 마무리 한다. "완벽주의는 완벽한 변명이다."


6. 저자는 늑장부리는 사람의 3가지 유형을 설명한다. 자포자기형, 매사에 흥미를 못 느끼는 타입, 충동적인 성향이 그것이다. 어찌보면 늑장이라는 단어가 발목을 잡는 것도 인간의 삶이 복잡해지는 과정 속에 나타난 현실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세상이 이렇게 복잡해지고 피곤해지기 전에 인간들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여유롭지 않았을까? 단지 날씨나 건강 상태만 심각하게 방해를 하지 않았다면 그런데로 사는 데는 별 불편이 없었을 듯 하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면 되지 않았을까? 욕구와 그때그때 해야 하는 행동이 일치했을 것이다. 그러나 차츰 미래를 예상하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타고난 기질에 맞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된다. 자연의 섭리와는 무관하게 여름에 겨울을 걱정하고, 한창 젊은 나이에 노후대책까지 걱정해야 한다. 그러니 늑장 부리는 것에 크게 죄책감을 갖을 필요는 없을 것도 같다. 


7. 그래도 기왕에 늑장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으니 좀 더 읽어보자. 늑장을 피우는 근본적인 원인이 인간이 현재에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페이스북을 로그아웃 할 수 없다는 부류도 소개되고 있다. 페북내 '늑장 중환자'그룹(회원 수 1만 8천명 이상). '내 전공은 낮잠과 페이스북, 부전공은 늑장'(회원 수 3만 명 이상)이란 그룹도 있다고 한다. 


8. 자, 그럼 저자가 권유하는 '늑장을 이기는 기술'은 무엇인가? 실패하도록 만들어진 사람이 없기에 자신감과 열등감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란다. 내가 하는 일은 소중하니까 미룰 수 없다면 사랑하라는 조언도 해주고 있다. 문득 '잡초를 사랑하기'가 오버랩되는 부분이다. 달콤한 유혹의 결과는 언제나 쓰기 때문에 충동의 고삐를 잡으라는 말도 한다. 


9. 저자는 이 책에서 여러가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면서 '늑장'에 대응하는 방법론을 꽤 많이 제시해주고 있다. 늑장의 정체가 파악된 것이 일차적인 수확이고, 두 번째로 늑장은 인간의 보편적인 성향이라는 것이다. 너무 안달복달을 하면서 살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느긋하다 못해 태만한 상황까지 가서 나는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0. 저자 역시 너무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 놓은 것이 멋쩍었는지 슬쩍 한 시인의 시 구절을 인용했다. 웨일스의 방랑 시인 W. H. 데이비스의 詩다. 

"그게 무슨 인생이란 말인가. 근심으로 가득 차 잠시 멈춰 서서 관조할 시간조차 없다면." 

'게으름을 피우고, 경솔하고, 즉흥적이고, 엉뚱해져라, 우리 인생에는 이러한 특징을 위한 자리도 필요하다.' 라는 말이 덧 붙는다. 이 말이 마음에 쏙 들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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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늙어갈 것이다
카미유 드 페레티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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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직업상 노인 어르신들을 많이 대한다. 나 역시 이젠 아이들이 할아버지라고 부를 정도가 되었다. (아이들 눈은 정확하다.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르면 그냥 받아 들여야한다.나는 특히 머리 색깔 때문에 일찌감치 할아버지 소리를 듣긴 했다) 노인 어르신들을 보면 어렴풋이 나마 그분들이 걸어온 삶의 여정이 얼굴의 표정이나 몸과 마음의 불편함을 통해 전달된다.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들이 "갈데는 이제 한 군데 밖에 안 남았는데.."하시면 내가 웃으며 이렇게 답해드린다. "가시는 길은 아세요?".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인다. "그래도 어르신처럼 이렇게 병원에 오실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하게 받아 들이셔야지요.." 하면 대부분 수긍하신다. 진작부터 거동도 제대로 못하고 지내시는 분이 많기 때문이다.


2. 이 소설의 무대는 요양원이다. 작가 카미유 드 페레티는 1980년생이다. 아직 젊은 고운 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의 심리상태와 상황을 세심하게 그리고 있다. 역시 소설의 첫 문장을 옮겨본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여기, 로비 현관문 앞에 놓인 신발털개 위에서 이렇게 시작될 수도 있을 것이다." 


3.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은 좀 불편해도 정신이 맑다면 축복이다. 그렇지만, 정신이 맑지 못한 것도 어쩔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한다. 단지 본인이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면이 안타까울뿐이다. 이럴 때, 정신이 맑지 못한 어르신들을 모셔야 하는 가족들의 입장은 참 난감하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된다. 이 소설에도 당연히 치매 노인들,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스토리가 이어진다.


4. 베고니아 요양원이라는 공동체는 그 자체가 하나의 작은 사회이다. 요양원 주민들은 통과해야 할 마지막 문 하나만 남겨 놓은 상태이다. 60세부터 107세 노인까지 함께 생활한다. 작가는 어느 일요일 아침 아홉 시에 시작되어 정확히 다음 날 밤 열두시 사십오분에 이야기의 막을 내린다. 15분 간격으로 이동하고 있다.  요양원 이곳저곳의 모습과 내면의 움직임을 따라 가다보면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듯하다.


5. 이야기의 중심 속엔 전직 판사 니니와 이 소설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카미유가 있다. 그들은 대모와 대녀 관계이다. 작품이 만들어진 과정 중에 작가가 베고니아 요양원을 많이 방문하고 관찰한 것으로 짐작된다. 남편을 애인으로 착각하는 여인도 있다.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그 여인은 애인이 많았다. 남편에게 남편이 오기 전에 얼른 집을 나가라고 한다. 이런 말을 사랑하는 아내에게 들어야 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참 안타깝다.


6. 전두 측두엽성 치매를 앓고 있는 드레퓌스 라는 노인은 자칭 '선장'이다. 그는 베고니아를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선박인 양 전두지휘한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요양원은 이 땅에 세워져 있으나, 세상과는 별도로 돌아가는 일상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분명히 세상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반대로 세상 역시 베고니아라는 배에 영향 줄 것도 없다.


7. 자칭 드레퓌스 선장은 한 번도 배를 타본 적이 없다. 센강의 유람선을 제외하고는. 그는 파리 토박이다. 그는 무프타르 가에 있는 자신의 철물점을 평생 떠나본 적이 없다. 다행히 베고니아 승객들이 대부분 협조적이다. 그가 휘젓고 다니는 것은 하나의 이벤트다. 

이 글을 적다보니 여러 해전 지하철에서 비슷한 사람을 본 기억이 난다. 옷매무새가 깔끔한 60중반의 남자분이었다. 화창한 날이었음에도 검은 장우산(아마도 통신용 안테나로 활용하는 듯)을 지하철내에서 접었다 폈다 하더니, 드디어 액션!  어딘가로 작전 지시를 내린다. 열려 있지도 않은 폴더폰에 대고 좌표를 읊는다. 카운트 다운...발사. 그리곤 다음 칸으로 기세 좋게 이동하던 그 분. 지금도 어디선가 어딘가를 무수히 폭파하고 다닐 것 같다.


8. 이런 생각이 든다. 요양원 안이던 바깥이던 사람은 부대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이 싫다고 무인도에 가 있는들 마음이 편할까? 젊은이들 중에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나고 있다는 반갑지 않은 소식도 종종 접한다. 베고니아에도 호감, 비호감이 존재하기에 당연히 갈등이 있다. 그러나 그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 배에 타고 있으니, 하루에도 수없이 부딪힌다. 본인들은 별로 불편하진 않으나 바라보는 사람들만 마음이 편치 않을 뿐이다. 행여나 상태가 더 나빠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엔 웃음이 있고, 사랑도 있고, 작은 감동도 있다. 64장의 스냅 사진을 보듯이 그들의 축소된 삶을 들여다보면서 미래의 나를 본다. 나는 이 중 어떤 모습으로 남길 원하는가.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가게 되는 과정이기에 더욱 마음에 진한 이미지로 남겨진다.


9. 작가의 관찰력과 표현력에 더해 구성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가의 롤 모델인듯한 조르주 페렉의 [인생 사용법]에서 썼던 구성 기법이 적용된다.  1) 행마법(체스판 위에서 '기사'가 각각의 칸을 단 한 번만 지나가는 것)을 이용하여 방들의 묘사 순서를 결정하는 것.  2) 목록들과 요소들을 형식상 규칙적인 방식으로 각 장들에 배분하기 위해 10행 정사형 라틴 사각형 이론을 이용하는 것.  3) 목록과 각 목록의 요소들을 정하는 것.  

소설 내용에 시큰둥하다면 구성력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느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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